소비노동조합
김강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엔 단편소설이 많지 않지만 한때 한국문학 단편소설은 전성기라 할 만큼 많은 단편이 쏟아져나온 때가 있었다. 독자가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에는 70년대 전후라고 한다. 그때는 산업사회로 이전하는 격변기이기도 했고, 워낙 가진 게 없는 나라라 산업발전을 위해서는 풍부한 노동력을 이용해 24시간이 모자라게 일해 수출해야 할 때다. 피폐해진 농촌을 떠나 젊은이들이 도시로, 도시로, 몰려가던 때였다. 저임금이지만 일자리는 많았기 때문이다. 농촌에서 농사짓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에 너나 없이 도시로, 특히 서울로 몰리던 시절이었다. 일손이 모자라는 공장에서는 각종 혜택을 앞세워 농촌의 젊은이들을 끌어들였다. 저임금에 복지혜택도 지금에 비하면 말할 수준도 못 되지만 농촌의 유휴인력은 이것저것 따질 게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도시의 공장에서 중노동에 시달리면서 간혹 휴식시간에는 라디오의 음악이나 책 한 권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래서 한 편의 이야기가 한 권에 있는 긴 장편소설은 잘 읽히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안타까움에 몸둘 바를 모르겠다. 단편소설은 분량이 200자 원고지 70장 내외로서 짧은 시간에 한 가지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 바쁜 대한민국 사회에 적절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90년 이후에는 단편소설보다는 장편소설, 그 이상의 시리즈로 나오는 대하소설에 버금가는 소설이 많이 출간된다. 이야기가 압축된 단편보다는 더 긴 시간 삶에 대해 생각하고 스토리에 빠질 정도로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긴 탓이리라. 지금은 그래서 작가들도 단편보다는 장편을 많이 쓰는 것 같다.

물론 단편은 단편대로, 장편은 장편대로 소설의 맛이 다르다. 그러나 독서 시간을 생각해보면 마음과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는 장편을 읽는 것이 독자들 마음에 맞는 것 같다. 이 소설책 『소비노동조합』은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저자 김강의 두 번째 소설집이라고 한다. 저자의 첫 소설집은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라는 제목으로 다채로운 상상력을 보여줬다는 문단의 평을 받았다. 이 소설집도 다양한 소재로 많은 이야기를 선보인다. 이번 소설집 역시 저자의 상상력은 두드러진다. 무인도에 홀로 낙오되어 하루하루를 버티는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월요일은 힘들다」에서부터 기본소득제가 시행되는 세계의 이야기를 담은 표제작 「소비노동조합」, 통일 이후의 사회는 어떤 식으로 다가올 것인지를 그려낸 「와룡빌딩」 등 현재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그리 멀게 느껴지는 것도 아닌 이야기들을 담았다.

 


 

표제작 「소비노동조합」은 기본소득제가 시행된 이른바 '황금시대'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2069년 지금으로부터 48년 후다. 소설 속 인물은 기본소득제도 하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전도된 생산과 소비의 역학, 채권자와 채무자의 권리를 논의의 장”으로 이끌어낸다. 이 같은 배경을 두고 고리대금업자를 화자로 내세운 설정이 흥미롭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사채업을 운영하는 ‘나’는 일관된 원칙으로 채무자들을 만난다. 그런 그를 당황하게 만드는 인물인 형진의 이야기는 더욱 흥미롭다.

형진은 ‘나’에게 빌린 돈으로 친구들과 기본소득 인상을 주장하며 기본소득부 장관 집무실을 점거하는 사건을 벌인다. 결국 체포돼 구치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서는 자신의 직업이 ‘소비자’임을 강변한다. 부정수급, 도덕적 해이 등을 말하면서 반대한 그들의 불로소득과 도덕적 해이 등을 눈감는 현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 어차피 벌어진 일은 벌어진 것이고. 이름이 그게 뭐냐? 소비노동조합이. 소비자는 뭐고 노동조합은 또 거기에 어울리기는 하고? 차라리 시민이나 국민, 연맹이나 회의, 연대 뭐 이런 말을 써야 하는 것 아니야?

― 소비자 맞고요. 노동조합 맞거든요. 제 직업은 소비자거든요.

기본소득으로 사람들이 무엇을 하느냐? 녀석이 물었다. 먹고 입고 자고, 사채도 빌리고 그러는 것 아니냐 대답을 했다. 먹고, 입고, 자는 비용은 다시 누구에게로 가느냐 녀석이 물었다. 당연히 먹을 것을 만드는 사람이나, 입을 것을 만드는 사람들, 잘 곳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가는 것 아니냐 대답했다.

― 글쎄 그 사람들이 누구냐니까요?

녀석은 그 돈이 다시 돌고 돌아가는 곳이 결국은 가진 자들이거나 재벌들이고, 그들이 세금이라는 명분으로 내어놓은 돈으로 다시 기본소득을 받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소비노동조합」 중에서

 


 

「월요일은 힘들다」는 제목만 보면 직장인의 '월요병'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 소설 속 무대는 무인도다. 요일도 자신이 직접 정했다. 섬 밖의 현실 속 요일과 같지 않을 것이다. 힘이 드는 이유는 그가 섬에서 생존을 위해 하는 일들을 보면 이해가 된다. 실제 이 소설의 재미난 지점은 이런 설정과 황당한 가능성을 걱정하는 장면들이다.

 

책이라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라고? 정말 고맙군. 평소에 읽고 싶었던 책이었어. 이렇게 말하면 될까? 시대와 세대, 지역을 뛰어넘는 고전이니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고? 그 속에 담긴 깊은 통찰과 인간애를 체화해 비로소 완벽해진 나, 그걸 원하는 거야?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없는 외딴섬에서 그 긴 세월을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누군가 묻겠지. 네, 우연히 파도에 밀려온 묵자를 읽으며 그의 겸애사상을 이해하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면 되는 거야? 혼자 지낸 이 섬에서 그것을 배웠다고? 어느 나라 글자인지도 모르는 그 책으로? 책, 그래, 어쩔 수 없이 책이라면 두꺼웠으면 좋겠다. 불쏘시개로 쓰려면 두꺼운 편이 낫다.

- 「월요일은 힘들다」 중에서

 


 

내 생애에 통일된 한반도를 보다니. 모두들 꿈만 같다고 생각했다. 백 년, 반목과 굴욕의 역사를 지우고 영광된 조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다. 그해 팔월부터 십이월까지 전국은 축제의 공간이었다. 국방비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여 복지에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북한의 천연자원을 이용한 재화 생산의 증가와 비용의 감소는 기업의 발전을 이루고 북한을 개발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과 설비의 수요 증가는 일자리와 임금의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 했다.

- 「와룡빌딩」 중에서

 

등이 굽은 늙은이가 있었다. 바오밥 나무를 닮은 유목의 꼭대기에 앉아 아래를 지나가는 무리를 향해 무어라 소리쳤다. 고개를 들어 늙은이를 쳐다보는 이는 없었다. 무리는 유목을 사이에 두고 좌우로 갈라졌고 유목을 지나자 다시 합쳐졌다. 물기둥을 향해 물살을 거슬러 나아가는 무리였다. 물살을 거슬러 가다 물기둥을 만나는 것, 물기둥과 함께 내려가 황금빛 자갈을 흩고 지나가는 것, 그리고 다시 물기둥의 끝자락에서 출발하는 것. 전통이냐 본능이냐 이도저도 아니면 숙명이냐. 따져 묻거나 고민하지 않았다.

- 「도르다」 중에서

 


 

문학평론가 허희는 책 뒷부분에 「발문」을 통해 저자 김강에게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1907)에 준하는 장편소설 집필에 조만간 착수해야 할 것 같다"며 "『어머니』와 닮은 소설을 쓰라든가, 그 정도의 성취를 이루라는 무리한 주문을 하려는 게 아니다. 김강이 매달려왔고, 매달리고자 하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고민'을 펼쳐내기에 단편은 어울리는 틀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덕담을 준다. "김강이 내비친 흥미로운 주제 의식과 폭과 깊이만큼 앞으로 그가 전개할 장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저자 김강은 「작가의 말」을 통해 "첫 단편소설을 쓰고 나서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등단을 하고 나서 소설을 업으로 삼아도 된다는 허략을 받았다"며, "이제는 조금 부지런해지겠다. 나의 언어를 건넬 수 있는 다양한형식을 알게 되었고, 협업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으면, 누군가의 겨드랑이에 양 팔을 넣어 일으킬 수 있는 힘을 알게 되었다. 부지런함으로 이 앎들을 증명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저자 : 김강

 

부산에서 태어났다. 2017년 단편소설 「우리 아빠」로 심훈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