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가 - 격변하는 현대 사회의 다섯 가지 위기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오노 가즈모토 엮음, 김윤경 옮김 / 타인의사유 / 2021년 4월
평점 :
절판



 

독자는 먼저 이 책의 제목 『왜 세계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가』에 대한 답을 하고 서평을 시작한다. 세계 인류가 과거로 돌아가려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과거 영화를 누렸던 서유럽 중심의 국가들이 힘을 잃어가자 과거 자신들이 패권을쥐고 세상을 이끌어가던 시절에 대한 향수, 누렸던 영화를 되찾으려 하는 데서 비롯된다. 20세기 들어 패권의 중심이 미국과 소련으로 바뀌고, 소련이 붕괴된 후 유일 강대국이었던 미국이 절대적 힘과 경제력의 우위를 점한 데 대해 미국만을 믿고 살기엔 희망적이지 않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중국의 거대한 힘이 다시 올라섰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유럽 각국들은 자신들의 공동체 EU(유럽연합)을 통해 힘의 균형을 이루려 했으나 중국의 예상치 못한 도약으로 미국만 믿고 있는 것의 한계를 절감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더욱이 21세기는 정보통신과 디지털,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한 자신들의 위치가 모호한 데서 위기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 책은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이 현재의 시점에서 세계사의 흐름을 명확하게 짚어내고, 인류 모두의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보편적 가치를 찾아 함께 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 세계는 통계적 세계관과 상대주의적 시각 그리고 범람하는 정보로 인해,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그러다 보니 삶의 불안정성이 클 수밖에 없으며, 이런 정신적 표류 상태는 배타적이고 보수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움직임의 일환으로, 서구 사회가 ‘좋았던’ 그 시절, 즉 자신들이 패권을 잡았던 19세기 국민국가로의 회귀를 꿈꾸고 있음을 질타한다. 그리고 이 회귀 움직임은 가치의 위기, 민주주의 위기, 자본주의의 위기, 테크놀로지의 위기, 표상의 위기라는 다섯 가지 위기를 불러일으켰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자신의 독자적인 철학 이론인 ‘신실재론’을 통해 각각의 위기를 예리하게 파헤치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살핀 뒤, 그 속에 자리한 명백한 사실과 보편적 가치를 설파하고 있다. 현재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여러 각도에서 깊이 있게 살펴보고, 삶의 중심을 지키기 위한 옳고 그름의 철학적 기준을 바로세워야 할 때다.

 


 

저자에 따르면 절대적 진리가 지배했던 중세 종교의 시대는 끝났다. 과학과 이성이 약속했던 근대의 화려한 영광도 모두 끝났다. 누구나 느끼고 있다시피, 지금 우리는 구별하기 어려운 온갖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과연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하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다. 또한 많은 이들이 포스트모던 사상의 영향을 받아 통계적이고 상대주의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까닭에, 강한 신조를 가진 사람을 경계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종교와 이성의 절대성을 잃고 정신적인 표류 상태에 놓이게 된 서구 사회는, 자신들이 세계의 패권을 거머쥐며 전성기를 누렸던 19세기 국민국가 시절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삶의 불안정성을 이겨내기 위해, 보수적이고 배타적이며 차별적인 자국 보호주의로 되돌아서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움직임으로 인해 잇따라 일어나고 있는 세계의 위기를 주제로, 마르쿠스 가브리엘과의 대담을 기획하면서 탄생했다. 이 책에서는 현대 사회의 다섯 가지 위기를 다룬다. 가치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 자본주의의 위기, 테크놀로지의 위기, 그리고 이 네 가지 위기의 근저에 자리하고 있는 표상의 위기가 그것이다.

먼저 「가치의 위기」에서는 절대적인 가치를 잃고 표류하는 현대 사회에서 보편적인 가치를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 또한 니힐리즘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논의한다. 「민주주의의 위기」에서는 민주주의의 느림에 주목한다. 또한 ‘다양성을 인정할 때 다양성을 부정하는 사람도 인정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을 중심으로, 패러독스를 철학적으로 들여다본다. 「자본주의의 위기」에서는 세계화 현상과 심각해지는 빈부격차 문제 등 오늘날 폭주하는 자본주의가 감추고 있는 악의 잠재성을 파헤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한다. 「테크놀로지의 위기」에서는 현 기술산업에 대한 신랄한 비평을 펼치며, 인공지능과 초대형 IT기업과 관련된 이슈를 다룬다. 마지막으로 「표상의 위기」에서는 이미지가 진실을 덮어 은폐하고 있는 현 상황을 들여다보면서 표상과 현실 사이의 관계성을 논한다.

저자의 철학적인 논제를 함께 따라가다 보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읽고 이해할 수 있으며, 앞으로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방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신실재론’은 탈진실이라는 말이 확산되고, 포퓰리즘의 바람이 거칠게 휘몰아치는 오늘날의 세상에 응답하기 위해서 생겨난 새로운 형태의 철학이라는 것이 사회학자, 경제학자, 철학자, 미래학자들의 중론이다. 또한 디지털혁명의 결과 완전히 바뀌게 된 사회경제적 체제와 공진하는 철학이기도 하다. 현대 사회를 이끄는 이데올로기의 가장 큰 문제는 경계선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즉,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진짜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대화를 거듭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기본적으로는 모든 것이 가짜라고 여겨라’ 하는 생각을 전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이다.

하지만 저자는 여전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 옳은가’라는 물음이라고 강조한다. 신실재론은 세상의 진실과 보편적 가치가 엄연히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삶의 중심을 바로세우기 위한 사고의 틀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이제 슬라보이 지제크가 ‘위대한 생각 실험’이라 칭한 저자만의 독자적 세계를 보다 쉽고 간결한 언어로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세계는 점점 더 빨라지고 무역간 혹은 다자간 협상이라는 명목하에 나라간 부익부 빈인빈도 심화해 가는 중이다. 정치 체계가 다르더라도 자본주의 방식의 경제 개념은 어디에서나 존재하며 그 잣대를 부의 편익과 힘의 불균형이 어디로 치우치느냐에 두게 된다. 이 지점에서부터 차별은 발생하며, 서로간의 경제적 정치적인 혼동이 발행한다고 보았다.

인터넷은 민주주의를 붕괴시킬 수 있다. 우리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인터넷은 결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플랫폼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사실은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인터넷을 지배하고 있다. 검색 엔진만 봐도 지금은 구글의 독무대이며, 아무리 웹서핑을 해봐도 인터넷에서 충분한 정보를 얻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아침에 트럼프가 우산을 들었는지 들지 않았는지, 누구를 해고했는지 같은 인터넷 기사를 몇 분 훑어보고 나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진실은 가려지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소설을, 드라마를 본 것인지도 모른다. 진정한 저널리즘이란 쉬이 보이지 않는 진실을 백일하에 밝혀내는 것인데 지금은 비판적이지 않은 저널리즘이 횡행하고 있고, 이것이 인터넷 사회가 낳은 저널리즘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저널리즘의 위기는 곧 민주주의의 위기이기도 하다. 저널리즘의 힘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려는 자세가 실종된 민주주의는 이미 민주주의로서 기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테크놀로지나 과학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데, 과학적 세계관은 과학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과학을 우상화하고 마찬가지로 잘못 이해된 종교와 가깝게 두는 의심스러운 비과학적 사고 탓에 좌초하기 때문이다. 과학은 세계를 설명하는 게 아니라, 단지 그것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 이를테면 분자나 일식을 설명할 뿐이다. 결국 과학은 인간에 대한 가치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런 측면에서 저자는 인공지능이나 소셜미디어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한다.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환상이라고 단언하고 있는데, 지능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이지, 기계가 갖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종이폴더에 나에 대한 출생증명서나 졸업장이 있다고 해서 이것을 지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출생증명서나 졸업장이 웹상에 존재하고, 원하는 정보를 불러올 수 있다하더라도 종이폴더와 온라인이나 웹사이에 존재론적인 차이는 없다. 따라서 웹, 프로그램, 알고리즘, 딥러닝 같은 것을 지능이라고 불러야 한다면, 종이폴더 역시 지능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확실히, 다음에 나올 아이디어는 환경 위기를 해결하는 쪽이 될 것이다. 환경 위기를 해결하는 기업은 22세기의 정치 구조를 결정할 수도 있다. 과학자들이 친환경 핵에너지를 찾아내면 어떻게 될까. 독일은 최근 수차례 시도했지만 모두 흡족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원자력발전의 대체물질을 발 견한다 해도 문제없이 작동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완벽히 제 기능을 해낼 수 있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어쩌면 물리적으로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핵융합이 아니라 다른 것일 가능성도 있지만, 아직 발견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이 아이디어를 내는 국가는, 어디가 되든지 간 에 22세기를 대표하는 국가로 우뚝 설 것이다.

 


 

우리에게 공통된 문제 중 하나는, 소위 신자유주의 neoliberalism 이론가를 포함한 대부분 사람이 믿는 자본주의 이론이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확실히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자본주의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해준다. 하지만 마르크스 의 이론은 너무나 불충분하다. 자본주의는 노동의 역할 분담에 대한 응답이다. 자본주의는 노동의 역할 분담을 이용해 '한 사람의 인간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른 사람이 모른다'는 사실을 가치로 변환한다. 그것이 자본주의 비즈니스다.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상대는 알지 못한다. 그것이 당신에게 이점이 된다. 상대가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시점에서 당신은 얼마의 금액을 청구할 수 있을지 를 계산하는 것이다. 만약 상대에게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려져 있는 경우라면, 그 금액을 청구할 수 없다. 당신은 자신의 제품이 실제보다 훨씬 뛰어난 척을 해야 한다. 사실은 상대를 믿지 못하지만 믿는 척해야 한다. 당신의 제 품을 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구조가 자본주의의 '거짓' 이다. 자본주의 자체가 불투명한 시스템이다. 자본주의에는 투명성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 그렇지 않고서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자제가 반드시 '악'은 아니지만 자본주의에는 악의 잠재성이 도사리고 있다.

이 사실을 이유로 대부분의 민주주의 이론가가 '자본주의는 우리를 민주주의 반대 방향으로 끌고가려고 한다'고 비판한다. 민주주의에서는 투명성이 중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비판은 필요 없다. 필요한 것은 생산 상태를 좌우하는 자본가에게 민주적인 사고 훈련을 받게 하는 일이다.

 


 

표상의 위기는 이미지와 인간과의 관계성을 나타낸다. 표상은 정확한가 부정확한가의 속성을 지닌 현실의 모델이다. 개중에서 가장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 진짜인가 거짓인가 하는 성질을 가진 것이다. 사람들은 이미지의 배후에 있는 진실, 스크린의 이면에 있는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우매해진다.

스크린의 개념이 잘못되었기에 현실이 스크린에 가로막혀 보이지 않는다.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여전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 옳은가’라는 물음이라고 강조한다. 신실재론은 세상의 진실과 보편적 가치가 엄연히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삶의 중심을 바로세우기 위한 사고의 틀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표상의 관계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만약 어떤 후보자가 당선되어 유권자를 대리, 표상하는 입장이 되면 그가 유권자를 위한 일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정치적인 표상이 아니다. 의회에서 유권자를 표상한다는 것은 매우 복잡한 교섭 체계에 참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선 전에 무언가 공약했다면 그것은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으로, 반드시 공약이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정당에 투표하는 것은 상품을 사는 행위가 아니다. 즉, 무언가를 ‘사는’ 것이 아니다. 투표는 어떤 이념에 기여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일이다. 많은 사람이 민주주의자로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데,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민주주의가 어떻게 기능하는가’를 모르면 제대로 기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작고, 분량도 많지 않다. 그러나 강한 임팩트를 갖고 있다. 저자 특유의 화법과 설득력 있는 이론으로 중요하고 굵직한 주제를 핵심적으로 담고 있다. 배경 설명을 구절구절 늘어놓거나 자신만이 아는 이론으로 몇 페이지를 할애하며 독자를 가르치는 방식이 아니다. 다루고 있는 탄탄한 이론과 머뭇거리지 않는 천재 철학가의 사상은 읽는이로 하여금 빠져들게 한다.

 

저자 : 마르쿠스 가브리엘(MARKUS GABRIEL)

 

1980년생. 본대학과 하이델베르크대학을 거치며 철학, 고전문헌학, 현대 독일문학을 공부했다. 2005년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이 논문으로 RUPRECHT-KARLS상을 수상했다. 29세에 20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독일 본대학교 철학과에 사상 최연소 석좌교수로 발탁되었고, 인식론과 근현대 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동 대학의 국제철학센터 소장을 겸임하고 있으며, 포르투갈의 리스본대학교, 덴마크의 오르후스대학교, 미국의 버클리대학교 등 유수의 대학교에서 객원 교수로도 활동했다.

서양철학의 전통을 뿌리 삼아 그가 제창한 ‘신실재론(NEW REALISM)’은 21세기 현대 철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금 우리는 포스트모던의 영향과 범람하는 정보로 인해, 무엇이 진실인지, 애초에 진실이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때 신실재론은 세상의 진실과 보편적 가치가 엄연히 존재한다고 갈파하며, 현대 사회의 위기와 해결책을 고찰한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번역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그 외 저서로는 《나는 뇌가 아니다》, 《욕망의 시대를 철학하기》 등이 있다. 공저로는《신화, 광기 그리고 웃음》, 《초예측: 부의 미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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