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작가수업 3
김형수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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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작가는 무엇으로 사는가』처럼 이 책은 작가의 '존재 이유'나 '존재 방법'에 대한 내용임엔 틀림없다. 다만 기대했던 것처럼 쉽게 쓰인 책이 아니다. 강연 내용이어서 이 강연을 들은 청중의 수준이 문학적 지식이 높은 사람이어서인지 모르지만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 쉽지만은 않다. 최소한 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수준 이상의 청중을 대상으로 한 것처럼 이해된다. 다만 구체적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과 해석을 붙여준 것은 저자의 말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저자가 이 책에서 강조하고 싶은 말, 즉 주제는 '작가로 사는 일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하자'로 읽힌다. 이를 위해 저자는 1탄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가 문학에 대한 가치관을 안내하고 2탄 『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가 창작에 대한 가치관을 소개한 바 있다고 밝히고 있어 참고로 하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모두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문학적인 너무나 문학적인 싸움〉은 일본의 가라타니 고진이 한국의 작가들 앞에서 행했던 강연 원고를 소재로 삼아 '좋은 작가'가 되려면 어떤 고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2장, 이성의 제국을 탈주하는 언어들〉은 후고 프리드리히의 『현대시의 구조』 서장을 텍스트로 삼아 강독하는 형식을 취하면서 근대 이후의 시인들이 인류사 안에서 어떤 일을 해왔는지를 살피는 것으로 현대시의 변천 경로를 설명하고자 한다. 〈3장, 소설가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의 기술』 중 「세르반테스의 절하된 유산」을 소개하면서 소설가가 무엇으로 사는지를 전한다.

1부인 〈문학적인 너무나 문학적인 싸움〉을 시작하며 김형수 저자는 '근대 이후의 작가들은 무엇으로 밥값을 했는가?'에 답하기 위해 글을 준비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 이야기는 '복잡한 문제를 사유하는 방법'부터 시작한다.

가라타니 고진의 강연 원고를 소재로 삼아 출발하는 1부에서는 어떻게 세상과 만나고 사유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 아닌 것들을 대상화하고 타자화하는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자기기만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 경계해야 할 태도들에 대해 여러 작가들의 말을 통해 들려주고 있다. 단순히 글을 유려하게 잘 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세계를 대하는 관점을 어떻게 익히고 가다듬어야 할지를 보여주면서 ‘좋은 작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철학에서 ‘자기기만’을 찾아내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입니다. 누군가가 나하고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자기기만의 현상이 생긴 것을 해명해 달라는 것, 이게 진정한 비판이에요. 재미있지 않아요? 상대와 내가 그냥 다를 때는 그것이 다른 것일 수는 있어도 잘못한 것은 아니잖아요. 누가 잘못한 것인지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하겠죠. 그런데 한 사람 안에서 서로 상반되는 두 개의 태도가 담겨 있으면 어떤 것하고 상대하라는 말이에요. 둘 중 어느 것이 진짜 상대인지 알아야 진실한 대화를 할 수 있죠."(p. 19)

이 문단만 뽑아 적어놓으면 사실 무슨 말을 하는지에 대해 의아해 할 수 있다. 이 내용을 이끌어내기 위해 저자는 앞의 글 중에 가리타니 고진의 「미(美)와 지배 : 『오리엔탈리즘』 이후(민족문학작가회의 자료집, 1997, 저자 주」의 사례를 들었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낱말에는 소위 작가의 존재 이유, 즉 작가들은 왜 그렇게 사는가 하는 문제의식에 다가갈 비상구가 감춰져 있다고 전제한다. 이 내용에 오에 겐자부로와 끌로드 시몽 간의 충돌이 일어났다.

 


 

핵문제를 일본의 문제가 아닌 인류사의 문제로 생각하는 오에 겐자부로와 클레드 시몽이 그것을 부정하는 글을 〈르 몽드〉지에 반론을 게재함으로써 일어난 일이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라이자 핵 피해국 일본과 2차대전 피해국 프랑스의 국민 감정이 서로를 부정하는 내용으로 저항하고 반론을 폈던 것.

저자는 어느 쪽을 편들진 않는다. 편을 들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일본은 이웃나라를 침략했고 이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프랑스 지식인을 비판한 것에 대한 문제와 이에 반론을 편 프랑스 지식인 클레드 시몽에 대해 "근대(현대)를 살아가는 고뇌가 그런 고뇌가 프랑스에만 있겠는가, 당연히 일본에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편견에 사로잡히면 그게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벗겨내려면 반드시 '복잡한 문제를 사유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두 사람이 모두 이 점에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요지의 강연 내용을 그대로 실었다. 즉 어느 쪽 편을 들지 않되 편견을 가지고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좀 더 사유가 필요하다고 양쪽에 비판을 가한다. 앞서 언급한 '작가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꺼낸 말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저자가 직접 표현하지 않아 독자의 입장에서) 비판 글을 쓴다면 더 깊은 철학적 사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2부 〈이성의 제국을 탈주하는 언어들〉에서는 근대 이후의 예술과 삶의 관계를 짚어보며 현대시가 형성되는 경로와 치열한 시인들의 미학적 고투 과정을 살펴본다. 오늘의 시인들이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문제는 결국 현대성이 어떻게 발생하고 그 미학적 구조가 어떻게 돼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낯설게 하기, 불협화, 비규범성, 그로테스크 등의 키워드를 통해 현대시를 읽어낸다. 일상적인 삶에 끝없는 질문을 던지고 사유를 심화해나가면서 변화하는 사회상이 문학에 어떻게 스며들고 있는지, 작가들은 어떻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낯설게 하기’라는 말은 들었죠? 시 공부를 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낱말의 하나일 거예요. 흔히 인간의 의식이 식상한 상태에 빠질 때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하는데, 그 말이 바로 이거예요. 처음 대하는 것은 낯선 것이니 초심이란 낯설게 만드는 것을 가리켜요. 매너리즘의 반대편을 뜻합니다."(p. 74)

이 문장은 작가는 '매너리즘'에 빠져선 안 된다는 의미의 말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입맞춤의 매너리즘을 사례로 꺼내든다. 입맞춤을 처음 했을 땐 심장은 물론 머리에서 발끝까지 떨리는 체험이 담기기 마련이다. 입맞춤이라는 행위 자체에 존재를 요동치게 하는 마술적 떨림이 담겨 있다는 것. 그러나 이를 반복하다 보면 아침에 출근할 때 입맞춤을 했는지 안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변하게 되는 현상을 지적한다. 입맞춤의 매너리즘이 거기에 담긴 '떨림의 감정'을 훔쳐서 어디로 달아나버린다고 설명을 덧붙인다. 이는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작가는 초심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떨림이 있는 감정이 시심이고 시를 쓰는 시인의 자세이며, 존재 이유라는 해석이다.

 


 

저자는 또 시 쓰는 사람들은 이성을 절대화시키는 체제를 상대로 필사적으로 저항한다고 말한다. '이성' '과학' 등이 사실의 진위를 식별하는 사유 형식의 하나일 뿐인데 거기에 절대적인 권위가 부여되다 보니 존재의 진실을 판단할 때 자꾸 모순이 생긴다고 경계할 것을 주문한다. 인간의 삶에서는 다른 형식의 사유체계도 얼마든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이에 설명도 덧붙인다.

"이성의 세계는 까다롭고 완고하고 꼼꼼하고 엄격해서 너그럽지도 않고 자유분방함도 없습니다. 그에 반해 감성의 세계는 대범하고 온후하고 느슨하고 인정이 많아요. 현실의 질서에도 정치, 역사, 학문, 인맥 등 이성이 만들어가는 것들은 그야말로 엄격하고 격식 있지만 실제로는 세속되기 그지없는 위계체계 때문에 숨 막히는 압력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저자거리의 뒷골목에서는 은밀히 작동되는 감성의 영토에서는 토착 풍속이나 신앙, 욕망이나 본능, 감정적인 것, 감각적인 것, 원초적인 것, 미개한 것, 음산한 것들이 넘쳐나요. 그래서 거대한 감정의 해방고, 칠정의 카니발이 춤추지만 진정함이 있어요. 바로 그곳에 현대시가 자리를 잡고 개인의 내면에서 들끓는 언어의 광란과 과잉과 함성 속을 소용돌이치게 돼요."(p. 87)

 


 

저자는 현대시의 구조에 대한 설명도 이사도라 던컨의 말을 예로 들면서 해석한다.

"현대 무용의 대가 이사도라 던컨이 '누구도 저 바다를 보고 십년 후를 묻지 않는다'라고 말했어요. 바다는 아무런 목적의식 없이 철썩대면서 부서집니다. 이를 다른 말로 '지속 가능한 세계'라고 해도 될까요? 자연은 늘 이렇게 존재하는데 인간은 어쩌자고 '발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적인 이념을 가지고 있을까요. 소위 발전의 신화에 빠진 건데, 사실은 이게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의 알맹이입니다. 자기 욕망의 확장을 절대화하는 것, 『현대시의 구조』는 현대시가 그런 규범들과 선을 긋고자 했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에서 전통과의 예리한 단절이 생겨났고, 문학적인 독창성은 작가의 비규범성에서 그 정당성을 찾았다. 문학은 치유가 아니라 섬세한 말을 추구하며 자신의 내부에서 선회하는 고통의 언어로 자처했다."(p. 105)

 

저자 : 김형수

 

1959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났다. 1985년 [민중시 2]에 시로, 1996년 [문학동네] 에 소설로 등단했다. 1988년 [녹두꽃]을 창간하면서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1980년대 민족문학을 이끌어온 대표적인 시인이자 논객. 지금은 신동엽문학관 관장으로 있다. 시인이며 소설가, 평론가이다. 시집 『가끔씩 쉬었다 간다는 것』, 『빗방울에 관한 추억』, 가끔 이렇게 허깨비를 본다』, 장편소설 『나의 트로트 시대』 『조드-가난한 성자들(1,2)』, 소설집 『이발소에 두고 온 시』, 평론집 『반응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외에 『문익환 평전』, 『소태산 평전』 『흩어진 중심-한국문학에서 주목할 장면들』 등이 있다. 작가 수업 시리즈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 『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그리고 『작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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