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우울증 - 죽을 만큼 힘든데 난 오늘도 웃고 있었다
훙페이윈 지음, 강초아 옮김 / 더퀘스트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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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에 사용한 '미소우울증'이란 무슨 뜻인지 금세 알지만 생소한 단어라 일반적으로 쓰인 말은 아닌 듯싶다. 다만 의학이나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학술 용어쯤으로 읽힌다. 이 책 『미소우울증』은 저자 홍페이윈(洪培芸)이 가장 먼저 제안한 용어인 줄 모르겠지만, 백과사전에는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만 등재돼 있다. 아마 저자가 제안한 또 다른 이름인 듯하다.

위키백과사전에 따르면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smile mask syndrome) 또는 스마일 가면 증후군(일본어: スマイル?面症候群, 간단히 SMS)은 오사카 쇼인 여자 대학의 나츠메 마코토 교수가 제안한 정신 질환으로, 장기간의 부자연스러운 미소로 말미암아 우울증과 신체 질환을 발전시키는 증후군이다. 나츠메 교수는 자신의 실험 중에 대학교 학생들을 상담한 다음 수많은 학생들이 교수에게 스트레스와 화가 나는 경험과 관련되더라도 그들이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가짜 미소를 짓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을 눈치챈 이후 이 질병을 제안하였다. 나츠메 교수는 일본의 서비스 산업에서 미소 짓기가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그 이유로 보았다.

또 미소를 짓는 일은 서비스 산업에서 일하는 일본 여성들에게 중요한 스킬이다. 일본의 거의 모든 서비스 산업 기업들은 여성 직원이 오랜 시간 미소를 지을 것을 요구한다. 나츠메 교수는 자신의 여성 환자들이 대화의 주제가 자신들의 일터에 대한 것일 때 미소의 중요성에 관해 종종 이야기한다고 말한다. 그는 미소가 고용 여부에 관계 없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느낀다고 말하는 환자들을 예시로 들었다. 나츠메 교수에 의하면 이 분위기는 종종 여성들이 오랜 기간 부자연스럽게 미소를 짓게 만들며 감정을 억제하기 시작하고 우울증에 빠지게 만든다. 이 대목은 저자 홍페이윈의 미소우울증과 흡사하다.

 


 

저자 홍페이윈은 미소우울증과 우울증의 다른 점을 설명하면서 "미소우울증은 간단히 말해서 전형적인 방식으로 표출되지 않은 우울증이다. 따라서 증상이 드러나는 방식과 사람들이 우울증에 대해 갖고 있는 일반적 이해가 크게 다르다. 일단, 미소우울증을 앓는 사람은 얼굴을 찌푸리고 다니지 않는다.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거나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지도 않는다. 죽고 싶은 마음도 드러내지 않는다. 미소우울증을 앓는 사람은 오히려 명랑하고 유쾌하다. 유머러스하고 인기가 많다."고 말한다.

책에 따르면 미소우울증은 SNS와 1인 미디어 시대, 보이는 것에 집착하고 타인의 눈에 지나치게 예민해진 현대인들에게 쉽게 나타나는 마음의 병이다. 오랜 기간 다양한 사람들의 심리상담을 해온 저자는 미소우울증의 복합적인 실체를 친절하고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설명한다. 자신의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환경, 생애 주기별 특수성, 개인이 겪는 심리 문제 등 다양한 상황 속에서 미소우울증이 어떻게 생길 수 있는지 분석해줌으로써 내 마음건강을 챙길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책에서는 미소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두 가지 방면으로 설명한다. 첫 번째는 사회 환경으로 인한 스트레스 또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심한 경우다. 예를 들어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 세대, 성적이 매우 우수한 학생, 이혼 가정 자녀, 쇼윈도 부부, 사회적 유명인사, 인플루언서, 동성애자 등이다. 두 번째는 심리 상태로 인해 미소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 경우다. 지각력이 왜곡되어 있거나 타인의 평가에 민감한 사람, 심리적 방어기제가 강한 사람, 과도하게 예민한 사람, 타인에게 지나치게 공감하는 사람 등이 이에 해당한다.(「서문」 중에서)

 


 

저자는 임상 심리상담사로서 이 용어를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견뎌내 오면서 '코로나 블루', '코로나 레드', '코로나 블랙' 등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우울증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상태다. 이를 계기로 자신의 마음건강을 세심히 살피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자신의 우울을 철저히 숨기거나 아예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고 학계는 주장한다. 이 책은 미소라는 가면을 쓰고 자신의 우울을 감추는 미소우울증을 이야기한다.

저자에 따르면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는 미소우울증을 겪는 사람을 가리켜 ‘우울증 문제가 있으나 이를 성공적으로 감추고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누구나 미소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 해피 바이러스라고 불릴 만큼 밝은 사람,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사람, 행복한 가정생활을 유지하는 사람 등…… 겉으로 완벽해 보이지만 우울증을 감추기 위해 견고한 웃음 가면을 쓰며 사는 사람이 꽤 많다. 심리상담사인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우리 삶에 깊숙이 침투한 미소우울증을 분석하고 현실적인 심리조언을 제시한다.

 


 

이 책은 3개의 장(章)으로 구성돼 있다. 미소우울증의 원인과 우울증과의 차이점을 제시하고 성격상의 취약점, 여러 가지 증상, 예방에 많은 힘을 쏟아 이 책을 썼다. 마지막 치료의 방법은 심리적 치유 방법을 제시하고 치유를 위한 습관을 제안한다. 각 장의 키워드를 보면서 하나씩 사색을 거듭해 자신에게 알맞은 방법을 스스로 찾아 실천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3개 장과 키워드 몇 개씩을 간추려 여기에 쓴다.

1장. 아픔을 감추기 위한 웃음

갑작스런 죽음, 해피 바이러스, 감정노동, 패배주의, 스트레스

2장. 아무런 징조도 없이 나타나는 미소우울증

공인, 행복가면, 가정의 책임, 모범생, 완벽주의자, 마음을 감춘 남자들, 책임, 성적소수자, 자영업자, 빈 둥지 증후군, 착한 아이

3장. 나에게 슬픔을 허락할 권리

운명의 주인, 슬픔도 나의 일부, 미워할 용기, 신가소성, 공감능력, 유연한 태도, 지금 이 순간

 


 

저자는 마지막 부분에서 미소우울증의 치료 방법이자 평소 행복감을 갖고 사는 방법을 '행복을 부르는 10가지 생각'으로 정리해 놓았다.

① 우리에게는 자신을 즐겁게 할 능력이 있다.

② 외부 환경과 일상생활 속 사건은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다.

③ 연습하면 점점 더 즐거워진다.

④ 마음이 나를 속이기도 한다.

⑤ 사람들과 교류하면 즐거워진다.

⑥ 이타적인 행동을 하면 더 즐거워진다.

⑦ 매일 감사하라.

⑧ 건강한 습관이 중요하다.

⑨ 나만의 시간을 가져라.

⑩ 현재를 즐겨라.

 


 

자신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일단 내면의 모습과 밖으로 보이는 모습의 불일치부터 인정해야 한다. 이게 무슨 뜻일까? 간단히 비유해보겠다. 햇빛이 비치는데 빗방울이 떨어질 때가 있다. 그런 날씨는 맑은 걸까, 흐린 걸까? 내면과 외면이 일치하지 않을 때는 우선 그 차이를 조정하고 맞춰야 한다. 흑백논리처럼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기쁨과 슬픔, 햇빛과 빗방울, 어느 쪽이든 모두 내 일부라고 받아들이면 된다.

- 「3장 나에게 슬픔을 허락할 권리」중에서

 

저자 : 홍페이윈(洪培芸)

 

임상 심리상담사. 대만 중위안대학에서 심리임상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양심 심리치료소에 재직하고 있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인생을 바꾸는 첫걸음이자 평생의 과제라고 굳게 믿으며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돕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자 추구할 방향이라고 여긴다. 여러 방송 매체와 주요 잡지에 관련 인터뷰와 칼럼 등을 꾸준히 기고하는 인기 심리상담사로 기업과 학교, 관공서 등에서도 활발하게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역자 : 강초아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 다니며 다양한 종류의 책을 만들었다. 현재 번역집단 실크로드에서 중국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13·67》 《망내인》 《기억나지 않음, 형사》 《S.T.E.P.스텝》 《디오게네스 변주곡》 《낯선 경험》 《등려군》 《실크로드 둔황에서 막고굴의 숨은 역사를 보다》 《하버드 6가지 성공습관》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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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쉬운 경제학 - 영화로 배우는 50가지 생존 경제 상식
강영연 외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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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이토록 쉬운 경제학』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기회비용과 매몰비용부터 밴드왜건 효과와 외부 효과까지 수많은 경제학 용어를 헤집는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자주 보고 듣는 경제 용어지만 크게 관심을 두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용어의 뜻을 잘 몰라도 의미를 전해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는 전문적인 경제 용어를 잘 몰라도 뉴스가 제대로 전달되도록 기자들이 기사를 쉽게 풀어쓰기 때문이다.

사실 자주 등장하는 경제 용어는 어려운 것들이 너무 많다. 경제 발전보다 훨씬 빠르게 경제 용어는 쏟아져 나온다. 아마 전 세계에서 경제에 대한 연구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리라. 경제학 용어는 어렵고 경제 현상은 복잡해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는 경제를 공부해야 한다. 경제는 생존의 문제다. 그렇기에 경제를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고 경제학이라는 낯선 길을 안내해줄 길잡이가 필요하다. 이에 착안해 겅제 전문기자들이 한마음으로 합쳤다. 〈한국경제신문〉 지면에 매주 토요일자에 실렸던 「시네마노믹스」 코너의 글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이 책은 〈기생충〉으로 세대 간 소득탄력성을 설명하고 〈미안해요 리키〉로 긱 이코노미를 설명한다. 〈아이리시맨〉으로는 임금탄력성을, 〈라라랜드〉로는 가격탄력성을, 〈극한직업〉으로는 완전 경쟁시장과 독점적 경쟁시장을, 〈아메리칸 셰프〉로는 밈노믹스를, 〈어벤져스〉로는 인구경제학을 설명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기회비용과 매몰비용부터 밴드왜건 효과와 외부 효과까지 수많은 경제학 용어를 헤집는다.

누구나 책장 한 구석에는 두꺼운 책 한 권이 꽂혀 있다. 공부할 결심으로 서점을 찾아 야심차게 사서 들고 나왔지만, 몇 페이지 넘기지 못하고 덮어버린 책이다. 경제를 공부해야 할 필요성은 절실히 느끼지만 도무지 손이 가지 않는 책, 하루하루 먼지만 쌓여가는 경제 전문 서적은 이제 작별을 고한다. 경제학 책도 영화만큼 재미있어야 한다는 게 이 책 저자들의 지론이다. 경제학 용어는 어렵고 경제 현상은 갈수록 복잡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경제를 공부해야 한다. 워낙 경제가 어렵고 복잡해지기 때문에 자신이 경제 행위를 하는 사람인데 굳이 경제 공부를 따로 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이젠 먹혀들지 않는다. 경제는 생존의 문제다. 그렇기에 경제를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고 경제학이라는 낯선 길을 안내해줄 길잡이가 필요하다. 이 책이 그 역할을 해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책은 8개의 장(章)으로 나뉘어 있다. 각 장마다 4~10개씩 모두 50개 영화에 대해 경제적 해석을 붙이고 용어도 설명한다. 각 장의 제목도 왼쪽에 텍스트로서의 경제 용어나 실제 사용 언어를 사용했고, 오른쪽에 영화 제목처럼 다소 선정적인 제목을 달아 눈길을 끈다.

1장.빈곤 - 우리는 왜 가난해지는 걸까

2장. 일자리와 복지 - 직업이 없어 죄송합니다

3장. 사랑과 우정 -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4장 차별과 페미니즘 - 여자가 돈을 적게 버는 건 남자보다 능력이 없어서일까

5장 마케팅과 경쟁 - 끝까지 살아남은 자가 이긴 자다

6장 기업윤리 - 합리와 윤리 사이에서

7장 정책실패와 경제위기 - 불황은 누구의 탓일까

8장 기술진보와 재난 - 진화의 끝에서 우리는 행복할까

 


 

영화 〈기생충〉은 대한민국 영화사에 큰 획을 그었다. 여간해선 유색인종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았던 아카데미상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등 4개부문에서 수상함으로써 일약 세계 최고의 영화로 떠올랐고, 단박에 1,000만 관중을 돌파해 수많은 기록을 다시 썼다. 이미 타 영화제에서도 상을 휩쓸어 수상 숫자를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상복이 터진 영화로도 유명하다. 이 영화는 '계급'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특히 유명 건축가가 지은 이선균네 저택은 최상위 계층의 가족임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화면마다 가득하다. 이들에게 빌붙어(?) 사는 송강호네 가족은 운전기사, 입주 가사도우미, 가정교사 등을 주인집을 속여 얻어내 이들의 동거는 시작된다. 워낙 유명한 영화라서 줄거리를 여기에 적는다는 것마저 쑥스러울 지경이다.

영화는 사람 사는 이야기이고, 사람이 살아가는 데 경제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삶을 다루지 않는 영화는 없으며 인간의 행동 가운데 경제 원리로 설명되지 않는 것은 없다. 영화를 본다는 건 또 다른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는 것이고, 경제를 안다는 건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삶에 밀착된 영화와 경제가 만났다. 낯설고 어려운 경제학을 익숙하고 흥미로운 영화를 통해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대로 영화 〈기생충〉으로 시작한다. 주인공(송강호) 가족이 기를 쓰고 박 사장(이선균)의 집에 들어가려는 것은 계층이동의 욕망 때문이며, 그 집에서 벌어지는 약자 간의 피 튀기는 싸움은 결국 일자리를 두고 벌이는 싸움이다. 가난은 대물림되고 부(富) 역시 부모에서 자녀로 이어진다. 이를 나타내는 지표가 ‘세대간 소득탄력성’이다. 대한민국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세대 간 소득탄력성이 낮은 편이다. 가난과 부가 대물림되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적고 계층이동 가능성이 높은 편이라는 뜻이다.

이 이론과 결론이 맞는다면 대한민국의 계층이동 현실과는 다소 다른 점이 사뭇 의심스럽다. 대한민국은 예외적인가, 아니면 이론이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해석하는 기자의 잘못인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한다. 다만 '세대간 소득탄력성'이란 어려운 경제 용어를 풀이하기에 적절한 예인 것은 맞다. 기우 가족은 과연 계층 사다리를 타고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설 수 있을까.

 


 

박찬욱 감독의 퀴어 영화 〈아가씨〉에서는 히데코와 숙희, 후지와라의 삼각관계를 통해 ‘보완재’ ‘대체재’의 개념을 배울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히데코에게 숙희는 자유로운 삶을 위해 필요한 후지와라의 보완재일 뿐이다. 보완재란 빵과 잼처럼 같이 소비할 때 효용이 늘어나는 재화다. 그래서 ‘협동재’라고도 한다. 그러나 히데코가 숙희를 사랑하게 되면서 숙희와 후지와라의 관계는 대체재로 바뀐다. 콜라와 사이다처럼 비슷해서 둘 중 하나만 선택하게 되기에 ‘경쟁재’라고도 한다. 히데코가 후지와라를 버리고 숙희를 선택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의 50번째로 마지막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2045년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은 암울한 현실을 피해 가상현실(VR) 게임 오아시스에 접속해 살아간다. 게임 속 세상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자 상상하는 모든 것이 이뤄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오아시스는 ‘메타버스’의 일종이다. ‘가상(meta)’과 ‘세계(universe)’의 합성어로 코로나19 이후 주목받는 개념이다. VR 기술을 바탕으로 한다. VR 기술의 발전은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VR기기 전문기업 테슬라슈트는 가상세계에서 느껴지는 손의 촉각을 현실에서도 느낄 수 있는 글러브를 이미 2년 전에 개발했다.

 


 

독자 개인적으로는 〈국가부도의 날〉에 대한 재조명한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책에 따르면 당시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과도한 여신(與信)이었다. 장밋빛 미래가 계속되리라는 믿음에 너도나도 빚을 내 투자와 생산을 했다. 경제는 빠르게 발전했고, 부채로 쌓아올린 경제는 튼튼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버블이 꺼지고 부채 상환이 불가능해진 순간 모래성은 빠르게 무너졌다. 모건스탠리 동아시아사업부는 11월 15일 모든 투자자에게 당장 떠나라는 메일을 보낸다. 해외 투자자들은 한국 기업에 빌려준 돈의 만기 연장을 거절하고, 돈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이런 실제 상황은 영화에 그대로 묘사된다.

주식시장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어어진다. 외국인은 연일 한국 주식을 매도했다. 해외 투자자가 빠져나가며 환율이 타격을 받았다. 11월 15일 583.8이던 종합주가지수는 IMF 구제금융 합의안에 서명한 12월 3일 379.3까지 떨어진다. 원/달러 환율 역시 같은 기간 달러당 792원에서 1,610원으로 103.2% 급등(원화가치 급락)했다.

당시 급박하게 전개되던 정부의 정채 실패 현장과 시장에서의 패닉 상태에 빠진 개인 투자자와 기업들. 당시 뉴스도 기억날 정도로 생생하다. 워낙 큰 사건이라 기억이 생생하다. 23년여 전의 사실인데도...

 


 

그동안 크게 부동산 증권 등 경제 문제에 큰 관심을 갖지 않은 사람도 최근 주식이나 암호화폐, 부동산 뉴스가 집중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귀동냥이나 오다가다 들은 말로 이쪽 분야에 관심을 곤두세우고 있다. 독자 역시 마찬가지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돈 벌 곳은 줄고, 쓸 곳은 여전하기에 상대적으로 소득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경제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사람도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읽으려면 경제를 빼놓고선 말할 수 없다. 경제는 사람 사는 문제고, 사람 사는 것은 경제와 직접적으로 관여돼 있기 때문에 외면해선 경제 흐름을 쫓아갈 수 없다. 다만 어려운 용어나 새로 생기는 용어가 많은 경제 분야는 독한 마음으로 임하지 않으면 경제 흐름을 쫓아가기조차 힘들다. 이제 시작한다면 남들보다 두세 배의 노력 없이는 남들만큼 경제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도 없다. 그래서 이 책이 필요하고, 발간되자마자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어려운 경제를 쉽게 해석하고 접근할 수 있고, 영화를 보는 방식으로 경제를 보면 이해와 기억에 저장하기가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독자도 경제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다. 아니 관심을 별로 두지 않았다. 하는 일이 경제와 전혀 관련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경제와 관련 없어 경제 공부를 안 한 게 아니라 경제가 어려워 경제 공부를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용어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았다. 특히 풀어쓰지 않았다면 10개 중에 하나나 제대로 이해했을까 두렵다. 이에 비해 영화는 평소 좋아하고, 익숙한 영화라는 콘텐츠로 경제를 설명해주니 우선 저항감이 없었고, 영화의 내용으로 설명을 하고 있어서 이해도 쉽게 되었다. 왜 그동안 영화를 보면서 경제 문제는 한 번도 생각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감도 든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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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서의 중심 충청감영 공주 - 공주에 새겨진 조선 역사 이야기 공주가 좋다 2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엮음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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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공주에 딱 한 번 간 적이 있다. 근처 부여와 함께 일정이 잡힌 1박2일 직장 동료들과의 여행이었다. 십수년이 넘은 일이라 그때의 물가나 경제 상황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곳의 분위기는 또렷이 기억을 비집고 나온다. 도착할 때가 낮이었고 초여름이니 날짜로 봐서 6월초 지금쯤이었던 것 같다. 옛 도성이어서인지 활발한 느낌보다는 고즈넉하지만 평안한 분위기였다. 역사의 격동기를 몸으로 받아낸 도시 같지 않았다.

너무 오래돼서 그런가, 격동기 역사를 잊어서일까. 도성으로서의 위엄과 활기보다는 그저 쇠락한 옛 도읍지 딱 그 느낌이었다. 도시이지만 농촌의 분위기가 훨씬 강했다. 성터로 올라가자 전경을 볼 수 있었고 날씨가 더워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아서 많은 인구를 가진 도시로 보이진 않았다. 산으로 이어진 성터여서 우리 일행 말고 외지에서 온 여행객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관광철이 아니어서 그럴 것이란 생각을 잠깐 했었던 것 같다. 물 좋고 산 좋은 곳에 교통의 요지였으니 왕도가 들어서도 손색이 없을 것으로 보였다. 특히 나중에 안 얘기지만 지형이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기에 천혜의 요새처럼 산과 물이 해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 『호서의 중심 충청감영 공주』는 공주가 교통 요지이고 늘 역사의 현장에서 기쁨보다는 슬픔을 많이 간직한 곳으로 이야기한다. 책에 따르면 조선 후기 공주는 조선을 격동시킨 여러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었다.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조세개혁의 상징인 대동법 시행을 촉발한 고장이었고, 만민의 평등함을 주장하며 선교에 나섰던 천주교가 거센 탄압을 받았던 박해의 현장이었다. 외세를 물리쳐 나라와 백성을 살리자고 외치던 동학농민군이 최후의 결전을 벌인 격전지였다. 대단한 역할을 전면에서 감당해낸 도시다. 조선 후기 300여 년간 공주가 이렇게 치열한 역사의 현장이 되었던 것은 호서의 중심이자 충청감영이 설치된, 명실상부한 지역의 대표도시였기 때문이라고 책은 말하고 있다.

조선시대 전국 8도에 각각 설치되었던 감영도시(지금의 도청소재지)의 하나로 공주를 들여다보면, 공주의 역사가 그만큼 새롭게 보이고, 공주의 실상과 가치를 제대로 헤아릴 수 있을 것이는 게 저자(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의 말이다. 공산성과 제민천변을 오가던 감영이 지금의 사대부고 자리로 정해진 사연을 접하면 구시가지의 공간 구성이 새롭게 보일 것이다.

 


 

또 황새바위 성지와 우금티에서는 천주교도와 동학농민군이 지켰던 믿음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은근히 전언한다. 공주가 많은 할 말을 갖고 있는 도시라고 은연중 강조하는 것으로 들린다. 저자는 공주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보면 공주의 이름을 단 곳곳에서, 산책으로 걷는 길마다 여러 시대, 여러 주인공의 이야기들이 걸음마다 따라올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을 읽으며 조선을 격동시킨 역사의 현장 충청감영 공주로 들어가는 탐험을 시작해보자. 300여 년간 감영도시 공주가 겪었던 흥망성쇠 속에서 수없이 나타났다 사라져간 수많은 인물과 그들이 겪었던 영광과 고통의 역사를 만나게 될 것이다. 현재 공주는 웅진백제의 수도로 유명하지만, 공주가 오래도록 충남권(호서)의 중심도시였던 것은 백제의 수도였기 때문은 아니었다. 백제의 수도가 되었던 이유, 예를 들어 차령산맥과 금강, 계룡산과 같은 자연적인 방벽, 삼남으로 향하는 길들과 금강을 통한 수운이 만나는 지점이라는 지리적 이점, 내포를 비롯해 호서의 비옥한 평야지대와 가깝다는 경제적 까닭 등 공주가 오래도록 사람들이 무리지어 살고 번성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저자에 따르면 백제의 문주왕은 아버지 개로왕이 고구려 군대에 패해 한성과 한강유역을 빼앗기고 목숨까지 잃은 상태에서 나라의 운명을 건 천도를 단행했다. 그가 자리 잡은 곳이 웅진-공주였다. 고려 현종은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가 40만 대군의 병력으로 고려를 침공하자 남쪽 나주로 피란을 떠났다. 1011년 1월, 겨울 추위 속에 떠난 피란은 신하나 백성들의 냉대와 외면 속에서 비참했지만, 공주에서 비로소 공주절도사 김은부의 환대를 받으며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이후 다시 개경으로 돌아가는 길에 공주에 들러 시간을 보냈으며, 김은부의 딸들을 왕비로 맞아들였고 그 사이에서 나온 아들들이 이후 왕이 되어 덕종, 정종, 문종으로 이어졌다.

 


 

조선 인조는 반정 공신이었던 이괄이 난을 일으키자 역시 한양을 떠나 남쪽으로 피란을 떠났다. 그가 피란지로 머물렀던 곳이 공주 공산성으로, 현종과 마찬가지로 피란길에 받았던 냉대와 외면과 달리 공주에서 따듯한 환대를 받았다. 이괄의 난은 바로 진압되었는데, 인조는 며칠 더 공주에 머무르면서 그 인연을 더욱 깊게 했다.

웅진백제 당시에 나라의 목표는 ‘갱위강국’이었다. 다시 강국이 되겠다는 이 꿈은 꿈으로 그치지 않고 역사가 되었다. 비록 처음 공주에 자리 잡은 문주왕은 일찍 그 꿈을 접었지만, 이후 동성왕, 무령왕, 성왕을 거치며 예전의 강성한 백제가 되었다. 고려 현종도, 조선 인조도 외침과 반란이라는 극도의 혼란을 잘 수습해 다시 나라를 살필 수 있었다. 공주와 우리 역사의 좋은 인연이라고 할 만한 이야기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이후 공주에 충청감영이 들어서면서 지금 공주와 이어지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탄생했다. 조선 이전까지의 공주는 유물과 유적을 거치며 많은 상상력을 필요로 하지만, 충청감영의 공주는 생생하다.

지금 공산성의 주 출입구인 금서루로 오르는 길에 있는 40여 개의 공덕비가 일단 그러하다. 충청감영과 공주목과 연관이 있는 여러 사람의 행적을 기록한 비들인데, 그중 맨 앞에 있는 것은 관찰사로 머물렀던 이들의 것이다. 관찰사는 당시 호서/충청지역을 대표하는 관직이었다. 왕의 대리인이자 지역 행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지금으로 생각하면 도지사+교육감+지역 군사령관+지역 경찰청장+지역 사법책임자 등 여러 역할을 맡았다. 이 책에서는 (충청도)관찰사가 했던 복잡다단한 일들, 조선이라는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었을 그 일들의 세목을 만날 수 있다. 일의 노동강도와 스트레스가 심해 일찍 세상을 떠난 관찰사들도 많았다니 그 자리가 꼭 선망의 대상은 아니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충청감영이 공주에 들어서면서 조선 후기 역사의 격변이 공주를 거쳐 갔다. 바로 천주교-서학과 동학이 그것이다. 공주의 황새바위 성지는 조선 천주교 역사에서 가장 격렬한 탄압과 억압의 현장 중 하나였다. 공주 우금티 고개는 동학혁명에 나선 농민군이 일본군과 관군의 신식무기에 속절없이 패배한 아픈 역사의 장소였다. 그 자신 동학군으로 나서기도 했던 김구 선생은 공주 마곡사에서 몸을 숨기며 은거한 적이 있고, 해방이 되자 공주를 찾아 동학과 독립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을 기리며 마곡사에 나무 한 그루를 심기도 했다. 김구 선생이 공산성 안의 누각에 지어준 ‘광복루’라는 이름은 이전 왕조시대의 ‘갱위강국’과 같은 꿈일 것이다. ‘다시 나라다운 나라가 되겠다’라는 꿈. 공주는 그런 원대한 꿈을 간직한 곳이다.

 


 

〈공주가 좋다〉는 공주의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소개하기 위해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이 기획하고 엮어낸 역사문화 교양 시리즈이다. 1,500년의 잠에서 깨어난 고대 웅진백제의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소개하는 한편, 호서의 중심지이자 감영도시 공주에 새겨진 300여 년 조선의 역사,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역사와 더불어 근대 공주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간다. 1권 《역사의 보물창고 백제왕도 공주》, 2권 《호서의 중심 충청감영 공주》 의 출간을 시작으로 탄탄한 후속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다.

 

저자 :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엮음)

 

충청남도의 역사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수집·조사·발굴하는 연구기관으로 2004년에 만들어졌다. 충남과 옛 호서 지역의 정체성을 찾는 연구서 《충청남도지》 25권, 《백제문화사대계》, 《내포문화총서》 등 충남의 정체성을 밝힌 연구서를 비롯해 청소년을 위한 지역문화 소개 책자 등 다양한 종류의 연구 및 출간 사업을 진행했으며, 문화재 발굴과 정비 복원,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 운영 등의 역사 대중화 작업도 꾸준히 해왔다.

문화재 발굴 사업 중 공주 지역의 장선리 마한 토실 유적, 수촌리 고분군 등의 발굴을 통해 백제 왕도가 되기 이전 공주의 역사 환경을 밝혔고, 공주 구도심의 대통사터와 정지산의 제향시설, 무령왕릉 주변의 발굴 조사로 백제사의 지평을 넓혔다. 땅 속의 문화재뿐만 아니라 훼손과 멸실 위기에 처한 충남의 여러 문화자원을 찾아 연구하고 보존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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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보물창고 백제왕도 공주 - 웅진백제 발굴 이야기 공주가 좋다 1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엮음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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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천마총 발굴 이후 공주 일대 유적 발굴은 우리 역사를 새로 쓸 만큼 많은 유적 유물이 발굴된 문화유적 발굴의 쾌거로 기록되고 있다. 아직도 일제의 식민사관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일부 학자들의 주장은 일거에 사그러지고 말 많은 유적 유물이 발굴됐다. 이곳이 삼국시대 백제의 도성(수도)였기에 삼국시대 유물은 물론 수많은 구석기 유물까지 쏟아져나와 당시 발굴팀은 물론 모든 국민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준 '쾌거'로 볼 수도 있을 듯싶다.

이 책의 저자(충남역사문화연구원)는 '우연'으로 표현하지만 독자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발굴 시도나 발굴을 계속하면서 발견한 무령왕릉의 발굴은 우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유적 발굴팀이 유적이 유무를 미리 알고 계획적으로 발굴을 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독자는 우리의 역사의식이 식민사관에 머무르지 않고 삼국시대의 유적이 나올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백제 문화의 실체를 책에서만 봐왓지만 믿는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저자의 '우연' 표현은 좀 더 극적인 장면이었음을 강조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독자는 국민들이 백제의 실체를 알고 믿었기 때문에 발굴이 시작되고, 결국 그 효과를 본 것이란 생각이다.

 


 

일제는 우리 나라를 오랫동안 식민 지배함으로써 영토, 민족, 심지어 역사까지도 그들의 뜻과 사관에 맞게 재구성하고 싶었지만 우리 국민은 그 식민사관을 믿지 않았고, 결국은 신라에 이어 백제 문화의 융성함을 증명해주는 유물 발굴이 이뤄진 것이라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어본다. 이로써 오랫동안 짓눌러 왔던 일제 식민사관은 서서히 꼬리를 감추게 된다. 예컨대 식민사학자들은 한반도에 구석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폈다. 일제의 사관에 따라서다. 우리 민족이 뒤늦게 한반도에 들어와 살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조작'일 뿐이라는 것이 대거 발굴된 구석기 유물이 입증해주었다. 또 백제의 의자왕이 방탕으로 나라를 망하게 한 장본인으로 역사에 기술해 놓은 김부식의 《삼국사기》도 승자의 입장에서 쓴 기록이고 역사란 게 입증됐다.

 


 

이 책 『역사의 보물창고 백제왕도 공주』는 흥미로운 발굴 이야기와 슬픈 역사로 가득하다. 이 지역의 주인인 백제인들이 나라의 멸망과 함께 유적으로만 남아 역사적 사실을 증명해 주기에 슬프다. 무령왕릉의 발굴은 백제 역사와 우리 선사 시대의 유물도 많이 발굴돼 우연과 의지가 만들어낸 역사적 발굴이라 이름 붙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의 ‘공주가 좋다’ 시리즈 1권인 이 책은 백제가 한성에서 밀려 내려와 공주를 수도로 삼았던 웅진백제 시대만 다룰 것 같지만, 공주의 시간은 더 길고 오래 지속된다.

한반도의 역사를 다시 쓴 석장리 구석기 유적은 ‘한반도에 구석기시대는 존재하지 않는다’던 당시의 식민사관적 통념에 굴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일궈낸 발굴과 고고학의 성과이기도 하다. 석장리 구석기 유적도, 일제강점기 때의 송산리 고분군 발굴도 모두 우연으로 시작했지만, 공주를 둘러싼 우연의 결정적 장면은 무령왕릉 발굴이었다. 한국 고고학사의 일대 사건으로 불리는 무령왕릉 발굴은 백제와 우리 고대사의 빛나는 영광의 시간을 확인하게 해준다.

이처럼 역사기록이 전해지지 않은 시기인 선사시대를 비롯해 삼국시대의 백제, 심지어 가까운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발굴로 밝혀진 공주의 역사는 유구하고도 찬란하다. 장선리, 수촌리, 공산성, 송산리, 정지산, 대통사터 등 흥미진진한 발굴의 현장에 아로새겨진 공주의 뿌리 깊은 역사를 돌아보는 탐험을 할 수 있다.

 


 

마을, 도시, 지역, 국가…. 한 장소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역사서에 남은 문장들을 신중히 판단해야 하고, 남은 유물과 유적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역시 신중히 헤아려 들어야 한다. 생활 속에 이어져오고 있는 것들도 제대로 들여다보는 눈이 있으면 역사의 공백을 맞추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발굴은 과감하면서 치밀한 상상력이 필요한 영역이다. 발굴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시대의 실상을 이해하도록 돕고, 또 부족하거나 유실된 기록으로 인해 그 실상을 확인하기 어려운 역사를 온전히 파악하도록 한다. 또한 왜곡된 기록에 의해 잘못 전해졌던 역사를 바로잡는 데도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

일제강점기의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왜곡되고 축소된 우리 역사의 실체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발굴이 큰 역할을 했다. 한국 고대사의 사료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정도에 불과한데, 너무 간략한 내용이고, 또 지금 눈으로 보기엔 뭔가 황당하고 미심쩍은 부분이 많아 몇몇 대목에서는 사료로서의 가치에 의심 어린 시선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발굴을 통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또 중국 역사서에서 단편적으로 언급되었던 모습들이 실제 존재했던 역사적 사실로 밝혀지는 경우가 많았다.

 


 

삼국시대 이전의 일이라 사료에는 아예 없는 얘기들이지만 장선리에서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찾아낸 것도 그러하고, 《삼국지》 〈위서〉 ‘동이전’ 마한 편에 실린 수수께끼 같은 문장과 장선리에서 발견한 마한의 토실 유적을 연결지은 것은 오롯이 발굴과 고고학의 힘이었다. 나뉜 칼 반쪽으로 자신이 아들임을 입증한 고구려 유리왕 이야기나 멀리 떠나는 정인에게 손거울을 반으로 나누어 주었다는 이야기들은 그럴듯한 설화로 치부됐다.

그러다 공주 수촌리 2지역 4호 무덤과 5호 무덤, 나중에 부부의 무덤으로 확인된 곳에서 반으로 나뉜 대롱옥 유물이 각각 발견되면서 그것이 당시 유행했던 부절(符節) 문화의 징표임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발굴과 고고학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역사 장면과 맞닥뜨리게 함으로써 한 장소의 역사를 더 입체적으로, 더 삶에 육박하게 느끼게 만들어준다.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발굴 장소들의 이름과 그곳에 담긴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은 공주를, 또 공주가 속한 호서와 충남 지역을 더 깊고 그윽하게 바라보게 한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무령왕릉 발굴 이야기다. 여기에는 일제강점기 때의 송산리 고분군 발굴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길고 긴 이야기가 있다. 송산리 고분군 발굴 당시 공주에서 교사로 근무했던 가루베 지온이라는 일본인 이야기는 지금도 그 진위가 알쏭달쏭하다. 그는 정말 무령왕릉과 함께 또 하나의 벽돌무덤이었던 송산리 6호분을 도굴한 주범이었을까? 어쨌든 그도 무령왕릉은 모르고 지나갔다. 대한민국 발굴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한 순간이 그래서 가능했다. 무령왕릉 발굴의 상세한 스토리를 따라 읽으면 1971년 7월 6일부터 시작해 8일에 절정에 달한 당시 현장의 흥분이 고스란히 따라온다.

당대 최고의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도 얼마나 놀랐을까. 1500년을 완전하게 닫혀 있던, 세상으로부터 완벽하게 단절돼 정말로 영혼의 거처 역할에 충실했던 곳에 처음 들어가다니…. 그들의 눈앞에 지금은 공주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진묘수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모습은 장관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 왕릉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지석이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었기에 그 흥분은 대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기자들이 사진을 찍겠다며 몰려와 청동숟가락을 밟아 부러뜨리기까지 한 혼란의 시간들이 우스꽝스럽지만 한편 이해가 간다. 그것은 분명 대한민국 발굴사의 일대쾌거라고 할 만한 순간이었다. 백제의 미의식과 기술수준을 여실히 보여주는 유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거기 담긴 또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을 따라 가는 것도 이 책의 취지이자 미덕이다. 왕이 왕비에게 선물했던 은제 팔찌의 이야기는 로맨틱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중국에서 온 동전들과 일본에서 온 금송 목관 등은 당시 백제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교역사의 길을 상상하게 만든다. 온 것이 있으면 간 것이 있고, 사람과 사연들도 오갔을 것이다.

무령왕비의 지석이 정지산에서 발견된 유적과 이어지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오래 전 왕과 왕비는 어떤 장례 절차를 거쳤을까. 과감한 상상력이 더해져 27개월의 그 기간을 상상해본다. 지금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문화가 존재했고, 어떤 삶의 양식이 있었다. 이 책은 그런 사라진 것들과 만나게 한다. 공주를 더 깊게 만나는 방법이기도 하다.

 


 

〈공주가 좋다〉는 공주의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춰 소개하기 위해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이 기획하고 엮어낸 역사문화 교양 시리즈이다. 1,500년의 잠에서 깨어난 고대 웅진백제의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소개하는 한편, 호서의 중심지이자 감영도시 공주에 새겨진 300여 년 조선의 역사,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역사와 더불어 근대 공주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간다. 1권 《역사의 보물창고 백제왕도 공주》, 2권 《호서의 중심 충청감영 공주》 의 출간을 시작으로 후속권의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저자 :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엮음)

 

충청남도의 역사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수집·조사·발굴하는 연구기관으로 2004년에 만들어졌다. 충남과 옛 호서 지역의 정체성을 찾는 연구서 《충청남도지》 25권, 《백제문화사대계》, 《내포문화총서》 등 충남의 정체성을 밝힌 연구서를 비롯해 청소년을 위한 지역문화 소개 책자 등 다양한 종류의 연구 및 출간 사업을 진행했으며, 문화재 발굴과 정비 복원,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 운영 등의 역사 대중화 작업도 꾸준히 해왔다.

문화재 발굴 사업 중 공주 지역의 장선리 마한 토실 유적, 수촌리 고분군 등의 발굴을 통해 백제 왕도가 되기 이전 공주의 역사 환경을 밝혔고, 공주 구도심의 대통사터와 정지산의 제향시설, 무령왕릉 주변의 발굴 조사로 백제사의 지평을 넓혔다. 땅 속의 문화재뿐만 아니라 훼손과 멸실 위기에 처한 충남의 여러 문화자원을 찾아 연구하고 보존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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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에서 잠시 멈춤
구희상 지음 / 이담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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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태국에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귀동냥과 TV 영상 등을 통해 듣고 본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물의 도시 방콕, 불교의 나라 태국. 더운 날씨로 적당히 게으르지만 먹고 살기에는 무난한 나라. 특히 쌀 생산량은 많아 자국의 국민들이 먹고 남을 정도여서 외국으로 수출한다고 들었다. 태국 쌀맛은 아직 못 봤지만 베트남 쌀국수는 먹어봐서 대략 어떤 맛일까는 알고 있다. 외국 가서 쌀밥이 그리워 한식당이 주위에 없을 경우 중국집을 많이 찾는데 거기서 맛본 밥맛은 우리 식성에는 잘 맞지 않은 푸슬푸슬한 밥.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태국의 수산시장에서 파는 각종 음식이 다양하고 맛있다고 한다. 식성은 개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맛있다는 사람과 맛없다는 사람, 모두 만나 들어본 바 있다. 방콕에서 가장 볼 만한 것은 사원과 수산시장이라는 말은 영상을 통해서도 많이 봤기 때문에 특이한 문화의 멋도 어우러져 그 맛이 더 좋을 것 같은 느낌은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까운 동남아시아 중에서 태국 방문객이 가장 많다고 하는데 독자의 취향에 맞는 것은 별로 발견하지 못했다. 식견이 짧고 태국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리라. 이 책 『방콕에서 잠시 멈춤』은 마치 명상 여행이나 스케치 여행을 떠난 듯한 느낌을 줘서 관심 있게 읽게 됐다. 태국과 방콕을 버킷리스트에 넣어두고 저자 구희상의 시선을 따라 충분히 즐거울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부제에 있는 '사색하며 들여다본'이란 말 더 울림이 있고, 끌림이 있었다. 여행지에서 사색한다는 것은 일반 여행과는 결이 좀 달라서다. 그러나 사유의 내용은 책에 기대만큼 나오진 않는다. 다만 방콕이란 도시와 그 주변의 여행지가 사색하기에 적당하고, 보고 생각할 거리도 많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이 책은 여행자 혹은 거주자의 시선으로 세계 곳곳을 살펴보는 인문 여행서 ‘두 번째 티켓’ 시리즈의 일곱 번째 책이라고 한다. 제목에 나온 것 가운데 관심이 가는 것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방콕에 대해 듣고 본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 몇 개의 키워드를 찾아낸다. '지극히 주관적인 태국 음식', '육감적인 도시 방콕', '왕과 쿠데타, 이상한 나라의 태국 정치', '미녀와 밤문화' 등 서너 개의 눈에 띄는 문구를 손에 쥐고 재빨리 읽어나간다. 다소 이해되지 않은 부분이 나오면 하나씩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노트북을 옆에 두고 읽기 시작한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재치나 재능이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네가 너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소개에 따라 방콕의 분위기나 방콕에 대한 저자의 느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말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소설에서 알랭 드 보통이 쓴 말이라고 한다. 저자는 친절하게 이 구절 아래 주석을 달듯이 다음과 같은 문장을 적어 놓았다.

"사랑에 빠지는 건 대개 우연이 좌우한다. 우연한 시기에, 우연히 만나, 우연한 계기로 감정이 싹튼다. 이런 우연의 확률에 감탄하고 난 뒤부터는 이것이 바로 운명이라고 믿는다. 이렇게 희박한 확률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운명이라고."

 


 

출판사 측은 이 책에 대해 이렇게 썼다.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쯤은 품고 있는 장소가 있다. 그 장소는 오랫동안 살아온 집이 되기도 하고 떠나온 고향일 수도 있는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되기도 한다. 저자는 하고많은 장소 중에서도 방콕을 품었다. 일주일 휴가로 다녀온 이후로도 두 번째 세 번째 방콕행이 이어졌다. 그런데도 방콕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냥’이다. 이유가 사라지면 그만 좋아할 것도 아니니 좋아하는 데 이유가 어디 있겠냐고 되묻는다. 이러한 애정과 믿음을 바탕으로 방콕의 이모저모를 떠올리며 책을 써 내려갔다.

책에는 ‘방콕’ 하면 떠오르는 태국 음식과 무에타이는 물론, 거대한 쇼핑몰과 기가 막힌 교통 체증 등 현지를 생생히 떠올릴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았다. 나아가 성적, 민족적 소수자들은 물론 방콕의 환경문제까지 ‘방콕 한 달 살기’를 두 번이나 한 사람답게 다양한 각도에서 방콕을 살펴보고자 했다. 잠시 자유로운 왕래가 어려워진 요즘, 방콕을 그리워하거나 궁금해하는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아쉬움을 달래볼 수 있는, 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을 권한다. 태국과 방콕을 정말 직접 가보지 못한 채 대한민국에서 '방콕'한 채 읽을 줄은 예전에 미처 생각지 못한 일이다.

 


 

도시는 늘 활기에 가득 차 있다. 생명력이 꿈틀거리고 살아있음을 표현하듯 24시간 밝다. 어둠을 감춘 채 밝은 곳만 보여준다. 대한민국 서울도 그렇다. 어둠을 몰아낸 채 24시간 활력에 차 있지만 여행객에게는 쉽게 어둠을 내주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심장부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유교 문화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다. 손님들에게 자신 집안의 어두운 부분을 보여주지 않듯이. 방콕은 태국의 수도이자 불교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 태국에서는 가장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다. 책이나 TV를 통해본 불교 사원은 왜 그렇게 화려한지 우리 대한민국의 사원들과는 확실하게 비교된다. 더욱이 황금색 탑들은 위용을 자랑하듯 거대한 모습으로 서 있다.

대한민국의 절이 조용한 산 속에 은둔하듯 자리잡은 것은 조선시대 유학 장려 정책에 상대적으로 불교가 탄압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방콕은 불교가 국교라 하니 많은 혜택을 주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사원이 화려하다는 것은 우리 정서와 잘 맞지 않은 방콕의 독특한 문화이리라. 인근 나라 미얀마나 라오스 등의 국가도 사회주의 시절 많은 탄압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그곳들도 사원은 크고 화려한 모습만 보여줬는데 방콕은 불교 탄압 역사도 없으니 더욱 우아하고 화려한 것처럼 보인다.

 


 

저자는 방콕을 찾은 이유 세 가지가 재밌다. 첫 번째 방콕행은 도망이 이유였다고 한다. 현실에서 도망하는 것을 말한다. 흔히 하는 말로 '현실도피'다. "지금이야 꿈을 위해 살겠다며 커리어고 뭐고 다 내팽개친 대책 없는 사람이지만, 소싯적에는 바짝 엎드려 살아온 소시민이었다."는 저자는 "나쁘게 말하면 쫄보, 항상 속해 있던 조직에 순응했으며 반항 한 번 하지 않았다. 이 시스템에서 낙오될까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나 현실에 얽매여 살았는데, 여행을 가면 그 스트레스가 풀렸다."

두 번째 여행의 이유로는 '현지에서 한 달 살기"였나 보다. "약간의 권태가 찾아왔다. 일상과 여행이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는 내 일상의 모습이 여행으로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리적으로만 다른 곳에 왔을 뿐, 하는 일이나 습관은 서울에서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친구가 많지 않은 나는 평소에도 혼자 있는 시간이 훨씬 많다. 여행지에서도 마찬가지다. 혼자 돌아다니고 혼자 밥을 먹고, 저녁에는 혼자 영화를 보며 쉰다. 새로움을 찾아 이역만리 와서 머물고 있는데 일상으로부터 탈출하지 못한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다시 찾은' 방콕에서 발견했다. 대학교 때 백두산에 다녀온 사진을 SNS에 올린 적이 있다. 한 친구가 "너 참 멋있다."는 댓글을 달아줬다. 무엇이든 댓글을 달아준 건 고마운 일이나 백두산 사진을 보고서는 사진에 나오지도 않는 내 칭찬을 하는 건 대체 무슨 말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똑똑하다고 생각했던, 자만심으로 똘똘 뭉친 대학생 시절이라 무슨 얘기든 꼬아서 들었던 시기였다. 그 자만심에 가려, 나는 또 다른 내 여행의 이유를 깨달을 기회를 놓쳤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나는 백두산을 보여주고 싶었고, 알프스보다 훨씬 아름답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고, 천지의 그 장엄한 모습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때도 공감을 얻고 싶어 했던 것이다. 저자의 술회는 아련함을 준다. 여행 많이 한 사람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쉽게 느껴지는 향수 같은 아련함, 그런 것이다.

 


 

태국 하면 들었던 이야기는 사원, 수산시장 말고도 하나가 더 있다. 밤, 홍등가, 섹스관광 등으로 대표되는 '밤문화'가 항상 오르내렸다. 태국은 모계사회라 한다. 모계 사회에서 가정의 책임을 여자가 지는 것 같다. 그래서 섹스관광 문화가 발달했다고 한다. 얼핏 이해가 안 되지만 남성의 무책임이 덧대져 가난한 시절 여성들이 돈벌이에 나선 것이 섹스관광 문화로 이어졌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굉장히 자세하게 기술돼 있지만 독자들의 오판을 방지하기 위해 이야기는 줄인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꽤 심도 있게 다뤘다.

손에 쥔 키워드 중 국왕 문제가 남아 있다. 저자는 '태국의 민주화를 기원하며'란 소제목 아래 다음과 같이 적었다.

"2018년 12월에 처음 태국 땅을 밟았다. 택시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가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건물 곳곳에 걸린 왕의 사진과 초상화였다. 심지어 어떤 건물은 벽면 한쪽을 왕의 초상화로 도색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왕이든 최고지도자든, 누군가의 사진을 도시 여기저기 걸아놓은 나라는 태국이 처음이었던 것 듯하다. 사실 처음엔 새로 즉위한 왕의 얼굴도 제대로 몰랐다. 온통 황금색으로 칠해진 그림에서 그가 왕일 것이라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태국사람들이 새 국왕을 꽤 좋아하는 줄 알았다."

 


 

마지막으로 태국 특유의 냄새가 좋고 땀을 줄줄 흐르게 하는 뜨거운 태양도 좋다는 저자는 방콕에 큰 빚을 졌다고 술회한다. "무심코 찾은 이 도시는 나에게 많은 것을 선물했다. 방콕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생의 의지가 불타기 시작했으며, 뜨거운 햇빛은 얼어붙은 나의 기분을 녹여주었다. 이방인으로서 남의 눈치 볼 필요가 없는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해주었고, 방콕 사람들은 그런 이방인도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다양한 형태로 사는 사람들을 보며 남들과 조금은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는 위안을 얻었다. 그들처럼 세상을 떠돌며 사는 노마드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중략) 방콕은 나의 유일한 믿을 구석이다. 곧 방콕에 다녀오면 다 괜찮아질 거라 믿으며 오늘도 하루를 버텨낸다."

 

저자 : 구희상

 

대한민국에서 가장 평범한 남자다. 잘하는 것도, 못 하는 것도 없는 딱 중간에 있어서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살아왔다. 한때는 이도 저도 아닌 자신에 불만도 있었지만, 이제는 이 평범함을 끝까지 잃지 않기를 바란다. 다행히 어릴 때부터 자기 일은 스스로 하라는 부모님의 가르침 덕분에 모든 일을 내 힘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다른 욕심은 없지만, 그 누구보다 자유롭게 살고 싶은 욕심이 크다. 그래도 삶을 돌아보니 항상 재미있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며 살아왔다. 앞으로도 내 마음대로, 더 자유롭게 재미있는 일을 하며 살기를 꿈꾼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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