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보물창고 백제왕도 공주 - 웅진백제 발굴 이야기 공주가 좋다 1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엮음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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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천마총 발굴 이후 공주 일대 유적 발굴은 우리 역사를 새로 쓸 만큼 많은 유적 유물이 발굴된 문화유적 발굴의 쾌거로 기록되고 있다. 아직도 일제의 식민사관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일부 학자들의 주장은 일거에 사그러지고 말 많은 유적 유물이 발굴됐다. 이곳이 삼국시대 백제의 도성(수도)였기에 삼국시대 유물은 물론 수많은 구석기 유물까지 쏟아져나와 당시 발굴팀은 물론 모든 국민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준 '쾌거'로 볼 수도 있을 듯싶다.

이 책의 저자(충남역사문화연구원)는 '우연'으로 표현하지만 독자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발굴 시도나 발굴을 계속하면서 발견한 무령왕릉의 발굴은 우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유적 발굴팀이 유적이 유무를 미리 알고 계획적으로 발굴을 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독자는 우리의 역사의식이 식민사관에 머무르지 않고 삼국시대의 유적이 나올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백제 문화의 실체를 책에서만 봐왓지만 믿는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저자의 '우연' 표현은 좀 더 극적인 장면이었음을 강조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독자는 국민들이 백제의 실체를 알고 믿었기 때문에 발굴이 시작되고, 결국 그 효과를 본 것이란 생각이다.

 


 

일제는 우리 나라를 오랫동안 식민 지배함으로써 영토, 민족, 심지어 역사까지도 그들의 뜻과 사관에 맞게 재구성하고 싶었지만 우리 국민은 그 식민사관을 믿지 않았고, 결국은 신라에 이어 백제 문화의 융성함을 증명해주는 유물 발굴이 이뤄진 것이라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어본다. 이로써 오랫동안 짓눌러 왔던 일제 식민사관은 서서히 꼬리를 감추게 된다. 예컨대 식민사학자들은 한반도에 구석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폈다. 일제의 사관에 따라서다. 우리 민족이 뒤늦게 한반도에 들어와 살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조작'일 뿐이라는 것이 대거 발굴된 구석기 유물이 입증해주었다. 또 백제의 의자왕이 방탕으로 나라를 망하게 한 장본인으로 역사에 기술해 놓은 김부식의 《삼국사기》도 승자의 입장에서 쓴 기록이고 역사란 게 입증됐다.

 


 

이 책 『역사의 보물창고 백제왕도 공주』는 흥미로운 발굴 이야기와 슬픈 역사로 가득하다. 이 지역의 주인인 백제인들이 나라의 멸망과 함께 유적으로만 남아 역사적 사실을 증명해 주기에 슬프다. 무령왕릉의 발굴은 백제 역사와 우리 선사 시대의 유물도 많이 발굴돼 우연과 의지가 만들어낸 역사적 발굴이라 이름 붙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의 ‘공주가 좋다’ 시리즈 1권인 이 책은 백제가 한성에서 밀려 내려와 공주를 수도로 삼았던 웅진백제 시대만 다룰 것 같지만, 공주의 시간은 더 길고 오래 지속된다.

한반도의 역사를 다시 쓴 석장리 구석기 유적은 ‘한반도에 구석기시대는 존재하지 않는다’던 당시의 식민사관적 통념에 굴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일궈낸 발굴과 고고학의 성과이기도 하다. 석장리 구석기 유적도, 일제강점기 때의 송산리 고분군 발굴도 모두 우연으로 시작했지만, 공주를 둘러싼 우연의 결정적 장면은 무령왕릉 발굴이었다. 한국 고고학사의 일대 사건으로 불리는 무령왕릉 발굴은 백제와 우리 고대사의 빛나는 영광의 시간을 확인하게 해준다.

이처럼 역사기록이 전해지지 않은 시기인 선사시대를 비롯해 삼국시대의 백제, 심지어 가까운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발굴로 밝혀진 공주의 역사는 유구하고도 찬란하다. 장선리, 수촌리, 공산성, 송산리, 정지산, 대통사터 등 흥미진진한 발굴의 현장에 아로새겨진 공주의 뿌리 깊은 역사를 돌아보는 탐험을 할 수 있다.

 


 

마을, 도시, 지역, 국가…. 한 장소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역사서에 남은 문장들을 신중히 판단해야 하고, 남은 유물과 유적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역시 신중히 헤아려 들어야 한다. 생활 속에 이어져오고 있는 것들도 제대로 들여다보는 눈이 있으면 역사의 공백을 맞추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발굴은 과감하면서 치밀한 상상력이 필요한 영역이다. 발굴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시대의 실상을 이해하도록 돕고, 또 부족하거나 유실된 기록으로 인해 그 실상을 확인하기 어려운 역사를 온전히 파악하도록 한다. 또한 왜곡된 기록에 의해 잘못 전해졌던 역사를 바로잡는 데도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

일제강점기의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왜곡되고 축소된 우리 역사의 실체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발굴이 큰 역할을 했다. 한국 고대사의 사료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정도에 불과한데, 너무 간략한 내용이고, 또 지금 눈으로 보기엔 뭔가 황당하고 미심쩍은 부분이 많아 몇몇 대목에서는 사료로서의 가치에 의심 어린 시선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발굴을 통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또 중국 역사서에서 단편적으로 언급되었던 모습들이 실제 존재했던 역사적 사실로 밝혀지는 경우가 많았다.

 


 

삼국시대 이전의 일이라 사료에는 아예 없는 얘기들이지만 장선리에서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찾아낸 것도 그러하고, 《삼국지》 〈위서〉 ‘동이전’ 마한 편에 실린 수수께끼 같은 문장과 장선리에서 발견한 마한의 토실 유적을 연결지은 것은 오롯이 발굴과 고고학의 힘이었다. 나뉜 칼 반쪽으로 자신이 아들임을 입증한 고구려 유리왕 이야기나 멀리 떠나는 정인에게 손거울을 반으로 나누어 주었다는 이야기들은 그럴듯한 설화로 치부됐다.

그러다 공주 수촌리 2지역 4호 무덤과 5호 무덤, 나중에 부부의 무덤으로 확인된 곳에서 반으로 나뉜 대롱옥 유물이 각각 발견되면서 그것이 당시 유행했던 부절(符節) 문화의 징표임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발굴과 고고학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역사 장면과 맞닥뜨리게 함으로써 한 장소의 역사를 더 입체적으로, 더 삶에 육박하게 느끼게 만들어준다.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발굴 장소들의 이름과 그곳에 담긴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은 공주를, 또 공주가 속한 호서와 충남 지역을 더 깊고 그윽하게 바라보게 한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무령왕릉 발굴 이야기다. 여기에는 일제강점기 때의 송산리 고분군 발굴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길고 긴 이야기가 있다. 송산리 고분군 발굴 당시 공주에서 교사로 근무했던 가루베 지온이라는 일본인 이야기는 지금도 그 진위가 알쏭달쏭하다. 그는 정말 무령왕릉과 함께 또 하나의 벽돌무덤이었던 송산리 6호분을 도굴한 주범이었을까? 어쨌든 그도 무령왕릉은 모르고 지나갔다. 대한민국 발굴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한 순간이 그래서 가능했다. 무령왕릉 발굴의 상세한 스토리를 따라 읽으면 1971년 7월 6일부터 시작해 8일에 절정에 달한 당시 현장의 흥분이 고스란히 따라온다.

당대 최고의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도 얼마나 놀랐을까. 1500년을 완전하게 닫혀 있던, 세상으로부터 완벽하게 단절돼 정말로 영혼의 거처 역할에 충실했던 곳에 처음 들어가다니…. 그들의 눈앞에 지금은 공주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진묘수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모습은 장관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 왕릉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지석이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었기에 그 흥분은 대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기자들이 사진을 찍겠다며 몰려와 청동숟가락을 밟아 부러뜨리기까지 한 혼란의 시간들이 우스꽝스럽지만 한편 이해가 간다. 그것은 분명 대한민국 발굴사의 일대쾌거라고 할 만한 순간이었다. 백제의 미의식과 기술수준을 여실히 보여주는 유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거기 담긴 또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을 따라 가는 것도 이 책의 취지이자 미덕이다. 왕이 왕비에게 선물했던 은제 팔찌의 이야기는 로맨틱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중국에서 온 동전들과 일본에서 온 금송 목관 등은 당시 백제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교역사의 길을 상상하게 만든다. 온 것이 있으면 간 것이 있고, 사람과 사연들도 오갔을 것이다.

무령왕비의 지석이 정지산에서 발견된 유적과 이어지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오래 전 왕과 왕비는 어떤 장례 절차를 거쳤을까. 과감한 상상력이 더해져 27개월의 그 기간을 상상해본다. 지금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문화가 존재했고, 어떤 삶의 양식이 있었다. 이 책은 그런 사라진 것들과 만나게 한다. 공주를 더 깊게 만나는 방법이기도 하다.

 


 

〈공주가 좋다〉는 공주의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춰 소개하기 위해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이 기획하고 엮어낸 역사문화 교양 시리즈이다. 1,500년의 잠에서 깨어난 고대 웅진백제의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소개하는 한편, 호서의 중심지이자 감영도시 공주에 새겨진 300여 년 조선의 역사,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역사와 더불어 근대 공주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간다. 1권 《역사의 보물창고 백제왕도 공주》, 2권 《호서의 중심 충청감영 공주》 의 출간을 시작으로 후속권의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저자 :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엮음)

 

충청남도의 역사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수집·조사·발굴하는 연구기관으로 2004년에 만들어졌다. 충남과 옛 호서 지역의 정체성을 찾는 연구서 《충청남도지》 25권, 《백제문화사대계》, 《내포문화총서》 등 충남의 정체성을 밝힌 연구서를 비롯해 청소년을 위한 지역문화 소개 책자 등 다양한 종류의 연구 및 출간 사업을 진행했으며, 문화재 발굴과 정비 복원,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 운영 등의 역사 대중화 작업도 꾸준히 해왔다.

문화재 발굴 사업 중 공주 지역의 장선리 마한 토실 유적, 수촌리 고분군 등의 발굴을 통해 백제 왕도가 되기 이전 공주의 역사 환경을 밝혔고, 공주 구도심의 대통사터와 정지산의 제향시설, 무령왕릉 주변의 발굴 조사로 백제사의 지평을 넓혔다. 땅 속의 문화재뿐만 아니라 훼손과 멸실 위기에 처한 충남의 여러 문화자원을 찾아 연구하고 보존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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