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에서 잠시 멈춤
구희상 지음 / 이담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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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태국에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귀동냥과 TV 영상 등을 통해 듣고 본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물의 도시 방콕, 불교의 나라 태국. 더운 날씨로 적당히 게으르지만 먹고 살기에는 무난한 나라. 특히 쌀 생산량은 많아 자국의 국민들이 먹고 남을 정도여서 외국으로 수출한다고 들었다. 태국 쌀맛은 아직 못 봤지만 베트남 쌀국수는 먹어봐서 대략 어떤 맛일까는 알고 있다. 외국 가서 쌀밥이 그리워 한식당이 주위에 없을 경우 중국집을 많이 찾는데 거기서 맛본 밥맛은 우리 식성에는 잘 맞지 않은 푸슬푸슬한 밥.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태국의 수산시장에서 파는 각종 음식이 다양하고 맛있다고 한다. 식성은 개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맛있다는 사람과 맛없다는 사람, 모두 만나 들어본 바 있다. 방콕에서 가장 볼 만한 것은 사원과 수산시장이라는 말은 영상을 통해서도 많이 봤기 때문에 특이한 문화의 멋도 어우러져 그 맛이 더 좋을 것 같은 느낌은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까운 동남아시아 중에서 태국 방문객이 가장 많다고 하는데 독자의 취향에 맞는 것은 별로 발견하지 못했다. 식견이 짧고 태국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리라. 이 책 『방콕에서 잠시 멈춤』은 마치 명상 여행이나 스케치 여행을 떠난 듯한 느낌을 줘서 관심 있게 읽게 됐다. 태국과 방콕을 버킷리스트에 넣어두고 저자 구희상의 시선을 따라 충분히 즐거울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부제에 있는 '사색하며 들여다본'이란 말 더 울림이 있고, 끌림이 있었다. 여행지에서 사색한다는 것은 일반 여행과는 결이 좀 달라서다. 그러나 사유의 내용은 책에 기대만큼 나오진 않는다. 다만 방콕이란 도시와 그 주변의 여행지가 사색하기에 적당하고, 보고 생각할 거리도 많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이 책은 여행자 혹은 거주자의 시선으로 세계 곳곳을 살펴보는 인문 여행서 ‘두 번째 티켓’ 시리즈의 일곱 번째 책이라고 한다. 제목에 나온 것 가운데 관심이 가는 것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방콕에 대해 듣고 본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 몇 개의 키워드를 찾아낸다. '지극히 주관적인 태국 음식', '육감적인 도시 방콕', '왕과 쿠데타, 이상한 나라의 태국 정치', '미녀와 밤문화' 등 서너 개의 눈에 띄는 문구를 손에 쥐고 재빨리 읽어나간다. 다소 이해되지 않은 부분이 나오면 하나씩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노트북을 옆에 두고 읽기 시작한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재치나 재능이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네가 너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소개에 따라 방콕의 분위기나 방콕에 대한 저자의 느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말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소설에서 알랭 드 보통이 쓴 말이라고 한다. 저자는 친절하게 이 구절 아래 주석을 달듯이 다음과 같은 문장을 적어 놓았다.

"사랑에 빠지는 건 대개 우연이 좌우한다. 우연한 시기에, 우연히 만나, 우연한 계기로 감정이 싹튼다. 이런 우연의 확률에 감탄하고 난 뒤부터는 이것이 바로 운명이라고 믿는다. 이렇게 희박한 확률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운명이라고."

 


 

출판사 측은 이 책에 대해 이렇게 썼다.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쯤은 품고 있는 장소가 있다. 그 장소는 오랫동안 살아온 집이 되기도 하고 떠나온 고향일 수도 있는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되기도 한다. 저자는 하고많은 장소 중에서도 방콕을 품었다. 일주일 휴가로 다녀온 이후로도 두 번째 세 번째 방콕행이 이어졌다. 그런데도 방콕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냥’이다. 이유가 사라지면 그만 좋아할 것도 아니니 좋아하는 데 이유가 어디 있겠냐고 되묻는다. 이러한 애정과 믿음을 바탕으로 방콕의 이모저모를 떠올리며 책을 써 내려갔다.

책에는 ‘방콕’ 하면 떠오르는 태국 음식과 무에타이는 물론, 거대한 쇼핑몰과 기가 막힌 교통 체증 등 현지를 생생히 떠올릴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았다. 나아가 성적, 민족적 소수자들은 물론 방콕의 환경문제까지 ‘방콕 한 달 살기’를 두 번이나 한 사람답게 다양한 각도에서 방콕을 살펴보고자 했다. 잠시 자유로운 왕래가 어려워진 요즘, 방콕을 그리워하거나 궁금해하는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아쉬움을 달래볼 수 있는, 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을 권한다. 태국과 방콕을 정말 직접 가보지 못한 채 대한민국에서 '방콕'한 채 읽을 줄은 예전에 미처 생각지 못한 일이다.

 


 

도시는 늘 활기에 가득 차 있다. 생명력이 꿈틀거리고 살아있음을 표현하듯 24시간 밝다. 어둠을 감춘 채 밝은 곳만 보여준다. 대한민국 서울도 그렇다. 어둠을 몰아낸 채 24시간 활력에 차 있지만 여행객에게는 쉽게 어둠을 내주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심장부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유교 문화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다. 손님들에게 자신 집안의 어두운 부분을 보여주지 않듯이. 방콕은 태국의 수도이자 불교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 태국에서는 가장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다. 책이나 TV를 통해본 불교 사원은 왜 그렇게 화려한지 우리 대한민국의 사원들과는 확실하게 비교된다. 더욱이 황금색 탑들은 위용을 자랑하듯 거대한 모습으로 서 있다.

대한민국의 절이 조용한 산 속에 은둔하듯 자리잡은 것은 조선시대 유학 장려 정책에 상대적으로 불교가 탄압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방콕은 불교가 국교라 하니 많은 혜택을 주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사원이 화려하다는 것은 우리 정서와 잘 맞지 않은 방콕의 독특한 문화이리라. 인근 나라 미얀마나 라오스 등의 국가도 사회주의 시절 많은 탄압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그곳들도 사원은 크고 화려한 모습만 보여줬는데 방콕은 불교 탄압 역사도 없으니 더욱 우아하고 화려한 것처럼 보인다.

 


 

저자는 방콕을 찾은 이유 세 가지가 재밌다. 첫 번째 방콕행은 도망이 이유였다고 한다. 현실에서 도망하는 것을 말한다. 흔히 하는 말로 '현실도피'다. "지금이야 꿈을 위해 살겠다며 커리어고 뭐고 다 내팽개친 대책 없는 사람이지만, 소싯적에는 바짝 엎드려 살아온 소시민이었다."는 저자는 "나쁘게 말하면 쫄보, 항상 속해 있던 조직에 순응했으며 반항 한 번 하지 않았다. 이 시스템에서 낙오될까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나 현실에 얽매여 살았는데, 여행을 가면 그 스트레스가 풀렸다."

두 번째 여행의 이유로는 '현지에서 한 달 살기"였나 보다. "약간의 권태가 찾아왔다. 일상과 여행이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는 내 일상의 모습이 여행으로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리적으로만 다른 곳에 왔을 뿐, 하는 일이나 습관은 서울에서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친구가 많지 않은 나는 평소에도 혼자 있는 시간이 훨씬 많다. 여행지에서도 마찬가지다. 혼자 돌아다니고 혼자 밥을 먹고, 저녁에는 혼자 영화를 보며 쉰다. 새로움을 찾아 이역만리 와서 머물고 있는데 일상으로부터 탈출하지 못한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다시 찾은' 방콕에서 발견했다. 대학교 때 백두산에 다녀온 사진을 SNS에 올린 적이 있다. 한 친구가 "너 참 멋있다."는 댓글을 달아줬다. 무엇이든 댓글을 달아준 건 고마운 일이나 백두산 사진을 보고서는 사진에 나오지도 않는 내 칭찬을 하는 건 대체 무슨 말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똑똑하다고 생각했던, 자만심으로 똘똘 뭉친 대학생 시절이라 무슨 얘기든 꼬아서 들었던 시기였다. 그 자만심에 가려, 나는 또 다른 내 여행의 이유를 깨달을 기회를 놓쳤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나는 백두산을 보여주고 싶었고, 알프스보다 훨씬 아름답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고, 천지의 그 장엄한 모습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때도 공감을 얻고 싶어 했던 것이다. 저자의 술회는 아련함을 준다. 여행 많이 한 사람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쉽게 느껴지는 향수 같은 아련함, 그런 것이다.

 


 

태국 하면 들었던 이야기는 사원, 수산시장 말고도 하나가 더 있다. 밤, 홍등가, 섹스관광 등으로 대표되는 '밤문화'가 항상 오르내렸다. 태국은 모계사회라 한다. 모계 사회에서 가정의 책임을 여자가 지는 것 같다. 그래서 섹스관광 문화가 발달했다고 한다. 얼핏 이해가 안 되지만 남성의 무책임이 덧대져 가난한 시절 여성들이 돈벌이에 나선 것이 섹스관광 문화로 이어졌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굉장히 자세하게 기술돼 있지만 독자들의 오판을 방지하기 위해 이야기는 줄인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꽤 심도 있게 다뤘다.

손에 쥔 키워드 중 국왕 문제가 남아 있다. 저자는 '태국의 민주화를 기원하며'란 소제목 아래 다음과 같이 적었다.

"2018년 12월에 처음 태국 땅을 밟았다. 택시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가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건물 곳곳에 걸린 왕의 사진과 초상화였다. 심지어 어떤 건물은 벽면 한쪽을 왕의 초상화로 도색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왕이든 최고지도자든, 누군가의 사진을 도시 여기저기 걸아놓은 나라는 태국이 처음이었던 것 듯하다. 사실 처음엔 새로 즉위한 왕의 얼굴도 제대로 몰랐다. 온통 황금색으로 칠해진 그림에서 그가 왕일 것이라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태국사람들이 새 국왕을 꽤 좋아하는 줄 알았다."

 


 

마지막으로 태국 특유의 냄새가 좋고 땀을 줄줄 흐르게 하는 뜨거운 태양도 좋다는 저자는 방콕에 큰 빚을 졌다고 술회한다. "무심코 찾은 이 도시는 나에게 많은 것을 선물했다. 방콕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생의 의지가 불타기 시작했으며, 뜨거운 햇빛은 얼어붙은 나의 기분을 녹여주었다. 이방인으로서 남의 눈치 볼 필요가 없는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해주었고, 방콕 사람들은 그런 이방인도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다양한 형태로 사는 사람들을 보며 남들과 조금은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는 위안을 얻었다. 그들처럼 세상을 떠돌며 사는 노마드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중략) 방콕은 나의 유일한 믿을 구석이다. 곧 방콕에 다녀오면 다 괜찮아질 거라 믿으며 오늘도 하루를 버텨낸다."

 

저자 : 구희상

 

대한민국에서 가장 평범한 남자다. 잘하는 것도, 못 하는 것도 없는 딱 중간에 있어서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살아왔다. 한때는 이도 저도 아닌 자신에 불만도 있었지만, 이제는 이 평범함을 끝까지 잃지 않기를 바란다. 다행히 어릴 때부터 자기 일은 스스로 하라는 부모님의 가르침 덕분에 모든 일을 내 힘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다른 욕심은 없지만, 그 누구보다 자유롭게 살고 싶은 욕심이 크다. 그래도 삶을 돌아보니 항상 재미있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며 살아왔다. 앞으로도 내 마음대로, 더 자유롭게 재미있는 일을 하며 살기를 꿈꾼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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