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넘은 여자는 무슨 재미로 살까?
김영미 지음 / 치읓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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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여성들은 혼인을 해도 자신의 성(姓)은 여전히 지닌다. 서양과 다른 점이다. 그렇다고 여성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성을 유지해온 게 아니라 유교 관습에 따른 것으로 이해된다. 우리도 옛날부터 여성을 비하하고 사회적 위치를 인정해주지 않은 게 관습처럼 이어져 내려왔다. 다만 성은 유지하지만 이름은 잊어버렸다. 누구 딸, 누구 아내, 누구 엄마 등으로 호칭이 바뀐다. 이러한 관습은 현대에 들어서서도 여전하다. 적어도 20세기까지는 그대로 유지돼 왔다. 사회도 남성 중심 그대로. 그러나 20세기말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고 경제적으로도 남성에 의존해 살아가야 하는, 예전과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성해방운동이 거세지면서 당당한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21세기 들어서면서 많이 달라지긴 했다. 남성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그래도 바뀌지 않은 것은 '성(性)인식'이다. 이에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미투'를 이끌어냈다. 남성 중심의 사회의 인식을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는 것. 당연한 권리이고 주장이다.

여성을 여성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성인지 감수성'이란 말도 법원으로부터 나왔다. 성희롱 등 성폭력을 법에서 보호해주는 정도로는 피해 여성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줌마에 대한 인식은 여전하다. 결혼한 여자에게는 호칭으로도, 지칭으로도 통칭된다. 간혹 '아줌마!'로 불렀다가 혼나는 경우도 있지만. 점잖게 부르려면 '부인!'이어야 한다는 말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옛날부터 부인이란 호칭은 고관대작의 아내에게만 붙여졌고, 일반 서민들의 부인은 그냥 아줌마로 통칭되는 게 여전하다. 그렇게 지칭하는 남성도 비하하기 위해 아줌마라고 부르진 않는다. 그러나 정작 여성은 이 호칭을 달가워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일부 여성들은 더 정감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은 부인으로 호칭되는 사람들의 위선적인 여자들의 대명사가 되면서부터였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첫 출발점이 '복부인' 아니었을까. 하여튼 "아줌마가 되고 나니 '아줌마'라는 단어가 들어간 말이라면 아주 귀에 쏙쏙 들어온다"는 말은 조금은 자조적인 냄새가 난다. 대신 아줌마들은 삶을 위해서라면, 가족을 위해서라면 '아줌마'라고 불리우는 게 대수냐는 생각인 것 같다. 떳떳하게 권리를 갖고 삶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어떻게 볼지는 그 사회에 달려 있는 문제다.



우리나라 아줌마들은 용감하다. 결혼 전에는 권리도 제대로 주장하지 못하는 소극적 자세가 결혼하면 대담하게 바뀐다. 부당한 대우는 맞서 싸운다. 삶을 위해서다. 가족을 위해서다. 그렇게 인식되면서 아줌마는 당연한 것으로 우리 사회에 정착돼 있다.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현재는 자신과 가족, 사회와 나라을 위해 용감해지는 여성들을 누가 비하할 수 있겠는가. 이 책 『마흔 넘은 여자는 무슨 재미로 살까?』는 여자 그 이전에 딸, 아내, 엄마의 이름으로 살아온 우리네 인생을 말한다. 아무도 포기하라고 한 적 없는데 책임감 하나로 꾸미는 인생과 꿈 있는 인생을 모두 포기한 우리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과거의 아픔, 현재의 고민을 딛고 오늘 당장 잘 살고 잘 노는 여자가 되어보자. 저자를 따라 시선과 습관을 조금 바꾸는 것뿐인데 어느새 주변 사람들은 당신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그 여자,진짜 잘 놀아!”

한 번뿐인 인생, 한 번이라도 가슴 떨리게 살아본 적 있는가? 내일 죽어도 후회 없는 하루를 보내본 적 있는가? 저자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인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 무의식 속에서 책이라는 건 성공한 사람만 쓸 수 있는 것이었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배울 점이 많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피부에 와닿지 않는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런데 이제 시대가 변했다. 누구나 자기 경험을 다양한 방식으로 나눌 수 있는 세상이다. 우리가 평범하다 말하는 사람들의 경험과 이야기가 사랑받고 있다. 내 일상과 크게 다를 것 없는 누군가의 삶은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을 우리 안에 샘솟게 한다.

이 책은 저자의 이 같은 뜻에 따라 집필됐다. 그래서인지 여자라면, 아줌마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이야기가 마음을 깊이 파고든다.

어쩌면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신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사용했던 ‘여자라서’, ‘여자니까’라는 방패를 시원하게 깨부순다. 그리고 사실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는 확신을 나눠준다. 사회가, 타인이 슬픔과 아픔을 알아주길 기다리지 않고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즐겁게 ‘잘 사는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말한다.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생을 다해 곧 죽는다 고 가정하자. 그럼 당신은 무엇을 후회하겠는가? 더 열심히 공부하지 못한 것? 더 많은 돈을 벌지 못한 것? 재벌 2세와 결혼하지 못한 것? 아니다. 답은 모두가 안다. P. 총거스는 이런 말을 했다.

“임종하는 순간에 ‘사업에 좀 더 많은 시간을 쏟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고 후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죽음이 임박해서 삶을 돌아보면, 지나간 그 모두가 놀이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 왜 더 즐겁게, 행복하게 놀지 못했던가를 후회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꿈이란 것도 사실 별것 아니다. 그냥 뭐 하고 놀지 정하는 것이다. 아직도 ‘열심히만’ 살고 있는 당신! 이제 남은 인생 뭐 하고 놀지를 고민하라!(p. 248)




겉으로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아주 커다 란 변화를 겪은 곳이 있었다. 바로 나의 마음이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밥을 하게 되었다.

청소가 밀려 있어도 짜증이 나지 않았다.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약간 어수선하고 부족한 대로 우리 집이 편안하고 좋았다. 찌개 하나에 계란말이, 김이 전부인 밥상이지만 가족과 맛있게 먹기 위해 노력했다. 일어나긴 힘들지만, 자기들끼리 내복이며 바지, 티셔츠까지 척척 챙겨 입는 아이들의 모습에 감탄하며 행복한 아침을 보냈다. 새벽에 들어와 밥을 차려 달라는 남편이, 꼭 사랑받기 원하는 아이 같아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밥솥에 새로 밥을 짓고 국을 데웠다. 그러는 내가 참 마음에 들었다.(p. 320)


때때로 시련이 다시 나를 찾아올까 두려울 때도 있다. 아무리 지금 편안하고 행복하대도 이 행복이 평생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지속될리는 없다. 그러나 나는 꿈이 있고, 하루하루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산다. 그리고 그 자체가 내 인생의 방패가 되어 주리란 것을 안다.

위기는 기회가 아니다. 위기는 그냥 위기일 뿐. 위기를 딛고 일어선다면 또 모를까? 위기는 꿈으로 향해가는 길에 있던 돌이다. 넘어지면 일어서면 된다. 상처는 결국 아물고 그 자리에는 전보다 튼튼한 새살이 돋아난다. 그럼 우리는 더 거친 광야로 나갈 수 있게 된다. 오프라 윈프리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모험은, 당신이 꿈꾸는 삶을 사는 것이다." 당신은 더 큰 꿈을 꾸게 될 것이다.(p. 321)




작가 소개도 특이하다. 한 남자의 아내, 세 딸의 엄마. 평범한 아줌마였지만 꿈을 위해 더 늦기 전에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어느새 나도 아줌마가 되어버려 누구 엄마, 누구 아내로 불리는 나이가 되었다. 한 번뿐인 인생 좀 더 재밌게 후회없이 살기위해.


저자 : 김영미


한 남자의 아내이자 세 딸의 엄마다. 언뜻 보기엔 평범해 보일지 모르지만, “사는 재미가 없으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를 모토로 하루하루 ‘뭐 하고 놀지?’를 외치는, 진.짜. 잘 노는 ‘마흔 넘은 여자’다. 드라마 보기가 취미, 수다 떨기가 특기였던 평범한 아줌마였지만 더 늦기 전에, 제대로 놀아보기 위해 원했던 꿈을 찾아 작가가 되었다.

책을 쓰면서 알게 된 ‘40대 여자가 인생을 즐기는 방법’을 공유하고, 집에만 숨어서 인생을 지루하게 살고 있는 그녀들을 탈출시키고자 이 책을 썼다. 항상 밝은 웃음을 지니는 그녀지만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어쩔 수 없이 겪어야만 했던 고난의 시간들이 웃음 뒤에 가려 있었다. 하지만그 경험들마저도 그녀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재산이 되었기에, 이제는 누구보다 인생을 적극적으로 즐길 줄 아는 ‘내 인생의 주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그녀의 첫 책이었던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를 통해 ‘나는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진짜 좋은 사람, 진정 행복한 사람이 되고자 글을 쓴다’고 말했던 그녀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자신 안에 숨겨있던 소중한 기억과 열정을 발견하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길 진정으로 바라고 있다.

“한 번뿐인 인생, 가슴 떨리게 살아 보자. 내일 죽어도 후회 없도록!”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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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사람들 - 주변에서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평범하지 않은 어쩌다 보니, 시리즈 2
안지영 외 지음 / 북산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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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가을은 정말 소리 없이 오는 것 같다. 엊그제 긴 장마와 연이은 태풍 속에 여름이 지나간 줄도 모를 정도였다.

기온도 폭염은 며칠 안 된 것 같다. 작년 여름 유난히 더워 에어컨을 너무 틀었더니 전기요금이 다른 달에 비해 무려 30만원이 더 나와 깜짝 놀랐었는데 올 여름은 독자 기억으로는 한 번도 에어컨을 안 켰다. 폭염의 날이 별로 없었다는 얘기다.

코로나로 엄중한 시기에 왠 계절 타령이냐는 비난을 무릅쓰고 독자가 계절 얘기를 늘어놓는 이유가 있다.

코로나로 일상이 멈춰서고 힘든 나날을 보내면서도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 이웃이었다는 것을 발견해서다.

『보통사람들』. 이 책은 평범하게 살아가던 다섯 명의 저자들이 육.책.만(육 개월 안에 책을 내고 만다)이라는 밴드에 가입해 자신과 자신의 일상을 바라보며 쓴 이야기이다. 특별한 사람이 특별한 주제로 책을 내는 것이 아니라 평소 같으면 귀담아 듣지 않을 평범한 생활을 유지하며 삶의 열정으로 이야기를 끌어내, 책으로 만들고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와 정감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이런 이야기도 책으로 낼 수 있구나' 하는 의욕도 북돋아주고, '그런 사람들이 우리 이웃이구나' 하는 자성의 시간도 갖게 한다. 그들은 코로나 시대를 맞아 그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한 '보통사람들'이다. 지극히 평범해 흔히 볼 수 있는 이웃집 아줌마, 아저씨, 언니 또는 동생인 이들은 어느 날 우연히 방송국 기자단에 지원하게 되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밴드에 가입한다.









초대장을 날린 방장의 의무감이었을까? 처음에는 방장의 뭔지 모를 모노드라마와 같은 글들이 올라왔다. 은근슬쩍 무반응을 결심하고 있었던 4명의 멤버, 하지만 올라오는 글들이 자꾸 신경이 쓰였다. 나와 같은 생각, 나와 같은 느낌, 나와 같은 질문들이 슬금슬금 올라와 머릿속 또는 마음속을 거슬리게 했다.

어느 날 제2의 멤버가 글을 올렸다. 그러자 조용하기만 하던 밴드에 속속들이 다른 멤버들의 글이 올라오며 육.책.만에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올라오는 글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육아의 어려움, 퇴직과 새로운 도전, 일상의 소소한 재미와 발견들, 하나 같이 보통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신기한 건 짧게라도 한두 줄 쓰고 나면, 우울하고 슬프게 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 위로와 에너지를 얻게 되고, 소소한 일상의 기쁨도 배가 되었다. 특별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나와 같은 보통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든든한 한편이라도 만난 듯 서로에게 왠지 모를 위로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하게 된 이 책은 기대 없이 시작했던 ‘소소한 시작의 결과물’이자, 무모해 보이지만 있는 힘껏 응원해 주고 싶은 ‘보통사람들의 열정’일 것이다.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책으로 쓰나요?’ 하고 글을 쓰는 시작부터 자조 석인 물음표가 가득했지만 이들은 보통의 삶 속에서 특별함을 발견하고, 삶의 균형도 새로운 꿈도 찾게 되었다.




누구든 스스로의 경험만으로 세상을 살아나가기가 쉽지 않다. 삶이 가져오는 수많은 질문들 그리고 넘기 힘든 계단과 마주설 때가 많다. 자신의 경험이 그 모든 해답을 갖지 않는다. 그럴 때면 자신의 방법으로 지식을 동원하고, 책을 읽고, 전문가의 도움도 받고 하면서 위기를 넘기기도 한다. 그러나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더 큰 용기를 얻고 삶의 긴장을 내려놓게 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발견했다. 독자 개인적으로도 저자들을 통해 간접 경험이지만 특별한 경험이다. 책이 삶의 지혜를 직접 말해준 듯한 느낌이다.

우리 주위에는 평범한 일을 앞에 두고 쓸데없이 성실하게, 무모하지만 열정적으로 차곡차곡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혜를 줄 줄이야 생각도 못했다. 바로 우리 이웃인 보통사람들이다. 우리 삶의 대부분을 채우는 것은 이러한 보통사람들의 삶속에서 녹아든다는 평범한 진리도 깨달았다.

어려울 때 위인들의 이야기에 잠시 귀를 기울여도 보지만, 길고 지루한 삶의 미로 속을 걸어가면서도 웃을 수 있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은 함께하는 수많은 보통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삶의 지혜를 줄 줄이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은 우리 이웃이고 평범한 갑남을녀이다.

육.책.만의 다섯 멤버들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분명 위로가 될 것이다. 또 누군가는 나의 이야기를 읽으며 힘을 낼지도 모른다. 세상 모든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는 너무 평범해서 더 특별하다. 전쟁터에서 전우가 왜 소중한지, 전우의 목숨을 내 목숨보다 더 아끼고 보호해줘야 하는지에 대한 군 생활의 경험이 삶터에서 그대로 적용될 줄이야.





겪은 일이나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과 느낌을 자연스러운 언어로 전달하는 사람이 있다. 또 머릿속에 생각이 머물러 있고 미사여구를 끌어다가 입혀서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전자에 속하는 사람들의 글은 술술 읽힌다. 크게 가공하지 않아서 솔직함과 진솔함, 진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울림도 주고 감동도 준다.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의 글은 표현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느껴질 경우 '멋지다' '잘 쓰네' 하는 감탄을 끌어내기에는 좋다. 그러나 읽고 공감하기에는 시간이 걸린다. 글쓴 사람의 의도를 따로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렵게 쓰거나 일관되지 않을 경우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는 앞에 말한 내용 중에 보통사람이 삶의 모습 그대로를 표현할 때는 대부분 전자에 가깝다는 것을 안다. 후자는 작가나 학자일 경우를 제외하고는 목적을 감추고 쓴 글이라고 오해받기 십상이다. 이 책 『보통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사소한 일이나 생각을 아무 수식 없이 독자들 앞에 그대로 내놨기 때문에 많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책이다.


나에게 아빠는 숨구멍 같았다. 고민이 있으면 아빠와 의논하며 숨을 고르고, 잘한 일이 있으면 제일 먼저 큰 숨으로 아빠에게 알리고, 힘겨운 일이 있으면 아빠에게 긴 숨으로 위로를 받았던 나의 숨구멍. 언젠가부터 그 숨구멍이 하나씩 둘씩 점점 더 막혀 간다. 어느 날 내가 숨을 못 쉬게 될까 봐 겁도 나면서. 오늘은 숨 한번 크게 쉬고 기도한다.“하느님, 지금처럼만이면 됩니다. 지금도 감사합니다.”(p. 54)


다행히 나의 어려운 질문들이 어떻게든 답을 얻는다. 재미없는 나에게 진지하고 성실하게 답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 내가 인생을 탐험하는 이 여정이 즐겁고 재미난 이유다. 인생의 귀한 질문들을 구하고 답변을 채록하는 모든 과정, 그 자체가 인생이고 소중한 나의 자산이다. 나는 질문으로 산다.(p. 67)




이웃의 근황을 잘 모르고 사는 사람이 다수일 텐데, 첫 번째 안지영 저자는 이웃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다.

16년 동안 살던 목동의 두 동짜리 아파트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한 순간, 그들이 공유한 기쁨과 서로 나누는 정은 돈독하다. 집을 사서 이사 가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일생의 가장 큰 일이고, 가장 큰 기쁨일 터다.

그가 들려주는 새로운 이웃과의 이야기에 가난하고 어렸을 때 추억도 떠오른다. 서로 많은 것을 가지지 않았지만 이웃간의 정은 끈끈하게 나누었던 시절의 추억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기억을 되살려주는 이 글은 특별한 사람이 쓴, 특별한 주제의 책이 아니다. 평범하고 보통 사람인 우리 이웃의 평범한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줬을 때 더 공감이 가나보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이웃사촌'이란 말을 만들어냈나 한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이웃과 나누는 끈끈한 정이 무엇인지도 더불어 생각해보게 하고, '우리 옆집에 누가 살더라'라는 생각을 한 번 더 해보게 한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주변 이웃과 관계를 쌓아가는 모습은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느끼게 한다.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인 엄혜령 저자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등록하기 위해 맞벌이 증명을 위한 출판사를 차린다.

질문하는 것을 생활화하고 있는 저자는 교회의 아는 동생이 다수의 교회 지인들과 다른 의견을 과감하게 표현하는 것을 보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 것도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녀는 가족이 거주하는 집에 아버지를 모시게 된다. 아버지가 오시게 되자 불편한 생활이 예상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족들은 새로운 조화를 만들어 가며 멋진 생활 방식을 찾아간다.

방송국 기자단을 하며 출판사도 창업하고 지원 사업에 선정되고 글을 쓰며 상대방과 소통하는 일이 그녀에게 하는 일이 순행하게 만드는 것 같다.




소소한 어린시절 이야기, 결혼식 헤프닝, 워킹맘으로서의 이야기 속에 자아찾기, 책쓰기 도전 등 평범한 일상이지만 독자가 아는 주변의 어느 누구보다도 깊은 생각을 갖고, 하는 일에 열정적이인 다섯 분이다. 각 글의 주제는 그들의 삶의 모습만큼 다르지만 결국 인간으로 귀결되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마음이 따뜻해지고 훈훈해지는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좀 더 애정을 갖고 친분을 쌓은 다섯 명의 시너지와 열정으로 한 권의 책을 집필했다는 것이 참 멋지다. 누가나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한 명을 알게 되면 그 사람으로부터 얻는 에너지, 긍정적인 것이 많은데 이 다섯 분은 서로 잘 만난 것 같다.

평범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멋진 글로서 탄생하고 그 글들을 읽으면서 기분이 좋고 독자에게 용기도 주었다. 소소하고 평범한 이야기가 글로 정리되며 의미 있게 재창조되는 모습이 참 멋지다는 생각이다.


사람과 사람은 오랜 인연이든, 잠깐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든 영향을 주고받고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그러면서 성격에도 영향을 미치며 한순간 가치관도 바뀌게 할 수 있는 관계도 된다. (...) 결혼을 해서는 배우자에 따라 성격이 바뀌기도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를 통해 나를 보게 된다. 나에게 사람이란 결국 나인 것 같다. 그들을 통해 내가 형성되고 다듬어지니깐.(p. 208)





신용민 저자는 독자처럼 중년을 맞이한 남성이고 직장을 그만두고 음악에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은 음악이 목표다는 점과 사는 곳만 독자와 다를 뿐 많은 생각이나 행동이 독자와 너무 비슷하다. 이 때문에 그의 인상과 일하는 모습이 눈에 그려질 정도여서 공감 100%다. 피아노 관련 유튜브도 진행하고, 다른 악기를 배우고 곡도 쓰는 생활 속에 방송국 기자단까지 하는 모습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을 하는 보통사람 그대로다. 그가 강조하는 여유 있는 중년의 삶을 누린다는 말은 엄살인 것 같다. 나이는 모르지만 일하는 모습이 중년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특별한 중년은 다르지만.


내 모든 사정과 속마음을 까발리고 살 순 없지만 소통이 없는 삶은 고인 물 같아서 에너지를 발휘하지 못한다. 물은 움직일 때 촉촉한 비도 되고, 우렁찬 파도도 되고, 태풍을 동반한 폭우도 되고, 시원한 계곡물도 되지 않는가? 내 속의 열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이 ‘소통’은 정말 중요하다. 소통에는 격려와 화합, 피드백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 아무리 굳은 결심으로 일을 시작해도 격려가 아닌 비난과 책망을 계속 받으면 의욕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 잘 알듯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p. 105)



저자 : 안지영

정과 오지랖의 중간 어디메쯤 헤메고 있는, 사업가를 꿈꾸는 전업주부 아줌마. 브런치@anjji624


저자 : 엄혜령

서울에서 30분 거리의, 산, 바다, 갯벌, 포구가 있는 도시에서 아이를 키우며 산다. 동네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쓴 책, 《생금집에서,우리는》, 《월곶동 책한송이》가 있다. https://cafe.naver.com/gajie2


저자 : 신용민

반백살에 음악하며 곡 하나 팔아보려 용쓰는 백수. 브런치@bamsaee, 오디오클립_아저씨의 피아노 배우기, 유튜브_밤새의 음악놀이, 멜론·지니·벅스_밤새(산허리의 고목아)


저자 : 최미영

사람 좋아하고 발로 뛰는 여자, 유튜버, 브런치 작가, 《비우니 좋다》를 썼다. 브런치@whitelapin, 유튜브_나비토끼씨


저자 : 박세미

다수의 사람을 만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음.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뒤늦게 자아 찾기 삼매경에 빠진 30대 보통여자사람. 브런치@wonder-land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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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만지다 - 삶이 물리학을 만나는 순간들
권재술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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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단어만 들어도 어렵고 멀게 느껴진다. 학교 다닐 때부터 사회 생활을 하면서도 줄곧 그래왔다. 살아가면서도 그 어려운 물리가 적용할 곳은 별로 없어 보였다. 몰라서 적용할 생각을 못했는지는 사회 생활 한참 후에 살면서 다가온 물건의 특성을 이용해야 삶이 편리하다는 것을 인식하고서부터다. 예를 들면 물건에 충격을 가할 때 물건이 받는 충격은 f=ma란 가장 간단한 공식이 적용된다는 것을 알아채는 것이다.

수많은 경험으로 저절로 터득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 공식을 이때 적용할 생각을 했다면 바로 어느 정도 충격을 줘야 물건이 부숴지는가를 쉽게 알 수 있는 식이다. 물리를 공부한 이유는 커리큘럼에 들어가 있고 대학입시를 위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물리학이 우리 삶에 적용될지는 생각지 못했다. 물리학은 딱딱하고 냉철한 이성과 과학적 이해, 과학의 응용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하는 학문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우연히 격물치지(格物致知)란 말을 어느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이 단어는 중국 사서(四書)의 하나인 《대학(大學)》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사물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여(격물) 지식을 넓히는 것(치지)을 이른다.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8조목으로 된 내용 중, 처음 두 조목을 가리킨다. 이 말은 본래의 뜻이 밝혀지지 않아 후세에 그 해석을 놓고 여러 학파(學派)가 생겨났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주자학파(朱子學派: 程伊川 ·朱熹)와 양명학파(陽明學派: 陸象山 ·王陽明)이다.

주자는 격(格)을 이른다[至]는 뜻으로 해석하여 모든 사물의 이치(理致)를 끝까지 파고 들어가면 앎에 이른다[致知]고 하는, 이른바 성즉리설(性卽理說)을 확립하였고, 왕양명은 사람의 참다운 양지(良知)를 얻기 위해서는 사람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물욕(物欲)을 물리쳐야 한다고 주장하여, 격을 물리친다는 뜻으로 풀이한 심즉리설(心卽理說)을 확립하였다.

즉, 주자의 격물치지가 지식 위주인 것에 반해 왕양명은 도덕적 실천을 중시하고 있어 오늘날 주자학을 이학(理學)이라 하고, 양명학을 심학(心學)이라고도 한다.[두산백과]

그냥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의 말로는 물건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고 지식(이성)이 필요한지, 마음(감성)이 필요한지에 대해 서로 다른 주장이다. 사물의 이치나 특성을 연구하는데 그렇게까지 하는 건 역시 학자들의 몫이다. 더욱이 사전에도 한자와 굉장히 어려운 말로 써 있어 정확하게 알기에는 지식이 짧아 낮은 단계의 이해에 머물렀다. 더욱이 삶에 별 필요가 없어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그래도 우주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더욱이 물리학의 세계적 석학들이 하나의 정답을 알아가는 과정을 칠판 위에 공식을 적어놓은 것을 보고는 우리와는 다른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이라고 애써 외면하기도 했다. 그저 천재나 아는 것이라고.

더욱이 물리학은 문학이나 예술과는 거리가 먼, 어쩌면 정반대의 개념이라고까지 생각했다. 보는 것, 인식, 이해, 입증 등이 과학의 영역에서 이뤄지고 보이지 않은 것, 감성, 감각적 수용이 필요한 예술과는 정반대의 세계라는 인식이었다. 이 책 『우주를 만지다』의 권재술 저자는 이러한 독자의 인식을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시선으로 우주를 이야기하면서 우주에 대한 이해를 감각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이 책은 지구의 모든 모래알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세밀하고 작은 원자 단계의 미시세계부터 감히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우주 너머의 거시세계까지, 우리가 발을 딛고 살고 있는 세상을 물리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과학 에세이다. 독자들의 지적호기심을 자극하는 과학 이야기뿐만 아니라 노(老)물리학자의 연륜이 담긴 인생에 대한 고찰, 모든 이야기의 끝에 배치된 짧고 인상적인 시편으로 감성까지 이끌어낸다.

그래서인지 무한한 우주 세계에 관한 탐구로 호기심을, 또 머나먼 우주를 우리의 삶과 연결 짓는 시로 문학성을 동시에 잡은 『우주를 만지다』는 TVN 「알쓸신잡」의 과학박사 김상욱 교수부터 『시간을 파는 상점』 김선영 소설가, 유성호 문학평론가, 『오렌지 기하학』 함기석 시인 등 분야를 아우르는 인사들의 극찬을 받았다고 출판사는 소개하고 추천사를 책에 실었다. 과학으로부터 전해지는 문학적 감동이라니, 불가능할 것만 같은 두 분야의 조화를 성공적으로 빚어낸 저자의 '우주도자기'를 만져보려는 독자들은 이 책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과학과 문학이라는 별미 같은 조화 속을 유영하다(책을 읽다) 보면 막연히 어렵게만 느껴졌던 물리학과 우주라는 매력에 빠져들며 인생을, 또 삶을 돌아보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믿는다.




『우주를 만지다』는 4개의 장으로 구성돼 이해하기 쉬운 말로 우리가 '알아야 할 우주'의 세계를 설명한다. 키워드로 보자면 별, 원자, 신, 시간 등 4개이다.


1장 별 하나 나 하나

2장 원자들의 춤

3장 신의 주사위 놀이

4장 시간여행


개기일식, 외계인, 상대성이론, 슈뢰딩거의 고양이 등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아직 낯설기도 한 물리학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냈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었던 상식이 180도 뒤집어질 수도 있고, 눈앞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세상을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히기를,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과학자 수준의 지식을 얻기보다는 그저 과학자들이 느끼는 자연과 우주의 감동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길 바랐으며, 우주에 대한 전문가가 되기보다는 그저 부담 없이 우주를 만지고 우주와 놀면서 더 풍요롭고 즐거운 인생을 만들어가길 바랐을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과학이라는 분야가 막연히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막상 이 책의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과학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지구와 우주의 경계처럼 모호해지고 끝내 허물어지게 될 것이다. 행여 당신이 ‘과학 문외한’이더라도 상관없다. 이 책을 덮는 순간 당신의 입에서는 “과학이 이렇게 쉽다니, 심지어 재미있기까지?!”라는 말이 절로 터져 나온다.

지금처럼 모두의 삶이 힘들 때, 당장의 현실이 막막할 때 오히려 머나먼 곳으로 눈을 돌려 보는 건 어떨까? 하루하루 힐링이 간절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저 멀리에 있는 우주인지도 모른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시간에 펼치는 『우주를 만지다』는 독자들에게 드넓은 우주를 배우며 우리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책에 따르면 우주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을 설명하는 이론까지 재미있게 읽힌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이 모든 이야기가 결국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지구를 알기 위해, 또 우리의 삶을 알기 위해 우주로 떠나는 시간을 기꺼이 마주해 보자. 빛나는 별과 원자들의 춤, 차원을 넘나드는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를 지켜보고 있으면 현실로 인해 지쳐 있던 마음속에도 물리학의 즐거움이 서서히 떠오를 것이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인 프록시마 센타우리(Proxima Centauri)는 약 4광년 떨어져 있다. 1광년이란 빛이 1년 동안 가야 하는 거리다. 빛은 1초에 지구 7바퀴 반이나 되는 거리를 갈 수 있고, 1억 5,000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태양까지도 8분이면 갈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빛으로 한 시간도 아니고, 하루도 아니고, 한 달도 아니고, 1년도 아니고 4년을 가야 한다니. 얼마나 멀리 있는가? 그래도 이것이 가장 가까운 별이고 대부분은 이보다 어마어마하게 더 멀리 있다. (…)

여러분은 상상이 가는가? 하늘 저 멀리 아득히 수억 광년, 아니 수백억 광년에 걸쳐 있는 별들을 상상해보라. 우주는 얼마나 광활한가? 여러분은 우주가 어마어마하게 크다고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우주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어마어마한 것보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더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주여행? 100년도 채 살지 못하는 인간이 감히 몇억 년의 여행을? 그래도 인간은 그 꿈을 꾸고 있다.(pp. 19~21)


대기는 분자들의 여관방이다. 그 여관방에는 종류와 관계없이 한 방에 한 분자만 들어간다. 분자의 크기나 질량을 따지지 않는다. 여관방이 손님의 키나 몸무게를 따지지 않듯이 분자들의 여관방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인간들의 여관방인 고급 호텔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돈이 있어야 하고 사회적 지위도 높아야 할지 모른다. 인간들의 여관방에는 차별이 있다. 하지만 분자들의 여관방은 출신 성분을 따지지 않는다. 인간들의 여관방과는 달리 아무런 차별이 없다. 자연은 인간보다 더 공평하다. 자연에서 배워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p. 137)



빛이 직선으로 나아가고, 무엇에 부딪히면 반사를 하고, 유리나 물을 통과할 때 굴절하는 것을 본 뉴턴은 빛을 입자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빛은 장애물이 있으면 돌아서 가고, 두 빛이 서로 만나면 간섭을 해서 무지개와 같은 색깔이 나타난다. 이런 현상은 빛이 파동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맥스웰에 의해서 빛이 전자기파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빛이 파동이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하지만 빛은 그렇게 쉽게 자기의 정체를 드러내는 호락호락한 존재는 아니었나 보다. 빛을 금속에 비추면 금속에서 전자가 튀어나온다. 이 현상을 광전효과(photoelectric effect)라고 한다. 아인슈타인은 빛이 입자라는 가설로 광전효과를 성공적으로 설명했다. 이 공로로 그는 노벨상을 받았다.

빛은 회절하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파동인데 또 광전효과를 일으키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입자다. 그러면 도대체 빛은 입자란 말인가 파동이란 말인가? (…)

빛은 파동도 아니고 입자도 아니다. 빛은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간단한 존재가 아니다. 도를 도라고 하면 이미 도가 아니듯이(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빛도 파동이라고 하면 이미 파동이 아니고 입자라고 하면 이미 입자가 아니다.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존재, 그것이 빛이다.(pp. 156~158)


양자중첩을 좀 더 확장해서 인생사에 적용해볼 수도 있다. 미래에 내가 성공한 사람이 될지 실패할 사람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양자역학적으로 보면, 현재의 나는 성공과 실패가 중첩된 상태로 존재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실패나 성공 둘 중의 하나가 현실이 될 것이다. 모든 미래는 양자중첩 상태다. 시간이 흐르면 이 중첩 상태 중 어느 한 상태가 현실이 될 것이다. 내가 수만 번 환생한다면 실패한 나와 성공한 내가 반반으로 나올지 모른다.

우리는 진실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진실은 O 아니면 X라고 믿는다.

하지만 진실은 그렇게 흑과 백으로 분명하게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진실은 오히려 중첩적이고 모호하다. 이 모호함이 진실의 오묘함이 아닐까?(p. 178)






자연과학책이지만 감성적인 '시(詩)'가 함께 담겨 있다.

그 중 기억에 새로운 것 중 하나인 <암흑물질> 이라는 시는 읽고나면 첫사랑이 생각나는 순수하고 감성적인 내용이다.

암흑물질을 이용하여 감성적인 시를 담은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과 암흑물질의 상관 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칼 세이건은 '지구는 우주에 떠 있는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했다. 독자도 TV를 보면서 우주를 향하고 있던 보이저 1호에게 긴급 메시지를 보내 보이저 1호의 카메라의 방향을 지구로 돌려보니 아주 작은 푸른 점으로 보이는 장면에 굉장히 놀란 기억이 있다.

"저 작은 점에 수백억~수천억, 아니 어쩌면 더 많은 생명이 살고 있다니..."라고 생각했다. 그 중 하나인 내 생명은 보잘 것 없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과 함께였다. 이 책에서도 그 얘기가 나오니 반갑다. 사막을 헤매는데 길을 잘 아는 사람을 만나는 느낌이다.

저자는 우주탐험의 종착점은 우주가 아니고 지구라고 말한다. 지구를 알기 위해서 지구를 떠나는 것이라고.. 정말 멋진 말이다.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모두 물체가 왜 떨어지는지 잘 설명하지만, 빛에 대해서 두 이론은 우열이 갈린다. 뉴턴의 중력 이론에 따르면 빛은 질량이 없으므로 중력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빛은 중력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지구나 태양에 의해서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별 주위에 공간이 휘어져 있으므로 질량이 없는 빛이라도 휘어져야 한다. 아인슈타인의 이런 주장은 매우 놀라운 것이었으나 영국의 천문학자 에딩턴에 의해서 실제로 빛이 태양의 중력에 의해서 휘어진다는 것이 관측되었다. 공간이 휘어져 있다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이로써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은 증명이 되었고, 아인슈타인은 일약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휘어진 공간은 눈으로 볼 수 없다. 오직 마음으로만 볼 수 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던가?

우리가 사는 공간은 휘어져 있지만 그 휘어져 있음을 우리는 볼 수 없다. 논리적 결론이지만 실험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결론이다. 진실은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고 감추어져 있다.(pp. 287~288)






눈으로 보는것이 전부가 아니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도 역시 당연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또 아무것도 모르고 살기에는 이 세상이 너무 흥미롭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재미 있는 이야기들을 알고 싶고 듣고 싶다. 그것이 인간 탐구면 예술이고, 우주 탐험이면 과학이다. 이 책은 예술과 과학이 서로 다른 듯하지만 공통점이 많다는 것과,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소중한 책이다. 우주를 설명하면서 시를 접목시켰다는 이유에서가 아니다. 인간 탐구든 우주탐험이든 시발점과 종착역은 인간이고 우리가 사는 지구다. 때문에 두 분야는 연결 가능성이 있다. 독자의 오판인지 모르지만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책을 읽을수록 그 생각은 깊어진다.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

스위스의 화가 파울 쿨레(Paul Klee)의 말이다. 독자가 이 말을 읽었을 때 크게 공감해서 외워두었던 덕분에 여기에 쓴다. 우주 탐험 역시 이 책에서 느낀 점은 시발점이나 종착역 역시 모두 우리가 사는 지구다. 그런 점에서 독자는 예술과 과학이 정반대의 분야로 남는 게 아니라 연결된 분야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물리적인 별을 보는 사람의 시각과 예술적 감각으로 별을 보는 사람의 시선의 연결 선상에 무엇이 있을까. 표현과 수행 과정만 다를 뿐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욕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독자는 믿는다. 예술은 현실을 상상화시키고 과학은 상상을 현실화시킨다.


저자 : 권재술


저자 권재술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물리교육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과학교육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교원대학교 물리교육과 교수, 한국교원대학교 총장으로 재임했으며, 한국과학교육학회 회장, 한국물리학회 물리교육분과 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대학에서는 과학교육론과 상대론을 강의했으며, 초·중등 과학 및 물리 교과서를 다수 집필하였다. 대표 저서로는 『과학교육론』(공저)과 『우리가 보는 세상은 진실한가』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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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잘못이 없다 - 어느 술고래 작가의 술(酒)기로운 금주 생활
마치다 고 지음, 이은정 옮김 / 팩토리나인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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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엄청나게 술을 좋아했다. 술 없이는 하루도 살지 못할 정도로 마셨다. 우리 속담에 "사람이 술을 먹다가 나중엔 술이 사람을 먹는다"는 말이 있다. 30여년 술을 지독하게 마셔본 독자는 절제하는 술, 끊는 술, 마지막 술, 못 마실 때까지 마시는 술 등 각종 술을 다 섭렵(?)했다. 그렇게 마시다보니 결국 몸에 무리가 왔다. 술을 끊었다. 엄밀히 말하면 '끊겼다'라고 표현해야 한다. 그동안 의사로부터 경고도 수차례 들을 정도로 응급실 신세도 여러 번 졌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코피가 계속 나서 민간요법으로 처치가 안 되자 응급실로 달려갔던 일, 술 기운에 휘청거리다 무언가에 부딪쳐 의식을 잠시 잃고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 주위의 도움으로 응급실로 간 일 등 부끄러운 일도 셀 수 없이 많다. 주위의 강요나 의사의 경고 등으로 며칠 혹은 몇 달씩 금주한 적도 많다. 그러다 아주 시시한 이유로 다시 마시면 어김없이 예전의 술꾼 상태로 돌아간다.

의사는 알코올 의존증(알코올 중독)을 의심하고 입원을 권유하기도 했다. 직장은 나가야 한다며 애써 외면한 적도 여러 번. 그래도 마셨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술을 끊은 지 2년이 넘었다. 그래도 식구들은 예전의 술버릇이 다시 재현될까 전전긍긍한다. 술병은 물론 냉장고 술도 말끔히 치우고 다시는 사 들여오지 않는다. 이 정도 마셨으니 집안에서의 의심에 화만 날 뿐 반발하거나 예전처럼 홧김에 술을 마시는 일은 없다. 예전에는 술 얘기 나오면 독자를 비난했다. 비난 받으면 화가 났으니 풀 길 없어 술을 마시는 악순환 속에 갇혔다고 해야 맞다. 그 정신으로 세상 사는 일은 쉽지 않다. 다니던 회사에서도 주의, 경고까지 받은 적이 있다. 다행히 일은 잘한다고 평가됐는지 술을 마신다고 해고하지는 않았다. 그게 오히려 더 독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술 마시러, 술 마실 돈 벌기 위해 회사에 다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술 끊은 이후에 생각이지만.

술을 많이 마셔봐서 이 책 소제목만 봐도 어떤 상태였는지 눈에 선하고 어떤 심리상태인지 알 것 같다. 책을 선택한 것도 술에 대한 향수보다는 술을 끊었다고 선언한 저명한 저자가 술 마시게 하는 글을 쓰지는 않았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예상은 맞았지만 너무 재밌게 썼다. 공감 가는 부분도 많다. 여기서도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지만 "과부 마음 홀아비가 알아준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술에 관한 책을 읽고 서평 졸고를 쓰려하니 독자 얘기만 하는 것 같다. 그만큼 술은 끊기 어려운 것이고, 술을 끊으면 세상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니 자칫 독자들이 오해가 있을까 미리 밝힌다.






숙취 때문에 타는 듯한 갈증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는 날, 우리는 침대 위를 기어 나와 간신히 물을 한 모금 머금고는 ‘아, 이게 다 망할 놈의 술 때문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비난은 잘못됐다. 술은 자신을 마시라고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직접 잔을 들어 식도로 흘려보낸 것은 스스로의 의지다. 그러니 술로 인한 모든 고통은 다 나의 책임이다. 비극은 술로 인한 고통이 신체적인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데서 출발한다. 분명 기분이 좋아지려고, 혹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먹은 술인데 기분이나 상황이 좋아지기는커녕 되려 나쁜 쪽으로 흐를 때가 있다. 아니,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가 마치다 고는 바로 이 부분에 집중한다. 인생은 언제나 밸런스 게임처럼, 행복이 있는 곳의 반대편에는 반드시 불행이 있다는 것을 금주를 통해 깨달았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을 좋~다고 생각하며 마시고 또 마시고, 권하면 반드시 마시고 권하지 않더라도 자작해서 마시고 말술은 더욱 거부하지 않는 생활을 30년에 걸쳐서 계속해 왔다. 물론 실수도 했다. 스승뻘 되는 사람한테 대들다가 파문을 당하기도 했다. 친구와 별거 아닌 일로 말싸움을 하는 바람에 오랜 세월 쌓아온 우정에 종지부를 찍기도 했다. 초밥집에서 떡이 될 정도로 거나하게 취해서 “너 이 새끼. 뭐 이따위로 초밥 만들어! 내가 누군지 알아? 나는 말이지 파리의 일본 요리 전문점에서 3일간 배운 사람이라고. 비켜! 내가 한 솜씨 보여주지!”라고 말하며 카운터를 훌쩍 뛰어넘어 주방으로 들어가 초밥을 만들었다. 정말 목숨이 몇 십 개 있어도 부족할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짓을 닥치는 대로 했다.(p. 14)





그니까 정리하자면 술의 즐거움은 인생의 자산이 아니며 즐거움이라고 부르던 것이 실은 부채라는 사실을 한 수 가르쳐 줬다, 이 말이지. 이 생각을 발전시키면 반드시 인생 자체의 균형이라는 지점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즐거움의 반대쪽에는 반드시 고통이 있다. 이것은 절대적이다. 태어나면 반드시 죽듯이. 삶이라는 자산의 반대쪽에는 반드시 죽음이라는 부채가 있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동안에 즐거움이 고통을 조금이나마 웃돌게 하지 않으면 오로지 고통스러워지기 위해 살고 있다고 느끼게 되지. 그런데 말이야, 적어도 음주에만 한해서 계산기를 두들겨 보면 지금까지 봐 왔듯 마이너스가 너무 커서 고통이라는 부채가 늘어날 뿐이라는 건 명확하다 이거야.(p. 56)


인생에는 즐거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고통이 반드시 수반된다. 이 고통이 바로 부채다. 술꾼들은 술에는 고통이 존재하지 않으며 즐거움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생명은 유한하고 생과 사는 세트라서 삶이 언젠가 죽음으로 청산되니, 즐거움만 있는 것이 아니며 반드시 반대쪽에는 고통이 있다.

그 고통의 내용은 다양하지만 비교적 알기 쉬운 것으로는 술독에 좀먹은 건강, 시간 낭비로 인해 발생하는 생산성 저하, 금전 소비, 술 취함으로 인한 착오, 판단 실수, 착오로 발생하는 주위 사람들과의 알력 등이 있다. (중략) 술이 주는 즐거움의 본질은 술에 취하는 것이고 그것은 몇 시간 만에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기억과 경험, 즉 인생의 자산으로 남지 않는다. 단지 위에서 말한 부채만이 남는다. 즉 즐거움과 고통이 조화되어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만이 남는다.(p. 59)




이 책은 ‘술을 끊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금주’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리듬감 있는 문장과 위트 있는 언어로 쓰여진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인생에서 술이 빠지더라도 무채색에 재미라곤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무료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금주를 하게 되면 순간순간 느낄 수 있는 어떤 작은 행복, 희미하게 반짝이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다. 최대 행복이라고 느꼈던 술을 포기해야지만 찾을 수 있는 소소하지만 정확한 행복이라니. 그렇지만 우리 모두 알다시피 이 여유의 가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인생에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매일 즐겁게 생활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도 오늘 하루, 별로 즐겁지 않았다. 먹고 살 돈을 버느라 정신없이 지내는 바람에 나를 위한 시간이 단 1초도 없었다. 인간은 24시간을 하루로 살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 하루 중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나를 위한 시간에서 가장 손쉽고 간편하고 효율적인(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음주다. 그러나 우리들은 부당하게 권리를 빼앗긴 것이 아니다. 왜냐면 그런 권리는 애초부터 없었으니까. 법으로 행복 추구 권리를 인정받고 있지만 행복의 권리를 저절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p. 178)






『술은 잘못이 없다』의 저자 마치다 고는 시인, 가수, 배우까지 한 다재다능한 일본의 유명 작가다. 신인 때부터 각종 권위 있는 문학상을 휩쓸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상, 아쿠타가와상 등 각종 문학상을 모두 받으며 문학상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고 한다. 그의 글을 '술을 잘 마시는 작가'로서 아닌 '술 끊은 작가'로서는 처음 읽는 셈이다. 그것은 독자도 마찬가지다. 그가 문학상을 받은 예전 작품들은 독자도 술을 많이 마실 때 읽었고, 그가 술을 끊은 이후 읽은 이 에세이는 독자도 술을 끊었을 때니까. 억지로 맟추려니 조금 쑥스럽다.

저자의 글 중에 "인생이 즐겁지 않다고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말하라"고 주문한다. 괴로워서 술을 마신다고 변명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인 듯하다. 즐겁지 않은 삶을 조금이라도 즐겁게 하려고 술을 마신다는 것은 술을 마시려는 핑계에 불과하다고 일침을 가한 것이다. 이 말은 책의 제목 『술은 잘못이 없다』와 맥을 같이 한다. 자칫 술은 잘못이 없다란 표현이 '술은 마셔도 좋으니 많이 마시고 싶으면 마셔라'는 뜻으로 오해할까 저자가 제목의 원래 뜻을 오해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이유를 술에게서 찾으려는 술꾼들에게.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대개 핑계를 잘 댄다. 기분 좋아서, 고민이 있어서, 비가 와서 등등... 1년 365일 술을 마신다면 365개의 핑계를 댈 수 있다. 그래서 옛날 우리 문인들 중 한 분(정확히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은 '니까 술'이라 했다. 비가 오니까, 기분이 좋으니까, 괴로우니까 등의 이유를 잘 댄다고 해서다.



저자의 글 중에 이런 부분이 있다.

"금주, 단주라는 것은 늘 자신의 제정신과 미친 광기의 싸움이다. 금주를 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강압보다 자신의 힘으로 끊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인식 개조가 필요한데 자기애(自己愛)로부터 탈출하는 것이 첫 번째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술을 마시는 건 바르지 못한 생각이다."

이처럼 금주로 시작된 고민과 술에 대한 생각이 인간사에 대한 고민으로 확대된 것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술은 잘못이 없다란 표현이 어떤 뜻인지 정확하게 이젠 감이 잡힌다. 독자도 저자의 말에 100% 공감한다. 술꾼은 핑계를 잘 댄다는 말은 이미 기술했던 대로다. 회사에서 상사의 압력을 받을 땐 일 때문에, 집에서 아내의 바가지를 대할 땐 너 때문에, 날씨가 나빠 하늘을 욕할 때는 추워서... 이성적인 판단을 갖고 있을 땐 전혀 터무니없는 핑계들이다.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를 갖다 붙이는 것이다. 그러다 결국 밑천 떨어지면 술 때문에 술 마신다는 이유를 대기도 한다. 술이 무슨 잘못이

있기에. 아무리 미사여구를 사용해 핑계를 둘러대도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이지 않은 핑계는 술 마시지 않은 상태의 상대에게는 통할 리 없다. 결국 자기가 자신을 속일 뿐이다.





작가는 금주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술을 마시든 마시지 않든 인생은 쓸쓸하다’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더는 즐거움을 좇기 위해 술을 마시고, 그 술이 고스란히 부채로 남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화나는 일 투성이었던 고된 하루에 대한 보상으로 맥주를 먹겠다고 다짐하다가도, 그의 충고를 떠올리면 맥주 없이도 이 밤을 지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정신적 여유다. 다른 말로 하면 여백 정도라고나 할까. 놀이, 라고 해도 좋겠다. 지금까지는 그런 여유, 여백이 없었기 때문에 강한 자극을 목적으로 빠른 속도로, 그리고 최단거리로 가고 있었지만 여유, 여백이 생기면서 천천히, 가끔 멈추기도 하면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랬더니 그곳에 의외의 기쁨과 놀라움이 있었다. 꽃과 풀이 나 있고, 비 냄새가 나고, 사람의 사소한 표정 속에서 사랑과 슬픔이 보였다. 서둘러서 가면 못 보고 지나칠 것 같은 그런 것들이다. 그런데 그런 것이야말로 행복이라는 사실을 겨우 알게 되었다.(p. 277)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란 책을 펴낸 스님이 생각난다. 술을 멈추면 술꾼에게는 뭐가 보일까. 그렇다. 삶이 보인다. 세상이 보인다. 가족이 보이고 주위가 보이고, 결국 자기 자신이 보인다. 술 얘기에 느닷없이 스님의 책 제목을 끌어들이는 것은 불경스럽고 우습지만 독자가 술을 끊고 보니 주위의 삶이 보이고, 주위의 사람이 보이고, 결국 자신의 삶과 자신이 보이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은 그것이 술을 계속 안 마시는 원동력이 된다. 온전한 생활을 하는 힘이 되는 것이다.


저자 : 마치다 고(町田 康)


소설가, 시인, 가수, 배우. 1962년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마치다 마치조 町田 町?라는 이름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했으며 1981년에 펑크밴드 ‘INU’로 데뷔했고, 그 이후 배우로도 활약했다. 1992년 시집 《헌화供花》를 출간, 작가로 데뷔했다. 1996년 첫 소설 《굿슨다이코쿠くっすん大?》로 노마문예신인상을 수상했고, 2000년 두 번째 소설 《산산조각きれぎれ》으로 아쿠타가와상을, 2002년 《권현의 무희?現の踊り子》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상을, 2005년 대표작 《살인의 고백》으로 다니자키 준이치로상을, 2008년 《여관 순례宿屋めぐり》로 노마문예상을 수상했다.

이처럼 일본 최고의 문학상들을 휩쓸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초기 작품부터 독자적인 문체와 어법을 확립했으며 리듬감이 느껴지는 문장으로 인정받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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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포 매거진 POPOPO Magazine No.03 - IN IT TOGETHER
포포포 편집부 지음 / 포포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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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그리고 엄마로 살아가면서 느꼈던 고민들과 치열한 삶의 흔적들을 담아낸 책이다. 책을 펼친 다음에야 계절마다 정기적으로 발간하는 계간지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에는 여성지가 셀 수 없이 많다. 그 중 성공적인 잡지들은 수십 년 매월 발간하는 월간지가 대부분이다. 우리 문화나 정서에 월간지는 꽤 잘 들어맞는 모양이다. 그러나 계간지는 상황이 다르다. 문학지처럼 전문지나 계간지가 성격에 맞는 일부 사진 잡지는 계간지가 더 성공적 발전을 계속하지만 사업성은 떨어진다.

이 잡지는 Connecting People with Potential Possibilities 에서 3개의 PO를 딴 『POP{OPO magazine』을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이번이 세번째다.

책의 표지만 봐서는 무슨 디자인 잡지인가 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여성지, 여성, 패션, 육아 등을 다루는 여성들의 잡지라는 사실에 한 번 놀랐다.

책을 펼쳐든 순간에 놀라움이 반가움과 정다움으로 변한다. 기사 내용이나 사진, 편집 방식이 디자인 공부를 많이 해본 전문가 솜씨다. 친근감과 새로움을 향한 의지가 돋보인다.






기나긴 인생의 여정에 언제쯤 가시밭길이 끝날 지, 꽃길이 나오기는 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엄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해 나갈게. 누군가의 카피캣이 아니라 오롯이 너라는 꽃을 피울 수 있는 사람이 되렴.” 이 말을 전하기 위해 먼저 ‘엄마의 시간’을 기록하고 공유하려 합니다.

포포포에서는 한 권의 책을 테마로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01호의 테마로《오즈의 마법사》를 선택한 건, 엄마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삶의 여정을 빼닮았 기 때문입니다. 엄마이기 전에 역사를 가진 한 사람으로 새로운 걸음을 내딛는 전환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잡지 창간호에서 출판사 대표가 밝힌 말이다.

포포포는 태생적으로 엄마와 여성의 이야기를 담을 수밖에 없었다. 대표 정유미씨가 결혼과 출산, 육아로 단절된 경력 속에서 자신의 일을 찾아가는 과정 중에 탄생했기 때문이다. 주목할 점은 포포포가 단순히 육아와 경력 단절 여성의 서사를 나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자아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여성들을 돕는 실천적인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슷한 처지에 놓은 이야기를 통해 서로 감정적 위로와 동질감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서, 실제 삶의 공간에서 엄마, 여성, 일하는 여성들의 연대를 통해 그 결과물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정 대표는 포항의 이주민 여성들의 커리어를 위한 직접적인 지원을 시작으로 육아맘들이 만든 스타트업 기업과 협업하거나, 환경이나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고민과 해법을 함께 고민해오고 있다. 1, 2호에 이어 이번 3호에서도 크게 세 섹션으로 나뉘어 있다.




section 2 WE ARE ONE

주로 환경 문제를 다룬다. 이 섹션은 포포포를 접하며 가장 인상 깊게 본 부분이다. 육아에 전념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환경 문제를 위한 실천적 노력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각성하게 된다. 그래서 더 설득력을 갖고 이 책의 내용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게 된다.

이 섹션을 읽으며 그동안 잊고 있었던 환경 문제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하는 독자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도 마련해 주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환경 문제 또한 우리가 노력해 먹고 사는 문제만큼 당면하고 중요한 문제라는 점을 재인식하게 해준다. 이 섹션에 실린 몇 편의 글이 독자의 공감을 불러오고 실천하는 계기를 갖게 하는데 큰 힘이 되는 기사가 무척 마음에 든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에 더 경청하게 된다.




section 2 WE ARE ONE

주로 환경 문제를 다룬다. 이 섹션은 포포포를 접하며 가장 인상 깊게 본 부분이다. 육아에 전념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환경 문제를 위한 실천적 노력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각성하게 된다. 그래서 더 설득력을 갖고 이 책의 내용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게 된다.

이 섹션을 읽으며 그동안 잊고 있었던 환경 문제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하는 독자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도 마련해 주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환경 문제 또한 우리가 노력해 먹고 사는 문제만큼 당면하고 중요한 문제라는 점을 재인식하게 해준다. 이 섹션에 실린 몇 편의 글이 독자의 공감을 불러오고 실천하는 계기를 갖게 하는데 큰 힘이 되는 기사가 무척 마음에 든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에 더 경청하게 된다.






이런 실천적 노력 외에도 신선한 사고의 전환을 준 글이 있는데 바로 우간다의 지쿠소카 박사를 통해 본 사람과 동물 모두가 건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조명한 글이다. 지쿠소카 박사는 "코로나 같은 동물 매개 전염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며,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길은 먼저 동물들의 건강을 지켜주려는 우리들의 방역과 배려"라고 말한다.

이제껏 동물들이 인간에게 균을 옮긴다고만 생각했지, 인간이 동물의 건강을 위협하는 질병을 옮긴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마 인간 중심으로 모든 것을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자아 성찰을 하게 한다. 인간은 인간 이외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권리가 있으며 그래야 인간이 더 풍요롭고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 어쩌면 동물 매개 전염병도 동물의 생태계 안으로 너무 깊숙이 들어간 인간들의 오만함이 불러 온 것일지 모른다.




sectioon 3 CONNECTING THE DOTS

이 섹션에서는 각각의 고립된 점으로 존재하는 엄마들을 엮어내는 다양한 연대와 그 이야기들로 구성돼 있다. 결혼과 출산, 육아의 자리에 각자 떨어져 있는 여성들 내면에 존재하는 사회적 연결 욕구가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정점을 찍고 있다. '밤 10시 엄마들이 모여 무슨 얘기를 할까'라는 소제목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읽다가 여지없이 한 방 먹은 기분이다. 흔히 말하는 남편 흉보기, 여성들만의 성 이야기 등 뭐, 그런 걸 생각했다가 낯을 붉히는 일이 됐다. 비록 모니터 앞에서 온라인으로 만나는 자리라 할지라도 그곳에 앉아서 함께 울고 웃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코로나 정국에서 더 없이 좋은 만남과 소통의 장이 아닌가.

이젠 그녀들이 밤 10시 만나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누군가와 소통했다는 만족감일 것이다.

그 이야기들 중 11명의 여성 공저로 만들어진 두 권의 책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 『당신의 섹스는 평등한가요?』를 펴낸 페이스북 커뮤니티 부너미(페미니스트 탐구 모임)를 보며, 함께 읽고 쓰며 그 안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나누는 그녀들의 이야기에 부럽기만 했다. 코로나가 터지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블로그 이웃들과 서로 댓글만 달아도 참 기분이 좋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의 주제를 놓고 긴 시간 함께 씨름한 것들을 책으로 엮어냈으니 그 끈끈함과 뿌듯함이 얼마나 클까. 포포포는 각자의 자리에서 분출하지 못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 수많은 엄마들이 느슨한 연대를 통해 만들어지는 시너지에 주목한다. 그 시너지가 얼마나 강력한지 그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렌다.




독자도 이제 좀 더 나아가 내가 할 수 있는 일,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면서도 내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 경제적 가치에 온 힘을 쏟지도 않을 것이고, 공유적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하는 일, 더 나아가 우리 모두 함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나가는 일을 찾아나설 것이다.

누군가는 팔자 좋은 고민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포포포에서 만난 많은 필자와 인터뷰 상대자들이 이미 그 길을 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지금은 알 수 없는 그 일이 내가 좋아하는 일과 연결된다면 또 어떨까 이런저런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고민과 꿈의 경계에서 자아를 찾아보기로 결심한 나에게 내가 꾸는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거라 말하는 『POPOPO magazine』 No.3를 만난 것이 참 감사한 일이다. 삶의 전환점을 맞이한 느낌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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