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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만지다 - 삶이 물리학을 만나는 순간들
권재술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9월
평점 :
‘물리학’ 단어만 들어도 어렵고 멀게 느껴진다. 학교 다닐 때부터 사회 생활을 하면서도 줄곧 그래왔다. 살아가면서도 그 어려운 물리가 적용할 곳은 별로 없어 보였다. 몰라서 적용할 생각을 못했는지는 사회 생활 한참 후에 살면서 다가온 물건의 특성을 이용해야 삶이 편리하다는 것을 인식하고서부터다. 예를 들면 물건에 충격을 가할 때 물건이 받는 충격은 f=ma란 가장 간단한 공식이 적용된다는 것을 알아채는 것이다.
수많은 경험으로 저절로 터득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 공식을 이때 적용할 생각을 했다면 바로 어느 정도 충격을 줘야 물건이 부숴지는가를 쉽게 알 수 있는 식이다. 물리를 공부한 이유는 커리큘럼에 들어가 있고 대학입시를 위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물리학이 우리 삶에 적용될지는 생각지 못했다. 물리학은 딱딱하고 냉철한 이성과 과학적 이해, 과학의 응용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하는 학문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우연히 격물치지(格物致知)란 말을 어느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이 단어는 중국 사서(四書)의 하나인 《대학(大學)》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사물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여(격물) 지식을 넓히는 것(치지)을 이른다.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8조목으로 된 내용 중, 처음 두 조목을 가리킨다. 이 말은 본래의 뜻이 밝혀지지 않아 후세에 그 해석을 놓고 여러 학파(學派)가 생겨났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주자학파(朱子學派: 程伊川 ·朱熹)와 양명학파(陽明學派: 陸象山 ·王陽明)이다.
주자는 격(格)을 이른다[至]는 뜻으로 해석하여 모든 사물의 이치(理致)를 끝까지 파고 들어가면 앎에 이른다[致知]고 하는, 이른바 성즉리설(性卽理說)을 확립하였고, 왕양명은 사람의 참다운 양지(良知)를 얻기 위해서는 사람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물욕(物欲)을 물리쳐야 한다고 주장하여, 격을 물리친다는 뜻으로 풀이한 심즉리설(心卽理說)을 확립하였다.
즉, 주자의 격물치지가 지식 위주인 것에 반해 왕양명은 도덕적 실천을 중시하고 있어 오늘날 주자학을 이학(理學)이라 하고, 양명학을 심학(心學)이라고도 한다.[두산백과]
그냥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의 말로는 물건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고 지식(이성)이 필요한지, 마음(감성)이 필요한지에 대해 서로 다른 주장이다. 사물의 이치나 특성을 연구하는데 그렇게까지 하는 건 역시 학자들의 몫이다. 더욱이 사전에도 한자와 굉장히 어려운 말로 써 있어 정확하게 알기에는 지식이 짧아 낮은 단계의 이해에 머물렀다. 더욱이 삶에 별 필요가 없어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그래도 우주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더욱이 물리학의 세계적 석학들이 하나의 정답을 알아가는 과정을 칠판 위에 공식을 적어놓은 것을 보고는 우리와는 다른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이라고 애써 외면하기도 했다. 그저 천재나 아는 것이라고.
더욱이 물리학은 문학이나 예술과는 거리가 먼, 어쩌면 정반대의 개념이라고까지 생각했다. 보는 것, 인식, 이해, 입증 등이 과학의 영역에서 이뤄지고 보이지 않은 것, 감성, 감각적 수용이 필요한 예술과는 정반대의 세계라는 인식이었다. 이 책 『우주를 만지다』의 권재술 저자는 이러한 독자의 인식을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시선으로 우주를 이야기하면서 우주에 대한 이해를 감각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이 책은 지구의 모든 모래알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세밀하고 작은 원자 단계의 미시세계부터 감히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우주 너머의 거시세계까지, 우리가 발을 딛고 살고 있는 세상을 물리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과학 에세이다. 독자들의 지적호기심을 자극하는 과학 이야기뿐만 아니라 노(老)물리학자의 연륜이 담긴 인생에 대한 고찰, 모든 이야기의 끝에 배치된 짧고 인상적인 시편으로 감성까지 이끌어낸다.
그래서인지 무한한 우주 세계에 관한 탐구로 호기심을, 또 머나먼 우주를 우리의 삶과 연결 짓는 시로 문학성을 동시에 잡은 『우주를 만지다』는 TVN 「알쓸신잡」의 과학박사 김상욱 교수부터 『시간을 파는 상점』 김선영 소설가, 유성호 문학평론가, 『오렌지 기하학』 함기석 시인 등 분야를 아우르는 인사들의 극찬을 받았다고 출판사는 소개하고 추천사를 책에 실었다. 과학으로부터 전해지는 문학적 감동이라니, 불가능할 것만 같은 두 분야의 조화를 성공적으로 빚어낸 저자의 '우주도자기'를 만져보려는 독자들은 이 책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과학과 문학이라는 별미 같은 조화 속을 유영하다(책을 읽다) 보면 막연히 어렵게만 느껴졌던 물리학과 우주라는 매력에 빠져들며 인생을, 또 삶을 돌아보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믿는다.
『우주를 만지다』는 4개의 장으로 구성돼 이해하기 쉬운 말로 우리가 '알아야 할 우주'의 세계를 설명한다. 키워드로 보자면 별, 원자, 신, 시간 등 4개이다.
1장 별 하나 나 하나
2장 원자들의 춤
3장 신의 주사위 놀이
4장 시간여행
개기일식, 외계인, 상대성이론, 슈뢰딩거의 고양이 등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아직 낯설기도 한 물리학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냈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었던 상식이 180도 뒤집어질 수도 있고, 눈앞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세상을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히기를,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과학자 수준의 지식을 얻기보다는 그저 과학자들이 느끼는 자연과 우주의 감동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길 바랐으며, 우주에 대한 전문가가 되기보다는 그저 부담 없이 우주를 만지고 우주와 놀면서 더 풍요롭고 즐거운 인생을 만들어가길 바랐을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과학이라는 분야가 막연히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막상 이 책의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과학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지구와 우주의 경계처럼 모호해지고 끝내 허물어지게 될 것이다. 행여 당신이 ‘과학 문외한’이더라도 상관없다. 이 책을 덮는 순간 당신의 입에서는 “과학이 이렇게 쉽다니, 심지어 재미있기까지?!”라는 말이 절로 터져 나온다.
지금처럼 모두의 삶이 힘들 때, 당장의 현실이 막막할 때 오히려 머나먼 곳으로 눈을 돌려 보는 건 어떨까? 하루하루 힐링이 간절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저 멀리에 있는 우주인지도 모른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시간에 펼치는 『우주를 만지다』는 독자들에게 드넓은 우주를 배우며 우리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책에 따르면 우주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을 설명하는 이론까지 재미있게 읽힌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이 모든 이야기가 결국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지구를 알기 위해, 또 우리의 삶을 알기 위해 우주로 떠나는 시간을 기꺼이 마주해 보자. 빛나는 별과 원자들의 춤, 차원을 넘나드는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를 지켜보고 있으면 현실로 인해 지쳐 있던 마음속에도 물리학의 즐거움이 서서히 떠오를 것이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인 프록시마 센타우리(Proxima Centauri)는 약 4광년 떨어져 있다. 1광년이란 빛이 1년 동안 가야 하는 거리다. 빛은 1초에 지구 7바퀴 반이나 되는 거리를 갈 수 있고, 1억 5,000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태양까지도 8분이면 갈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빛으로 한 시간도 아니고, 하루도 아니고, 한 달도 아니고, 1년도 아니고 4년을 가야 한다니. 얼마나 멀리 있는가? 그래도 이것이 가장 가까운 별이고 대부분은 이보다 어마어마하게 더 멀리 있다. (…)
여러분은 상상이 가는가? 하늘 저 멀리 아득히 수억 광년, 아니 수백억 광년에 걸쳐 있는 별들을 상상해보라. 우주는 얼마나 광활한가? 여러분은 우주가 어마어마하게 크다고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우주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어마어마한 것보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더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주여행? 100년도 채 살지 못하는 인간이 감히 몇억 년의 여행을? 그래도 인간은 그 꿈을 꾸고 있다.(pp. 19~21)
대기는 분자들의 여관방이다. 그 여관방에는 종류와 관계없이 한 방에 한 분자만 들어간다. 분자의 크기나 질량을 따지지 않는다. 여관방이 손님의 키나 몸무게를 따지지 않듯이 분자들의 여관방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인간들의 여관방인 고급 호텔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돈이 있어야 하고 사회적 지위도 높아야 할지 모른다. 인간들의 여관방에는 차별이 있다. 하지만 분자들의 여관방은 출신 성분을 따지지 않는다. 인간들의 여관방과는 달리 아무런 차별이 없다. 자연은 인간보다 더 공평하다. 자연에서 배워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p. 137)
빛이 직선으로 나아가고, 무엇에 부딪히면 반사를 하고, 유리나 물을 통과할 때 굴절하는 것을 본 뉴턴은 빛을 입자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빛은 장애물이 있으면 돌아서 가고, 두 빛이 서로 만나면 간섭을 해서 무지개와 같은 색깔이 나타난다. 이런 현상은 빛이 파동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맥스웰에 의해서 빛이 전자기파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빛이 파동이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하지만 빛은 그렇게 쉽게 자기의 정체를 드러내는 호락호락한 존재는 아니었나 보다. 빛을 금속에 비추면 금속에서 전자가 튀어나온다. 이 현상을 광전효과(photoelectric effect)라고 한다. 아인슈타인은 빛이 입자라는 가설로 광전효과를 성공적으로 설명했다. 이 공로로 그는 노벨상을 받았다.
빛은 회절하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파동인데 또 광전효과를 일으키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입자다. 그러면 도대체 빛은 입자란 말인가 파동이란 말인가? (…)
빛은 파동도 아니고 입자도 아니다. 빛은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간단한 존재가 아니다. 도를 도라고 하면 이미 도가 아니듯이(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빛도 파동이라고 하면 이미 파동이 아니고 입자라고 하면 이미 입자가 아니다.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존재, 그것이 빛이다.(pp. 156~158)
양자중첩을 좀 더 확장해서 인생사에 적용해볼 수도 있다. 미래에 내가 성공한 사람이 될지 실패할 사람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양자역학적으로 보면, 현재의 나는 성공과 실패가 중첩된 상태로 존재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실패나 성공 둘 중의 하나가 현실이 될 것이다. 모든 미래는 양자중첩 상태다. 시간이 흐르면 이 중첩 상태 중 어느 한 상태가 현실이 될 것이다. 내가 수만 번 환생한다면 실패한 나와 성공한 내가 반반으로 나올지 모른다.
우리는 진실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진실은 O 아니면 X라고 믿는다.
하지만 진실은 그렇게 흑과 백으로 분명하게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진실은 오히려 중첩적이고 모호하다. 이 모호함이 진실의 오묘함이 아닐까?(p. 178)
자연과학책이지만 감성적인 '시(詩)'가 함께 담겨 있다.
그 중 기억에 새로운 것 중 하나인 <암흑물질> 이라는 시는 읽고나면 첫사랑이 생각나는 순수하고 감성적인 내용이다.
암흑물질을 이용하여 감성적인 시를 담은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과 암흑물질의 상관 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칼 세이건은 '지구는 우주에 떠 있는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했다. 독자도 TV를 보면서 우주를 향하고 있던 보이저 1호에게 긴급 메시지를 보내 보이저 1호의 카메라의 방향을 지구로 돌려보니 아주 작은 푸른 점으로 보이는 장면에 굉장히 놀란 기억이 있다.
"저 작은 점에 수백억~수천억, 아니 어쩌면 더 많은 생명이 살고 있다니..."라고 생각했다. 그 중 하나인 내 생명은 보잘 것 없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과 함께였다. 이 책에서도 그 얘기가 나오니 반갑다. 사막을 헤매는데 길을 잘 아는 사람을 만나는 느낌이다.
저자는 우주탐험의 종착점은 우주가 아니고 지구라고 말한다. 지구를 알기 위해서 지구를 떠나는 것이라고.. 정말 멋진 말이다.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모두 물체가 왜 떨어지는지 잘 설명하지만, 빛에 대해서 두 이론은 우열이 갈린다. 뉴턴의 중력 이론에 따르면 빛은 질량이 없으므로 중력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빛은 중력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지구나 태양에 의해서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별 주위에 공간이 휘어져 있으므로 질량이 없는 빛이라도 휘어져야 한다. 아인슈타인의 이런 주장은 매우 놀라운 것이었으나 영국의 천문학자 에딩턴에 의해서 실제로 빛이 태양의 중력에 의해서 휘어진다는 것이 관측되었다. 공간이 휘어져 있다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이로써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은 증명이 되었고, 아인슈타인은 일약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휘어진 공간은 눈으로 볼 수 없다. 오직 마음으로만 볼 수 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던가?
우리가 사는 공간은 휘어져 있지만 그 휘어져 있음을 우리는 볼 수 없다. 논리적 결론이지만 실험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결론이다. 진실은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고 감추어져 있다.(pp. 287~288)
눈으로 보는것이 전부가 아니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도 역시 당연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또 아무것도 모르고 살기에는 이 세상이 너무 흥미롭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재미 있는 이야기들을 알고 싶고 듣고 싶다. 그것이 인간 탐구면 예술이고, 우주 탐험이면 과학이다. 이 책은 예술과 과학이 서로 다른 듯하지만 공통점이 많다는 것과,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소중한 책이다. 우주를 설명하면서 시를 접목시켰다는 이유에서가 아니다. 인간 탐구든 우주탐험이든 시발점과 종착역은 인간이고 우리가 사는 지구다. 때문에 두 분야는 연결 가능성이 있다. 독자의 오판인지 모르지만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책을 읽을수록 그 생각은 깊어진다.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
스위스의 화가 파울 쿨레(Paul Klee)의 말이다. 독자가 이 말을 읽었을 때 크게 공감해서 외워두었던 덕분에 여기에 쓴다. 우주 탐험 역시 이 책에서 느낀 점은 시발점이나 종착역 역시 모두 우리가 사는 지구다. 그런 점에서 독자는 예술과 과학이 정반대의 분야로 남는 게 아니라 연결된 분야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물리적인 별을 보는 사람의 시각과 예술적 감각으로 별을 보는 사람의 시선의 연결 선상에 무엇이 있을까. 표현과 수행 과정만 다를 뿐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욕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독자는 믿는다. 예술은 현실을 상상화시키고 과학은 상상을 현실화시킨다.
저자 : 권재술
저자 권재술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물리교육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과학교육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교원대학교 물리교육과 교수, 한국교원대학교 총장으로 재임했으며, 한국과학교육학회 회장, 한국물리학회 물리교육분과 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대학에서는 과학교육론과 상대론을 강의했으며, 초·중등 과학 및 물리 교과서를 다수 집필하였다. 대표 저서로는 『과학교육론』(공저)과 『우리가 보는 세상은 진실한가』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