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바다로
나카가미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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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현대문학의 이단아 나카가미 겐지(1946~1992)는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비교적 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인 열여덟 살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일본 문단의 대단한 주목을 받으며 일본의 문학상을 휩쓸 정도로 역량 있는 작가로 떠올랐다. 그가 문단에 데뷔하기 전부터 쓴 단편소설의 면모를 살펴보면 '고뇌하는 젊음'이 담겨 있다.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일본 사회 분위기에 대한 젊은이의 반항적 고뇌나 행동들은 숨 죽인 일본 사회에 경각심을 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적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그가 자신의 눈으로 본 친구, 가족의 죽음, 어른의 외도, 첫사랑, 첫 경험의 기억들이 파편처럼 펼쳐져 있다. 이 시기 한 남자의 머릿속엔 온통 '집착에 가까운 성욕'이 지배한다. 그러나 글은 외설스럽지 않다. 이단아 취급을 했지만 문장은 좋았다는 평가였나 보다. 문체가 뒤죽박죽이라고 혹평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마치 춤을 추듯 생생함이 느껴진다고 호평도 많았다고 한다. 젊은 작가는 눈에 보이는 것을 생생하게 되살려 내는 재주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 시기에 작가가 쓴 단편소설 모음집인 이 책 『18세, 바다로』를 지금 읽어도 신예 작가의 신선함과 패기가 돋보인다.



술과 재즈, 주체할 수 없는 성욕,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분노, 편협해지고 무감각해지는 사회 속으로의 동화가 두려워 자꾸만 뒤돌아 도망쳐버리고 싶어지는 젊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 단편집을 독자도 처음 읽는다. 글만 처음 보는 게 아니라 이 반항적인 작가를 사후(1992년 졸)에도 몰랐으니 일본 문학에 문외한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구태여 변명하자면 일본 문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추리소설 때문이었고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걸출한 작가는 다른 작가를 굳이 찾지 않아도 될 만큼 독자를 매혹시켰다.

이 책에 실린 7편의 단편들을 읽으며 독자의 20대 때를 떠올려보고 작품에 몰입되면서 '반항아'라는 문단의 평을 이해할 수 있다. 정치 사회적으로(일본도 그랬겠지만) 우리나라는 만만찮게 혼란스럽고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독자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경제 활동에 뛰어들어야 했고 사회나 국가를 위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뒷전이었다. 그렇다고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감과 새 시대를 위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마저 외면하진 않았다. 아무튼 이 소설들을 읽으면서 작가와 작품 주인공들의 심리를 충분히 이해가 된다. 또 주인공들의 자유와 방황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지만 그 속에서 순수함을 벗어버리는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혼란과 정제될 수 없었던 내적 고통이란 감정이 비슷하게 전해져 왔다.



전후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젊음이 비틀린 것인지, 그 나이의 젊음이 원래 그런 것인데 사회적 분위기가 부추긴 건지는 중요하지 않다. 반항이 광기처럼 휘몰아치는 젊음의 정신적 배출구가 없을 땐 극한 상황에 이른 인간은 대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함께 멱을 감던 친구의 죽음, 배다른 이복형이 정신질환에 시달리다 자살해버린 이야기, 아픈 엄마 몰래 내연녀를 두고 있었던 아버지, 학교에서 벌어지는 데모 때문에 학교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만족감을 느끼며 섹스에 몰입하는 주인공, 담배와 수면제, 진통제에 취해사는 젊은 친구와 여자친구의 동반자살, 합의되지 않은 첫 경험 등 되돌아보면 무척 우울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약간은 기괴하고 심하게 우울한 이야기가 소재들이다. 재즈와 약, 술, 성욕에 집착하는 일들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지금은 나이가 훨씬 들어 사회와 나의 관계나 인생관, 가치관이 확고한 상태에서 받는 느낌은 약간 다르지만 당시의 젊음의 입장에서는 본능적인 것만 몰두하게 되는 주인공들의 행동에 공감이 되기도 한다. 작가는 주인공들을 통해 전후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의 그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의 자포자기한 심리를 꾸짖었는지 모르지만 독자들은 '공범 의식'으로 크게 공감했을 거란 추측도 어렵지 않다.



출판사측에 따르면 나카가미 겐지는 일찍 세상을 떠나 그 작품 세계를 완전히 꽃피우지는 못했지만, 살아 있는 동안 압도적이고 강력한 작품 활동을 했다. 1974년, 사생아로 태어난 주인공의 복잡하게 얽힌 가족 관계와 고향의 강렬한 토속성을 소재로 쓴 「곶」을 발표, 이듬해에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그는 문단의 이단아이자 아이돌 같은 존재로 부상한다. 한국을 사랑해서 서울 이야기 글을 쓰기도 했다고. 나카가미 겐지가 쓴 초기 작품들 때문에 '일본 현대 문학의 이단아'라고 불리우기까지 했다. 그의 작품 세계를 다 펼치기도 전에 아쉽게도 고인이 되었다고 한다.

'초기 작품'만이 가질 수 있는 거칠고도 강렬한 색채에 대한 기대감이 컸는데 그보다 18살의 높게 밀어붙이는 파도처럼 솔직한 욕구분출을 글자 그대로 토해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휩쓸리고 쓸려가고 밀려가는 감정의 기복 또한 날것처럼 녹아 있다.

이 책 『18세, 바다로』는 그 이전, 그가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고향을 떠나 도쿄에 올라왔음에도 입시는 치르지 않고 문학과 재즈와 술에 탐닉하는 한편,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로 넘어가는 시대적 고뇌를 부둥켜안은 상태에서 동인지와 문학지에 시와 에세이를 발표하던 시절에 쓴 단편들을 묶은 소설집이다. 그야말로 작가의 문학 세계의 태동을 알리는 초기 작품들이기에 소중한 가치를 지니는 작품들인 것이다.



「18세」 1965년에 발표된 비틀스의 ‘미쉘’ 가사로 시작되는 이 단편은, ‘미쉘’의 가사와는 달리 조금도 조화롭지 못하다. 현재의 나른함과 과거 어린 시절의 위태로움과 죽음에의 공포가 교차하는가 하면, 모순과 거짓말로 치장된 어른들의 세계를 향한 저항의 외침과 ‘무슨 짓을 해봐야, 착하게 굴어봐야 소용없다’는 젊음의 무력감으로 낮게 가라앉아 있다.

「JAZZ」 끝없이 빠져드는 늪 같은 재즈에 몸을 맡기고 건강한 몽상에 젖는 젊은이들의 초상을 그린, 산문시에 가까운 작품이다. 재즈의 선율을 따라 미친 듯이 춤추는 언어는 이해해야 할 것이 아니라 감응해야 하는 것으로 존재한다.

「다카오와 미쓰코」 유일하게 스토리가 있는 작품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수면제에 절어 사는 다카오는 돈이 떨어지자 미쓰코와 ‘동반자살미수업’이란 일을 해서 돈을 벌려고 한다. 그러나 그 끝은 말 그대로 ‘동반자살’이었다. 작품 안에서 제시되는 ‘블랙 유머’ 같은 아이러니한 죽음이 화자인 젊은 보스를 짓누른다.

「사랑 같은」 스물한 살 대학생의 일상에 파고든 강박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가 ‘황금 손가락’으로 구현된다. 학교가 데모에 휩싸여 학생으로서의 일상은 무너졌는데, 굳이 문 닫힌 학교에 오가면서 일상의 굳건함을 믿으려는 주인공의 사유가 장황하게 연출되다, 그토록 강박적으로 수용하려 했던 ‘황금 손가락’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한낱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반전의 해학성에 화자는 눈물까지 흘리며 킬킬 웃는다.



「불만족」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배경으로 정처 없이 걸어가는 나의 독백과 다른 나인 ‘나’와의 대화로 구성된다. 나는 ‘나’를 주인공으로 해학적이고, 비 내리는 아침 같은 하얀 색채를 지닌, 저항으로 가득한 소설을 쓰려는가? 하고 자문하지만, 빗소리에 섞여 ‘언어는 무의미하다’는 중얼거림이 낮게 깔린다.

「잠의 나날」 불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온 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불 축제는 어엿한 사내가 되기 위한 통과의례 같은, 남자들의 축제다. ‘충분히 분별력 있는 어른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년도 아닌 스물세 살’의 나는 고향을 떠나기 전에 제 손으로 목숨을 끊은 형의 죽음을 재연하면서, 형을 증오하고 그의 죽음에 안도했던 열두 살 당시의 거짓 없는 감정과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았던 열여덟 살 때의 자신을 반추한다.

「바다로」 바다 앞에 무릎 꿇은 나는, 원점이며 피이며 광기이며 유일한 타자인 바다, 나 자신인 바다와의 거대한 합일을 이루고 정화된다. 작가의 내발적인 힘과 시대 사조와의 다툼이, 이 「바다로」라는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다툼의 소리가 순수하게 울리는 점이 「바다로」의 매력일 것이다.



저자 : 나카가미 겐지


1946∼1992. 일본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 와카야마현에서 태어나 복잡한 가정에서 자랐다. 《문예수도》 동인으로 생계를 꾸려가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76년 「곶」으로 제74회 아쿠타가와상을, 1977년 『고목탄』으로 마이니치 출판문화상과 예술선장 신인상을 받았다. 작품으로 장편 『땅의 끝, 지상의 시간』 『봉선화』 『기적』 『찬가』, 소설집 『열아홉 살의 지도』 『화장』 『중력의 도시』 『천년의 유락』 등이 있다.

나카가미 겐지는 「서울 이야기」라는 중편소설을 쓸 만큼 한국에 각별히 관심이 있어 6개월가량 한국에 머물며 글을 쓰기도 했고, 윤흥길의 작품에 반해 그의 소설을 일본과 해외에 소개하기도 했다. 『18세, 바다로』는 나카가미 겐지가 열여덟 살에서 스물세 살 때까지 쓴 ‘너무도 잔혹한 젊음’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 소설집에 수록된 〈다카오와 미쓰코〉는 1979년 〈18세, 바다로〉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역자 : 김난주


일본문학 전문번역가.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수료했다. 1987년 쇼와여자대학에서 일본 근대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오오츠마여자대학과 도쿄대학에서 일본 근대문학을 연구했다. 옮긴 책으로 『다시, 만나다』 『당신의 진짜 인생은』 『아주 긴 변명』 『인어가 잠든 집』 『태엽 감는 새 연대기1,2,3』 『서커스 나이트』 『저물 듯 저물지 않는』 『무코다 이발소』 『목숨을 팝니다』 『바다의 뚜껑』 『겐지 이야기』 『박사가 사랑한 수식』 『반짝반짝 빛나는』 『키친』 『냉정과 열정 사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여름의 재단』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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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던 대로 살 수 없는 시간 -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미라클 에너지
안시호 지음 / 명진서가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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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살면서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미 상황은 벌어졌고 하루 이틀 사이에 끝날 일이 아니어서 힘겨운 삶의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곧 다가올 포스트 코로나 시대.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이르면 내년 초, 늦어도 내년 말까지는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가 생산된다면 우린 다시 예전의 일상을 되찾고 싶어한다. 그러나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렵다는 것 또한 전문가나 의사들의 예견을 믿어야 할 상황이다. 코로나로부터의 공포는 벗어나더라도 완전한 예전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긴 기간 코로나와 투쟁하면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 등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각종 병증을 호소하고 있다. 이에 이 책 『살던 대로 살 수 없는 시간』의 안시호 저자가 삶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우울증에 허우적거리지 않으려면 새로운 차원의 자기계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자기계발의 범주는 넓다. 그러나 모든 것은 ‘지, 정, 의’ 영역 안에 있다"며 "지식 계발, 감정(감성)계발, 의지 계발이 필요하다"는 점을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곧 AI 시대이고, 사람이 점점 필요 없어지는 시대이니 존재감을 잃어 우울할 수밖에 없는 시대다.

이와 같은 시대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자기계발은 ‘영성의 계발‘이다. 하지만 우리의 영성은 인스타그램 비활성화 계정처럼 대부분 비활성화 상태다. 어떤 이에게는 영성이라는 단어조차 매우 낯설 수 있다. 동양과 서양의 정서를 통합해서 영성을 정의해보면 다음과 같다.

영성이란 인간에게 생명력과 같이 내재된 능력이다. 내재되었다는 것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따라서 계발되지 않으면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한다. 영성이란 한 개인을 우주와 연결시켜주는 우주적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해온 대로 생각할 수 없고, 살던 대로 살 수 없는 시대다. 변화의 낙폭이 크다. 그동안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길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다. 우리에게 영성의 활성화가 필요한 이유는 나를 지켜주는 에너지를 얻는 가장 안전한 길이기 때문이다. ’영성이 활성화되면 뭐가 좋냐?‘고 묻는 질문에 대해 다음 두 가지를 먼저 답한다. 첫째, AI가 넘볼 수 없는 단 하나의 능력, 메타 인지 기능의 활성화 둘째, 변화의 낙폭이 큰 현실에서 오는 필연적인 우울증을 방어하고 치유하는 에너지의 생성이다.





『살던 대로 살 수 없는 시간』은 밀리언셀러를 비롯해 수많은 히트작을 펴냈던 출판기획자이며 동서양의 통합된 영성 분야를 탐구해 온 저자가 ‘코로나 19’로 인해 우울한 일상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영성의 계발을 통해 우울을 극복하는 새로운 에너지를 얻자는 제안과 함께 그 기초적 방법을 알기 쉽게 안내한 책이다.

한때 건강 상실과 사업 실패로 좌절을 맛보았던 저자는 우울증이나 공황장애와 같은 마음의 병까지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 영성의 계발 즉, 영성을 활성화시키는 과정을 통해 마음의 병을 방어하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저자는 ‘생각해온 대로 생각할 수 없고, 살던 대로 살 수 없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는 그동안 접어두었던 영성의 계발을 통한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제안하며, 영성 분야의 큐레이터가 되기를 자처한다. 우리 모두에게 영성은 있지만, 인스타그램 비활성화 계정처럼 대부분 비활성화 상태이고, 우리에게 우울이 찾아 오는 이유는 삶에 필요한 에너지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좋을 것 없는 이 불편한 시간을, 자신을 지키며 무사히 건너기 위해선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한 데 그 에너지는 자신의 몸과 영을 소홀히 하지 않는 자기돌봄에서 비롯된다.



저자는 어린 시절 절친의 할아버지였던 한국의 대표적 영성가 다석 유영모 선생과의 만남을 계기로 처음 영성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출판계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동양과 서양의 영성을 통합하려 시도한 틱낫한 스님과 인연을 맺거나 토머스 머튼 신부와 같은 대표적인 영성가들의 삶과 사상을 공부하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 책에는 저자가 이들을 탐구하면서 얻은 깨달음 외에도 내려놓음을 통한 영성의 활성화로 30억이라는 큰 빚을 갚을 수 있게 되거나, 말기암을 치유하거나, 잃었던 마음의 평화를 되찾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영성의 계발을 통해 자기돌봄으로 가는 가장 안전한 길을 안내한다. 인본주의 심리학자 칼 로저스의 ‘따뜻한 거절법’과 토머스 고든이 제시한 소통의 기술인 ‘나-전달법’, 크리스틴 네프의 ‘자기자비’ 개념 등을 다양한 사례와 함께 소개하며 ‘영성 계발’과 ‘자기돌봄’에 필요한 일상적인 요소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또한 저자가 단절되었던 신과의 관계를 가깝게 회복하기 위해 체험했던 관상기도 실천법과 틱낫한 스님으로부터 배운 호흡법과 같은 영성 계발의 기초를 가장 쉽게 안내한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변화의 낙폭이 큰 세상에서는, 단절되었던 신(=우주적 에너지)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연결시키는 영성의 활성화가 있어야만 근원적 불안 속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4차 산업 시대로 빠르게 진입하면 사회적 혼란도 예상된다. 누구나 알고 있는 대량 실업 사태가 대비도 없이 갑자기 닥칠 수도 있고, 경제 활동 수의 감소로 산업 활동이 위축되면 국가의 재정 상태로는 국민의 안전, 재산을 지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도 가중될 것이다. 21세기를 살면서 15세기 이전의 생활을 하라면 혼란 뿐만 아니라 어떤 예견치 못할 상황으로 치달을지도 모른다.

4차 산업시대로의 진입도 시간을 두고 서서히 진행돼야 이에 대비하고 순조롭게 진행되지만 급격히 이루어진다면 4차 산업을 대비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계층간 벽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정보나 시스템 이용이 가능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종속시킬 수도 있고, 사회 소외계층도 급격하게 늘어날 수 있다. 코로나 자체와의 힘겨운 싸움을 끝내도 또 다른 사회로의 급격한 변혁이 이루어진다면 혼란은 불보듯 뻔한 일 아닌가. 저자는 우울증이나 혼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차원의 자기계발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독자는 저자의 이 같은 주장에 크게 공감하고 동의한다. 명상을 쭉 해온 독자로서는 명상이나 호흡이 정신 건강에 미치는 것이 얼마나 큰 지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로저스가 말한 ‘인간은 자기의 가능성을 무한히 실현해 가는 자’라는 정의는 우리 모두가 자신의 삶에서 구현하고 싶은 개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경쟁에서 승리하고 싶어 하고 돈을 많이 벌고자 합니다. 인간이 자기의 가능성을 무한히 실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척도는 역시 부와 성공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은 거기서 ‘삑사리’를 냅니다. ‘인간은 자기의 가능성을 무한히 실현해 가는 자’일 때의 인간은 그냥 인간이 아니라 자신의 ‘영성’을 자각하며 사는 인간입니다. 우리는 주어진 인생을 따뜻한 사람으로 살다갈 가능성을 품고 출발합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따뜻함보다는 차가움이 많은 인생을 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이 영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않고 사는 데다, 자각하는 것조차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쏟아지는 햇살과 같은 마음」 중에서


우리 몸에는 늘 긴장과 불안과 갈등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숨을 들이마시면 그러한 자신의 몸에 대해 차분히 알아차리게 됩니다. 하지만 내 몸에 미소를 보내면 곧 평안해집니다. 엄마가 아기를 안듯이 주의를 집중해서 숨으로 몸을 껴안습니다. 숨을 들이마실 때 내 몸은 평안해집니다. 이것이 따뜻함이고 사랑입니다. 숨을 내쉴 때 내 안에 따뜻함이 있으니 마음이 놓입니다. 주의를 집중하여 숨으로 몸을 껴안습니다. 곧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나를 따뜻한 사람으로 만드는 호흡법」 중에서




저자 : 안시호


밀리언셀러 기획자 겸 영성 큐레이터. 1990년대 출판계에 입문해 북 프로듀서로서 오랜 경력을 쌓은 우리나라 대중서 분야의 손꼽히는 기획자이다. 밀리언셀러가 된 틱낫한 스님의 《화anger》를 출간하고 세계인의 영적 스승인 틱낫한 스님을 한국에 초청하여 대중들에게 명상 문화를 전파하였다.

삼성 창업자 이병철 회장이 죽기 직전에 품었던 영성적 질문 24가지를 모티브로 한 차동엽 신부의 화제작 《잊혀진 질문》을 프로듀싱하였으며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의 《과학자의 서재》, 《통섭의 식탁》, 인기 강사 김미경의 대중적 인지도를 높여준 베스트셀러 《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 각자의 감정을 이입해 그림 보는 방법을 제시한 콘셉트로 히트작이 된 한젬마의 《그림 읽어주는 여자》, 170만부를 판매한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 15권 등 20년 넘는 시간 동안 많은 히트작을 기획하고 프로듀싱하였다.

어릴 적 절친의 할아버지인 한국의 대표적 영성가 다석 유영모 선생을 만나 그의 사상에 영향을 받고 세계인의 영적 스승 틱낫한 스님과 인연을 맺어 서양의 영성과 동양의 영성이 통합되는 지점을 탐구해 왔다.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곧 AI 시대이고, 사람이 점점 필요 없어지는 시대이니 존재감을 잃어 우울할 수밖에 없는 시대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영성의 계발’이라는 주장을 펼치며 ‘영성 분야의 큐레이터spiritual curator’가 되기로 한다. 첫 번째 큐레이션을 담은 책 《살던 대로 살 수 없는 시간》에서는 변화의 낙폭이 큰 시대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자기계발은 ‘영성의 계발’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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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눈은 모든 것을 덮는다
이한칸 지음 / 델피노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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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외로움. 그것은 이후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좌절의 구렁텅이로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삶을 끝낼 수도 있는 양면성을 가졌다.

사람은 모두 외로움을 느낀다. 혼자보다는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게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 삶을 위해 더 도움이 되기 때문에 현생 인류 탄생부터 지속돼 온 습관이 유전자로 바뀌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함께 살지 못하는 경우 그 외로움은 다시 살아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외로움을 두려움이나 괴로움보다 더 싫어하는 것 같다. 두려움이나 괴로움은 일시적이지만 외로움은 그렇지 않기 때문일까.

외로움은 외부적 요인일까, 내부적 요인일까. 이 소설은 외로움의 극한 상태가 한 사람의 삶에 어떻게 투영되는지 살피기에 적합한 느낌이다. 어릴 때 환경이 성장 후까지 그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다면 어떤 삶이 될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소설은 어릴 적 기억이 모티브가 된 '자전적 소설'의 경향을 보인다. 매우 척박한 삶을 살아온 할머니, 아버지에 대한 기억부터 집안에서 일어나는 입에 담기 어려운 폭력도 모티브에 작용했다. 그 폭력에 대응하는 소설 속 주인공의 소극적이고 회피성 태도, 그러나 그 속에서의 할머니와의 추억 등이 복잡하게 얽히며 주인공의 삶을 지배하고 관여한다. 독자는 저자의 의도와 상관 없이 어릴 때 행복한 추억을 되새기는 '우'를 범하지만 그 역시 감정의 자연스러운 것이니 탓할 게 못된다. 흰 눈 내리는 저녁 어스름. 사위가 어둠으로 덮이기 시작할 때의 고요함. 소리는 없지만 굴뚝을 통해 나오는 연기로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어머니의 기억으로 마냥 행복한 시간이 남아 있는 독자로서는 저자가 내민 소설 배경에서의 느낌이 다르다.



눈이 많이 오는 고향에서 자란 주인공은 심장귀신을 보고 산신령을 믿으며 할머니와 기묘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정월 대보름이면 쥐불놀이대회를 여는 풍습이 있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열 살의 어린 나이에 가장 멀리 쥐불을 날리며 우승을 하지만, 집에서는 살육과 같은 폭력이 벌어지고 있었다. 주인공은 자신이 살기 위해, 어머니와 다름없는 할머니의 사고를 모른 척하고 그 사건 이후로 나는 ‘뜨거운 피가 흐르지만, 단지 살아만 있는 상태‘로 죄책감을 스무 살까지 오래도 끌고 오게 된다. 주인공이 죄책감을 없애기 위한 선택들은, 마음을 짓누르고 자신을 괴물로 만드는 선택들이었다. 결국, 감정을 숨겨가며 억지로 나를 소모시키며 살아가고 깊은 우울감에 충동적인 선택을 하게 되지만 할머니와의 추억이 주인공을 살리게 된다. 흰 두부, 은방울꽃, 은반지, 목화솜 눈, 여린 쑥, 잣 세 알, 한지 석장, 은혜 갚은 까마귀, 되돌아온 고양이, 현충원의 설국 등의 희망적인 단서가 제시되고, 쇄빙선이 만들어낸 일직선을 따라가며 불행하지 않은 미래를 암시한다. 눈에 대한 그리움을 창호지와 장독과 같은 따스한 한국적인 정서로 담아냈다는 것이 평단의 설명이다.



처음 소설 배경에 주목하던 독자들은 이상한 존재를 보는 어린아이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는 할머니덕분에 이상한 존재를 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조금 더 읽으면 해맑게 쥐불놀이를 하고, 그러다가 할머니가 아버지에게 구타를 당해 다친다. 이게 무슨 내용인가 하고 조금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소설을 따라 읽어가면 조금씩 느낌이 달라진다. 할머니와의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만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폭력적인 아버지가 개입되고서부터는 분위기가 변한다. 암울하고 증오심 가득한 주인공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저자의 말은 섬찟하기까지 하다.

"순간의 충동정인 감정으로 아무도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만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주인공은 이름 없이 나 또는 막내입니다. 이 책을 읽으시는 모든 분이 주인공에게 투영되어 고개 숙이지 말고 땅을 보지 말고 당당하게 걷기를 바랍니다."

어떤 외부적인 요인에도 휘둘리지 않고 살아가고 싶었던 저자에게는 "지긋지긋한 빚을 갚고, 언니를 지켜내고, 보통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것 외에는 중요한 일이 없었다. 나는 영원히 진짜 내가 될 수 없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삶이라기보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내 감정을 속이는 삶. 그 삶 속에 어울릴 수 없는 내가 되어 있었다"며 소설의 내용을 대신해 고백한다.



이른바 ‘국딩(초딩) 세대‘는 그 당시만의 추억과 감성이 있다. 쥐불놀이를 하며 환영의 불꽃을 보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시의 어린 자신들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우리가 과거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과거 속에서의 나 자신을 그리워하기 때문이 아닐까? 쥐불놀이, 상인들의 잔치였던 운동회, 수박 서리, 개울가 빨래, 간첩신고, 뒷동산 눈썰매장, 얼굴만 아는 동네 사람이 아이들의 밥을 넉넉한 인심으로 챙겨주던 시대는 이미 지나버렸고, 훨씬 좋은 세상이 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시절이 좋았다고, 그리워하며 산다.

소설 속 주인공도 국민학교 세대를 보냈다. 80년대 생들에게, 과거를 추억하는 사람들에게,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 공감될 만한 이야기이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정착하게 된 주인공은 여러 사건으로 두 번의 극단적인 선택을 마주한다. 자살시도자 10명 중 8명은 충동적인 자살을 시도하며 14세기 무렵에야 인간이 중심이 되는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개인에 대한 다방면의 분석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역사와 함께한 오래된 분석과 예방책에도 불구하고,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의 사회에서 10대 청소년 자살, 처지비관, 빈곤자살, 더 세부적인 명명이 늘어가기만 할 뿐, 자살률이 해마다 증가하는 것은 역설적이다.



책을 읽다보면 아름다운 추억만 되새기고 소설이 전개되기를 바랐던 독자의 기대를 저자는 정면으로 외면한다. 자매의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감내하기 힘든 생활이 이어진다. '흰 눈'에 대한 서정적 생각이나 극복 과정의 현명함도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도 끝내는 할머니와의 추억이 발단이 돼 삶의 위기를 잘 극복해내는 자매에게 감동의 마음도 생긴다.

이때 독자로서는 주인공 자매가 기특하다는 생각도 했고, 감정이입해 '나는 이런 상황이었다면 과연 이 자매들처럼 극복할 수 있었을까' 하는 비교도 해본다. 그리고 누구 못지 않게 힘든 삶을 잘 버티고 대응해 최소한 보통 사람들처럼 살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한다. 소설 속 주인공들의 불행을 안타까워하면서도 평탄한 내 삶을 감사하게 생각한 삶에 대한 옹졸하고도 안이한 의지를 혼자서 꾸짖기도 했다. 어린 아이들의 삶의 태도가 독자에게 오히려 교훈이 된 셈이다. 앞으로라도 평온한 삶에 대한 감사도 해야겠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해 늘 자신을 성찰하는 태도로 임해야겠다는 반성도 했다. 주인공 자매가 할머니나 큰아버지의 존재로 그나마 좋은 삶으로 걸어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런 큰아버지, 그런 할머니가 되겠다는 위인전을 읽고 난 다음 같은 감동도 있다. 어려운 환경의 극복한 어린 아이들의 삶의 성공을 보는 듯해서. 그것은 저자의 의도된 구성이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것이 소설가로서의 당연한 일이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저자를 폄훼하려 하는 말이 아니지만 소설이기 때문이다. 구성이 허술하면 극적 포인트가 없고 일대기를 나열한 밋밋한 글이 되기 십상이니까. 그러나 아무튼 자전적 성장 소설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눈도 코도 입도 없는 벽돌 같은 모양을 한 심장귀신이 내 손을 잡고 있는 그림일기. 호두나무 가지에 앉아있는 명확한 두 명. 두 명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그 부분을 아버지가 펼치더니 불같이 화를 내며 찢어냈다.(p. 29)


나는 그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어떤 누군가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닌 나 자신만 아니고자 하는 사람으로 자랐다.(p. 144)


확실히 내 발끝까지 뜨거운 피를 보내며 심장은 뛰고 있었지만 이 심장이 정말 나를 위해 뛰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이런 나를 위해서도 뛰고 싶은 것일까. 내 의지를 싣지 않은 뜨거운 혈액이 온몸에 퍼지고 있었다.(p. 297)


저자 : 이한칸


책과 글을 늘 가까이 두고자 했고 독립서점-슈뢰딩거에서 우겨서 얻어낸 본부장 직함으로 덕업일치의 삶을 꿈꿔왔습니다. 허름한 공장 한구석, 독서실 한 칸, 고시원 한 평, 내 꿈이 담기지 않은 사무실, 교실의 비좁은 책상과 그 모든 한 칸 남짓한 공간에서 우주만큼 큰 꿈을 갖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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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후의 부부, 플라이시먼
태피 브로데서애크너 지음, 오세원 옮김 / 왼쪽주머니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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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결혼 자택 등을 포기하는 '오포세대'가 우리 나라 청춘들의 사회문제화되고 있는 시대다.

코로나로 취업 문제가 잠시 당면 문제의 뒷전으로 밀렸지만 여전히 미취없 청춘들은 당장 먹고 살 일이 더 걱정이다. 수십, 수백 군데 이력서를 내고, 면접도 보지만 청년 취업 문제는 해결의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세계적 팬데믹 상황으로 방역이 우선이어서 취업 문제는 얼굴도 못 내밀고 있는 형국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그나마 선제적 방역으로 패닉 상태에 빠질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이지만 언제까지 이 상황이 지속될지 아무도 모르는 실정이다.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 중이고, 일부 국가에서는 3차 임상실험을 끝내지 않고도 환자에 투여하고 취약계층부터 독감 백신을 맟추고 있다. 독감과 코로나의 관계를 모르는 일반 국민들은 정부 방역당국의 조치에 따르는 수밖에 별 뾰족한 수가 없다.

청년은 결혼을 꺼리고 결혼 안정기라는 중년의 나이로 넘어가는 사람들의 이혼은 오히려 늘어나는 기현상도 보인다. 수입이 없어져 생계가 막막해질 정도로 경제적 압박이 심해서일까. 그러나 막상 이유를 찾아가보면 대개 예전의 이혼 부부와 비슷한 이유인 것 같다고 한다. 결론은 코로나와 결혼, 이혼은 직접적인 인과 관계가 없다는점이다.







미국은 우리와 상황이 달라서인가? 보도를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코로나19는 우리나라 등 동양권보다 서양 사회에서 훨씬 심각한 수준이다. 우리는 상상도 못할 확진자가 쏟아져 나오고, 희생자도 수십 만 명에 이르고 백만 명 돌파는 '시간 문제라는 것이다.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은 결혼 14년이 넘었는데 특별한 이혼 사유가 없는 것 같은데 별거, 이혼을 서두르고 있다. 코로나가 별거나 이혼 사유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왜 늘어나는가?

사회학자들은 중년의 부부 위기는 대개 삶의 이유가 충분하게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우리 주위에서 자주 부딪치는 부부 갈등 문제를 풀지 못하고 결국 '사랑 이후의 부부'로 남는 일을 선택하려 한다.

이혼이 이렇게 설득력 있는 이유를 갖지 못한 채 흘러가면 결국 사회문제를 일으킬 것이 명백하다. 인구 문제, 의학 발달에 따른 고령화 문제. 모두 국가가 위기를 느끼긴 하지만 뚜렷한 해결책을 갖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이 소설은 결혼과 이혼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현대의 인간관계를 섬세히 관찰했고 유머로 풀어 쓴 작품이다.

대학 시절 사랑에 빠져 결혼한 뒤 14년 넘게 결혼 생활을 해오며 사랑스러운 딸과 아들을 둔 토비와 레이철 플라이시먼 부부. 이들이 이혼 수속을 밟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이들은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혼을 하기로 결심한 걸까? 작가는 이 소설 속에서 사랑과 결혼, 부부의 갈등과 위기 등을 고찰한다. 직장 생활과 결혼 생활, 육아를 병행하는 여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뇌하고 방황하는 인물들을 통해, 종종 폭소를 터뜨리게 하면서도 결혼 생활의 실존에 관한 통찰력 있고 마음을 울리는 시대의 초상을 그려낸다.





미국 뉴욕시에 있는 병원에서 간의학 전문의로 일하는 토비 플라이시먼. 그는 레이철과 이혼 절차를 밟으며 자녀 해나와 솔리를 공동으로 양육한다. 별거 후 토비는 심리 치료를 받으며 악몽과 같았던 결혼 생활에서 회복하려는 한편, 돌아온 싱글로 온라인 데이팅 앱에 빠져 여러 여자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레이철이 새벽에 그의 집에 두 아이를 데려다 놓고는 사라진다. 토비는 레이철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려 애쓰면서 병원에서는 위중한 환자들을 진료하고, 데이팅 앱에서는 여자들이 만나자고 연락을 해오지만 아빠로서 최선을 다하려 노력한다.

그는 과거의 기억들을 더듬으며 그의 결혼이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인지 알아내려 한다.

대학 4학년 때 만나 한눈에 사랑에 빠져 결혼한 토비와 레이철. 의사로, 에이전시 직원으로 일하며 아름다웠던 결혼, 꿈같은 신혼 생활 뒤 임신과 출산을 겪고, 두 아이를 양육하며 점차 중산층에서 부유층으로 사회적 상승을 하기 위해 달려왔지만, 세월이 지나 어느 덧 서로에 대한 배려는 사라지고 두 사람 각자 상대방에게 원하는 요구만 남아 있다. 서로에 대한 갈등과 분노, 증오가 심화되어 부부 상담도 시도해보지만 결국 이혼을 하기로 합의한다. 소설의 화자는 대학 시절 토비와 친구가 된 기자 출신 리비이다. 제3자의 시선으로 볼 때 둘 중 누구의 잘못이 더 큰 것일까?




리비는 토비와 레이철 부부의 결혼 이야기, 여전히 싱글로 지내는 친구 세스, 그리고 자신의 삶을 통해 사랑과 결혼, 맞벌이에 육아를 병행하는 부부의 모습을 여러 각도로 조명한다. 이 시대에 여성으로서 겪는 현실, 직장 생활과 자녀 양육 사이에서의 번민, 우리가 선택한 배우자와 가족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관한 실존적 고민들을 진지하게 탐구한다. 유머와 풍자가 가득하면서도 동정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인물들의 삶을 그리며, 인생의 의미를 통찰력 있게 담아낸다.


토비와 레이철은 1학기가 끝난 직후인 6월 초에 헤어졌다. 거의 1년에 걸친 과정의 결말, 아니, 어쩌면 14년 전 그들의 결혼식이 끝난 직후부터 시작된 과정의 결말이었을지도 몰랐다. 그것은 누가 그것을 바라보는지, 또는 어떻게 그것을 바라보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다. 이혼으로 끝나는 결혼은 처음부터 그렇게 될 운명이었을까?(p. 23)


한 사람이 모든 산소를 독차지하고 있는 결혼에는 두 사람이 설 공간이 있을 수 없다. 두 사람 중 한 명은 아이들 학교에서 전화가 올 때 받아야 했다. 두 사람 중 하나는 아이들의 백신 접종 기록이 어디 있는지 알아야 했다. 둘 중 한 사람은 염병할 설거지를 해야 했다.(p. 94)


아내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불안과 걱정으로 정신적인 고문을 받으면서도 아이들에게는 그런 기미를 보이지 않기 위해 미소를 지어 보이는 한편, 마치 모든 것이 다 잘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여자와 섹스팅을 하고 있다니, 그는 자신이 얼마나 미친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p. 174)






아내는 최고의 애인이나 영원한 애인이 아니다. 그녀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다. 그녀는 네가 너 자신을 재료로 해서 함께 만든 존재다. 그녀는 너 없이는 아내가 될 수 없고, 그래서 그녀를 미워하거나 배반하거나, 네가 그녀와 겪고 있는 고민에 대해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너의 괴사한 손가락을 욕하는 것과 같다.(p. 395)


또한 이혼은 건망증의 문제이기도 하다. 즉, 그런 모든 혼란이 있기 이전의 순간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며, 사랑에 빠진 순간들을, 떨어져 있는 것보다 함께 있는 것이 더 특별하다고 깨달은 순간들을 망각하는 것이다. 결혼은 그런 순간들을 기억하며 봉사하며 살아간다.(p. 495)


부부의 위기를 다룬 소설과 드라마, 영화는 시대를 막론하고 엄청나게 많다. 대개 서양 쪽에서 만든 영화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에게 당면 과제로 떠올랐다. 얼마 전 모TV에서 방영한 '부부의 세계'는 종합편성 TV의 한계를 딛고 시청률을 지상파 방송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 이 드라마에서 관심을 갖고 그려내는 것은 현재 우리 사회의 일부 부부들의 얘기지만 전폭적인 인기를 받은 것은 분명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

중년에 들어서는 부부들은 권태스러울 만큼 충분히 살았다는 점을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 전편을 다 보진 못했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있는 단어 '불륜'이 모티브가 된다. 내용도 진부한 내용이다. 다만 심리 표현을 잘해 그쪽에 신경을 쓴 듯한 의지가 여러 곳에서 보인다.

결혼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녀가 한울타리 안에서 같이 살게 되면 더 잘 살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참고 살고, 애들 때문에 살고, 아직도 상대를 믿기 때문에 살고...






저자 : 태피 브로데서애크너(TAFFY BRODESSER-AKNER)


〈뉴욕타임스 매거진〉의 기자로, 〈GQ〉 〈ESPN 매거진〉 등 여러 매체에 글을 써왔다. 이 책 《사랑 이후의 부부, 플라이시먼》은 저자의 첫 장편소설로, 출간 뒤 2019년 전미비평가협회 존 레너드상, 2020년 영국 도서상 데뷔작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고, 2019년 전미도서상, 카네기 메달상, 2020년 여성소설상 후보에 올랐으며, 2019년 뉴욕공립도서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선정 올해 최고의 책 TOP 10, 〈뉴욕타임스〉 〈타임〉 〈워싱턴포스트〉 〈가디언〉 등 영미 주요 언론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는 등 찬사를 받았다.


역자 : 오세원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공군 통역 장교로 복무했으며, 금융업계에 근무 중 회사의 지원으로 미국 윌리엄 앤 매리 대학교 MBA를 마쳤고, 현재 녹색기후기금(GCF)에서 근무 중이다. 옮긴 책으로 《제임스 서버》 《랭스턴 휴스》 《펭씨네 가족》 《당신 없는 일주일》 《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 《뜻밖의 회심》 《퓨처 누아르》 《청춘을 위한 기독교 변증》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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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 뇌과학자 - 괴물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제임스 팰런 지음, 김미선 옮김 / 더퀘스트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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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Psychopath)란 반사회적 인격장애증을 앓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평소에는 정신병질(精神病質, Psychopathy)이 내부에 잠재되어 있다가 범행을 통해서만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특징이다. 즉 사이코패스 범죄자는 범죄 이전까지는 사전 징후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이코패스 범죄자는 체포돼 당국의 심사를 거쳐 언론에 알려질 경우 이웃사람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평소에 보여온 행동은 평범한 이웃이었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는 1920년대 독일의 쿠르트 슈나이더(Kurt Schneider)가 처음 소개한 개념으로 보통 반사회적 인격장애증을 앓고 있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의학계에 따르면 이들은 발정·광신·자기현시·의지결여·폭발적 성격·무기력 등의 특징을 지닌다. 이들의 정신병질은 평소에는 내부에 잠재되어 있다가 범행을 통하여서만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미국 브르크하멜국립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감정을 지배하는 전두엽 기능이 일반인의 15%밖에 되지 않아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고통에 무감각하므로 자신이 저지른 죄의 대가로 받게 될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음으로써 재범률도 높고 연쇄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도 일반 범죄자들보다 높다. 또 공격적 성향을 억제하는 분비물인 세로토닌이 부족하여 사소한 일에도 강한 공격적 성향을 드러낸다고 한다. 사이코패스는 이같은 유전적·생물학적 요인에 사회환경적 요인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전인격적 병리현상으로 본다.

캐나다의 심리학자 로버트 헤어(Robert D. Hare)가 PCL-R(Psychopathy Checklist-Revised)라고 부르는 사이코패스 진단방법을 개발하였는데, 40점을 최고점으로 하여 이에 근접할수록 사이코패스 성향이 높다고 판단한다. 한국에서도 연쇄살인을 저질러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유영철은 이 진단법에 따라 측정한 결과 34점을 기록하여 전형적 사이코패스로 판정받았다. 일반인의 경우에는 15~16점을 기록한다고 한다.

사이코패스가 반드시 범죄자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며, 직장 같은 일상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는 게 의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양들의 침묵' 한 장면(사진은 영화 스틸컷으로 독자가 임의로 게재했음.


영국의 과학 전문 주간지 《네이처》는 '살인마의 뇌를 연구하는 세계적인 과학자 자신의 머릿속에서 사이코패스를 발견하다'를 보도하면서 "제임스 팰런(이 책의 저자)의 놀라운 결론은 ‘정상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사고방식을 전복한다"고 평했다.

저자는 사이코패스 범죄자를 연구하던 중 “나는 자리에 앉아 우리 가족의 뇌 스캔 사진을 분석하다가 사진 더미 속 마지막 사진이 두드러지게 이상한 걸 알아차렸다. 그 사진은 사진의 주인이 사이코패스거나 적어도 사이코패스와 불편할 정도로 많은 특성을 공유함을 시사하고 있었다. 나는 사진 주인이 가족 중 하나일 거라고는 의심하지 않고, 당연히 가족의 뇌 스캔 사진 더미에 어쩌다 다른 테이블 위 사진이 섞였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거기에는 아무런 실수도 없었다. 그 뇌 스캔 사진의 주인공은 나였다.”고 이 책에서 밝혔다.

『사이코패스 뇌과학자』는 살인마의 뇌를 연구하는 세계적인 과학자 제임스 팰런이 자신의 뇌 스캔 사진에서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의 이야기는 지난 2008년 TED를 통해 처음 세상에 공개됐으며, 미국 드라마 시리즈 〈크리미널 마인드CRIMINAL MINDS〉의 소재로 쓰이는 것은 물론 《월스트리트저널》 1면에 대서특필되는 등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이에 앞서 1991년 사이코패스 영화의 원조로 불리우는 '양들의 침묵'이 상영돼 세계의 의학계와 정신의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기도 했다.

세상을 뒤집은 이 과학자의 실제 이야기는 인간에 대한 심오하고 흥미진진한 질문을 던진다.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로 태어난 나는 어떻게 범죄자가 되지 않았을까?’ ‘왜 자연은 계속해서 사이코패스가 태어나도록 내버려두는가?’ ‘사이코패스도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사이코패스는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사이코패스 뇌과학자』는 사이코패스의 뇌를 가지고 있는 과학자의 자기 탐구기와 동시에 인간에 대한 철학적, 과학적 질문과 성찰이 담겨 있다.






성공한 뇌과학자이자 의대 교수인 제임스 팰런은 어느 날 자신의 두뇌 사진에서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발견한다. 반신반의하며 자신의 가계도를 살펴보는데, 자신의 조상들 중에 살인마가 즐비하다는 것 또한 알게 된다. 미국 식민지에서 일어난 최초 모친 살해 사건의 범인 토머스 코넬, 아내를 쇠로 된 삽자루로 가격한 다음 살해한 앨빈 코넬,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영국 역사상 가장 잔인하기로 유명한 존 래클랜드 왕까지 모두 악명 높고 사이코패스로 의심되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유전자 분석 결과, 공격적 행동과 연관되어 있다고 밝혀져 전사유전자(warrior gene)라고 불리는 MAOA 유전자의 변형이 자신을 비롯한 가족들에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의심할 여지없이 제임스 팰런은 ‘사이코패스’로 태어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팰런은 온화한 가정에서 자랐고, 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많은 친구를 둔 사교적인 사람이다. 2000년에는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해 파킨슨병, 뇌졸중 등 여러 신경퇴행성질환을 치료할 가능성에 관한 최초의 증거를 발견했으며 직접 창업한 회사 뉴로리페어는 전국생명공학협회에서 선정되는 등 학문적으로도 사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도대체 폭력 전과도 없고 대외적으로도 성공한 이 자상한 가장이 어떻게 사이코패스란 말인가?


사이코패스 한국 영화 포스터.


2020년 초, 대한민국의 언론 뉴스에 매일 오르내렸던 N번방·박사방 사건. 사람들은 이 범죄의 잔혹함에도 놀랐지만 범인들이 겉으로 보기에 너무도 평범한 20대 남성들이라는 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모두 길거리에서 지나친다 해도 두 번 다시 떠올리지 않을 남성들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가장 위험한 사이코패스라도 때로는 명랑하고 근심 걱정 없으며 사교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사이코패스로 태어나더라도 다음 세 가지 요인을 모두 갖추지 않는다면 사이코패시가 발현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첫째, 안와전두피질과 편도체를 포함한 전측두엽의 유별난 저기능. 둘째, 전사유전자로 대표되는 고위험 변이 유전자 여러 개. 셋째, 어린 시절 초기의 감정적·신체적·성적 학대다.(10년에 걸쳐 사이코패스 살인자들의 PET 스캔 사진을 분석한 결과) 살인자들 뇌에는 전두엽과 측두엽의 특정 부분, 흔히 자제력이나 공감에 영향을 끼치는 뇌 영역의 기능이 공통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비인간적 폭력을 저지른 뇌이니 이해는 갔다. 이들 뇌 영역의 활동이 저조하다는 건 정상적인 도덕적 추론과 충동 억제력이 부족함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 들어가며 〈괴물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중에서




플로리다주립대학교의 케빈 비버와 동료들은 전사유전자를 가진 남성들이 갱단에 합류할 가능성이 더 높음을 발견했다. 이들은 흉포한 갱단의 동료들과 비교해서 더 폭력적이었고 싸움에서 무기를 사용할 가능성도 두 배나 높았다. (…) 전사유전자는 뇌 구조의 변화와도 연관되어왔다.

미국 국립보건원의 안드레아스 마이어-린덴베르크와 동료들이 시행한 연구에서는 전사유전자가 편도체, 전대상피질, 안와피질, 즉 반사회적 행동과 사이코패시에 연관되는 모든 영역의 부피를 8퍼센트 줄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4장 〈나의 조상들은 살인마였다〉 중에서


수감된 사이코패스 중 유아기에 신체적·감정적 학대나 성적 학대를 당한 사람이 많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청소년 사이코패스 범죄자 3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70퍼센트가 어린 시절 내내 심각한 학대를 받았다고 답했다. (…) 나는 여기에다 가해자를 감싸는 사이코패스들을 더하면, 사이코패스 중 어린 시절에 학대를 받은 비율은 99퍼센트에 육박할 수도 있다고 추론했다.

5장 사이코패스의 조건 중에서




사이코패스로 태어났다고 해도 사이코패스가 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실제로 제임스 팰런은 이 세 요소 중에서 ‘유년 시절의 학대’를 겪지 않았다. 그래서 사이코패스로 태어났지만 자칭 ‘친사회적 사이코패스’로 자라날 수 있었다.

제임스 팰런이 주장하는 이 ‘세 다리 의자’ 이론은 고전적인 질문 하나를 이끌어낸다. ‘유전자와 환경 중 무엇이 인간을 결정하는가?’ 본래 제임스 팰런은 유전이 80퍼센트 정도를 결정하고 환경은 20퍼센트밖에 결정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하지만 자신의 뇌 스캔 사진을 본 이후로는 본인이 생각한 것보다 인간이 훨씬 더 복잡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인간은 선하지 않으면 악한, 옳지 않으면 그른, 친절하지 않으면 앙칼진, 무해하지 않으면 위험한 존재가 아니다. 단순히 생물학의 산물도 아니며 과학은 우리에게 이야기의 일부만 들려줄 뿐이다”

『사이코패스 뇌과학자』는 한 세계적인 뇌과학자가 스스로 증거가 되어 새로운 사이코패시 이론을 제시하는 책이다. 더 나아가 유전자 결정론을 고집하던 자신의 주장을 굽히고 인간의 복잡성을 받아들이는 회고록이기도 하다.


한국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의 한 장면.



제임스 팰런은 이 책을 통해 사이코패스가 반드시 악명 높은 범죄자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한다. 한편으로 우리 주변에는 범죄자가 아니더라도 사이코패스로 의심할 만한 사람들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 예로 고난도 연기를 반복적으로 하고 공감 능력이 없어 보이는 빌 클린턴과 폰지 사기꾼의 대명사로 알려진 버니 메이도프를 꼽는다. 특히 금융계와 경제계에 많은 사이코패스가 존재한다고 보는데, 이렇게 사이코패스가 사라지지 않고 일정 비율로 존재하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사이코패스가 모든 문화권에 사이코패시가 약 2퍼센트의 비율로 실재한다는 사실은, 사이코패시가 또는 최소한 사이코패스에게서 발견되는 특성과 연관되는 대립유전자들이 어떤 식으로든 인류에게 ‘바람직함’을 시사한다. 아니라면 사이코패시는 진화 과정에서 제거되었거나 적어도 오래전에 그 수가 줄었어야 한다. (…) 아마도 그 유전자 자체나 유전자와 연관된 사이코패스적 특성이 생존에 유리한 무엇을 제공하는 것이 틀림없다.

10장 사이코패스는 모든 사회에 존재한다 중에서






제임스 팰런은 진화적으로 거짓말을 잘하고 불안을 느끼지 못하며 이성에게 보다 매력적으로 보이는 사이코패시가 생존에 유리했을 것이라고 본다.

더 나아가 사이코패스 덕분에 인류가 존속된다고 주장한다.(그의 연구 결과를 못 믿는 게 아니라 믿고 싶지 않아 독자에겐 거부감이 든 부분이다) 예를 들어 전사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시급한 상황에서도 결정을 잘 내리는데, 그 유전자를 가진 지도자들의 결정 일부가 문명을 진보시켰을 것이라 본다. 또한 사이코패스들은 감정과 행동을 잘 분리하기 때문에 전투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높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도 덜 겪어 대규모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역사의 분기점을 마련했을 것이라 본다. 다시 말해 역사적으로 사이코패시는 군사, 정치, 경제 등 다방면으로 사회에 이득을 준다.

제임스 팰런의 이야기가 세상에 처음 드러났을 때, 사이코패스 및 범죄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매력을 느꼈다. 실화라는 점, 사이코패스의 조건 그리고 사이코패시의 긍정적인 영향까지 누구나 흥미를 느낄 만한 요소들의 집합체니까. 한편으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논쟁이 촉발됐다. 사이코패스에 관한 상식부터 ‘유전자와 환경 중 무엇이 더 인간에게 영향을 끼치는지’ ‘인간의 조건은 도대체 무엇인지’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내가 클린턴을 사이코패스로 진단할 수는 없지만, 그는 몇 가지 주요한 특성을 가진 듯 보이고 아마도 PCL-R을 기준으로 한다면 최소한 15점은 될 것이다. (…) 클린턴은 군대를 향해 무게 잡고 거수경례를 하는 등 흉내 내는 재주가 일품이었고, 갈채를 받을 때는 겸손을 가장했으며, 장례식에서는 적당히 침울해 보이는가 싶더니 다음 순간 엄청난 슬픔을 연기했다. 사이코패스가 아닌 사람도 이야기를 꾸며내지만, 진짜 사이코패스의 특성을 가진 사람만이 그토록 큰 판돈을 걸어놓고 고난도 연기를 반복적으로 할 수 있다.

7장 사이코패스도 사랑할 수 있을까 중에서





저자 : 제임스 팰런(JAMES FALLON)


일리노이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박사후과정을 밟았다. 현재 캘리포니아대학교 어바인 캠퍼스에서 35년 넘게 의대생, 학부생, 신경정신과 임상의들에게 신경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2000년에는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해 파킨슨병, 뇌졸중 등 여러 신경퇴행성질환을 치료할 가능성에 대한 최초의 증거를 발견하여 미국 국립보건원을 통해 미 의회에서 보고하기도 했다.

또한 팰런의 연구실에서 생명공학회사 세 곳이 출범했으며 그가 직접 창업한 회사 뉴로리페어NEUROREPAIR는 전국 생명공학협회에서 최고의 회사로 선정되었다.

팰런은 스스로를 ‘친사회적 사이코패스’로 분류한다. 범죄 이력이 없는 친화적인 성격의 성공한 과학자지만 사이코패스의 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는 2008년에 TED를 통해 처음 세상에 공개됐으며, 이를 계기로 수많은 라디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소개됐다. 팰런은 자신의 이야기 및 사이코패스 관련 다큐멘터리 제작에도 참여했으며, 자신의 TED 강의를 모티프로 제작된 드라마시리즈 〈크리미널 마인드CRIMINAL MINDS〉의 한 에피소드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같은 해 《월스트리트저널》 1면에 실린 기사 ‘짐 팰런의 마음에 무슨 일이? 살인자를 연구하는 과학자에게 닥친 일’ 또한 반향을 일으키며 ‘사이코패스, 더 나아가 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관한 논쟁에 불을 붙였다. 현재 결혼한 지 50년이 지난 제임스 팰런은 슬하에 세 자녀를 비롯해 여러 명의 손자를 두고 평온하게 지내고 있다.


역자 : 김미선


연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했으며 지금은 주로 뇌과학과 진화 분야의 과학책을 옮기고 있다. 옮긴 책으로 《의식의 탐구》 《기적을 부르는 뇌》 《생각의 한계》 《참 괜찮은 죽음》 《광기와 문명》 《뇌와 마음의 오랜 진화》 《지구 이야기》 《걷는 고래》 《대멸종 연대기》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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