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없는 세상 - 개정판
앨런 와이즈먼 지음, 이한중 옮김, 최재천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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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과연 영구 생존할 수 있을까. 만일 그럴 수 없다면 어떤 상황에서 멸종될까. 인류가 멸종된다면 지구는 어떤 모습이고, 우주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미래학자도 인류의 생존을 전제로 인류의 미래를 예견하는 일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오면 인류는 멸종할 수도 있다'는 경고음을 내는 과학자는 있다. 인류의 멸망은 곧 지구의 멸망을 의미하기 때문에 가장 가까이는 지구의 기후 변화가 예측된다. 또 바이러스나 외계인의 출현에 의할 수도 있다. 상상은 해볼 수 있지만 멸망의 시기나 어떤 힘에 의해 멸망할지는 그 이상에 위치한, 상상을 뛰어넘는 일이어서 예측키 어렵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하나의 영화를 떠올릴 수 있다. 바로 <혹성탈출>이다. 과학자 ‘윌 로드만(제임스 프랭코 분)’은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아버지(존 리스고 분)를 치료하고자 인간의 손상된 뇌기능을 회복시켜주는 ‘큐어’를 개발한다. 이 약의 임상실험으로 유인원들이 이용되고, 한 유인원에게서 어린 ‘시저(앤디 서키스 분)’가 태어나 ‘윌’은 자신 집에서 ‘시저’를 키우게 된다. 가족같이 살고 있던 윌과 시저, 시간이 지날수록 ‘시저’의 지능은 인간을 능가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시저’는 이웃집 남자와 시비가 붙은 ‘윌’의 아버지를 본능적으로 보호하려는 과정에서 인간을 공격하게 되고, 결국 유인원들을 보호하는 시설로 보내지게 된다. 그곳에서 자신이 인간과 다른 존재라는 것을 서서히 자각하게 되고 인간이 유인원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게 된 ‘시저’는 다른 유인원들과 함께 생존을 걸고 인간들과의 대전쟁을 결심하며 시작된다.

영화 <혹성탈출>의 한 장면.




이 책 『인간 없는 세상』은 역발상에 초점을 맞춘 논픽션이다. 상상이 아닌 현재 인류가 안고 있는 영구 생존의 위험 요소를 하나씩 뜯어보며 인류의 미래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 의식이 담긴 책이다.

이 책의 시작은 매우 도발적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인간이 모두 사라진다면, 지구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질문의 답을 찾는 여정을 그린 문제작이다. 이번 출판된 책은 개정판이다. 2007년 출간되자마자 전 세계 유수의 논픽션 상을 휩쓴 이 책은 출간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많은 독자들의 지지를 얻으며 살아 있는 고전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는 2020년 현재 전 세계를 마비시킨 코로나19를 비롯한 각종 바이러스의 창궐,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미세 플라스틱 문제, 빗물 흡수를 막는 아스팔트 탓에 매년 겪게 되는 물난리 등 일찍이 이 책에서 예견했던 내용들이 현실에서 속속 그 모습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는다는 것은 이러한 현실적 필요성에 의해서다. 그만큼 쉽지 않은 큰 문제에 부닥쳐 있는 인류다.



저자 앨런 와이즈먼은 인류와 함께 사라질 것들은 무엇이고 인류가 지구상에 남길 유산은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머나먼 ‘지적 탐험’에 나선다.

그는 우리나라의 비무장지대, 폴란드-벨라루스 국경의 원시림, 터키와 북키프로스에 있는 유적지들, 체르노빌, 미크로네시아, 아프리카, 아마존, 북극, 과테말라, 멕시코 등에 이르는 기나긴 여행을 통해 직접 마주친 놀라운 풍경들을 섬세한 언어로 풀어낸다. 여기에, 고생물학자ㆍ해양생태학자ㆍ박물관 큐레이터ㆍ지질학자ㆍ다이아몬드 광산업자ㆍ우리나라 비무장지대의 환경운동가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에게서 얻은 지식과 정보를 씨실과 날실 삼아 자기만의 통찰력으로 엮어낸다.




인간인 우리가 ‘인간 없는 세상’의 모습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최근, 이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광경이 지구 곳곳에 출몰하기 시작했다.

몇 년간 ‘하늘색’이 무슨 색인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만큼 뿌연 미세먼지로 가득했던 아시아 지역의 하늘이 다시금 청명해졌다. 도시의 진동과 소음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 호주에서는 캥거루가 차도를 질주하고, 칠레에서는 퓨마가 도심 한복판을 대낮부터 어슬렁거리고, 웨일스에서는 산양 떼가 시내 상점을 기웃거린다.

어떻게 된 일일까. 바로 인류를 위협하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이 급격히 바깥활동을 줄이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더욱 놀라운 건 이것이, 팬데믹 상황이 전 세계를 강타한 지 불과 1년도 되지 않은 2020년 현재의 일이라는 점이다. 인류가 그저 활동을 줄이는 것만으로 지구가 무서운 속도로 자기치유를 해나간다는 사실이 분명히 입증된 셈이다.

이번 『인간 없는 세상』 개정판에서 감수를 맡은 최재천 교수도 이러한 풍경들을 나열하면서, “지구는 끄떡없다. (…) 우리가 사라지면 공기와 물이 다시 맑아지며 지구는 훨씬 살기 좋은 곳으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런 점에서 앨런 와이즈먼이 2007년 집필한 『인간 없는 세상』은 인류에게 일종의 계시록과도 같은 책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 사라진 후 자연은 바로 다음 날부터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집 청소에 들어간다. 그렇게 불과 이틀 만에 뉴욕 지하철역이 침수하는 것을 시작으로, 도시가 숲으로 변하고 건물이 붕괴되고 농작물이 야생 상태로 돌아가는 등 웬만한 인간의 흔적이 사라지는 데 채 1세기도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플라스틱이나 청동 조각품 등은 더 긴 세월을 버티겠지만, 결국 영원히 남는 것은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 전파 정도라는 것이다.



이 책에 많은 이들이 경탄하는 까닭은, ‘인류가 한꺼번에 사라진다면’이라고 하는 참신한 가정에 기반한 주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미국 최고의 과학저술상’을 수상한 저널리스트다운 작가의 치밀한 글쓰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앨런 와이즈먼은 인류와 함께 사라질 것들은 무엇이고 인류가 지구상에 남길 유산은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머나먼 ‘지적 탐험’에 나선다.

그는 우리나라의 비무장지대, 폴란드-벨라루스 국경의 원시림, 터키와 북키프로스에 있는 유적지들, 체르노빌, 미크로네시아, 아프리카, 아마존, 북극, 과테말라, 멕시코 등에 이르는 기나긴 여행을 통해 직접 마주친 놀라운 풍경들을 섬세한 언어로 풀어낸다.

여기에, 고생물학자ㆍ해양생태학자ㆍ박물관 큐레이터ㆍ지질학자ㆍ다이아몬드 광산업자ㆍ우리나라 비무장지대의 환경운동가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에게서 얻은 지식과 정보를 씨실과 날실 삼아 자기만의 통찰력으로 엮어낸다. 이로 인해 여러 매체로부터 자칫 딱딱하고 어려워지기 쉬운 과학 논픽션의 새로운 전범이 되었다는 극찬을 받았다.



이 책이 우리에게 더욱 특별한 이유가 있다. 바로 우리나라의 비무장지대만을 따로 다룬 13장 때문이다. 비무장지대는 인간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완전히 황폐화된 자연이, 어떻게 인간 없는 환경에서 순식간에 복원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기적의 공간이다. 이념이나 호오(好惡), 빈부도 없이, 반달가슴곰, 스라소니, 사향노루, 고라니, 산양이 돌아다니는 에덴과도 같은 땅이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비무장지대 방문 경험이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자연이 화해하게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해주었다면서, “그런 아름다운 꿈을 꾸게 해준 한국에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을 한번 둘러보자. 집과 도시, 주위의 지대, 그 아래의 포장된 땅, 그 땅 속에 숨겨진 흙 등을 다 그대로 두고 인간만 몽땅 추려내는 것이다. 우리를 다 쓸어버리고 나면 무엇이 남는지 보자. 우리가 다른 생물들에게 가하는 무지막지한 압력의 부담에서 갑자기 해방되면 자연은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우리가 가동하고 있는 뜨거운 엔진이 전부 꺼지고 나면 기후는 얼마나 빨리 이전 상태로 회복될 수 있을까? 가능하긴 할까?

잃어버린 땅을 되찾아 아담 또는 호모하빌리스 이전 시절의 푸른 빛깔과 향기를 되살리려면 얼마나 오래 걸릴까? 우리가 남긴 흔적을 자연이 전부 지워버릴 수나 있을까? 우리의 어처구니없는 도시와 토목공사의 결과물들을 다 어찌할 것인가? 무수한 플라스틱이며 비닐이며 독성 합성물질을 본래의 순한 원소로 되돌릴 수 있을까? 자연에서 너무 벗어난 것들은 영영 분해되지 않고 그대로 남지 않을까?

우리가 창조한 가장 훌륭한 것들, 예컨대 건축, 미술, 정신의 발현 등은 어떻게 될까? 태양이 팽창하여 지구를 잿더미가 되도록 태워버릴 때까지 남아 있을 만한 무궁한 것이 과연 있을까?

지구가 다 타버린 뒤에라도 우주에 우리의 자취가 희미하게나마 남기는 할까? 계속 퍼져나가는 빛이나 메아리가 남아 있을까? 우리가 한때 여기 있었다는 신화 등이 별들 사이에 남을까?(p. 24)


한때 맨해튼은 물을 술술 잘 빨아들이는 면적 70제곱킬로미터의 땅이었다. 이 땅에 얽혀서 사는 나무뿌리와 풀뿌리는 연평균 120센티미터의 빗물을 흡수하여 필요한 만큼 실컷 마시고 나머지는 수분으로 발산하여 공기 중에 내놓았다. 뿌리가 빨아들이지 못한 물은 지하수면으로 흘러들어 곳에 따라 호수나 습지를 이루기도 했고, 여기서 나온 물은 40개의 물줄기를 따라 바다로 흘러갔다. 그러던 물줄기가 지금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아래에 갇혀버린 것이다.(p. 53)



여러 연구에 따르면, 길고양이 한 마리가 1년에 28마리의 새를 죽인다고 한다. 농가에 사는 고양이는 그보다 훨씬 많이 죽인다는 사실을 템플과 콜먼은 확인했다. 구할 수 있는 모든 데이터와 자신들이 알아낸 바를 비교해 본 결과, 두 사람은 위스콘신 시골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약 200만 마리의 고양이들이 최소한 780만 마리, 많게는 2억 1,900만 마리까지 새를 죽이는 것으로 추산했다. 위스콘신주 시골에서만 그렇다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따지면 그 수가 수십억 마리에 이를 것이다. 실제 총계가 어떻든, 인간이 고양이를 데려다 놓은 온갖 대륙과 섬에서는 지금도 비슷한 크기의 어느 포식자보다 고양이가 수도 많고 경쟁력도 앞선다. 고양이가 없던 그곳에 고양이를 데려간 인간들이 없는 세상에서 고양이는 아주 잘 적응할 것이다. 우리가 사라져 버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명금류들은 우리를 길들여 먹이와 살 곳을 제공하도록 만들고, 아울러 부를 때 와주기를 바라는 부질없는 호소를 무시하면서도 다시 먹이를 주게 만들 정도의 관심만 보이는 기회주의자들의 후손을 상대해야 할 것이다.(pp. 335-336)




와이즈먼은 특별한 과장 없이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 인간이 지구에 끼치는 해악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로 인해 나와 후손들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수시로 상기하게 된다. 특히 고압전선으로 인해 새들이 1년에 5억 마리씩 희생되고 있다든가, 미세플라스틱을 비롯한 수많은 쓰레기들이 바다로 흘러들어가 거의 모든 해양생물에 영향을 미치고 이것이 결국 우리 입속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든가, 수많은 동식물을 죽음으로 이끄는 납이 완전히 씻겨나가는 데 3만 5,000년의 시간이 걸린다든가 하는 내용은 죄책감과 불안감을 가중시키기 충분하다.

이 책이 진짜 계시록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우리는 이 책을 참회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고도로 지능이 발달한 생명체인 우리 인간이 영원히 남길 수 있는 흔적이라곤 고작 방송전파 정도라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우리보다 큰 존재인 지구 앞에서 보다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인간 없는 세상』은 어쩌면 ‘인간 있는 세상’을 위한 마지막 호소일지 모른다.



우리 때문에 지는 부담을 덜어버린 세상, 사방에 야생 동식물이 멋지게 자라는 세상을 생각하면 우선 마음이 솔깃해진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이 초래한 온갖 경이로움의 상실을 생각하면 금세 아픔이 되살아난다. 인간이 만들어 낸 것 중에 가장 놀라운 존재인 ‘아이’가 다시는 푸른 대지에서 뛰어놀 수 없게 된다면 과연 무엇이 우리 뒤에 남을 것인가? 우리 영혼 가운데 진정으로 불멸한 것은 무엇인가?(p. 413)


저자 : 앨런 와이즈먼


미국의 유명 저널리스트이자 애리조나 대학 국제저널리즘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디스커버」 2005년 2월호에 소개, 책 『인간 없는 세상』(원제:The World without Us)의 뿌리가 된 짧은 에세이 「인간 없는 지구」는 ‘미국 최고의 과학 저술’로 선정되었다. 「하퍼」「뉴욕타임스」「애틀랜틱먼슬리」등의 매체와 미국의 국영 라디오 방송인 NPR에 진보적 관점의 통찰력 넘치는 글을 기고해온 그는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객원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홈랜즈 프로덕션의 선임 라디오 프로듀서이며 다수의 수상 경력을 가진 베테랑 작가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가비오따쓰: 세상을 다시 창조하는 마을』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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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의자 SN 컬렉션 1
이다루 지음 / Storehouse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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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기울어진 의자』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에서부터 관계가 뒤틀리거나 끊어지는 반복된 일상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반복된 일상의 이야기라면 대체적으로 에세이에 많이 등장한다. 소설의 경우 일상의 이야기가 소재로 쓰이긴 하지만 허구이다. 쉽게 표현하면 작가가 소설의 쓰는 의도(주제)에 맞는 허구의 일들을 상상을 동원해 사실인 것처럼 지어낸다. 이때 일상은 반복되는 일들이 아닌 경우가 많다. 반복되는 일상은 독자의 눈을 끌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일상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지어내 쓸까. 대답은 간단하다.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분야에 따라 일어난 사실이 기초가 되기도 한다. 역사소설처럼... 일반적으로 소설은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엮어 글로 만들어낸 이야기다.
그렇다면 『기울어진 의자』는 왜 일상의 반복된 일을 소설로 썼을까. 특히 반복된 일상은 독자의 눈을 끌지 않는데도 왜 그런 일을 소재로 사용한 것일까.
작가의 이야기를 조금 더 찬찬히 들여다보면 반복된 일상을 다룬 것이 아니라 그 일상 속 우리의 관계, 즉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게가 모두 다르게 나타나는 데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작가의 말을 들어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가 끊어지면 더 이상 우리가 아는 이야기는 없을 것이다.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둘 사이에 일어났던 일들은 변형되거나 찢기기 마련이다. 함께했던 두 사람이 헤어지면 공유했던 추억과 기억도 이편과 저편으로 나뉘고 조작된다. 인생의 징검다리를 건널 때마다 관계는 조금씩 변해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가 끊어지면 더 이상 우리가 아는 이야기는 없게 된다.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둘 사이에 일어났던 일들은 변형되거나 찢기기 마련이며 함께 공유했던 추억과 기억도 이편과 저편으로 나뉘고 조작된다. 한날한시에 함께 있었더라도 그 둘의 기억이 같다고 확신할 수 없다."

우리가 관계를 선택할 때 처음부터 기준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게 되는 관계의 양상을, 삶을 녹여내서 보여주는 책은 눈에 띄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것이 작가가 '관계의 사건'들을 글로써 다양하게 펼쳐보인 이유다.





나는 이 시간의 바깥바람이 좋았다. 열심히 달리지 않아도 되고, 누구와 어울리지 않아도 되고, 그저 혼자서 게으른 시간을 즐기기에 딱 좋았다.

어둡고 휑한 공간이 나의 내면과 비슷해서 동질감을 느꼈는지도 몰랐다. 언제부터 이 어둠은 나를 쫓아왔을까? 언제부터 나는 어둠과 같아졌을까? 아무것도 되지 못한 어른으로 자란 게 내 잘못일까? 엄마 탓일까? 아님 세상 탓일까? 달리라고 해서 달렸고 멈추라고 해서 멈췄는데, 나는 왜 뭣도 아닌 어른이 된 거지?

그때였다. 걸인이 몇 걸음 되지 않은 곳에서 내게 걸어오고 있었다. 검은 비닐봉지를 한 손에 들고 거적때기를 몇 개나 겹쳐 입은 모습이었다.

고약한 냄새가 풍겼다. 나는 손으로 코를 막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를 지나던 걸인이 순간 걸음을 멈췄다.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침이 혀 안쪽에 고여 목구멍 안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나는 등을 돌리면서 걸인을 무시하고 애써 먼 곳을 바라보았다.

순간, 쩌렁한 목소리가 어둠을 깼다.

“어이, 김 씨! 오늘 봐둔 데 있어. 딴 데 가지 말고 나 따라와.” 놀란 나는 뒷걸음질 치다가 앞을 보고 내달렸다. 푸른 달빛이 길을 안내하는 듯했고, 두 발은 저절로 움직이는 듯했다.

어떻게 얼마나 달렸는지 몰랐다. 발바닥이 쓰라렸다.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계속 달렸다. 푸른 달빛 속으로 몸을 던지고 싶었다. 발등 위로 흙 자국과 핏자국만 선연했다.

「알바, 돌아가지 않을...」 중에서




그렇다면 일상을 왜 에세이로 쓰지 않았을까. 작가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우리네 삶의 반경이 넓어지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가까이서 얽히고 어우러지면서 관계 역시 촘촘하게 맺어질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삶이 더욱 고귀하게 빛날 것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

작가의 이 책의 주제를 표현하기에는 소설, 그것도 짧은 소설로 쓰는 것이 가장 명징하게 표현하는 일이라고 믿는 것 같다. 이 소설은 굳이 소설의 분야로 분류하자면 콩트(장편소설, 掌篇小說)에 해당한다. 짧은 소설이어서 '손바닥 소설'로 분류될 것 같다. 소설에 이미 '작을 소(小)'자가 들어가 있는데 가장 짧은 소설인 단편소설보다 더 짧아서 '손바닥만하다'는 의미로 이렇게 번역된 것 같다.

이 꽁트는 간혹 매우 짧은 글로 독자의 공감을 사기도 한다. 감동도 이끌어낼 수 있다. 그것은 예전에 비해 요즘 글쓰기와 더 잘 맞는 것 같다.

긴 문장보다는 짧은 문장, 온전한 단어보다는 축약어가 더 잘 읽히는 요즘 세대이다. 꽁트는 태생이 짧은 소설이니 다시 읽히기에 더 없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사전의 힘을 빌어 콩트의 의미를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본다.

콩트는 장편소설, 혹은 엽편소설로도 불리운다. 엽편소설은 나뭇잎 넓이 정도에 완결된 이야기를 담아내는, 단편소설보다도 짧은 소설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보통 A4용지 1매 분량으로, 흔히 손바닥 크기 분량의 소설을 뜻하는 '장편소설(掌篇小說)' 또는 '미니픽션(minifiction)'이라고도 한다. 주로 꽁트(conte)라고 불려지는 엽편소설은 가볍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하며, 예상을 뒤엎는 경이로운 결말을 갖는 것이 공통된 특징이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엽편소설은 나뭇잎처럼 작은 지면에 인생의 번쩍하는 한순간을 포착해 재기와 상상력으로 독자의 허를 찌르는 문학 양식이다.

특히 작가의 세계관과 문학작품으로서의 예술성을 응축시켜 놓는 데 가장 적절한 문학적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수정이가 딸과의 전화를 끊고 남편에게 전화했다. 예정된 일정이었던 학부모 모임 참석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수정이는 남편에게 집안 상황을 물은 다음에,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일까지 점검했다. 이어서 사야 할 식자재를 하나씩 읊었다. 그 모습은 직장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일일업무를 지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수정이는 남편의 게으름을 나무랐고 어설픔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전화기 저 편에서 한숨이 들리는 듯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수정이의 휴대폰이 격렬하게 진동했다. 상사의 전화였다. 수정이는 몸을 돌려 전화를 받으면서 고개를 숙이고 업무 지시를 받았다. 앞으로 더욱 신경 쓰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전화를 끝냈다.

수정이는 한숨을 크게 쉬고는 내게 미안하다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그녀를 안심시켰다. 나는 회사로 급하게 뛰어가는 수정이를 바라봤다.

마음이 급했던 수정이는 출입구 앞에서 한쪽 구두가 벗겨졌다. 깡충 걸음을 하고 신발을 찾아 신은 수정이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수정이가 앉았던 의자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의자를 지탱하는 네 개의 다리 중에서 두 군데나 빠져 있었다. 나는 기울어진 쪽을 손으로 들어 올려서 수평을 맞췄다. 내가 손을 떼자마자 의자는 다시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기울어진 의자」 중에서



"일상에서 만나는 당연하거나 혹은 익숙해서 말하지 않은 모든 것들을 글로 표현했다."

꽁트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도 책을 다 읽고나면 작가의 이 말을 이해하게 된다. 이 책에 실린 34편의 짧은 소설의 주제, 소재들은 내용이 모두 평범하다. 언젠가 한 번 겪어을, 앞으로 겪게 될지 모를 우리들의 이야기다. 다만 글로 옮겼을 뿐이지 한 번도 겪지 않았던 사람도 TV의 가족 드라마에서 보았음직한 내용이다. 작가의 글솜씨를 한층 돋보이게 하는 글들이다.


저자 : 이다루


전 아나운서, 승무원, 기자, 쇼호스트, 리포터, 홈쇼핑 게스트, MC, 강사 등 17가지 직업인. 말과 글의 힘을 나누는 언어코치이며, 생각을 던지는 글을 쓰는 작가다. 경희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전략커뮤니케이션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익숙한 낯섦을 이야기 하며 사는 게 곧 글이라 여긴다. 일상에서 만나는 당연하거나 혹은 익숙해서 말하지 않은 모든 것들을 글로 표현한다. 2020년 첫 에세이로 「내 나이는 39도」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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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집
래티샤 콜롱바니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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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 팬데믹으로 우리의 삶은 정지된 듯 보인다. 하루하루가 음습하고 어둑하다. 엄동설한에 밖으로 내몰린 집 없는 아이들처럼 우리들에겐 삶의 본능만 반짝거린다. 지금까지도 일상에 너무 많은 변화를 가져왔지만, 금세 나아질거란 희망을 버리면서 어떻게든 살아 남아야 한다는 생존본능만 부여잡고 있는 형국이다. 감염병 세계적 대유행은 이처럼 우리 생활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이미 죽어간 수십만~수백만의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더 많은 수의 확진자가 전 세계적으로 발생되고 있어 방역 모범국으로 칭찬받던 우리나라도 거리두기 등 방역 단계를 높이고 있다.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기 전에는 생존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이 우리 나라 전반에 퍼지기 시작할 경우 지금까지의 방역 노력은 물거품이 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지나친 방역은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부의 잘못된 권력"이라며 국경 폐쇄 조치나 커피숍 등에 내린 집합금지 명령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시위가 유럽 각국에서 연일 계속됐다. 때를 맞춰 수그러들던 확진자가 각국에서 하루에 수만~수십만 명으로 늘어난 데서 각국 정부는 다시 더 강력한 방역 대책을 앞다퉈 발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방역 당국과 의료진의 치열한 예방과 치료에도 수그러들기는커녕 오히려 확산되는 느낌이다.

최소 일주일 전부터 확진자가 세 자리 숫자를 기록하며 좀처럼 줄지 않는다. 소설 서평을 쓰면서 왠 팬데믹 얘기를 끄집어 내나 의아스럽겠지만 이 소설 『여자들의 집』이 사회적 약자들의 얘기이기 때문이다. 전쟁이나 팬데믹 상황에서 여성. 노약자 등 사회적 약자의 희생이 더 크다. 이는 역사나 각종 여성 관련 통계수치가 증명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의 2020년 일시휴직자의 추이 분석에 따르면 3~5월 일시휴직자 가운데 여성의 비중이 62.5%로 남성(37.5%)보다 25퍼센트포인트 높다. 또, 미국 노동부의 4월 실업률 통계를 보면 여성 실업률이 15.5%로 남성 13.0%에 비해 확연히 높다. 노동 시장에서 가장 먼저 무너져 내린 것이 여성 노동자라는 뜻이다.

특히나 미국은 근 10년간 여성 노동자의 일자리를 늘리는 정책적 노력의 결과로 최근 전체 급여 노동자의 50%를 여성이 차지하는 성과를 이뤘다. 하지만 싱크탱크 경제정책연구소에 따르면 3월 급여 노동자 일자리 감소분의 59%가 여성에게 발생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여성 일자리가 특정 업종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3~5월 평균 일시휴직자 137.1만 명 가운데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에서 26.5만 명(전체 대비 19.3%)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으로 교육 서비스업에서 24.1만 명(17.6%), 도소매와 숙박 및 음식점업의 경우 총 20.7만명(15.1%)을 각각 기록했다. 또한 전미여성법률센터(NWLC)는 통계 분석을 통해 팬데믹 이전에 교육과 헬스케어 분야 일자리의 77%를 여성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팬데믹을 거치면서 사라진 일자리 중 83%가 여성의 일자리였다고 보고하고 있다.

꼭 업종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 소매업 일자리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절반에 못 미치는데 이번에 실직한 사람들의 91%는 여성이었다.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과하게 타격을 입은 것이다. 또한 임금이 낮은 40개 직업군에 종사하는 2220만 명 중 여성 비율이 거의 3분의 2에 달한다고 한다. 여성의 일자리 질이 남성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고, 위기가 생길 경우 가장 먼저 밀려나는 불안정한 고용 형태라는 반증이다. 또 다른 요인은 육아, 돌봄의 주된 책임이 여전히 여성에게 있다는 점이다.

팬데믹이 장기화되고 아이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여성과 남성 양육자 중 여성이 집에 남아 아이들을 돌보는 사례가 많아졌다.



세계 일류국가이면서 예술의 도시 프랑스 파리에도 학대받은 여자들의 피난소 '여성 궁전'이란 곳이 있다. 우리나라처럼 '여성 쉼터' 같은 곳이다.

이곳은 노숙자, 매 맞는 아내, 야만적인 할례로부터 딸을 지키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온 아주머니들 '타타' 등 도움이 필요한 여성들에게 최소한의 인간적인 존엄을 유지시켜주는 사회복지 공간이다.

이곳에 주인공 솔렌이 가면서 이 소설이 시작된다. 솔렌은 '잘나가는' 변호사이다. 어느 날 패소한 의뢰인이 눈앞에서 자살한 충격적인 사건으로 '번-아웃' 증상이 와 삶의 쉼표가 필요하다는 의서의 권유에 따라 자원봉사를 하러 온 것이다. 처음엔 살아온 환경이 너무 다른 자원봉사자 솔렌에게 마음의 한구석조차 내어주지 않지만 이곳 쉼터 여성들은 점차 서로를 보듬는 관계가 되고, 이 과정에서 솔렌도 자신만의 상처를 치유하고 삶의 방향을 재설정하게 된다.




『여자들의 집』은 막 마흔살 생일을 맞은 솔렌의 시선을 따라 이야기가 전개된다. 대필 작가’ 자원봉사를 하러 간다. 그가 찾아간 곳은 집 없는 여성 400명이 모여 산다는 쉼터로 '여성 궁전'이라 불리운다. 그곳에서 솔렌은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삶의 전쟁'을 겪어온 여성들을 만난다. 그리고 교과서 또는 뉴스에나 나오는 단어라고 느끼던, 자신과는 관계없다고 생각한 ‘소외 계층’의 민낯을 목격한다.

솔렌에게 ‘소외 계층’이란 동네 빵집 앞에 앉아 구걸하는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굳이 자신이 손 내밀어 돕거나 말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내가 적선을 조금 한들 근본적으로 바뀔 게 뭐가 있겠냐는 생각이 드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도시의 풍경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러다 ‘여성 궁전’의 여성들을 만나고, 그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람들임을 깨닫는다. 소외 계층 따위의 보통 명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처럼 숨 쉬고 웃고 울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된다. 남의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들이 왜 그렇게나 타인에게 까칠하게 굴고, 상식 밖의 소리를 대해며, 자기한테 필요한 것만 요구하고, 간단한 감사의 말도 제대로 하지 않는지 황당하다 못해 화가 나던 솔렌이다.

그 모든 것이 가난 때문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폭력적인 사회적 차별과 빈곤이 여성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뜨개바늘을 분주히 놀리던 여자가 잠시 눈을 들어 소리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여전히 무심한 얼굴이었다. 반면에 구석에 배낭들로 바리케이드를 쌓고 잠들었던 여자는 소스라쳐 잠을 깬 얼굴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조용히 해.” 잠을 깬 여자가 짜증을 냈다. 젊은 여자는 즉각 맞받아쳤다.

“왜 여기서 잠을 자느라고 난리야? 여긴 공동 구역이라고. 방도 침대도 있는데 왜 여기 내려와서 자냐고. 벤치 위에서 자고 싶으면 다시 길바닥으로 나가면 될 거 아냐. 그러면 정말 잠잘 데가 필요한 사람한테 방을 내줄 수 있잖아!” 배낭을 끌어안은 여자가 발끈했다.

“네가 길바닥 생활에 대해 뭘 안다고 그래? 길에서 뒹굴어 본 적도 없으면서!” 여자가 악을 쓰듯 소리를 질렀다. “길바닥 구경도 못한 네 엉덩짝이나 잘 간수해. 온갖 군데 뭉개고 다닌 내 엉덩짝에 너 따위가 맞장 뜨려고? 어디 한번 대 봐? 너는 강간을 몇 번 당해봤어?”

거의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차를 마시던 여자들도 덩달아 역성을 들고 나섰다. 모두 목소리가 높아졌다. 누군가가 젊은 여자의 머리채를 잡아 채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난투극이 벌어졌다.

솔렌은 손을 노트북 자판 위에 올려놓은 채 눈앞에서 벌어지는 장면에 얼이 나갔다. 맞은 편에 앉아 있던 크베타나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런 장면에 익숙한 것 같았다. “처음에 화를 내면서 들어온 저 여자는 생티아인데, 온종일 화를 내는 게 일이라우.” 안내 데스크 직원이 달려와 싸움을 말렸다. 직원은 생티아에게 계속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더 큰 징계를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미 한 달간 방문객 금지라는 징계를 받은 상태가 아니냐고 하면서. 생티아는 주위에 둘러선 ‘깜씨 아줌마들’에게 욕을 한마디 더 퍼붓고 배낭 바리케이드 뒤편의 여자를 향해서도 마지막 욕설을 날린 뒤 몸을 돌려 멀어져 갔다.(p. 115~117)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지만 너무 거대해 보이는 빈곤 앞에서 솔렌은 무력함을 느낀다. 하지만 타고난 것 없는 이들, 가졌던 모든 것을 빼앗긴 이들은 불행 앞에 무릎 꿇지 않았다. 모순적이게도 ‘여성 궁전’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사회에 발길질하며 어떤 식으로든 격렬하게 움직이는 모습에서 솔렌은 희망을 발견한다. 여자들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는지, 무너져 내린 무릎을 펴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그들의 삶에서 배운다. 그리고 각성한다. 아무리 작은 움직임이라도 결국에는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혼자라고 느끼는 사람에게 단 한 번이라도 손 내밀어 주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자신의 작은 날갯짓을 멈추지 않겠다고, 절대 이전의 무심한 삶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의 이러한 다짐은 『여자들의 집』 저자 래티샤 콜롱바니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리라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저자는 이 소설작품을 빌어 외친다.

당신과 나는 이미 싸울 준비가 되어 있고, 이길 준비도 되어 있다고. 우리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솔렌은 자신의 우울증을 해결하기 위해 찾아간 곳에서 더 큰 불행과 빛나는 희망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제부터 자신의 작은 날갯짓을 멈추지 않겠다고, 절대 이전의 무심한 삶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의 이러한 다짐은 『여자들의 집』 저자 래티샤 콜롱바니가 우리에게 필사적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다. 저자는 당신과 나는 이미 싸울 준비가 되어 있고, 이길 준비도 되어 있다고. 우리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솔렌을 통해.

이 책은 두 가지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된다. 솔렌의 이야기와 여성 궁전의 실질적 창립자 블랑슈 페롱의 이야기다. 블랑슈는 실제 인물인데 프랑스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 래티샤 콜롱바니가 자료를 모으는 중에 알게 되어 이 책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이 출판사 측의 설명이다.


저자 : 래티샤 콜롱바니(LAETITIA COLOMBANI)


작가, 영화감독, 배우. 1998년 〈마지막 메시지(LE DERNIER BIP)〉를 시작으로 몇 편의 단편영화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출했다. 2002년에는 한국에서도 개봉한 오드리 토투 주연의 영화 〈히 러브스 미(A LAFOLIE… PAS DU TOUT)〉의 감독을 맡아 호평받았고, 2008년에는 카트린 드뇌브 주연의 영화 〈스타와 나(MES STARS ET MOI)〉의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감독했다. 2017년 첫 장편소설 《세 갈래 길》을 발표하며 프랑스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국적도 원하는 것도 다른 세 여성이 각자의 삶을 극복하는 이야기를 엮어 낸 《세 갈래 길》은 평단과 독자들의 찬사를 모두 획득했으며, 한국을 포함해 39개국에서 출간되어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신작 《여자들의 집》은 프랑스 파리에 실재하는 쉼터 ‘여성 궁전’을 배경으로 엘리트 변호사인 솔렌이 자신과는 전혀 다른 전쟁을 겪어온 여성들과 만나며 겪는 변화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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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얼굴이 있다면 너의 모습을 하고 있겠지
고민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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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얼굴이 있다면 너의 모습을 하고 있겠지』. 제목은 길지만 글은 짧다. 연애 이야기여서 그럴까? 글을 오래 쓰고 짧은 글을 쓰셨을까 하는 의문에 독자가 내린 결론이다. '연애는 길게 이별은 짧게'라는 '연애도사'들의 충고대로. 여기서 연애는 '사랑'으로 변환시켜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사랑을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천연기념물 감이지만)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연애를 사랑으로 치환하면 쉽게 이해가 간다.

책장마다 실린 내용은 긴 사연과 의미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글로 가득하다. 그 글도 필요없을 땐 멋진 그림으로 대신한다.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보다 눈과 귀, 몸짓 등 원시적인 자기 표현이 가능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원시적인 표현은 사랑을 표시할 때는 강렬한 뜻이 전해져온다. 온기와 함께.





사랑 때문에 힘들어하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던 <연애의 참견>의 고민정 작가가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하루에도 수십 통씩 받은 메일의 내용 속의 울림에 감동하고 감수성 높게 받아들이며 함께 울고 웃던 내용을 모아 한 권의 에세이집으로 펴냈다. 때문에 이 책에는 수천 개의 사연과 사랑의 감정이 그대로 녹아 있다. ‘사랑 하나 하자는데, 왜 이렇게 힘이 들까.’ 이러한 애달프고도 막막한 물음에 대한 결론들과 다양한 사랑 이야기를 접하면서 깨달은 사랑에 대한 단상들을 분류하고 한데 묶어 모은 작가의 첫 번째 에세이집이 됐다.




작가에 따르면 운명의 그 사람을 발견했다는 생각에 설렌 날들부터 서로 마음이 오갔던 낮과 밤들, 그리고 울고 웃으며 추억을 쌓아간 사랑의 모든 순간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이 이야기들은 당신이 지금 사랑을 하고 있다면 그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이젠 이별하고 싶다면 지지부진해진 관계를 기꺼이 놓아버리는 용기를 움트게 만든다. 물론 사랑했던 사람을 추억하고 싶다면 기꺼이 그 시절, 그 공기를 느끼게 해주는 무드를 전해주고, 사랑 한가운데에서 어쩔 줄 모르던 스스로를 떠올리게 하는 상황으로도 가닿게 해준다. 그때가 언제든, 당신이 가장 사랑했던 순간, 사랑을 느끼는 사람 앞으로 데려가게 만드는 작가의 글과 따스한 시선들. 독자들은 누구나 읽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하고 이별하고 아파하고 또 다시 사랑을 꿈꾸는 독자들에게 이 책이 잔잔한 위안이 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담았으니까.





<연애의 참견>은 ‘로맨스 파괴 토크쇼’를 표방하며 지금 그 연애를 이어가면 안 되는 이유를 말해왔지만 어쩌면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찾고 있었다고 작가는 되짚는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고 말한다. 연애라는 것이 오롯이 한 세계와 한 세계가 만나는 일이라서, 그 세계 안에서 노닐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더라는 사실을. 누구도 사랑을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방법을 모르기에 우리는 배움도 연습도 없이 온몸과 온 마음을 다해 부딪쳐볼 수밖에 없다. 바글바글 끓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보다가, 친근함이라는 이름의 미지근해진 관계도 유지해보고, 모처럼 마주하는 사랑의 평온도 누리고, 다시 불을 지피는 순간도 맞이하면서 마치 처음인 듯 여전히 허둥지둥해보는 것. 이 책은 그렇게 사랑할 때만 가능한 온도들을 다채롭게 경험해보라고, 그게 당신의 체온이 될 거라며 다시금 사랑할 용기를 북돋운다.





살을 에듯 가슴이 저려도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꼬일 대로 꼬여 있는 연애와 작별한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겨야 한다. 하지만 그 후련함도 잠시일 뿐. 이별 이후에 멀쩡하게 살아가기 위한 노력 또한 온전히 스스로의 몫이라는 걸 혼자가 된 뒤에야 깨닫는다. 연애의 고통에서는 벗어났지만 일상의 공허함이라는 다음 파도가 외로운 당신에게 덮쳐오는 것이다. 이별 이후의 우리에게는 이별을 결심할 때만큼이나 큰 노력이 필요하다. 놓치고 있었던 자신만의 리듬을 되찾기 위해서, 다시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의 인생의 사랑들을 돌이켜보며 뜨겁게 사랑했던 그때의 자신을 불러내는 시간이 되기를 작가는 바란다. 제법 잘 사랑했고 제때 잘 이별한 스스로를 기특해하기를. 당신 곁에 잠시 머물렀던 그 사람을 기꺼이 떠올리고 흔쾌히 떠나보내기를. 그제야 비로소 “사랑을 제대로 주지 못했던 그 시절 그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했던 그 시절 나를” 안쓰러워하며 인생의 아름다운 시절을 통과해낸 자기 자신을 마음 편히 안아주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작가는 믿는다.






이 책은 글뿐만 아니라 그림도 매우 감성적이다. 글과 어울리는 그림들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향수도 불러일으킨다.

사진처럼 셧터를 누를 때 잡은 장면이 그대로 마음속에 들어와 박힌다. 감동을 더해서... 사진보다 더 감동적인 것은 그림을 그린 화가의 감동이 얹혔기 때문이리라. 박지영 화가가 그렸다. 독자로서는 처음 듣는 화가이다. 책의 글과 더불어 이 책이 독자들에게 감성 깊게 다가갈 수 있도록 단단히 한몫을 해냈으리라 독자는 판단한다. 그의 그림이 좋다. 사진작가의 사진보다 더 생생하고 화가의 감성까지 담겨 있어 좋아하기로 했다.




사랑을 속삭이던 나의 말들은

불평과 불만으로 변했고

변치 않음을 맹세하던 너의 말들은

짜증과 한숨으로 바뀌었다.

'이별을 배운적이 없어서' 중에서


끝난 관계지만 한때는 사랑했던 이를

사랑했던 방식대로 감싸고 드는 나를 발견하거나

이별의 책임을 모질었던 상대에게 돌리고 난 날엔

그런 사람을 선택한 나 자신과

이 관계를 지키고자 들었던 내 시간과 노력과 갈래갈래 마음이

끝없이 하찮아져, 서러웠다.

'왜 헤어졌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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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발견의 힘 - 나를 괴롭히는 감정과 생각에서 벗어나 평온과 행복을 찾는 여정
게일 브레너 지음, 공경희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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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지나치게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자신이 살아 남으려면 '남보다 앞서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이 때문에 경쟁의식이 내재화돼 끊임없이 스트레스가 쌓인다. 이로 인해 각종 정신질환에 노출되고 육체적으로도 이상 증세에 시달린다. 태어날 때부터 살기 위해 하는 것은 본능이다. 본능은 배고플 때 먹는 것, 힘을 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는 것, 신체 위협에 노출되면 공포감을 느끼는 것 등 지극히 단순한 것들뿐이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면 경쟁을 해서 이겨야 하는 점을 부단히 교육 받는다. 이때부터 살아 남기 위해서는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점을 끊임없이 경험하고 노력한다. 그러나 숱한 경쟁 속에서 살아 남아도, 잘 살 수 있을 정도로 풍요로워도 현대인의 의식 속에 뿌리 깊은 경쟁의식이 사라지지는 않는 것 같다. 이 지점에서 경쟁의식이 우리의 본능일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자신, 자아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점점 복잡해질수록,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고 주변 환경이 급속도로 변화할수록 우리는 정신적 공허함과 불안, 두려움, 소외감 등 부정적인 감정과 왜곡된 생각에 더 자주 시달리고 자신도 예측하지 못한 뜻밖의 순간에 삶의 의욕을 송두리째 잃어버린다고 의학자나 심리학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그래서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정신적, 심리적 고통은 더 느끼게 되고 어느덧 개인의 고통은 삶의 한 부분이 된다. 하지만 그것이 궁극의 현실은 아니며 이 책은 그 문제를 다룬다.

책에 따르면 사람들은 보통 마음의 고통과 혼란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를 때 자신을 더욱 채찍질하며 최선을 다한다. 물질적인 풍요를 추구함으로써 자신이 느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로움을 털어내려 애쓴다. 증상이 심해지면 장기간 심리치료를 받고, 긍정적으로 사고하자는 다짐을 반복하거나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이것은 자기 스스로 한계가 있으며, 상처를 입거나 모자라서 고쳐야 된다는 신화를 지속시키면서 지금보다 더 나은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누리는 미래를 꿈꾸게 한다. 그런데 이 모자란 자아가 진짜 당신이 아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언제라도 행복하고 자유로울 수 있다면? 『자기발견의 힘』의 저자 게일 브레너는 묻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기계발은 '자아 찾기'부터 시작한다. 자아를 찾아내 자신의 내면속 감각이 부정적 감정들에 노출될 때 일으키는 각종 부작용(주로 정신적 결함)에 주목한다. 저자는 지금까지 쏟아져 나온 자기계발식 해결 방법은 고통에서 벗어날 전략과 시각을 제시하지만 근본적인 오류를 내포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계속 행복을 추구하도록 하면서 끝내 찾지 못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자신을 더 사랑하라,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감사해야 된다는 걸 기억하라는 조언은 일시적으로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하지만 자신이 상처 입고 다쳐서 고쳐야 되는 존재가 아니라 본래 자신이 완전한 존재임을 알아야만 고통을 해결할 방법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제안하는 것은 통상적인 행복 추구 방식과 전혀 다르다. 당신에게 더 나은 자신을 꿈꾸라고 하지 않는다.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가졌든, 늘 바로 여기에 평온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우리는 이 완전한 진실을 너무 쉽게 간과하며 살았던 것이다. 특히 저자가 25년간 직접 경험하고 내담자의 생생한 사례를 통해 찾아낸 사실과 알토란 같은 전문 지식은 많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시시때때로 맞닥뜨리는 고민을 파헤치고 해결하는 데 더없이 유용한 지침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무한 잠재력을 가진 '자아 확신'으로 시작되는 것을 제시한다. 현대 심리학의 창시자로 불리우는 칼 구스타프 융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심리학에 문외한인 독자가 주장한다는 것은 그리 설득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우선 저자의 주장과 견해를 존중하고 경청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기존의 자기계발 방식이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한다면 이 책은 새로운 자기계발 방법을 내놓을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을 읽는 독자의 기대이기도 하다.

우선 비전문가이고 상담 희망자인 독자 입장에서 저자의 주장을 경청한다. 저자는 우선 우리가 경험하는 평범한 심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또한 우리가 스스로를 불행의 늪으로 빠뜨리는 과정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갈망하는 평온을 찾는 방법을 함께 모색해나간다. 어떻게 과거에 얽매이고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자신을 마비시키는지도 풀어낸다. 두려움, 슬픔, 수치심 등 더 이상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방법을 알려줌으로써 자신이 동떨어지고 상처 입은, 제한된 존재가 아니라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을 원하는 대로 활용할 수 있음을 자각하게 해준다.

저자에 따르면 사람들은 흔히 사회에서, 또는 주변 사람들이 인정하는 성공이나 성취를 이루면 곧 행복해질 거라는 믿음을 갖고 살아간다. 이렇듯 외부에서 행복을 탐색하는 행위에 끈질기게 매달리면 행복을 경험할 공간이 사라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행복해지려면 뭔가를 해야 된다고 믿는 개인적인 자아가 나라는 관념이 거짓임을 알아야만 한다. 자아가 전체와 분리된다는 믿음은 큰 혼란을 초래한다. 우리는 그 생각이 진실이 아닌데 진실이라고 짐작한다. 그 목적을 결코 이루지 못하면서 스스로를 개선하려고 버둥댄다. 두려움의 실체가 뭔지도 모르면서 두려움에 휘둘려 선택한다. 원하는 것을 얻길 바라다가 뜻대로 안 되면 실망한다. 반복해서 습관에 사로잡혀 무턱대고 나아간다. 멈춰 서서 이 못마땅한 습관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이 책의 목적은 두 가지다. 이런 혼란스러운 영역을 명확히 밝히는 것과 자신이 평온한, 자각하는 존재라는 진실을 조명하는 것. 즉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요소를 명확히 파악하는 데 초점을 맞춰, 진정한 행복이라는 현실을 누리게 도우려는 것이다. 자격지심이나 통제해야 된다는 감정이 어떻게 행복을 앗아가는지, 두려움과 죄책감, 분노 등을 통해 감정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낱낱이 파헤치면서 몸에 밴 습성의 면면도 들여다본다. 다행히 우리는 탐구를 거들 이동 실험실을 갖고 있다. 직접경험이 그것이다. 언제든 이 답답함의 원인을 내면의 과학자에게 물어볼 수 있다.

고민에 빠지는 상황을 제대로 감지하면, 늘 옆에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다. 결국 마음이 물러나고 모든 것이 드러난다. 종교적이기도 하고, 과학(의학)적이기도 한 주장에 쉽게 문제점을 찾을 수 없다. 상담을 위해 찾아오는 내담자나 독자들 대부분도 마찬가지리라.

우리는 모두 행복을 바라면서 살지만 그 행복이 멀리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행복을 찾아가는 길에 대해 고민한다. 그런데 행복이 바로 지금, 내 안에 있다면 어떨까? 행복도 하나의 심리인 만큼 내가 조절할 수 있다. 그 행복을 찾기 위한 과정에서의 스트로스로 불안과 혼란을 겪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수많은 종교인과 철학자들, 이른바 현자들은 항상 평온함을 상징한다. 그러나 과연 평온함이 현자만의 것일까? 그렇지 않다. 평온함은 나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번민에 시달리는 일반인들은 심리치료에 의존하는 경우도 많지만, 심리치료 역시 다른 사람에 대한 의존이고 또 나를 억지로 바꾸는 과정일 수 있다. 나에게 더 집중하고 내 목소리를 듣다보면 스스로의 힘으로 평온해질 수 있다. 그러려면 기존의 습관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의 마음을 들여다봐야 한다.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그러지 않나. 나에게서 당장 나오는 행복과 평온함을 생각해보면서 이 책을 읽어보자.





이 책은 전체 10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의 말미에는 앞서 이야기한 내용을 요약하거나 구체적인 행동 방법, 즉 실험이나 조사를 할 수 있는 섹션을 수록함으로써 순간의 경험을 탐구하게 한다. 이 부분을 자세히 살피면서 직접 따라 해보면 자신의 본모습을 알아낼 가능성을 읽을 수 있다. 물론 방관자에서 벗어나 ‘예스’라고 말해야만 평온과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독자들에게 저자 자신이 겪은 이야기와 본문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대략적으로 알려준다. 누구나 그렇듯 그저 행복해지고 싶었지만 늘 불안, 혼란, 관계 문제에 시달렸고, 평범한 심리치료를 받았지만 여전히 일상에서 느끼거나 선택하는 방식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곧 평범한 우리 모두의 삶과 일맥상통한다.

이어 제1장에서 ‘나’를 발견한다는 것 : 우리의 관심을 생각과 감정이 아닌 직접경험의 한복판으로 옮기라고 조언한다. 그러면 순수의식 속에서 평온해지고, 왜곡된 생각과 복잡한 감정으로 고통스러워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러운 기쁨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예스!’ 속에서 살면 자신이 온전하고 무한한 존재임을 알게 되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깊이 수용하게 되며, 자각하는 순간 제한적인 시각을 넘어 모든 것이 변하는 현실을 접하게 된다고 말한다.

제2장에서는 '당신은 왜 불행할까'가 주제다. 자신의 본모습을 아는 길을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 어떻게 왜 괴로운지를 밝히고,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의 개요를 제시한다. 행복을 갉아먹는 고민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한다. 자신을 항상 무언가 부족한, 분리되고 제한적인 존재로 여기지 말고 그저 상황을 직시하면서 불행을 일으키는 본질을 명확하게 보면 갈등, 저항, 분리가 없음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 제3장 '당연시하는 습관에서 새로운 가능성으로'로 이어가면서 당연시하는 현실에 의문을 갖지 않는 습관적인 태도의 이면에 도사린 두려움, 한계, 불만을 파헤치고 어떻게 하면 그러한 패턴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내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섯 가지 필수 특성, 즉 열림, 호기심, 수용, 전념, 연민, 겸허를 강조한다.

제4장 '도망칠 것인가, 머물 것인가' 자기발견의 필수 특성인 열림, 수용, 전념, 겸허를 바탕으로 감정의 경험을 더 직접적으로 탐구한다. 우리는 툭하면 감정에 휘말리고, 그 감정을 파악하는 걸 겁낸다. 따라서 감정이 실제로 무엇인지, 왜 거기에 빠지는지부터 살펴보고 감정을 풀어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감정을 직시하면 삶을 즐길 수 있고 이후에 감정이 다시 생겨도 더 이상 평온을 해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사례로 증명한다.

제5장 '생각의 퍼즐'을 통해서는 강력한 생각이 어떻게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아 자신과 세상을 잘못 보게 만드는지를 알아본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생각과 관심의 고리를 느슨하게 하는 방법도 알려준다. 오랫동안 휘둘린 사고 패턴에서 빠져나오면 낯선 영토에 들어선다. 모든 사고 구조가 해체되면, 활짝 열려서 뇌가 재배열되는 느낌이 든다. 이 열린 상태에 완전히 젖어들면 비판, 근심, 후회의 수렁에 빠지지 않고 잠재성이 넘쳐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제6장 '난 실패할 거야'는 자신이 성별, 나이, 인종, 역할, 성격을 가진 분리된 사람이라는 믿음은 고통의 근원이다. 이 장에서는 모든 문제를 일으키는 두려움과 부족감에 대해 알아본다. 우리는 두려움과 부족감을 느끼는 익숙함에 매달려서 자신을 알고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떻게 대응할지 안다고 생각하면서 안심한다. 아는 것은 안전하게 느껴지는 반면 모르는 것은 불안하고 이상하고 불확실해 보인다. 모르는 게 싫어서 익숙하고 불쾌한 결과를 낳는 아픈 습관을 선택한다. 새롭고 낯선 것을 선택하는 모험을 하지 않는다. 우리를 사로잡는 두려움의 본성과 그 형태를 파악하면서 두려움에서 야기되는 ‘노’라는 언어와 신체의 반응 등을 살펴본다.

제7장 '왜 나만 이런 걸까'는 본격적으로 개인의 심리에 스며드는 자격지심이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지를 알아본다. 자신으로부터 세상 속으로 관심을 돌리게 하는 이 단편적인 습성에 몰두하면 자신의 본모습을 잊게 된다. 문제의 근원을 탐구하지 못하고 목숨이라도 걸린 듯이 욕구를 채우기 위해 헤매고 다닌다.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상황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면 자신이 분리된 존재라고 믿고 그것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인다. 과대평가 또는 과소평가된 정체성에서 감정적인 반응은 거부되거나 무시당하거나 비판받는 느낌에서 생긴다. 이러한 자격지심에서 벗어나 진실은 항상 순수하고, 지금까지 일어난 일에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 무한한 잠재력이 넘쳤음을 깨닫도록 해준다.





이 같은 챕터의 구분을 통해 독자들이 혼동하기 쉬운 문제점을 걷어내고 치유와 성장의 길로 안내한다. 굉장히 일목요연하고 설득력을 갖는 논리다. 더욱이 학설과 유용한 이론뿐만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통한 자기계발 방법을 창안해 독자들에게 자신 있게 내놓은 점은 저자의 신뢰성에 크게 도움이 된다.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독자의 심리치료가 적절하거나 그렇지 않거나에 대해서는 지적할 필요가 없다.

종교적 성격을 가미한 과학적 방법이기 때문에 반박하기도 어렵다. 믿고 가는 사람과 믿지 않고 거부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저자 : 게일 브레너(Gail Brenner)


임상심리학자이자 블로거로 활동하면서 사람들이 고통이 선택 사항이라는 것을 발견하도록 돕고 있다. 또한 25년간 자신의 경험과 상담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맞닥뜨리는 고민을 파헤쳐 가장 깊은 수용과 평온을 얻는 방법을 찾아냈다. 스트레스와 만성질환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한 논문을 저술했으며 노화, 죽음 등에 관련된 전문 지식도 풍부하게 쌓았다. 특히 더 많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늘 시달리는 불안, 혼란, 관계 등의 문제에서 벗어나 진정한 평온과 행복이 이미 여기 있음을 깨닫도록 해주기 위해 노력 중이다. 지은 책으로 『모든 마음의 핵심에서(At the Core of Every Heart)』,

『삶이 괴롭냐고 심리학이 물었다(Suffering is Optional)』 등이 있다.


역자 : 공경희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번역대학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전문번역가로 일하면서 『시간의 모래밭』,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파이 이야기』, 『우리는 사랑일까』,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 『보이지 않는 세계』, 『내가 알던 그 사람』, 『개가 되기 싫은 개』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지은 책으로 북에세이 아직도 거기, 머물다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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