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없는 세상 - 개정판
앨런 와이즈먼 지음, 이한중 옮김, 최재천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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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과연 영구 생존할 수 있을까. 만일 그럴 수 없다면 어떤 상황에서 멸종될까. 인류가 멸종된다면 지구는 어떤 모습이고, 우주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미래학자도 인류의 생존을 전제로 인류의 미래를 예견하는 일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오면 인류는 멸종할 수도 있다'는 경고음을 내는 과학자는 있다. 인류의 멸망은 곧 지구의 멸망을 의미하기 때문에 가장 가까이는 지구의 기후 변화가 예측된다. 또 바이러스나 외계인의 출현에 의할 수도 있다. 상상은 해볼 수 있지만 멸망의 시기나 어떤 힘에 의해 멸망할지는 그 이상에 위치한, 상상을 뛰어넘는 일이어서 예측키 어렵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하나의 영화를 떠올릴 수 있다. 바로 <혹성탈출>이다. 과학자 ‘윌 로드만(제임스 프랭코 분)’은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아버지(존 리스고 분)를 치료하고자 인간의 손상된 뇌기능을 회복시켜주는 ‘큐어’를 개발한다. 이 약의 임상실험으로 유인원들이 이용되고, 한 유인원에게서 어린 ‘시저(앤디 서키스 분)’가 태어나 ‘윌’은 자신 집에서 ‘시저’를 키우게 된다. 가족같이 살고 있던 윌과 시저, 시간이 지날수록 ‘시저’의 지능은 인간을 능가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시저’는 이웃집 남자와 시비가 붙은 ‘윌’의 아버지를 본능적으로 보호하려는 과정에서 인간을 공격하게 되고, 결국 유인원들을 보호하는 시설로 보내지게 된다. 그곳에서 자신이 인간과 다른 존재라는 것을 서서히 자각하게 되고 인간이 유인원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게 된 ‘시저’는 다른 유인원들과 함께 생존을 걸고 인간들과의 대전쟁을 결심하며 시작된다.

영화 <혹성탈출>의 한 장면.




이 책 『인간 없는 세상』은 역발상에 초점을 맞춘 논픽션이다. 상상이 아닌 현재 인류가 안고 있는 영구 생존의 위험 요소를 하나씩 뜯어보며 인류의 미래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 의식이 담긴 책이다.

이 책의 시작은 매우 도발적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인간이 모두 사라진다면, 지구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질문의 답을 찾는 여정을 그린 문제작이다. 이번 출판된 책은 개정판이다. 2007년 출간되자마자 전 세계 유수의 논픽션 상을 휩쓴 이 책은 출간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많은 독자들의 지지를 얻으며 살아 있는 고전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는 2020년 현재 전 세계를 마비시킨 코로나19를 비롯한 각종 바이러스의 창궐,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미세 플라스틱 문제, 빗물 흡수를 막는 아스팔트 탓에 매년 겪게 되는 물난리 등 일찍이 이 책에서 예견했던 내용들이 현실에서 속속 그 모습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는다는 것은 이러한 현실적 필요성에 의해서다. 그만큼 쉽지 않은 큰 문제에 부닥쳐 있는 인류다.



저자 앨런 와이즈먼은 인류와 함께 사라질 것들은 무엇이고 인류가 지구상에 남길 유산은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머나먼 ‘지적 탐험’에 나선다.

그는 우리나라의 비무장지대, 폴란드-벨라루스 국경의 원시림, 터키와 북키프로스에 있는 유적지들, 체르노빌, 미크로네시아, 아프리카, 아마존, 북극, 과테말라, 멕시코 등에 이르는 기나긴 여행을 통해 직접 마주친 놀라운 풍경들을 섬세한 언어로 풀어낸다. 여기에, 고생물학자ㆍ해양생태학자ㆍ박물관 큐레이터ㆍ지질학자ㆍ다이아몬드 광산업자ㆍ우리나라 비무장지대의 환경운동가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에게서 얻은 지식과 정보를 씨실과 날실 삼아 자기만의 통찰력으로 엮어낸다.




인간인 우리가 ‘인간 없는 세상’의 모습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최근, 이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광경이 지구 곳곳에 출몰하기 시작했다.

몇 년간 ‘하늘색’이 무슨 색인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만큼 뿌연 미세먼지로 가득했던 아시아 지역의 하늘이 다시금 청명해졌다. 도시의 진동과 소음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 호주에서는 캥거루가 차도를 질주하고, 칠레에서는 퓨마가 도심 한복판을 대낮부터 어슬렁거리고, 웨일스에서는 산양 떼가 시내 상점을 기웃거린다.

어떻게 된 일일까. 바로 인류를 위협하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이 급격히 바깥활동을 줄이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더욱 놀라운 건 이것이, 팬데믹 상황이 전 세계를 강타한 지 불과 1년도 되지 않은 2020년 현재의 일이라는 점이다. 인류가 그저 활동을 줄이는 것만으로 지구가 무서운 속도로 자기치유를 해나간다는 사실이 분명히 입증된 셈이다.

이번 『인간 없는 세상』 개정판에서 감수를 맡은 최재천 교수도 이러한 풍경들을 나열하면서, “지구는 끄떡없다. (…) 우리가 사라지면 공기와 물이 다시 맑아지며 지구는 훨씬 살기 좋은 곳으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런 점에서 앨런 와이즈먼이 2007년 집필한 『인간 없는 세상』은 인류에게 일종의 계시록과도 같은 책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 사라진 후 자연은 바로 다음 날부터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집 청소에 들어간다. 그렇게 불과 이틀 만에 뉴욕 지하철역이 침수하는 것을 시작으로, 도시가 숲으로 변하고 건물이 붕괴되고 농작물이 야생 상태로 돌아가는 등 웬만한 인간의 흔적이 사라지는 데 채 1세기도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플라스틱이나 청동 조각품 등은 더 긴 세월을 버티겠지만, 결국 영원히 남는 것은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 전파 정도라는 것이다.



이 책에 많은 이들이 경탄하는 까닭은, ‘인류가 한꺼번에 사라진다면’이라고 하는 참신한 가정에 기반한 주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미국 최고의 과학저술상’을 수상한 저널리스트다운 작가의 치밀한 글쓰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앨런 와이즈먼은 인류와 함께 사라질 것들은 무엇이고 인류가 지구상에 남길 유산은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머나먼 ‘지적 탐험’에 나선다.

그는 우리나라의 비무장지대, 폴란드-벨라루스 국경의 원시림, 터키와 북키프로스에 있는 유적지들, 체르노빌, 미크로네시아, 아프리카, 아마존, 북극, 과테말라, 멕시코 등에 이르는 기나긴 여행을 통해 직접 마주친 놀라운 풍경들을 섬세한 언어로 풀어낸다.

여기에, 고생물학자ㆍ해양생태학자ㆍ박물관 큐레이터ㆍ지질학자ㆍ다이아몬드 광산업자ㆍ우리나라 비무장지대의 환경운동가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에게서 얻은 지식과 정보를 씨실과 날실 삼아 자기만의 통찰력으로 엮어낸다. 이로 인해 여러 매체로부터 자칫 딱딱하고 어려워지기 쉬운 과학 논픽션의 새로운 전범이 되었다는 극찬을 받았다.



이 책이 우리에게 더욱 특별한 이유가 있다. 바로 우리나라의 비무장지대만을 따로 다룬 13장 때문이다. 비무장지대는 인간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완전히 황폐화된 자연이, 어떻게 인간 없는 환경에서 순식간에 복원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기적의 공간이다. 이념이나 호오(好惡), 빈부도 없이, 반달가슴곰, 스라소니, 사향노루, 고라니, 산양이 돌아다니는 에덴과도 같은 땅이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비무장지대 방문 경험이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자연이 화해하게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해주었다면서, “그런 아름다운 꿈을 꾸게 해준 한국에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을 한번 둘러보자. 집과 도시, 주위의 지대, 그 아래의 포장된 땅, 그 땅 속에 숨겨진 흙 등을 다 그대로 두고 인간만 몽땅 추려내는 것이다. 우리를 다 쓸어버리고 나면 무엇이 남는지 보자. 우리가 다른 생물들에게 가하는 무지막지한 압력의 부담에서 갑자기 해방되면 자연은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우리가 가동하고 있는 뜨거운 엔진이 전부 꺼지고 나면 기후는 얼마나 빨리 이전 상태로 회복될 수 있을까? 가능하긴 할까?

잃어버린 땅을 되찾아 아담 또는 호모하빌리스 이전 시절의 푸른 빛깔과 향기를 되살리려면 얼마나 오래 걸릴까? 우리가 남긴 흔적을 자연이 전부 지워버릴 수나 있을까? 우리의 어처구니없는 도시와 토목공사의 결과물들을 다 어찌할 것인가? 무수한 플라스틱이며 비닐이며 독성 합성물질을 본래의 순한 원소로 되돌릴 수 있을까? 자연에서 너무 벗어난 것들은 영영 분해되지 않고 그대로 남지 않을까?

우리가 창조한 가장 훌륭한 것들, 예컨대 건축, 미술, 정신의 발현 등은 어떻게 될까? 태양이 팽창하여 지구를 잿더미가 되도록 태워버릴 때까지 남아 있을 만한 무궁한 것이 과연 있을까?

지구가 다 타버린 뒤에라도 우주에 우리의 자취가 희미하게나마 남기는 할까? 계속 퍼져나가는 빛이나 메아리가 남아 있을까? 우리가 한때 여기 있었다는 신화 등이 별들 사이에 남을까?(p. 24)


한때 맨해튼은 물을 술술 잘 빨아들이는 면적 70제곱킬로미터의 땅이었다. 이 땅에 얽혀서 사는 나무뿌리와 풀뿌리는 연평균 120센티미터의 빗물을 흡수하여 필요한 만큼 실컷 마시고 나머지는 수분으로 발산하여 공기 중에 내놓았다. 뿌리가 빨아들이지 못한 물은 지하수면으로 흘러들어 곳에 따라 호수나 습지를 이루기도 했고, 여기서 나온 물은 40개의 물줄기를 따라 바다로 흘러갔다. 그러던 물줄기가 지금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아래에 갇혀버린 것이다.(p. 53)



여러 연구에 따르면, 길고양이 한 마리가 1년에 28마리의 새를 죽인다고 한다. 농가에 사는 고양이는 그보다 훨씬 많이 죽인다는 사실을 템플과 콜먼은 확인했다. 구할 수 있는 모든 데이터와 자신들이 알아낸 바를 비교해 본 결과, 두 사람은 위스콘신 시골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약 200만 마리의 고양이들이 최소한 780만 마리, 많게는 2억 1,900만 마리까지 새를 죽이는 것으로 추산했다. 위스콘신주 시골에서만 그렇다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따지면 그 수가 수십억 마리에 이를 것이다. 실제 총계가 어떻든, 인간이 고양이를 데려다 놓은 온갖 대륙과 섬에서는 지금도 비슷한 크기의 어느 포식자보다 고양이가 수도 많고 경쟁력도 앞선다. 고양이가 없던 그곳에 고양이를 데려간 인간들이 없는 세상에서 고양이는 아주 잘 적응할 것이다. 우리가 사라져 버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명금류들은 우리를 길들여 먹이와 살 곳을 제공하도록 만들고, 아울러 부를 때 와주기를 바라는 부질없는 호소를 무시하면서도 다시 먹이를 주게 만들 정도의 관심만 보이는 기회주의자들의 후손을 상대해야 할 것이다.(pp. 335-336)




와이즈먼은 특별한 과장 없이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 인간이 지구에 끼치는 해악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로 인해 나와 후손들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수시로 상기하게 된다. 특히 고압전선으로 인해 새들이 1년에 5억 마리씩 희생되고 있다든가, 미세플라스틱을 비롯한 수많은 쓰레기들이 바다로 흘러들어가 거의 모든 해양생물에 영향을 미치고 이것이 결국 우리 입속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든가, 수많은 동식물을 죽음으로 이끄는 납이 완전히 씻겨나가는 데 3만 5,000년의 시간이 걸린다든가 하는 내용은 죄책감과 불안감을 가중시키기 충분하다.

이 책이 진짜 계시록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우리는 이 책을 참회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고도로 지능이 발달한 생명체인 우리 인간이 영원히 남길 수 있는 흔적이라곤 고작 방송전파 정도라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우리보다 큰 존재인 지구 앞에서 보다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인간 없는 세상』은 어쩌면 ‘인간 있는 세상’을 위한 마지막 호소일지 모른다.



우리 때문에 지는 부담을 덜어버린 세상, 사방에 야생 동식물이 멋지게 자라는 세상을 생각하면 우선 마음이 솔깃해진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이 초래한 온갖 경이로움의 상실을 생각하면 금세 아픔이 되살아난다. 인간이 만들어 낸 것 중에 가장 놀라운 존재인 ‘아이’가 다시는 푸른 대지에서 뛰어놀 수 없게 된다면 과연 무엇이 우리 뒤에 남을 것인가? 우리 영혼 가운데 진정으로 불멸한 것은 무엇인가?(p. 413)


저자 : 앨런 와이즈먼


미국의 유명 저널리스트이자 애리조나 대학 국제저널리즘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디스커버」 2005년 2월호에 소개, 책 『인간 없는 세상』(원제:The World without Us)의 뿌리가 된 짧은 에세이 「인간 없는 지구」는 ‘미국 최고의 과학 저술’로 선정되었다. 「하퍼」「뉴욕타임스」「애틀랜틱먼슬리」등의 매체와 미국의 국영 라디오 방송인 NPR에 진보적 관점의 통찰력 넘치는 글을 기고해온 그는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객원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홈랜즈 프로덕션의 선임 라디오 프로듀서이며 다수의 수상 경력을 가진 베테랑 작가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가비오따쓰: 세상을 다시 창조하는 마을』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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