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집
래티샤 콜롱바니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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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 팬데믹으로 우리의 삶은 정지된 듯 보인다. 하루하루가 음습하고 어둑하다. 엄동설한에 밖으로 내몰린 집 없는 아이들처럼 우리들에겐 삶의 본능만 반짝거린다. 지금까지도 일상에 너무 많은 변화를 가져왔지만, 금세 나아질거란 희망을 버리면서 어떻게든 살아 남아야 한다는 생존본능만 부여잡고 있는 형국이다. 감염병 세계적 대유행은 이처럼 우리 생활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이미 죽어간 수십만~수백만의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더 많은 수의 확진자가 전 세계적으로 발생되고 있어 방역 모범국으로 칭찬받던 우리나라도 거리두기 등 방역 단계를 높이고 있다.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기 전에는 생존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이 우리 나라 전반에 퍼지기 시작할 경우 지금까지의 방역 노력은 물거품이 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지나친 방역은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부의 잘못된 권력"이라며 국경 폐쇄 조치나 커피숍 등에 내린 집합금지 명령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시위가 유럽 각국에서 연일 계속됐다. 때를 맞춰 수그러들던 확진자가 각국에서 하루에 수만~수십만 명으로 늘어난 데서 각국 정부는 다시 더 강력한 방역 대책을 앞다퉈 발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방역 당국과 의료진의 치열한 예방과 치료에도 수그러들기는커녕 오히려 확산되는 느낌이다.

최소 일주일 전부터 확진자가 세 자리 숫자를 기록하며 좀처럼 줄지 않는다. 소설 서평을 쓰면서 왠 팬데믹 얘기를 끄집어 내나 의아스럽겠지만 이 소설 『여자들의 집』이 사회적 약자들의 얘기이기 때문이다. 전쟁이나 팬데믹 상황에서 여성. 노약자 등 사회적 약자의 희생이 더 크다. 이는 역사나 각종 여성 관련 통계수치가 증명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의 2020년 일시휴직자의 추이 분석에 따르면 3~5월 일시휴직자 가운데 여성의 비중이 62.5%로 남성(37.5%)보다 25퍼센트포인트 높다. 또, 미국 노동부의 4월 실업률 통계를 보면 여성 실업률이 15.5%로 남성 13.0%에 비해 확연히 높다. 노동 시장에서 가장 먼저 무너져 내린 것이 여성 노동자라는 뜻이다.

특히나 미국은 근 10년간 여성 노동자의 일자리를 늘리는 정책적 노력의 결과로 최근 전체 급여 노동자의 50%를 여성이 차지하는 성과를 이뤘다. 하지만 싱크탱크 경제정책연구소에 따르면 3월 급여 노동자 일자리 감소분의 59%가 여성에게 발생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여성 일자리가 특정 업종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3~5월 평균 일시휴직자 137.1만 명 가운데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에서 26.5만 명(전체 대비 19.3%)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으로 교육 서비스업에서 24.1만 명(17.6%), 도소매와 숙박 및 음식점업의 경우 총 20.7만명(15.1%)을 각각 기록했다. 또한 전미여성법률센터(NWLC)는 통계 분석을 통해 팬데믹 이전에 교육과 헬스케어 분야 일자리의 77%를 여성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팬데믹을 거치면서 사라진 일자리 중 83%가 여성의 일자리였다고 보고하고 있다.

꼭 업종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 소매업 일자리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절반에 못 미치는데 이번에 실직한 사람들의 91%는 여성이었다.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과하게 타격을 입은 것이다. 또한 임금이 낮은 40개 직업군에 종사하는 2220만 명 중 여성 비율이 거의 3분의 2에 달한다고 한다. 여성의 일자리 질이 남성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고, 위기가 생길 경우 가장 먼저 밀려나는 불안정한 고용 형태라는 반증이다. 또 다른 요인은 육아, 돌봄의 주된 책임이 여전히 여성에게 있다는 점이다.

팬데믹이 장기화되고 아이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여성과 남성 양육자 중 여성이 집에 남아 아이들을 돌보는 사례가 많아졌다.



세계 일류국가이면서 예술의 도시 프랑스 파리에도 학대받은 여자들의 피난소 '여성 궁전'이란 곳이 있다. 우리나라처럼 '여성 쉼터' 같은 곳이다.

이곳은 노숙자, 매 맞는 아내, 야만적인 할례로부터 딸을 지키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온 아주머니들 '타타' 등 도움이 필요한 여성들에게 최소한의 인간적인 존엄을 유지시켜주는 사회복지 공간이다.

이곳에 주인공 솔렌이 가면서 이 소설이 시작된다. 솔렌은 '잘나가는' 변호사이다. 어느 날 패소한 의뢰인이 눈앞에서 자살한 충격적인 사건으로 '번-아웃' 증상이 와 삶의 쉼표가 필요하다는 의서의 권유에 따라 자원봉사를 하러 온 것이다. 처음엔 살아온 환경이 너무 다른 자원봉사자 솔렌에게 마음의 한구석조차 내어주지 않지만 이곳 쉼터 여성들은 점차 서로를 보듬는 관계가 되고, 이 과정에서 솔렌도 자신만의 상처를 치유하고 삶의 방향을 재설정하게 된다.




『여자들의 집』은 막 마흔살 생일을 맞은 솔렌의 시선을 따라 이야기가 전개된다. 대필 작가’ 자원봉사를 하러 간다. 그가 찾아간 곳은 집 없는 여성 400명이 모여 산다는 쉼터로 '여성 궁전'이라 불리운다. 그곳에서 솔렌은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삶의 전쟁'을 겪어온 여성들을 만난다. 그리고 교과서 또는 뉴스에나 나오는 단어라고 느끼던, 자신과는 관계없다고 생각한 ‘소외 계층’의 민낯을 목격한다.

솔렌에게 ‘소외 계층’이란 동네 빵집 앞에 앉아 구걸하는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굳이 자신이 손 내밀어 돕거나 말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내가 적선을 조금 한들 근본적으로 바뀔 게 뭐가 있겠냐는 생각이 드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도시의 풍경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러다 ‘여성 궁전’의 여성들을 만나고, 그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람들임을 깨닫는다. 소외 계층 따위의 보통 명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처럼 숨 쉬고 웃고 울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된다. 남의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들이 왜 그렇게나 타인에게 까칠하게 굴고, 상식 밖의 소리를 대해며, 자기한테 필요한 것만 요구하고, 간단한 감사의 말도 제대로 하지 않는지 황당하다 못해 화가 나던 솔렌이다.

그 모든 것이 가난 때문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폭력적인 사회적 차별과 빈곤이 여성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뜨개바늘을 분주히 놀리던 여자가 잠시 눈을 들어 소리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여전히 무심한 얼굴이었다. 반면에 구석에 배낭들로 바리케이드를 쌓고 잠들었던 여자는 소스라쳐 잠을 깬 얼굴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조용히 해.” 잠을 깬 여자가 짜증을 냈다. 젊은 여자는 즉각 맞받아쳤다.

“왜 여기서 잠을 자느라고 난리야? 여긴 공동 구역이라고. 방도 침대도 있는데 왜 여기 내려와서 자냐고. 벤치 위에서 자고 싶으면 다시 길바닥으로 나가면 될 거 아냐. 그러면 정말 잠잘 데가 필요한 사람한테 방을 내줄 수 있잖아!” 배낭을 끌어안은 여자가 발끈했다.

“네가 길바닥 생활에 대해 뭘 안다고 그래? 길에서 뒹굴어 본 적도 없으면서!” 여자가 악을 쓰듯 소리를 질렀다. “길바닥 구경도 못한 네 엉덩짝이나 잘 간수해. 온갖 군데 뭉개고 다닌 내 엉덩짝에 너 따위가 맞장 뜨려고? 어디 한번 대 봐? 너는 강간을 몇 번 당해봤어?”

거의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차를 마시던 여자들도 덩달아 역성을 들고 나섰다. 모두 목소리가 높아졌다. 누군가가 젊은 여자의 머리채를 잡아 채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난투극이 벌어졌다.

솔렌은 손을 노트북 자판 위에 올려놓은 채 눈앞에서 벌어지는 장면에 얼이 나갔다. 맞은 편에 앉아 있던 크베타나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런 장면에 익숙한 것 같았다. “처음에 화를 내면서 들어온 저 여자는 생티아인데, 온종일 화를 내는 게 일이라우.” 안내 데스크 직원이 달려와 싸움을 말렸다. 직원은 생티아에게 계속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더 큰 징계를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미 한 달간 방문객 금지라는 징계를 받은 상태가 아니냐고 하면서. 생티아는 주위에 둘러선 ‘깜씨 아줌마들’에게 욕을 한마디 더 퍼붓고 배낭 바리케이드 뒤편의 여자를 향해서도 마지막 욕설을 날린 뒤 몸을 돌려 멀어져 갔다.(p. 115~117)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지만 너무 거대해 보이는 빈곤 앞에서 솔렌은 무력함을 느낀다. 하지만 타고난 것 없는 이들, 가졌던 모든 것을 빼앗긴 이들은 불행 앞에 무릎 꿇지 않았다. 모순적이게도 ‘여성 궁전’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사회에 발길질하며 어떤 식으로든 격렬하게 움직이는 모습에서 솔렌은 희망을 발견한다. 여자들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는지, 무너져 내린 무릎을 펴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그들의 삶에서 배운다. 그리고 각성한다. 아무리 작은 움직임이라도 결국에는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혼자라고 느끼는 사람에게 단 한 번이라도 손 내밀어 주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자신의 작은 날갯짓을 멈추지 않겠다고, 절대 이전의 무심한 삶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의 이러한 다짐은 『여자들의 집』 저자 래티샤 콜롱바니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리라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저자는 이 소설작품을 빌어 외친다.

당신과 나는 이미 싸울 준비가 되어 있고, 이길 준비도 되어 있다고. 우리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솔렌은 자신의 우울증을 해결하기 위해 찾아간 곳에서 더 큰 불행과 빛나는 희망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제부터 자신의 작은 날갯짓을 멈추지 않겠다고, 절대 이전의 무심한 삶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의 이러한 다짐은 『여자들의 집』 저자 래티샤 콜롱바니가 우리에게 필사적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다. 저자는 당신과 나는 이미 싸울 준비가 되어 있고, 이길 준비도 되어 있다고. 우리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솔렌을 통해.

이 책은 두 가지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된다. 솔렌의 이야기와 여성 궁전의 실질적 창립자 블랑슈 페롱의 이야기다. 블랑슈는 실제 인물인데 프랑스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 래티샤 콜롱바니가 자료를 모으는 중에 알게 되어 이 책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이 출판사 측의 설명이다.


저자 : 래티샤 콜롱바니(LAETITIA COLOMBANI)


작가, 영화감독, 배우. 1998년 〈마지막 메시지(LE DERNIER BIP)〉를 시작으로 몇 편의 단편영화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출했다. 2002년에는 한국에서도 개봉한 오드리 토투 주연의 영화 〈히 러브스 미(A LAFOLIE… PAS DU TOUT)〉의 감독을 맡아 호평받았고, 2008년에는 카트린 드뇌브 주연의 영화 〈스타와 나(MES STARS ET MOI)〉의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감독했다. 2017년 첫 장편소설 《세 갈래 길》을 발표하며 프랑스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국적도 원하는 것도 다른 세 여성이 각자의 삶을 극복하는 이야기를 엮어 낸 《세 갈래 길》은 평단과 독자들의 찬사를 모두 획득했으며, 한국을 포함해 39개국에서 출간되어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신작 《여자들의 집》은 프랑스 파리에 실재하는 쉼터 ‘여성 궁전’을 배경으로 엘리트 변호사인 솔렌이 자신과는 전혀 다른 전쟁을 겪어온 여성들과 만나며 겪는 변화를 보여 준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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