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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의자 ㅣ SN 컬렉션 1
이다루 지음 / Storehouse / 2020년 10월
평점 :
이 책 『기울어진 의자』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에서부터 관계가 뒤틀리거나 끊어지는 반복된 일상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반복된 일상의 이야기라면 대체적으로 에세이에 많이 등장한다. 소설의 경우 일상의 이야기가 소재로 쓰이긴 하지만 허구이다. 쉽게 표현하면 작가가 소설의 쓰는 의도(주제)에 맞는 허구의 일들을 상상을 동원해 사실인 것처럼 지어낸다. 이때 일상은 반복되는 일들이 아닌 경우가 많다. 반복되는 일상은 독자의 눈을 끌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일상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지어내 쓸까. 대답은 간단하다.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분야에 따라 일어난 사실이 기초가 되기도 한다. 역사소설처럼... 일반적으로 소설은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엮어 글로 만들어낸 이야기다.
그렇다면 『기울어진 의자』는 왜 일상의 반복된 일을 소설로 썼을까. 특히 반복된 일상은 독자의 눈을 끌지 않는데도 왜 그런 일을 소재로 사용한 것일까.
작가의 이야기를 조금 더 찬찬히 들여다보면 반복된 일상을 다룬 것이 아니라 그 일상 속 우리의 관계, 즉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게가 모두 다르게 나타나는 데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작가의 말을 들어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가 끊어지면 더 이상 우리가 아는 이야기는 없을 것이다.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둘 사이에 일어났던 일들은 변형되거나 찢기기 마련이다. 함께했던 두 사람이 헤어지면 공유했던 추억과 기억도 이편과 저편으로 나뉘고 조작된다. 인생의 징검다리를 건널 때마다 관계는 조금씩 변해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가 끊어지면 더 이상 우리가 아는 이야기는 없게 된다.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둘 사이에 일어났던 일들은 변형되거나 찢기기 마련이며 함께 공유했던 추억과 기억도 이편과 저편으로 나뉘고 조작된다. 한날한시에 함께 있었더라도 그 둘의 기억이 같다고 확신할 수 없다."
우리가 관계를 선택할 때 처음부터 기준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게 되는 관계의 양상을, 삶을 녹여내서 보여주는 책은 눈에 띄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것이 작가가 '관계의 사건'들을 글로써 다양하게 펼쳐보인 이유다.
나는 이 시간의 바깥바람이 좋았다. 열심히 달리지 않아도 되고, 누구와 어울리지 않아도 되고, 그저 혼자서 게으른 시간을 즐기기에 딱 좋았다.
어둡고 휑한 공간이 나의 내면과 비슷해서 동질감을 느꼈는지도 몰랐다. 언제부터 이 어둠은 나를 쫓아왔을까? 언제부터 나는 어둠과 같아졌을까? 아무것도 되지 못한 어른으로 자란 게 내 잘못일까? 엄마 탓일까? 아님 세상 탓일까? 달리라고 해서 달렸고 멈추라고 해서 멈췄는데, 나는 왜 뭣도 아닌 어른이 된 거지?
그때였다. 걸인이 몇 걸음 되지 않은 곳에서 내게 걸어오고 있었다. 검은 비닐봉지를 한 손에 들고 거적때기를 몇 개나 겹쳐 입은 모습이었다.
고약한 냄새가 풍겼다. 나는 손으로 코를 막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를 지나던 걸인이 순간 걸음을 멈췄다.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침이 혀 안쪽에 고여 목구멍 안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나는 등을 돌리면서 걸인을 무시하고 애써 먼 곳을 바라보았다.
순간, 쩌렁한 목소리가 어둠을 깼다.
“어이, 김 씨! 오늘 봐둔 데 있어. 딴 데 가지 말고 나 따라와.” 놀란 나는 뒷걸음질 치다가 앞을 보고 내달렸다. 푸른 달빛이 길을 안내하는 듯했고, 두 발은 저절로 움직이는 듯했다.
어떻게 얼마나 달렸는지 몰랐다. 발바닥이 쓰라렸다.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계속 달렸다. 푸른 달빛 속으로 몸을 던지고 싶었다. 발등 위로 흙 자국과 핏자국만 선연했다.
「알바, 돌아가지 않을...」 중에서
그렇다면 일상을 왜 에세이로 쓰지 않았을까. 작가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우리네 삶의 반경이 넓어지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가까이서 얽히고 어우러지면서 관계 역시 촘촘하게 맺어질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삶이 더욱 고귀하게 빛날 것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
작가의 이 책의 주제를 표현하기에는 소설, 그것도 짧은 소설로 쓰는 것이 가장 명징하게 표현하는 일이라고 믿는 것 같다. 이 소설은 굳이 소설의 분야로 분류하자면 콩트(장편소설, 掌篇小說)에 해당한다. 짧은 소설이어서 '손바닥 소설'로 분류될 것 같다. 소설에 이미 '작을 소(小)'자가 들어가 있는데 가장 짧은 소설인 단편소설보다 더 짧아서 '손바닥만하다'는 의미로 이렇게 번역된 것 같다.
이 꽁트는 간혹 매우 짧은 글로 독자의 공감을 사기도 한다. 감동도 이끌어낼 수 있다. 그것은 예전에 비해 요즘 글쓰기와 더 잘 맞는 것 같다.
긴 문장보다는 짧은 문장, 온전한 단어보다는 축약어가 더 잘 읽히는 요즘 세대이다. 꽁트는 태생이 짧은 소설이니 다시 읽히기에 더 없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사전의 힘을 빌어 콩트의 의미를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본다.
콩트는 장편소설, 혹은 엽편소설로도 불리운다. 엽편소설은 나뭇잎 넓이 정도에 완결된 이야기를 담아내는, 단편소설보다도 짧은 소설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보통 A4용지 1매 분량으로, 흔히 손바닥 크기 분량의 소설을 뜻하는 '장편소설(掌篇小說)' 또는 '미니픽션(minifiction)'이라고도 한다. 주로 꽁트(conte)라고 불려지는 엽편소설은 가볍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하며, 예상을 뒤엎는 경이로운 결말을 갖는 것이 공통된 특징이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엽편소설은 나뭇잎처럼 작은 지면에 인생의 번쩍하는 한순간을 포착해 재기와 상상력으로 독자의 허를 찌르는 문학 양식이다.
특히 작가의 세계관과 문학작품으로서의 예술성을 응축시켜 놓는 데 가장 적절한 문학적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수정이가 딸과의 전화를 끊고 남편에게 전화했다. 예정된 일정이었던 학부모 모임 참석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수정이는 남편에게 집안 상황을 물은 다음에,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일까지 점검했다. 이어서 사야 할 식자재를 하나씩 읊었다. 그 모습은 직장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일일업무를 지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수정이는 남편의 게으름을 나무랐고 어설픔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전화기 저 편에서 한숨이 들리는 듯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수정이의 휴대폰이 격렬하게 진동했다. 상사의 전화였다. 수정이는 몸을 돌려 전화를 받으면서 고개를 숙이고 업무 지시를 받았다. 앞으로 더욱 신경 쓰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전화를 끝냈다.
수정이는 한숨을 크게 쉬고는 내게 미안하다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그녀를 안심시켰다. 나는 회사로 급하게 뛰어가는 수정이를 바라봤다.
마음이 급했던 수정이는 출입구 앞에서 한쪽 구두가 벗겨졌다. 깡충 걸음을 하고 신발을 찾아 신은 수정이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수정이가 앉았던 의자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의자를 지탱하는 네 개의 다리 중에서 두 군데나 빠져 있었다. 나는 기울어진 쪽을 손으로 들어 올려서 수평을 맞췄다. 내가 손을 떼자마자 의자는 다시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기울어진 의자」 중에서
"일상에서 만나는 당연하거나 혹은 익숙해서 말하지 않은 모든 것들을 글로 표현했다."
꽁트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도 책을 다 읽고나면 작가의 이 말을 이해하게 된다. 이 책에 실린 34편의 짧은 소설의 주제, 소재들은 내용이 모두 평범하다. 언젠가 한 번 겪어을, 앞으로 겪게 될지 모를 우리들의 이야기다. 다만 글로 옮겼을 뿐이지 한 번도 겪지 않았던 사람도 TV의 가족 드라마에서 보았음직한 내용이다. 작가의 글솜씨를 한층 돋보이게 하는 글들이다.
저자 : 이다루
전 아나운서, 승무원, 기자, 쇼호스트, 리포터, 홈쇼핑 게스트, MC, 강사 등 17가지 직업인. 말과 글의 힘을 나누는 언어코치이며, 생각을 던지는 글을 쓰는 작가다. 경희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전략커뮤니케이션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익숙한 낯섦을 이야기 하며 사는 게 곧 글이라 여긴다. 일상에서 만나는 당연하거나 혹은 익숙해서 말하지 않은 모든 것들을 글로 표현한다. 2020년 첫 에세이로 「내 나이는 39도」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