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할 것, 이기적일 것, 흔들릴 것 - 정말 나를 위해서만 살고 싶다면, 반드시 알아야 할 3가지 행복의 비밀
송정섭 지음 / 센세이션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처음 받아본 순간 디자인 서적 같은 느낌이 든다. 표지에 강렬한 빨간색을 바탕에 두고 제목은 번쩍번쩍 은빛 글자를 각도에 따라 색이 달라지게 썼다. 제목 자체도 그렇지만 제목의 위치도 왼쪽 위끝, 오른쪽끝 세로, 왼쪽 아래 흔들리듯 썼다. 부제는 흰글씨를 써 뚜렷하게 보이니 지금까지 읽어온 책 표지와 너무 달라 깜짝 놀랄 정도다. 두께는 적절하고 챕터나 단락의 구분도 명확하다. 들고 다니며 순간순간 짧게 읽어도 좋다.

내용도 표지만큼 다소 파격적이다. 우리가 일상 생활을 해나가며 흔히 부닥치고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생각을 담았다.

책 안의 기술 내용이 의미가 명확하고 계획적으로 배열돼 흔히 다양한 내용이 등장하는 책에서 느껴지는 지루함과 모호함을 피했다.

저자는 더욱 멍청하게, 이기적으로, 흔들리는 삶을 도전하고 변화하는 삶을 선택하라고 독자에게 바꿀 것을 권유한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 저자는 다만 독자들을 존중하고 위로하는 차원에서 문어체 위주로 사용하고 존대어를 사용하고 있다. 독자는 저자의 집필 취지를 많은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입장에서 인용문을 비롯, 모든 존대어를 예삿말로 바꾸어 책의 내용을 전달한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저자에 따르면 급변하는 사회. 우리는 적응하기도 전에 성장을 요구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데 이전까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느끼고 변화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세상이 또 한 번 달라졌다. ‘언택트’라는 이름으로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급증한 것이다.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생각이 많아진다. 그리고 아직 자기 자신만의 기준이 바로 서지 않은 사람은 부정적 생각으로 향하기 쉽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그리며 미리 걱정하고 불안해한다. 계획을 세우자마자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고 포기한다. 포기하는 자신을 보며 실망하고, 자존감은 더욱 낮아진다. 우울증, 공황장애, 수면장애가 더 이상 생소한 것이 아닌 세상이 되어버렸다. 코로나 시대에 힘들어하는독자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기 위한다는 뜻을 내비친다.



저자는 이어 자신의 경험과 케이스별로 독자들에게 차근차근 대화하듯 말을 계속한다. 쫓기듯 눈치 보며 중간만 하는 삶은 이제 지겹다. 때로는 혼자가 편하고, 때로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둘은 너무 많고 혼자는 너무 외롭다.

1.5명이 딱 좋을 것 같다. 성공에 목매며 미래만을 위해 달려왔다. 한 번의 실수도 허락되지 않는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사회인이 되던 날, 이제 삶은 정말 술술 풀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더 버거운 숙제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똑똑하게 살아온 결과는 달콤했다. 남 보기에 그럴듯한 모습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고, 남들보다 반 발자국은 앞서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 반 발자국을 앞서나가기 위해, 그리고 그럴듯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큰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는 더 이상 포기할 것이 남지 않았을 때가 되어서야 알았다.



이에 따라 이 책에는 평범하고 싶었던 저자의 좌충우돌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결코 짧지 않은 방황이었지만 오늘도 똑같은 이유로 방황을 시작하려는 청춘들을 만난다. 그들을 위한 이야기이고, 그 방황을 지나온 이야기다.

이제는 매번 마감 시간에 쫓기듯 마음에 들지도 않는 선택 앞에서 아쉬워하지 않는다. 마음에 들 때까지 미루고, 오답 노트만을 기억하라는 충고를 과감하게 무시한다. 성공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앞으로만 나아가는 삶은 그만하고 이제는 조금 멍청하고, 이기적이고, 마음껏 흔들리는 삶을 시작하기로 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전혀 익숙하지 않은 길을 거닐고, 감정에 더욱 솔직해지는 삶. 우선 조금 쉬고 보자는 배짱을 부리고, 신세 지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은 일 정도로 넘겨버리는 가벼움 속에 우리 자신만의 맞춤 행복이 자리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심각할 것 하나 없는 무한 긍정의 자세와 시종일관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삶에 대해 방황을 시작하려는 청춘들에게 이정표를 제시한다.



책에 따르면 청춘은 청춘다워야 한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사는 삶을 꿈꾸다가 하기 싫은 일에 둘러싸여 좌절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머리를 쓰기 전에 가슴을 열 수 있어야 한다. 사회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해내야 한다.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선생님께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면 행복해 질 수 있다는 말을 믿었던 우리, 비록 당장은 버겁지만 점점 나아질 거라고 믿었던 우리. 행복해지기 위한 고민을 해본 적이 있을까?

이 책은 저자가 직접 고민하고 경험했던 행복의 여러 모습을 담았다. 똑똑하지 않아도 괜찮고, 남을 위해 나를 잃지 않아도 괜찮고, 무너지고 좌절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성공하면 행복할까? 그럼 무엇이 성공일까?

더욱 멍청하게, 이기적이게, 그리고 흔들리며 사는 것이 청춘만이 만끽할 수 있는 행복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메시지는 잡아야 할 것은 놓치고, 놓아야 할 것은 쥐고 있는 우리에게 커다란 힌트가 될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에 대한 저자의 주장을 경청한다.



이 책은 정말 나를 위해서만 살고 싶다면, 반드시 알아야 할 3가지 행복의 비밀을 제시한다.

첫째, 멍청한 삶을 살아가며 느끼는 행복들에 관해서. '멍청하다'는 말에 화가 나거나 불편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행복하고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기로 한 단락 정리해서 저장해도 된다. 새 깃털만큼 가벼운 상대방을 향한 지적보다 나 자신에게 필터링 없이 던져지는 말에 더 상처를 입히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아챌 것을 주문한다. 모든 사람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상식 수준에서 이치에 맞는 행동을 하면 좋겠지만, 차이는 언제나 존재한다. 다름을 바꾸려고 하지 랄고 차이 나는 지금 모습 그대로가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이라고 강조한다.

둘째, '너'를 위한 삶에서 '나'를 위한 삶으로 바꾸라고 조언한다. 사람은 독립된 존재로 서 있을 때 비로소 '나'를 존재감이 세워질 수 있다. 누구나 혼자가 되고 누군가의 그늘에서 영원히 있을 수 없다. 정서적으로 혼자 설 수 있고 혼자 걸어 나아갈 수 있는 연습이 필요하다. 꽃길 같아 보여 선택했지만, 꽃에 가시가 돋친 가시밭길일 수도 있고, 흙길을 걷게 되어 실망하다가도 길옆으로 우거진 나무 그늘을 걷게 되는 경우도 많다.

보이지 않던 길도 시작하고 나면 보이게 마련이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나만의 취향을 드러내고 내가 좋아하는 선택만 해도 하루는 행복해진다는 말에 공감한다. "내가 좋으면 그만이다"는 말에 동의하면서...



셋째, 흔들리는 오늘 하루만 행복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행복하지 못할 이유는 무수히 많지만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한가지면 충분하다. 그 한 가지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는 말에 약간 당황스럽다. 그러나 조금 생각하면서 천천히 읽으면 뜻이 손에 잡힌다. 저자의 친절한 설명이 공감을 확신으로 바꾸어준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길을 잃었다면 잠시 멈춰 서서 지금까지 해온 흔적들을 돌아보라. 비록 오늘은 막막하고 지루하지만 이 지루함의 시작에는 열정이 가득했다. 막막한 현실을 이겨내는 해답을 자신의 과거에서 발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언급은 독자의 흐릿한 시야를 밝혀준다.

이어지는 저자의 말은 저자가 이 책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해진다. "사람들은 듣고 싶은 대로 듣고 집중하고 선별적으로 기억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하루는 수만 번 흔들리는 가운데 조금 행복하고, 만족하고, 고맙고, 감사하고 평온했던 일에 대한 것보다 나에게 일어난 일 중에 싫고, 어렵고, 귀찮은 일만을 기억해 내는 기술에 집중하고 살고 있다. 어제와 다른 오늘이라는 평범한 하루이지만, 오히려 즐겁고 여유로운 일이 더 많았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조차 하지 않고 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1.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작은 오점을 반복해서 떠올리는 일은 그만두라.

2. 이제부터라도 달라질 수 있다고 모든 일에 앞서 생각하라.

3. 지금부터는 내가 좋아하는 일 몇 가지 정도는 마음껏 할 수 있는 하루를 만들어 보라.

4. 당신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는 점을 끊임없이 각인하라.

5. 행복할 이유는 단 가지면 충분하다고 인지하라.

6.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라.

7. 당신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휠씬 더 중요한 사람임을 각성하라.

이 책을 모두 읽은 독자라면 누구든 한 번 도전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나 막상 하려면 만만찮은 시도가 걸림돌이 될지도 안다. 자신의 환경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어렵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라면 한 번 시도해보자는 욕망도 있을 것이다. 독자도 그렇다. 그래서 제안한다. 오늘 할 수 있는 것만 집중해서 해보자.



저자 : 송정섭


조금은 여유롭게, 그리고 멍청하게 살아가는 행복주의자이다. 대학에서 전기·전자공학과 영어영문학을 복수로 전공했다. 영어영문학 졸업 시험을 조기 합격하고, 학부생 때 국내외 학회지에 전자통신 기술 논문 4편을 게재할 만큼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삶을 살았다. 이후 반도체 회사 경영개선실에 입사해서 올해의 엔지니어 상을 받았고, 해외 생산 법인 구축 프로젝트에 참가해 주재원 생활을 할 만큼 그야말로 엘리트의 길을 걸어왔다.

열심히만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고, 성공하면 행복할 거라 기대했다. 하고 싶은 일 보다는 해야하는 일들을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그 끝에 선 인생의 모습은 기대하던 것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무조건 열심히만 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행복한 삶에도 정확한 목표와 방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먼 길을 돌아온 후에야 알게 되었다. 인터넷 서비스 기업으로 자리를 옮겨 팀의 리더를 맡게 되면서 그의 인생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가 바라본 팀원들은 모두 흔들리고, 방황하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청춘이었다. 그의 과거와 너무나도 닮아 있는 모습이 놀라웠고 안타까웠다. 업무를 넘어, 200회가 넘는 상담과 소통을 진행했고, 30회가 넘는 강연을 펼쳤다. 그들의 동반자가 되길 바랐고 먼 길을 돌아가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그들을 진심으로 품어 가다보니, 어느새 자신 또한 크게 변화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흔들리는 청춘들을 만날 때마다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라고 힘주어 강조한다. '실수해도 괜찮다’, '조금 돌아가도 괜찮다’, ‘도와줄 테니 같이 한 번 해보자’고 말한다. 그런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진심을 담아, 이 책을 집필했다.

더욱 멍청하게, 이기적이게, 그리고 흔들리며 사는 것이 청춘만이 만끽할 수 있는 행복임을 깨달은 그는 30대 한창 나이에 조기 은퇴했다. 또 하나의 커다란 인생을 겸허히 맞이하며, 더욱 수많은 청춘들과 함께 행복을 찾아가며 흔들릴 준비가 되어있는 그는, 진정한 이 시대의 행복한 이기주의자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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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종에 대하여 외 - 수상록 선집 고전의 세계 리커버
미셸 에켐 드 몽테뉴 지음, 고봉만 옮김 / 책세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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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로빈슨 크루소』을 읽어본 사람은 많을 것이다. 독자도 초등학교 때 점심도 거른 채 읽다가 어머니께 혼난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인공이 흑인노예상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당연히 독자도 최근에 어떤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됐다. 큰 충격이었지만...

이 소설은 어렸을 때 읽기에는 꽤 긴 책이었다. '세계명작전집' 중 1권이었다는 사실만 기억난다. 줄거리는 소설 속 주인공인 중류 가정에서 태어난 로빈슨 크루소는 안정된 생활 속에서 누리는 행복에 관해 설득시키려는 아버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가출하여 선원이 된다. 아프리카 연안에서 무어 인에게 붙들려 노예가 되지만, 거기서 도망하여 친절한 선장의 도움으로 브라질 농장에 일자리를 얻게 된다. 그곳에서 농장주의 의뢰를 받아 흑인 노예를 구하러 아프리카로 가던 도중에 배가 파선하는 바람에 무려 28년간에 걸친 무인 고도에서의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는 난파당한 배로부터 식량, 무기, 의류, 연장 등을 운반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자급자족의 생활을 영위하기 시작한다. 다행히도 섬에는 맹수가 없었고, 기후 또한 따사로웠고 맑은 물도 있었다.

15년째 되는 해 어느 날, 바닷가 모래밭에서 하나의 커다란 발자취를 보게 된 크루소는 깜짝 놀랐다. 계속 경계를 강화하는 가운데 2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 어느 날 그는 바닷가에 흩어져 있는 사람의 뼈와 손발을 보고 그 섬이 식인종들이 사는 곳임을 알고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로빈슨 크루소<세계문학사 작은사전>


24년째가 되는 어느 날, 식인종에게 붙들린 토인을 아슬아슬한 가운데 구출해 내어 자기 하인으로 삼는다. 그날이 금요일이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프라이데이라고 지어 준다. 그 뒤로 프라이데이의 아버지와 스페인 사람 하나를 구하여 그는 고독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27년째 되는 해에 영국 배가 기항한다. 크루소는 선장 편에 서서 선원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반역자들을 섬에 남겨둔 채 영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대니얼 디포(D. Defoe)가 쓴 이 소설(1719년)은 실제 인물이 주인공의 모델이라 한다. 그는 영국인으로 흑인 노예를 사려고 브라질에 가던 중 선박이 파손되어 무인도에 들어가 28년 동안이나 고독 속에서 홀로 원시적인 생활을 하였다. 이는 당시의 한 수부(水夫)이던 셀커크(Selkirk)가 남태평양의 고도(孤島)에서 겪었던(4년 4개월 동안) 실화를 토대로 지은 것이다. 사회와 단절되어 고적(孤寂)하게 사는 사람의 전형을 창출했다. 당시 노예무역이 한창이고 흑인들은 포로로 잡혀 노예무역을 통해 신대륙 미국 및 주위 국가들의 노동력을 충당했다. 미국 남부를 중심으로 면화농장과 중남미 지역의 사탕수수 농장이 노예의 일터였다. 노예가 된 흑인들은 가축이나 다름없었다. 개인의 사유재산이었고 모든 권리는 주인에게 달려 있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 서유럽 각국이 앞다퉈 식민지 확장과 노예무역으로 국력을 크게 배양시키던 시대이었다.



이 책 『식인종에 대하여』는 1580년 초판을 간행한 프랑스 사상가 몽테뉴의 저술이다. 원제목 『에세』는 당시 시험 ·시도·경험 등을 의미하며, 수필이라는 장르의 명칭으로는 되어 있지 않았다.

본래 저자가 철학자가 아니고 프랑스 정계의 중요한 인물로서 이 책은 그 틈틈이 써 모은 것이므로, 일반적으로 『수상록』으로 통하고 있다. 고금 서적의 단편을 인용하고, 윤리적 주제, 역사상의 판단·의견을 소개하며, 자기 자신의 비판·고찰을 가한 감상문 형식을 취하고 있다. 후년에는 자기를 대상으로 한 기술·분석 ·성찰을 주로 하여 스토아 철학, 회의주의적 사상, 에피쿠로스(Epikuros)주의적인 사고를 거쳐, 그가 도달한 자연에 적합한 인간의 조건과 삶의 탐구를 기도하였다. 인간성 연구의 문학 전통의 선구로도 간주되고, 사상사적으로도 합리적 사고의 존중, 근대적 자아의 주장, 비판정신 등은 훗날의 R.데카르트와 B.파스칼의 업적을 준비했다고 할 수 있다.



몽테뉴의 『수상록』은 프랑스 역사상 가장 험악한 시대에 쓰인 문집으로, 단순한 은둔생활자의 한가로운 글이 아니며, 온갖 거짓말과 교만과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시대에도 자기만은 진실하게 살아 보겠다는 자기 수련으로부터 출발하였다. 무엇보다도 사람은 자기를 소중히 해야 한다면서,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 토론과 회의 진행방법, 신앙과 과학, 어린이의 교육, 남녀평등과 성(性)문제, 문명과 자연, 재판과 형벌, 전쟁의 참화, 식민 정책의 비리 등,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해 생각하며, 그것들을 격언과 일화, 시(詩)와 유머와 역설을 섞어가면서 항상 자유로운 인도주의자답게 겸손한 시론(試論) 형식을 빌어 담담히 이야기한다. 유명한 “크 세 주? Que sais-je?(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명제도 회의주의자의 발언이 아니라, 그 인간성에 대한 깊고 날카로운 관찰에서 우러난 상대주의와 패러독스, 또는 인간에의 자비와 관용의 표현이며, 후세의 과학주의·민주주의의 원천이 되었다.



몽테뉴 수상록에서 인간성과 타인에 대한 생생한 사유를 담아낸 6개 장을 선별해 엮었다고 이 책의 역저자 고봉만은 밝힌다. 해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에 따르면 표제 장인 『식인종에 대하여』는 16세기 유럽인들이 식민지 침략을 통해 처음 마주한 중남미 원주민들에 대한 사유가 담긴 에세이다. 몽테뉴 수상록에서 가장 중요한 장 가운데 하나로 인용되지만, 지금까지 국내에 제대로 소개될 기회가 없었다. 정복지의 주민을 ‘식인종’, ‘야만인’으로 본 당시 유럽인들의 인식과 다르게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깊게 들여다보려 한 ‘교양인’ 몽테뉴의 사유를 생생히 확인할 수 있다.

몽테뉴 수상록은 ‘최초의 에세이’로 잘 알려진 고전이지만, 3권 107장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때문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또 몽테뉴가 수많은 인물과 텍스트를 인용했기 때문에 수상록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이해 또한 필수적이다.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시리즈로 기획된 이 책은 현대 몽테뉴 연구에서 비평 판본의 결정본으로 여겨지는 플레야드 판본을 저본으로 삼았다.

몽테뉴, 루소, 레비스트로스 등을 연구하며 여러 원전을 국내에 소개해온 고봉만 교수가 번역을 맡았다. 또한 200개에 달하는 주석을 통해 원문에 등장하는 인물과 텍스트에 대해 설명하고, 해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을 통해 몽테뉴 사상의 현대적 의미를 풀어냈다.

니체는 “몽테뉴 같은 사람이 글을 썼다는 사실이 삶의 즐거움을 배가시켰다”라고 썼다. 현대 한국인에게도 역병과 환란의 시대를 산 ‘모럴리스트’ 몽테뉴의 글이 고전 본래의 의미로 새롭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몽테뉴도 역병의 환란을 겪었다. 흑사병이 창궐하여 영지 인구의 절반과 평생의 친우였던 에티엔 드 라보에시를 잃었다. 환란은 역병뿐이 아니었다.

같은 신의 이름으로 서로를 죽이는 종교전쟁이 몽테뉴의 일생 내내 계속되었다. 몽테뉴는 고립된 이들이 죽은 이의 시체를 먹으며 삶을 잇는 것을 보았다.

그때는 또한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발견하고 정복 전쟁에 열을 올리던 시기였다. 유럽인은 각자 자신이 신대륙에서 보고 들은 것에 대해 목소리 높여 떠들었다. 그러나 당시 그곳은 미지의 세계였다. “나는 세계지도를 보았다네. 그러곤 깨달았지. 기독교를 충심으로 받드는 지역이 세계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일세”(에라스무스). 신대륙 원주민들은 ‘잔인하고 야만적인 식인종들’이었기에 정복과 교화의 대상이었고, 유럽인은 이들을 멸시하고 하찮은 존재로 여겼다. 이렇게만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잔혹한 학살과 착취가 있었다.

동정심이란 사치이자 비아냥거리인 시대였다. 그러나 몽테뉴는 이렇게 썼다. “우리야말로 모든 야만스러움에서 그들을 능가한다.”

지식인이 시대의 양심으로 살아 있을 때 내는 목소리는 울림이 크다. 몽테뉴의 예에서도 그 점을 확인한다. 짧지만 양심의 목소리를 낸 시대의 지식인의 역할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대다. 이 작고 짧은 책이 그래서 소중하다.



저자 : 미셸 에켐 드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


16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사상가이자 모럴리스트. ‘에세이’라는 글쓰기 장르의 원조라 할 《수상록》을 남겼다. 1533년 프랑스 서남부 도르도뉴에서 태어났다. 교육열이 높은 아버지 덕분에 어려서부터 가정교사에게 맡겨져 라틴어를 모국어처럼 익혔고, 6세 때 보르도 인근의 기옌 학교에 입학해 중학 과정을 마쳤다. 16세 무렵부터 툴루즈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후 1556년경 페리괴 조세재판소의 법관에 이어 1557년 보르도 고등법원의 법관으로 일했다. 1558년 《자발적 복종》을 쓴 철학자이자 법률가 에티엔 드 라보에시를 만나 둘도 없는 우정을 나누었으나 1563년 페스트로 그를 잃는 아픔을 겪었다. 1568년 사망한 아버지 피에르의 뒤를 이어 몽테뉴 영주로서 영지를 상속받았고, 이듬해 스페인 신학자이자 철학자 레몽 드 스봉의 《자연신학 또는 피조물의 책》을 프랑스어로 번역해 발간했다. 아버지를 잃은 지 얼마 안 되어 남동생 아르노가 운동 경기 중에 입은 부상으로 요절한 데다 몽테뉴 자신이 낙마 사고로 죽을 뻔했다. 1570년에는 첫아이가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몽테뉴는 보르도 고등법원 재판관의 딸 프랑수아즈 드 라샤세뉴(1545~1602)와 결혼해서 딸 여섯을 낳았지만,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일찍 죽었다.

공직 생활에 부담과 환멸을 느껴 1570년 37세로 보르도 고등법원 법관직을 사임하고 이듬해 초쯤 자신의 성으로 돌아와 독서와 글쓰기에 몰두했다.

1572년경 집필을 시작한 《수상록》의 초판은 1580년 보르도에서 출간되었다. 그해 신장결석을 치료할 겸 여행길에 올라 스위스, 독일을 거쳐 이탈리아에서 오래 머물다 1581년 말에 몽테뉴 성으로 돌아오는데, 이 경험을 기록한 일기는 몽테뉴 사후에 발견되어 1774~1775년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후 보르도 시장으로 선출되어 일했으며, 두 번째 임기에는 종교 전쟁과 페스트로 피난을 떠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동안 가필과 수정을 거듭해온 《수상록》의 3권 107장에 이르는 신판을 1588년에 간행했고, 1590년에는 관직을 맡아달라는 앙리 4세의 요청을 건강을 이유로 정중히 거절했다. 1592년 자택에서 중증 후두염으로 숨을 거두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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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고 싶은 나에게 - 나답게 살아갈 힘을 키워주는 문장들
이동섭 지음 / 더퀘스트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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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자신에 의한, 자신을 위한 삶을 산다. 인간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생물이 그렇다. 자신의 삶을 산다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다는 의미에서 표현한 것이고, 환경이나 외부의 '적'을 이겨야 한다는 의미에서 자신을 위한 삶에 대한 답이 된다. '자신에 의한'이란 뜻은 자신의 선택과 결정의 몫이란 의미다. 삶의 행위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주어지는 권리이고 숙명적 의무이다.

다만 사는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삶의 질을 결정하며 평가된다. 이 때문에 인간의 삶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고귀한 삶이 될 수 있고 미천한 삶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은 환경과 교육에 의해 자신의 삶의 방향이나 자신이 할 일을 결정하는 게 보통이다. 이것이 인생관이며 가치관이다. 가치관과 인생관은 성인이 되기 전에 세워야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산다. 가치관이나 인생관은 훌륭한 선생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세울 수도 있고, 자신의 깊은 생각으로 깨달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교육에 의해 좌우된다. 학교와 선생으로부터 받은 가르침 이외에는 지금까지의 방법은 대개

책에 의한 깨우침이다. 그러나 성인이 되기 전에 인생관이나 가치관을 확립하지 못했다고 삶을 지속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사는 동안 배우거나 깨우침을 통해 세울 수도 있고, 바꿀 수도 있다. 그것은 자신의 몫이다.



훌륭한 삶을 살았다는 사람은 대부분 후세에 위인으로 불리운다. 그가 한 일 앞에 수식어를 붙여준다. '위대한 음악가'는 식이다. 후세 사람들이 따라하고 배울 만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위인들의 삶은 한 개인에게는 삶의 가치관이나 지향점을 명백히 보여주는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위인의 삶은 잘한 것이든 잘못한 것이든 후에 기록이나 증언, 혹은 목격자의 진술 등을 통해 종합 구성돼 후세에 전해지기 때문이다. 위인은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훌륭한 영향을 주는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다. 그들 대부분의 삶은 '그럭저럭' '무난하게' 표현될 수 없는 강렬한 것들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삶의 열정,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치열한 노력, 남을 위해 자신의 목숨도 아끼지 않는 용기, 모든 사람에게 평온함을 주는 덕성 등 여러 가지가 엿보인다. 특히 개인이 어렵거나 힘든 상황에서는 위인들이 살아 있는 동안 했던 많은 일이 역경을 헤쳐나가는 용기가 되기도 한다. 위인들의 삶과 그들이 남긴 말, 그들이 남긴 업적 등은 이 때문에 인구에 회자되어 전해져 내려온다. 그렇게 우리 삶의 지표가 되기도 한다.



이 책 『나를 사랑하고 싶은 나에게』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 중 예술가들이 남긴 말을 중심으로 코로나 팬데믹,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소외, 개인의 질환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하고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해 저자 이동섭이 펴냈다. 스스로 어디에 속하지 못하고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순간에 자신을 사랑할 힘을 키워주는 말과 문장을 담은 책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문화예술을 강의한 저자가 들려주는 예술가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 자존감, 인간관계, 일과 생각에 관한 고민 앞에서 주변 시선에 끌려다니지 않고 나로서 행복해지는 방법들이 펼쳐진다.

애매한 재능과 외모에 자꾸만 작아지는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까? 겉으론 웃어도 행복하지 않을 땐 어떤 선택이 필요할까? 깊숙이 불안해지는 밤을 어떻게 건너면 좋을까?

저자에 따르면 르네상스 3대 천재라고 불리는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도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힘든 순간이 있었다. 서로 다르지만 그들을 위대하게 만든 선택을 이 책에서 엿볼 수 있다. 강성의 아버지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려고 치열하게 다툰 모차르트와, 행복해지고 싶어 주어진 이름마저 버려버린 조르주 상드의 생생한 말에는 외부의 시선뿐 아니라 자기 안의 두려움을 걷어내는 과정이 담겼다. 피카소와 마네의 상반되는 인간관계 대처법부터 샤넬이나 모네가 창의력을 발휘한 비결 등을 만나며 재밌게 책장을 넘기다 보면 당당했던 그들의 삶에 힘입어 독자들 스스로에 대한 사랑에 도착하게 된다.



개인의 환경과 하는 일이 다른 독자들에게 더 가깝게 느껴지는 예술가들이 다르겠지만 독자는 커피콩 개수를 일일이 셀 만큼 가난했으나 스스로를 귀하게 여긴 베토벤, 75살이 되어 붓을 들었지만 국민화가가 된 모지스 할머니 등이 이야기가 가장 감동적으로 들린다. 이들에게는 가진 것이 특별했던 게 아니라 자신을 아끼는 마음이 특별했다. 다른 위인들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살면서 스스로 보잘것없게 느껴지는 순간을 수없이 마주하지만 자기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이에게 세상은 상처를 입힐 수 없다.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 때도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별 같은 예술가들이 카페에서 만난 옆자리 친구가 되어주는 책 『나를 사랑하고 싶은 나에게』를 통해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조금 다르고 불완전한 모습마저 나만의 아름다움이자 삶의 힘으로 삼을 수 있다.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자존감, 일, 관계, 생각을 만드는 법, 나답고 싶은 당신에게 용기를 주는 특별한 조언이 책을 통해 찾아온다. 이 책 『나를 사랑하고 싶은 나에게』이다.

이 책을 사용하는 가장 좋은 활용법은 이들 예술가가 남긴 말이나 명언, 격언 등을 잘 익히고 메모해 두었다가 자신이 자꾸 세상살이에 힘들다고 느낄 때 떠올리거나 펼쳐본다면 분명 새로운 용기와 희망이 되어줄 것이다. 마침 책 편집자들은 중요하고 훌륭한 말들은 활자를 키워 독자가 다시 한 번 읽도록 배치해 놨다. 고마운 일이다. 빨리 읽다 놓칠 수 있는 부분을 놓치지 않고 되새겨 읽을 수 있도록 해준 배려가 고맙다.



돈을 벌지 못하는 일을 하면 다들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하냐?”며 핀잔을 준다. 하지만 돈 안 되는 일이 돈으로 살 수 없는 쓸모를 주기도 한다. 비비안이 유모로 집에 갇혀 있다시피 하다가 온 얼굴로 햇빛을 받고 머리카락 사이로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거리의 사람들을 관찰하고 흥미로운 장면을 찍을 때 느낀 즐거움을, 돈도 안 되는 일이라며 그만하라고 다그칠 수 있을까?(p. 154)


술과 친구가 오래될수록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오랜 시간 상대의 단점들을 참아온 만큼 아픈 곳이 곪거나 곰팡이가 슬어서 전부를 버려야 할 때가 온다.

뭉크의 처신처럼, 안 되는 인연을 붙잡고 괴로워할 필요 없다. 인생의 모퉁이를 도는 순간, 오랜 친구와 내가 맞지 않는 점이 도드라지면 서로 가야 할 길이 갈라져야 한다. 오랜 친구를 옛 친구로 떠나보내면 나와 잘 맞는 새로운 친구가 나타나서 길동무가 된다.(p. 199)


“오늘은 아무것도 안 했어요. 나쁘지 않은데요?”

한창 작곡과 연주로 바쁜 와중에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모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를 보냈는데 참 좋았다고 썼다. 별 대수롭지 않고 중요한 내용도 아닌데, 문득 이런 태도야말로 모차르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p. 289)



저자 : 이동섭


예술작품으로 인문학을 사유하는 작가. 한양대학교 광고홍보학과 졸업 후, 파리로 유학을 갔다. 파리 제8대학 사진학과, 조형예술학부 석사(현대무용), 박사 준비과정(비디오아트), 박사(예술과 공연미학)를 마쳤다. 서울로 돌아와 「SBS 컬처클럽」과 「EBS 라디오 옆 미술관」을 비롯해 다수의 방송과 『한국일보』와 『한겨레』 등에 문화 칼럼을 연재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동국대학교와 성신여자대학교 등에서 문화와 예술을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를 융합하는 강의를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파리 미술관 역사로 걷다』 『새벽 1시 45분 나의 그림 산책』 『반 고흐 인생수업』 『파리 로망스』 『그림이 야옹야옹 고양이 미술사』 『도쿄 로망스』 『패션 코리아, 세계를 움직이다』 『당신에게 러브레터』 『뚱뚱해서 행복한 보테로』 『뮤지컬 토크 2.0』 『뮤지컬의 이해』 『나만의 파리』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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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계절의 클래식
이지혜 지음 / 파람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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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요즘이야 클래식에 조금 빠진 상태라 KBS 클래식 방송을 듣지만 한 해 전만 하더라도 거의 듣지 않았다. 그만큼 클래식을 잘 모르는 상태이다. 그래서 이 책 『지금 이 계절의 클래식』의 저자도 처음에는 동명이인의 작가로 혼동했다. 작가가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분으로 착각했었다.

책을 받아 들고서야 작가 소개가 나오는 표지 안쪽을 읽고 저자를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더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덕분에 클래식과 본격적으로 친하게 되었으니 저자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 셈이다. 이 책은 그렇게 슬며시 독자에게 왔다가 클래식 선물을 한아름 안겨주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클래식의 많은 17세기 작곡가부터 20세기 음악가까지 머릿속에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지식이 쌓였다. 이젠 많이 듣고 클래식을 마음으로 듣는 일만 남았다. 클래식 마니아가 될 때까지.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저자는 이 책 한 권에 헨델과 바흐부터 20세기 피아졸라와 쇼스타코비치까지 담았다. 음악가들의 곡의 성격과 작곡 배경 또 초연 내용까지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도록 분류도 잘해 놓아 클래식 문외한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체계 있게 쓴 책이다. 계절로 나눠 33곡을 쉽고 흥미로운 인문학 해설과 함께 소개된 책은 다 읽고 난 후 사랑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독자 가슴속에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을 선물하고, 클래식 감상하는 법을 터득하게 해주니 책이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 실린 위대한 음악가들의 사적이고도 내밀한 부분까지 알게 되니 그들의 음악 열정과 영혼마저 느껴진다.





클래식 해설가 이지혜는 일상생활과 관련 있는 클래식 음악을 중심으로 이맘때 듣기 좋은 클래식을 추천하면서 누가, 왜 그런 음악을 만들었는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다. 선곡을 위해 4계절과 24절기의 의미를 탐구하면서 저자 역시 절기의 뜻을 새삼 이해하며 음악을 섬세하게 관찰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친절한 안내는 산뜻한 봄에는 자유와 기쁨을 노래하는 모차르트를 비롯해 초심을 기억하라고 읊조리는 바흐, 원시와 야성의 소리를 일깨우는 스트라빈스키에 귀 기울이게 한다. 여름에는 ‘한여름 밤의 꿈’을 이야기하는 멘델스존과 뜨거운 열정을 드러내는 드보르자크, 지독한 사랑을 음악으로 그렸던 에릭 사티를 곁에 두면 좋다는 듯 계절에 맞는 음악을 소개한다.

우리 독자들은 이 경우 대개 무작정 저자의 소개대로 음악을 이해하지만 그 곡들을 계절에 맞게 분류하는 저자는 굉장한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는 사실은 안다. 계절과 클래식 음악은 저자의 머릿속에서 독자의 감성 공간으로 이동해 더욱 아름답게 연주될 것이다.






지금은 만추의 계절이다. 코로나 팬데믹인데도 계절은 무심한 듯 갈 길을 재촉해 추운 겨울 시작된 코로나가 다시 추워질 이 무렵까지 종식되기는커녕 오히려 확산돼 가며 세상의 분위기를 공포와 불안 속으로 몰아넣지만 이지러진 우리 일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클래식 음악은 예전과 다름없다.

사랑의 아픔을 위로하는 리스트, 그리고 혼잣말마저 아름다운 쇼팽의 선곡이 계절을 압도하고 위안과 용기를 갖게 한다.

곧 다가올 겨울에는 슈베르트의 차갑지만 다정한 선율과 드라마틱하고 환상적인 차이콥스키의 발레곡,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를 들어보라고 저자는 넌지시 권한다.

타레가는 평생 시력이 좋지 않아 고생했다. 어려서 유모 손에 맡겨졌을 때 수로에 빠지는 사고를 겪었는데, 오염된 물에 눈이 감염되어 완치되지 못한 탓이었다. 게다가 체력이나 건강도 썩 좋은 편은 아니어서 연주 생활을 일찍 접어야 했다. 특히 생애 후반에 들어 건강상의 문제로 오른손 손톱이 자라지 않게 되자, 어떻게든 기타 연주를 해보기 위해 손끝 살을 이용해서 연주하는 주법을 개발했다. 그게 바로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에 등장하는 ‘트레몰로 주법’이다. 손가락을 바꿔가며 연이어 줄을 퉁기면 음향이 더욱 풍성해지고 부드러운 사운드가 연출된다. 절실함은 곧 예술이 되었다.(p. 18)




시대와 지역, 계절을 넘나드는 클래식 명곡을 소개하면서 저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음악가의 숨은 에피소드들을 흥미진진하게 들려주기도 한다. 자신의 실수로 멀어졌던 상대방으로부터 신뢰를 되찾기 위헤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던 헨델, 격정적으로 사랑했던 연인과 헤어지고 27년 동안 누구도 자신의 집에 들이지 않은 채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 에릭 사티, 건강상의 문제로 오른손 손톱이 자라지 않자 기타 연주를 계속하기 위해 손끝 살을 이용해 연주하는 ‘트레몰로 주법’을 개발한 타레가, 거대한 변혁의 시대에 태어나 혁명과 냉전의 시대를 온몸으로 맞닥뜨린 채 저항과 수용 사이를 오가야 했던 쇼스타코비치 등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레전드 클래식 예술가들의 낯설고 놀라운 이면은 독서의 흥미로움을 더한다.


쇼스타코비치는 혁명과 냉전의 시대를 몸소 겪은 예술가다. 거대한 변혁의 시대에 태어나 저항과 수용 사이를 오가며 용케 살아남은 작곡가였다.

그가 음악으로 남긴 모든 기록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공포와 갈등, 소신과 고뇌의 흔적들이다. 살아남기 위한 사투이자 예술가로서의 자존감을 포기할 수 없어 사선의 경계를 오간 몸부림이기도 하다. 오선보에 적힌 거대한 팡파르가 울려 퍼질 때 오히려 그가 한없이 애처로워지는 이유다.(p. 44)



최고이자 유일한 전 유럽에 ‘악명’을 떨치던 이탈리아 출신의 어느 바이올리스트에 관한 이야기는 그의 생전에도 그리고 사후에도 온갖 괴담들로 가득하다. 바이올린이 귀재이자 명연주가 파가니니를 사람들은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불렀다. 천사도 아니고 하필이면 왜 악마일까. 단지 놀라운 연주 솜씨에 대한 극찬이라기에 괴기스럽기도 하다. 파가니니가 자신의 별명을 달가워했을까.

비쩍 마르고 병색이 짙은 모습으로 무대에 등장해 현란한 연주를 펼친 뒤 홀연히 사라지곤 했다는 파니니, 그는 과연 어떤 바이올린 소리를 들려주었던 것일까.

<24개의 카프리스>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바이올린 테크닉을 총망라한 작품’ 집이다. 1809-1817년 사이에 작곡한 것으로 추진되는 데 자신의 테크닉 공개를 지독하게 꺼리던 파가니니가 생전에 출판한 유일한 작품집이다.

파가니니가 바이올린으로 선보인 대부분의 기교가 들어 있는 만큼, 그 어떤 작품보다도 기교적 난이도가 높다.

사정이 이러하니 후대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일깨운 작품집이면서 바이올린 연주자들에게는 좌절을 안기기로 악명이 높다.무반주로 작곡했지만 피아노나 오케스트라 반주를 붙여 연주하기도 한다.

관객들에게는 파가니니의 연주뿐 아니라 외모, 무대 뒤의 모습 등도 흥미로운 얘깃거리였다.




세르게아 라흐마니노프는 <교향곡 1번>을 초연한 뒤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심혈을 기울여 써낸 작품이 연주단과 지휘자의 연습 부족 등으로 형편없이 끝내 버린 것도 모자라 사정을 모르는 비평가들은 오로지 라흐마니노프를 향해 거친 비판들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악몽 같은 기억에 발목이 잡혀 극심한 우울증에 걸렸고, 더 이상 작곡을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었던 라흐마니노프도 그런 시절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안타깝다.

2여 년 치료를 받으면서 간신히 우울증을 이겨낸 라흐마니노프는 1899년부터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쓰기 시작했다.

드디어 공식적인 초연으로 자신의 재기를 알렸다. 직접 피아노를 치면서 재기 무대를 마련한 그는 작품성과 연주력 모두 인정받으며 완전히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세르게아 라흐마니호프는 러시아 태생의 음악인이다. 모스크바에서는 작곡가와 지휘자로, 미국 망명 후에는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렸다. 대표적인 ‘러시아적 감성’하면 광활한 설원 위를 내달리는 장면이나 독주를 마시면서 추는 민속춤의 격한 몸짓들이 떠오른다. 러시아 문학에는 열정만큼의 광기와 서늘한 비극성이 혼재된 경우가 많은데.

라흐마니노프가 여기에 보탠 것은 신선한 낭만성 내지는 우울감이다. 그의 음악에서 흘러나오는 울적함이란 도리어 로맨틱한 감성을 더욱 자극 한다. 특유의 우울감은 서정성과 박력과 쌍벽을 이루며 청중의 마음을 파고든다.



슈만의 가곡들은 피아노 음향에 귀를 기울이면서 듣는 것이 좋다. 피아노는 단순히 반주가 아니라 노래와 나란히 가는 대등한 위치에 있다. 사실상 ‘듀엣’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때로는 피아노가 노래를 주도하여 마치 피아노 작품에 노래를 붙인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슈만의 가곡들은 가사를 살펴 가며 듣는 것도 좋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와 뉘앙스를 파악하며 감상하는 편이 더 깊이 와 닿는다.(p. 198)


모차르트, 슈베르트, 멘델스존, 슈만과 브람스… 이 모든 예술가가 계절과 교감하고 영감을 받았듯, 이 책은 모든 독자가 오감을 활짝 열어 이 계절과 클래식 음악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느끼고 즐길 수 있도록 이끈다. 클래식 해설가 이지혜의 『지금 이 계절의 클래식』과 함께라면, 언제든 그 아름다움 속으로 입장할 수 있다. 계절이 음악을 만들었듯, 음악은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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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학과 양명학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시마다 겐지 지음, 김석근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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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이념과 정신을 유지하고 지배해온 학문은 유교다. 기원전 500년께 춘추전국시대 공자는 학문과 철학을 통해 중국을 지배해온 정신적 근간이다. 그의 학문과 철학은 인간의 삶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이념을 달리해도 그의 학문적 소산인 책을 통해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공자가 이때 씨앗을 심은 유학은 200년 후 맹자에 의해 뿌리를 내렸고 주자학과 양명학에 이르러 꽃을 피웠다고 말해도 비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중국은 물론 중국과 관계를 맺는 이웃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은 문명이 꽃피운 찬란한 문화와 함께 세계 최강국의 위치에 오르기도 했고, 정치적 이념이 다르거나 이민족의 지배를 받아도 그들 고유의 문화에 정복국이 오히려 흡수되는 결과로 나타나기도 했다. 몽골이나 만주족의 청나라가 바로 그 예다. 중국이 마오쩌퉁이 집권한 공산주의 정권에서 잠시 핍박 받기도 했으나 이젠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형국이다.

우리도 중국의 송나라를 통해 성리학을 받아들이면서 나라의 근간이 되는 정신은 불교국인 고려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유학이 근간이 되었다.



공자와 맹자, 그들의 학문에 대해서도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배웠기 때문에 겉모습은 대체적으로 안다. 그러나 실제로 유학이 꽃피운 송나라(남송) 주자학과 명의 양명학에 대해서는 그 모습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사회로 나온다. 왜 주자학과 양명학에 대해서는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독자도 알 수 없다. 그러나 TV 드라마나 역사 해설 같은 강의를 통해 많이 듣기는 했지만 여전히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지낸다. 특히 필요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서양의 사상에 너무 물들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만 할 뿐이다.

그들의 사상이 너무 오래된 것이라서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 질서가 서양의 나라에 의해 재편되었기 때문으로 독자는 짐작만 할 뿐이다.



이런 가운데 주자학과 양명학은 '시대의 요청'과 '새로운 질서'에 여전히 힘을 갖지 못하는 것 같다. 책을 통해서라도 알기에는 사실 어려운 학문이겠지만 한자보다 영어에 더 익숙한 현대 사회에서 주자학과 양명학이 갈 곳을 찾지 못하는 건 아닐까. 안타까운 마음으로 일본의 동양사학자 시마다 겐지가 설명하는 책이 눈에 들었고 읽게 되었다. 읽어본 소감을 미리 밝히자면 '어렵다'이다. 아마 영어로 옮겨도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일 터다.

'같으면서도 달랐던 두 가지 시선'이라는 시마다 겐지 저자의 해석을 경청하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이 책을 감수한 분의 우리와 일본 주자학과의 차이점 등을 함께 배울 수 있어 무척 귀중한 책이었다.

책의 내용은 '중국의 신유학은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려 했는가?'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사상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자학과 양명학의 입장과 역사적 역할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서라는 출판사 측의 주장에도 공감한다.



일본에서는 이미 주자학과 양명학의 본질에 다가서는 최고의 입문서로 저자의 이 책 『주자학과 양명학』이 꼽히는 것 같다.

책에 따르면 불교의 범신론적 사상을 받아들여 송대에 확립한 주자학, 심즉리·치양지·지행합일을 설하는 시대에 태어난 양명학, 두 학설 모두 중국 근세를 지배했던 유교철학이자 유심론적 실천철학이었다. 중국사상사의 흐름 속에서 주자학과 양명학의 성립 과정과 역사적 역할을 알기 위해 저자를 따라가본다.

저자는 양명학을 육상산(陸象山) 학문의 계승 정도로 생각하여 주자학과는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형이상학으로 보는 입장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왕양명은 주자학에서 출발했으며, 그 한계에 부딪쳐 죽음을 무릅쓴 사색 끝에 난관을 뚫고 나가서 마침내 ‘심즉리(心卽理)’라는 원리를 끄집어냈다고 주장한다. 즉 주자학이 전개되는 연장선 위에서 양명학의 등장이 파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주자학에서 양명학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철저히 분석하여 알기 쉽도록 명쾌하게 해설한다. 과연 중국의 신유학은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려 했는지, 같으면서도 달랐던 두 가지 사상의 본질을 밝혀 설명한다.

주자학과 양명학에 대한 근본적 이해는 조선시대 사상사의 이해에도 큰 참고가 되어주리라. 고려 후기에 들어온 성리학이 바로 주자학과 양명학이니 그렇다.



우리가 아는 사실은 공자와 맹자의 사상에서 주자가 주자학을 완성시키기까지 무려 1,800년의 시간이 흘렀다.

중국은 한나라 때 인도에서 전해진 불교의 영향으로 유학에서 갖추지 못했던 개념을 도교와 불교에서 찾아서 차츰 그 토대를 확장한다. 불교에서는 ‘체용의 논리’를 가져온다. ‘체용일치’ 또는 ‘체는 곧 용, 용은 곧 체’라는 개념은 불교의 반야와 방편에 나타나는 내용이다.

청나라 말기의 ‘중학(중국의 학문)’을 체로 하고 자연과학이나 기술학으로서의 ‘서학’을 용으로 한다는 슬로건, 이른바 '중체서용론'이 주창되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 점에서 불교와 같이 체용의 논리가 범신론의 논리임은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본다. 이처럼 송학(주자학)은 불교의 영향을 상당수 받았던 점이 드러난다.

다음은 도교의 영향이다. 중국에서 민중들의 생활에는 도교가 가장 밀착되어 있고, 제사, 주술, 부적 등이 성행했다.

더불어 도교의 핵심 이론의 근본인 우주와 공감하고 우주의 정수를 포착하는 것, ‘천지조화의 기운’을 붙잡아두는 것을 강조했다. 송학의 주체는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사대부들’이다. 송학은 사대부의 학문이며 사대부의 사상이다. 사대부란 누구인가? 당나라 시대 과거제도의 확립과 더불어 일어나 송나라 시대에 이르러 확고부동한 세력으로 자리 잡게 된 지배계급이다.(p. 27)



저자에 따르면 이들 지배계급은 유교 경전의 교양을 지닌 사람들이었고, 과거시험을 통과하여 위정자가 되려던 사람이었다.

한나라는 호족 중심의 사회였다. 이는 출생의 원리로 하는 폐쇄적인 신분사회였고, 시대는 능력을 중심으로 개방적인 사회로의 열망을 담고 있었다. 그 능력은 유교 경전의 교양 능력이었다. 이러한 시대 흐름을 가장 타고난 계층이 사대부였다.

송나라 시대에 등장하는 신흥 사대부를 가장 잘 드러내는 사람은 송학의 원류라 할 수 있는 한유(768~824)이다.

그의 유명한 산문 <원도(도란 무엇인가)>는 인, 의, 도, 덕이라는 네 글자를 해석하고 원리를 밝히는 저서이다. 송학의 최초의 선구자는 한유보다 200년 뒤에 출현하는 주렴계(주돈이 1017~1073)이다. 그는 사는 동안 신통한 관직이나 사상적 명성을 이루지는 못하지만, 문하에 유명한 정명도, 정이천 형제가 후일 주희에 의해 자신의 이론을 집대성하는 가운데 성인의 학문을 이룬 사람으로 소개되어 세상에 드러난 사람이다. 주렴계는 <태극도>를 강조하고, 성인이 될 방법을 소개한다. 그는 욕망을 부정하고, 정을 강조한다.

그의 사상은 정명도(1032~1085)에 이어져 ‘생’을 강조하는 사상을 확립한다. 또한 정명도는 천지만물의 일체로서 ‘인’을 강조한다. 정명도의 동생인 정이천은 유교의 핵심적인 교의는 인이며, 가장 일반적인 의미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을 소개한다. 정이천의 사상을 이어받은 주자가 이천의 말에서 가장 널리 찬양한 부분은 ‘성즉리’이다. 정이천의 ‘성즉리’와 장횡거의 ‘마음은 성과 정을 통괄한다’는 두 가지의 말은 주자에게 가장 중요한 진리였다.



저자는 이 책에서 주자학과 양명학의 차이점을 확실하게 짚어낸다. 주자(1130~1200)의 윤리설을 한마디로 말하면 ‘성즉리’이고, 그 후 300년이 지나는 동안 육상산(1139~1192), 왕양명(1472~1528)의 ‘심즉리’의 싸움이야말로 중국 사상사에서 가장 큰 논쟁이 된다.

송나라(960건국) 이후 중국은 사대부의 천하가 되었으며 철학, 사상, 이데올로기가 넓은 의미의 송학이었다. 송학은 현대 중국철학사가의 분류에 의하면 크게 세 유파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는 장재(장횡거 1020~1077)가 세운 유물론, 즉 ‘기’의 철학이다.

둘째는 정이(정이천)가 시작해서 주희(주자)가 완성한 객관유심론, 즉 ‘성즉리’의 철학이다. 이른바 주자학으로 불리는 이 유파는 곧 국교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지만, 이론 자체의 정제성, 완결성 때문에 주목할 만한 독창적인 후학을 배출하지 못했다.

셋째로 육구연(육상산)이 주장한 주관유심론, 즉 ‘심즉리’의 철학으로, 그 선구는 정호(정명도)를 드는 것이 타당할 것이며, 그 계승자로는 명나라의 왕수인(왕양명)을 드는 것이 정설이다.(p. 274)

'싸움'으로 표현됐지만 '주자학'과 '양명학'은 서로 대립되는 학문과 사상이 아니라 서로 보완적인 관계로 이해된다.

중국에서는 유물론에의 접근도를 기준으로 삼아 주자학이 사상으로서의 가치가 높다는 것이 중국 학계의 정론인 듯하다. 이에 우리 조선의 사대부 역시 주자학을 ‘성즉리’ 성리학을 근본으로 여겨 우리의 인식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다. 신유학이라 불리는 주자학과 양명학의 관계를 찾아보는 이 책은 우리 조상과 우리가 하는 사고방식의 기원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미를 더한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와 닿았던 구절 몇 개만 여기에 적시한다.

"옛날에 밝은 덕을 천하에 밝히려는 자는 먼저 그 나라를 다스린다. 그 나라를 다스리기를 원하는 자는 먼저 그 집을 다스린다. 그 집을 다스리기르 원하는 자는 먼저 자기를 수양한다. 자기를 수양하기를 원하는 자는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한다. 그 마음을 바르게 하기를 원하는 자는 먼저 그 뜻을 진실되게 한다."

"일에 선악이 있는 것은 모두 하늘의 이치이며 천하의 선악이 모두 하늘의 이치이다. 악이란 결코 본래적으로 선에 대항하는 것은 아니며 혹은 넘치거나 혹은 미치지 못하는 것에 이름 붙여진 것일 따름이다."

악은 선에 반대의 뜻이라고 생각했는데 악도 하늘의 이치라는 말도 설득력을 갖는다.



특히 이 책은 주자학에서는 물론이며 양명에서도 생각지 못했던 '인간의 욕망'을 긍정하기에 이르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욕망이 있다는 것은 "인간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음을 리라고 혼일적으로 긍정한 이상, 결국에는 욕망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도리'라는 말이 부정적인 가치를 용어로 쓰였다는 점이 놀랍기도 하고 혼란스럽다.

저자는 주자학에서 양명학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철저히 분석하여 알기 쉽도록 명쾌하게 해설하고 있다. 중국의 신유학은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려 했는지, 같으면서도 달랐던 두 가지 사상의 본질을 알려주는 책이다.


저자 : 시마다 겐지


1917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났다. 전공은 중국사상이며, 동양사학자, 교토대학 인문과학연구소와 사학과 교수, 교토대학 명예교수를 지냈다. 일본 학사원 회원이기도 했다. 1940년대 중국 근세 ㆍ 근대사상사 연구를 시작한 이후 일본의 중국 근세 ㆍ 근대사상사 분야를 이끌어왔다. 2000년에 별세하였다. 저서로는 『중국에서의 근대 사유의 좌절』, 『중국 혁명의 선구자들』 등의 저작이 있다.


역자 : 김석근


연세대 정외과를 거쳐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연구했다. 연세대 정외과 연구교수, 아산서원 교수 및 부원장 등을 지냈다. 『제자백가』, 『주자의 자연학』, 『불교와 양명학』 , 『일본사상사』, 그리고 마루야마 마사오의 주요 저작들을 우리말로 옮겼다.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개인적 의견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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