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학과 양명학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시마다 겐지 지음, 김석근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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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이념과 정신을 유지하고 지배해온 학문은 유교다. 기원전 500년께 춘추전국시대 공자는 학문과 철학을 통해 중국을 지배해온 정신적 근간이다. 그의 학문과 철학은 인간의 삶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이념을 달리해도 그의 학문적 소산인 책을 통해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공자가 이때 씨앗을 심은 유학은 200년 후 맹자에 의해 뿌리를 내렸고 주자학과 양명학에 이르러 꽃을 피웠다고 말해도 비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중국은 물론 중국과 관계를 맺는 이웃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은 문명이 꽃피운 찬란한 문화와 함께 세계 최강국의 위치에 오르기도 했고, 정치적 이념이 다르거나 이민족의 지배를 받아도 그들 고유의 문화에 정복국이 오히려 흡수되는 결과로 나타나기도 했다. 몽골이나 만주족의 청나라가 바로 그 예다. 중국이 마오쩌퉁이 집권한 공산주의 정권에서 잠시 핍박 받기도 했으나 이젠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형국이다.

우리도 중국의 송나라를 통해 성리학을 받아들이면서 나라의 근간이 되는 정신은 불교국인 고려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유학이 근간이 되었다.



공자와 맹자, 그들의 학문에 대해서도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배웠기 때문에 겉모습은 대체적으로 안다. 그러나 실제로 유학이 꽃피운 송나라(남송) 주자학과 명의 양명학에 대해서는 그 모습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사회로 나온다. 왜 주자학과 양명학에 대해서는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독자도 알 수 없다. 그러나 TV 드라마나 역사 해설 같은 강의를 통해 많이 듣기는 했지만 여전히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지낸다. 특히 필요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서양의 사상에 너무 물들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만 할 뿐이다.

그들의 사상이 너무 오래된 것이라서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 질서가 서양의 나라에 의해 재편되었기 때문으로 독자는 짐작만 할 뿐이다.



이런 가운데 주자학과 양명학은 '시대의 요청'과 '새로운 질서'에 여전히 힘을 갖지 못하는 것 같다. 책을 통해서라도 알기에는 사실 어려운 학문이겠지만 한자보다 영어에 더 익숙한 현대 사회에서 주자학과 양명학이 갈 곳을 찾지 못하는 건 아닐까. 안타까운 마음으로 일본의 동양사학자 시마다 겐지가 설명하는 책이 눈에 들었고 읽게 되었다. 읽어본 소감을 미리 밝히자면 '어렵다'이다. 아마 영어로 옮겨도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일 터다.

'같으면서도 달랐던 두 가지 시선'이라는 시마다 겐지 저자의 해석을 경청하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이 책을 감수한 분의 우리와 일본 주자학과의 차이점 등을 함께 배울 수 있어 무척 귀중한 책이었다.

책의 내용은 '중국의 신유학은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려 했는가?'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사상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자학과 양명학의 입장과 역사적 역할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서라는 출판사 측의 주장에도 공감한다.



일본에서는 이미 주자학과 양명학의 본질에 다가서는 최고의 입문서로 저자의 이 책 『주자학과 양명학』이 꼽히는 것 같다.

책에 따르면 불교의 범신론적 사상을 받아들여 송대에 확립한 주자학, 심즉리·치양지·지행합일을 설하는 시대에 태어난 양명학, 두 학설 모두 중국 근세를 지배했던 유교철학이자 유심론적 실천철학이었다. 중국사상사의 흐름 속에서 주자학과 양명학의 성립 과정과 역사적 역할을 알기 위해 저자를 따라가본다.

저자는 양명학을 육상산(陸象山) 학문의 계승 정도로 생각하여 주자학과는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형이상학으로 보는 입장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왕양명은 주자학에서 출발했으며, 그 한계에 부딪쳐 죽음을 무릅쓴 사색 끝에 난관을 뚫고 나가서 마침내 ‘심즉리(心卽理)’라는 원리를 끄집어냈다고 주장한다. 즉 주자학이 전개되는 연장선 위에서 양명학의 등장이 파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주자학에서 양명학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철저히 분석하여 알기 쉽도록 명쾌하게 해설한다. 과연 중국의 신유학은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려 했는지, 같으면서도 달랐던 두 가지 사상의 본질을 밝혀 설명한다.

주자학과 양명학에 대한 근본적 이해는 조선시대 사상사의 이해에도 큰 참고가 되어주리라. 고려 후기에 들어온 성리학이 바로 주자학과 양명학이니 그렇다.



우리가 아는 사실은 공자와 맹자의 사상에서 주자가 주자학을 완성시키기까지 무려 1,800년의 시간이 흘렀다.

중국은 한나라 때 인도에서 전해진 불교의 영향으로 유학에서 갖추지 못했던 개념을 도교와 불교에서 찾아서 차츰 그 토대를 확장한다. 불교에서는 ‘체용의 논리’를 가져온다. ‘체용일치’ 또는 ‘체는 곧 용, 용은 곧 체’라는 개념은 불교의 반야와 방편에 나타나는 내용이다.

청나라 말기의 ‘중학(중국의 학문)’을 체로 하고 자연과학이나 기술학으로서의 ‘서학’을 용으로 한다는 슬로건, 이른바 '중체서용론'이 주창되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 점에서 불교와 같이 체용의 논리가 범신론의 논리임은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본다. 이처럼 송학(주자학)은 불교의 영향을 상당수 받았던 점이 드러난다.

다음은 도교의 영향이다. 중국에서 민중들의 생활에는 도교가 가장 밀착되어 있고, 제사, 주술, 부적 등이 성행했다.

더불어 도교의 핵심 이론의 근본인 우주와 공감하고 우주의 정수를 포착하는 것, ‘천지조화의 기운’을 붙잡아두는 것을 강조했다. 송학의 주체는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사대부들’이다. 송학은 사대부의 학문이며 사대부의 사상이다. 사대부란 누구인가? 당나라 시대 과거제도의 확립과 더불어 일어나 송나라 시대에 이르러 확고부동한 세력으로 자리 잡게 된 지배계급이다.(p. 27)



저자에 따르면 이들 지배계급은 유교 경전의 교양을 지닌 사람들이었고, 과거시험을 통과하여 위정자가 되려던 사람이었다.

한나라는 호족 중심의 사회였다. 이는 출생의 원리로 하는 폐쇄적인 신분사회였고, 시대는 능력을 중심으로 개방적인 사회로의 열망을 담고 있었다. 그 능력은 유교 경전의 교양 능력이었다. 이러한 시대 흐름을 가장 타고난 계층이 사대부였다.

송나라 시대에 등장하는 신흥 사대부를 가장 잘 드러내는 사람은 송학의 원류라 할 수 있는 한유(768~824)이다.

그의 유명한 산문 <원도(도란 무엇인가)>는 인, 의, 도, 덕이라는 네 글자를 해석하고 원리를 밝히는 저서이다. 송학의 최초의 선구자는 한유보다 200년 뒤에 출현하는 주렴계(주돈이 1017~1073)이다. 그는 사는 동안 신통한 관직이나 사상적 명성을 이루지는 못하지만, 문하에 유명한 정명도, 정이천 형제가 후일 주희에 의해 자신의 이론을 집대성하는 가운데 성인의 학문을 이룬 사람으로 소개되어 세상에 드러난 사람이다. 주렴계는 <태극도>를 강조하고, 성인이 될 방법을 소개한다. 그는 욕망을 부정하고, 정을 강조한다.

그의 사상은 정명도(1032~1085)에 이어져 ‘생’을 강조하는 사상을 확립한다. 또한 정명도는 천지만물의 일체로서 ‘인’을 강조한다. 정명도의 동생인 정이천은 유교의 핵심적인 교의는 인이며, 가장 일반적인 의미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을 소개한다. 정이천의 사상을 이어받은 주자가 이천의 말에서 가장 널리 찬양한 부분은 ‘성즉리’이다. 정이천의 ‘성즉리’와 장횡거의 ‘마음은 성과 정을 통괄한다’는 두 가지의 말은 주자에게 가장 중요한 진리였다.



저자는 이 책에서 주자학과 양명학의 차이점을 확실하게 짚어낸다. 주자(1130~1200)의 윤리설을 한마디로 말하면 ‘성즉리’이고, 그 후 300년이 지나는 동안 육상산(1139~1192), 왕양명(1472~1528)의 ‘심즉리’의 싸움이야말로 중국 사상사에서 가장 큰 논쟁이 된다.

송나라(960건국) 이후 중국은 사대부의 천하가 되었으며 철학, 사상, 이데올로기가 넓은 의미의 송학이었다. 송학은 현대 중국철학사가의 분류에 의하면 크게 세 유파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는 장재(장횡거 1020~1077)가 세운 유물론, 즉 ‘기’의 철학이다.

둘째는 정이(정이천)가 시작해서 주희(주자)가 완성한 객관유심론, 즉 ‘성즉리’의 철학이다. 이른바 주자학으로 불리는 이 유파는 곧 국교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지만, 이론 자체의 정제성, 완결성 때문에 주목할 만한 독창적인 후학을 배출하지 못했다.

셋째로 육구연(육상산)이 주장한 주관유심론, 즉 ‘심즉리’의 철학으로, 그 선구는 정호(정명도)를 드는 것이 타당할 것이며, 그 계승자로는 명나라의 왕수인(왕양명)을 드는 것이 정설이다.(p. 274)

'싸움'으로 표현됐지만 '주자학'과 '양명학'은 서로 대립되는 학문과 사상이 아니라 서로 보완적인 관계로 이해된다.

중국에서는 유물론에의 접근도를 기준으로 삼아 주자학이 사상으로서의 가치가 높다는 것이 중국 학계의 정론인 듯하다. 이에 우리 조선의 사대부 역시 주자학을 ‘성즉리’ 성리학을 근본으로 여겨 우리의 인식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다. 신유학이라 불리는 주자학과 양명학의 관계를 찾아보는 이 책은 우리 조상과 우리가 하는 사고방식의 기원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미를 더한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와 닿았던 구절 몇 개만 여기에 적시한다.

"옛날에 밝은 덕을 천하에 밝히려는 자는 먼저 그 나라를 다스린다. 그 나라를 다스리기를 원하는 자는 먼저 그 집을 다스린다. 그 집을 다스리기르 원하는 자는 먼저 자기를 수양한다. 자기를 수양하기를 원하는 자는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한다. 그 마음을 바르게 하기를 원하는 자는 먼저 그 뜻을 진실되게 한다."

"일에 선악이 있는 것은 모두 하늘의 이치이며 천하의 선악이 모두 하늘의 이치이다. 악이란 결코 본래적으로 선에 대항하는 것은 아니며 혹은 넘치거나 혹은 미치지 못하는 것에 이름 붙여진 것일 따름이다."

악은 선에 반대의 뜻이라고 생각했는데 악도 하늘의 이치라는 말도 설득력을 갖는다.



특히 이 책은 주자학에서는 물론이며 양명에서도 생각지 못했던 '인간의 욕망'을 긍정하기에 이르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욕망이 있다는 것은 "인간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음을 리라고 혼일적으로 긍정한 이상, 결국에는 욕망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도리'라는 말이 부정적인 가치를 용어로 쓰였다는 점이 놀랍기도 하고 혼란스럽다.

저자는 주자학에서 양명학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철저히 분석하여 알기 쉽도록 명쾌하게 해설하고 있다. 중국의 신유학은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려 했는지, 같으면서도 달랐던 두 가지 사상의 본질을 알려주는 책이다.


저자 : 시마다 겐지


1917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났다. 전공은 중국사상이며, 동양사학자, 교토대학 인문과학연구소와 사학과 교수, 교토대학 명예교수를 지냈다. 일본 학사원 회원이기도 했다. 1940년대 중국 근세 ㆍ 근대사상사 연구를 시작한 이후 일본의 중국 근세 ㆍ 근대사상사 분야를 이끌어왔다. 2000년에 별세하였다. 저서로는 『중국에서의 근대 사유의 좌절』, 『중국 혁명의 선구자들』 등의 저작이 있다.


역자 : 김석근


연세대 정외과를 거쳐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연구했다. 연세대 정외과 연구교수, 아산서원 교수 및 부원장 등을 지냈다. 『제자백가』, 『주자의 자연학』, 『불교와 양명학』 , 『일본사상사』, 그리고 마루야마 마사오의 주요 저작들을 우리말로 옮겼다.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개인적 의견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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