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계절의 클래식
이지혜 지음 / 파람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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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요즘이야 클래식에 조금 빠진 상태라 KBS 클래식 방송을 듣지만 한 해 전만 하더라도 거의 듣지 않았다. 그만큼 클래식을 잘 모르는 상태이다. 그래서 이 책 『지금 이 계절의 클래식』의 저자도 처음에는 동명이인의 작가로 혼동했다. 작가가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분으로 착각했었다.

책을 받아 들고서야 작가 소개가 나오는 표지 안쪽을 읽고 저자를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더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덕분에 클래식과 본격적으로 친하게 되었으니 저자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 셈이다. 이 책은 그렇게 슬며시 독자에게 왔다가 클래식 선물을 한아름 안겨주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클래식의 많은 17세기 작곡가부터 20세기 음악가까지 머릿속에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지식이 쌓였다. 이젠 많이 듣고 클래식을 마음으로 듣는 일만 남았다. 클래식 마니아가 될 때까지.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저자는 이 책 한 권에 헨델과 바흐부터 20세기 피아졸라와 쇼스타코비치까지 담았다. 음악가들의 곡의 성격과 작곡 배경 또 초연 내용까지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도록 분류도 잘해 놓아 클래식 문외한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체계 있게 쓴 책이다. 계절로 나눠 33곡을 쉽고 흥미로운 인문학 해설과 함께 소개된 책은 다 읽고 난 후 사랑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독자 가슴속에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을 선물하고, 클래식 감상하는 법을 터득하게 해주니 책이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 실린 위대한 음악가들의 사적이고도 내밀한 부분까지 알게 되니 그들의 음악 열정과 영혼마저 느껴진다.





클래식 해설가 이지혜는 일상생활과 관련 있는 클래식 음악을 중심으로 이맘때 듣기 좋은 클래식을 추천하면서 누가, 왜 그런 음악을 만들었는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다. 선곡을 위해 4계절과 24절기의 의미를 탐구하면서 저자 역시 절기의 뜻을 새삼 이해하며 음악을 섬세하게 관찰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친절한 안내는 산뜻한 봄에는 자유와 기쁨을 노래하는 모차르트를 비롯해 초심을 기억하라고 읊조리는 바흐, 원시와 야성의 소리를 일깨우는 스트라빈스키에 귀 기울이게 한다. 여름에는 ‘한여름 밤의 꿈’을 이야기하는 멘델스존과 뜨거운 열정을 드러내는 드보르자크, 지독한 사랑을 음악으로 그렸던 에릭 사티를 곁에 두면 좋다는 듯 계절에 맞는 음악을 소개한다.

우리 독자들은 이 경우 대개 무작정 저자의 소개대로 음악을 이해하지만 그 곡들을 계절에 맞게 분류하는 저자는 굉장한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는 사실은 안다. 계절과 클래식 음악은 저자의 머릿속에서 독자의 감성 공간으로 이동해 더욱 아름답게 연주될 것이다.






지금은 만추의 계절이다. 코로나 팬데믹인데도 계절은 무심한 듯 갈 길을 재촉해 추운 겨울 시작된 코로나가 다시 추워질 이 무렵까지 종식되기는커녕 오히려 확산돼 가며 세상의 분위기를 공포와 불안 속으로 몰아넣지만 이지러진 우리 일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클래식 음악은 예전과 다름없다.

사랑의 아픔을 위로하는 리스트, 그리고 혼잣말마저 아름다운 쇼팽의 선곡이 계절을 압도하고 위안과 용기를 갖게 한다.

곧 다가올 겨울에는 슈베르트의 차갑지만 다정한 선율과 드라마틱하고 환상적인 차이콥스키의 발레곡,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를 들어보라고 저자는 넌지시 권한다.

타레가는 평생 시력이 좋지 않아 고생했다. 어려서 유모 손에 맡겨졌을 때 수로에 빠지는 사고를 겪었는데, 오염된 물에 눈이 감염되어 완치되지 못한 탓이었다. 게다가 체력이나 건강도 썩 좋은 편은 아니어서 연주 생활을 일찍 접어야 했다. 특히 생애 후반에 들어 건강상의 문제로 오른손 손톱이 자라지 않게 되자, 어떻게든 기타 연주를 해보기 위해 손끝 살을 이용해서 연주하는 주법을 개발했다. 그게 바로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에 등장하는 ‘트레몰로 주법’이다. 손가락을 바꿔가며 연이어 줄을 퉁기면 음향이 더욱 풍성해지고 부드러운 사운드가 연출된다. 절실함은 곧 예술이 되었다.(p. 18)




시대와 지역, 계절을 넘나드는 클래식 명곡을 소개하면서 저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음악가의 숨은 에피소드들을 흥미진진하게 들려주기도 한다. 자신의 실수로 멀어졌던 상대방으로부터 신뢰를 되찾기 위헤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던 헨델, 격정적으로 사랑했던 연인과 헤어지고 27년 동안 누구도 자신의 집에 들이지 않은 채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 에릭 사티, 건강상의 문제로 오른손 손톱이 자라지 않자 기타 연주를 계속하기 위해 손끝 살을 이용해 연주하는 ‘트레몰로 주법’을 개발한 타레가, 거대한 변혁의 시대에 태어나 혁명과 냉전의 시대를 온몸으로 맞닥뜨린 채 저항과 수용 사이를 오가야 했던 쇼스타코비치 등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레전드 클래식 예술가들의 낯설고 놀라운 이면은 독서의 흥미로움을 더한다.


쇼스타코비치는 혁명과 냉전의 시대를 몸소 겪은 예술가다. 거대한 변혁의 시대에 태어나 저항과 수용 사이를 오가며 용케 살아남은 작곡가였다.

그가 음악으로 남긴 모든 기록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공포와 갈등, 소신과 고뇌의 흔적들이다. 살아남기 위한 사투이자 예술가로서의 자존감을 포기할 수 없어 사선의 경계를 오간 몸부림이기도 하다. 오선보에 적힌 거대한 팡파르가 울려 퍼질 때 오히려 그가 한없이 애처로워지는 이유다.(p. 44)



최고이자 유일한 전 유럽에 ‘악명’을 떨치던 이탈리아 출신의 어느 바이올리스트에 관한 이야기는 그의 생전에도 그리고 사후에도 온갖 괴담들로 가득하다. 바이올린이 귀재이자 명연주가 파가니니를 사람들은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불렀다. 천사도 아니고 하필이면 왜 악마일까. 단지 놀라운 연주 솜씨에 대한 극찬이라기에 괴기스럽기도 하다. 파가니니가 자신의 별명을 달가워했을까.

비쩍 마르고 병색이 짙은 모습으로 무대에 등장해 현란한 연주를 펼친 뒤 홀연히 사라지곤 했다는 파니니, 그는 과연 어떤 바이올린 소리를 들려주었던 것일까.

<24개의 카프리스>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바이올린 테크닉을 총망라한 작품’ 집이다. 1809-1817년 사이에 작곡한 것으로 추진되는 데 자신의 테크닉 공개를 지독하게 꺼리던 파가니니가 생전에 출판한 유일한 작품집이다.

파가니니가 바이올린으로 선보인 대부분의 기교가 들어 있는 만큼, 그 어떤 작품보다도 기교적 난이도가 높다.

사정이 이러하니 후대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일깨운 작품집이면서 바이올린 연주자들에게는 좌절을 안기기로 악명이 높다.무반주로 작곡했지만 피아노나 오케스트라 반주를 붙여 연주하기도 한다.

관객들에게는 파가니니의 연주뿐 아니라 외모, 무대 뒤의 모습 등도 흥미로운 얘깃거리였다.




세르게아 라흐마니노프는 <교향곡 1번>을 초연한 뒤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심혈을 기울여 써낸 작품이 연주단과 지휘자의 연습 부족 등으로 형편없이 끝내 버린 것도 모자라 사정을 모르는 비평가들은 오로지 라흐마니노프를 향해 거친 비판들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악몽 같은 기억에 발목이 잡혀 극심한 우울증에 걸렸고, 더 이상 작곡을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었던 라흐마니노프도 그런 시절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안타깝다.

2여 년 치료를 받으면서 간신히 우울증을 이겨낸 라흐마니노프는 1899년부터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쓰기 시작했다.

드디어 공식적인 초연으로 자신의 재기를 알렸다. 직접 피아노를 치면서 재기 무대를 마련한 그는 작품성과 연주력 모두 인정받으며 완전히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세르게아 라흐마니호프는 러시아 태생의 음악인이다. 모스크바에서는 작곡가와 지휘자로, 미국 망명 후에는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렸다. 대표적인 ‘러시아적 감성’하면 광활한 설원 위를 내달리는 장면이나 독주를 마시면서 추는 민속춤의 격한 몸짓들이 떠오른다. 러시아 문학에는 열정만큼의 광기와 서늘한 비극성이 혼재된 경우가 많은데.

라흐마니노프가 여기에 보탠 것은 신선한 낭만성 내지는 우울감이다. 그의 음악에서 흘러나오는 울적함이란 도리어 로맨틱한 감성을 더욱 자극 한다. 특유의 우울감은 서정성과 박력과 쌍벽을 이루며 청중의 마음을 파고든다.



슈만의 가곡들은 피아노 음향에 귀를 기울이면서 듣는 것이 좋다. 피아노는 단순히 반주가 아니라 노래와 나란히 가는 대등한 위치에 있다. 사실상 ‘듀엣’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때로는 피아노가 노래를 주도하여 마치 피아노 작품에 노래를 붙인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슈만의 가곡들은 가사를 살펴 가며 듣는 것도 좋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와 뉘앙스를 파악하며 감상하는 편이 더 깊이 와 닿는다.(p. 198)


모차르트, 슈베르트, 멘델스존, 슈만과 브람스… 이 모든 예술가가 계절과 교감하고 영감을 받았듯, 이 책은 모든 독자가 오감을 활짝 열어 이 계절과 클래식 음악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느끼고 즐길 수 있도록 이끈다. 클래식 해설가 이지혜의 『지금 이 계절의 클래식』과 함께라면, 언제든 그 아름다움 속으로 입장할 수 있다. 계절이 음악을 만들었듯, 음악은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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