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 한국인의 비밀 무기
유니 홍 지음, 김지혜 옮김 / 덴스토리(Denstory)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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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nchi라는 영어 표기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우리말 중 영어 표기가 없어서 소리나는 대로 영어로 쓰는구나 했기 때문이다. 그 예로 한국인의 '화'가 영어 표기에는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다. 그러나 '한국인의 비밀무기'로 수식하는 것은 썩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눈치'의 의미가 긍정적인 의미보다 부정적 의미의 말에 결합돼 주로 쓰이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눈치 보다'는 표현은 윗사람이나 강한 사람의 심경이나 마음 상태를 살피는 것이다.

'눈치 빠르다'에서 눈치는 어떤 상황에서 빠르게 알아채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약자가 자신의 안전이나 이익을 위해 강자의 표정, 말투, 행동거지 등을 살핀다는 뜻으로 자주 쓰인다. 저자가 '눈치'를 한국인의 비밀무기라고 표현한 것도 그런 의미라면 독자의 눈치를 살피는 데 이미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 때문인지 저자는 이 책에서 '눈치'의 정의부터 왜 한국인의 고유한 정서인가를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유니 홍 저자는 미국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다 한국어를 모르는 상태에서 한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경험 덕분에 눈치의 위력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것만으로는 명쾌하게 눈치 있는 기술이 될 수 없다. 여러 나라에서 거주하며 다양한 문화 차이 한가운데서도 빠른 적응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 눈치 덕분이라고 하는 것은 옳은 표현이다. 아무튼 눈치에 대해 저자의 해석이나 과정에 대해서는 들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70년 전만 해도 존재감조차 없던 대한민국이 놀라울 만큼 경제 성장한 나라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눈치 덕분이라고 말한다. 저자는빠르게 변화하는 다른 국가의 필요를 ‘눈짐작’하는 능력, ‘변화’에 맞춰 계획을 재조정하는 능력, 한국 경제 성장의 기적 뒤에는 늘 눈치라는 능력이 존재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이 보유한 초능력처럼 들리는 눈치는 사실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려면 필요한 기술이다.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이를 때까지 한국인의 삶과 얽혀 있는 눈치는 요즘 시대에 적절하지 못한 개념으로 보일 수도 있다. 요즘 사람들은 이 개념에 발끈하며 ‘나는 그저 나여야 한다’고 믿는 개인주의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21세기의 모든 지각 있는 존재라면 여러 세대에 걸친 이런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이 우리 발목을 잡게 되었음을 분명히 느낄 것이며, 우리는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세상에 요구하는 것만이 방법은 아니다”라고. 오히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려면 눈치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게 출판사측 입장이다.



출판사에 따르면 눈치의 핵심은 새로운 정보를 바탕으로 사람, 분위기, 상황에 대한 해석을 빠르게 재조정하는 것이다. 과거에 무엇을 하고 어떤 말을 했든, 현재 상황에 적응하면서. 그런데 왜 우리는 분위기에 신경 써야 할까? “사람들은 당신이 한 말과 행동을 잊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당신에게서 느꼈던 감정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라는 마야 안젤루(미국의 시인이자 인권운동가)의 이 말은 그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눈치를 기르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은 바로 나쁜 인상을 남긴 후 수습하는 일이다.

눈치는 ‘열심히 일하지 말고 똑똑하게 일하라’라는 현실적인 가치에 가깝다. 한국을 성공의 나라로 이끈 비밀 무기, 눈치는 여러분 각자의 성공과 행복을 이루게 해줄 것이다. 에둘러 말하기와 수동적이고 공격적인 소통이 난무하는 직장에서도 눈치는 필요한 기술이다. 눈치 있는 사람이라면 직장이 신뢰에 바탕을 둔 환경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직장에서 눈치가 빠르다는 것은 공식적인 발표보다는 숨은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다.

직장에서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관대로 하지 않는 것! 단기적으로는 눈치가 있으면 사회생활에서 실수를 피할 수 있다. 뚜렷한 이유 없이 타인을 내 편으로 만들 수도 있다. 반대로 눈치가 없으면 알 수 없는 이유로 다른 사람이 여러분을 싫어하게 될 수도 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눈치가 없는 성향을 바로잡지 않으면 늘 손해 보는 삶을 살게 될 것이 분명하다. 똑똑한 사람보다 눈치 있는 사람이 성공하는 현실에서, 적자생존이 가장 강한 자의 생존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자. 가장 적응력이 뛰어난 사람이 생존한다. 늘 세상과 혼자 싸우는 기분이 든다면, 세상이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도록 이 책 『눈치』가 도와줄 것이다.




이같은 출판사 측의 주장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이어서 반박하기 어렵다. 그러나 독자는 '눈치'라는 말에 더 집중하고 이 단어에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눈치는 순우리말이다. 순우리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가짓수가 많지 않다. 세종대왕이 창제 반포한 지 무려 550년이나 된 언어의 가짓수가 적다는 주장에 쉽게 수긍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의 어느 나라에 물어도 같은 대답일 가능성이 크다.

이유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한글 창제는 당시 배우지 못한 우리 민족을 위한 쉽게 쓸 수 있는 우리 문자를 만들었다는 가장 큰 이유와 의의 이외에는 한자음 개신이라는 의의도 있다. 이른바 사대부 양반 계급만이 글을 배우고 쓰는 시대에 관료나 선비들은 대다수 한글 창제를 반대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사대주의를 표방하며 개국한 조선의 선비로서는 당연한 일일 수 있지만 보다 근원적인 반대 이유는 자신들의 신분이나 위치를 위협하는 반대세력이 일반 양민층에서 나오는 것을 달가워할 리 없다. 이런 이유 말고도 한글은 원래 한자음 개신의 목적이 있었다. 같은 뜻의 말을 사투리(지방언어)가 다르듯 당시 한자음 발음에는 중국은 물론이고 훨씬 작은 우리나라에서도 지방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었다는 게 언어학자들의 견해다.

그래서 훈민정음 제정 목적을 밝히는 서문에서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가 가장 먼저 나온다. 당시 조선 조정에서 쓰는 문자인 한자의 발음이 지역마다 다른 게 많기 때문에 하나로 통일하기 위해 한글을 제정한다는 취지다.



이렇게 한글을 모든 난관을 극복해가며 오랜 세월을 걸려 만들어놓고도 조정이나 각종 문서에는 한자를 썼다. 양반 계급의 신분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위협이 되는 백성들이 자신의 뜻을 글로 써 밝히게 될 경우 자신들의 위치는 물론 신분사회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게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대주의를 나라의 근본 중 하나로 세운 나라가 조선인데 중국에 사대하는 한 한글을 공식 문서로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러다보니 양반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일반 서민들이 사는 언어의 괴리가 생기기 시작한다. 즉 양반이나 선비들은 한자말을 주로 쓰고, 농민 등 일반인들은 우리 고유의 말(한자로 쓸 수 없는 말)을 사용하고 한글로 적었다. 그것은 이후 수백년 간 그대로 답습돼 왔다. 이에 한글, 즉 우리말로 표기하는 것은 '상놈의 언어' 한자어는 비록 한글로 적더라도 '양반의 언어'였다. 일반인들은 '밥 먹었습니까'를 양반들은 '식사(食事)하셨습니까'로 말하고 표기했다. 이렇게 수백년 간 내려온 한글과 한자의 괴리는 사용하는 신분사회에서 그대로 굳어져 지금도 한자어로 된 표현은 '젊잔은' 표현이고 순우리말 표현은 막말로 인지되는 경우가 많다.

윗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때 '감사(感謝)합니다'로 아랫사람에게 표현할 때는 '고맙다'로 썼다. 지금은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그만큼 우리 민족의 언어 인식에 큰 차이를 가져왔다. 더욱이 우리가 지금 쓰는 사전에 등재된 말 70%는 한자어이거나 한자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우리말을 더 발전시키고 좋은 언어로 만들어가는 역할은 지금 우리 세대가 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눈치 역시 마찬가지다. 저자가 풀이해놓은 대로 눈치는 "다른 사람의 신뢰를 얻고 서로 화합하며 관계를 맺기 위해 타인의 생각과 느낌을 살피는 섬세한 기술"이다.(p. 9) '눈치'에 대한 의미를 설명하는 데 '신뢰' '화합' '관계' '타인' '생각' '섬세' '기술' 등이 모두 한자어다. 순우리말 사전적 의미를 설명하는 데 한자어가 다섯 개나 들어가고 있다. 물론 우리말 큰 사전의 해석은 아니다.

독자가 '눈치'를 한국인의 생존무기이고 유전자화 돼 있다는 말에 나쁜 의미로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눈치를 표현했듯이 '눈치'를 좋은 의미로 설명하기 위해 한국인의 비밀무기로 표현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비판하는 것도 아니다. 앞서 말한 대로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논리적 주장이다.

다만 눈치라는 표현이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뭔가 '떳떳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에게 겸손하게 대해야 하는(이는 굴종이고 아첨)' 단어를 마치 한국인들이 모두 '좋은 표현이다'라고 동의하지 않을 것 같아 독자의 입장을 주장하는 것이다.



나름대로 저자도 '눈치'에 대해 전혀 비겁함이나 굴종적인 말로 비하하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하고, 오히려 떳떳하게 드러내는 우리말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부분도 많다. 때문에 저자의 노력과 '눈치'에 대해 풀어쓰는 과정에도 감사를 말씀 드리고 싶다. 저자의 지적대로 우리는 지정학적 위치 등으로강대국의 침범을 수백 차례나 받아왔다. 그래서 '눈치 보는' 사람으로 한국인들을 폄훼하는 사람이 없도록 주장하고 싶은 저자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문장도 책에 많이 언급했다.

눈치 없는 공감은 문법 없는 말, 곧 의미 없는 소음과 같다.(p. 45)

무지함에 나쁜 의도가 없더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나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p. 65)

다른 사람과의 언어적 의사소통이 확실하지 않다거나 헷갈린다는 것은, 우리가 그들의 비언어적 단서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신호다.(p. 67)

눈치의 중요한 요소(이자 성공의 중요한 요소)는 듣고 싶지 않은 진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p. 70)

첫인상은 믿어야 한다.(p. 103)

눈치는 우리 인생에 등장하는 가장 끈질긴 악당, 부정과 싸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p. 106)

말하지 않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훨씬 더 많은 진실을 알아낼 수 있다.(p. 122)

사람들은 늘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말하지 않는다. 그럴 권리는 있다.(p. 144)

‘우울하다면, 먼저 여러분이 재수 없는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자’.(p. 198)

의도치 않게 해를 끼치는 것이 때로는 의도적으로 해를 끼친 것만큼 나쁘다.(p. 204)




저자는 책에서 미국과 우리나라의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눈치 또한 다르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충분히 오래 기다리면 대부분의 의문은 해결되고, 말하는 것보다 들으며 더 많이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회사 생활을 많이 경험하고 느낀 부분도 나온다. 상사나 동료 눈치를 봐야 하는 경우가 많다.

눈치가 있더라도 잘 캐치하고 대응을 잘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며, 눈치가 없어서 그냥 지내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눈치가 없는 사람들이 문제이라고 한다. 과연, 눈치 없는 사람들을 멸시하기보다는, 눈치가 있는데 없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유심히 지켜봐야 할 일이다. 즉, 눈치가 없어서 저러는구나 하는 것보다 상대방의 진심이 무엇인지 왜 눈치 없이 행동하는지의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보는 게 더 필요한 일이다.



눈치가 없는 사람들이 필요한 건 관찰력과 적응력이다. 문화와 가치관의 차이로 곤란한 경우를 경험하는 것보다 자신의 관찰력과 적응력의 부족으로 곤란한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지, 눈치가 없어 발생하는 일은 아니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우리가 외국 여행에서 곤란한 경우를 경험하는 것은 우리식 습관을 그 나라의 풍습과 언어 태도, 행동 방식을 무시한 채 내보였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관광객인 우리를 그 사람들이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외국인도 우리나라에 와서 자신들의 습관대로 행동한다면 우리 역시 그들을 무례하다고 비난하지 않은가. 요즘 우리나라로 여행오는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고 어떻게 하는지 익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20~30년 전만 해도 그렇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의 경제력이나 문화 수준 등을 경험한 사람들은 우리의 풍습을 무시하거나 우리 나라 사람들을 백안시하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찰력과 겸손을 모두 동원해 우리에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은가. 상대를 존중해서 상대의 심정이나 표정, 행동 등을 잘 살피는 것은 배려와 친절의 한 모습이지 결코 눈치라고 싸잡아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저자가 눈치를 한국인의 비밀무기라고 표현한 부분에선 우리가 항상 약자인 상황에서 쌓여온 강한 자에게 아부하기 위해 살피는 것으로 잘못 지적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저자 : 유니 홍(EUNY HONG)


TV 뉴스 분야에서 국제적인 경험을 쌓은 언론인이자 작가.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월 스트리트 저널 유럽』 등의 매체에 기고했으며, 저서로는 『THE BIRTH OF KOREAN COOL코리안 쿨』이 있다. 이 책 『THE POWER OF NUNCHI눈치』는 저자의 세 번째 저서로, 미국에서 2019년 11월 출간되어 15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미국 시카고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다 한국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상황에서 가족과 함께 한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경험은, 눈치의 조기 교육이 되었다. 평범한 공립학교 교실에서 배운 두 가지 교훈은, 충분히 오래 기다리면 대부분의 의문은 해결된다는 것과 말하는 것보다 들으며 더 많이 배울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절대 선천적으로 눈치가 빠르지 않은 저자는, 삶의 큰 변화를 경험하며 눈치의 힘을 기를 수 있었다. 좋은 삶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질문의 답을 찾으려는 마음에 예일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재학 시절, 학내 유머 잡지 『럼퍼스RUMPUS』를 공동 창간했으며, 이 잡지는 현재도 발간되고 있다. 6년 동안 파리에 거주하며 텔레비전 뉴스 채널 「프랑스 24」에서 웹 프로듀서로 일했고, 2012년 미국으로 둥지를 옮기며 몸소 눈치의 기술을 쓰며 지내고 있다.


역자 : 김지혜


미국 버클리음악대학에서 프로페셔널 뮤직을 전공한 후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통번역학과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외국어교육특수대학원에서 TESOL을 전공했다. 쉽지 않았던 미국 생활을 눈치로 헤쳐나가며 다양한 눈치의 기술을 경험했다. 진로를 변경하고, 여러 직업을 거치는 지난한 여정에서 눈치로 살아남았다고 믿고 있다. 현재는 바른번역 소속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나는 어지르고 살기로 했다』 『빵은 인생과 같다고들 하지』 『남극으로 걸어간 산책자』 『벽을 뚫는 대화법』 등 다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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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TIME TO PLAN - 일어나라, 삶이 바뀐다
김유진 지음 / 토네이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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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2월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휩싸인다. 거리가 온통 크리스마스 트리부터 상가도 온갖 현란한 치장으로 고객들의 눈길을 잡아끌고, 유혹한다. 각 기업에서도 사업 성과에 따라 특별 상여금을 지급하고 주머니는 제법 두둑해져 한 해 동안 고마운 사람들에게 카드나 연하장을 보내고 가족에게 한아름씩 선물도 안겨준다. 경제가 좋을 때 연말이 다가오면 으레 보는 모습이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실적이 좋은 기업들도 별로 없는 데다 외출이나 외식, 회사에서의 회식은커녕 친한 친구들과의 모임, 송년회 등이 모두 취소된 상태다. 거리에 사람들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저녁이면 불야성을 이루는 유흥업소도 문을 닫거나 강제 영업 제한으로 썰렁하기만 하다. 크리스마스고, 송년회고, 동창회고 도무지 입밖에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오늘(14일)부터는 한파마저 몰아치다보니 거리는 사람 찾아보기 힘든 유령도시처럼 변해간다.

'집밖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거의 일년간 지속되어온 코로나 감염병으로 인해 사람들 뇌리속에 깊숙이 박혀 있다. 불투명한 새해 전망 때문에 새해 계획도 세울 수 없는 형국이다. 사람들은 그래도 삶은 이어가야 하니 개인적으로는 집에 있는 시간을 이용해 저마다의 새해 목표나 희망, 소원을 헤아려가며 다이어리를 채우기 시작한다. 올해는 망쳤지만 새해까지 그럴 리가 있겠느냐는 낙관적 전망에 백신 접종도 일부 국가에서 시작했다고 하니 어떻게든 살아남아(?) 예전의 일상을 되찾으려는 의지만은 버리지 않고 있다. 그게 인간의 삶이기도 하니까.




새해 계획을 세우는데 한 가지 걱정이 더 생겼다. 업무용으로 쓰는 다이어리는 회사에서 나온 것을 썼지만 개인 다이어리를 따로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독자에게 그야말로 멋진 다이어리 한 권이 손에 주어졌다. 더할 나위 없이 큰 기쁨이고 희망을 설계하는 데 좋은 도구가 생겼다는 기쁨을 맛보았다.

그러나 개인 다이어리를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독자로서는 어떤 계획을 써 넣어야 할지 걱정이 앞섰고, 만일 계획대로 안 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더해졌다. 더욱이 손에 들어온 다이어리는 베스트셀러 작가(변호사)가 만든 계획표가 인쇄돼 있는 다이어리여서 하루 24시간을 채워넣어야 하는 부담감도 떨치기 어려웠다. 그러나 다이어리를 펴본 순간 '쓸데없는 걱정'임을 금세 깨달았다. 다이어리 사용법부터 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이나 결과, 피드백 등을 모두 기입할 수 있어서 빠짐없이 기록하도록 돼 있어서 칸을 메워가면서 하루하루를 열정적으로 산다면 문제 없을 정도의 다이어리였다.

시간 관리만 제대로 하면 다이어리가 모자랄 정도로 잘 만들어진 다이어리였다.

『0430 TIME TO PLAN / 일어나라, 삶이 바뀐다』는 이 다이어리는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는 책을 써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김유진 미국 변호사가 고안한 실전 플래너다. 앞 '0430'은 새벽 4시 30분을 지칭하는 것이고 '일어나라, 삶이 바뀐다'는 시간관리의 중요성을 위해 작가가 고안한 다이어리 제목이다. 멋지지 않은가. 이 다이어리와 함께 멋진 한 해를 만들어보는 새로운 희망에 벌써 부푸는 가슴에 기쁨이 가득 담긴다.



작가의 말인지, 출판사의 말인지 모르지만 멋진 소개글도 있다. "연말연시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아침형 인간 되기’를 새로운 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새벽 기상 자체가 힘들 뿐만 아니라 새벽 기상으로 생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몰라 작심삼일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알차게 일상을 보내고 싶지만 현실은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데 급급하다면 내년은 『0430 TIME TO PLAN』과 함께하면 어떨까?"

이 책은 새벽 시간의 힘을 전파하는 파워 인플루언서이자 4시 30분 기상을 실천하고 있는 저자가 직접 고안한 시간 관리 플래너로, 출간 즉시 전국 서점에서 종합 베스트셀러가 된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의 실천 다이어리다.(이 책을 읽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새벽 4시부터 긴 바 형태로 24시간을 나눠 작성하여 어떤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지 찾고 하루의 스케줄을 주도하게 만들어준다. 또한 일어나기, 세수하기 등 새벽부터 하는 기본적인 일까지 다음 날의 일과를 세세하게 작성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면 체크하는 시스템으로 구성돼 매일 작은 성취를 맛봄으로써 새벽 기상에 대한 동기를 부여한다. 한편 중간 중간 아침과 관련된 명언과 저자의 에세이까지 수록돼 읽는 재미가 있다. 이 플래너를 사용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새벽 기상의 놀라운 힘을 깨닫고 아침형 인간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로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기 위한 노력에 집중하고 싶다. 이 다이어리와 함께라면 가능하리라는 희망에 빨리 새해가 오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이 플래너의 가장 큰 장점은 '예쁜 디자인과 가로쓰기 판형'이다. 독자로서는 옆으로 길게 펼친 다이어리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평소에 많이 해왔다. 글을 쓰다보면 칸이 너무 좁아 다음 줄, 다음 줄 쓰다보면 금세 무슨 말을 쓰는지 알 수 없게 메모식으로 적는 경우가 많아서 나중에 보면 쓸 때의 생각을 정확히 몰라 당황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옆으로 길게 해놓고 쓰면 메모식이 아닌 문장식으로 길게 쓰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1년용 다이어리여서 조금은 두껍지만 하드커버 양장본으로 고급스러워 소유의 기쁨과 한 칸 한 칸 써나가면서 얻는 즐거움이 매우 클 것 같다.<아래 사진 참조>

우리는 아주 짧은 여유 시간에는 뭘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멍하니 그 시간을 흘려보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시간에 늦장 부리다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일을 끝낼 수도 있고 평소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영화를 시청할 수도 있다. 심지어 이런 자투리 시간도 모아보면 의외로 길다. 그러니 이제부터 이 시간을 적극 활용해보자. 이때 ‘우체국 가기’, ‘은행에 전화하기’ 등 할 일을 플래너에 적어놓으면 자투리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p.15, chapter 1: 이 책의 사용법)



연말이 되어 가면 쏟아져 나오는 다이어리는 플래너 사용자에게는 외관도 중요하다. 일년 내내 갖고 쓸 텐데 허접하거나 품위가 없는 디자인은 독자 취향에 안 맞고, 가급적 단색과 짙은색을 써왔다. 회사에서 나오는 게 마음에 안 들면 표지를 바꿔 개인적으로 사용했으니까. 물론 일반 판매용 다이어리에 회사 로고와 년도만 표기해서... 그러나 이 플래너는 멋진 디자인도 '갖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더욱이 책갈피도 하나 끼워져 있어 여러 용도로 사용할 수 있어 좋을 것 같다.



구성을 보면 기입란이 큼직하게 5칸 정도로 나뉘어져 있다. 'To Do List', '메모', '목표 / 다짐', '자투리 시간' 그리고 'Reminder' 칸 등이다. 잘게 나누어진 칸에 빽빽하게 안써도 돼서 좋고, 카테고리명이 여러가지로 필요해 따라 더하거나 뺄 정도로 여유 있는 이름이어서 즐겁다. 쓰다 다른 것을 더 기입하고 싶으면 바꾸면 되니까. '자투리 시간'을 따로 마련해둔 꼼꼼함은 다이어리의 효용성을 잘 아시는 분이라 가능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시간 낭비를 없애려면 자투리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은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은 대부분 느꼈을 터다. 예를 들면 지하철 타고 출근하는 경우 러시아워를 피해 1시간 여 일찍 출근할 때 사람도 적어 앉아가면서 10분에서 30~40분씩 도것를 했던 기억이 있다. 출근에 걸리는 시간은 비슷하지만 한 시간 일찍 일어나 움직인 데다 책을 읽으면 하루 1시간 30분의 여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 좋았던 경험이 있다. 당연히 남보다 우수한 회사 생활로 효과가 엄청 컸다.



월간 목표를 적을 수 있는 '올해의 타임라인'과 '이달의 목표' 페이지도 있어 연간 목표와 월간 실행계획을 나눌 수 있다. 타임라인은 목표를 상기하고 월간 계획에 맞춘 달성률을 점검하기에 좋게 배열돼 있다. 시작부터 끝까지 '시간 관리'에 맞춰져 있다. '시간이 금이고, 돈이다'는 생각이 난다.

굵직한 월간 목표는 앞쪽에 있는 조그만 칸에 최대한 간단하게 적으면 되도록 인쇄돼 있다. 다이어리를 들추면 맨 앞쪽이기 때문에 다이어리 쓸 때마다 거쳐가면 월간 목표를 잊지 않도록 상기시키는 칸이다.



이 책의 특징은 각종 격언과 작가의 미공개 에세이가 중간중간 들어 있다는 점이다. 목차에는 페이지 표시가 되어 있지만, 플래너 내지에는 페이지가 따로 없어 처음엔 약간 당황하기도 했지만 금세 찾아낼 수 있다. 격언은 한 달에 한 번, 에세이는 분기에 한 번 들어가 있다. 에세이는 계절에 맞추고 격언은 한 달 내내 긴장을 늦추지 않게 하기 위한 것 같다.

고급스러운 외관과 달리 내지는 조금 질감이 다르다. 아마 만년필로 메모를 하는 사람들을 배려한 듯하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옛말처럼 좋은 다이어리를 충실하게 쓰려면 만년필 하나 장말해야겠다 생각해서 가격을 좀 알아보니 아직은 만년필 쓰기는 어렵다는 확인만 한 셈이 돼 버렸다.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는지 가격이 너무 비싸고(예, 몽블랑), 싼 만년필은 색깔이나 모양이 너무 품위가 없어 볼펜보다 더 경망스럽게 생겨 다음으로 미루고 말았다.



이 플래너의 사용법에 잠들기 전 그 날을 돌아보며 코멘트(반성/칭찬)를 하고 다음 날의 일정을 미리 작성하라고 돼 있다. 다행히 독자는 일기 습관을 갖고 있어 별 걱정은 안 된다. 그러나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서 전날 적어 둔 '오늘의 할 일'을 점검하라는데 새벽 4시 30분이 가장 어려운 숙제라는 생각이 든다. 이젠 본격적으로 쓰기 전 보름도 안 남았는데 새벽 4시 30분 기상하는 습관부터 들여야 할 것 같다. 건강에 이상이 오지 않는 한 이 습관도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도 든다. 예전 5시 30분 기상 습관이 있었으니, 습관 들이기가 무거운 짐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이쯤 되니 이 플래너의 저자가 사용법까지 가르쳐 주었는데 개인 다이어리 적어나가는 습관도 어렵지 않을 것 같다.

플래너 첫 장에 쓸 말을 고심하다 문득 언젠가 친구에게 보낸 연하장에 썼던 에디트 리브조이 피어스의 격언 하나를 떠올려 적어넣었다.

"우리는 책을 연다. 그 속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다. 우리 스스로가 글을 써 넣을 것이다. 그 책의 제목은 '기회'이고 그 첫 번째 장의 이름은 '새해 첫날'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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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미술관 2 : 한국 - 가볍게 시작해 볼수록 빠져드는 한국 현대미술 방구석 미술관 2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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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조원재를 예술가라고 호칭하지 않고 작가라고 말하는지 이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그의 유명한 전작 『방구석 미술관』을 읽지 못한 독자로서는 그를 화가, 미술가, 예술가라고 부르지 않고 작가라고 말하는지 이 책을 읽고 깨달았다. 그의 이름을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처음 들었고(친구들도 그에 대해 얘기한 게 아니라 '요즘 무슨 책이 잘 팔리는지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중), 그는 미술을 전공했지만 화가로서 유명해진 게 아니고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널리 알려졌다는 말을 들었다. 독자는 미술이나 그림에 대해 잘 모르는 데다 단순히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알게 된 베스트셀러 작가쯤으로 인식하게 됐다.

그러나 이 책을 읽게 된 후부터는 단순히 작가라고 부르기에는 예술, 특히 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이해, 그리고 책으로서 설명하려는 글솜씨가 탁월해 더 친근감이 갔다. 미술은 고상하고 우아한 사람들의 전유물이라 여기던 일반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한국 미술의 거장들을 책 한 권에 담아 미술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예술이고, 뛰어난 화가도 많다고 밝힘으로써 더욱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전작에 이어 이 책에서도 한국 근현대 화가들의 삶이 우리 역사처럼 굴곡이 많고, 난관도 많아서 대부분 어려운 삶을 살았다고 에피소드나 그들의 생활을 짚어냄으로써 한국 근현대 화가들을 독자들에게 이해시켜 큰 사랑을 받고, 이런 화가들이 있는 한국인이라는 자부심까지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고 믿는다. 그가 책을 통해 한국 미술계와 화가들에게 기여한 공로가 매우 클 것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이 책에서도 조원재 작가는 20세기 한국미술의 거장들을 '방구석'으로 초대해 그들의 삶과 작품에 담긴 놀라운 이야기를 특유의 재치 넘치는 스토리텔링으로 흥미진진하게 전한다. 미술계의 원조 월드클래스 이응노, ‘여자도 사람이다’를 외친 신여성 나혜석,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132억원이라는 최고가를 기록한 김환기 등 시대의 풍파 속에서도 우리 미술을 세계적인 경지로 이끈 예술가들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고흐, 피카소, 모네 등 서양화가밖에 몰랐던 사람들이라면, 이 책과 함께 한국미술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책이다.

한국 화가 작품 이미지 150여 점을 담았고, QR코드로도 만나는, 생생한 스토리텔링으 읽으면 이 책은 또 베스트셀러가 되리라는 독자의 확신이다.




이 책에는 모두 10명의 우리와 친숙한 한국미술 거장들이 자리하고 있다.

소를 사랑한 화가 이중섭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

한국 최초의 월드 아티스트 이응노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심플'을 추구한 반 고흐급 외골수 장욱진

한국에서 가장 비싼 화가 김환기

서민을 친근하게 그려온 국민화가 박수근

독보적 여인상을 그린 천경자

비디오아트의 선구자 백남준

돌조각을 예술로, 모노파 대표 미술가 이우환 등 미술은 몰라도 이름은 들어보고, 일부는 작품도 기억날 분들이다. 물론 여기에 초대되지 않은 많은 화가들이 있지만 작가가 다음으로 미루는 이유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화가분들의 작품과 함께 소개할 것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그의 글솜씨와 한국미술에 대한 애정이 계속되는 한.



작가는 “반 고흐는 아는데 왜 김환기는 모를까요?”라는 뼈아픈 질문과 함께 한국 현대미술을 빛낸 작가와 작품들을 한자리에 소환했다. 이중섭, 박수근, 천경자 등 20~21세기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총 10명의 화가와 그들의 작품을 수록해 다채로운 볼거리를 선사하고 있다.

특히 『방구석 미술관』 2탄인 이 책은 균형 잡힌 시선으로 서양미술과 한국미술의 경계를 허물고, 세계 속에 놓인 한국미술의 진짜 매력을 소개한다.

격동의 20세기를 지나며 매 순간 미술의 고정관념을 부숴왔던 예술가들의 놀라운 삶은 우리에게 반전 가득한 재미와 코끝 찡한 감동을 동시에 준다. 소설이나 시, 에세이를 읽는 것 못지 않은 문학적 감성으로 코로나 팬데믹으로 움츠러들대로 움츠러진 우리 가슴을 열어 젖히게 한다. 뿐만 아니라 한국 미술 거장들의 삶에 관한 에피소드는 감동을 너머 코로나 감염병은 우리가 끝까지 이겨낸다는 희망까지 안겨준다.

인상주의의 대가 모네를 떠올리게 하는 나혜석의 빛 표현, 세잔과 피카소에게서 이어지는 유영국의 추상미술, 뒤샹을 떠오르게 하는 백남준의 예술 퍼포먼스까지. 읽다 보면 절로 1탄을 떠올리게 하는 『방구석 미술관 2-한국』과 함께 알면 알수록 빠져들 수밖에 없는 한국 현대미술을 만나는 즐거움은 화가들의 삶과 작품처럼 놀랍다.



“한국 최초로 세계적 예술가가 된 사람은?”

이런 질문을 던지면 아마 백이면 백 백남준을 떠올릴 것입니다. 하지만 백남준보다 먼저 작품을 인정받고 세계를 무대로 활동한 ‘월드 아티스트’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응노죠. 백남준이 〈TV부처〉로 뉴욕미술계에서 ‘비디오 아티스트’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1968년이었지만 이응노는 그 이전에 이미 유럽 미술계를 휩쓸고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1965년에는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명예대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백남준은 익숙한데 왜 이응노는 그렇지 않을까요? (앞으로 함께 그 이유를 알아봅시다.)

“나의 창작생활은 50여 년을 통하여 똑같은 수법의 되풀이를 싫어하며 항상 자신이 하던 일을 깨뜨리는 습성이, 불만, 불만에서 현재도 지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와 같으리라 여겨진다.”

이응노. 한마디로 ‘변신의 귀재’라 말하고 싶습니다. 전 생애에 걸쳐 그의 작품을 주르륵 펼쳐보면, 마치 여러 작가들이 만든 작품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작품세계가 변화무쌍했다는 뜻인데요. 그는 어떻게 그리고 왜 자신의 작품세계를 끝없이 변신시켰을까요?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길 위에서 이응노라는 한 예술가이자 인간에게 ‘어디서도 얻기 어려운’ 특별한 영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제 한국 최초의 월드 아티스트이자 변신의 귀재, 이응노를 만나러 가볼까요?



독자처럼 일반 사람들이 반 고흐나, 모네와 같은 서양의 유명 화가들과 그림만 친숙하고 우리 한국미술은 잘 모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미술시간에 가르치는 게 대부분 서양화가들과 그림이고, 한국화가는 작품뿐만 아니라 이름마저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림 그리는 미술시간에도 서양화에 맞게 크레파스, 물감, 데생까지 모두 서양화 그리는 도구와 그리기를 배웠다.

어려운 시절 배운 게 없는데 따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될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관심을 갖고 배우려 하겠는가. 그림 그리는 사람들도 대부분 서양화를 택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의 영향이 가장 크겠지만 우리 화가들의 탁월함이나 작품의 예술성을 우리가 높여가야 하는데 우리의 근현대사는 일본의 식민지배부터 민족상잔의 전쟁, 산업화에 매몰된 몰개성 등의 교육이 우리 고유의 미술에 대해서는 박하고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서양 화가의 작품에 비해 작품 가치(돈으로 환산한)를 훨씬 낮게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그런 풍토에서 우리 한국화가들의 위상은 높게 자리잡기 힘들었고, 파리 유학 한 번 안 간 사람은 화가라고 불러주지도 않을 정도의 미술계 풍토에서 어떻게 큰 화가, 위대한 화가가 나올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보면 눈시울마저 붉어진다.



이 책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작품성은 물론 화가의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내는 과정 등을 자세히 알아야 더 관심을 갖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라고 생각이 든다. 조원재 작가는 그 일을 자신이 하겠다고 나선 것이라고 이해한다. 작가는 이 일을 하느라고 그림을 그린다든지에 앞서 많은 공부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에피소드라든지, 삶의 모습 등을 일일이 수집해 확보한 다음 책을 썼을 터이니 독자들의 관심과 인기를 끌 수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한국 화가와 일반 대중은 작가에게 많은 빚을 진 셈이라고 생각한다. 독자는 그런 점에서 작가 조원재가 좋다. 조원재를 아는 많은 사람들도 독자의 주장에 공감할 것으로 믿는다.


저자 : 조원재


미술을 사랑해서 ‘미술관 앞 남자’가 된 남자. 줄여서 ‘미남’이라고 불린다. ‘미술은 누구나 쉽고 재밌게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라는 모토 아래 2016년부터 팟캐스트 〈방구석 미술관〉을 진행하고 있다. 미술에 대한 오해와 허례허식을 벗겨 모두가 ‘미술, 사실은 별거 아니구나!’를 깨닫고 즐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2018년 『방구석 미술관』을 출간했다. 이 책은 수많은 미술 햇병아리들을 미술의 즐거움에 입문시키며 현재까지 예술 분야 독보적 1위, 최장 기간 예술 베스트셀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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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이드 수잔
줄리아 히벌린 지음, 유소영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연쇄살인범의 희생자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사형제도의 모순 등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가 많은 소설이다. 추리소설로서는 굉장히 '착한' 책이다. 착하다는 표현에 거부감이 있을 수 있지만 사건의 복잡성과 잔인성, 극적 몰입감보다는 복잡한 심리 변화를 주로 다뤘고, 사형제도의 모순을 드러냄으로써 범죄자의 처벌에 대한 제도도 짚었기 때문에 독자가 임의로 붙인 명칭임을 미리 밝힌다.

해바라기를 연상케하는, 까만 눈동자가 가운데 박혀 예쁘긴 하지만 조금은 무섭기도 한 블랙 아이드 수잔이란 꽃도 처음 대하지만 여성 스릴러 작가 시리즈 첫번째로 줄리아 히벌린 작가를 알게 된 것도 개인적으로는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독자는 추리소설을 읽기 시작한 지 채 1년이 안 된 '신참'이기 때문에 독자로서 다소 무모하거나 무례한 평이라면 너그럽게 용서를 빈다.

이 소설은 출판사에서 선보이는 여성 작가 스릴러 소설 시리즈 첫 번째 순서라고 한다. 『블랙 아이드 수잔』은 그래서 많은 기대와 궁금증으로 독자에게 다가왔다. 심리 변화나 묘사, 긴장감 조성에는 여성 작가가 더 유리한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첨예한 심리 묘사가 멋진 작품의 가장 매력적인 점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예측 불가능한 반전과 서스펜스의 세계로 기꺼이 걸어들어간다.



16세의 테사 카트라이트는 텍사스의 어느 지역, 뼈들이 나뒹구는 곳에서 산채로 묻힌 채 발견된다. 주변에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여자들의 유골이 흩어져 있었고, 그녀는 자기가 어떻게 하다 거기 버려졌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피해자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그녀를 사람들은 ‘블랙 아이드 수잔’이라 부른다. 테사가 발견된 공동묘지에 마치 카펫처럼 깔려있던 번성한 블랙 아이드 수잔 꽃 때문에 희생자들에게 붙은 별칭이었다. 테사는 그 비극적인 시간들에 대해 증언했고 그로인해 살인범을 사형장에 넣을 수 있었다.

이제 십대 딸을 둔 성인이 된 그녀의 머릿속에는 죽은 소녀들의 유령들이 같이 살고 있고, 18년 전 재판에서의 증언 때문에 무고한 사람이 텍사스 사형수 감옥에 갇혀 있는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이 떠나지 않는다. 테사는 오래된 비밀과 새로운 공포를 억누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자신의 집 창밖에 고의로 블랙 아이드 수잔을 심어 놓은 걸 발견하게 된다. 진짜 연쇄살인범이 그녀의 주위를 맴도는 걸까?

사형 집행일이 다가오면서, 테사는 유명한 법과학자와 사형수 전문 변호사와 손을 잡고 진실을 밝히는 경주에 뛰어든다.

한편, 자신의 완전한 편이었던 단짝 리디아는 20년 전 테사의 재판 증언 이후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블랙 아이드 수잔 중 한 명이 되어 희생당했는가, 아니면 스스로 자취를 감춰버린 걸까. 만약 스스로 자취를 감춘 거라면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감옥 안에 있는 테렐이 범인이 아니라면, 진짜 연쇄살인범은 누구인가?



출판사에 따르면 충격적이고 강렬하며 완벽하게 독창적인 『블랙 아이드 수잔』은 반전이 있는 심리 스릴러다. 젊은 여성의 과거와 현재의 끔찍한 이야기는 매끄럽게 이어진다. 그녀의 무시무시한 추억은 꽃밭에 남아 있고 살인자는 그의 정원으로 돌아온다. 이 책은 첨단 유전자 과학에 대해, 심리적인 트라우마가 10대에게 남기는 충격에 대해, 느리게 굴러가는 텍사스의 사형제도에 대해 조언해준 일군의 사람들(과학자들, 심리 상담사, 법률 전문가들)에게 빚지고 있다. 출판사측의 말대로 충격적인 스토리임을 소설의 도입부부터 으스스하고 명확한 배경 묘사를 시작한다.


사실상 이곳은 그들의 세 번째 묘지다. 오늘 밤 포트워스에 있는 세인트메리 공동묘지에서 발굴되는 두 명의 수잔은 범인이 먼저 죽인 피해자였다. 그는 처음 시체를 숨긴 장소에서 유골을 다시 파낸 뒤, 나와 같이 닭 뼈다귀처럼 들판에 던졌다. 모두 네 사람이 동시에 유기되었다. 나는 메리 설리번이라는 소녀 위에 던져졌다. 법의관은 그녀가 사망한 지 하루 이상 지났다고 판단했다. 나는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중얼거리는 말을 들었다.

“악마가 벽장을 비운 모양이군.”(p. 36)



테사는 연쇄 살인범에게 운 좋게 살아남은 피해자이다. 나름대로 일상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살인범의 사형집행일이 다가올수록 그가 진범이 아니라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테사는 충격을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기억을 잃었고, 남을 믿지 못해 숨기기도 한다. 때문에 테사의 말들은 모두 의심이 간다. 테사가 말하는 절친 리디아도 혹 허구의 친구가 아닐까 생각도 했다. 책의 끝 부분에 가서야 의심이 풀렸지만.

연쇄살인범과 리디아의 존재. 이 두 가지를 추적하는 과정이 이 소설의 내용이다. 블랙아이드 수잔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아직 과학적인 수사기법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라 지금처럼 DNA를 수집하며 분석하고 법정 증거로 사용하지 못한 것 같다. 마치 우리의 '화성연쇄살인사건'처럼.

DNA뿐만 아니라 지역별로 동위원소가 다른 비율로 쌓인다는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새로운 점이다. 진실을 밝혀내는 것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이런 과학수사 방법은 더 많은 추리소설을 읽을 때 독자의 기본 자산이 될 것이다.


블랙 아이드 수잔이 된 이후 내 인생에 대한 온갖 과장된 기사란 기사는 다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기사 속에서 엄마는 ‘미심쩍은’ 정황에서 사망했고, 할아버지는 으스스한 집을 지었으며, 나는 말 그대로 완벽했다. 하지만 사실은? 엄마는 희귀한 뇌졸중을 앓았고, 할머니가 할아버지보다 더 미치광이였으며, 나는 절대 동화 속에 나오는 여주인공이 아니었다. 여주인공들은 일단 전부 피해자긴 하지만. 백설공주는 독사과를 먹었고, 신데렐라는 노예처럼 일했고, 라푼젤은 감옥에 갇혔고…. 테시는… 뼈와 함께 버려졌다. 어느 괴물의 뒤틀린 판타지 때문에.(p. 160)


“블랙 아이드 수잔 살인범은 오랫동안 내게 꽃을 보낸 것 같아요. 요전날 밤이 처음이 아니에요.”

“뭐라고요? 몇 군데나?”

“여섯 군데. 이번 내 침실 창문 아래까지 포함해서.” “정말 확실히…” “바람에 씨앗이 날아와서 아무 데서나 자라는 거 아니냐, 당신 미쳤다, 이 말을 하고 싶은 건가요? 아니에요. 그래서 ‘보낸 것 같다’고 말하는 거예요. 가장 처음 꽃을 본 건 열일곱 살 때였어요. 테렐의 유죄판결 직후였지요. 살인범은 오래된 약병 안에 시를 적은 쪽지를 넣어뒀어요. 바로 이 집 뒷마당 좁은 땅에 자란 블랙 아이드 수잔을 파내다가 발견했어요.”

나는 네 개의 집 건너 길 반대편의 노란 이층집을 가리켰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집이에요. 그는 재판이 끝나고 사흘 뒤 내 통나무집 옆에 꽃을 심었어요.”

나는 상대가 이 말의 의미를 곱씹을 시간을 주었다.

“네, 맞아요. 테렐이 수감된 뒤에요.”

나는 나직하게 읊조리기 시작했다. 근처 뒷마당에서 풀 깎는 기계 소리가

들려왔다. 오 수잔, 사랑하는 수잔, 나의 맹세는 영원하리. 흐르는 네 눈물은 내 키스로 닦으리. 다시는 너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네가 입을 열면, 리디아도 수잔으로 만들 수밖에.(p. 202~203)



이 책은 또 한 가지 관심 사항은 조금은 진부하지만 사형제도에 관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지금도 타인에게 악의적인 관심을 갖고 알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부끄러운 행동 같다. 사형제도는 학교 다닐 때에도 친구들 사이에 많이 대화로 나눈 적도 있고, 우리나라도 지금은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실제적으로는 사문화된 법 조항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한 점도 범죄추리 소설 독자로서 필요한 지식이다. 사형제도의 찬반에 관한 얘기지만 우리나라는 법조계나 여론 등을 의식해서인지 법 조항은 남겨두고 실제 법 집행은 하지 않는다는 것도 확실히 알게 됐다.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관련 책이나 뉴스 등을 검색해 알아낸 결과다. 이 책은 그렇게 독자에게도 추리소설에 관한 열독과 관심을 한층 더 끌어올려준 소설이다.


“오늘 밤 한 사람이 집행됩니다.” 테렐은 건조하게 말했다. “사형수 감옥은 집행이 있으면 유난히 분위기가 팽팽해요. 이번 달에만 두 번째입니다.”

테렐은 전화에 대고 이야기하면서 일어섰다. 생각보다 윤곽이 둥글고 부드러운 커다란 몸이 유리창을 가득 채웠다. “여기 오는 데 용기가 필요했을 겁니다, 테시. 당신이 이 일에 얽매여 있다는 걸 알아요. 내가 한 말을 기억하세요. 내가 죽으면, 잊어버리세요.”

갑작스러운 공황으로 속이 울렁거렸다. 이거다. 여러 말들이 서둘러 절박하게 끓어올랐다.

“재심 허가가 나온다면 나는 다시 증언할 거예요. 빌은 훌륭한 변호사예요. 그는 정말… 희망이 있다고 믿고 있어요. 특히 빨강머리에 대해 DNA 분석 결과가 나온 지금은 더욱. 그건 내 머리카락이 아니었어요.”

나는 귀 뒤에서 머리카락을 한 가닥 잡아당겼다.(p.321)



저자 : 줄리아 히벌린(JULIA HEABERLIN)


비평적 찬사를 받으며 국제적인 베스트셀러에 오른 『블랙 아이드수잔BLACK EYED SUSANS』의 저자 줄리아 히버린. 그녀의 심리 스릴러 『플레잉 데드PLAYING DEAD』와 『라이 스틸LIE STILL』은 15개국 이상에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블랙 아이드 수잔』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흡인력 있는 캐릭터 연구이자 몰입할 수 있는 심리 스릴러를 원하는 독자들에게 좋은 선택의 기회를 주었다며 찬사를 보냈다. 그녀는 풍부한 구성과 아름다운 서술로 긴장은 차츰 더해가면서 놀라운 플롯의 반전과 보다 큰 사회문제에 뿌리박힌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큰 울림과 감동을 더한다. 히벌린은 포트워스 스타-텔레그램FORT WORTH STAR-TELEGRAM, 디트로이트 뉴스THE DETROIT NEWS, 댈러스모닝 뉴스THE DALLAS MORNING NEWS에서 일하며 언론상을 수상한 기자이기도 하다. 텍사스에서 자란 그녀는 댈러스/포트워스 지역에 거주하며 다음 책을 집필하고 있다.


역자 : 유소영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를 전담으로 번역했으며, 퍼트리샤 콘웰의 ‘법의학자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 『법의관』, 『하트잭』, 『시체농장』 등의 범죄 스릴러를 우리말로 옮겼다. 그 밖에 존 르카레의 『나이트매니저』, 딘 쿤츠의 『사일런트 코너』, 앤 클리브스의 ‘베라 시리즈’ 『하버 스트리트』, 리처드 모건의 『얼터드 카본』, 닐 게이먼 『닐 게이먼을 만든 생각』, 엠마 도노휴의 『룸』 등 다수의 작품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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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을 말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권미림 지음 / SISO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책의 제목이 뭔가 느낌이 좋다. 그냥. 사랑을 말할 때 다른 사람들은 주로 무슨 말을 하던가 곰곰 생각해보면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 없다. 사랑을 얘기할 때 주로 하는 말은 좋은 말과 번지르르한 말을 많이 섞어 듣는 사람에게도 굉장히 좋은 느낌을 갖도록 설명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그렇다. 그래서 특별할 것이 없고 들었던 사람의 입장에선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다. 독자도 그랬던 것 같다. '그가 왜 좋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냥... 다정하고 착해, 그리고 나를 좋아한다고 하니까' 정도로 했던 것 같다. 왜 좋냐고 물었는데 답변이 뭐 그래? 이유? 사람이 사람 좋아하는데 이유가 있나? 좋으면 좋은 거지. 그렇다 그럼 다 통했다. 마음과 마음이 닿고 그 느낌이 좋고 애틋하면 사랑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 책의 작가는 제목에 '사랑을 말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이라고 썼다. 다른 사람은 답변이 궁한데 작가는 많나보다. '것들'이라고 복수형인 것을 보면. 뭘까? 대략 짐작은 가지만 궁금하다. 책을 읽고 판단해야지. 책을 펼쳐 소제목들을 쭈욱 살펴본다. '떨림' '인간됨' '사랑' '여행' '용서' '우주' '슬픔' '삶' '고구마' '크리스마스' 등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대하는 것들뿐이다. 다소 느낌은 다르지만 '잃어버리기 싫은 슬픔' '고마운 무심' '느리고 정직하게' 등의 조금은 생각할 거리가 있는 제목도 더러 눈에 띈다.




'평화를 위하는 기도문'이 있다. 크리스찬이 아니기 때문에 이 기도문을 누가 처음 쓴 것인지 잘 모른다. 그러나 이 기도문은 전 세계 크리스찬은 다 쓰고 외운다고 들은 바 있다. 그만큼 기도하는 마음 안에 녹아 있는 인간의 마음이 다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도 '용서'가 나온다. 예수의 가르침이 '사랑'이라고 들어왔다. 그렇다면 평화를 구하는 이 기도문 안에 '구하는' 것들이 사랑의 요소임을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다른 동식물과 구별되는 가장 분명한 이유는 사람이 가진 ‘마음’이다.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마음이 통하고, 마음에 들며, 마음에 차고, 마음을 삭이는 능력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그렇게 마음과 마음이 맞닿을 때 사랑은 단단히 뿌리내린다.

작가는 이러한 마음으로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을 향해 손을 내밀며 살아가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그 대상이 나무든, 동물이든, 사람이든, 나라든 온전히 마음에 넣고 사랑할 것임을 책 속에 다짐하고 있다. 마음속 따뜻함을 담은 이 책을 통해 소중한 것들의 본래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며, 서로의 마음에 천천히 스며들어 가기를 바란다.

골목을 걷다가 마주치는 작은 들꽃, 앉은 자리로 겁도 없이 다가오는 참새, 혼자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와 그곳을 채우는 노래, 문자를 보내려고 휴대전화를 들었을 때 막 도착하는 메시지 등 사소하며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곳곳에 단단한 사랑이 묻어 있다.

『내가 사랑을 말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은 여전히 사랑과 용서가 부족하지만 더 나은,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한 작가의 진심을 담은 에세이다.

작가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사랑을 느끼며 행복했던 일을, 누군가에게 위로를 해주고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받았던 일을, 싸움의 흔적을, 정직히 잘 살아낸 삶 등을 마음을 다하여 전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렇게 느리지만 정직하게 살고 싶다는 다짐도 함께 담았다.

작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이를 사랑하고 인정한다면, 존재 자체가 힘이 되는 관계가 있다면, 무엇으로 꾸미지 않아도 위로가 되는 이름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슬며시 괜찮아질 것이라고 이 책은 우리에게 잔잔히 이야기하고 있다.




코로나로 일년 내내 시달리다 날씨가 쌀쌀해지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코로나는 예전에 없이 오히려 더 많은 일일 확진자로 우리 나라 모든 사람들이 긴장하고 불안하다. 일상을 잊은 지 오래 전이지만 아직도 예전 일상이 그립고, 그리움이 희망이 되기도 하는 요즘이다.

그런데 웬 날벼락 같은 말인가. 코로나 확진자가 엄청난 숫자로 불어나더니 오늘(12월 12일)은 1000명에 육박했다.

연말연시, 크리스마스 약속도 잡지 않고 집안에서 지내기로 마음 억었는데도 코로나 확진자는 왜 폭발적으로 늘어나나.

설상가상이란 말을 이럴 때 쓰는 건가. 감성에 들뜨고 분위기에 취할 연말에... 그래도 삶은 이어져야 하니 경제 활동마저 모두 중단할 수 없는' 정말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라고... 몸이 움츠러들면 마음도 좁고 깊게 숨는다. 그 중요한 사랑과 용서. 코로나 방역에 협조 안 한 사람도 미워진다.

물론 경제적 이유가 아니라 즐거움과 쾌락을 위해 방역엔 나몰라라 했던 사람들에게. 코로나 때문인지 사람들도 여유와 너그러운 마음보다는 자신부터 챙기는 마음이 더 늘어난다. 코로나 때문이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런 마음이 후회가 될 것이란 사실도 알지만 이기심이 접히지 않는다.

이럴 때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그냥 우리 사는 삶, 일상에서 발견한 작가의 이야기인데 사랑과 용서 등이 책 전면에 깔려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잔잔한 감동이 끊임없이 몰려와 마음이 따뜻해진다. 책 속의 언어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무심하게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작가의 생각과 마음이 가득 담겨 있어서이리라.

작가가 이야기하는 사랑이라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나 겪었을 것 같은 매우 일상적이고 단조로운 것들.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이 담겨서일까. 그래서 더 와닿는다.

한 글자 한 글자 자신의 진심을 담아내기 위해 많은 언어들을 삼켜버렸을까. 얼마나 노력하면 무심하게 내뱉는 듯한 언어들이 사랑에 감싸여 있는 모습으로 독자 앞에 다가올까. 가끔은 작가가 이끄는 대로 갔다가 울컥 올라오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그럴지도...' 하면서 공감하는 마음을 책 한 권 내내 떨쳐버릴 수 없다. 감정이입이 되면 평소 무심했던 것들조차도 소중하게 느껴지고 사랑스럽고 미웠던 감정은 모두 소진된 채 용서라는 것을 해보는 생각도 해보게 한다. 그의 힘은 어디서 올까. 곰곰히 생각해본다. 아마 작가의 마음이 여리고 소극적이어서 슬픔마저도 꼭꼭 싸맨 채 용서가 녹여줄 때까지 감싸안고 있어서일까.















저자 : 권미림


세상의 작은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나의 삶에서 사랑이 완성되기를 바라고,

용서가 쉬워지기를 바라고 있어요.

그 마음으로 매일 글을 씁니다.

대학에서 신학과 심리학을 공부했습니다.

브런치 @KWON-MOLLY

인스타그램 @WRITE.NEW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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