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의 항해
앤 그리핀 지음, 허진 옮김 / 복복서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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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소설 작품 『그 여름의 항해』를 읽기에 앞서 저자에 대한 설명을 먼저 하고 싶다. 저자의 유명도가 대한민국의 독자들에게 엄청 높기 때문이다. 저자의 유명세는 그의 전작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이하 『모리스』)에 힘입은 바 크다. 한 편의 모놀로그 연극과도 같은 『모리스』 속에서 주인공 모리스 씨는 호텔 바에 홀로 앉아 아일랜드 흑맥주와 위스키를 번갈아 마시며 자신에게 특별한 다섯 사람을 기억에서 불러내 그들에게 건배한다. 모리스 씨의 독백은 바다 건너 아내와 두 아이와 살고 있는 아들 케빈을 향해 이야기하는 형식을 띠는데, 이로 인해 작품을 읽는 동안 모리스 씨와 바에 앉아 그의 조곤조곤한 이야기를 가만히 듣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무던하고 평탄하게 살아온 것처럼 보이던 평범한 노인 모리스 씨가 평생 감춰왔던 사건들을 하나둘씩 꺼낼 때마다 결코 단순할 수 없는 그의 뒤틀린 면모도 점차 드러나는데, 그 뒤틀림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닌 것임을 부인하기가 어렵다. 열등감, 수치심, 분노, 복수심과 다정한 마음과 연민의 감정, 뜨거운 사랑은 한 인간 안에서 온전히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모리스 씨의 인생 이야기는 그의 형 토니를 위한 첫번째 건배사에서 시작된다. 난독증으로 인해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어린 모리스 씨가 유일하게 의지했던 형 토니는 어린 나이에 폐결핵으로 사망한다. 그가 죽고 홀로 어른으로 성장한 모리스 씨는 형에 대한 깊은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담은 건배사를 시작하며 어릴 적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자 평생 자신을 옥죄는 비밀이 될 사건에 대해 암시해간다. 한편 어린 시절, 모리스 씨와 그의 어머니는 지역의 지주 휴 돌러드와 그의 아들 토머스에게 지독한 학대와 괴롭힘을 당했다. 그러나 운명은 복수의 기회를 주었고 모리스 씨는 그 기회를 움켜쥔다. 어느 날 아버지와 다투던 토머스는 실수로 가문의 보물인 에드워드 8세 금화를 창밖으로 떨어뜨리는데 우연히 지나가던 모리스 씨가 그 금화를 몰래 주워 아무도 찾지 못하도록 숨겼고, 금화를 분실한 토머스는 결국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만다. 그리고 소설은 우연한 사건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서서히 풀어간다.


『모리스』는 저자 앤 그리핀의 데뷔작이다. 그는 이 첫 작품만으로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와 평단의 스토리텔링 장인이라는 호평 속에서 스타 작가로 부상했다. 그만큼 『모리스』는 모든 탁월한 소설들이 그러하듯 인물들에 대한 작가의 침착하고도 부드러운 시선, 사건을 구성해가는 단단한 이야기 구조,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드러내는 날렵한 통찰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평범해 보이는 인생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절대로 밋밋하지 않다는 문학적 진리를 담은 이 작품은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다시금 교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외로움과 상실 속에서도 묵묵히 인생의 한 걸음을 이어가는 우리를 위한 이야기이기에 그렇다. 모리스 씨가 건네는 이야기에 지나치지 못하고 귀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차기작을 기다리던 전 세계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신작 『그 여름의 항해』는 “앤 그리핀 최고의 역작”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전작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이 한 사람의 지난했던 일생을 되돌아보는 이야기였다면, 신작 『그 여름의 항해』는 가족의 상실이라는 비극적 사건을 통과하며 그 이후까지 내다보는 이야기이자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가슴 아픈 미스터리다.

어느 평범한 오후, 주인공 로지는 딸 시어셔가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오는 모습을 창 너머로 본다. 하지만 딸은 끝내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8년의 시간이 흘렀고 딸이 여전히 살아 있다고 믿는 사람은 오직 로지뿐이다. 소설은 이야기를 두 갈래로 보여준다. 하나는 딸을 기다리며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는 로지의 시점, 다른 하나는 실종된 시어셔의 시점이다. 각 장(章) 사이사이에 짧은 단편처럼 삽입된 시어셔의 실종 당일 이야기를 따라 읽는 독자들은 서서히 사건의 전말을 파악한다. 독자는 로지보다 시어셔의 행방을 딱 한발 먼저 아는 상태로 로지를 바라본다. 이 독특한 형식이 자아내는 긴장감 속에서 독자들은 강박적으로 희망을 붙들고 심리적 붕괴를 겪다가 다시 숨쉬는 법을 배우는 로지의 감정적 여정을 함께하게 된다.



이 소설 작품 『그 여름의 항해』의 줄거리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저자가 구성의 묘를 살리지 않는다면 자칫 지루할지도 모를 정도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의 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앞서 언급한 대로 소설의 각 장 사이사이에 시어셔의 실종 당일 이야기를 짧은 단편처럼 끼워넣었다. 유기적 구성에 성공함과 동시에 긴장감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야기는 로지가 고향 로어링 베이로 돌아가며 시작된다. 슬픔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로 멀어져버린 가족. 집은 어색한 침묵만이 감도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결국 부부는 떨어져 지내며 숨 돌릴 시간을 갖기로 한다. 적막만이 가득한 집과 다르게 섬은 자연과 이웃들의 소리가 가득하다. 가문의 일원과도 같은 여객선 이브니스를 모는 일은 로지를 다시 숨쉬게 한다. 매일 아침 일과를 함께하지만 서로의 아픔을 캐묻지는 않는 새로운 친구도 사귀며 로지는 오래전에 잃어버린 무언가를 되찾은 듯한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로지에겐 여전히 답을 찾기 어려운 질문이 남아 있다. 시어셔에게 어떤 일이 닥친 걸까? 시어셔가 어떤 잔인한 일을 당했는지 모르는데 이곳에서 위로를 받아도 될까? 우리 가족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게다가 로지는 섬에서 새로운 갈등도 마주한다. 가족과도 같은 배, 이브니스를 잃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섬에 안고 온 슬픔과 눈앞에 닥친 난관, 로지는 이 모든 것을 헤쳐나가야 한다.

인간의 회복력을 오랫동안 탐구해온 저자 앤 그리핀의 역작이라고 평가할 만한 『그 여름의 항해』는 슬픔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시 웃음을 찾는가에 대한 격정적이고도 우아한 답변이기도 하다. 이브니스에 승객들을 태워 본토와 섬을 오가던 선장 로지는 이제 『그 여름의 항해』에 독자들을 싣고 해체되었던 가족의 유대가 다시 힘겹게 결합되는 순간을, 그곳까지 가는 감동적인 여정을 보여준다. 이 작품 『그 여름의 항해』는 삶의 의미를 잃었던 인물이 고통스러운 진실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회복으로 나아가는가를 섬세하게 파고드는, 탁월한 이야기꾼 앤 그리핀의 작가적 역량이 만개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출간 직후 〈아이리시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아이리시 타임스〉는 이 작품에 대해 “앤 그리핀의 소설 중 가장 복잡한 감정을 다루는 소설. 독자의 가슴을 저미면서도 희망과 위로를 잃지 않는다. 우리가 무너질 때, 다시 우리를 붙들어주는 것이 무엇인지 꿰뚫어보는 소설.”이라는 〈추천평〉을 냈다. 출판사 측에서는 〈책소개〉를 통해 '잔잔하다가도 순식간에 거품이 부글거리는 바다처럼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가슴 아픈 미스터리'라는 제목의 글을 냈다. "분열된 가족을 다시 끌어안기 위한 항해", "회복에 이르는 길에 대한 우아하고 깊이 있는 탐색", "해일처럼 닥쳐온 삶의 고통, 물러서지 않는 선장 그리고 어머니" 등 많은 곳의 추천평도 줄을 이었다. 

다음은 로지의 시선을 따라 독자가 나름대로 이 소설을 재구성해 본 것이다. 열일곱 살 딸 시어셔가 사라졌다. 그 아이가 탔던 자전거만 덩그러니 집앞에 쓰러져 있다. 로지는 시어셔가 잠깐 어디로 나간 것뿐이라고 생각했고 다시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8년이 흘렀다. 누구나 죽었다고 생각할 뿐 굳이 시어셔의 일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그러나 로지는 내심 시어셔가 살아 있다고 굳게 믿는다. 엄마이기 때문이다. 남편인 휴와 시어셔의 남동생 컬리는 이미 포기한 것 같다. 자식을 잃은 부부의 모습이 그렇듯이 서로 말이 없지만 따뜻한 온기는 흐르지 않는다. 로지는 아일랜드 본토(?)에서 떨어진 자그마한 섬 출신이다. 로지는 스물두 살에 처음으로 섬을 떠났었다. 휴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로지는 섬을 사랑했고 이브니스를 사랑했다. 이브니스는 아일랜드와 섬을 오가는 페리로 로지네 집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렇게 섬을 떠나 스물세 살이 되던 해 딸 시어셔를 낳았다. 시어셔는 열일곱 살 때 사라지고 로지는 8년 후 다시 섬으로 돌아왔다. 

선장인 로지의 아빠는 허리가 좋지 않았고 간절하게 딸이 다시 돌아와 이브니스를 운행해주길 바랐다. 로지는 여전히 이브니스를 사랑했고 잠시나마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섬에는 로지가 잘 아는 사람들이 있었고 로지는 의식적으로 그들을 멀리했다. 시어셔에 대해 물을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섬과 페리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로지는 다시 휴에게 돌아가야 했다.


로지는 시어셔가 반드시 돌아오리란 믿음을 한시도 버리지 않았다. 가족들과는 이제 더 이상 좁혀질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린 것 같다. 로지는 다시 섬으로 되돌아간다. 새로운 위기가 그녀를 맞는다. 이브니스는 더 이상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페리호가 되었고 빚만 쌓였다. 아버지는 집과 땅을 저당잡혀 간신히 유지해오고 있었고 이제 상환기일을 더 늦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로지의 마지막 희망인 이브니스마저 로지 곁을 떠나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로지의 믿음대로 시어셔가 돌아온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본 사람이라면 로지와 그 가족들이 겪었을 아픔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포기하지 못하고 기다리는 마음을. 챕터 사이에 시어셔의 행방을 유추할 수 있는 몇 줄의 글들이 있다. 시어터의 실종 당시의 상황들이다. 이 소설은 시어터의 실종으로 전개되는 작품이지만 범인을 찾아가는 내용은 아니다. 따라서 실종의 원인과 범인이 밝혀지는 것 또한 중심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겪는 무수한 고통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에 대한 선택과 우연과 운명 같은 것들이 얼마나 더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소설이다. 


“이브니스는 바로 나예요, 이기. 유일하게 남은 내 일부라고요. 알겠어요?”

나는 이기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당신한테는 내가 있잖아요, 로지. 디어미드랑 패치도 있고요.”

내가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정말 이해를 못하는군요, 그렇죠?”(p.418)


내가 시어셔와 함께 갔던 그 어두운 곳이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힌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고 아무리 스스로를 달래보아도 그 생각이 내 머릿속에 숨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그래서 가끔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내가 딸이 사라지기를 바랐었다는 생각에 눈을 꼭 감는다.(p.220)


“시어셔를 찾았대.”

그 드넓은 만에서 내 주변 공기가 도망치는 것 같았다. 빨려나가는 것 같았다.(p.449)


저자 : 앤 그리핀(Anne Griffin)


소설가. 1969년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태어나 역사학을 전공한 후 8년 동안 더블린과 런던의 워터스톤스 서점에서 일했다. 2013년부터 글쓰기를 시작하여 2017년 단편소설로 존 맥가헌 문학상을 받았고 헤네시 뉴 아이리시 라이팅 어워드의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첫번째 장편소설인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은 2019년 출간되자마자 놀라운 데뷔작이라는 호평 속에 아이리시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고 아일랜드 북 어워드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피플>, 굿리즈, 인디넥스트 선정 도서에 이름을 올렸다. 이 소설의 큰 성공에 힘입어 앤 그리핀은 드물게 보는 스토리텔링 장인, 마음 깊은 곳을 울리는 비범한 재능이라는 평가 속에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앤 그리핀의 또다른 작품으로는 두번째 장편소설인 『Listening Still』, 2023년 5월 출간된 『The Island of Longing』이 있다.


역자 : 허진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번역학과를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 앤 그리핀의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 조지 오웰의 『조지 오웰 산문선』, 엘리너 와크텔의 인터뷰집 『작가라는 사람』(전 2권), 지넷 윈터슨의 『시간의 틈』, 도나 타트의 『황금방울새』, 마틴 에이미스의 『런던 필즈』와 『누가 개를 들여놓았나』, 할레드 알하미시의 『택시』, 나기브 마푸즈의 『미라마르』, 아모스 오즈의 『지하실의 검은 표범』, 수전 브릴랜드의 『델프트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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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시대
스티븐 J. 파인 지음, 김시내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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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왜 이토록 자주 불타오르는가?」란 부제를 가진 이 책 『불의 시대』는 인류가 불을 발견하고 사용함으로써 인류 문명의 비약적 발전이 이루어진 긍정의 의미보다는 불의 영향이 전 지구적, 지질학적 규모에 이르렀다는 부정적 견해를 보인다. 인류는 이미 구석기 시대부터 불을 사용했다고 인류사는 밝히고 있다. 이는 그 흔적이 남아 있는 유적지에서 숯이나 재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는 점으로 증명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원인(原人)으로 표현되는 호모에렉투스 때부터 불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 원시인이 불을 얻게 된 것은 화산이나 산불 또는 낙뢰 등에서 우연히 얻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에서는 프로메테우스가 신으로부터 불을 훔쳐다가 인간에게 주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렇게 얻어진 불을 꺼지지 않게 잘 보관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어서 인류는 스스로 불을 만들어 낼 궁리를 하게 되었다.

최초의 인공 발화법은 마른나무와 나무를 마찰하여 불씨를 얻는 방법이었다. 인간이 불을 사용하게 된 것은 다른 동물에 대한 인간의 우위를 입증하는 것으로 인간은 불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다. 음식을 익혀 먹게 되었으며 실내에 화덕을 설치하여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이렇게 유용한 불을 꺼지지 않게 잘 보관하면서 운반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어서 점차 인간은 불이 있는 근처에 정착하는 생활 형태를 갖게 되었다. 일정한 곳에 정착하게 된 인류는 식량 확보를 위한 노력으로 수렵·채취 수준에서 벗어나 농경 생활을 시작했으며 보다 더 용이한 경작을 위하여 도구를 발명하게 되었다. 이상은 우리가 책이나 교과서 등을 통해 일반적으로 배우는 내용이다. 다른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인류의 불의 사용은 생물학적으로 지능을 높이는 효과가 있었다고 진단한 학설도 읽었던 것으로 독자는 기억하고 있다. 우연한 발견으로 타다 만 동물의 사체에서 풍기는 냄새가 작용했을 것 같다. 먹어보니 불에 익힌 고기가 훨씬 맛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로부터 수렵으로 잡은 육류나 물고기를 불에 구워 먹기 시작했다. 고기는 날것으로 먹을 때가 가장 부드럽다. 구워서 먹다보니 더 많이 씹어야 했고 턱관절이 많이 움직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무한 반복된 씹는 행위가 뇌의 움직임을 활성화시켜 지능이 올라갔다는 주장이다. 설득력이 굉장히 큰 주장이다.


이 책은 부제에서도 설명되듯이 지구 곳곳은 산불이 끊이지 않는 현대 사회에서 단순한 기후변화가 원인이라고 보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저자 스티븐 J, 파인은 오늘날 불이 많아진 시대를 ‘불의 시대(Pyrocene)’라고 명명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대로 단순히 불이 많아졌다는 뜻이 아니라, 불의 영향이 전 지구적, 지질학적 스케일에 이르러 빙하기에 비견될 만한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는 선언이다. 불에 대한 세계 최고의 전문가인 저자는 이 책 『불의 시대』를 통해 불을 중심으로 인류 문명을 재조명하며, 인류가 만들어낸 불이 지구에 가져온 다차원적인 위기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인문, 과학, 환경을 유기적으로 엮어 불의 세계를 직조하는 이 책은 지금 우리가 반드시 읽어야 할 시대적 경고이자 생존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지구는 태양계에서 유일하게 불이 존재하는 행성이며, 인간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불을 사용하는 종이다. 불은 인간과 더불어 진화해왔고, 인간은 불을 통해 자신을 조형해왔다. 그러나 인간의 가장 강력한 도구이자 힘이자 동반자였던 불은 이제 인간을 위협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산불의 위력은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으며, 특히 최근 호주, 미국, 한국 등지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불은 수천만 헥타르의 땅을 태우고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집어삼켰다. 인간이 불을 그 어느 때보다 더 고차원적으로 조종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현대에 오히려 불의 위력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거세지고 통제 불가능해졌다.

이 책은 인간 문명이 불을 중심으로 구성됐다는 통찰을 통해, 불이 인간에게 길들여진 순간부터 불이 인간의 세계를 지배하게 된 오늘날까지의 변화를 추적한다. 인간은 들소를 젖소로 길들인 것과 마찬가지로 들불을 횃불로 길들였으며, 이 불을 이용해 초원과 산림을 개간하고, 사냥과 농경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나갔다. 불은 인간이 생태계를 조작하고 재편하며 지배하는 도구였다. 인류 문명은 전쟁과 건축과 종교와 화학과 연금술과 기계공학에 불을 이용하며 눈부신 진화를 이뤄냈다.


불이 있는 행성은 지구뿐이다. 이 놀라운 상황을 잠시 짚고 넘어가자. 행성들 사이에서 불은 생명만큼이나 드물다. 생명체가 살아가는 세상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지구는 해양 생물에서 산소 대기가, 육상 생물에서 불이 잘 붙는 탄화수소가 등장했다. 식물은 육지에 뿌리를 내리자마자 벼락을 맞고 불타올랐다. 그 이후로도 계속 타고 있다. 산소는 다른 행성에도 있으며 그중 화성이 가장 유명하다. 나머지에는 가연성 물질이 그득하다.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만 봐도 대기가 메탄이다. 기체 행성에서는 벼락이 친다. 그러나 필수 요소를 전부 갖추고 있거나 요소 간 결합이 가능한 행성은 없다. 생명체가 있는 데다가 불까지 있어서 불을 다루는 지적 생명체가 존재하는 외계 행성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고, 무언가 찾는다고 해도 너무 멀어 지구와 비교할 수 없다. 우리는 유일하게 생존 가능한 불의 행성에서 산다.(p.21~22)


이처럼 인간이 불을 통제하고 유리하게만 사용할 줄 알았던 불은 사실 인류가 불의 이용과 혜택에만 집중했기에 불이 주는 엄청난 피해에 대해선 미처 생각지 못했을 것으로 독자는 판단한다. 기껏해야 전쟁의 무기로 사용되는 것일 뿐 평화시에는 결코 인간에게 해를 끼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로써 인간에게 불은 더 이상 도구가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는 원동력이 됐다. 불은 공장을 움직였고, 철도를 달리게 했으며, 전기를 공급했고, 대량 생산과 소비의 시대를 열었다. 인간은 불 덕분에 이전에는 상상조차 못한 규모의 도시를 만들고, 수천 킬로미터를 하루 만에 이동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오늘날 불은 인류가 통제할 수 없는 수준에 다다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관측되는 대형 산불들은 이 ‘불의 시대’가 단지 자연 현상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결과물임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 책에서 불의 역사를 세 시대로 나누어 설명한다.


첫 번째 불은 식물이 대륙을 덮자 나타난 자연의 불이다. 번개와 같은 자연 현상에 의해 발생한 이 시대의 불은 생태계의 일부로서 존재했다. 두 번째 불은 인간이 길들인 불이다. 인간은 요리, 사냥, 경작 등 자신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도구로 불을 다루기 시작했고, 이 시대의 불은 인간이 있는 모든 곳에 퍼졌다. 세 번째 불은 질적으로 다르다. 이 시대의 불은 계절, 태양, 기후, 지리 같은 생태학적 한계에 제한되지 않는 파괴력을 가지는 불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나무, 풀 같은 유기물이 아니라 화석 연료를 태우기 시작했고, 가연성 물질의 원천은 기본적으로 무한하다.

이 분류에 따라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구성됐다. 1장 〈첫 번째 불: 자연의 불〉, 2장 〈얼음의 시대 61〉, 3장 〈두 번째 불: 인간이 길들인 불〉, 4장 〈세 번째 불: 산업혁명 이후의 불〉, 5장 〈화염세〉, 그리고 「여섯 번째 태양」란 제목의 〈에필로그〉로 끝맺는다. 저자는 책의 〈서문〉을 통해 세 가지 불의 구분과 5장 〈화염세〉로 규정하는 이유와 과정, 전망 등을 탐구한다. 책에 따르면 옛날 옛적 지구에는 불의 유무와 상관없이 벼락, 산소와 함께 불을 이루는 삼각형을 완성하는 세 번째 요소가 있었다. 숨이 끊어져 돌로 변한 생물군인 화석연료가 그 주인공이다. 인간은 점점 미친 듯이 화석연료를 흥청망청 써댔다. 멀고 먼 지질 시대 속 연료를 캐다가 (알려진 게 거의 없는) 복잡한 상호작용을 통해 불태우며 앞으로 맞이할 먼 미래를 향해 폐기물을 뿜어댔다. 산업 사회에 접어들면서 연소는 지구에서 정립된 불의 역학 관계를 재편성했다. 화석연료 덕분에 세계화가 빨라진 것이다. 그 결과, 전 세계에서 불길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려워졌다.


불은 대체 무슨 일을 할까? 불은 정확하고 포괄적이다. 다 흩뜨려놓고 굽는다. 생물군을 해체한 후 타는 과정에서 해방을 맛본 재료를 새롭게 조립할 장소를 마련한다. 화염 주위로 생화학, 종, 공동체가 생태학적 삼각형을 이루며 순환한다. 불은 분자, 유기체, 경관을 휘젓는다. 식물의 숨을 앗아가고 생태 구조를 분해해 분자를 떠돌이 신세로 만든 뒤 종끼리 섞어 적당한 곳을 물색하고 한동안 에너지와 양분의 흐름을 다시 이어 붙인다. 속도를 점점 붙이며 휘저어 조각내놓고 다시 빚어 숨을 불어넣는다. 불은 급진적이면서도 보수적이다.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동시에 되돌려 놓을 환경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경제에 빗대자면, 창조적 파괴의 극치다.(p.37)



저자는 이어 살아 숨 쉬는 자연과 생을 다해 돌로 변한 자연 모두 불타는 대조적인 모습은 지구 화재 현장에서 경험하는 역설 대부분을 설명한다고 말한다. 역설은 다음과 같다. ① 불과 함께 진화하는 지역에서 불을 없애려 하면, 불은 더 사나운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다. 크게는 헬리콥터에서 작게는 이동식 펌프까지, 석유로 가동되는 기계들 탓에 의도치 않게 불에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면, 애초에 불길을 잡으려 이런저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될 것이다. ② 산불이 매체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타들어 간 실제 면적은 줄고 있다. 화석연료로 굴러가던 사회에서 대용물을 찾아 화재의 씨앗을 제거(또는 억제)하기 때문이다. 2020년 캘리포니아의 화재 피해 면적은 420만 에이커였다. 산업화 이전에는 화재가 급증하지 않겠지만, 아마 1,000만 에이커 이상이 피해를 봤을 것이다. ③ 화석연료 사용량을 줄일수록 자연 경관을 그만큼 더 태워야 하는데, 이는 손해다. 우리는 미래에 대비해 불에 잘 견디는 내화 경관을 조성해야 하고, 그러려면 불을 활용해야 한다. 

저자는 화염이라는 직접적 결과와 연기, 소화 활동, 개간, 지구 온난화라는 간접적 결과까지 불의 영향력을 모두 합치면, 빙하기와 정반대인 불의 영향을 받는 시대의 윤곽을 그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른바 '화염세'다. 화염세는 불을 중심으로 인간이 지구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에 관한 관점을 제안한다. 인류만의 주요 특징인 불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바탕으로 인류세의 이름과 정의를 바꿀 수 있다. 불과 인간 사이의 오랜 동맹이란는 서사에서 비롯한 것이다. 앞으로 발화 행위가 모두 모여 홍적세에 있었던 빙하기와 같은 불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저자는 경계한다. 화염세는 불을 주제 삼아 기후 변화와 여섯 번째 멸종에 관해 추가 관점을 제시하고 해양 화학과 해수면 그리고 인간의 존재 특성에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또 저자는 익숙한 이야기를 다른 관점에서 재진술해 새로운 주제를 소개한다. 게다가 모든 것을 통합하듯 태우는 불처럼 지리, 역사, 제도, 교육 등 환경을 통합하면서 향후 다가올 미래까지 탐색한다.


저자는 이제 불은 더 뜨겁고 오래 탈 뿐만 아니라, 지구의 대기와 기후까지 "비가역적으로 바꾸고 있는 총체적 힘"으로 규정한다. 불의 시대의 위험성은 산불의 증가뿐만 아니라 반복되는 고온화, 건조화, 탄소배출 증가, 바다의 산성화, 해류의 변화, 생물 다양성의 소멸로도 나타나고 있다. 불은 대기권을 통해 모든 장소에 영향을 미치며, 현대의 도시조차 불을 중심으로 조직된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불의 시대의 정점에 서 있다. 이제 이 불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우리의 다음 시대를 결정할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맞이한 위기를 이해하고 대응할 열쇠를 쥐고 있다고 저자는 우리의 역할을 강조한다.


"불은 다른 고대 원소와 달리 여전히 학문 분야 없이 땅바닥에 대충 몸을 누이고 잠을 청하며 여러 학문을 피난처 삼아 떠도는 노숙자 신세다. 불의 생물학적 특성은 근본적으로 규정하기 어렵고, 물리학 모델에 종속된다. 불을 기계에 가둬 연소를 제어하는 기계공학을 생각하면 된다. 불을 사용하는 사람들조차 토치로 땅에 불을 붙이는 순간 불이 물리 장치에서 벗어나 생태 과정으로 변모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불을 그저 양초나 터빈과 같은 도구로 취급한다. 오늘날 산업 사회를 살아가는 도시인들은 불과 개인적으로 접촉할 일이 거의 없다. 불은 그들의 경험 밖 외딴곳에 존재할 뿐이다. 사람들은 다양한 매체에서 보이는 재앙이자 사고의 모습이나 공공 보건을 위협하는 연기를 통해 가상의 불만 알고 있다."(p.57)


저자 : 스티븐 J. 파인(Stephen J. Pyne)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교(Arizona State University)의 명예 교수이자 세계적으로 저명한 화재 역사학자인 저자는 인간과 자연, 문화 속에서의 불의 역할에 대해 깊이 탐구해 왔으며, 특히 야생지대와 농촌 지역의 화재 역사와 정책에 관한 방대한 연구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에서 15년간 소방관으로 근무하며 직접 현장에서 불과 맞서 싸운 경험이 있고, 로키 산맥과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소방대책을 확립했다.


역자 : 김시내


홍익대학교 신소재공학과를 졸업하고 LG디스플레이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다가 바른번역 글밥아카데미 수료 후 번역가가 되었다. 옮긴 책으로는 『전류전쟁』, 『말하는 나무들』, 『뉴로제너레이션』, 『휴먼 엣지』 등이 있으며, 청소년 과학 잡지 《OYLA》 번역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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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너머의 지식 - 9가지 질문으로 읽는 숨겨진 세계
윤수용 지음 / 북플레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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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정의한다.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규정하기도 하고, 타인의 행동 속에서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이런 시선은 '남의 눈'을 의식하는 유교 문화의 전통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런 시선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타인과 경쟁 속에서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은 더욱 남의 눈을 의식하고, 경쟁에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세계적 표준'도 필요하다. 그러나 규정된 세계적 표준은 어디에도 없다. 아무도 세계적 표준이라고 내세우지 않는다. 고대처럼 상대 나라를 힘으로 굴복시켜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현대 사회는 그런 방식을 벗어난지 한참이나 지났다. 뒤늦게 근대화에 뛰어든 대한민국은 특히 21세기 들어오기 전 이미 관심이 집중될 만큼 놀라운 변화를 이뤄냈다. 서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이라 일컬어지는 나라들도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룩하는데 무려 200년이나 걸렸지만 대한민국은 식민지, 이데올로기로 인한 내전을 겪으면서 피폐할대로 피폐해진 국가에서 수십 년만에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형국이다. 이젠 군사력 5위, 경제력 세계 10위의 '강한 나라'로 우뚝 섰다. 선진국 문턱을 이미 넘어선 것이다. 다만 너무 빨리 이루어낸 성과라서 아직 군데군데 허술한 점이 여전히 있다. 

그렇다면 더 나은 나라로의 발전은 어떻게 해야 할까? 타인의 시선이 '눈치'였다면 이젠 타인의 시선을 '거울'로 삼아야 할 때다. 이로 인해 타자는 자기의 상을 형성해주는 '거울'과도 같다. 이 책 『시선 너머의 지식』은 그 당연함을 뒤집는 데서 출발한다. 이 책은 우리의 정체성을 성찰할 것을 주문한다. 저자 윤수용은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선진국’이라는 틀에 익숙해져 있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뒤늦게 선진국을 모델로 뒤쫒아왔고,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고 생각하기에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는 데 익숙해졌다는 주장일 것으로 독자는 이해된다. 이 책은 각국 사회를 바라보는 익숙한 시선에 균열을 내며 권력, 역사, 정체성, 문화, 자본이라는 거대한 구조의 작동 방식을 치밀하게 해체한다. 단지 국가간의 비교가 아닌 ‘왜?’라는 질문을 통해 더 깊고 다층적인 이해에 도달하도록 이끈다.


우선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가 단편으로만 보던 세상의 질서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고, 어떤 힘에 의해 유지되어왔는지를 밝힌다.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진 시대에 이 책은 속도보다는 깊이 있게 생각하고, 다시 묻고, 연결하며 이해하는 지식의 기쁨을 제안한다. 이 책은 세상의 껍질을 벗겨내고, 그 너머의 구조와 맥락을 정면으로 파헤치는 지적 여행으로 이끌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고, 앞서 저자가 지적했던 '선진국'이라는 틀은 미국과 서유럽 등 '우리보다 선진국'이라 여겨지는 국가들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구가 정해놓은 기준을 보편으로 삼고, 이들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평가하며, 이들의 문화를 우월하게 인식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한국의 대중 문화, 상업 브랜드, 음식, 심지어 미적 기준까지 서구의 틀에 맞추어 평가되고 소비되는 현실 비판 의식을 저자는 내비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우리의 태생적인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역사에서 비롯된 문화적 위계에 의한 것임을 강조한다. 저자는 에드워드 사이드(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난 미국의 영문학자·비교문학가·문학평론가·문명비판론자)의 저서 『문화와 제국주의』를 인용, 제시한다. 

저자에 따르면 당연한 것에 질문을 할 때, 세상의 시선이 달라진다. 익숙함을 의심하고, 기준을 해체하고, 시선을 확장할 때 우리는 더 깊고 입체적인 세계를 비로소 마주하게 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덴마크에서는 생일에 왜 국기를 꽂을까?”라는 소소한 질문에서 시작해, 덴마크 행복 사회의 모순을 파헤친다. 또한 “이탈리아의 청년들은 왜 부모의 집을 떠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이탈리아 사회의 복지 문제를, “아이슬란드에서 왜 맥도날드가 사라졌을까?”라는 물음은 아이슬란드의 정체성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이념과 다르게 왜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하게 되었는지, 미국 남부의 친절한 인상이 사실은 인종차별의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묻는 질문은 국가와 문화를 관통하는 본질적 질문으로 확장되며 독자에게 생각의 전환을 유도한다. 하나의 질문이 각 나라의 다양한 모습을 관통해 사회의 다양한 이면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보게 한다.


이 책은 모두 3장(章)으로 구성돼 있다. 1장 〈행복의 그림자-우리가 믿어온 이상에 대하여〉, 2장 〈정체성의 경계에서-우리가 누구인지 묻는 질문들〉, 3장 〈자본의 얼굴들-물질에 지배당하는 세계〉 등이다. 에드워드 사이드처럼 우리가 가진 인식의 틀을 벗어나 보면, 놀랍게도 그들이 우월해 보이던 감각이 다르게 느껴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른바 선진국이라 불리는 국가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결함과 상처를 가진 존재임을 발견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더불어 선진국이라는 규정 자체도 하나의 환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이때가 비로소 타자라는 거울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게 되는 순간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이에 따라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덴마크, 싱가포르, 미국(이상 1장)을 살펴본다. 또 아이슬란드, 일본, 프랑스(2장)와 영국, 이탈리아, 영국(3장) 등도 세밀하게 분석한다. 사소한 호기심에서 출발해 역사적 근원을 추적하며, 각국의 사회 현상이 결국 생존과 자기방어를 위한 선택들의 결과였음을 도출해내고 있다. 

이 책은 이처럼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시선을 낯설게 바라보게 한다. 표면적인 평가와 이미지를 넘어, 그 이면의 역사적 맥락과 본질을 파악하려는 태도를 저자는 제안한다. 이를 통해 나와 세계를 새롭게 연결하고,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돌아보는 깊은 통찰을 이끌어내는, 탁월한 방법이라는 주장이다. 동시에 지식이란 단순한 정보의 축적이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틀이며, 기존의 인식 구조를 재구성하는 힘임을 독자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첫 번째 나라가 덴마크다. 「행복 이면에 숨겨진 모순, 덴마크」라는 제목이 강렬하다. 덴마크는 강력한 복지 제도의 상징적인 나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복지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높은 세율이 필수적이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택스 파운데이션의 2024년 자료에 따르면 덴마크의 소득세율은 55.9%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세율을 기록한다. 놀랍게도 이 수치는 과거에 비해 많이 낮아진 것이다. 1997년도에는 소득세율이 무려 65.9%에 달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높은 세율에 대해 덴마크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일반적으로 높은 세금은 부정적인 인식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US 뉴스의 기사에 따르면 덴마크인들의 10명 중 9명이 높은 세금을 '기꺼이' 낸다고 답했다. 도대체 덴마크인들은 왜 이렇게 높은 세금을 기꺼이 감당하는 것일까?


책에 따르면 이들의 배경에는 강력한 신뢰 기반의 사회적 시스템과 투명한 세금 운영이 자리잡고 있다. 덴마크인들은 자신들이 낸 세금이 자신과 사회를 위해 제대로 쓰이고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높은 세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덴마크 사회가 성숙되고 선진적인 시민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은 이 밖에도 여러 통계에서 드러난다. 덴마크는 국제적으로 정부 청렴도와 사회적 신뢰도 양쪽 모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나라이다. 2024년 국제투명성기구 조사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청렴한 나라로 꼽혔고, 2022년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을 믿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덴마크인의 73.9%가 "그렇다"고 답해, 세계에서 사회적 신뢰도가 가장 높은 국가로 기록되었다. 덴마크에서는 부모들이 길거리에 유모차를 세워둔 채 카페에서 커피를 마셔도 아무도 아이를 해치거나 데려가지 않을 정도로 서로에 대한 신뢱도가 높다고 전해진다."(p.19~20)

우리가 세계사에서도 배웠듯이 덴마크는 과거 북유럽 일대를 호령했다. 그러나 16445년 스웨덴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것에 이어, 1864년 독일과의 전쟁에서도 패하며 광대한 영토를 잃고 큰 상실감에 빠졌다. 그러나 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덴마크 국민들을 다시 일으켜 세운 두 인물이 있었다. 그중 첫 번째 인물은 군인 출신의 부흥 운동가인 엔리코 달가스였다. 달가스는 공병단 장교시절 주로, 지금의 덴마크가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유틀란트반도에 도로를 건설하는 작업을 맡았다. 도로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토양 조사와 지형 분석이 필수적이었고, 이 과정에서 그는 유틀란트반도의 광활한 황무지에 주목했다. 전쟁 후 황폐화된 이 땅은 그에게 새로운 가능성의 땅으로 다가왔다. 그는 이 황무지를 되살리고자 하는 계획을 세우며 덴마크의 재건을 위한 큰 비전을 제시한다. "바깥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되찾자"라는 구호와 함께 대국민적인 운동으로 이어갔다. 그 결과 놀랍게도 30년만에 황무지의 절반을 개간하는 데 성공했다. 이때 달가스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사람은 농민(평민)이었다고 한다. 농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동참해서 일궈낸 성과이라는 것. 여기에 또 덴마크 교육자이자 사상가인 니콜라이 그룬트비가 가세했다. 패전 후 덴마크 사회에 깊이 잠식한 패배의식을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농민들을 믿고 진정한 국민국가는 평민을 중심으로 구성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농민들이 자신들의 문화와 민족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세계 최초로 세운 '민중고등학교'는 오늘날의 성인교육 기관이다. 오늘날의 세계 최고의, 행복지수 1위 국가는 '평민성'과 '평등주의'에서 비롯됐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오랜 시간 집요하게 탐구해온 세계의 권력, 문화, 역사, 정체성의 실체를 더욱 깊고 정제된 시선으로 펼쳐낸다. 저자는 흑인 거주지와 백인 거주지 사이의 극심한 격차를 마주한 경험을 계기로,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사회 문제와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다양한 국가의 문화와 이면을 추적하며,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숨겨진 권력 구조와 불평등의 뿌리를 드러냈다. 이 책은 그 탐색의 결정판으로, 표면적 서사에 만족하지 않고 끈질기게 질문하며 상식이라 여겨진 이면의 진실을 보여준다. 사회를 해부하고 뉴스나 콘텐츠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지식의 심층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왜 오늘날 선진국으로 꼽히고 있는지, 그 원인과 과정을 살펴보고 그들의 권력과 무한한 힘이 영원성이 있는지도 짚어낸다.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는데도 왜 끊임없이 내부적으로 발생되는 문제에 끌려가는가에 대한 심각한 성찰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부각시키기도 하고, 오늘날 최고의 복지국가로 세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덴마크와 싱가포르의 역사를 샅샅이 살피며 이들 국가의 튼튼한 밑받침이 무엇인지 탐구한다. 또 갑자기 미국의 대항마로 부상한 중국의 약점은 무엇인지,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객관적 시선과 자료를 바탕으로 비전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처럼 선진국들의 강점과 약점을 모두 알게 되면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이 충분한지 판단이 설 것이고 어떤 부분에서 역량을 강화해야 할지에 대한 모범답안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선진국 문턱에서 아직도 힘겨워하는 우리 대한민국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고, 어떻게 슬기롭게 해결할지에 대해서도 영감을 줄 수 있다고 독자는 믿는다.


"프로그램은 일본 문화에 감탄하는 미국인의 시선을 통해 일본인의 자긍심을 확인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이는 일본 사회에 깊숙이 내재한 서구 중심적 콤플렉스를 보여주는 단면일 수 있습니다. 결국 지금의 ‘일본적인 것’은, 사라진 정신적 정체성을 메우기 위해 외부로부터 차용되고 구성된 이미지에 가깝습니다. 국체로 표상되던 과거의 일본 정신은 군국주의의 패망과 함께 매장되었지만, 그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한 채 ‘착한 국민’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강요받았습니다."(p.219) - 「콤플렉스의 거울, 일본」 중에서 


저자 : 윤수용


현재 유튜브 채널 <용두사미>를 운영하는 크리에이터. 각 나라의 문화와 역사 등을 소개하면서 그 안에 숨겨진 사회적 문제를 이야기하는 영상을 만든다.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는 흑인음악 보컬 그룹 ‘Korean Soul’의 멤버이자 리더이기도 하다. 2019년부터 공연 일정으로 흑인들이 거주하는 마을에 자주 방문했는데, 백인 거주지와의 극심한 빈부격차와 분리된 풍경을 느낀 뒤 미국을 비롯한 해외 여러 나라의 사회 문제와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2021년에는 아메리카 갓 탤런트(America’s Got Talent)에 출연해 준결승에 올랐다. 음악, 영상, 책을 통해 동시대의 문제 의식을 반영하는 아티스트, 크리에이터, 스토리텔러가 되길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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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팔자로 보물찾기
NK밝은미래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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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 『사주팔자로 보물찾기』이 단순하게 사주팔자나 운세만 다루는 책이라면 독자는 읽기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독자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주나 관상 등을 보기 위해 이른바 '점집'을 찾은 적이 없다. 민간신앙, 혹은 미신 정도로만 이해했기 때문이다.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예전에는 서점을 들를 때면 '명리학', '사주팔자', '주역' 등의 제목을 단 책들은 여간해서 보기 힘들었다. 아마 우리 교육이 실제로 근대 교육이 도입된 이후 '과학적'과 '비과학적'에 방점을 두고 철저히 과학적인 것에만 신뢰를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서양의 학문이 여과 없이 들어오는 바람에 기존 동양의 학문은 모두 도외시되고 배제되었다. 

지금 독자가 중년에 들어서면서 이들 책에 새삼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사주나 관상, 그리고 명리학, 주역 등이 깊은 철학적 의미를 갖고 있다는 데서 시작됐다. 이들이 학문으로 정립된 것은 단순히 길흉화복을 점치는 수준의 '미신'이 아니라 오랜 세월 인간이 직접 경험하며 연구하고, 또 사유해낸 '학문'이라는 점에 알았기 때문이다. 다만 한자 투성이고, 또 어려운 데서 책을 따로 읽고 배우기에는 적절치 못하다는 생각에 아예 들여다보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명리학'은 중국 춘추전국 시대 '사서오경'으로 편입된 주역(周易)을 이어받은 책이라고 알게 됐다. 당(唐) 나라 이후에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체계화했다고 들은 바도 있다. 누가 그랬는지 학자의 이름도 모르고 내용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어 흥미롭기도 했지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명리학을 새로 만날 생각은 해보질 못했다. 

대부분 명리학을 ‘미래를 점치는 방법론’ 정도로 알고 있지만, 사실 명리학은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이라는 것이 명리학자들의 주장이다. 새로운 해석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이해에서 한 발 나아가는 주장이라고 독자는 이해한다. 즉 미신을 한 단계 끌어올려 명리학을 만든 게 아니고, 주역이 세월을 거듭하면서 명리학으로 발전됐다는 의미로 독자는 받아들여진다. 어떤 명리학자는 "명리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나도 모르게 하는 내 행동의 이유를 파악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즉, 내 운명을 꼬아버리는 힘이자 내 운명을 ‘꽃길’로 만드는 힘이기도 한 내 성격의 근원을 깨우치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타고난 ‘명(命)’을 바꿀 수는 없지만, ‘운(運)’은 바꿀 수 있다는 주장 또한 명리학이라고 한다. 때문에 우리가 명리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결정되지 않은 미래를 미리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부족함을 알고 채우기 위해서라는 주장은 무척 매력적이다. 특히 최근 많이 쓰이는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말을 들을수록 명리학의 일부라도 알고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깊어진다. 사실 세상이 현재나 미래 모두 불확실한 것은 어쩌면 사회 변화의 속도가 디지털화 되면서 더욱 빨라지고 대중화 되면서 더욱 혼란스럽다. 당연히 미래, 사회의 변화뿐 아니라 자신 개인의 미래마저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한 시대이기 때문에 '운'을 연구하는 명리학은 더욱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다. 

이 책 『사주팔자로 보물찾기』는 이런 혼란의 시대, 불확실성의 시대에 흔한 '위로' 100마디보다는 '자기 객관화' 몰입이 훨씬 해결책에 가깝다고 선언한다. 책을 펴낸 출판사 측에서도 이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읽힌다. "모든 인간은 에너지 사이클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인생은 파도처럼 느껴진다. 많은 이들이 역경을 이겨내는 경험을 성장에 필요한 요소처럼 말하지만, 사실 예방하는 지혜가 있다면 역경은 불필요한 것이다. 맑은 날에는 비 오는 날을 대비해야 하는데, 우산을 준비하지 않으면 역경을 만난다. 큰 임무를 쥐고 태어난 위인에게는 역경이 외부에서 오지만, 범인(凡人)의 역경은 대체로 자신이 만들기 때문에 타산지석으로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60간지 사이클은 계속 순환하고, 사람마다 파도를 만나는 시기와 종류가 다르다. 흐름을 알면 파도 타는 법을 배워 예방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명리학 공부가 필요하고, 이 책은 그에 더해 보물을 찾는 방법도 알려준다. 인생의 진짜 보물을 찾아서 보물 지도를 펼치기 좋은 날이다."

저자 'NK밝은미래'는 〈서문〉에 '필독'이라는 단서를 달면서 명리학의 필요성과 시의 적절성을 강조한다.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서 우리는 과거보다 더 많은 것을 발견하고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지만, 보고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품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 세상은 이토록 밝으나 어두운 세상에 갇혀서 불빛을 들고 있는 사람의 뒤만 따라간다. 그 빛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p.6)



〈서문〉에서 저자는 사람마다 명리학의 세계로 들어오는 아주 많은 이유가 있지만, 자신의 경우 이 같은 궁금증으로 공인들의 사주를 직접 풀어보고자 입문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애초의 의도와는 다르게 타인이 아닌 자신을 발견하는 공부가 되었고, 동시에 성찰의 장이 되었다. 자신의 본모습을 직시하는 건 매우 불편한 진실과 직면하는 것이므로 어찌 보면 명리학은 매우 잔인한 학문인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그래도 불편한 진실을 직접 마주 보아야 성장을 이룰 수 있으니,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 자기 연민이나 위로가 아니라 자기객관화인 것 같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에는 명리학을 공부하는 자부심마저 느껴진다.

저자는 〈서문〉에서 '사주팔자가 정해지는 기준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제시하며 글을 풀어간다. 이에 따르면 대체로 (사주팔자는) 전생의 기록이라는 말이 가장 보편적이나 이는 정답이 없으므로 각자가 심오하게 생각해 볼 문제이다. 중요한 건, 우리는 모두 이 땅에 배우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고,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자기 자신을 배우는 것이며, 저자를 보고 자신을 객관화하는 건 엉켜 있는 실타래를 푸는 작업이다. 꼬인 인생부터 풀어야 성공의 길로 향하는 60간지 열차에 오를 수 있다. 성공은 물질적 성공과 정신적 성공의 균형을 말하며 한 방향으로 치우친 성공은 이 책에서 말하는 성공과 거리가 매우 멀다는 것을 저자는 강조한다. 

이 책은 모두 6장(章)으로 구성돼 있다. 1장 〈사주는 과학이다〉, 2장 〈새로운 시각의 물상론〉, 3장 〈12지지에서 보물찾기〉, 4장 〈12지지의 특성〉, 5장 〈육신의 사회적 역할〉, 6장 〈육신(六神)의 특성〉 등이다. 1장에서는 이 책의 탄생 배경인 「육신변화론」과 궁합 그리고 운의 시스템 등, 기본을 기술한다. 특히 「육신변화론」은 저자가 정립한 이론으로, 기존의 「일간론」과 이견이 있다. 어느 정도 명리학 지식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므로 입문자는 가볍게 읽고 넘어갔다가 완독 후에 다시 읽어보기를 권장한다고 밝힌다. 더 중요한 것은 미시적으로 각 글자의 의미를 파악하기에 앞서 선행돼야 하는 건, 이 세계를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임을 강조한다. 우리는 10개 에너지의 상생상극에 의해 지배당하므로 우주와 이 세계, 그리고 우리 뇌가 에너지에 의해 움직이는 원리를 알아야 한다는 점을 말한다.


2장에서는 물상의 기준을 새로운 방식으로 명확히 세워 분류하고, 그에 따라 물리적 세상을 관찰하고 대입하여 십성의 특성을 새롭게 정의한다. 3장과 4장에서는 지지환경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성과 그 속에 숨겨진 보물을 알아본다. 우리가 찾아야 하는 보물이 모두 이 속에 있다고 설명한다. 5장과 6장에서는 어떤 수호신의 도움으로 우리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하는지를 알아볼 수 있다. 인간은 사획적 동물이므로 자신의 위치를 인지해야 사회적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힘을 기를 수 있다. 모든 책터는 순서대로 보는 것을 권장하나, 입문자의 경우 이해하기 쉬운 부분부터 골라 볼 것도 함께 권유한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가장 알려주고 강조하고 싶은 말은 "명리학은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의 성장을 돕는 학문"이라는 사실이다. 명리학은 위험한 칼과 같아서 잘못 사용하면 반대로 다칠 수도 있음을 경계한다.

앞서 저자가 권유한 대로 입문자이지만 독자가 가장 가장 관심 있는 내용을 먼저 읽어본다. '궁합'에 관한 이야기다. 이 내용은 1장 〈사주는 과학이다〉의 세 번째 항목이다. 저자는 먼저 칼 융의 말을 인용한다. "두 사람 개성의 만남은 두 가지 화학물질의 접촉과 같다. 반응이 있으면 둘 다 변화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누구나 누군가의 몸에서 나오므로 태생부터 우리는 모두 인연으로 연결되어 태어난다. 처음 맺는 인연은 혈연이고, 그 외에는 유유상종으로 자신이 내뿜는 에너지가 그에 맞는 에너지를 끌어당기면서 인연을 만들어 나간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자신을 성장시키며 좋은 에너지를 내보내야 한다. 우리가 내뿜는 에너지는 저 광활한 우주를 통해 지구 곳곳으로 전송된다. 좋은 인연은 서로의 장점을 살려주어 도약의 발판이 되어주고, 나쁜 인연은 서로의 발목을 잡아 수렁으로 끌고 들어간다. 때론 악연과의 관계에서도 배울 점이 있으므로, 그로 인해서 큰 깨달음을 얻는다면 그보다 값진 인연도 없다. 가장 위험한 건, 악연을 만나는 게 아니라, 누구와도 연을 맺지 않는 것이다. 연을 맺는 것은 중요하나, 아무나와 맺으면 안 되므로 인연을 맺을 때는 매우 신중해야 하고, 깊은 인연을 맺을 때는 헌신할 각오를 해야 한다. 좋은 인연은 서로에게 헌신하며 융합하지만, 나쁜 인연은 서로 상대를 자신에게 맞추고자 한다. 궁합이 좋으면 떨어져 있어도 온기가 전해지지만, 궁합이 나쁘면 함께 있어도 외롭다."(p.30) 이 책엣허는 임상을 다루지 않지만, 「육신변화론」으로 궁합 보는 방법과 궁합의 실효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천생연분 사주를 하나 살펴본다.(관심 있는 독자는 p.31을 참조하기 바람)



저자는 〈에필로그〉 "사주팔자는 어떤 기준으로 정해지는가?"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이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어떤 사건을 겪으며 깨달음을 얻고 알에서 부화하듯 사고의 틀을 깨면서 성장한다. 나(저자)는 이번 집필 과정에서 몇 차례 틀을 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신의 정체'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ㄷ하. 프로그램된 대로 살아가는 걸 알게 되니, 이 세계를 창조한 신에 대한 궁금증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나는 사회적 현상을 관찰할 때, 예견된 이야기 흐름을 발견하고는 너무 재밌고 신나서 아이처럼 흥분하고 웃을 때가 종종 있다. 이 세상 이야기는 우화처럼 부분적으로 전개되고, 그 이야기들이 모여서 하나의 거대한 서사시가 되는데, 미래를 예측할 수 있도록 단서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이 세계는 고정된 시나리오와 애드리브가 존재하는 이야기 세계이다.

시나리오 작가인 창조주는 배역을 정할 때 에너지를 모아온 그릇에 맞춰서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우리는 그 대본(사주팔자)을 받아서 태어난다. 그래서 자신의 배역을 바꾸고 싶다면, 애드리브로 신에게 어필해야 하고, 애드리브를 잘하는 방법은 앞서 계속 말해왔듯이 타고나지 못한 에너지를 노력으로 채우는 것이다. 애드리브는 큰 물줄기는 바꿀 수 없으나, 작은 물줄기는 바꿀 수 있다. 신은 왜 이런 세계를 만들었을까? 저자는 신은 신을 닮은 조력자가 필요해서 인간을 배양하는 것 같다는 말로 책을 마친다. 마지막 한마디 덧붙이면서···. "온기를 잃지 말라."


저자 : NK밝은미래


“왜 나한텐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어?”

오래전 30세를 훌쩍 넘긴 친구가 한 말이다.

“야, 그건 당연한 거지, 누가 가르쳐 줘야지 아냐?” 나는 어이없어했다.

오랜 후, 명리학을 만나고 나서야 나에겐 너무도 당연한 세상의 이치가 누군가에겐 보이지 않는 벽에 가려져 있음을 알았고, 이 또한 재능임을 알았다. 그리고 “명리”라는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니, 세상의 이치가 더 또렷이 보였다. 모든 사람은 고유한 특성을 타고나는데 내 특성은 철학이고, 때가 되니 특기를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처음엔 내가 만든 명리학 이론을 알리고자 집필을 시작했으나 글을 쓸수록 소명의식이 강해져, 명리에 철학을 입혔다.

당령용신이 투간한 癸卯년 庚申월, 암탉이 수컷 독수리의 보호를 받으며 알을 품는 꿈을 꾸고 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그리고 얼마 전, 독수리가 큰 날개를 펼치고 활강하는 꿈을 꾸었다. 나의 첫 프로젝트는 완성되어 세상에 나왔고, 이제는 당신이 보물을 찾으러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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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의 산
레이 네일러 지음, 김항나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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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문명을 구축한 문어와 지구의 포식자 인류의 첫 대화��� 인간과 비인간, 소통과 공감에 대한 순도 높은 사유를 형상화해 인류의 성찰과 미래의 삶에 대해 생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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