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의 항해
앤 그리핀 지음, 허진 옮김 / 복복서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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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소설 작품 『그 여름의 항해』를 읽기에 앞서 저자에 대한 설명을 먼저 하고 싶다. 저자의 유명도가 대한민국의 독자들에게 엄청 높기 때문이다. 저자의 유명세는 그의 전작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이하 『모리스』)에 힘입은 바 크다. 한 편의 모놀로그 연극과도 같은 『모리스』 속에서 주인공 모리스 씨는 호텔 바에 홀로 앉아 아일랜드 흑맥주와 위스키를 번갈아 마시며 자신에게 특별한 다섯 사람을 기억에서 불러내 그들에게 건배한다. 모리스 씨의 독백은 바다 건너 아내와 두 아이와 살고 있는 아들 케빈을 향해 이야기하는 형식을 띠는데, 이로 인해 작품을 읽는 동안 모리스 씨와 바에 앉아 그의 조곤조곤한 이야기를 가만히 듣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무던하고 평탄하게 살아온 것처럼 보이던 평범한 노인 모리스 씨가 평생 감춰왔던 사건들을 하나둘씩 꺼낼 때마다 결코 단순할 수 없는 그의 뒤틀린 면모도 점차 드러나는데, 그 뒤틀림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닌 것임을 부인하기가 어렵다. 열등감, 수치심, 분노, 복수심과 다정한 마음과 연민의 감정, 뜨거운 사랑은 한 인간 안에서 온전히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모리스 씨의 인생 이야기는 그의 형 토니를 위한 첫번째 건배사에서 시작된다. 난독증으로 인해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어린 모리스 씨가 유일하게 의지했던 형 토니는 어린 나이에 폐결핵으로 사망한다. 그가 죽고 홀로 어른으로 성장한 모리스 씨는 형에 대한 깊은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담은 건배사를 시작하며 어릴 적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자 평생 자신을 옥죄는 비밀이 될 사건에 대해 암시해간다. 한편 어린 시절, 모리스 씨와 그의 어머니는 지역의 지주 휴 돌러드와 그의 아들 토머스에게 지독한 학대와 괴롭힘을 당했다. 그러나 운명은 복수의 기회를 주었고 모리스 씨는 그 기회를 움켜쥔다. 어느 날 아버지와 다투던 토머스는 실수로 가문의 보물인 에드워드 8세 금화를 창밖으로 떨어뜨리는데 우연히 지나가던 모리스 씨가 그 금화를 몰래 주워 아무도 찾지 못하도록 숨겼고, 금화를 분실한 토머스는 결국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만다. 그리고 소설은 우연한 사건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서서히 풀어간다.


『모리스』는 저자 앤 그리핀의 데뷔작이다. 그는 이 첫 작품만으로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와 평단의 스토리텔링 장인이라는 호평 속에서 스타 작가로 부상했다. 그만큼 『모리스』는 모든 탁월한 소설들이 그러하듯 인물들에 대한 작가의 침착하고도 부드러운 시선, 사건을 구성해가는 단단한 이야기 구조,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드러내는 날렵한 통찰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평범해 보이는 인생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절대로 밋밋하지 않다는 문학적 진리를 담은 이 작품은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다시금 교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외로움과 상실 속에서도 묵묵히 인생의 한 걸음을 이어가는 우리를 위한 이야기이기에 그렇다. 모리스 씨가 건네는 이야기에 지나치지 못하고 귀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차기작을 기다리던 전 세계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신작 『그 여름의 항해』는 “앤 그리핀 최고의 역작”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전작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이 한 사람의 지난했던 일생을 되돌아보는 이야기였다면, 신작 『그 여름의 항해』는 가족의 상실이라는 비극적 사건을 통과하며 그 이후까지 내다보는 이야기이자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가슴 아픈 미스터리다.

어느 평범한 오후, 주인공 로지는 딸 시어셔가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오는 모습을 창 너머로 본다. 하지만 딸은 끝내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8년의 시간이 흘렀고 딸이 여전히 살아 있다고 믿는 사람은 오직 로지뿐이다. 소설은 이야기를 두 갈래로 보여준다. 하나는 딸을 기다리며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는 로지의 시점, 다른 하나는 실종된 시어셔의 시점이다. 각 장(章) 사이사이에 짧은 단편처럼 삽입된 시어셔의 실종 당일 이야기를 따라 읽는 독자들은 서서히 사건의 전말을 파악한다. 독자는 로지보다 시어셔의 행방을 딱 한발 먼저 아는 상태로 로지를 바라본다. 이 독특한 형식이 자아내는 긴장감 속에서 독자들은 강박적으로 희망을 붙들고 심리적 붕괴를 겪다가 다시 숨쉬는 법을 배우는 로지의 감정적 여정을 함께하게 된다.



이 소설 작품 『그 여름의 항해』의 줄거리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저자가 구성의 묘를 살리지 않는다면 자칫 지루할지도 모를 정도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의 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앞서 언급한 대로 소설의 각 장 사이사이에 시어셔의 실종 당일 이야기를 짧은 단편처럼 끼워넣었다. 유기적 구성에 성공함과 동시에 긴장감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야기는 로지가 고향 로어링 베이로 돌아가며 시작된다. 슬픔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로 멀어져버린 가족. 집은 어색한 침묵만이 감도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결국 부부는 떨어져 지내며 숨 돌릴 시간을 갖기로 한다. 적막만이 가득한 집과 다르게 섬은 자연과 이웃들의 소리가 가득하다. 가문의 일원과도 같은 여객선 이브니스를 모는 일은 로지를 다시 숨쉬게 한다. 매일 아침 일과를 함께하지만 서로의 아픔을 캐묻지는 않는 새로운 친구도 사귀며 로지는 오래전에 잃어버린 무언가를 되찾은 듯한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로지에겐 여전히 답을 찾기 어려운 질문이 남아 있다. 시어셔에게 어떤 일이 닥친 걸까? 시어셔가 어떤 잔인한 일을 당했는지 모르는데 이곳에서 위로를 받아도 될까? 우리 가족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게다가 로지는 섬에서 새로운 갈등도 마주한다. 가족과도 같은 배, 이브니스를 잃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섬에 안고 온 슬픔과 눈앞에 닥친 난관, 로지는 이 모든 것을 헤쳐나가야 한다.

인간의 회복력을 오랫동안 탐구해온 저자 앤 그리핀의 역작이라고 평가할 만한 『그 여름의 항해』는 슬픔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시 웃음을 찾는가에 대한 격정적이고도 우아한 답변이기도 하다. 이브니스에 승객들을 태워 본토와 섬을 오가던 선장 로지는 이제 『그 여름의 항해』에 독자들을 싣고 해체되었던 가족의 유대가 다시 힘겹게 결합되는 순간을, 그곳까지 가는 감동적인 여정을 보여준다. 이 작품 『그 여름의 항해』는 삶의 의미를 잃었던 인물이 고통스러운 진실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회복으로 나아가는가를 섬세하게 파고드는, 탁월한 이야기꾼 앤 그리핀의 작가적 역량이 만개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출간 직후 〈아이리시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아이리시 타임스〉는 이 작품에 대해 “앤 그리핀의 소설 중 가장 복잡한 감정을 다루는 소설. 독자의 가슴을 저미면서도 희망과 위로를 잃지 않는다. 우리가 무너질 때, 다시 우리를 붙들어주는 것이 무엇인지 꿰뚫어보는 소설.”이라는 〈추천평〉을 냈다. 출판사 측에서는 〈책소개〉를 통해 '잔잔하다가도 순식간에 거품이 부글거리는 바다처럼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가슴 아픈 미스터리'라는 제목의 글을 냈다. "분열된 가족을 다시 끌어안기 위한 항해", "회복에 이르는 길에 대한 우아하고 깊이 있는 탐색", "해일처럼 닥쳐온 삶의 고통, 물러서지 않는 선장 그리고 어머니" 등 많은 곳의 추천평도 줄을 이었다. 

다음은 로지의 시선을 따라 독자가 나름대로 이 소설을 재구성해 본 것이다. 열일곱 살 딸 시어셔가 사라졌다. 그 아이가 탔던 자전거만 덩그러니 집앞에 쓰러져 있다. 로지는 시어셔가 잠깐 어디로 나간 것뿐이라고 생각했고 다시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8년이 흘렀다. 누구나 죽었다고 생각할 뿐 굳이 시어셔의 일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그러나 로지는 내심 시어셔가 살아 있다고 굳게 믿는다. 엄마이기 때문이다. 남편인 휴와 시어셔의 남동생 컬리는 이미 포기한 것 같다. 자식을 잃은 부부의 모습이 그렇듯이 서로 말이 없지만 따뜻한 온기는 흐르지 않는다. 로지는 아일랜드 본토(?)에서 떨어진 자그마한 섬 출신이다. 로지는 스물두 살에 처음으로 섬을 떠났었다. 휴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로지는 섬을 사랑했고 이브니스를 사랑했다. 이브니스는 아일랜드와 섬을 오가는 페리로 로지네 집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렇게 섬을 떠나 스물세 살이 되던 해 딸 시어셔를 낳았다. 시어셔는 열일곱 살 때 사라지고 로지는 8년 후 다시 섬으로 돌아왔다. 

선장인 로지의 아빠는 허리가 좋지 않았고 간절하게 딸이 다시 돌아와 이브니스를 운행해주길 바랐다. 로지는 여전히 이브니스를 사랑했고 잠시나마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섬에는 로지가 잘 아는 사람들이 있었고 로지는 의식적으로 그들을 멀리했다. 시어셔에 대해 물을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섬과 페리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로지는 다시 휴에게 돌아가야 했다.


로지는 시어셔가 반드시 돌아오리란 믿음을 한시도 버리지 않았다. 가족들과는 이제 더 이상 좁혀질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린 것 같다. 로지는 다시 섬으로 되돌아간다. 새로운 위기가 그녀를 맞는다. 이브니스는 더 이상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페리호가 되었고 빚만 쌓였다. 아버지는 집과 땅을 저당잡혀 간신히 유지해오고 있었고 이제 상환기일을 더 늦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로지의 마지막 희망인 이브니스마저 로지 곁을 떠나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로지의 믿음대로 시어셔가 돌아온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본 사람이라면 로지와 그 가족들이 겪었을 아픔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포기하지 못하고 기다리는 마음을. 챕터 사이에 시어셔의 행방을 유추할 수 있는 몇 줄의 글들이 있다. 시어터의 실종 당시의 상황들이다. 이 소설은 시어터의 실종으로 전개되는 작품이지만 범인을 찾아가는 내용은 아니다. 따라서 실종의 원인과 범인이 밝혀지는 것 또한 중심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겪는 무수한 고통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에 대한 선택과 우연과 운명 같은 것들이 얼마나 더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소설이다. 


“이브니스는 바로 나예요, 이기. 유일하게 남은 내 일부라고요. 알겠어요?”

나는 이기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당신한테는 내가 있잖아요, 로지. 디어미드랑 패치도 있고요.”

내가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정말 이해를 못하는군요, 그렇죠?”(p.418)


내가 시어셔와 함께 갔던 그 어두운 곳이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힌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고 아무리 스스로를 달래보아도 그 생각이 내 머릿속에 숨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그래서 가끔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내가 딸이 사라지기를 바랐었다는 생각에 눈을 꼭 감는다.(p.220)


“시어셔를 찾았대.”

그 드넓은 만에서 내 주변 공기가 도망치는 것 같았다. 빨려나가는 것 같았다.(p.449)


저자 : 앤 그리핀(Anne Griffin)


소설가. 1969년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태어나 역사학을 전공한 후 8년 동안 더블린과 런던의 워터스톤스 서점에서 일했다. 2013년부터 글쓰기를 시작하여 2017년 단편소설로 존 맥가헌 문학상을 받았고 헤네시 뉴 아이리시 라이팅 어워드의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첫번째 장편소설인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은 2019년 출간되자마자 놀라운 데뷔작이라는 호평 속에 아이리시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고 아일랜드 북 어워드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피플>, 굿리즈, 인디넥스트 선정 도서에 이름을 올렸다. 이 소설의 큰 성공에 힘입어 앤 그리핀은 드물게 보는 스토리텔링 장인, 마음 깊은 곳을 울리는 비범한 재능이라는 평가 속에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앤 그리핀의 또다른 작품으로는 두번째 장편소설인 『Listening Still』, 2023년 5월 출간된 『The Island of Longing』이 있다.


역자 : 허진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번역학과를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 앤 그리핀의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 조지 오웰의 『조지 오웰 산문선』, 엘리너 와크텔의 인터뷰집 『작가라는 사람』(전 2권), 지넷 윈터슨의 『시간의 틈』, 도나 타트의 『황금방울새』, 마틴 에이미스의 『런던 필즈』와 『누가 개를 들여놓았나』, 할레드 알하미시의 『택시』, 나기브 마푸즈의 『미라마르』, 아모스 오즈의 『지하실의 검은 표범』, 수전 브릴랜드의 『델프트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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