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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시대
스티븐 J. 파인 지음, 김시내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5년 7월
평점 :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왜 이토록 자주 불타오르는가?」란 부제를 가진 이 책 『불의 시대』는 인류가 불을 발견하고 사용함으로써 인류 문명의 비약적 발전이 이루어진 긍정의 의미보다는 불의 영향이 전 지구적, 지질학적 규모에 이르렀다는 부정적 견해를 보인다. 인류는 이미 구석기 시대부터 불을 사용했다고 인류사는 밝히고 있다. 이는 그 흔적이 남아 있는 유적지에서 숯이나 재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는 점으로 증명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원인(原人)으로 표현되는 호모에렉투스 때부터 불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 원시인이 불을 얻게 된 것은 화산이나 산불 또는 낙뢰 등에서 우연히 얻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에서는 프로메테우스가 신으로부터 불을 훔쳐다가 인간에게 주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렇게 얻어진 불을 꺼지지 않게 잘 보관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어서 인류는 스스로 불을 만들어 낼 궁리를 하게 되었다.
최초의 인공 발화법은 마른나무와 나무를 마찰하여 불씨를 얻는 방법이었다. 인간이 불을 사용하게 된 것은 다른 동물에 대한 인간의 우위를 입증하는 것으로 인간은 불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다. 음식을 익혀 먹게 되었으며 실내에 화덕을 설치하여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이렇게 유용한 불을 꺼지지 않게 잘 보관하면서 운반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어서 점차 인간은 불이 있는 근처에 정착하는 생활 형태를 갖게 되었다. 일정한 곳에 정착하게 된 인류는 식량 확보를 위한 노력으로 수렵·채취 수준에서 벗어나 농경 생활을 시작했으며 보다 더 용이한 경작을 위하여 도구를 발명하게 되었다. 이상은 우리가 책이나 교과서 등을 통해 일반적으로 배우는 내용이다. 다른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인류의 불의 사용은 생물학적으로 지능을 높이는 효과가 있었다고 진단한 학설도 읽었던 것으로 독자는 기억하고 있다. 우연한 발견으로 타다 만 동물의 사체에서 풍기는 냄새가 작용했을 것 같다. 먹어보니 불에 익힌 고기가 훨씬 맛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로부터 수렵으로 잡은 육류나 물고기를 불에 구워 먹기 시작했다. 고기는 날것으로 먹을 때가 가장 부드럽다. 구워서 먹다보니 더 많이 씹어야 했고 턱관절이 많이 움직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무한 반복된 씹는 행위가 뇌의 움직임을 활성화시켜 지능이 올라갔다는 주장이다. 설득력이 굉장히 큰 주장이다.

이 책은 부제에서도 설명되듯이 지구 곳곳은 산불이 끊이지 않는 현대 사회에서 단순한 기후변화가 원인이라고 보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저자 스티븐 J, 파인은 오늘날 불이 많아진 시대를 ‘불의 시대(Pyrocene)’라고 명명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대로 단순히 불이 많아졌다는 뜻이 아니라, 불의 영향이 전 지구적, 지질학적 스케일에 이르러 빙하기에 비견될 만한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는 선언이다. 불에 대한 세계 최고의 전문가인 저자는 이 책 『불의 시대』를 통해 불을 중심으로 인류 문명을 재조명하며, 인류가 만들어낸 불이 지구에 가져온 다차원적인 위기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인문, 과학, 환경을 유기적으로 엮어 불의 세계를 직조하는 이 책은 지금 우리가 반드시 읽어야 할 시대적 경고이자 생존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지구는 태양계에서 유일하게 불이 존재하는 행성이며, 인간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불을 사용하는 종이다. 불은 인간과 더불어 진화해왔고, 인간은 불을 통해 자신을 조형해왔다. 그러나 인간의 가장 강력한 도구이자 힘이자 동반자였던 불은 이제 인간을 위협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산불의 위력은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으며, 특히 최근 호주, 미국, 한국 등지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불은 수천만 헥타르의 땅을 태우고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집어삼켰다. 인간이 불을 그 어느 때보다 더 고차원적으로 조종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현대에 오히려 불의 위력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거세지고 통제 불가능해졌다.
이 책은 인간 문명이 불을 중심으로 구성됐다는 통찰을 통해, 불이 인간에게 길들여진 순간부터 불이 인간의 세계를 지배하게 된 오늘날까지의 변화를 추적한다. 인간은 들소를 젖소로 길들인 것과 마찬가지로 들불을 횃불로 길들였으며, 이 불을 이용해 초원과 산림을 개간하고, 사냥과 농경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나갔다. 불은 인간이 생태계를 조작하고 재편하며 지배하는 도구였다. 인류 문명은 전쟁과 건축과 종교와 화학과 연금술과 기계공학에 불을 이용하며 눈부신 진화를 이뤄냈다.

불이 있는 행성은 지구뿐이다. 이 놀라운 상황을 잠시 짚고 넘어가자. 행성들 사이에서 불은 생명만큼이나 드물다. 생명체가 살아가는 세상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지구는 해양 생물에서 산소 대기가, 육상 생물에서 불이 잘 붙는 탄화수소가 등장했다. 식물은 육지에 뿌리를 내리자마자 벼락을 맞고 불타올랐다. 그 이후로도 계속 타고 있다. 산소는 다른 행성에도 있으며 그중 화성이 가장 유명하다. 나머지에는 가연성 물질이 그득하다.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만 봐도 대기가 메탄이다. 기체 행성에서는 벼락이 친다. 그러나 필수 요소를 전부 갖추고 있거나 요소 간 결합이 가능한 행성은 없다. 생명체가 있는 데다가 불까지 있어서 불을 다루는 지적 생명체가 존재하는 외계 행성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고, 무언가 찾는다고 해도 너무 멀어 지구와 비교할 수 없다. 우리는 유일하게 생존 가능한 불의 행성에서 산다.(p.21~22)
이처럼 인간이 불을 통제하고 유리하게만 사용할 줄 알았던 불은 사실 인류가 불의 이용과 혜택에만 집중했기에 불이 주는 엄청난 피해에 대해선 미처 생각지 못했을 것으로 독자는 판단한다. 기껏해야 전쟁의 무기로 사용되는 것일 뿐 평화시에는 결코 인간에게 해를 끼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로써 인간에게 불은 더 이상 도구가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는 원동력이 됐다. 불은 공장을 움직였고, 철도를 달리게 했으며, 전기를 공급했고, 대량 생산과 소비의 시대를 열었다. 인간은 불 덕분에 이전에는 상상조차 못한 규모의 도시를 만들고, 수천 킬로미터를 하루 만에 이동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오늘날 불은 인류가 통제할 수 없는 수준에 다다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관측되는 대형 산불들은 이 ‘불의 시대’가 단지 자연 현상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결과물임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 책에서 불의 역사를 세 시대로 나누어 설명한다.

첫 번째 불은 식물이 대륙을 덮자 나타난 자연의 불이다. 번개와 같은 자연 현상에 의해 발생한 이 시대의 불은 생태계의 일부로서 존재했다. 두 번째 불은 인간이 길들인 불이다. 인간은 요리, 사냥, 경작 등 자신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도구로 불을 다루기 시작했고, 이 시대의 불은 인간이 있는 모든 곳에 퍼졌다. 세 번째 불은 질적으로 다르다. 이 시대의 불은 계절, 태양, 기후, 지리 같은 생태학적 한계에 제한되지 않는 파괴력을 가지는 불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나무, 풀 같은 유기물이 아니라 화석 연료를 태우기 시작했고, 가연성 물질의 원천은 기본적으로 무한하다.
이 분류에 따라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구성됐다. 1장 〈첫 번째 불: 자연의 불〉, 2장 〈얼음의 시대 61〉, 3장 〈두 번째 불: 인간이 길들인 불〉, 4장 〈세 번째 불: 산업혁명 이후의 불〉, 5장 〈화염세〉, 그리고 「여섯 번째 태양」란 제목의 〈에필로그〉로 끝맺는다. 저자는 책의 〈서문〉을 통해 세 가지 불의 구분과 5장 〈화염세〉로 규정하는 이유와 과정, 전망 등을 탐구한다. 책에 따르면 옛날 옛적 지구에는 불의 유무와 상관없이 벼락, 산소와 함께 불을 이루는 삼각형을 완성하는 세 번째 요소가 있었다. 숨이 끊어져 돌로 변한 생물군인 화석연료가 그 주인공이다. 인간은 점점 미친 듯이 화석연료를 흥청망청 써댔다. 멀고 먼 지질 시대 속 연료를 캐다가 (알려진 게 거의 없는) 복잡한 상호작용을 통해 불태우며 앞으로 맞이할 먼 미래를 향해 폐기물을 뿜어댔다. 산업 사회에 접어들면서 연소는 지구에서 정립된 불의 역학 관계를 재편성했다. 화석연료 덕분에 세계화가 빨라진 것이다. 그 결과, 전 세계에서 불길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려워졌다.
불은 대체 무슨 일을 할까? 불은 정확하고 포괄적이다. 다 흩뜨려놓고 굽는다. 생물군을 해체한 후 타는 과정에서 해방을 맛본 재료를 새롭게 조립할 장소를 마련한다. 화염 주위로 생화학, 종, 공동체가 생태학적 삼각형을 이루며 순환한다. 불은 분자, 유기체, 경관을 휘젓는다. 식물의 숨을 앗아가고 생태 구조를 분해해 분자를 떠돌이 신세로 만든 뒤 종끼리 섞어 적당한 곳을 물색하고 한동안 에너지와 양분의 흐름을 다시 이어 붙인다. 속도를 점점 붙이며 휘저어 조각내놓고 다시 빚어 숨을 불어넣는다. 불은 급진적이면서도 보수적이다.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동시에 되돌려 놓을 환경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경제에 빗대자면, 창조적 파괴의 극치다.(p.37)

저자는 이어 살아 숨 쉬는 자연과 생을 다해 돌로 변한 자연 모두 불타는 대조적인 모습은 지구 화재 현장에서 경험하는 역설 대부분을 설명한다고 말한다. 역설은 다음과 같다. ① 불과 함께 진화하는 지역에서 불을 없애려 하면, 불은 더 사나운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다. 크게는 헬리콥터에서 작게는 이동식 펌프까지, 석유로 가동되는 기계들 탓에 의도치 않게 불에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면, 애초에 불길을 잡으려 이런저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될 것이다. ② 산불이 매체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타들어 간 실제 면적은 줄고 있다. 화석연료로 굴러가던 사회에서 대용물을 찾아 화재의 씨앗을 제거(또는 억제)하기 때문이다. 2020년 캘리포니아의 화재 피해 면적은 420만 에이커였다. 산업화 이전에는 화재가 급증하지 않겠지만, 아마 1,000만 에이커 이상이 피해를 봤을 것이다. ③ 화석연료 사용량을 줄일수록 자연 경관을 그만큼 더 태워야 하는데, 이는 손해다. 우리는 미래에 대비해 불에 잘 견디는 내화 경관을 조성해야 하고, 그러려면 불을 활용해야 한다.
저자는 화염이라는 직접적 결과와 연기, 소화 활동, 개간, 지구 온난화라는 간접적 결과까지 불의 영향력을 모두 합치면, 빙하기와 정반대인 불의 영향을 받는 시대의 윤곽을 그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른바 '화염세'다. 화염세는 불을 중심으로 인간이 지구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에 관한 관점을 제안한다. 인류만의 주요 특징인 불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바탕으로 인류세의 이름과 정의를 바꿀 수 있다. 불과 인간 사이의 오랜 동맹이란는 서사에서 비롯한 것이다. 앞으로 발화 행위가 모두 모여 홍적세에 있었던 빙하기와 같은 불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저자는 경계한다. 화염세는 불을 주제 삼아 기후 변화와 여섯 번째 멸종에 관해 추가 관점을 제시하고 해양 화학과 해수면 그리고 인간의 존재 특성에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또 저자는 익숙한 이야기를 다른 관점에서 재진술해 새로운 주제를 소개한다. 게다가 모든 것을 통합하듯 태우는 불처럼 지리, 역사, 제도, 교육 등 환경을 통합하면서 향후 다가올 미래까지 탐색한다.

저자는 이제 불은 더 뜨겁고 오래 탈 뿐만 아니라, 지구의 대기와 기후까지 "비가역적으로 바꾸고 있는 총체적 힘"으로 규정한다. 불의 시대의 위험성은 산불의 증가뿐만 아니라 반복되는 고온화, 건조화, 탄소배출 증가, 바다의 산성화, 해류의 변화, 생물 다양성의 소멸로도 나타나고 있다. 불은 대기권을 통해 모든 장소에 영향을 미치며, 현대의 도시조차 불을 중심으로 조직된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불의 시대의 정점에 서 있다. 이제 이 불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우리의 다음 시대를 결정할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맞이한 위기를 이해하고 대응할 열쇠를 쥐고 있다고 저자는 우리의 역할을 강조한다.
"불은 다른 고대 원소와 달리 여전히 학문 분야 없이 땅바닥에 대충 몸을 누이고 잠을 청하며 여러 학문을 피난처 삼아 떠도는 노숙자 신세다. 불의 생물학적 특성은 근본적으로 규정하기 어렵고, 물리학 모델에 종속된다. 불을 기계에 가둬 연소를 제어하는 기계공학을 생각하면 된다. 불을 사용하는 사람들조차 토치로 땅에 불을 붙이는 순간 불이 물리 장치에서 벗어나 생태 과정으로 변모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불을 그저 양초나 터빈과 같은 도구로 취급한다. 오늘날 산업 사회를 살아가는 도시인들은 불과 개인적으로 접촉할 일이 거의 없다. 불은 그들의 경험 밖 외딴곳에 존재할 뿐이다. 사람들은 다양한 매체에서 보이는 재앙이자 사고의 모습이나 공공 보건을 위협하는 연기를 통해 가상의 불만 알고 있다."(p.57)
저자 : 스티븐 J. 파인(Stephen J. Pyne)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교(Arizona State University)의 명예 교수이자 세계적으로 저명한 화재 역사학자인 저자는 인간과 자연, 문화 속에서의 불의 역할에 대해 깊이 탐구해 왔으며, 특히 야생지대와 농촌 지역의 화재 역사와 정책에 관한 방대한 연구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에서 15년간 소방관으로 근무하며 직접 현장에서 불과 맞서 싸운 경험이 있고, 로키 산맥과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소방대책을 확립했다.
역자 : 김시내
홍익대학교 신소재공학과를 졸업하고 LG디스플레이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다가 바른번역 글밥아카데미 수료 후 번역가가 되었다. 옮긴 책으로는 『전류전쟁』, 『말하는 나무들』, 『뉴로제너레이션』, 『휴먼 엣지』 등이 있으며, 청소년 과학 잡지 《OYLA》 번역에도 참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