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산책 - 이탈리아 문학가와 함께 걷는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가와시마 히데아키 지음, 김효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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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문화유적인문서나 에세이를 읽을 때, 특히 여행 관련 에세이 등은 예외없이 화려한 컬러 사진과 짧은 글이 우선 떠오른다.

잔해만 남았을지라도 당시의 화려함이나 웅장함 등을 자랑하는 건축물일 경우 예외없이 사진과 느낌, 그리고 미사여구를 사용해 문장 등을 채운다.

독자의 시선을 끌기에는 그것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도 <로마 산책>이라는 책 제목부터가 그렇지만 매우 여유로운 느낌의 산책에 어울리는 사진이나 삽화 등을 기대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책을 펼쳐든 순간 실망과 함께 자칫 독서 의욕마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없다.

저자의 집필 의도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후 '머리말'에서 저자가 밝힌 "시각은 무사상적이며 기억에 남기 어렵다"는 문장을 대하면서부터 생각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늑대 젖을 먹고 자란 쌍둥이 형제의 전설의 시대부터 현대까지 유구한 역사를 지닌 ‘영원의 도시’ 로마.

평생 이탈리아 문학 연구에 매진해온 저자가 로마에 머물던 경험과 풍부한 지식, 교양을 담아 우리를 생생한 로마의 거리로 안내한다.

저자와 함께 분수의 물소리를 따라 곳곳의 유적을 찾아가고 포석이 깔린 거리와 광장으로 발길을 옮기다 보면 로마의 끝없는 매력의 원천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대목에서 독자는 드디어 이 책을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에 빠져든다.

로마에 대한 애정을 가득 담아 로마 거리 곳곳을 산책하는 그의 발걸음은 선명한 사진이나 영상 없이도 우리의 상상력과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로마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거리마다 담긴 흥미롭고 오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든든한 로마 여행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로마는 경이와 매혹이 가득한 도시이다. 세부적인 아름다움에 이끌리기 전에 켜켜이 쌓인 시대 전체를 바라보자.

붐비는 거리를 뒤로하고 오르막길을 오른다. 이윽고 태고에는 신역(神域)이었던 캄피돌리오 언덕에 서면 소용돌이치며 지나가는 고대와 근대의 바람이 뼛속 깊이 느껴질 것이다. < p.10 >

캄파냐 로마나의 풍경 속을 지나온 여행자가 밀비오 다리를 건널 때면, 전투에 패배하고 끝내 강물에 휩쓸려 목숨을 잃은 막센티우스 황제의 고사(312년)가 떠오를 것이다. 그 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그리스도교를 공인했다.

밀비오 다리를 건넌 여행자들은 일직선으로 뻗은 플라미니아 가도(지금의 플라미니아 거리)를 통해 성문(지금의 포폴로 성문)에 닿는다.

로랭, 푸생, 괴테, 스탕달, 안데르센 등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에서 ‘영원의 도시’로 입성했다. < p.54 >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의 성벽은 약 2,000년에 걸쳐 로마의 역사를 수호하는 중대한 구실을 했다.

과연 요즘 시대에 성벽만큼 보수적인 건축물도 없을 것이다.

피로 얼룩진 전쟁의 무대였던 성벽이 마치 흘러간 세월의 증인이라도 되는 양 우리 앞에 가로놓여 있다.

하지만 성벽만이 아니다. 성벽 안쪽의 거리와 광장에서도 수많은 이들이 피를 흘렸다. 로마의 거리를 걷다 보면 저도 모르게 되살아나는 역사의 기억과 함께 포석 사이에 스며 있는 피의 흔적을 떠올린다. < p.105 >


책은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 궁금한 부분부터 읽어도 문제없는 구성이다.

그런데 저자의 머리말에서 밝힘과 달리 그렇게 아름다운 로마를 그리면서도 정작 로마의 사진은 흑백이라는 점이 못내 아쉽다. 매체에서 보였던 이미지 때문인지 몰라도, 순례길 하면 스페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순례길은 여러곳을 차례로 방문하거나 종교적으로 의미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참배하는 길을 뜻한다.

로마에도 순례길이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유명한데 저자는 순례자들의 입장과는 달리, 로마에 살 곳을 정해서 인지, 순례길이라기보단 성당을 중심으로 한 오벨리스크에 대해 더 깊은 설명을 한다.

순례자들의 길잡이 역할을 위해 세워진 오벨리스크는 순례자들의 이정표 역할을 하는데, 이는 오벨리스크의 높이가 기단을 포함해 36.5m로 하늘을 찌를 듯한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교황 식스투스 5세가 재위하는 기간 이 오벨리스크는 4개가 더 세워진다. 그리고 현재 로마에는 그보다 많은 14개의 오벨리스크가 있다.

오벨리스크가 세워진 당시의 역사적인 부분에 초점이 맞춰진 글은 로마를 방문한 적이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어렴풋한 상상력을 더하게 한다. 읽으면서 줄곳 드는 생각이지만, 책을 사진없이 읽기란 어려울 듯하다.

로마에 한번이라도 방문한 사람이 아니고선 글로써 로마의 풍경을 상상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로마의 풍경에 매료된 사람들의 일부가 로마를 찾게 되는데, 이는 영화속의 풍경이나 잡지, 도서, 사진 등등에 영향을 받아서일 것 같다.

로마를 그리는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대부분은 사진과 함께 로마를 그린다.그래서인지 몰라도 책의 구성에서 사진이 더 많이 할애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아마도 로마를 그리는 이 책이 더 수월하게 읽힐 것이다)


작가의 로마 사랑은 건축물과 환경에 있는 것 같다. 책의 대부분이 역사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 역사에서 꾸준하게 건축물을 설명하고 있다.

지도를 보면서도 작가의 글을 읽고 로마의 거리와 언덕, 로마의 도시를 상상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장애가 되는 부분이었다. 로마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어렵게 느껴지는 내용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미 전술한 대로 이 책은 로마를 그리지만, 로마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조금은 지루하고 집중하기 힘들다는 느낌을 주기도 할 것이다.

저자가 머릿말에서 밝히듯, 부담을 느낄만큼 전문적인 내용들이 서문에 많이 확인되기 때문이다.(그래서 분명, 로마 중급자라면 재미있게 읽힐 것이다)

유럽에 대한 동경이 있지만, 선뜻 그곳을 찾아갈수 없을 때 이 책을 읽어봐도 무방하지만, 로마의 역사를 어느정도 알고 있거나 로마의 거리를 밟아본 사람이라면 더 재미있게 읽힐 책이었다.(여행서는 역시 색감이 화려한 사진을 빼놓을 순 없을 것 같다)


저자 가와시마 히데아키는 1933년 일본 도쿄 출생. 1959년 도쿄외국어대학 이탈리아어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전임강사, 조교수를 거쳐 1960년대 후반에 로마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그 후 도쿄외국어대학 교수, 명예교수로 지내다 2018년 별세했다.

저서로는 『서사시의 정신』, 『이탈리아를 둘러싼 여상』, 『웅가레티』, 『세계의 역사와 문화 이탈리아』(감수), 『이탈리아 ? 유대인의 풍경』, 『돌아오는 여름날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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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사색노트 - 날마다 새로운 하루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최종옥 옮김 / 책이있는마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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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시작될 땐 누구나 일년짜리 한 권의 노트, 구체적으로 한 권의다이어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한 해 해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적고, 실천을 체크하고 개선점을 도출해내고 하는 수첩이다.

작년말쯤 해마다 그렇듯이 일반 업무용 다이어리가 주어졌고, 별 일 없으면 일년 이용이 가능한 메모만 적어나갈 참이다.

올해는 좀 특별한 다이어리가 주어졌다. 바로 이 책 『톨스토이 사색노트』다.

업무용 노트는 말 그대로 업무 관련 메모만 적어나가면 그만이다. 이 노트엔 업무 외 개인적인 다이어리로 사용할 생각이다.

그걸 위해 제작된 노트라고 생각하고, 받아서 살펴보니 예상보다 훨씬 좋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이 노트 한 권을 다 채워나갈 때면 확인될 것 같다.

중간 중간 체크할 때 개선점을 그때 그때 적고, 잘 살피면 훌륭한 <인생노트>가 될 것 같다.


위대한 문호 톨스토이의 생각처럼 인생을 살 수는 없지만 따라가는 삶은 가능할 터다. 누구나...

이 노트는 이 같은 사람을 위해 잘 마련된 다이어리이자 사색하는 삶을 위해 편집된 멋진 책이기도 하다

특히 전에 펴냈던 『톨스토이 인생노트』를 모르고 있었다는 게 부끄럽고 안타깝다.

그러나 이렇게 멋진 삶을 위한 노트가 이제라도 내게 돌아온 행운에 감사하고 충실히 이 노트를 채워나갈 생각이다.

최소한 일년이라도 톨스토이의 지혜와 삶에 대한 충고에 충실한 삶을 살게 됐다는 안도감도 만족감을 더해준다.

책을 쭉 훑어본 결과 7개 항목에 꼼꼼히 적어둔 사색이 눈에 확 띄고 하루하루가 행복해질 멋진 문장이 많다.


출판사에 따르면 이 책 『톨스토이 사색노트』는 우리나라에서 『인생독본』으로 널리 알려진 톨스토이의 『독서의 고리』에서 주옥같은 글을 가려 뽑은 책이다.

이 책에 실린 인용문구들은 톨스토이가 섭렵한 수많은 작품이나 전집에서 삶의 지침이 될 만한 글을 추린 것이다.

톨스토이가 이 책을 쓴 목적은 단순히 위대한 사상가들의 글을 옮기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일반 대중들이 매일매일 쉽게 읽고 접하여 그들의 위대한 지적 유산들을 활용하자는 데 있다.

톨스토이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그가 이 책을 저술하면서 경험했던 그 지혜롭고 고양된 감정을 맛보기를 바랐던 것이다.

알고보니 이번에 <책이있는마을>에서 펴낸 『톨스토이 사색노트』는 재작년 말에 펴낸 『톨스토이 인생노트』와 쌍둥이 책이다.

전작이 삶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좀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지침이 되는 글에 중점을 두었다면, 『톨스토이 사색노트』는 내 안의 나를 관조함으로써 하루하루 충만한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글에 중점을 두었다.


인생, 길지 않다. 오래 살아야 백 년이다.

이 짧은 생애에 우리는 수많은 갈등과 번민과 정신적 혼란을 겪는다.

우주의 티끌만도 못한 존재인데 이 번다한 정신의 소요는 크기를 알 수 없는 우주만큼이나 크고도 무겁게 다가온다.

결국 인생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외면적인 성취보다는, 거울 닦듯 마음을 닦고 닦아 투명하고 맑게 유지하는 것이 정답인 듯하다.

살면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신과 싸워 이기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는 더없이 소중한 자산이지만 가장 경계해야 할 적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신을 곧추세우는 것도 결국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여기 『톨스토이 사색노트』가 정신의 뿌리를 깊이 내리는 데 조금은 도움을 줄 것이다.


독자들은 사상가들의 삶의 정수가 담긴 한 줄의 글을 통해 삶의 가치를 확인하고 긍정의 힘을 얻는 한편, 독자들을 위해 마련한 노트에 내면에서 울려 나오는 마음의 소리를 기록하고 정신을 다잡음으로써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힘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톨스토이 사색노트』는 자신을 성찰하고 나아갈 길을 모색해볼 수 있는 최고의 책이다.

위대한 사상가들이 남긴 촌철살인의 글을 읽고 ‘나’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좀 더 나은 삶을 꿈꿔보자.

뻔한 인생이란 없다. 어디에 핀들 꽃이 아니랴. 그러니 마음밭에 꽃씨를 뿌리자.

어김없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마침내 열매를 맺을 것이다.

『톨스토이 사색노트』는 참된 지혜, 선(善), 도덕, 사랑, 지식의 탐구 등 무릇 인간이라면 한번쯤 고뇌했음직한 삶의 화두를 제시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정신을 더욱 가다듬어 고양된 감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길라잡이 구실을 하고자 기획한 책이다.

제목을 ‘사색노트’라고 명명한 것도 그런 취지를 살리기 위함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인생의 법칙이다. <p. 198>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행동만 믿는다. <p. 256>

아직도 남들의 시선에 좌지우지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즘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만들어내고, 또 다른 사람들이나 나는 그렇게 만들어진 누군가의 보이는 행동을 따른다. 위와 같은 이 문장은 오늘날이나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건 다 같구나'는 생각이 들게도 한다.

어떤 매일을 살아야 어떤 삶이 되고, 그렇게 만들어간 삶이 만나는 죽음은 또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내가 만들어가고 싶은 나의 미래를 생각하며 아침에 하나씩도 좋고, 저녁에 일기 쓰듯 다시 읽어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미래의 내 모습을 생각하면 정말로 그런 사람이 된다

인생은 단 한 번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인생은 행복한 사람에게는 짧고 불행한 사람에게는 지루하다

그날그날이 1년 중 최선의 날이다

시간이 덜어주지 않는 슬픔은 없다

우리가 할 일은 오늘이 좋은 날이며, 오늘이 행복한 날이 되게 하는 것

내일이란 오늘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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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중용이 필요한 시간 - 기울지도 치우치지도 않는 인생을 만나다 내 인생의 사서四書
신정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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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논어를 한참 공부할 때가 있었다. 교과목에 있어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읽어야겠다는 마음의 발로에서였다.

지금처럼 책이 많이 나와 있을 때도 아니고, 자세하게 풀이하고 주석까지 달아 펴낸 책은 대개 대학교재나 연구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때문에 주머니가 늘 얄팍했던 본 독자는 문고판을 사서 갖고 다니면서 한 문장, 한 문장 외우기 시작했다.

대략 문고판에 실린 것은 원문과 해설 정도였다. 약간의 주석은 머리말이 전부였다.

분량은 많지 않아 외워볼까 욕심을 내 시작했으나 이해가 안 되면서 외우는 것은 어려웠다.

특히 한문학이나 한문을 따로 배우거나 공부하지 않은 상태에서 원문을 외운다는 건 더 힘들었다.

그래도 스스로 선택했던 것이라 꽤 오랫동안 버스 통학 시간에 주로 외웠다. 결국 6개월 동안 들여다보며 암송하다 중단했다.

한문학을 공부할 것도 아닌데 너무 미련스러운 공부법인 것 같아서였다.

그래도 많은 부분이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은 살아오면서 많은 도움이 됐다.

논어는 이후 내 삶의 방향과 가치관을 설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용은 이름만 들었을 정도였다. 사서삼경 중 하나라는 정도만 알 뿐이었다.

중용은 무엇일까라는 생각도 해본 적은 있지만 막상 중용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생활 전선에 뛰어든 이후에는 "중용을 지켜라"는 얘기는 수없이 했으면서도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 말라는 견해를 전달하기 위해 입에 담는 정도였다.

"사실 중용은 좀 어려워 논어, 맹자 다음에 나이 먹어 천천히 봐도 괜찮을 거라는 예전 선생님의 조언도 있었다.

이제 와서 중용을 읽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선생님이 말씀하신 '나이 먹음'의 때가 된 것일까?

저자의 전작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을 읽고 큰 감명을 받은 이후 새 작품이다.

전작에서의 명쾌한 해석이 이번 작품에서도 그대로 묻어나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 책은 『중용』의 원문 중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영감을 선사하는 60개의 명문장을 엄선하고

우리 삶에 적용시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친절한 해설을 덧붙였다.

어떤 순간에도 기울지도 치우치지도 않는, 내 인생의 무게 중심을 잡는 법을 알려주는 이 책으로 생각의 내공을 키우는 ‘중용의 힘’을 만날 수 있다.

저자의 머리말에서 드러나듯 50이란 나이는 부모와 자식, 가정과 회사, 사장과 부하직원 사이에 ‘낀' 때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어느새 인생의 후반전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나와 타인, 나와 세상 속에서 나만의 무게중심을 찾는 것이다.



전작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으로 대한민국에 동양고전 열풍을 일으킨 신정근 교수가 ‘내 인생의 사서(四書)’ 시리즈로 8년 만에 돌아왔다.

『오십, 중용이 필요한 시간』은 ‘논어’를 잇는 시리즈의 ‘중용’ 편이다.

전작을 통해 삶의 지혜가 절실한 마흔의 독자들에게 울림을 주었다면, 이번 책에서는 여전히 흔들리며 살아가는 오십의 독자들에게 어떤 순간에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내가 되는 법, 나만의 중심을 찾고 삶의 품격을 높이는 법을 전한다.



중국 철학의 ‘사서(四書)’ 중 한 권인 『중용』은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삶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용(中庸)’이란 어느 한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현명함’, 무엇을 할 때 끝까지 고민하고 모든 방안을 검토하는 ‘치열함’,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는 ‘완벽함’의 다른 말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기우뚱하다가도 중심을 잡게 해줄 삶의 무게추”가 바로 중용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심오한 인생의 지혜가 담긴 『중용』을 쉽게 풀이하고 그 속에서 삶에 유용한 가치들을 끌어낸다.

오늘날 우리 삶에 적용되는 문장을 선별하고 원문의 의미를 바르게 풀이하여 고전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서 나아가 그 지혜를 삶에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마음껏 흔들려라. 흔들리며 중심을 잡는 것이 인생이다!”

‘중용’으로 삶의 품격을 높이는 방법

“위엄 있고 점잖고 곧고 바르니 존경받는다-재장중정(齊莊中正)”

“방구석에서조차 부끄럽지 않네-불괴옥루(不愧屋漏)”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화하고, 치우치며 혼란하더라도 나만의 무게중심을 지키면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오십, 중용이 필요한 시간』은 『중용』의 지혜로 인생의 품격을 높이는 법을 일러준다.

최선의 판단이란 무엇일까? 나이를 먹어갈 수록 내가 경험한 삶의 지혜가 무조건 옳다고 믿으며 자신의 생각에만 갇혀 있기 쉽다.

하지만 그럴수록 일의 극단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누구든 틀릴 수 있음을 잊지 않고 남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 (‘사태의 두 극단을 다 고려하라-집기양단(執其兩端)

중용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융통성이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며 엄격하기만 하면 멀어질 수 있으므로 너그러움을 갖추는 것, 평가의 기준이 획일적이다 보면 반발이 생길 수 있으니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 바로 이런 것이 책에서 말하는 ‘중용’이다. (‘담박하지만 물리지 않는다-담이불염(淡而不厭)

그렇다면 『중용』에서 말하는 품위 있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상황에 끌려 다니며 아등바등하지 않고 상황과 늘 거리를 두며 자신의 인생을 살찌우는 사람(‘위험을 무릅쓰면서 행운을 바라다-행험요행(行險僥幸),

자신을 무리하게 드러내지 않으며 나날이 은은하게 빛나는 사람(‘비단옷 입고 홑옷을 걸치네-의금상경(衣錦尙絅),

아랫사람을 업신여기지 않고 윗사람을 끌어내리지 않는 사람(‘윗자리에 있으며 아랫사람을 깔보지 않다-재상위불릉하(在上位不陵下).

이런 사람이 바로『중용』에서 말하는 군자다.

이처럼 이 책에는 한 차원 깊은 통찰과 삶의 내공을 키우는 지혜가 담겨 있다.

50을 앞둔, 혹은 50을 가로지르고 있는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앞으로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기획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중용』 하면 평온하고 차분한 이야기가 나오리라 예상할 수 있다.

『중용』은 극단이 판을 치는 ‘소은행괴’의 세상에서 주위에 널려 있고 누구라도 실천할 수 있는 평범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있다.

쉰의 나이도 조명이 쏟아지는 특별하고 화려함보다 공기처럼 편안하고 일상처럼 부담 없는 보통에 다시 눈이 가는 때다.

보통이 결국 오래가기 때문이다. 『중용』과 쉰의 나이는 평범함에서 잘 어울린다. <p.21>

자기주도적 삶을 살아가는 군자라면 먼저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 밖의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는다. (…) 내가 놓이는 상황마다 충실하게 살다 보면 거기서 배울 것은 배우면서 경험을 풍부하게 하고 주위 사람을 이해하며 삶의 근육을 키울 수 있다.

이에 자신이 처한 상황에 압도되어 어찌할 줄 모르며 아등바등하지 않는다.

자신은 상황에 놓여 있지만 그 상황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신을 조금씩 가꾸며 인생을 살찌울 수 있다.

< p.32~33>



할 말을 딱 부러지게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하면 얼마나 고상하고 멋진가.

할 행동을 제때에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하면 얼마나 우아하고 멋진가.

마이크 잡으면 놓을 줄 모르고 상황 파악을 못하고 상식 없이 굴면 말과 행동이 모두 화를 부르게 된다. 화근이 된다.

언행상고는 언행이 화근보다 예술이 되게 하는 지침이다. <p.94>

마음도 확고하게 기준이 서 있으면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복잡해서 머리가 아플 수는 있지만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하지 않는다.

이것이 마음의 중심이고, 그 중심을 잡는 힘이 마음 근육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이 확고하게 중심을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중용』만큼 마음 근육의 중심을 잡는 문제를 두고 고민한 책이 없다. <p.104>

도대체 무엇이 하루 몇 분이라도 자신을 돌이켜보지 못하게 할까? 그것은 바로 일상의 비정상화다.

우리가 일상을 정상으로 돌려놓으려면 시간에 맞춰 살 것이 아니라 시간을 이끌어가며 살 필요가 있다.

먼저 하루 얼마의 시간이라도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자. 아울러 내가 무엇을 하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살펴보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안에 불빛을 비춰 부끄러워할 것이 있는지 살펴보자. 마음은 숨길 곳이 아니라 자주 들여다봐야 할 곳이다. < p.124>



부모가 자식을 엄격하게 키우다 보면 사이가 다소 멀어질 수 있으므로 너그러울 필요가 있다. 이것이 바로 자식을 키울 때의 중용이다.

평가 기준이 획일적이다 보면 경우에 따라 가혹한 일이 생길 수 있으므로 융통성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평가할 때의 중용이다.

경험이 많다는 것을 강조하다 보면 섬세하지 못하고 놓칠 우려가 있을 수 있으므로 꼼꼼한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능력을 균형 있게 키울 때의 중용이다. <p.167~168>

내게 진실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해 『중용』에서는 ‘스스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해법을 내놓는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아야 나 자신에게 진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p.204>

『중용』에서는 주위 사람이 한 번 해서 성공하면 나는 백 번 시도하고 주위 사람이 열 번 해서 성공하면 나는 천 번을 하라고 제안하고 있다.

숫자로 보면 주위 사람보다 적어도 백배 이상의 노력을 하라는 말이다.

이때 백배는 단순히 횟수나 양이 아니라 무슨 일이든 내게 익숙해져서 내 것이 되는 시간을 가리킨다. (…)

이렇게 사람마다 도달하는 시간이 다르니 일찍 이루는 남과 비교해서 서둘러 포기하지 말고

내게 맞는 시간과 길을 찾으라는 맥락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p.211>



대팽두부과강채(大烹豆腐瓜薑菜) 가장 좋은 반찬이란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고

고회부처아녀손(高會夫妻兒女孫) 가장 좋은 모임이란 부부, 아들딸, 손주라네.

김정희가 71세 때 쓴 예서체 대련이다. 71세라면 세상에서 맛있다는 음식 다 먹어보고 세상에서 이름난 모임에 다녀보았을 터이다.

노년에 다시 돌이켜보니 늘 곁에 두고 먹는 일상의 소박한 음식이야말로 가장 맛있는 음식이고,

아무런 긴장 없이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는 가족이야말로 가장 좋은 만남이란 사실을 새삼 알게 된 것이다. 평범한 일상의 발견이다.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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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 2019-12-30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어요~
 
흔들리는 서울의 골목길 - 밀레니얼과 젠트리피케이션
경신원 지음 / 파람북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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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을 읽고 싶은 이유가 매우 사소했다. 상권의 변화에 따른 서울의 변화된 골목길 등을 소개해주는 책쯤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시계획이나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단어도 전혀 몰랐고,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됐다.

또 어떻게 도시의 변화가 이루어지고, 어떻게 바람직하게 변화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도 처음 하게 됐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전혀 예상치 못한 지식을 얻은 것이다. 공동체 의식을 향상시킨 것이다.

서울에 수십 년 사는 사람으로서 서울의 발전에 대해 최소한 고민하고 협력해야 하는 공동체 의식이 가슴에서 싹튼 것이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되어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유입됨으로써 기존의 저소득층 원주민을 대체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지주계급 또는 신사계급을 뜻하는 젠트리(gentry)에서 파생된 용어로, 1964년 영국의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Ruth Glass)가 처음 사용하였다.

글래스는 런던 서부에 위치한 첼시와 햄프스테드 등 하층계급 주거지역이 중산층 이상의 계층 유입으로 인하여 고급 주거지역으로 탈바꿈하고, 이에 따라 기존의 하층계급 주민은 치솟은 주거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여 결과적으로 살던 곳에서 쫓겨남으로써 지역 전체의 구성과 성격이 변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이 용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저자의 의도는 명확하다. 자본주의의 성장 이후 전 세계적 현상이 된 젠트리피케이션은 한국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고, 우리는 이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까?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어떤 사람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을까?

서울에서 자라 서울을 소비하는 새로운 소상공인들, 그들과 같은 취향을 공유하는 새로운 소비자는 누구인가?

베이비부머의 자녀 세대인 밀레니얼이 몰고 온 오래된 골목길의 새로운 변화, 그 변화의 중심인 이태원에서 서울의 미래를 묻는다.

즉 아름답고 풍요로운 도시, 매우 미래지향적이고 공동체 의식이 넘치는 서울의 모습을 그리는 데 있다고 생각된다.


저자에 따르면 주택시장과 사회 계층의 변화로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개념이 처음 생긴 서구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건물주의 임대료 폭리와 상권에서 내몰리는 세입자’라는 상업적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하는 방식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이 일반에 소개되었다.

오늘날 젠트리피케이션은 아시아와 남미까지 전 지구적 현상이며 도시마다 나타나는 양상이 다양한데, 우리의 경우 주거시설을 카페나 레스토랑 등의 상업시설로 바꾸는 오래된 구도심의 상업화를 중심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홍대 일대에서 시작된 주거지역의 상업화 현상은 2000년대 중반 급속하게 증가해 이태원, 연남동, 연희동, 부암동, 상수동 등으로”(17P) 확산되었다.

그렇다면 이 책 『흔들리는 서울의 골목길』은 우리나라에서 두드러지는 상업적 젠트리피케이션의 이유를 무엇으로 분석하고 있을까?

저자는 서울이라는 도시 공간에 중산 계층이 거주하고픈 매력을 느낄 만한 역사성을 가진 건축물이 많이 남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2015년 전체 인구 가운데 아파트에 거주하는 인구비율은 59.9%, 도시에 거주하는 인구비율을 91.8%에 달하며,

저자는 그 원인으로 한국전쟁 이후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 그리고 이러한 현상을 가능하게 한 정치권력과 재벌, 부동산 투기라는 세 가지 요인을 꺼내놓는다.


젠트리파이어, 새로운 소상공인 계층의 활동을 알아보기 위해 저자는 서울 안에서 가장 이국적인 동네이자, 낙후된 동네에서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이태원’의 변화를 집중 조명하였다.

1980년대에는 외제 모조품이나 보세 옷가지를 팔던 동네, 주한 미군을 상대로 한 클럽이나 바가 많았던 낯설고 위험한 지역, 이태원. 이곳에 주한 미군의 발길이 줄어들자 성소수자 공간이 생겨났고,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이 몰려오면서 이국적이고 특색있는 카페나 레스토랑이 속속 들어섰다.

2000년 중반에는 이렇게 형성된 외국 문화를 즐기기 위해 수많은 내국인들이 이태원으로 몰려들었다. 2010년 이후 이태원의 변화는 더 빨라졌다.

“대로변뿐만 아니라 우사단로, 회나무길, 경리단길 등이 20~30대 밀레니얼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골목을 따라 빠르게 확산되”(69P)었고,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면서 젠트리피케이션 또한 빠르게 이루어졌다.

이태원의 젠트리피케이션은 ‘1. 임대료가 저렴한 오래된 골목길의 낡은 단독주택 증개축 증가 2. 유동인구의 증가 3. 지가 및 건물가의 상승 그리고 취득세와 재산세 증가’의 단계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원주민과 낡은 골목길의 변화를 이끌었던 선구적 젠트리파이어에게 마냥 좋은 일이 아니었다.

임대료가 상승했을 뿐 아니라 주민등록인구가 감소하였고, 외국 음식점과 의류점이 증가하면서 오랫동안 이 골목을 지켜왔던 세탁소나 동네 마트, 미용실 등 근린시설이 줄고 말았다.


젠트리파이어, 새로운 소상공인 계층의 활동을 알아보기 위해 저자는 서울 안에서 가장 이국적인 동네이자, 낙후된 동네에서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이태원’의 변화를 집중 조명하였다.

1980년대에는 외제 모조품이나 보세 옷가지를 팔던 동네, 주한 미군을 상대로 한 클럽이나 바가 많았던 낯설고 위험한 지역, 이태원. 이곳에 주한 미군의 발길이 줄어들자 성소수자 공간이 생겨났고,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이 몰려오면서 이국적이고 특색있는 카페나 레스토랑이 속속 들어섰다.

2000년 중반에는 이렇게 형성된 외국 문화를 즐기기 위해 수많은 내국인들이 이태원으로 몰려들었다. 2010년 이후 이태원의 변화는 더 빨라졌다.

“대로변뿐만 아니라 우사단로, 회나무길, 경리단길 등이 20~30대 밀레니얼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골목을 따라 빠르게 확산되”(69P)었고,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면서 젠트리피케이션 또한 빠르게 이루어졌다.

이태원의 젠트리피케이션은 ‘1. 임대료가 저렴한 오래된 골목길의 낡은 단독주택 증개축 증가 2. 유동인구의 증가 3. 지가 및 건물가의 상승 그리고 취득세와 재산세 증가’의 단계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원주민과 낡은 골목길의 변화를 이끌었던 선구적 젠트리파이어에게 마냥 좋은 일이 아니었다.

임대료가 상승했을 뿐 아니라 주민등록인구가 감소하였고, 외국 음식점과 의류점이 증가하면서 오랫동안 이 골목을 지켜왔던 세탁소나 동네 마트, 미용실 등 근린시설이 줄고 말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런던 사람들은 더 나은 거주 환경을 찾아 런던 외곽지역으로 이주했다.

이러한 ‘교외화(Suburbanization)’로 인한 ‘도심공동화(Urban hollwoing phenomenon)’가 활발하게 이뤄진 1960년대에, 사회의 관습에 구애되지 않는 진보적이고 보헤미안적인 예술가, 문학가, 배우, 지식인 계층이 임대료가 저렴한 노동자 계층 지역에 들어가 노후된 건물을 새롭게 복원하고 주거환경을 쾌적하게 변화시켰다. 그러자 지역의 임대료가 점차 상승하였고,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는 노동자 계층이 밀려나게 되었다. <p.16>

밀레니얼의 아날로그적 감성은 강남 개발로 외면받던 강북의 낡고 좁은 골목길을 핫플레이스로 바꾸었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서 인기를 끈 핫플레이스는 대부분 개발이 제한되거나 느리게 이뤄져 예전의 모습을 간직한 강북의 골목길에 있다.

밀레니얼은 강남의 매끈한 건물이 주는 느낌보다 오래된 골목길의 낡은 주택에서 빈티지한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 이러한 주택을 자신의 취향에 맞춰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시킴으로써 ‘내 스타일’의 사업을 꾸려간다.

또한 ‘나만 아는’ 상품과 장소 혹은 ‘나와 관심사’가 유사한 사람들을 발견하는 일에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며, 비주류의 문화 경제적 활동을 주목하고 지지한다. <p.23~30>


2000년대 중반 이후 20~30대 밀레니얼은 자신들이 경험한 이태원 골목의 핫플레이스들을 SNS를 통해 발 빠르게 공유하고 확산했다.

이태원을 방문하는 사람뿐 아니라 이곳에서 사업하려는 사람도 늘어났다.

오래된 골목길의 낡은 건물들이 증개축을 통해 카페나 레스토랑, 부티크로 하루가 다르게 바뀌었다.

이러한 상업 시설과 유동인구 증가는 공시지가를 상승시켰고, 재산세와 취득세도 덩달아 증가했다.

지자체와 건물주 입장에서는 이태원의 골목길에 나타난 변화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윈윈 시추에이션’이 되었다. <p.80>

우리는 과도한 임대료를 부과하는 ‘욕심 많은’ 건물주를 비난한다.

그렇지만 이 비참한 결과의 원인이 과연 전적으로 ‘조물주보다 더 위에 있다는 건물주’에게만 있는 것일까?

우리 사회에서 건물주가 어떻게 조물주보다 더 위에 있을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이들이 자본주의 논리에 의한 시장의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부동산에 대한 우리 사회의 뜨거운 열망 때문이다.

우리는 건물주를 욕하면서도 내심 이들이 소유한 부동산을 부러워한다. (…) 우리 사회에 아직도 경제적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미비한 것은 우리가 모두 건물주가 되기를 꿈꾸기 때문이 아닐까? <p.154~155>


밀레니얼은 기존 세대가 우려하는 바처럼 단지 자기중심적이고 인내심이 부족하고 불평과 불만이 많은 세대만은 아니다. 그들은 기존의 어떤 세대보다 공익에 관심이 많다.

세계의 환경 문제와 빈곤 문제 등에 기꺼이 동참하며, 더욱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세대다.

기존 세대의 소비만능주의와 물질만능주의의 폐해를 지적하고 미니멀리즘과 공유경제를 이야기하는 세대다. (…) 지금은 저성장의 시대다.

미국의 유명한 경제학자이자 하버드 대학교 교수인 마틴 와이츠먼은 1980년대 미국 경제의 스태그네이션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공유경제의 개념을 처음으로 이야기한다.

저성장시대의 포스트 밀레니얼 세대가 살아갈 서울의 미래 모습 또한 자신의 소유를 남과 공유하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선한 개발’이나 ‘참한 도시’ 같은 도덕적 로망에 사로잡힌 이야기가 아니다.

나와 너가 공존하려면, 각자가 아닌 ‘우리’의 유익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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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읽는 아리아 - 스물세 편의 오페라로 본 예술의 본질
손수연 지음 / 북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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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첫 느낌은 '아름답다'이다. 책이 아름답다는 뜻보다는 문자와 소리와 색이 어우러진 예술품을 대한 것 같다는 의미다.

이 책에 실린 스물세 곡의 아리아와 스물세 편의 그림에서 내가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은 아름다움이다.

하긴 오페라 감상은 지금까지 10편을 넘지 못한 주제다. 그러나 거기서도 소리와 사람 몸짓, 동작 등에서 아름다움을 느낀 적이 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아리아의 주인공에 대한, 오페라의 등장인물에 대한, 그림 속 인물에 대한, 화가와 작곡가

그리고 그들의 운명에 대한 측은한 마음으로 가슴이 아팠던 적이 많았다. 것은 인간에 대한 연민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저자는 에필로그나 책 곳곳에 '연민'을 말하고 그리고 있다. 그런 면에서 저자의 의도에는 못 미치지만 나름대로의 감상이다.

저자의 말대로 버트런드 러셀이 자서전에서 말한 것처럼, 오페라 아리아와 그림은 내게 천국을 보여주었지만

그 안에 존재하는 연민은 다시 저자 자신을 지상으로 내려오게 했다.

인간과 존재에 대한 연민은 예술의 본질에 한걸음 더 가까이 가게 했다고 고백한다.


Aria 01 에우리디체 없이 어찌 살리오?

Aria 02 그리운 그 이름, 내 마음 가운데 자리한 그 이름

Aria 03 오묘한 조화로다 23

Aria 04 오늘밤 산들바람이 부는 소나무 아래로 오세요, 편지의 이중창

Aria 05 축배의 노래

Aria 06 미쳐버린 나약한 그녀의 노래, 광란의 아리아

Aria 07 어떤 갠 날

Aria 08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Aria 09 의상을 입어라

Aria 10 달에게 보내는 노래

Aria 11 저 타오르는 불꽃을 보라

Aria 12 내 이름은 미미, 봄날의 첫 햇살은 제 것이에요

Aria 13 그녀는 나를 사랑한 적이 없네

Aria 14 아, 믿을 수 없어라. 꽃이여 이렇게 빨리 시들 줄이야

Aria 15 이 천벌 받을 가신놈들아!

Aria 16 사랑의 괴로움, 그대는 아시지요?

Aria 17 그렇다면 저는 먼 곳으로 떠나겠어요. 성스러운 종소리가 저 하얀 눈 사이로, 저 황금빛 구름 사이로 메아리쳐 사라지듯이

Aria 18 내 운명의 여인이여!

Aria 19 5월의 아름다운 어느 날처럼

Aria 20 아씨, 제 얘기 좀 들어보시라니까요?

Aria 21 나는 꿈속에 살고 싶어요

Aria 22 프로방스의 바다와 대지


이 책의 소제목을 일일이 소개하는 건 아리아의 제목부터가 아름다움과 무관치 않아서다. 심지어는 외로움과 처절함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길지 않은 책을 다 읽고 난 후 곧바로 다시 천천히 그림 위주로 읽고 아리아 제목과의 연관성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매우 깊은 사색을 할 수 있었고, 감동도 꽤 있었다. 음악에 대한 새로운 애정도 커졌다. 시나 오페라, 미술 등 모두 예술이다. 창작이 있고, 대중에게 전해졌을 때 감동도 주고 아름다움도 느끼게 해준다. 인간의 수많은 감정의 응어리를 정화시켜 주는 역할도 예술이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문자로, 소리로(읽다 보면 머릿속에 소리가 맴돈다), 눈으로 창작 예술품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해준다. 멋진 일이다. 책을 선택해 읽은 보람도 느낀다.


끝으로 저자의 에필로그를 겸한 설명을 들어본다.

"이번 작업에서 찾은 아리아와 그림 사이의 접점은 ‘연민’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사랑한 많은 아리아의 주인공들은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 했다.

그리고 그 아리아에 공명했던 그림 속 인물이나 화가들의 삶 역시 불행했던 경우가 많았다.

이런 가련한 인생의 행로를 보면서 느꼈던 안타까움과 페이소스를 스물세 편의 에세이에 담았다.

오페라 [리골레토]에서 느꼈던 리골레토의 울분과 비원을 우리 화가 이중섭의 그림 [흰 소]에서 보았고,

[나비부인]에서 흐르던 초초상의 애타는 절규가 모네의 그림 속에서 그저 아시아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으로 소비된 것은 씁쓸한 일이었다.

이렇게 아리아와 그림을 하나의 공간 속에 두고 있노라면 오페라의 등장인물 혹은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미처 못다한 이야기를 아리아는 그림이, 그림은 아리아가 대신 전해주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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