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뇌과학 - 이중언어자의 뇌로 보는 언어의 비밀 쓸모있는 뇌과학
알베르트 코스타 지음, 김유경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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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뇌는 신의 영역이다"는 말을 TV에 나온 어떤 의사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뇌신경의 이상으로 판단하는 치매(알츠하이머), 파킨슨씨병과 외부 충격으로 인한 뇌신경 손상으로 운동감각이나 언어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를 설명하던 자리였다. 아마 의술로 완전히 파헤치지도, 장악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 주위에서 많이 발생하는 치매도 완전한 치료제는 아직 없고, 병세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정도의 약만 개발된 상태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끊임없는 노력과 인간의 능력으로 머잖아 치료법이나 치료제 개발에 성공할 것이다는 예상도 잊지 않았다. 이 정도의 의학 발전을 이룬다면 아마 인간은 이 세상 창조주과도 맞서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흔히 뇌 과학으로 불리는 인간의 뇌에 대한 연구는 수백 년 전부터 이미 시작돼 왔다. 정신분석학, 심리분석학의 창시자로 불리우는 프로이트, 칼 융 등의 의사부터 제약회사 연구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노력을 계속해왔다. 의학계의 노력과 능력으로 결국 뇌신경 이상의 병은 치료제를 얻겠지만 지금은 그간의 노력으로 얻은 약이나 치료 방법 외에 뾰족한 수단이 없는 상태다.





우리 뇌는 워낙 복잡하게 이루어져 있는 데다 다른 장기와 달리 예민하기도 해서 연구가 더딘 이유 중의 하나이다. 우리 삶의 전부를 관여하는 뇌는 학자들의 연구로 “어떻게 하나의 뇌에 두 언어가 공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게 됐다.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이 이 책의 저자 알베르트 코스타다.

저자는 사람은 어떻게 말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이미 연구된 토대), 또 일상에서 2개 국어 이상을 사용하는 경우 뇌가 어떻게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할까를 알아내는 데 몰두했다. 저자는 말의 생산성과 이중언어 사용에 대해 20여 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이끌고, 저명한 과학 저널에 150편 이상의 글을 기고해왔다.

그 결과를 집대성해 그리 어렵지 않은 표현으로 『언어의 뇌과학』을 썼다. 널리 알리고 더 많은 관심과 열정으로 연구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기 바라는 취지에서다.

이 책은 우선 언어 사용과정에서 주의력과 학습능력, 감정, 의사결정 등과 같은 인지 영역과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를 최신 연구 사례를 통해 밝히고 있다.

저자 본인이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가정에서 태어나 동일한 환경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경험한 생생한 깨달음이 뇌과학과 심리학, 사회학적인 지식과 어우러져 시종일관 신선하고 즐거운 지식 여행으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책에 따르면 아기들을 보면 그저 먹고 자는 일이 전부인 것 같지만 수많은 연구는 생후 몇 개월이 안 된 아기들도 언어에 관해 매우 정교한 지식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심지어 생후 5일도 안 된 신생아들도 정상적인 언어와 비정상적인 소음을 확실히 구분한다고 밝힌 연구도 있다. 그리고 두 언어 사용 가정에서 태어난 아기(4~6개월)는 말하는 사람의 영상만 보고도 그들이 무슨 언어로 말하는지 구별할 수 있다.

아이가 비록 말을 시작하기 전이라도 그들의 뇌는 주변에서 흡수하는 정보를 계속 처리하는 중인 것이다. 이렇듯 아주 어릴 적부터 뇌와 언어는 상호 작용을 통해 서로에게 긴밀하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또 감정에 치우친 상황에서는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아야 함을 우리는 안다. 감정 부담이 큰 상황에서는 이성보다는 직관을(즉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퉁치는’) 따르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신중하고 이성적인 판단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외국어를 사용하면 감정으로 발생하는 영향력을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일견 의사소통이 훨씬 제한된 외국어를 사용하여 중요한 결정을 시도한다면 치밀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세계적인 학자들의 여러 연구를 통해 이것은 사실임을 입증했다.

외국어는 의사결정에서 ‘감정’의 역할을 최소화함으로써 이성적 판단이 제 역할을 발휘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넬슨 만델라는 40년간 차별 정책으로 자기 민족을 괴롭힌 식민국 언어인 아프리칸스어를 배우면서 이런 말을 했다.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한다면 그 대화는 상대방의 머리로 간다. 상대방의 언어로 말한다면 그 대화는 상대방의 가슴으로 간다.” 만델라도 모국어를 고집하며 그들을 상대해서는 그들의 가슴에 호소하는 말을 꺼낼 수 없음을 안 것이다.

이 책은 과학적 도구와 연구의 발전으로, 그저 ‘블랙박스’의 영역이었던 뇌와 언어활동이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는지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단순히 뇌의 특정 영역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언어 사용과정에서 주의력과 학습능력, 의사결정, 감정 등의 인지 능력과 어떤 관계를 갖고 상호작용하는지를 일상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중언어 분야의 세계적인 학자인 저자는 2개 국어를 능숙하게 처리하는 것을 저글링하는 곡예사에 비유한다. 대화하면서 한 언어에 집중하면서 다른 언어와 섞이는 것을 통제하려면 신경을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냥 저절로,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다.

학자들은 이중언어자들은 두 개의 언어가 ‘동시에’ 활성화되어 언어 사용을 서로 방해한다고 말한다. 스위치 끄듯이 하나를 끄고 하나만 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두 언어를 사용하는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는 많은 혼란을 겪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다. 언어 발달이 늦거나 심지어 둘 다 제대로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다. 하지만 안심해도 좋다. 연구에 따르면 아무 문제도 없다. 시작이 조금 늦을 수는 있지만 둘을 모두 잘 해낼 것이다.



1장은 아주 어린 아이들이 둘 이상의 언어가 쓰이는 환경에 처하게 되면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부분이다.

생후 1년이 채 되지 않은 아이들의 이야기도 듬뿍 들어있어 신선하기도 했고, 그때부터 언어에 관한 습득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에 놀라울 뿐이다. 아무리 어린 아이들도 아빠랑 엄마가 다른 언어를 사용할 경우 그것을 구분한다고 한다. 음성을 통해 전달되는 구어체 언어의 경우 각 언어마다 특색이 분명한데, 이러한 특색들을 아이들은 생각보다 빨리 알아채고 습득한다니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귀중한 존재임이 틀림없는 것 같다. 심지어 엄마가 임신 중일 때도 듣는 소리를 태아는 구분한다는 데 놀라움을 넘어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아가들이 언어를 습득할 때 사람과 사회적 접촉이 일어나면서 습득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비교하게 되면 사회적 접촉이 있을 때 훨씬 잘 습득한다고 하는 점은 쉽게 설득력이 있다. 그냥 전자기기들을 이용해 소리만 나오거나 할 경우는 생각보다 학습이 일어나지 않고, 교사나 부모와 사회적 접촉이 있을 때 유의미한 정도로 높은 습득률을 보인다고 한다. 뇌 과학에 관한 책을 처음 읽는 독자에게는 신기하기만 하다.




2장에서는 이중언어자의 뇌와 단일언어 사용자의 뇌가 어떻게 다르게 작동하는지 몇가지 항목으로 나눠 비교해준다. 신문 기사나 컬럼들을 보면 이중언어의 장단점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읽는 내용마다 다 옳은 것 같은데 주장이 다를 때는 혼란스럽기도 하다.

명확한 연구 결과도 없이 한두 개의 논문이나 자료만 가지고 하는 주장에서 비롯된 오류였나 보다. 흔히 말하는 '일반화의 오류'를 그 칼럼에서 범한 것 같다. 그것도 이 연구를 평생 해온 저자의 책을 읽고 겨우 알아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싶다.

이중언어자와 단일언어 사용자의 뇌를 촬영해 보면, 그 결과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이중언어자가 모국어를 사용할 때와 단일언어 사용자가 모국어를 사용할 때 활성화되는 부분이 비슷하다는 게 증거로 제시된다. 이중언어자가 이중언어를 말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는 모국어 때와 겹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지만, 여튼 그들이 이중언어를 구사한다고 해서 단일언어 사용자의 뇌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물론 반응속도 등에서 약간의 차이가 보이긴 하지만 그것이 유의미한 차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 연구의 중론이다.




3장은 이중언어를 하면 뇌가 어떻게 변할까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장을 읽기 전에 먼저 기억해두어야 할 것은 아직 뇌와 언어를 관련지어 진행되는 연구의 경우 기술의 한계로 인해 결론짓지 못한 문제들이 많다는 점이다. 그래도 최신의 연구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이 지극히 논리적이고 실증적이어서 믿음과 재미가 더해진다. 이중언어는 뇌에 변화를 주느냐에 대한 결론은 잠정적이지만 '아직 모른다'다.

물론 이중언어자의 뇌 구조가 단일언어 사용자의 구조와 다른 경우도 많고, 유의미한 구조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논문들도 있지만 여전히 저자는 결과가 들쭉날쭉해 일관적인 결론을 내릴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이중언어 사용이 어휘 발달에 미치는 영향은 부정적인 영향보다는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영향 쪽에 무게를 두는 것 같다.

물론 이중언어자가 단일언어자에 비해 설단현상을 더 자주 겪는다던가, 모국어의 어휘수를 비교해 보았을 때 조금 적은 단어 수준을 보여준다든가 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이중언어자의 뇌의 변화를 말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이중언어자가 단일언어자에 비해 상대방의 관점을 파악하는 능력이 높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이야기다.

뒷부분은 생략해도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이중언어자의 뇌의 변화는 관측되지 않고 상대방 관점을 파악하는 능력이 훨씬 높다는 점이다.

『언어의 뇌과학』은 과학기술의 발전 등으로 저자의 경험과 논리적 추론 능력 등을 통해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책임에 틀림없다. 독자처럼 문외한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단 한 권의 책으로 이중언어와 뇌의 관계 전부를 파악할 수는 없겠지만, 충분한 흥미와 지식을 얻고 영감마저 얻었다면 더 보람된 독서가 있을까싶다.




저자 : 알베르트 코스타


바르셀로나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를 마치고 하버드대학교와 MIT에서 연구원으로 일한 뒤 이탈리아의 국제고등연구소(SCUOLA INTERNAZIONALE SUPERIORE DI STUDI AVANZATI)를 거쳐 바르셀로나대학교로 돌아와 교수로 일했다.

“이중언어 사용이 뇌 모양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주제로 저명한 국제 과학 저널에 150편 이상의 글을 기고했고 20개 이상의 연구 프로젝트를 이끌었으며, 저명한 국제학술지인 『신경언어학 저널』(JOURNAL OF NEUROLINGUISTICS), 『인지』(COGNITION) 그리고『신경과학』(NEUROSCIENCE)의 편집인을 지내기도 했다. 폼페우 파브라대학교(UPF)의 인지 및 뇌 센터(COGNITION AND BRAIN CENTER)에서 ICREA 연구 교수로 “말의 생산성과 이중언어 사용”이라는 연구 그룹을 이끌다가 2018년 12월, 48세의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역자 : 김유경


멕시코 ITESM대학교와 스페인 카밀로호세셀라대학교에서 조직심리학을 공부했다. 인사 관련 업무를 하다가 지금은 통·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스페인어권 작품과 독자들이 더욱 자주 만났으면 하는 꿈을 갖고 있다. 번역한 작품으로는 『행복의 편지』, 『세상을 버리기로 한 날 밤』, 『여기 용이 있다』, 『경이감을 느끼는 아이로 키우기』, 『카를로스 슬림』, 『가끔은, 상상』, 『공주는 왜 페미니스트가 되었을까』, 『꿈꾸는 교사, 세사르 보나의 교실 혁명』, 『동물들의 인간 심판』, 『어느 칠레 선생님의 물리학 산책』, 『엄마가 한 말이 모두 사실일까』, 『여자의 역사는 모두의 역사다』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에서 진행하는

체험단,리뷰단에서 제공 받아 작성한 솔직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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