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다가, 뭉클 - 매일이 특별해지는 순간의 기록
이기주 지음 / 터닝페이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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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인생이다. 지우개를 쓰지 말고 실수한 선을 그냥 놔둔 채 그대로 거침없이 그려간다. 지금은 마음에 남아 괴롭지만 나중에는 실수한 선이 나만의 독특한 문양이 된다. 그렇게 인생은, 그림은 예측할 수 없어 아름답다.”(p.176) 이 책 『그리다가, 뭉클』의 저자 이기주가 자신의 초상화를 옆 페이지에 두고, 쓴 문장이다. 그림을 잘 아는 독자들은 물론, 그림이라곤 초등학교 다닐 때 숙제처럼 그린 〈그림일기〉 이외에는 한 번도 그려본 적이 없는 독자들에게도 이 문장은 설득력을 갖는다.

그림을 인생에 비유한 이 문장이 가슴에 남는 것은 우리들의 삶 가운데 쓸데없는 것처럼 보여도, 사는 동안 언젠가는 도움이 되었던 경험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 뜻 없이, 혹은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지만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했을 때의 패배감이나 상실감을 극복하는 데 힘이 된다. 저자는 전작 『언어의 온도』, 『말의 품격』, 『글의 품격』 등 독자들에게 베스트셀러 작가로 각인돼 있다. 저자는 『언어의 온도』에서 "무심결에 내뱉은 말 한마디 때문에 소중한 사람이 곁을 떠났다면 '말 온도'가 너무 뜨거웠던 게 아닐까. 한두 줄 문장 때문에 누군가 마음의 문을 닫았다면 '글 온도'가 너무 차갑기 때문인지도 모를 노릇이다."고 썼다. 또 『말의 품격』에서는 경청, 공감, 반응, 뒷말, 인향, 소음 등 24개의 키워드를 통해 말과 사람과 품격에 대한 생각들을 풀어낸 바 있다. 서점가에서는 "고전과 현대를 오가는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이기주 작가 특유의 감성이 더해 볼거리와 생각할 거리를 동시에 전한다."고 평가했다. 『글의 품격』에서는 "인터넷에서 세상의 온갖 더러움에 오염된 문장으로 악취가 진동한다."며 "말과 글을 다루는 유일한 인간이 스스로 말과 글의 품격을 높인 언어생활을 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화가이기도 한 저자 이기주는 글과 말의 품격을 높일 것을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주문한다. 이유는 그림이나 말과 글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 나가는 존재인데 품격이 낮다면 스스로를 낮추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37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지닌 유튜브 채널 〈이기주의 스케치〉의 주인공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이기주가 자신의 그림과 함께 펴낸 에세이다. 굳이 그림에세이라고 표현할 필요도 없다. 내용은 모두 우리 일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이기주는 오늘도 그렇게 말과 글, 그림을 통해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오늘도 여전히 독자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그림 그리다가 뭉클함을 느끼는 신기한 경험을 누구나 마주할 수 있음을 가만히 전하면서 시작한다. 어떤 그림을 그릴까 소재를 찾는 것부터 구도 잡기, 선 긋기, 색칠하기까지 그림을 그리는 과정 하나하나마다 인생의 이야기가 배여 있다. 구도를 잡는 과정을 건너뛰고 바로 색을 칠하기는 어려운 것처럼 인생 또한 자기만의 단계를 밟아나가야 함을 알려주고, 실수한 선을 지우기보다는 그냥 놔두는 용기가 인생에서도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이끌어낼 것을 기대한다. 그림과 인생이 만나는 순간 우리의 일상이 특별해지는 경험을 이 책 『그리다가, 뭉클』은 가능하게 해 준다.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그림은 인생과 참 닮았다."는 느낌을 누구나 가질 수 있다. 

매일 스쳐 지나가던 편의점, 날마다 오가던 골목길, 평범한 나무 하나에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순간 일상은 특별해진다는 저자의 확신은 이 책 곳곳에 드러나 있다. 일부 문장에서는 새로운 곳을 방문한 여행자가 모든 순간을 놓치려 하지 않는 것처럼 그림 그리기는 지루한 일상을 여행으로 바꿔주기에 매력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매일 출퇴근길에 마주치는 풍경과 사람들,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서서히 변해 가는 계절, 주말에 찾아가 시간을 보낸 카페 등 누구나 일상에서 경험하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고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는 것과 그런 시간들을 그저 흘려보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나의 하루는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보기를, 일상의 모든 것들이 소중해지는 작은 변화를 일으키기를, 저자는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작이 이 책 『그리다가, 뭉클』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책에 담긴 글과 그림은 특별한 주제를 다루지 않는다고 저자가 강조하는 까닭이다. 책의 맨 앞에 〈작가의 말〉을 통해 "그림과 글은 부지런히 쓰는 일이다. 그래서 정신 건강에 딱 좋은 운동법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그리려면 마음이 움직여야 하고 글을 쓰기 위해 의미를 찾게 되면서 마음을 뒤적거려야 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다시 그림 그리기를 시작한다면 우리 일상의 모든 것들이 꽤나 소중해지는 작은 변화를 일으키는 경험을 가져보기를 저자는 기대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 별도의 부분 구분 없이 13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림 그리면서 알게 된 것들」 「그림은 손재주가 아니라 눈재주다」 「어련히 그릴 수 있는 건 없어」 「아름답게 보는 재주」 「소실점, 만날 수 없어서 사라진다 했을까?」 「인생이 선 긋기 같더라」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지우개의 쓸모」 「외워 그리는 그림, 외워 사는 인생」 「빛은 어둠으로 그린다」 「그림은 시간으로 그린다」 「물은 사라지더라도 추억은 스며든다」 「그림은 나이로 그린다」 등이다. 다만 이 13개의 장 앞에 「나는 이렇게 그림을 그린다」라는 제목으로 저자의 그림 그리기를 밝히고 있다. 특별한 내용은 아니다. 우리들이 보통 그림 수업을 받을 때 일상적으로 거치는 과정을 상세하게 저자 자신의 입장에서 쓴 글이다. 다만 그림 그리는 동안 집중하고 의식적으로 되풀이 반복할 때 가지는 느낌이나 의지에 대해 우리 삶에 덧대어 부연 설명하고 있다. 

"선을 긋는다. 두렵지만 틀려도 그 위에 다시 그으면 되니까 용기를 내야 한다. 삐뚤어진 선도 내 그림의 일부다. 흠 없는 인생은 없는 것처럼. 웬만큼 그렸으니 더 잘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 자꾸만 지우개를 써서 되돌리려 할 때도 있지만 이는 종이만 너덜너덜해질 뿐이다. 그림이나 인생이나 지우는 것에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한다. (중략) 빛을 그린다. 보이지 않는 빛을 그리는 유일한 방법은 그림자를 그리는 것이다. 밝은 것을 그릴 때는 주변을 아주 어둡게 그리면 된다. 지금 어둠이 그려지는 시간을 살고 있다면 동시에 눈부시게 밝은 빛이 그려지고 있는 중이다. 그림 그리다가 뜬금 위로가 차올라 울컥해진다. 수채 물감으로 채색을 한다. 물이 길을 만든다. 수채 물감이 그 길을 따라 흐른다. 물이 마르면 종이에 흔적이 생기는데 이게 수채화다. 시간을 잘 써야 한다. 수채화는 시간이 그리는 그림이기 때문이다."(p.12~14)

그림 그릴 때 주의 사항을 세심하게 챙기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그림을 그릴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무얼 그릴지 정하는 것이다. 마음에 드는 주제를 정했다고 바로 그리기를 시작하는 건 아니다. 우선 막 쓰는 종이를 펴고 아무거나 그린다. 손 근육을 푸는 방법이다. 이제 그림 그리기를 시작하는데, 먼저 구도를 잡아야 한다. 종이 위에 가로, 세로 3줄씩 9등분하여 좌표를 긋고 어디에 배치할지 표시하면 그리기가 훨씬 쉬워진다. 인생이든 그림이든 갈 길을 알려주는 내비게이션 같은 것이 있다면 쉬워지는 법이다.

1장 「그림 그리면서 알게 된 것들」이다. 저자는 그림을 그리면서 무엇을 알게 되었을까? 사실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크게 보면 선을 긋고, 소실점을 잡고, 구도를 잡거나 어려운 수채화 채색을 한다. 일반적인 과정일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그림이 인생을 닮았다고 느꼈다. 그림 그리다가 몇 번을 울컥했기 때문이란다. 저자는 그림은 근심을 멈추게 한다고 밝힌다. 머리와 손이 집중하니까 다른 생각이 끼어들 겨를이 없기에 자연스럽게 어떤 생각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저자는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의 고흐의 대사 일부를 인용한다.

"왜 그림을 그리나요?" 친구인 닥터 폴이 묻는다.

고흐가 이렇게 말한다. 

"생각을 안 하려고요. 생각을 멈추면 그제서야 느껴져요. 내가 안과 밖 모든 것의 일부라는 걸요."

저자는 자신의 경우를 덧붙여 설명한다. 인생을 알 만한 나이가 됐지만 아직도 어설프고 서툴 때가 많다. 칭찬이나 배려 같은 감정을 표현하는 일에서부터 식당을 예약해야 하는 자질구레한 일까지 내가 무엇을 잘 못하고 사는지 오히려 그림을 그리면서 알아채는 일이 많아졌다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1장에는 여러 항목의 글들이 그림과 함께 실려 있다. 그림이 함께 실려 있어 그림과 함께 보아야 할 듯하다. 

'작품명 : 생명나무'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다. 

"반복되고 겹쳐 있는 무한한 수의 선들은 생명의 순간을 표현한다. 수많은 선들이 뭉치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면서 '밝음'과 '어두움'의 굴곡이 만들어지는데 이건 마치 우리의 인생을 닮아 있다. 특히 깊고 짙은 어둠을 거칠게 생채기처럼 표현했다."

이 부분에 대해 저자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생명의 나무〉라는 그림의 해설을 읽고 내(저자) 그림의 해설로 횽내 내 봤다고 말한다. 게다가 클림트의 작품 이름을 가져다 붙였고 자기 그림에 아주 비싼 재료를 쓴 클림트가 부러워 아주 비싼 커피를 마시면서 아주 비싼 누들러스 잉크를 써가며 이 그림을 그렸다고 설명한다. (···) 그림은 기세다.

2장 「그림은 손재주가 아니라 눈재주다」의 소항목의 글도 눈에 띈다. '이기주의 스케치, 내 맘대로 인상주의'란 제목이다. 1939년에 사진이 발명됐다. 화가에게는 무언가를 똑같이 그린다는 게 의미가 없어졌다. 화가는 해석이 필요한 그림을 그렸고, 이걸 보는 사람이 저마다 해석할 몫도 남겨주었다. 인상주의 화풍이나 추상화는 그래서 어렵지만 반대로 그래서 쉽다고 생각했다. 내 맘대로 생각하고 그리는 게 가능해졌으니까. 사실주의가 대세이던 유럽, 특히 프랑스 파리에서 인상주의 화가들이 나타난 이유다. 모네를 비롯해 세잔, 부댕, 드가, 르누아르, 피사로 등이다. 

저자는 자신의 그림 〈마포 해넘이〉 그림을 책에 실어 해설을 해준다. 마포 저 너머로 해넘이가 시작됐다. 내 시선에서 내 느낌대로 보이는 풍경을 채색한다. 모네가 그린 〈인상, 해돋이〉의 색채를 보고 이래도 될 거 같아서 자신감 있게 그려봤다. 윌리엄 터너의 〈노햄성 해돋이〉를 보고는 내 그림도 감히 뒤지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사람들의 기준대로라면 이 대가들에게 내가 지는 게 당연하지만, 내가 내 식대로 표현하면 이보다 더 좋은 그림은 없는 거니까 굳이 꿀리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으면 그만인 그림이 그래서 좋다. 이기적인 그림을 그려야 한다며 '이기주의 스케치'라는 유튜브 채널을 연 것도 그 이유에서다.(p.51) 자신의 그림에 강한 자부심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다. 6장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의 'To. 빈센트 반 고흐'에서는 '〈포럼 광장의 밤의 테라스〉 따라 그리기'라는 제목의 그림이 보인다. 저자는 고흐가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의 말을 인용한다. "특히, 이 밤하늘에 별을 찍어 넣는 순간이 정말 즐거웠어." 저자는 이에 대해 "난 말이야, 당신이 그린 〈포럼 광장의 밤의 테라스〉를 수채화로 따라 그리면서 이런 생가을 했어. 당신이 본 밤하늘은 내가 살던 양평 시골 밤의 하늘을 어쩌면 그렇게 닮았는지, 지나가는 사람들을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지듯 그리는 것이 퇴근길 사람을 무심하게 쳐다보는 나 같아서 또 한 번 공감했지. 당신은 몇 번의 스케치를 그리고 심혈을 기울인 만큼 그날의 느낌과 분위기를 내려고 했던 거 같아. 아마도 꽤 쓸쓸했던 모양이야. 난 이 그림을 따라 그리면서 쓸쓸함이 자꾸 생각났거든. 쓸쓸함은 내 그림의 정서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난 당신이 더 좋아졌지 뭐야. 아 참, 나도 즐거웠어. 파란 밤하늘에 별을 찍는 순간은 겨울 버스 창에 손을 말아 발 도장을 찍는 것 같았다구."(p.169) 두 명의 화가를 인용하고 따라 그리면서도 자신 그림의 정서가 쓸쓸함이라는 것은 내비치며 고흐와 비슷한 정서를 드러낸다.

10장 「빛은 어둠으로 그린다」는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어슴푸레 다가왔던 저자의 글의 의미가 이 장에서 확실해진다. '은하수를 보는 법'이란 소항목에서다. 이 글에서 나타나는 저자의 어린 시절은 누구나 같은 나이의 어린 시절을 가져본 독자들은 비슷한 느낌을 가질 것이다. 독자 역시 기어코 참았던 감정이 울컥 솟아오르기도 했다. 책에 따르면 저자는 겨울밤 아홉 시면 동네 친구들과 밤 술래잡기를 하며 놀곤 했다. 두 개 팀으로 나눠 하는 단순한 게임인데 한 팀이 숨어있는 다른 팀을 다 찾으면 승리하는 놀이다 칠흑 같은 어둠에 숨어 숨죽여 들키지 않으면 그만. 쉽게 찾을 수 없는 장독대 바닥에 누워 밤하늘을 보는 것밖에는 할 게 없지만 상대 팀의 발소리가 들릴 때의 긴장감 때문에 엄청 재미있었다고 저자는 회고한다. 

"이때 바라본 밤하늘에 흐르던 은하수를 기억한다. 빛 하나 없는 칠흑의 밤이어야 보이는 은하수를 그때는 넋 놓고 쳐다본 게 전부였지만 그게 그렇게 소중한 추억이었는지는 지금에서야 알게 됐다. 지금의 밤하늘은 그때만큼 은하수를 허락하지 않으니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의 어둠이어야 볼 수 있는 은하수를 그리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칠흑같이 캄캄한 인생이라야 보이는 내 인생의 은하수 같은 것들을 떠올렸다. 안온할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 지친 하루에도 때가 되면 찾아갈 집과 가족이 있는 것이라든지 외로운 싸움을 하는 중에도 몇 마디 말로 내 편을 들어줄 친구가 있는 것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 만하고 살 이유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차가운 겨울밤이면 적막한 밤의 소리와 별이 빛나는 하늘이 아롱지게 생각나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다독거려 준다."(p.228)


여든이 훨씬 넘은 나이에 그림을 배워보려고 한다는 어르신의 글을 읽었다. 거기엔 멋쩍음이 배어 있었다. 은퇴를 하고 이 나이에 그림에 노욕을 부린다는 어르신도 계셨다. 한결같이 나이를 탓하거나 나이를 겸연쩍어 하셨다. 그때마다 그림 그리기 딱 좋은 나이라고 댓글을 달아 드렸다. 여든 살에 그리는 그림은 그 누구의 그림보다도 스며든 이야기가 훨씬 많으니까. 깊은 생의 이야기가 묵직한 울림을 주기에 충분하니까. 세상을 보는 눈은 누구보다 절절하니까. 이때 그리는 그림은 훨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림은 정말 나이로 그리는 거다. 그림은 정말 시간이 그리는 거다.(p.268~269) - 「그림은 나이로 그린다」 중에서


저자 : 이기주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그림’과 ‘글’의 활자가 묘하게 닮아서 ‘그림’이 어쩌면 ‘글임’이었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어쨌든 그림이나 글이 사라지는 매일을 담아두는 데 제격이라서 매일의 장면을 그리고 쓰면서 ‘기록’을 시작했다. 누구나 그림을 좋아하기를 바라면서 유튜브 ‘이기주의 스케치’를 시작했고 37만 명의 구독자가 사랑하는 채널이 되었다. 쓴 책으로는 『그림 그리기가 이토록 쉬울 줄이야』가 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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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루스 굿먼 지음, 이영래 옮김 / 북드림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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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부분은 세계사를 고등학교 다닐 때 처음으로 교과서를 통해 배웠다. 지금도 커리큘럼 상으로는 변함 없을 터다. 외국의 역사를 배우는 것은 눈을 세계로 둘리는 귀중한 지점이다.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고, 한국전쟁 때 우리 편에서 싸워 나라를 지켜내준 은혜국이라는 이미지를 갖는 미국의 역사는 워낙 짧아 민주주의와 세계 패권국이 되는 과정 등에 대해 기술했다. 그러나 영국의 역사는 또 다른 의미에서 독자의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18~19세기 위대한 역사 창조라고 할 만큼 엄청난 영토 확장(?)의 시기였다. 당시 유럽의 중심 국가로서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던 것은 맞지만 대륙에 위치한 프랑스나 스페인 혹은 이탈리아 등에 비해 그닥 주목받지 못했다. 영국은 섬나라인 데다 그마저도 완전 통일체 국가도 아니었다. 잉글랜드 부분의 반쪽짜리 나라에서 힘으로 어느 정도 영국의 통일을 달성했다. 

이후 노예 시장에서의 수익으로 엄청난 부를 쌓았다. 이후 영국의 드라마는 식민지 정책에 따른 것이었다. 참고서에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칭을 붙여주기도 했지만, 그것이 식민지 확대로 얻었다는 점을 확실히 인지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읽은 세계 역사를 다룬 책에서었다. 아프리카는 물론 아시아의 인도와 중국의 일부, 미국 대륙의 일부, 호주까지 세계 곳곳에 엄청난 식민지를 개척했다. 식민지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수익을 거두어들였는지는 문제되지 않았다. 세계를 다스린다는 자부심까지 겹쳐 같은 유럽 대륙의 다른 강국들에 결코 뒤지지 않은 문화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그 많은 수익은 어디에 쓰였을까? 한 번쯤 생각해 봤지만 더 이상 공부를 진척시키지는 않았다. 세계사는 대학 입시의 한 부분으로 배점도 상당히 낮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관심도 낮아졌다. 세계 최강대국이 영국이란 사실만은 확실히 독자의 인식 안에 자리 잡았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 후 패권은 미국으로 넘어갔지만 대영제국이라 불리웠던 시절의 영국은 굉장히 잘 살고, 문화나 의식 등도 '젠틀맨', '영국 신사' 이미지에 머물렀다.

이 책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는 표제어대로 빅토리아 시대 국민들의 삶을 살펴본다. 될수록 민주주의 정치나 종교, 식민지 건설 등 묵직한 주제보다는 국민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책이다. 「빅토리아시대(Victorian Age)」란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한 1837∼1901년의 기간을 의미한다. 자유당과 보수당의 양당 정치의 시대라고 보아도 된다. 양당 의회정치가 이때 확립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 시대가 제국주의 정책에 의한 식민지 통치의 황금시대를 이룩, 영국은 명실상부한 세계대제국으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제2차(1867)·제3차(1884) 선거법 개정으로 선거자격이 확대되었고, 1871년에는 초등교육법이 발표되어 국민교육이 보급던 것도 이 시대다. 또 노동조합법이 발표돼 노동조합 운동이 합법적으로 승인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일랜드 자치법안이 부결되어 해결되지 못하고 두고 두고 영국의 골치 아픈 정치 문제가 된다. 이 시기에 꽃핀 문학의 경향을 보면 통속적인 사실주의가 유행하면서도 그것을 초월하는 실제적 인간성을 추구하였고, 위선과 허영에 대한 풍자적 비판이 특성을 이루었다.고 영국 문하계는 자평하고 있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으로서 가장 머리 아픈 전쟁이라면 남아프리카에서의 유럽인들 전쟁인 '보어 전쟁'을 꼽는다. 이 전쟁은 앵글로-보어 전쟁이라고도 불리우는데 남아프리카에 거주하는 네덜란드계 백인인 보어인과 영국인들 사이에 1899년부터 1902년까지 약 2년 8개월 동안 벌어졌다. 아프리카 최남단에 위치한 케이프 지역은 본래 네덜란드인들이 이주하여 식민지를 세운 곳인데, 1814년 무렵 영국인들에 의해 점령당했다. 그러자 이미 아프리카인이 된 네덜란드인들(그래서 이들을 보어인이라고 부른다)은 어쩔 수 없이 케이프 동북쪽으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이어서 그 지역에 오렌지 자유국과 트란스발 공화국을 세워 정착했다. 물론 영국도 보어인들의 국가 건설 사업을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들 또한 동쪽 해안에 나탈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자신들의 영역을 확대시키고 있었다.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이들 두 유럽 국가 출신 식민주의자들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바로 다이아몬드와 금광 때문이었다. 영국령 케이프 식민지와 보어인들의 오렌지 공화국 사이 지역에서 우연히 발견된 다이아몬드는 영국인들로 하여금 보어인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파기시키기에 충분한 매력이 있었다. 그 무렵 남아프리카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군은 50만 명에 육박했지만, 보어인 병력은 채 9만 명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전쟁의 결과는 역사 책으로 넘기고, 빅토리아 여왕은 보어 전쟁의 결말을 보지 못하고 영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시대를 63년 동안 통치한 후 1901년에 세상을 떠났다. 이 빅토리아 시대는 대내외 정치만큼이나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도 괄목할 만한 발전을 가져왔다. 대표적인 문인들만 보더라도 월터 스코트, 바이런, 찰스 디킨스, 조지 엘리엇, 토머스 칼라일, 앨프레드 테니슨, 존 러스킨 등 수없이 많이 배출되었다. 사회도 빅토리아의 서민적이고 청교도(이들 중 일부가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의 주요 시민이 되었다)적인 영향을 받아 건전한 편이었으나, 산업 혁명의 후유증으로 사상가인 새뮤얼 버틀러와 같은 허무주의가 생겨나면서 그 영향이 사회에까지 미키기도 했다. 생활에 여유가 생겨 스포츠에 관심이 증가되자 여왕 말기에 일반 서민층에서는 자전거 타기가 유행했으며, 귀족 층에서는 폴로 경기, 크리켓, 테니스, 경마 등이 이미 널리 보급되어 있었다. 과학의 발전도 급속도로 진전되면서 오늘날 영화의 전신인 활동 사진기가 나왔으며, 자동차나 비행기도 심심찮게 국민들과 쉽게 접촉할 수 있는 수송 수단이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 루스 굿먼은 〈서문(머리말)〉을 통해 "나는 우리 조상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무엇을 바랐고, 무엇을 두려워했고, 무엇을 미루어 짐작했는지 확인하고 싶다. 아무리 작고 사소한 것이더라도 말이다. 간단히 말해 나는 일상을 이루는 것들의 역사를 찾아다닌다."고 집필 취지를 밝힌다. 이 시기의 정치·경제·제도의 변화에 대해서는 더 상세히 서술한 뛰어난 책에 맡기고 오직 빅토리아 시대 영국인들의 일상을 살피고 그 사람들을 찾아 헤맸다고 굿먼은 말한다. 오랜 기간 걸쳐 직접 체험 가능한 것들을 체험하고 그 시대 영국인의 삶을 명징하게 드러내기 위해 이 책을 썼다는 말이다. 

저자는 당시 영국인들이 아침에 일어나는 것으로 시작해서 마침내 방문이 닫히고 침실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하루 리듬을 따라 자신도 움직이기로 했다고 설명한다. 일기, 편지, 자서전을 통해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을 전달하는 것으로 시작해,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고 여론을 형성하고자 한 잡지와 신문, 광고와 지침서 등으로 자신의 연구의 범위와 자료 수집을 확장해 나간다. 옷에서부터 면도솔, 장난감, 버스표, 소스팬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남긴 물건에서도 일상을 엿볼 수 있다. 보다 공식적인 규짗과 규제는 축구 경기장을 표시하는 흰 선부터 학교의 졸업 요건까지 삶의 경험에 형태를 부여하고 있다.

19세기 영국을 관통하고 마감한 이 시기는 산업 혁명과 더불어 사회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영국인들의 일상도 크게 바뀌었다.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은 화려한 귀족들의 삶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그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생생하게 그려내며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들의 삶 속으로 깊이 안내한다. 급격한 산업화, 과학과 의학의 발전 그리고 매일 맞닥뜨려야 했던 사회적 변화 속에서의 적응과 생존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저자는 집필에 앞서 영국 방송국과 함께 빅토리아 시대 환경을 그대로 구현하고 실제로 체험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그 경험을 토대로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의 일상을 세밀하게 재현하는 이 책은 아침부터 밤까지, 그들의 의식주부터 사회적 관계, 의료 환경 그리고 성문화 등 은밀한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책은 특히 빅토리아 시대의 특히 노동자 계급과 여성들의 일상에 초점을 맞춘다. 그들이 화덕에 석탄을 피워 요리하고, 아침 식사로 맥주를 마시며, 오징어 뼈를 갈아 만든 치약으로 이를 닦는 일상은 지금 우리의 시선으로는 낯설고 기이하게 보인다. 그들이 착용했던 고래수염으로 만든 코르셋은 숨이 막힐 정도로 가슴을 조였고, 이는 패션 아이템을 넘어 당시 사회적 규범과 억압의 상징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산업 혁명으로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지하 탄광에서 일해야 했고, 엄마들은 아편이 든 약을 먹여 아기를 재우고 공장에 나갔다는 슬픈 이야기도 전한다. 이처럼 우리가 익히 아는 빅토리아 시대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

독자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해 절반도 되지 않았는데도 당시 서민들의 삶은 굶주림의 연속이다. 세계 최강대국인 영국에서 아무리 서민이라도 식민지와 산업혁명으로 막대한 부를 거둬들인 것 같은데 정작 국민들은 굶는 일이 다반사였다니··· 믿어지지 않은 일이지만 저자의 일상 속의 서민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니 귀족이나 왕족만의 잔치를 위한 정치로 '그들만의 잔치'였는가? 식민지 확대, 노예 사업, 전쟁까지 불사하며 쌓아올린 부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가? 


빅토리아 시대에는 근무 시간이 12시간 미만인 사람이 많지 않았다. 산업 재해는 너무나 빈번한 일이라 산업 재해로 인한 죽음을 운명으로 여겼다. 아동이 노동하는 것도 당연하게 여겨 12세가 되었는데도 일하지 않는 청소년은 거의 없었다. 농촌에서는 대여섯 살에 노동을 시작하는 아이들이 많았고 중산층 청소년들도 사무직 일자리를 찾았다. 1835년부터 1850년까지 영국 방직 공장의 노동자 중 절반은 18세 미만이었다.(p.291)

저자는 빅토리아 시대를 그저 글로만 설명하지 않는다. 굿먼은 자신이 직접 빅토리아 시대의 옷을 입고, 음식을 먹고, 집안일을 하고, 그 당시 사람들처럼 하루하루를 살아보았다. 이를 통해 저자는 독자들에게 그 시대로 바로 뛰어들 수 있는 경험을 제공했다. 독자들은 책을 통해 빅토리아 시대의 아침 식탁에 앉아볼 수 있고, 그 시대 여성들이 입었던 코르셋의 불편함과 아름다움에 대해 생생한 이해를 얻을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저자가 직접 겪은 이야기들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그 시대와 소통하려는 진정한 체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빅토리아 시대의 미용 체조를 따라 해보거나, 그 시대의 방법으로 석탄을 운반하는 수레를 몰다가 아찔한 사고를 겪었던 이야기까지, 독자들은 저자와 함께 빅토리아 시대 영국인들의 삶을 깊이 느끼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모두 16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한과 함께 시작하는 하루」「남성의 옷 입기」「여성의 옷 입기」「화장실 문화」「헤어&뷰티」「남성의 아침 운동과 여성의 미용 체조」「아침 식사」「교통 시스템과 노동 환경」「육아」「점심 식사」「세탁과 가정 의료」「교육 시스템」「여가 생활」「저녁 식사」「목욕 문화」「성문화」 등 영국인의 일상을 쭈욱 쫓아간다. 「오한과 함께 시작하는 하루」에서는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아침을 시작했을지 자세하게 알려준다. 세균에 관한 이론이 등장하기 전, 개인 위생의 중요성을 몰랐던 그들이 발명한 기상천외한 방법들에는 놀라움을 자아내게 한다. 분홍색 치약의 색깔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이며, 당시 사람들은 서서 목욕했다고 하는데 어떤 모습이었을까? 저자는 독자들이 질문을 가질 만한 부분에서는 마치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한다. 

남성도 코르셋을 입어야 했던 시대인 빅토릴아 시대는 남성과 여성의 옷이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고, 심지어 모자를 벗는 행위조차 의미심장했다고 저자는 밝힌다. 빅토리아 시대의 복식문화는 왜 그렇게 복잡했을까?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옷차림 속에서 사회적 규범과 변화하는 미적 감각을 엿볼 수도 있다. 특히 빅토리아 시대에는 엄격한 도덕적 규범을 강조했지만, 동시에 사람들은 심령학, 마법, 오컬트적인 요소들에 매료되기도 했다. 마지막 장에서 다루는 「성문화」에서 일부 독자들은 오늘날 현대인의 성문화나 성 인식 수준으로 생각하면 크게 오해하는 것이다. 청교도들이 많았던 영국이다.

빅토리아 시대는 단순히 영국의 한 시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저자는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빅토리아 시대는 급진적 변화와 발전, 과학적 발견과 산업 혁명의 한가운데 있었던 시대다. 한편으로는 어둠과 빛, 엄격한 도덕주의와 그 이면의 위선이 공존하던 복잡한 세상이기도 했다. 이 시기의 사람들은 현대 사회의 기초를 다졌으며, 그들의 고민과 해결 방법은 오늘날에도 큰 시사점을 던진다. 저자는 이 시기 영국 대부분의 국민들을 단순히 역사적 인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들은 현재의 우리와 같은 삶을 고민하고, 더 나은 삶을 꿈꾸며, 건강과 행복을 추구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들과 얼마나 닮아 있는지 알아가는 과정은 놀라움과 깨달음으로 가득하다. 

빅토리아 시대의 이야기들은 오늘날에도 많은 점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일본이 영국에서 배워온 선진국의 정치 행태는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됐다. 그들이 급격한 변화 속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갔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삶을 재구성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지금 우리에게도 유용하다. 그들은 부지런히 부를 쌓아올렸지만 일반 국민 개개인에게까지 혜택이 돌아가지 않았다. 정치가나 관료들은 부나 혜택을 누렸지만 일반인의 생활은 오히려 상대적 빈곤감이 훨씬 더 심했다. 정치가나 일반 국민 모두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특히 정치가와 정책 담당자들은 세계 최강국인데도 자국의 일반 서민들은 왜 굶주림에 허덕였는가에 대한 깊은 반성을 해봐야 한다. 그것이 역사 공부이고, 역사에서 배워야 할 것들이다. 일반 시민들도 왜 가만히 있었나도 생각해볼 문제다. 교통 수단의 발달, 여가 운용의 증가, 다소의 식량 제공, 아동 무상교육으로 만족했던 당시 영국인들의 의식에도 성찰한 부분이 있다고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강력하게 느꼈다. 

현대 사회는 또 다른 기술 혁명과 사회적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특히 우리 입장에서는 경제적 성장의 혜택도 일부 누렸다. 그러나 적절한 혜택이었는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고, 경기의 관중이 아닌 경기를 뛰는 주체로서 역할과 권리를 함께 누려야 한다. 그 어떤 시대보다 급격한 변화를 겪었던 빅토리아 시대의 경험은 우리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데 소중한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농업노동자와 그 가족에게 추위와 어둠 속에서 밤에 깨어 있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한 일이었다. 등잔을 켤 기름이나 양초를 살 돈이 없었고, 식량이 부족해 배불리 먹지 못한 상태에서 오래 깨어 있으면 배고픔의 고통만 심해질 뿐이었기 때문이다. 저녁 7시면 대부분의 가족들이 자지 않더라고 이불을 두르고 있었다. 오전 6시게 일을 시작하기 때문에 밤 10시에 잠자리를 들었다는 것은 일을 마친 후 한 시간 정도 저녁 식사를 하고, 한 시간 정도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뜻이다. (중략) 하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부부는 휴식을 즐기기 전에 성생활이라는 복잡한 세계를 거쳐야 했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남성이 여성보다 성욕이 강하며, 남성이 자연스럽게 성욕을 해소해야 건강에 좋다고 믿었다. 여성과의 성관계는 남성의 다양한 건강 문제에 대한 치료법으로 여겨졌다. 여성의 자위는 남성의 자위처럼 생명력을 낭비하는 일은 아니었기에 신체에 덜 해로운 것으로 여겨졌으며, 자위 기구들이 비밀리에 유행했다.(p.574~576, 「성문화」)


저자 : 루스 굿먼


영국의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역사가이며 박물관을 비롯한 여러 학술 기관과 협력해 과거에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과 그들의 활동을 탐구한다. BBC TV 시리즈 「빅토리아 시대의 농장Victorian Farm」???, 「빅토리아 시대의 약국Victorian Pharmacy」???, 「에드워드 시대의 농장Edwardian Farm」???, 「전쟁 시기의 농장Wartime Farm」 등 다수의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전 시대의 삶을 재현했다. 저서로는 『튜더 시대의 수도원 농장Tudor Monastery Farm』, 『튜더 시대 사람으로 사는 법How to Be a Tudor』, 『르네상스 시대 영국에서 불량하게 사는 법How to Behave Badly in Renaissance Britain』, 『엘리자베스 1세 시대 영국에서 불량하게 사는 법How to Behave Badly in Elizabethan Britain』, 『가정의 혁명The Domestic Revolution』이 있다.


역자 : 이영래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현재 가족과 함께 캐나다에 살면서 번역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 기획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누구도 나를 파괴할 수 없다』, 『부의 추월차선 위대한 탈출』, 『최강의 브레인 해킹』, 『빌 게이츠 넥스트 팬데믹을 대비하는 법』, 『제프 베조스, 발명과 방황』,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세대 감각』, 『어떤 선택의 재검토』, 『항상 이기는 조직』, 『2029 기계가 멈추는 날』, 『사업을 한다는 것』, 『슈퍼팬』, 『모두 거짓말을 한다』, 『블리츠스케일링』, 『플랜트 패러독스』, 『4차 산업혁명과 투자의 미래』, 『포모 사피엔스』 등이 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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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백가, 인생 불변의 지혜 - 공자·맹자·순자·묵자·노자·장자·한비자
옥현주 지음 / 유노책주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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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 전 중국 대륙은 제자백가의 시대라고 일컬어진다. 군웅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 나라를 세우고 인재를 발탁해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움직임이 대륙 전체에 퍼져 있을 시기다. 물론 대륙에는 전쟁이 없던 날이 하루도 없었을 것이다. 군대를 상시 운영하는 나라들은 없고 생업, 특히 농업에 종사하는 비교적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병사로 차출해서 목숨을 걸고 싸웠을 것이다. 전쟁에서 지면 나라는 물론, 자신 그리고 가족의 운명도 보장할 수 없다. 전쟁에서는 이기지 못할 때는 죽거나 노비 신세다. 나라나 개인이나 전부를 걸고 전쟁을 치른다. 이때 전쟁도 나라도 제대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올바른 정치를 할 인재를 모시는 것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다. 유력한 가문은 제후나 고위 관료예서 왕이 될 수도 있다. 전쟁이 일상인 사회는 혼란의 연속이다. 목숨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사회 질서는 엉망이 될 것이고, 나라 살림은 텅텅 빈 금고나 다름없다. 전쟁 물자를 대는 것 또한 다른 나라를 복속시켜 거기서 얻은 땅이나 포로로 얻은 군사로 대신해야 한다. 전쟁 사회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사람의 삶이 그렇듯이.

오늘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누구나 분주한 일상을 보낸다. 전쟁터 같은 경쟁 사회에서 살아 남는 방법은 경쟁에서 이기는 것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래서 현대 사회를 '총성 없는 전쟁터'로 표현하는 사람도 많다. 더구나 현대는 풍요로워 '가난'이 없을 것 같지만 굶지는 않아도 상대적 빈곤의 수는 점점 늘고 있다. 부의 편중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부익부 빈익빈'이란 부작용이 점점 심화되고 있는 듯하다. 자본주의에 반발해 공산주의가 생겼지만 공산주의 체제는 100년도 안 되어서 실패로 끝났다. 인구는 끊임없이 늘어나 현대 사회는 더 복잡해지고 빠르게 변화한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 감정에 휘말리게 되는 것이 현대인에게는 숙명처럼 일상화되어 있다. 다양한 욕망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혼돈과 위험이 닥칠 때도 있고, 무기력에 빠질 때도 있다. 이렇게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다 보면 자신을 조금씩 잃어가는 것을 깨닫게 된다.

현대인들은 가끔씩 ‘내 삶은 이대로 괜찮은 걸까?’, ‘이토록 애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삶 자체에 대해 의문을 갖고 숙고하지만 별다른 해결책은 없다. 질문들의 답을 찾지 못한 채 같은 하루를 반복한다. 답은 쉽게 찾아질 것 같지도 않다. 살면서 난관에 부닥치면 극복하고 넘어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극복하지 못한 채 안고 살아가면 점점 더 삶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사회 시스템이 이미 그렇게 굳어져 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말은 우리 속담에만 있는 줄 알았다. 그리고 그 말은 정말 자주 들어서 거의 DNA에 박혀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격언은 우리나라 만의 속담이 아니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는 비슷한 의미의 격언이 있다. 시대를 거술러 올라가면 지금 인류의 사상과 철학의 원류는 사실상 2,500년 전부터 내려온 것이다. 서양에서는 소크라테스, 중국의 공자, 인도의 고타마 싯타르타 등 세계 종교의 창시도 대부분 인류 정신사의 혁명적 전환기라고 일컬어지는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졌다. 

이 책 『제자백가, 인생 불변의 지혜』의 저자 옥현주는 「내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 줄 2,500년의 지혜」라는 제목의 〈서문(들어가는 말)〉에서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이자 철학자들이 활약한 시기를 칼 야스퍼스가 말한 '축의 시대'라는 말을 인용해 대신한다. "이 책에서 만나게 되는 철학자 공자, 맹자, 순자, 묵자, 노자, 장자, 한비자는 야스퍼스가 말한 축의 시대에 태어나서 활동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인도에서는 힌두교 사상의 토대를 이루는 문헌으로써 《우파니샤드》가 조성되었으며, 고타마 싯다르타가 등장해 불교가 성립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구약을 기록했던 아모스, 이사야, 에레미야가 활동햇고, 그리스에서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을 비롯한 많은 철학자가 등장했습니다. 인류정신사의 전환의 시기가 열렸던 것입니다."(p.8) 축의 시대에 등장하는 중국, 인도, 이스라엘, 그리스는 서로 교류가 없었는데도 비슷한 시기에 놀라운 사유의 혁명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다. 이에 덧붙여 저자는 시기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당시 네 지역은 공통적으로 급격한 도시와와 인구 증가, 전쟁과 폭력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으로 도덕성이 매우 피폐한 상황이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최근 유독 고전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 이유도 현대인들이 일상에서 안고 있는 문제를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수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전에는 삶에 대한 깊은 고찰과 본질적인 지혜가 담겨 있어 읽는 이들에게 일종의 인생 나침반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제자백가는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수많은 제후국이 패권을 다투던 춘추전국시대에 탄생했다. 이 같은 약육강식의 시기에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질서와 대안을 모색했던 이들을 ‘제자백가’라 부르는 것이다. 제자백가가 출현한 시기는 오늘날처럼 크고 작은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문제가 넘쳐나는 시기였기에, 그들의 철학은 우리의 삶에 깊은 울림을 준다. 

“제자백가에는 사람의 생사 문제에서부터 사람과 자연의 관계, 사람의 도리, 정치, 사람 간의 사랑, 백성이 먹고사는 문제, 배움과 수양의 문제, 운명론 등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천오백 년이 지난 오늘에도 제자백가의 철학이 내 삶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통찰과 지혜를 제공하는 것입니다.”(p.11)

이 책 『제자백가, 인생 불변의 지혜』는 공자·맹자·순자·묵자·노자·장자·한비자 등 제자백가 핵심 사상가 7인의 가르침을 엮었다. 『논어』, 『장자』, 『도덕경』, 『한비자』와 같은 제자백가의 고전에는 당대의 혼란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치열하게 고민한 사상가들의 삶의 지혜와 교훈이 담겨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단단한 내면을 만들고 자신을 지키는 법을 깨닫게 할 35가지 지혜를 저자가 엄선했다. 당장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방법론이나 처세술 대신, 보다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진리를 통해 삶의 방향을 깨닫게 한다는 집필 취지에 따라서다. 또한, 다양한 문제를 여러 사상가의 시각으로 바라보아 균형 잡힌 사고를 키우고 인생을 꿰뚫는 통찰력을 기르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2,500년의 세월을 넘나드는 제자백가의 가르침을 하나하나 마음에 되새기고 깊이 성찰하다 보면 복잡한 환경, 갑작스러운 고비, 잘못된 가치관 등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단단한 힘을 키울 수 있을 것으로 저자는 믿는다.

동양철학연구가인 저자는 수많은 고전 중에서도 제자백가, 그 가운데서도 공자, 맹자, 묵자, 순자, 노자, 장자, 한비자 등 대표적인 7인의 철학을 집중 조명한다. 이들은 인간의 도리, 자연과의 조화, 사회적 질서에 대한 깊은 통찰을 남겼다.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들의 철학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닌, 삶의 본질을 꿰뚫고 흔들림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준다.

이 책은 모두 7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앞날을 준비하려거든 뒤부터 돌아보라”-공자의 준비」, 2장 「“버틸수록 하늘이 길을 연다”-맹자의 인내」, 3장 「“내가 바르면 천하가 뒤따른다”-순자의 처신」, 4장 「“이루고자 할 때는 의지가 필수다”-묵자의 실천」, 5장 「“마음을 따르니 걸리는 바가 없다”-노자의 자존감」, 6장 「“나를 잃으면 비로소 내가 보인다”-장자의 자유」, 7장 「“빨리 결단하고 변화에 순응하라”-한비자의 통찰」 등이다. 1장에 나오는 공자는 유가학파의 개조로서 춘추시대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이며 교육자이다. 이 장에서 저자는 공자의 천인관계, 학문의 자세, 사명과 운명, 살신성인, 제사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2장의 맹자는 공자의 사상을 이어서 발전시킨 전국시대의 유학자이자 정치가이며, 이상주의자라는 평가를 받는 사상가이다. 이 장에서 저자는 맹자의 왕도정치, 사생취의, 성선설, 수양론, 우환의식을 짚어본다. 3장의 순자는 전국시대 후기의 유학자이다. 공자의 사상을 계승했으며, 맹자보다 현실적인 사상가이다. 저자는 순자의 성악설, 화성기위, 비판적 사고, 예론, 상례와 제례에 대해 밝힌다. 4장에서 저자는 묵가학파의 개조로서 순자가 하층계급의 입장을 대변한 사상가이자 실천가임을 부각시킨다. 이 장에서는 겸애교리, 명정론 비판, 삼표법, 후장구상 비판, 묵가의 실천력을 자세히 안내한다. 

5장의 노자는 도가학파의 개조이다. 춘추시대 초나라의 철학자이다. 이 장에서 저자는 무위자연, 도와 덕, 유약과 견강, 섭생의 원칙, 양생법을 이야기한다. 6장에 나오는 장자는 노자의 사상을 계승한 도가학파의 대표적인 사상가로서 전국시대에 활동했다. 이 장에서 장자의 가치 판단, 무용지용, 상대주의, 기화 사상, 물화 사상을 풀이한다. 7장에 나오는 한비자는 순자의 제자이면서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사상가다. 아 장에서 저자는 수주대토, 법·술·세의 통합, 조짐, 유세의 어려움, 모순에 대해 이야기한다.

7개의 장 가운데 독자의 관심을 유독 끌었던 부분은 '순자의 처신'이란 부제가 붙은 3장 「내가 바르면 천하가 뒤따른다」이다. 사실 순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성악설을 주창했다는 이유로 맹자와 비교되며, 온전한 평가에서 후순위로 밀린 것 아닌가 싶어서다. 이와는 반대로 맹자는 성선설을 주창한 학자로 순자와는 상대적으로 이상주의자라는 힐난에도 불구하고 후세에 회자되는 경우가 훨씬 많고 따르는 유학자도 많은 것 같다. "당신이 친구에게 돈을 빌려 주었는데 약속한 날짜에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가정할 때 당신은 친구가 날짜를 착각했을 것이라고 믿을까요, 아니면 친구의 행동에 다른 숨은 의도가 있다고 의심하게 될까요?" 저자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서 전국시대의 사상가 맹자와 순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서로 다른 답을 내놓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고 주장하며, 사람은 모두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지녔다고 했다. 이런 관점을 가진 사람이라면 친구의 입장을 먼저 들어 보고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이다. 반면, 순자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라고 하며 사람은 나면서부터 이득을 좋아하게 되어 있다고 경고했다. 순자의 관점을 따른다면 친구를 행동을 경계하고 이러한 상황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대비책을 세우려 할 것이다. 저자가 밝히는 답으로부터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을 명쾌하게 가려낸다. 

이에 대해 저자의 성선설과 성악설에 관련된 해석은 엄정하고 편중적이지 않다. "인간 본성을 향한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리는 선택과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사람을 어떤 존재로 규정하느냐는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 스며들어 우리의 행동과 결정에 깊이 관여하게 됩니다."(p.108)

우리 현대인들은 끊임없는 변화와 불안한 미래로 혼란스럽고, 각자의 삶에 닥쳐오는 고난을 현명하게 극복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부, 성공, 인간관계 등 삶에서 중요한 가치들을 재조명하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말이 생각난다.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앎이란 사전적 풀이다. 『논어』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마지막에 나오는 한비자에 관한 장 가운데 '나라가 망할 47가지 징조'란 항목에 눈이 간다. 혹시 조선조 말의 우리 시대상황과 맞아떨어진 게 있나 싶어서다. 한비자는 〈망징〉 편에서 나라가 망할 징조를 마흔일곱 가지로 열거하는데, 그중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나라의 창고는 비어 있는데 대신들의 창고가 가득 차 있거나, 큰 이익을 보고도 취하지 않고, 재앙의 조짐을 듣고도 방비하지 않으며, 공적도 없는 사람이 존귀해지고, 나라를 위해 애쓰고 수고하던 사람이 천한 대우를 받게 된다면 아래 신하들이 원망을 품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나라는 망할 것이다."(p.311) 하지만 한비자는 나라가 망할 징조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망하는 것은 아니며, 이는 단지 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나라가 흥하느냐 망하느냐는 '그 나라가 얼마나 잘 다스려지고 있는지', '또는 혼란스러워지고 있는지', '부강함과 쇠약함 중 어느 쪽으로 기울고 있는지' 등에 달려 있다고 단언한다. 나무가 부러지는 것은 반드시 좀벌레를 통해서이며 담장이 무너지는 것도 작은 틈에서 시작되지만,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강한 바람이 불지 않으면 부러지지 않고 큰 비가 내리지 않으면 무너지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이를 통해 그는 나라가 망하는 것은 내부의 조건인 망할 조짐과 외부의 조건인 비와 바람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한비자가 미세한 조짐을 파악하고 미리 예방하라고 한 이유는 훗날 강한 태풍이 몰아쳤을 때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사전에 미리 대비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저자는 해석해 준다.


저자 : 옥현주


동양철학연구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동양학연구소 특별연구원이자 동양문화 융합학회 이사이다.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제자백가의 여러 구절을 읽으며 삶의 가치관이 다시 정립되는 것을 느꼈고, 그 길로 곧장 동양철학의 길에 들어섰다. 주로 죽고 사는 문제, 즉 생사관을 연구한다. 삶과 죽음 문제와 관련하여 연구와 공부를 통해 깨달은 바를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단단한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이 책에서는 공자, 맹자, 순자, 묵자, 노자, 장자, 한비자 등 수천 년 동안 사랑받은 제자백가 7인의 지혜를 어떻게 자신의 삶에 적용하고 더 행복한 삶을 만들 수 있을지 알려준다. 특히 인생의 고비를 맞닥뜨린 이들이라면 주어진 인생을 살아갈 힘을 천천히, 그러나 견고하게 기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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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정국의 풍경 - 인물로 돌아보는 대한민국 현대사
신복룡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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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정착한 이후 한민족에게 가장 어려운 시대라고 하면 아마 20세기를 꼽을 것이다. 이 시기는 일본의 식민지를 거쳐 일본의 패전으로 인한 해방, 그리고 비극의 동족상잔이라는 한국전쟁. 민주주의 체제로 변화한 다음에도 분단에 따른 정치적 불안정, 군부 쿠데타, 군부 독재로 점철된 시기가 20세기다. 정치적으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대가 일제의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는 해방 전후, 그리고 한국전쟁의 시기가 아닌가 싶다. 일반적으로 정치학자나 시대평론가들은 해방정국을 이 시기로 본다. 물론 학자마다 다르게 볼 수도 있다. 1943년부터 한국전쟁까지를 해방정국으로 보는 학자도 있고, 일부는 1945년 이후 한국전쟁까지로 보기도 한다. 이 책 『해방정국의 풍경』의 저자 신복룡은 해방 직전 일제 치하였던 1943년부터로 해방정국을 정의하고 있다. 이 책은 원래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주간조선〉에 연재되던 글이었다고 한다. 광복 70주년이라고는 하지만 보수지임을 자임하는 〈주간조선〉에 해방정국을 제대로 평가하는 게 가능할까?에 대한 의문의 시선을 연재 초부터 독자들이 보냈다고 한다. 

'슬픈 예감은 항상 잘 들어맞는다'는 연재 중단 사태가 벌어진다. 이른바 좌우익 모두로부터 '십자포화'를 맞았다고 한다. 우익들은 저자를 빨갱이라고 몰아붙였고, 좌익들은 보수신문에 기생한다는 댓글을 달았다. 결국 17회를 끝으로 연재는 막을 내렸다. 대구 사건과 여순 사건, 제주 4·3사건, 그리고 김일성의 항일 투쟁과 가짜 논쟁의 진위와 같은 민감한 문제를 다룰 무렵 〈주간조선〉 데스크로부터 저자의 글이 〈조선일보〉의 입장과는 달리 다소 좌경의 색채를 보이고 있으니 용어들을 수정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저자는 나름의 논지를 수정할 의사가 없었고, 글을 고치느니 연재를 중단하는 것이 좋겠다고 저자가 생각해 중단되었다고 저자는 『해방정국의 풍경』의 〈서문(글머리에)〉에서 밝히고 있다. 당초 데스크의 의도는 〈조선일보〉가 보수라는 사회의 평판으로부터 진일보하기를 진심으로 바랐기에 이 글의 연재를 시작했다고 저자는 이해했다고 말한다. 결국 중단되는 사태에 이르렀지만 이미 25회를 예정하고 자료를 정리해둔 저자는 게재의 중단이나 계속과 관계없이 전면 탈고를 한다는 계획에는 변함이 없었다고 〈서문〉에서 말하고 있다. 저자의 사정을 전해들은 인터넷 동호회 〈마사모(마르코 글방을 사랑하는 사람들')〉에서 속편을 연재하겠다고 나서 완전히 탈고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이에 덧붙이고 있다. 이 책은 정치학자이자 인물 연구가로 손꼽히는 신복룡 교수가 한국 현대사를 ‘인물‘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나간 책 『해방정국의 풍경』이라는 표제어로 완전한 책으로 거듭났다.

앞서 설명했듯 이 책은 해방정국의 이승만, 김구, 김일성, 박헌영 등 한국 현대사를 풍미하는 좌익과 중도, 우익을 대표하는 인물들 사이에 일어난 일화와 사건을 상세히 소개한다. 또 저자의 연구와 많은 자료 등을 치밀한 분석으로 한국 역사의 진실과 이면을 상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앞서 독자가 언급했던 해방정국(解防政局)은 한국 현대사에서 이념 대림이 가장 극심했던 시기다. 한국사에서는 보통 이 시기를 현대사로 간주한다. 이 책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군정 기간(1945~1948)은 사실상 1907년부터 1910년까지의 일본의 통감(統監) 정치보다 더 자유롭거나 주권적인 국가가 아니었다고 설명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일본에 이김으로써 우리 대한민국을 식민지에서 해방시켜 주었고, 한국전쟁 때도 미국이 주도해 UN군을 파견함으로써 군사적으로 절대적으로 열세였던 북한의 남침으로부터 구해준 은혜로운 나라라고 어렸을 때부터 배웠다. 뿐만 아니라 먹고 살 것이 절대 부족한 대한민국에 밀가루 등 대규모의 식량도 무상으로 보내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만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 해방정국에서는 4대 강국의 `해방을 시켜주지만, 독립을 시키지 않는다`는 확고한 정책 하에서 한국은 미국의 준식민지로 불리었다는 점도 저자의 글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다 대한민국이 수립되었으나 곧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3개월 정도 `공화국 군대(북한 인민군)` 가 지배하던 시대를 맞이했고, 이는 중공군이 참전했다 물러난 `겨울 피난`(1·4 후퇴)이 끝난 1952년 3월까지 계속되었다. 다시 대한민국은 주권을 찾았으나, 그 과정에서 일본, 미군정, 대한민국, 이른바 인민공화국(북한), 미8군 사령관(UN군 사령관)을 거쳐 다시 대한민국이 다스리는 나라가 되었다. 이 짧은 시간에 통치권자가 여섯 번은 바뀐 셈이다. 저자는 현대사에 이렇게 팔자가 드센 세대가 일찍이 없었으며, 이 기간에 겪은 10년의 세월은 누구에게나 소설이었고, 밤새 이야기를 해도 쉬이 끝내기 어려운 한국전쟁의 전말이라 이야기한다.

현재 팔순을 훌쩍 넘긴 저자는 지금껏 강의나 연구서에서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이 책을 통해 비로소 풀어놓는 사실도 있다. 저자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은 결국 사람이 저지른 업보였고, 그 가운데 일부만을 우발이론(contingency theory)으로 메꿀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격동의 시대에 이념, 체제, 강대국의 입김이 세태를 좌지우지했을 수 있지만, 어느 시대이든 사람이 독립 변수였기에, 이 책은 바로 그 사람, 현대사의 주요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다른 구분 없이 모두 32장(章)으로 한데 묶었다. '해방정국'이란 표제어에서 암시하듯 한정된 짧은 기간이고 좌우와 한반도 주위 강대국들이 모두 관여하고 있기에 어느 시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른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중도적인 입장의 학자로서 책의 의미를 반감시킬 수 있기에 저자가 의도하는 객관적 사실과 자료 분석으로 드러난 사실만으로 기술하다보니 별도 구분 없이 장으로 묶었을 것으로 읽힌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저자가 다루는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이 책에 담긴 내용을 풀어본다. 먼저 인물 면에서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아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김구·이승만·여운형·백관수·박헌영·김일성·홍명희·맥아더·모택동·조봉암 등이다. 사건은 해방, 미군정, 좌우 대결, 대구 사건, 제주 4·3, 여수·순천 사건, 한국전쟁, 휴전회담, 분단과 통일논의 등이 시기순으로 나열되고 있다. 이는 연대순으로 정리하는 역사 기술법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먼저 1장의 제목 「해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당시 한국에 있던 대부분의 국민들에게는 기적과도 같이 어느날 갑자기 닥친 일이다. 사실 8월 15일 라디오 방송을 통한 일본의 공식 항복 방송을 못 들은 사람도 있지만 많은 사람은 믿기지 않아 눈치 보느라 도로에 나와 만세 한번 제대로 외치지 못했다고 한다. 익히 일본 경찰의 악랄함에 이미 순치되었다고 할까. 슬프지만 눈에 보이듯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 장을 시작하며 저자는 핸더슨의 말을 인용했다. "1910년에, 그 많은 인구를 거느리고 그토록 훌륭한 유산을 가진 한국이 그렇게 쉽게 멸망한 것은 기이한 일이다."(p.21)

저자는 "역사의 흥망성쇠는 수없이 되풀이되었다. 대한제국의 멸망이라고 해서 남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그것이 역사이기에 앞서 우리의 경험 속에 기억되어 있고 그 잔혹성이 다른 어느 유형보다 심각했을 뿐만 아니라 그 가해자의 뉘우침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저자는 그렇다고 일본의 잘못만을 탓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이젠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과 역사를 반성하며 자신의 실수를 고민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런 주장을 듣는 사람은 좌우익을 가리지 않고 포화를 퍼붓을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역사로 판단해 보면 영·정조의 시대가 끝나고 순·헌·철종의 시대가 오면 조선은 이미 국가로서의 활력을 잃은 채 타성으로 연명하는 제국이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부패로 말미암은 왕조의 피로와 민중의 지친 삶은 조국의 운명에 대한 연민을 많이 잃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친 삶 앞에 벌어지고 있는 국가의 운명은 백성들에게 그리 절박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밖으로부터의 일격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지탱하기 어려운 국가의 공통된 특징은 암군(暗君)의 시대와 관료의 타락, 그리고 의욕을 잃은 민중의 지친 삶이 동시에 벌어지며 그 결과는 끝내 왕조의 멸망으로 이어진다. 이럴 경우 외침에 대한 저항력은 거의 무방비 상태일 수밖에 없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많은 도덕론자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전혀 평화롭지 않았다. 역사의 첫 장을 펼치자마자 우리는 인류 사회가 정복 전쟁으로 얼룩진 것을 보게 된다. "평화가 없는데도 사람들은 '평화롭다'고 말한다.(《구약성경》「예레미아서」 6:14) 유사 이래 지구상에는 1만4,500회의 전쟁이 있었고 36억 명이 죽었다.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이 없었던 순간은 모두 합쳐도 230년에 지나지 않았다.(온창일, 2001)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까지 지구상에서 전쟁의 총성이 멎었던 순간은 단 하루도 없었다.(황병무, 2001)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전쟁은 또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라는 프러시아 육군사관학교 교장 클라우제비츠 장군의 말, 곧 "정치는 피 안 흘리는 전쟁이요, 전쟁은 피 흘리는 정치이다"라는 경구가 우리에게 많은 울림을 준다고 저자는 피력한다.

그 숱한 전화를 겪으면서도 유교 국가가 고집스럽게 문민 우위의 원칙을 지키려 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경상감사 이언적이 우병사 김질과 함께 배를 타고 김해로 간 일이 있었는데, 조식이 그 말을 듣고서 질책했다. "감사가 어찌 무지한 무부와 더불어 같은 배를 탈 수 있겠는가?" 이 말은 우리에게 많은 성찰을 하게 하고 세계 역사의 흐름은커녕 주위 국가들의 무장도 신경 쓰지 않을 만큼 유교 선비들은 전쟁 대비에 무신경했다고 한다. 또 식민지 정책의 일본에 대해서도 한 번의 침략을 받아 그 수난을 당했음에도 조선은 군사력을 별반 신경 쓰지 않았다. 왜군 침략 불과 30여년 만에 청의 침략으로 전 국토와 백성이 유린당하고 항복하고 만다. 저자는 일본인에 대한 잔인함을 우리가 잘 아는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을 인용해 내놓는다. "일본인에게는 종교적 죄의식이 없어 잔인하다. 죄의식이 없는 민족은 회개나 반성 또는 사과의 미덕을 모르고 산다." 위안부 문제이든 득도 문제이든, 한일관계사를 이해하는 데 근본적이 해답이 여기에 있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최근 세간의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이승만 대통령과 건국 1세대들의 희생과 투쟁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2024) 을 본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그 당시의 생생한 상황과 이승만 대통령, 김구 등 당시 건국 1세대 인물들에 대한 저자 특유의 분석을 엿볼 수도 있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저자는 이 책 『해방정국의 풍경』을 통해 이승만과 김구는 현실 인식에서도 많은 차이를 보였다고 지적한다. 김구는 민중적인 지지 기반이 취약해 민중 봉기나 지지에 대한 국가 건설이 당초 불가능하다는 점을 파악하고, 윤봉길이나 이봉창 의사처럼 순교자적 희생정신으로 무장된 개별적 테러리스트에 의한 효과에 대한 기대감이 그를 테러리즘에 몰두하게 했다고도 전한다. 이는 김구를 숭모하는 무리에게는 반발을 살 수도 있는 분석이나, 저자는 테러리즘에 대한 학술적인 정의는 ‘자금이나 훈련이 부족해 조직적인 투쟁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중략) 순교자적 우국심으로 무장된 개별적 투사가 적군에게 무장 공격을 감행함으로써 (중략) 적군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투쟁 방법‘을 뜻한다고 전한다. 또한 한국 독립운동사를 전공하는 학자들은 이를 ’의열 투쟁’이라고도 일컫는데, 본질적으로 테러리즘과 큰 차이가 있지는 않다는 흥미로운 의견도 덧붙이고 있다.

영화 〈건국전쟁〉(2024)에는 “이승만이 민주주의자였기 때문에 혁명이 일어났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저자는 이에 대해 역사의 평가가 그렇게 바뀐다면, 수유리에 묻힌 150명의 영혼은 누가 위로할 수 있을까?라며 반문한다. 역사에는 모든 정치인이 과오와 공덕을 함께 이루었으나, 그렇다고 공덕이 과오를 덮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저자는 무엇보다 지금 와서 이승만이나 김구의 숭모자들이 해야 할 일은 누구의 죄를 묻기보다는 양쪽 후손들이 먼저 화해하고 좌익에 대해 항거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승만과 김구의 기일에 서로 초대장을 보내고, 그 답례로 조화를 들고 찾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이 저자의 소망이다. 왜 이 칼럼들이 오늘날 좌익과 우익의 십자포화를 맞았는지 짐작이 간다. 해방정국에서 이름과 목소리를 높인 사람들은 대개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유학을 다녀온 부호들의 자녀들인 경우가 많다. 일본은 제국주의를 표방하고 아시아 전제의 일본의 위력이 미칠 것으로 판단한 군부를 앞세워 아시아 각국을 향해 무력으로 점령해 나간다. 메이지유신 이후 무기의 근대화는 물론 신기술로 새로운 무기를 만들 정도로 군사 강국이 된 일본이 드디어 마수를 드러내고 이를 일본 국민들은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중국을 침략해 항복을 받아내는 과정에서는 열도가 흥분에 들떠 마치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된 것처럼 좋아했다고 한다. 

당시 일본은 새로 출범한 공산주의 혁명에 의한, 인민을 위한 나라 소련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더욱이 일본 열도 북해도 위쪽은 소련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부동항을 가지려는 소련의 정책과 북진해 아시아를 제국의 손에 넣으려는 일본은 부딪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은 대 러시아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역시 영토 일부를 할양받기도 했다. 승승장구 일본을 막아선 나라는 미국보다는 소련과 공산화 우려가 있는 중국이었다. 그들이 나서서 막았다기보다는 천황의 국가가 공산주의를 싫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중국이 좌우 군대가 내전을 벌이고 있는 틈을 타 중일전쟁 등 많은 전쟁에서 이겨 일부 영토의 조차권 등 많은 이권을 챙기기도 한다. 이때 우리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공산주의와 함께 생사를 함께하는 과정에서 조선에도 공산주의 사상이 자연스럽게 배어든다. 이는 결국에는 한국전쟁이라는 싸움에 휘말린 독립운동가들의 비극이다. 

부르조아 공산주의자 중 한 명인 박헌영은 공산주의 이론에 해박한 열렬한 공산주의자였던 모양이다. 이 책에서는 그의 여성 편력을 주로 다루고 있지만 당시 아내였거나 관련이 깊은 여성들이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자로 갈리는 운명을 직접 겪고 보고, 그 가운데 인물인 박헌영은 남로당(남한 노동당)을 이끌어 나중에 월북한 후 북한 외무상까지 지냈지만 한국전쟁 실패의 책임을 묻는 김일성에 의해 숙청 당한다. 김일성은 공산주의보다 정치적 술수가 더 뛰어났던 것 같다. 박헌영은 공산주의자로서 삶을 마칠 때까지 충실한 이론가였지만 정치에는 감각이 뒤졌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해방정국의 갈등을 설명하면서 좌우익의 갈등이 비극을 낳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좌익 내부의 갈등과 우익 내부의 갈등이 좌우익 사이의 갈등보다 더 심각했고 더 적의(敵意)에 차 있었으며 잔혹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해방정국을 더욱 비극의 길로 몰아갔다는 점이다. 몽양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해방정국의 희생자들 가운데 대부분은 이념이 다른 적대 세력의 손에 희생된 것이 아니라, 우익은 우익의 손에 죽었고 좌익은 좌익의 손에 죽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같은 이데올로기 집단 안에서도 중도 온건 노선을 배신이나 변절 또는 기회주의자로 보려는 극단적 도그마와 성숙하지 않은 이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p.80~81)


저자 : 신복룡(申福龍)


정치학자이자 인물 연구가.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동(同) 대학원을 수료하고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중앙도서관장, 대학원장, 석좌교수(1979~2012)를 지냈다.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1999~2001),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의 객원 교수(1985~1986)를 지내고, 독립유공자서훈심사위원(장)(1999~2023)을 역임했다. 저서로 『한국분단사 연구 : 1943-1953』(한울, 2001, 한국정치학회 저술상 수상) 『이방인이 본 조선 다시 읽기』(풀빛, 2002) 『한국정치사』(박영사, 2003, 5판) 『대동단실기』(선인, 2004) 『동학사상과 갑오농민혁명』(선인, 2006) 『The Politics of Separ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 1943-1953 (Edison, NJ : Jimoondang, 2008)』 『한국정치사상사』(지식산업사, 2011, 한국정치학회 인재(仁齋)저술상 수상) 『전봉준 평전』(들녘, 2019) 『한국사에서의 전쟁과 평화』(선인, 2021) 『잘못 배운 한국사』(집문당, 2022) 『이방인이 본 조선의 풍경』(집문당, 2022) 등이 있다.

역서로 『외교론』(H. Nicolson, Diplomacy, 1979) 『군주론』(N. Machiavelli, The Prince , 1980) 『칼 마르크스』(I. Berlin, Karl Marx , 1982) 『모택동 자전』(E. Snow, Red Star over China : Genesis of A Communist , 1985) 『묵시록의 4기사』(E. Penchef, Four Horsemen, 1988) 『한국분단보고서』(1992, 공역) 『현대정치사상』(L. P. Baradat, Political Ideologies, 1995, 공역) 『정치권력론』(C. E. Merriam, Political Power, 2006) 『입당구법순례행기』(옌닌, 2007) 『임동(하야시 다다쓰) 비밀회고록』(2007, 공역) 『한말외국인기록』 전23권(2018, 일부 공역) 『삼국지』 전5권 (집문당, 2021)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전5권 (을유문화사, 2021) 『한국분단보고서』 전3권(2023, 일부 공역) 『신·구약 성경 : 교감』(Naver/blog/shinbokryong=신복룡 성경, 2023)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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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로 보고 그림으로 듣는 음악인류학 - 불교와 세계종교
윤소희 지음 / 민족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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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종교를 가지지 않아서인지 종교에 관한 책도 별로 읽은 기억이 없다. 다만 서양의 문학, 철학, 미술, 음악 등을 다룬 서적에는 기독교 신앙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독교를 접했을 뿐이다. 이 때문에 불교 음악은 스님들이 염불하는 것을 제외하고 따로 귀 기울여 들은 적이 없는 것 같다. 다만 학교 다닐 때 국어 교과서에 실린 「승무」를 읽고서야 불교에서도 음악을 중요시하는구나 짐작했을 뿐이다. 불교 방송이 있다는 것도 알지만 불교 음악을 따로 들은 적이 없다. 우리 한민족이 음악을 즐긴다는 말은 어렸을 때부터 들은 말이지만 독자는 스스로 음악 공부를 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음악에는 문외한이다. 특히 최근(거의 20년이 넘었지만) K-팝이 세계를 놀라게 할 정도로 퍼지고 나서야 "우리가 음악적 재능을 가졌다는 게 정말 맞나 보다" 싶었다. 

이 책 『소리로 보고 그림으로 듣는 음악인류학』(이하 『음악인류학』)은 불교 음악에 대한 저자 윤소희의 심층 고찰이다. 서양이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 중심이듯 한국인은 오랜 세월 불교와 함께 해왔다. 불교의 교리나 경전의 내용이 사람의 삶과 만물의 이치를 밝혀 삶에 적용한 데 적절했기에 불교를 국교로 한반도 삼국시대에 승인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전에는 유교(종교인지 정확히 모르지만)의 가르침을 받아 우리 삶에 적용했다고 알고 있다. 유교는 현실에 치중하는 학문으로, 동양 각국에 정치, 사회적으로 깊이 뿌리 내렸기에 국가의 이념은 유교에 의해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불교보다 먼저 유교의 가르침대로 살았을 것으로 독자는 추정한다. 유교는 공자의 학문을 후학들이 계승 발전시켜 주자학, 성리학 등으로 이름을 달리 했지만 뿌리는 공자로부터 유래된 것이라고 책을 통해 읽은 적이 있다. 문자를 중국에서 사용하는 한자를 빌려 그대로 우리가 사용하고, 우리 발음으로 고쳐 발음했던 것으로 안다. 그러나 삼국시대부터는 불교가 전래(중국을 통해)되면서 한반도의 고구려, 백제, 신라는 모두 불교 국가였다. 불교는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 때까지 국교로 인정됐으며 1,000년 이상을 한민족 정신의 뿌리를 단단하게 해주었다. 국가의 유지나 우리의 삶의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한 것이다.

저자 윤소희는 이 책에서 한민족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 음악을 좋아한다고 전제한다. 흥이 넘치고 떼창에 열광하는 한국인이라고 말한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서양음악을 뒤늦게 접하고 공부했지만 여러 악조건을 무릅쓰고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계속해서 나온 것도 우연히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세계 음악계를 압도하는 음악적 재능은 어디서 오는 걸까. 저자는 한국인의 유전적 DNA에 2,000년 우리 문화의 뿌리가 된 불교음악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음악과 사람, 종교와 문화를 이야기한다. 다양한 종교의 세계와 음악문화는 고대사에서 근현대사까지 아우르고 통섭하며 불교음악으로 귀결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책은 저자 윤소희의 화제의 연재 칼럼 〈불교와 세계 종교〉를 묶어 다듬었다. 저자는 불교음악 작곡자이자 음악인류학자로 세계를 여행하며, 다른 문화권의 종교음악과 비견되는 한국의 음악을 폭넓게 탐색하고 있다. 저자의 통찰력과 위트가 엿보이는 목차 구성도 흥미롭다. 여러 나라의 종교와 음악을 경험하며 이해를 돕는 이미지와 직접 찍은 사진도 볼거리인데다, 이야기를 들려주듯 읽히는 구어체 문장에서도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범음성을 찾아서」란 제목의 〈서문(책을 내며)〉을 통해 저자는 "불교 경전에는 '붓다의 음성'에 대한 내용이 많다"고 전제한 뒤 "세계 어떤 종교에도 종조의 음성에 대해 이토록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경우는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저변에는 '음성행법'으로 범아일여의 경지에 들었던 고대 인도문화가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런데 한국 불자들은 음악을 번거롭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는 명상음악, 체력 증진에 도움이 되는 음악, 불안과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치유음악 등 신통한 묘력의 음악들이 있지만 불교음악의 꽃밭에 벌들은 왜 조용한 것일까. 통일신라 시대에 거사들이 유행처럼 들고 다니던 비파는 건달바의 악기가 되어 사라져 버렸고, 고려 시대 사찰의 악가무는 파계승을 놀리는 탈춤이 되었다. 그 사이 유럽은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했고,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의 불교음악은 시대 흐름과 함께 다양한 음악으로 변모했다. 음악인류학의 관점으로 세계 여러 나라의 음악을 연구해 보니, 불교야말로 가장 '음악적인 종교'임을 알게 되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불교는 미술, 기독교는 음악'이라고 평가할까? 여기에는 조선 시대 억불정책으로 숨죽여 살아온 훈습의 탓도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다른 종교의 예배당은 시내 중심에 위치한 반면, 한국 사찰은 산골에 피신해 있는 모양새다. 종교처에는 고요함도 있어야겠지만 신난 흥겨움도 있길 바란다. 미래 과학의 시대에는 '호모사피엔스'가 무상·무아의 연기설이 상식이 될 정도로 눈 밝은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앞으로 모든 종교는 스마트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기쁨과 환희의 꿀을 내뱉는 꽃이 되면 좋겠다. 종교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는 한편 법열의 꿀을 내어놓는 꽃들이 되어야 한다는 게 저자 윤소희의 생각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세계 어느 민족보다 한국인은 음악을 좋아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칼럼 〈불교와 세계 종교〉를 연재하는 동안 지면의 한계로 다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과 사진 자료를 대폭 보완해 다른 문화권의 종교음악과 비견되는 우리의 음악을 폭넓게 탐색하고 있다. 

이 책은 2부 10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인도·중국·한국을 통섭하다〉와 2부 〈이슬람·기독교·불교를 통섭하다〉 등이다. 1부에는 1장 「인도의 음성행법과 붓다의 범음성」, 2장 「유교와 도교의 제사와 음악」, 3장 「중국음악에 유연성을 부여한 서역음악」, 4장 「속마음이 달랐던 조선의 악정(樂政)」, 5장 「한국인의 기질과 음악」이 불교가 중국을 거쳐 우리에게 전래되면서부터 우리의 불교 수용, 확장, 쇠퇴에 이르는 과정을 짚어내고 있다. 또 2부는 1장 「아라비아와 인도의 만남 수피 춤」, 2장 「인류 문명과 호모뮤지카」, 3장 「다르지만 통하는 기독교와 불교음악」, 4장 「같은 혈통 다른 나라, 한·일 풍속과 음악」, 5장 「소리를 보고 그림을 듣다」 등으로 나뉘어 불교음악을 전해준다.

책의 서두(1부 1장)에서는 세계 종교의 출현과 창시자의 음성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짚어낸다. 책에 따르면 호모사피엔스의 진화 단계에서 고등 종교의 출현 시기는 생활 양식, 정치와 학문, 문화와 예술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혁명기였다. 서기전 500년 전후 세계 각지에서 발현한 이들 종교의 공통점은 '말씀'이라는 도그마(dogma, 교리)가 있어 유교·기독교·불교와 같이 '가르치다'라는 의미의 '교(敎)'자가 붙는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로고스(logos)요, 그 존재 형식이 말씀이라, 기독교 성서에서 "태초에 말씀이 있으셨다"라고 하며, 그 말씀의 육화(肉化)가 예수의 탄생이었다.

특정 창시자가 없는 힌두교는 브라흐만의 존재 형식이 '말씀'이었고, 말씀을 읊는 사제들의 음성을 신성의 실체로 간주하였다. 그들은 복잡한 제사 의식을 위해서 고도의 훈련을 쌓았고, 우주의 궁극인 '범(梵, 브라흐만)'과 자신의 실체 '아(我, 아트만)'가 합일되는 범아일여를 추구하였다. 이를 위해 초자연계의 보이지 않는 힘과 신성에 나아가기 위한 공진 훈련이 사브다비드야(聲明)였다. 이러한 학습으로 음성에너지의 효력을 알게 된 사제들은 갖가지 진언으로 주술을 부리며 민중을 현혹하고 나아가 신의 대리자로서 절대적 권위를 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코살라 왕국의 석가모니가 나타나서 범(梵)도 아(我)도 없다고 하였으니 그야말로 수천 년간 쌓아온 힌두 사제들의 절대 아성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핵염기 DNA과학이나 시공간의 양자역학도 없던 시절 "모든 존재는 연기(緣起)의 결과일 뿐 아트만이 없으며 시공간 또한 고정된 실체가 아님"을 설하였고, 그 이치를 처음으로 알아차린 다섯 비구가 있어 《초전법륜경》이 설해졌다. 이후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브라만이었던 범마유도 그를 찾아갔다.

석가의 탄생과 불교가 창시된 과정을 간략하게나마 언급되고 있다. 이후 부처의 음성은 '말'과 함께 가르침으로 받아들여진다. 일반인들은 정치나 비즈니스를 위해서 음성과 말씨를 조절하며 다듬지만, 붓다는 존재 자체의 울림이었으니 말하자면 '무의(無爲)의 공명'이었다. 불교의 각종 경전은 부처의 설법을 담은 것으로 세계 어떤 종교에서도 종조의 음성에 대해 이토록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경우는 없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붓다의 말슴 중 그 율조가 가장 유려한 것은 '가타(시)'이다. 가타는 '노래하다'는 산스끄리뜨 어근 '가우'의 명사형으로 법언 자체가 아름다운 음악이었던 데서 비롯된다. 가타를 모아 놓은 《법구경》은 붓다의 노래 모음집이라 할 만큼 운율이 아름답다. 그러므로 붓다의 말씀을 소리로 기록한 빠알리 경전을 외는 남방 스님들의 수행처에서는 수시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이러한 점에서는 석가모니는 출세간의 음유시인이자 인류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싱어(singer)이며, 범음성의 초대 어장(魚丈)이었다. 석가모니 붓다의 법언 율조가 중국에 들어와서는 찬탄의 기능이 강조돼어 '범패'로 불리게 되었다. (중략) 따라서 범패의 원음은 '붓다의 음성이요, 범패의 시작은 '붓다의 말씀'에서 비롯되었다. 역사가 흐르면서 범패의 '범'은 '신성하다, 청정하다'는 뜻으로도 통용되어 짓소리('짓는 소리'라는 뜻으로 가락이 길고 규모가 크며 장엄하다는 의미)를 '범음'이라 하고, 범패를 '범음범패'라고도 하였다. 여기에는 탈세속적, 성스러움, 여법함과 같은 의미들이 있다."(p.24~25)

저자의 학문적 음악탐구는 ‘붓다의 소리’에 방점이 있다고 독자는 이해한다. 앞서 이 책의 구성 자체가 '붓다의 소리는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부에서는 인도·중국·한국을 통섭하며, 각국의 문화와 종교, 음악을 살펴보고 2부에서는 이슬람·기독교·불교 다양한 종교를 아우르고 분석하며 붓다의 소리를 찾아 나섰다고 기술한 바 있다. 불교계나 불교음악을 연구하는 사람들, 최소한 불교 신자들은 훨씬 더 깊은 지식을 요구할지 모르지만 일반 독자들은 불교가 우리의 춤과 노래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에 더 관심이 많고, 가무를 즐긴다는 말대로 우리 조상들의 가무와 불교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더 관심을 갖는다. 당연히 연구자인 저자 윤소희의 순레길에는 '우리의 음악을 찾아서'라는 의식이 담겨 있다. 이 책에서도 1부 4장 「속마음이 달랐던 조선의 악정(樂政)」, 5장 「한국인의 기질과 음악」과 2부 4장 「같은 혈통 다른 나라, 한·일 풍속과 음악」, 5장 「소리를 보고 그림을 듣다」에서 깊고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이 가운데 '코리안 떼창과 일본의 사찰 교훈극'이라는 항목에서 독자가 관심 가는 부분을 다뤘다.

2부 4장에 담긴 이 글은 "불교계에서는 공립 합창단의 종교 편향에 대해 불만이 많다"고 운을 뗀다. 독자로서는 처음 듣는 말이지만 이 부분은 공론화된 부분인 것 같다. 이에 따르면 여론이 더욱 거세어 총무원 사회부에서 불교음악원 연구팀에게 이 문제에 대한 분석을 의뢰했다. 처음에 몇몇 프로그램들을 보니 그간 익혔던 베토벤·모차르트·헨델의 미사곡이나 레퀴엠들이 보였다. 예술곡인데 너무 과민한 것 아닌가 싶었으나 전국의 연중 프로그램을 조사해 보니 일반적인 연가(戀歌)와 외국어 제목들이 실제로는 성경 속 이야기나 라틴어 제목의 찬송가들이어서 기독교 음악에 편중됐다는 판단이 들었다.

주변의 몇몇 음악전문가와 학계의 의견을 들어보니 '기독교는 음악, 불교는 미술, 우리가 실력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음악 인류학자로서 지구촌 인류문명과 음악의 면면을 연구해 온 바에 의하면, 불교는 으악 그 자체라고 할 만큼 음률의 종교이고, 경전 자체가 합송에 의해서 성립되었는데 이 무슨 소리인가. 부처님의 말씀 자체에 율이 있으므로 굳이 작곡가의 기술을 빌리지 않더라도 경전 자체가 음악이 되는 경구들이 많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할 말이 많다는 듯 많은 말을 쏟아낸다. "중국의 역장에는 반드시 범패사가 있었다. 경전 자체의 율조를 중시하는 것은 기독교 성경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다. 남방불교에서 일반 신도들이 함께 외는 자비송 '메따'는 세계적 명상음악이 되었다. 이러한 데에는 부처님의 설법어에 율조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저자는 석가모니 붓다를 '불교 최초의 유랑시인이자 싱어'로 표현한 적이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어 21세기 세계 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K-팝에는 한국인들의 유별난 음악적 기질이 있다고 강조한다. '인간 로큰롤'이라 불릴 정도로 괴팍한 성격의 노엘 갤러거(1967~)가 한국인의 떼창에 대한 소문을 듣고는 'Crazy Korean'이라고 독설을 내뱉었다. 그러나 2006년 한국에서 공연을 하며 코리안 떼창을 보고는 그의 마음이 180도로 바뀌어 "한국인은 즐길 줄 안다"며 가는 곳마다 엄지척을 하였다고 설명한다. 또 미국의 3인조 인디밴드 'Fun'이 2013년에 안산밸리 록페스티벌에 참가해서 〈We are young〉을 부르다 한국인들의 떼창에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설명한다. 그때의 감동이 얼마나 컸던지 2년 후에는 아예 〈Korean Song〉을 만들어 왔다고 소개하기도 한다. 당시 '···코리아'를 격하게 외치는 엔딩은 그야말로 류이스와 한국 팬들의 진심과 열정이 한데 어우러진 감동의 도가니였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만약 이 대목을 그냥 말로 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의문과 함께···. 한국인의 이러한 기질을 헤아릴 때라야 불교가 그들의 삶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한국인의 떼창 에피소드는 원효 대사 때부터 이어진다. 원효의 〈무애가〉를 따라 '나무아미타불'을 노래하며 표주박 춤을 추던 신라인들부터, 이 민중의 춤이 일본으로 건너가 〈봉오도리〉가 되었단다. 이 봉오도리는 일본의 『불교음악사전』에도 그렇게 적혀 있다고 한다.


비파’ 하면 떠오르는 불교의 이미지로 인하여 조선 후기에 사라진 반면 군자의 저음을 숭상한 유생들의 취향에 맞는 거문고가 득세하게 되었다. 앞서 중국음악의 역사에서 보았듯이 중국의 무겁고 경직된 음악을 말랑 젤리로 만든 서역 음악이었듯이 불교의 유연하고 자유분방한 감성을 우아하게 표현해낼 수 있는 악기로 비파가 제격이었다. 그러나 억불이 당연지사였던 유생들이 공자의 금(琴)보다 더 무겁고 중후한 거문고로 영산회상을 탔다. 이렇듯 영산회상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에는 거문고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p.347) - 「허허 탕탕, 세상을 잊게 만드는 거문고」 중에서


저자 : 윤소희


한양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음악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대우교수로 있으며 현재는 한국불교음악회 학술위원장을 맡고 있다. 세계를 다니며 현지 조사를 통한 연구로 학문적 성과를 일궈가며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 저서는 『국악 창작곡 분석』·『국악 창작의 흐름과 분석』· 『동아시아 불교의식과 음악』·『범패의 역사와 지역별 특징- 경제 · 영제 · 완제 어떻게 다른가』·『문명과 음악』·『문화 와 음악』·『세계 불교음악 순례』·『한·일 불교의례와 쇼묘』· 『한·중 불교의례와 범패』 등이 있다.

연구논문은 「팔리어 송경율조에 관한 연구」·『화엄경』 「입법계품」의 音과 字에 대한 고찰」·「범어범패의 율적 특징과 의례 기능」·「불교 의례활동과 사원경제」·「티벳 참 의례와 몸짓 만다라」·「보로부두르 주악도와 한국의 불교 악가무」·「향품범패의 장르적 규명과 실체」·「세종·세조 악보와 佛典·梵文의 관계」·「天台?明과 眞言?明에 관한 연구」·「천수다라니 범문원리와 한·중·일 율조 비교」·「삼국유사의 음악과 악기」 외 다수. <윤소희 카페>(http://cafe.daum.net/ysh3586)에서 좀 더 다양한 자료들을 만날 수 있다.

E-mail : ysh3586@hanmail.net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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