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이 필요할 때 수필 한 편
오덕렬 지음 / 풍백미디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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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힐링이 필요할 때 수필 한 편』은 수필가 오덕렬이 쓴 수필 모음집이다. 저자가 언택트 시대 코로나 팬데믹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로 지친 독자들을 위해 힐링의 시간을 갖도록 그간 써온 수필과 새로 쓴 45편을 모아 펴냈다. 저자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모자도(母子圖), 사랑방, 간고등어, 엣세(ESSAIS) 등을 포함해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고향과 어머니에 대해, 2부에서는 연륜이 묻어나는 삶의 지혜를, 3부에서는 봄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시작과 설렘을, 4부에서는 말과 생각, 수필에 관해 담담히 풀어냈다. 또한 작품 전체에 걸쳐 우리말의 멋스러움을 느낄 수 있고, 탯말이라고 할 수 있는 향토어에 대한 저자의 애정을 엿볼 수도 있다. 특히 4부에는 수필론이라 할 수 있는 저자의 수필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담았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나는 무랑태수, 즉 문학의 왕으로 진화한 <창작수필>입니다’로 인사를 시작한다. 화자를 1인칭 주인공 ‘수필’로 설정하고 수필론에 관한 강의가 시작된다. '엣세(Essais)'가 되고, 또 ‘창작문예수필’이 되어 수필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또 작가가 스스로 의장이 되어 482살 먹은 몽테뉴(프랑스)와, 892살 먹은 홍매수(중국), 8살 먹은 문창수(창작문예수필)를 초대하여 ‘수필의 허구’에 대한 논쟁도 벌인다. 논쟁 결과 <합의문>을 작성한다.





<합의문>

하나, 에세이의 시조는 몽테뉴이고, 창작에세이는 찰스 램에서 싹텄다. 두 장르가 함께 발전하도록 힘쓴다.

둘, ‘붓 가는 대로’는 잡문(메모)론으로 단 한 줄의 창작론도 없다. 이에 우리는 이를 공개 부정, 폐기한다.

셋, 창작문예 수필문학이 제3의 창작문학이 되면서, 이제 변방문학 시대를 청산하고 문학의 중심부에 서게 될 날을 기대한다. 제3의 창작문학은 창작의 마루에서 <산문의 詩>로 태어날 것이니, 작품 창작과 이론 개발에 온 힘을 쏟는다.(p. 291)

기발한 아이디어다. 또 저자의 수필에 대한 애정과 관점을 드러내는 것으로 다른 수필집에서 볼 수 없는 수필문학론이다. 저자는 이 글에서 수필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엣세(Essais)

1) ‘시험하다’라는 뜻으로 ‘인포멀 에세이’라고도 한다.

2) 몽테뉴가 1580년에 시작한 것으로 주로 명상적, 주정적으로 사색하는 경향을 보였다.(이 책의 주제는 '내 자신'이다)

에세이(Essay)

1) 포멀 에세이.

2) 영국으로 건너가 베이컨에 의해 영국 에세이의 비조(鼻祖)가 되었다.

3) ‘객관적 소재’로 사회적인 문제를 다룬다.

찰스 램에 와서 1인칭에서 3인칭으로 바뀐다.

1) ‘창작적인 변화를 용인’했다.

2) 가명을 써서 소재를 객관화시키기도 했다.

3) 의인법을 쓰기도 하면서 ‘에세이도 진화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창작수필은 원관념 소재를 비유-은유·상징적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대상 사물과 나누는 ‘마음의 이야기’다. 시적 발상의 산문적 형상화다. 수필론을 이렇게 구성해 놓은 발상이 신선하고 재미있다.



참고로 독자는 어렸을 때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피천득의 '수필'이란 제목의 글 일부를 소개한다.

"수필(隨筆)은 청자 연적(靑瓷硯滴)이다.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청초(淸楚)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女人)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 속으로 난 평탄(平坦)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포도(鋪道)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住宅街)에 있다. 수필은 청춘(靑春)의 글은 아니요, 서른여섯 살 중년(中年)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情熱)이나 심오한 지성(知性)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隨筆家)가 쓴 단순한 글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통칭하는 에세이(essay)는 중수필(formal essay), 미셀러니(miscellany)는 경수필(informal essay)이라 한다. 전자는 어느 정도 지적(知的)·객관적·사회적·논리적 성격을 지니는 수필을 말하며 후자는 감성적·주관적·개인적·정서적 특성을 가지는 신변잡기, 즉 좁은 의미의 수필을 말한다. 요즈은 경중을 가리지 않고 에세이로 불리우는 것 같다. 중수필의 부재 탓인지, 경수필의 확장 탓인지 모르지만.

『시사상식사전』에 따르면 영어의 essay는 프랑스어의 essai에 그 기원을 둔다. 프랑스어의 '에세(essai)'는 '시도' 또는 '시험'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 말은 '계량(計量)하다' '음미(吟味)하다'의 뜻을 가진 라틴어 '엑시게(exigere)'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essai'라는 말을 작품 제목으로 처음 쓴 사람은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이다. 몽테뉴는 원래 법률을 전공한 법률가였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의 보르도 법원에서 법관으로 근무했다. 그러나 그는 법관 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법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는 지신의 성(城)에 은거하여 사색과 저술 활동에 몰두했다. 이때 그는 유명한 『수상록(隨想錄)』을 저술하였는데, 바로 이 '수상록'이 불어로 'Les Essais'인 것이다. 그리고 이 'Les Essais'가 이 세상에 처음 나온 때는 1580년이었다.

한편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은 1597년에 '베이컨 수필집'을 초판 발행하는데, 이 후 1612년과 1625년에 각각 수필 작품들을 추가로 수록하여 발행되었다. 그래서 원래는 10편이었던 수필 작품수가 1625년에는 다시 2배 이상으로 늘어난 58편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추고(推敲)도 거듭하였다.

베이컨의 에세이는 중수필의 대표적 작품으로 꼽힌다. “결국 올라간 자리는 미끄러운 곳이다. 그렇다고 뒤로 물러선다면 굴러 떨어지거나, 적어도 빛에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 이것은 우울한 일이다.” 베이컨 자신의 삶, ‘미끄러운 곳’에서 미끄러져 넘어지고 만 삶을 떠올리게 만드는 ‘높은 지위’라는 제목의 글이다. 베이컨은 또 "아는 것이 힘이다"(Knowledge is power)라는 말로 유명하다.



이 사전 분류에 따른다면 이 책 『힐링이 필요할 때 수필 한 편』는 미셀러니에 속할 터다. 다만 4부는 에세이에 속한다.

그러나 사전적 의미를 떠나 수필의 의미는 '붓 가는 대로' 쓰는 것이다. 좀 의역한다면 '마음 가는 대로'이다.

중요한 것은 작가의 마음이 독자들의 마음에 얼마나 와 닿느냐는 것일 게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매우 잘 쓴 수필임에 틀림없다. '잘 쓴 수필' 하면 20세기 세대는 앞서 언급한 피천득의 '인연'을 꼽는다. 아사코(일본 여성)에 대한 추억을 담담히 써내려가 독자들의 가슴속에 명작으로 남아 있으니. 이처럼 오늘날 에세이는 경중의 구별 없이 작가의 마음과 독자의 마음이 만나는 지점을 잘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작가에게나 독자에게나 모두 그렇다. 마음이 통한다면 무슨 내용을 담든 글은 매력적이고 궁극적으로 잘 쓴 수필로 남을 터이다.


1부. 고향, 고향은 어머니이다

1부의 내용을 읽어보면 우리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저자가 연세에 독자가 경험하지 못한 옛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다행히도 부모님께 들어왔던 이야기라 그리 어렵지는 않다. 또 우리 소설 속에도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 생각나기도 한다.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지만 독자는 저자의 글의 의미나 배경을 쉽게 이해하도록 썼기 때문이리라. 그것은 고향이고, 어머니이다.



『힐링이 필요할 때 수필 한 편』에 실린 작품들은 디지털시대의 즉흥적 감성보다는 아날로그적 감성에 더욱 어울리는 수필들로, 현대를 살아가는 바쁘고 지친 독자에게 잠시나마 삶의 활력을 안긴다.

책 제목처럼 '힐링이 필요할 때' 차분히 '수필 한 편' 읽는 것도 언택트 시대에 걸맞은 좋은 휴식 방법이 될 것이다. 그리 길지 않은 수필 한 편에 많은 감동과 힐링을 담았다. 오덕렬 수필가는 수필의 현대문학 이론화 운동과 창작수필의 외연 확장을 통한 수필의 문학성 회복에 힘쓰고 있으며, 13년째 계속된 방언 수집과 연구를 통해 〈전라방언 문학용례 사전〉 탈고를 눈앞에 두고 있다.


<어머니의 치성>

이 글은 종교와 상관없이 마음 속에 의지하는 나만의 절대신에게 비는 정성이 담겨 있다. 그 정성 어린 마음이 자식들을 무탈하게 해주는 원동력이었으리라.


<전화>

저자는 이제 돌아가신 어머니와 더 이상 안부전화하며 통화할 수 없다. 돌아가신 어머니, 선산으로나마 남아 있어서 다행으로 여긴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독자들도 저자의 심경을 이해하는 데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이 수필집을 읽다보면 요즘은 들으면 생경하다는 느낌을 받는 단어들이 많이 나온다. 어항, 워낭소리, 간고등어, 보리밥등 저자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는, 예전에 많이 사용하는 단어들이다.

생활하다 보면 많은 것을 잃었을 때, 많은 것을 얻으며 내가 성장해가는 것을 느끼게도 된다. 또한 닥치는 모든 일에는 득이 있고 실이 있다. 사자성어도 많이 나오지만 독자는 쉽게 알 수 있지만, 한자에 무감(無感)한 젊은 세대는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꼭 필요한 사자성어, 즉 어떤 일에 어떤 말이 가장 어울릴지를 저자가 생각하고 또 생각해 쓴 단어이니 독자로서는 그 말 뜻에 집중하기보다 말의 뉘앙스나 어감 등에 집중해 글에 몰입해보는 것도 새로운 독서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천천히 생각해보면 저자와 공감하고 저자가 표현하는 것들은 모두 우리의 잠재된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다만 자주 쓰지 않아서 즉각 그 뜻을 헤아리기 어려울 뿐이다. 저자가 '하루에 수필 한 편'씩 읽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말의 의미가 새삼 되새겨진다.


싸목싸목...

싸목싸목...


<겨울 싱건지>

"내가 작은방에서 건너온 속내를 알고는, 아랫목에 싸두었던 밥그릇을 꺼내 놓으셨다. 저녁 먹고 남은 밥을 묻어두었던 것이다. 바느질손을 밀치고 부엌에서 무청을 달고 있는 싱건지를 대접에 담아오셨다. 밥 한 덩이와 싱건지 한 대접, 호롱불 밑에서 격식도 없이 달게 가무렸다. 숟갈을 이용해서 박속나물 훑어내듯 떼어내어 한 입 넣고 아삭아삭 깨물어 먹었다. 간이 삼삼한 싱건지와 온기가 남아 있는 밥의 궁합은 일품이었다. 통째로 놓고 먹던 그 담백한 맛은 원초적인 맛이었다. 모든 맛의 원형이 아니었을까. 지금도 그 싱건지를 생각하면 입 안에 침이 한입 돌곤 한다."(pp. 193~194)



저자 : 오덕렬


평생을 교직에 몸담은 교육자이자 수필가로, ‘방송문학상’(1983) 당선과 한국수필 추천(1990)으로 등단하였고, 계간 ?散文의詩?를 통해 ‘산문의 시 평론’ 신인상 당선(2014)과 ‘산문의 시(창작수필)’ 신인상 당선(2015)으로 창작수필 평론가와 창작수필가로 재등단하였다. 수필집 〈복만동 이야기〉 〈고향의 오월〉 〈귀향〉 〈항꾸네 갑시다〉, 수필선집 〈무등산 복수초〉 〈간고등어〉, 평론집 〈수필의 현대문학 이론화〉 등을 펴냈다. 광주문학상과 박용철문학상, 늘봄 전영택 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모교인 광주고등학교에 교장으로 재임 시절 ‘光高문학관을 개관하여 은사님 16분과 동문 작가 98분을 기념하고 있으며, 광주고 문학상을 제정하여 매년 5월에 광주전남 중·고생을 대상으로 백일장을 개최하고 있다. 현재 〈전라방언 문학 용례사전〉 편찬 중이며, 수필의 현대문학 이론화 운동으로 수필의 문학성 회복과 창작수필(散文의詩)의 외연 확장에 힘쓰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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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조차 아름다운 당신에게 - 상처받기 쉬운 당신을 위한, 정여울의 마음 상담소
정여울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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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心理), 마음, 정신(精神)을 정확하게 구별하지 못하면 심리학 서적이나 정신분석학, 마음 치유 관계된 서적을 읽고 이해하기 어렵다. 세 가지는 독자도 정확한 개념 정리가 안 되어서인지 지금도 헛갈려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에 혼동이 온다.

마음 - 지(知), 정(情), 의(意)로 대표되는 인간의 정신작용의 총체, 또는 그 중심에 있는 것. '정신'과 동의어로 이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정신이 로고스(이성)를 체현하는 고차적인 심적능력으로 개인을 초월하는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면, '마음'은 파토스(정념)를 체현하며 보다 많이 개인적ㆍ주관적인 의미를 가진다.

정신-인간의 마음이나 생각, 의식. 사물을 느끼고 생각하며 판단하는 능력이나 그런 작용. 육체나 물질에 대응하는 의미이다. 어떤 사물의 근본을 이루는 의의나 이념의 의미로도 쓰인다.

심리학(心理學, psychology)은 인간의 행동과 심리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경험과학의 한 분야를 뜻한다. 인간과 동물의 행동이나 정신과정에 대한 다양한 질문의 답을 찾는 과학 중의 하나가 바로 심리학이다.



원래 마음이라는 개념은 미개사회에서 영혼불멸의 신앙과 결부되어서 생겨나고, 그 연장상에 영혼의 본태를 둘러싼 여러 가지 종교적 해석이나 영혼 또는 마음이 육체의 어디에 머무르냐는 즉물적 의문을 제기하였는데 고래(古來)의 소박한 논의를 통람하면, 인도나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마음의 자리를 심장에서 구한 경우가 많은데, 이는 인간이 살아있는 한 심장은 고동을 계속하며, 사망하면 그 고동이 정지한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였기 때문으로, 마음 심(心)이라는 한자도 심장의 형태를 딴 상형문자이다. 한편 마음을 심장과 거의 동일시한다는 점에서는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로, 영어의 heart, 독일어의 Herz, 프랑스의 cuœr 등이 모두 마음과 심장의 양쪽을 의미하는 것도 그 영향이라고 생각된다.

단, 의학사상이 발달한 그리스ㆍ로마 시대에는 히포클라테스가 <뇌에 의해서 우리들은 사고하고, 견문하고, 미추를 구별하며, 선악을 판단하고, 쾌ㆍ불쾌를 자각한다>라고 한 이후, 마음의 자리를 뇌나 뇌실에서 구하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작가 정여울은 여행을 좋아한다. 사실 독자도 그를 여행서를 통해서 만났다.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이 그것이다.

그의 여행은 문학의 일부로 시작했지만 '여행 작가'라는 오해(?)도 받았다. 물론 작가는 그 별칭을 싫어하진 않지만 그냥 '작가'란 말을 더 좋아하는 듯하다.

"저에게는 여행도 문학의 일부였어요. 제 관심은 항상 문학이었고, 문학을 벗어나서 살아본 적은 아직 없어요. 저에게는 문학과 여행이 결국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지요."

네이버 포스트 <작가 정여울의 서재>에서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상처 입은 여린 마음을 글로써 어루만지는 작가 정여울. 그는 심리학이라는 주제를 인문학과 접목시키며 내면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는, 하지만 불시에 고개를 들이밀어 마음을 어지럽히는 아픔의 자국들을 따듯하게 보듬어왔다. 이 책 『상처조차 아름다운 당신에게』는 그러한 정여울의 ‘토닥임’이 가장 빛을 발하는 심리 에세이다. 격월간 문학잡지 《Axt》에 연재했던 ‘정여울의 심리학 상담소’를 중심으로, 중독, 공포, 분노 등 우리를 무너뜨리는 인간의 세 가지 심리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룬 글을 함께 묶었다.



정여울은 이 책을 통해 오랜 시간 축적된 지난한 아픔들이 어른이 된 자신에게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나아가 어린 시절의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마음속 ‘내면아이’를 보듬는 과정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 있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역설한다. 또한 그간 융 심리학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온 만큼, 다양한 문학 작품과 신화, 영화 등을 심리학적 관점으로 풀어내며 건강한 마음 치유를 향한 길을 제시하고 있다. 정여울의 시선은 인간, 그리고 삶에 있다. 특히 억압되고 늘 피해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삶, 이를 극복해내는 과정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주저앉아 우울과 중독, 공포의 삶에서 해방되지 못한, 나약한 인간에 대한 한없는 사랑에 닿아 있다.

특히 이번 책이 갖는 특별함은 각 챕터가 끝나는 페이지에서 잘 드러난다. 바로 정여울이 묻고 독자가 답하는 ‘글쓰기 시간’. 작가가 글쓰기를 통해 위로받았듯, 독자들 또한 질문에 대한 답을 써내려가며 그동안 외면해온 내면의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자신의 감정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치유의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내가 지칠 때마다 커다란 힘이 되어주었던 심리학적 깨달음의 보물창고다. (……)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당당히 주문한다. 어떤 상처에도 굴하지 않는 내 마음의 면역력을 기르기 위해 결코 나 자신을 얕보지 말라고. 욕심나는 길보다는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길을 걸어보라고. 아무도 널 감시하지 않으니 걱정 말고 가장 나다운 길을 걸어가자고.”(- 본문에서)



작가는 우리를 가장 아프게 하는 상처가 곧 내적 성장을 가능케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이렇듯 정여울의 글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위로의 메시지만을 전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는 고백한다. 심리학을 공부하며 “내가 느끼는 불안과 우울은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이고,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매일 아픔을 경험하면서도 용감하게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그렇기에 심리학은 “건강한 사람들, 괜찮은 척하는 사람들, 정상과 비정상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경계를 서성이는 보통 사람들에게도” 꼭 필요한 학문이다. 그 동안 간과하고 덮어버린 수많은 마음의 자국을, 묵인하고 지나쳐버린 수많은 아픔을 일상에서 치유할 수 있도록 내면의 힘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작가는 자신이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아픔을 스스로 돌보기 위해 심리학이라는 학문을 붙들었고, 끊임없는 공부와 사유의 시간을 거쳐 끝내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될 수 있었다.

‘상처 입은 치유자’는 자신이 그러한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타인의 아픔에 더 잘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나는 ‘상처 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라는 개념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 상처 입은 사람은 상처의 본질을 알기에 다른 사람의 상처를 돌볼 수 있는 힘도 가질 수 있게 된다. 내 상처를 치유하고 싶어서 빠진 심리학이 이제는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소중한 통로가 되었다.”(- 본문에서)



무엇보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은 ‘내면아이 입양하기’이다. 내면아이는 어린 시절 때 받았던 상처를 미처 돌보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버린 나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마음 깊숙한 곳에 단단히 자리 잡은 내면아이를 양지로 끌어내어 마주하는 과정은 굉장히 고통스럽지만, 트라우마를 극복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통과의례’이다. 그렇게 내 안의 내면아이를 무사히 입양해야만 비로소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평생 나를 괴롭혀온 과거의 아픈 기억들을 털어내고 찬란한 빛을 향해 날갯짓을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치유자로 거듭난다.


“나는 열한 살짜리 내면아이가 울고 있다는 것을 서른이 넘어서야 발견했다. 그때 나는 열한 살짜리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기 시작했다. (……) 지금은 아무도 너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지만, 반드시 좋은 친구가 생길 거고, 너는 좋은 사람이 될 거고, 그리고 또 훌륭한 인연들을 많이 만나게 될 것이고, 지금의 네가 겪고 있는 그 상처가 결코 전부가 아니라고.”(- 본문에서)



그렇다면 상처를 가장 건강하고 아름답게 승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정여울은 바로 이 지점에서 고통을 허용하는 기쁨, 슬픔까지도 감수할 수 있는 희열, 블리스(bliss)의 중요성을 되짚는다. 블리스는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내적 자원과 회복탄력성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블리스가 ‘글쓰기’라고 말한다. 아픔을 영감으로 승화시키는 창조적인 에너지. 우리는 자신의 그림자와 대면하는 글쓰기를 통해 점점 더 강해지고 유연해질 수 있다. 각 챕터마다 독자들이 직접 짧은 글을 써볼 수 있도록 ‘질문’을 달아둔 것도 그 이유에서다. 그 과정을 거치며 스스로 내면을 들여다볼수록, 외면하고 싶은 콤플렉스와 트라우마를 직면할수록 진정한 나 자신과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인문학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풀어내어 따스한 위로와 격려를 전해온 정여울은 이번 책에서도 한결같이 다정한 손길을 독자에게 건넨다. 사회화의 억압에 맞서 진정한 개성화의 길을 찾아가는 〈데미안〉, 끈끈한 자매애를 보여주며 그 어떤 불행에도 지지 않는 커다란 사랑을 선사하는 〈작은 아씨들〉, 이성을 뛰어넘는 사랑, 그리하여 마침내 나 자신을 다른 존재의 차원으로 비상하게 만드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프시케와 에로스……. 그 외 다양한 문학 작품과 영화를 ‘상처와 치유’라는 키워드로 다시 읽어보는 과정은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킴과 동시에 우리를 더 나은 길로 안내한다.


“《작은 아씨들》에서 충분히 건강한 사람, 상처 없는 사람, 완벽한 사람은 없다. 모두가 상처 입은 채로 타인을 도우며 살아간다. (……) 이 네 자매들이 마침내 서로의 결점마저도 보듬어주고, 트라우마와 콤플렉스마저도 치유하고, 더 큰 사랑으로 성장하는 이야기의 감동은 작품이 나온 지 150여 년이 지난 지금 더욱 크다. 고통과 슬픔조차 서로를 더 많이, 더 깊이 사랑하기 위한 기회가 된다.”(- 본문에서)



날카로운 것들로 가득한 뾰족한 세상에서 온전한 나 자신을 잃지 않는 법. 동그랗고 말랑말랑하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 유연한 마음으로 나를 지켜나가는 법. 그렇게 부드럽게 나를 바꿔나갈 수 있는 용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매일 아침, 스스로 주문을 외우는 일이다.

“나는 내 상처보다 강하다. 나는 나를 향한 비난보다 더 강력한 존재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그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부서지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을 조형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오래 아프고 깊이 외로웠던 당신에게”, 진심을 담아 이 책을 밀어 보낸다.


“오늘도 가장 아픈 트라우마와 힘겹게 씨름한 당신을 위하여 내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다. 내가 남긴 모든 글들이, 내가 당신에게 들려준 모든 이야기들이, 당신의 진정한 개성화의 밑거름이 되기를. 당신은 당신의 상처보다 강한 존재다. 당신은 당신이 견뎌낸 모든 고통들로 인해 더욱 눈부신 존재다.”(- 본문에서)



저자 : 정여울


매일 글 쓰는 사람, 쉬지 않고 꿈꾸는 사람. 자신의 상처를 솔직하고 담담하게 드러내며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작가.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학위를 받은 후 인문학, 심리학, 글쓰기에 대한 강연으로 전국의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붙잡지 않으면 자칫 스쳐 지나가버릴 모든 감정과 기억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문학과 여행과 심리학을 통해 내 아픔을 치유한 만큼, 타인의 아픔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글을 쓰고 싶다. 한때는 상처 입은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타인에게 용기를 주는 치유자가 되고 싶다. 인문학, 글쓰기, 심리학에 대해 강의하며 ‘읽기와 듣기, 말하기와 글쓰기’로 소통한다. 세상 속 지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글을, 한없이 넓고도 깊은 글을 쓰고자 한다.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정한 틀에 매이기보다 스스로가 주제가 되어 더욱 자유롭고 창조적인 글쓰기를 하고 싶은 목마름으로 네이버 오디오클립 [월간 정여울]을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독자와 소란하지 않게, 좀 더 천천히, 아날로그적으로 소통하기를 바란다. KBS 제1라디오 [백은하의 영화관, 정여울의 도서관]을 진행하고 있으며, [김성완의 시사夜]의 게스트로 출연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3회 전숙희문학상을 수상한 산문집 『마음의 서재』, 심리 치유 에세이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인문학과 여행의 만남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청춘에게 건네는 다정한 편지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인문 교양서 『헤세로 가는 길』, 『공부할 권리』, 등과 『빈센트 나의 빈센트』, 『마흔에 관하여』, 『월간 정여울』, 『공부할 권리』, 『그림자 여행』, 『그때, 나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 『시네필 다이어리』,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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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더 잘 될 거야 - 20대에 떠난 뉴질랜드, 싱가포르에서의 기록
오인환 지음 / 생각의빛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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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대했을 때부터 저자의 성격은 알 만했다. 독자는 읽을 책을 선택할 때 제목부터 본다. 독자만 그런 것이 아닐 터다. 전공서적이나 수험서 등을 선택할 때를 제외하고 평상시 읽을거리를 선택할 때 대부분의 독자가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그만큼 제목은 중요하다. 출판 편집에 종사하신 분들도 대부분 책 판매의 대부분은 제목에 의존하는 비율이 굉장히 높을 것이다. 정확하게 조사한 데이터는 없어도 수십 년 책을 읽어온 사람들은 제목의 중요성을 책의 내용보다 우위에 둘 수도 있다. 이 책 『앞으로 더 잘 될 거야』도 그런 의미에서 읽었다. '앞으로 더 잘 될 거야'란 제목은 많은 뜻이 내포된 것으로 추정 가능하다. 지금까지 잘 됐고 앞으로는 더 잘 될 것이란 긍정도 포함됐고, 반대로 지금까지 해온 것은 별로 없지만 앞으로는 더 잘 될 것이란 희망도 포함됐다. 소제목도 무시할 수 없다. 제목에서 표현하는 부분을 더 구체적으로 뒷받침해 주기 때문이다. '20대에 떠난 뉴질랜드, 싱가포르에서의 기록'이란 소제목이 붙었다. 요즘 해외 여행은 '무박 3일'이란 말이 생길 정도로 흔하다. 20~30년 전만 하더라도 해외 여행 가는 것은 일생의 소원이기도 했고, 한 번도 못 가본 사람은 수두룩했다. 경제적 여건이 안 되기 때문이지만 직장인들이 해외 여행 가는 것은 몇 년 벼르고 벼르다 실천하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20대에 뉴질랜드, 싱가포르에서 뭐를 했기에 책까지 냈을까를 생각하면 기대를 가져도 좋을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20대 시절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내며, 몸소 체득하게 된, 경험들 및 수많은 사건들, 모든 순간들로부터 배움의 결과를 가감 없이 과감하게 써 내려간 청춘의 기록이다. 무엇을 했고, 배웠는지 궁금하다. 출판사 측은 헝그리 정신이 희석되어가는 요즘 세대들에게 이 책은 방향성을 제시하며, 방황하는 청춘에게 던지는 또 다른 울림이 될 것라는 주장은 다분히 자의적이지만 '끌어당김'은 분명히 있다.


아주 좋은 선택이란 없다.

선택의 결과가 만족이냐, 불만족이냐만 있을 뿐이다.

일단 지금 바로 저지를 수 있는 행위 하나를 저질러라.

그러면 그 다음은 알아서 진행된다.

좋은 일이 있다고 기뻐할 필요도, 나쁜 일이 있다고 슬퍼할 필요도 없다.

그저 담담하게 인생의 파도에 몸을 맡기며 그 출렁임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조금은 무책임한 말에 실망감도 있지만 아직 책 서두이니만큼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3개월 영어 공부차 간 해외에서 취업도 하고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저자의 도전을 탐탁치 않게 보는 시선도 있었고, 부러워하는 주위의 시선도 있었다고 한다. 요즘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속담이 언제 그런 게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잘 쓰이지 않는 말이지만 기성세대에게는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던 어른들의 충고다. 젊을 때 고생해봐야 삶에서 역경도 두려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도전과 성취의 DNA(요즘 말로)가 형성된다는 뜻으로 하는 삶의 충언이었다.

실제 '입지전적 인물'로 평가 받는 정재계는 물론 사회 각 분야에서 리더로 나선 사람은 대부분 젊었을 때의 역경을 딛고 도전 정신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오늘을 일군 사람들이다. 매스컴도 이야기가 있는 그들의 도전 정신과 어려움을 헤쳐나오는 피나는 노력에 초점을 맞추어 앞다퉈 보도했다. 그들의 정신은 그렇게 사회의 모범이 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는 롤 모델로 삼아 삶의 지표로 삼기도 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1990년대 경제적 안정과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판단이 섰을 즈음 이런 말을 하며 삶의 본보기로 삼으라는 말은 자취를 감추었다. 이른 바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대개 부잣집 아들딸이라는 출처 불분명의 말이 떠돌던 무렵이다. 실제로 그 소문은 사실이라는 듯 서울대 합격생 분석을 해보면 대부분 경제적 여유가 많은 집안의 자녀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했다고 증거를 내세우기도 했다. 독자는 서울대 출신도 아니지만 서울대 들어가야 사회 상류층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많다. 당시 서울대 입학생의 많은 수가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집안 출신이었다. 신입생들은 점심을 구내식당에서 사 먹을 돈이 없어 점심시간 후에 파는 싼 라면을 먹기 위해 점심시간을 굶는다는 학생들이 많았다는 말을 직접 들은 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 이런 말을 하면서 '젊어서 고생' 타령을 하면 씨도 안 먹힐 얘기다.

그러나 저자는 스스로 그 길을 택했다. '젊어서 고생'. 스스로 의식했든 하지 않았든 간에...




처음부터 일이 술술 잘 풀리면 그 인생은 얼마나 재미 없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있긴 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 시대다. 책의 저자에 대해선 전혀 모르고 책을 대했지만 자신의 20대를 해외 경험을 통해 훌륭히, 어느 부분은 운 좋게 보낸 분이기에 틀림없어 보인다.

저자가 술회한 이 책에 관한 이야기다. '3일 만에 책 한 권을 쓰고, 한 달 만에 출간이 가능할까?' 나의 책은 7월 30일 출간되었다. 나는 용기가 없는 타입이다. 그래서, 어떤 일을 진행하기에 상당히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남들이 볼 때에는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여러가지 일들을 겪었다. 그 중 하나가 책 쓰기다. 내가 첫 책인 『앞으로 더 잘 될 거야』를 쓰는 데 3일이 걸렸다. 내가 3일 동안 책 한 권을 쓰는 걸 보면서, 와이프가 혀를 찼다.

군대에 있을 때 이런 말을 들었던 적이 있다. "야! 내가 과정은 모르겠고, 결과만 갖고 와!"

상당한 압박을 주는 말이지만, 나는 반대로 생각했다.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부터 줘버리자. 대략의 결과가 나오면, 그 때부터 과정을 만들어 나가자."

20대다운 패기와 어떻게든 일을 만들어나가는 자신감이 돋보인다. 조금 낙관적인 성격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패기로 충분히 덮을 수 있는 문제다. 이 책 서두에 적은 저자의 '나를 명품으로 만드는 20가지 원칙'도 눈여겨 볼 만한 내용이다.




저자는 이어 "내가 싱가포르에 수출을 할 때, 수출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걸 알아야 하고, 어떤 절차와 서류가 있어야 하는지 몰랐다. 그냥 지구촌 곳곳에 숨어 있는 바이어들을 찾아서 몽땅 메일을 보냈다" 말한다.

"내가, 물품이 있으니 나와 거래합시다."

물론 이런 한 줄의 말은 아니었다. 조금 더 공손했고, 조금 더 구체적인 내용의 메일이었지만 그저 '물품이 있으니 사주세요'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영국, 뉴질랜드,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베트남 등등 많은 국가의 바이어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단다.

'지금 바로 수출 진행을 하겠다.'는 답장을 했다. 그때부터 수출이 가능하도록 최선을 다해서 그 과정을 조사했다. 그렇게 내가 싱가포르에 샘플물량 40피트짜리 컨테이너 하나가 나가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첫 메일을 보내고 한 달 안쪽이라고 한다. 독자는 수출업이나 수입에 관한 일을 해본 적이 없지만 이런 방식이라면 무모한 건지, 무식한 건지... 분간이 안 된다. 이것도 패기로 밀고 나간 것 같다.

20대니까. 성공한 것도 그들이 패기를 산 건지, 물건을 산 건지, 아니면 단순히 운이 좋은 건지...


"아주 좋은 선택이란 없다. 선택의 결과가 만족이냐, 불만족이냐만 있을 뿐이다. 우리가 어떠한 선택을 하건, 결과에 만족할 수 있는 마인드 컨트롤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무슨 선택을 해도, 탁월한 선택이 된다."(p. 52)





저자의 패기는 알아줄 만하다. 단순히 젊어서라기보다 성격이 그런가보다라는 생각이 비로소 든다. "나는 그런식이다. 외국인 친구를 만들기 위해서, 해외 대학교 홈페이지에 있는 한국어과 교수진에게 이메일을 보낸다. '내가 한국인인데, 한국어 전공하는 친구들에게 한국어를 알려줄게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영어 매우 빠르게 늘었다. 해외에 나가면, 외국인 친구를 사귀지 못해 안달하는 한국인들이 천지다. 그들은 그들 방식으로 열심히 친구를 사귀었지만, 결국 나의 방법이 가장 빨랐고, 좋았다. 나는 내가 필요한 걸 요구하지 않았다. 상대가 필요한 걸 요구했다. "한국어를 가르쳐 드립니다." 그러면, 친구들은 항상 미안해 했다. "너도 영어를 배워야 하는데, 너무 나만 한국어 배우는 거 아니야?"

하지만 나의 한국어 수업은 당연히 영어로만 진행을 했고, 나의 한국어 과외는 매우 인기가 많았다. 당연히 나의 영어 실력도 늘어갔다.

결과부터 저지른는 성격은, 잘 되면, 매우 훌륭한 성과를 만들어 줬고, 안되면, 말뿐인 허풍쟁이가 되었다. 하지만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는 것보다는, 적당히 허풍쟁이가 되고, 매우 훌륭한 성과를 만들어 주는 경우가 많았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회사와 일대일 BtoB 계약을 통해 물품을 납품한 적도 있다.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했느냐고 물어보지만, 그저 간단하다. 인터넷에 있는 전화번호나 이메일로, 내 의사를 전달하면 끝이다. 일단 저지르고 나면, 나는 내가 저지른 말을 해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움직였다. 이쯤 되니 저자의 성격도, 업무 스타일도, 습관도 알 듯하다.


생각이 많을수록 행동은 느려지게 되어 있다.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그렇게 큰 결정을 무덤덤하고 빠르게 내릴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나는 대답한다. “어떻게 결정하냐구요? 생각 없이 결정하면 돼요.”(p. 96)



저자는 책을 낸 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출간 후기 같은 글을 적었다.

"나는 나를 너무 잘 안다. 겨울 방학 때, 하루에 한 쪽씩만 적으면 됐던 그림 일기를 개학 전 날 몰아 적으며, 나는 일단 닥처야 움직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그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기한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그렇게 하면, 나는 어김없이 움직였다.

마치 어느 인터넷에서 봤던 것처럼 일찍 일어나는 방법으로 정~말 재미 없을 것 같은 영화를 예매하고, 아침 일찍 취소하지 않으면 돈을 버리는 상황이 생기게끔 해놓는 것도 같은 방식일 것이다.

생각보다 간단한 일들을 세상 사람들은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실제 더 용기가 필요한 일들을 거침없이 해내는 그들을 보면서, 생각보다 쉬운 일들을 안 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본 적도 있다.

내가 책을 쓰게 된 이유도 그렇다. 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입을 닫고 있어도,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대신 꾸준하게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가진 경험과 기억과 노하우를 많은 이들이 알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기록이 돼서, 전국 곳곳의 서점에 전시되어, 언제든 필요한 이들에게 공급될 수 있는 상품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2019년 6월 첫째 주, 뉴질랜드에서 썼던 나의 일기를 '책의 샘플 중 일부입니다'라고 쓰고, 출판사에 보냈다. 출판사는 찾기는 생각보다 쉽다. 그저 집에 있는 내가 구매했던 책들의 앞이나 뒤에 보면, 출판사들이 투고를 기다리며 쓴 메일 주소가 있다. 거기로 메일을 보냈다. 존재 하지도 않은 원고의 일부라고 나의 일기를 보내고, 출판사 수십 곳 중 몇 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샘플 말고, 전체를 보내주세요'

왠지 바로 답장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진행이 안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날부터 매일 하루 10여 시간을 자리에 앉아 글을 썼다. 그렇게 빠른 시간에 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아닌 나의 노트 습관 때문이었다. 나는 일기도 꾸준하게 쓰고 노트나 메모도 꾸준하게 했던 편이다. 간단하게 복사 붙이기 수정 등으로 나는 3일 만에 책을 뚝딱 하고 썼다.그리고 30일 만에 책이 한 권 나왔다. 사실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차분하게 썼으면, 내용면에서 3~4권 이상이 될 만한 소재들이 쓰여졌다.

조금 빠르게 나의 생각을 알려주고 싶었던 욕심 때문에 광범위하게 소재를 두고 이야기가 나왔다. 사실 이 책을 기반으로 세분화하게 몇 권의 책을 더 낼 계획이다. 저자의 포부는 긍정적이고 거침이 없다. 패기와 용기, 긍정적 희망, 모든 것이 부럽다. 한편으론 독자의 20대를 되돌아보며 부끄러움도 느낀다.



그의 업무 스타일은 군대에서 배운 것 같은데 약간은 어거지도 보이지만 긍정적이어서 좋다. 책을 낸 것은 그의 메모 습관의 덕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그가 원하는 글을 언제든 쓸 수 있다는 다소 무리한 자신감도 전혀 근거가 없지 않다는 신뢰감도 생긴다.

"나는 한 달에 15권 이상의 책을 읽는다. 그리고 내가 읽는 책은 거의 대부분이 정가를 주고 구매를 한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 문학 시장이 더 확대되기를 바란다. 한국 소설이 해외로 수출되고, 한국의 훌륭한 인물들의 자기계발서들이 해외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문화강국이 되길 바란다. 종이와 글로 이루어진 상품들이, 매번 내용을 바꿔 나가며 산업을 키워내길 바란다. 그런 의미로 나는 도서관보다는 서점을 자주 이용한다. 아직 허접한 첫 걸음이지만, 조금씩 조금씩, 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퍼트려 나갈 생각이다."


저자 : 오인환


1987년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에서 태어났다. 만 스물에, 나 홀로 유학을 떠나, 경영과 마케팅을 공부했다. 현지 취업 후, 관리직에서 일을 하다, 한국으로 돌아와, 싱가포르 수출과 강사, 사업 등 다양한 분야를 진행해 왔다. 인생의 의미를 다양한 경험에 있다고 믿고 살며,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일들을, 해보는 것이야 말로, 인생의 특권이다.’라고 믿는다.. 10년 간, 해온, 스케줄 관리법과, 메모법, 독서 등의 좋은 습관으로, 지금은 사람들에게 ‘좋은 습관 만들기’를 전하고픈 소망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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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 심리학으로 말하다 1
얀-빌헬름 반 프로이엔 지음, 신영경 옮김 / 돌배나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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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혼란스러우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음모론'은 누가, 왜, 어떻게 제기되는 것일까. 우리는 지금까지 근현대사 100년 동안 수많은 음모론이 제기됐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재생산될 상황에 처해 있다. 이것은 사실 우리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동서고금 늘 혼란스러운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제기된 것처럼 보이지만 정치적 약자, 사회적 약자, 경제적 소외 계층에서 제기하는 것으로 알아왔다. 그러나 음모론은 혼란스러운 사회를 바로잡기는커녕 더 큰 혼란 속으로 몰아넣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거짓을 사실인 양 꾸며서 이야기를 확산시키는 것임을 이제 안다. 그렇다면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면서 승자와 패자, 강자와 약자로 나뉘는 현 사회 체제에서 음모론은 불가피한 것인가.

음로론의 가장 큰 피해는 결국 그 시대 그 사회에 사는 사람들 모두에게 돌아가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제기되는 음모론은 특정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사회 일각에서 시작돼 확산된다. 이 책 『음모론 : 심리학으로 말하다』는 음모론이 특정한 일부 집단에만 국한된 현상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바로 잡고, 정치에서 직장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사회적 맥락에서 음모론을 조명한다.



시대가 혼란스러울수록 음모론은 더 기승을 부린다는 사실은 앞서 지적한 바대로다. 음모론의 속성은 대중을 홀리게 한다는 점이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음모론도 있었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 19가 인류를 위기에 빠뜨린 지금도 이 바이러스가 어디에서 발생했는가를 두고 불법 축산물 섭취, 연구소 유출 등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 팬데믹을 해결할 백신 안에 초소형 전자칩을 투입하여 사람들을 통제할 것이라거나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할지 모른다는 주장도 SNS를 통해 널리 퍼지고 있다. 이는 충격적인 사건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망을 반영한 것이다. 음모론은 이렇게 대중의 근원적이고 어두운 공포심을 자극해 우리 모두가 강력하고 사악한, 보이지 않는 힘의 지배를 받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부추긴다. 또한 비밀스럽고 은밀한 악의 조직이 우리가 미처 모르는 사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음모론은 말한다. 이처럼 그럴싸한 음모론에는 신비롭고, 무시무시한 무언가가 존재한다.


음모론을 믿건 믿지 않건, 이러한 음모론은 확실히 대중을 홀리는 힘이 있다. 음모론은 근원적이고 어두운 공포심을 자극해 우리 모두가 강력하고 사악한, 보이지 않는 힘의 지배를 받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부추긴다. 또한 음모론에서는 비밀스럽고 은밀한 악의 조직에 대해 언급하며 이러한 조직들이 우리가 미처 모르는 사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여러 음모론은 “만약 그렇다면?”이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은 사실일까? 사실이라면, 우리의 삶의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우리가 세상이 움직이는 방식을 정말 제대로 알고 있기는 한 것일까? 아니면 모두 속고 있었던 것일까?

p. 13, 「01 음모론과 심리학」 중에서



이외에도 음모론에 대해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큰 사건 뒤엔 반드시 음모론이 뒤따랐다. 9.11 테러 미국 정부 자작설, 에이리어 51 외계인 거주설, 엘비스 생존설, 아폴로 11호 달착륙 연출설, 예수 결혼설(다빈치 코드를 통해서 유포되기도 했다), 에이즈 개발설 등이 있다. 이야기만 듣다보면 그럴싸하면서도 과연 그런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믿을 수도 없고 안 믿자니 너무 확실한 것 같고... 사회 구성원들에게 혼란을 가중시키며 공포감과 불안감에 사로잡혀 일상을 이어나가기 어렵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되돌아보면 전부 터무니없는, 말 그대로 '음모'임이 밝혀지는 게 대부분이다.

사회 불안과 혼란만 가중시키며 진실 접근이나 확실한 원인 규명에 대한 궁금증은 전혀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런데 왜 빠른 속도로 확산될까.


대통령도 사람이기 때문에 사고나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죽을 수 있을 만큼 약하다. 건강한 대통령이라도 다른 사람들처럼 작은 독감 바이러스로 인해 죽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 틀림없이 대중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건의 특정 세부정보에 의존할 것이다.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이 암살되었거나, 납치되었거나, 아니면 스스로 죽음을 연출했다는 대단한 음모론을 꺼내 들 것이라고 나는 자신한다. 대통령의 죽음처럼 커다란 문제가 독감 바이러스처럼 하찮은 원인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명은 많은 사람들에게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이렇게 단순할 리 없어, 그보다 훨씬 더 충격적이고 세상을 바꿀 만한 더 큰 일이 있었을 거야’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큰 결과에는 반드시 큰 원인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비례성 편향의 본질이다.

pp. 64~65, 「02 사람들은 언제 음모론을 믿는가」 중에서



저자 얀-빌헬름 반 프로이엔은 『음모론 : 심리학으로 말하다』에서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음모론의 ‘심리학’으로, 음모론이 ‘참인지 거짓인지’ 대신 ‘누가 믿고 누가 믿지 않는지’에 주목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지를 연구하는 사회심리학의 관점으로 음모론을 살펴보는 것이다. 음모론을 믿을지 말지를 결정짓는 요소는 무엇인가? 한 가지 음모론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다른 음모론을 믿을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가? 어떤 상황에서 음모론을 더 믿거나 덜 믿게 되는가? 그리고 음모론을 믿는 사람의 감정과 행동에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이 책은, 옹호하는 음모론이 사람마다 다르지만 모든 음모론이 예측 가능한 심리 과정에 바탕을 두고 있는 점이 유사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비이성적인 음모론일지라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이 믿는 바는 결국 행동으로 옮겨지는데, 믿음이 비이성적일수록 비이성적으로 행동하게 되어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총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우리 일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음모론을 통해 음모론의 정의를 알아보고, 우리가 음모론을 믿는 자체를 비이성적이고 병적이라며 비난하기보다 왜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이 발생하는지를 연구해야 할 당위성에 대해 설명한다. 2장에서는 공포와 불확실성을 느끼게 되는 시기에 외(外)집단을 비난하고 악의에 찬 음모론을 믿음으로써 위기 상황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살펴본다.

3장에서는 앞서 언급한 패턴 인식과 행위자 감지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서 이를 통해 음모론이 초자연적 믿음을 비롯한 다른 형태의 믿음과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밝혀낸다. 4장에서는 음모론의 핵심적인 특징 중 하나인 적대적 외집단의 존재를 집중 조명한다. 의심스럽거나 위협적인 사건의 피해자를 가깝게 느낄수록, 타 집단에 의해 강한 위협을 느낄수록 음모론은 힘을 얻는다. 음모론은 세상을 ‘우리’와 ‘그들’로 구분하려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향의 결과이자,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내(內)집단을 보호하려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만약 비행기가 기술적 결함이나 인간의 실수로 인해 추락했다 하더라도 음모론에서는 비밀기관이 의도적으로 격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니면, 실제로 사고인 것은 맞지만 비밀기관이 그 비행기에 실려 있던 의문의 화물 같은 민감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은폐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음모론에서는 위기 상황에서 용의자들이 무능하다고 가정하는 적은 거의 없다.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 중 일부는 적어도 근시안적 사고나 탐욕과 같은 인간의 결함으로부터 은행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나쁜 시스템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금융위기에 대한 여러 음모론에서는 은행가들이 음모를 꾸민 것이며, 단기가 아닌 장기적 계획에 의해 금융위기를 발생시킨 것이라고 가정한다. (…) 음모론에서는 언제나 공모자들에게 정교하고, 상세하고, 지능적인 계획이 있다고 가정한다.

pp. 91~92, 「03 믿음의 구조」 중에서



5장에서는 이념과 음모론의 연결고리를 살펴보고, 음모론에 대한 믿음이 특히 좌우 성향을 막론하고 극단적 이념의 지지자들 사이에 만연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념과 음모론의 선후관계는 명확하지 않지만 음모론은 사람들을 온건주의에서 극단주의로 변하게 하고 극단주의 집단이 폭력에 의존하도록 부추기는 급진화 과정의 일부이다.

6장에서는 지금까지 다룬 음모론의 특성을 정리하고 불합리하고 해로운 음모론을 줄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에 대해 알아본다. 음모론이 현대에만 만연한 것은 아니며 인류 역사를 통틀어 언제나 존재해왔다. 사람들은 강력하고 적대적인 외집단의 잠재적 음모 활동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 이러한 경계심은 정상적인 심리과정과 관련된 자연스러운 방어기제이다.

음모론은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음모론이 아무리 흔해지더라도 음모론이 이성적인 ‘사실’이 될 수는 없다. 음모론에 대한 심리학적 통찰은 개인의 과도한 경계심과 사회에 만연한 강박을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연구 대상 중 일부 비주류 극단주의 집단은 폭력성을 띠었고 다른 집단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폭력성 비주류 집단과 비폭력성 비주류 집단 사이에 차이가 있었을까? 결과적으로, 음모론은 이들 두 집단에서 두루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음모론이 필연적으로 폭력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안이한 결론이다. 물론 이따금 음모론이 테러 공격처럼 극단주의적 폭력을 부추기기도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 다시 말해 음모론이 기저의 극단주의를 악화시켜 급진적으로 변하는 속도를 가속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미 이념적으로 극단주의적인 집단을 폭력적으로 바꾸는 과정에 기여할 수도 있다. 음모론은 집단을 좀 더 극단주의로 몰아갈 수 있고 일단 이 극단주의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이들 집단을 폭력적으로 바꿔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pp. 147~148, 「05 음모론과 이념」 중에서



출판사 측은 〈심리학으로 말하다〉 시리즈를 통해 다양한 주제와 현대인의 관심사를 심리학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분석하기 위해 이 시리즈를 기획했다고 밝힌며 코로나 팬데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세계 각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음모론이 코로나 해방에 얼마나 큰 해를 주며 사회 구성원들에게 얼마나 큰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지를 밝히기 위해 첫번째 책으로 이 책을 선택했다고 강조한다. 잠재의식 속 욕구와 혐오부터 수 세대를 걸쳐 전해져 온 타고난 사회적 본능에 이르기까지 우리 안에 숨겨진 심리적 요소를 파헤친다.

재미있고 유익한 주제들을 선별해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집필한 이 시리즈는, 일반적인 사회 통념과 연구에서 얻어진 결과를 비교하여 인간의 본성을 깊이 탐구하고 현대인의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려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우리는 이전과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음모론은 사람들의 건강에 해가 될 수도 있고, 무고한 외부인에 대한 공격을 부추길 수도 있다. 지구 온난화에 관한 음모론은 생존에 위협이 되는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노력을 약화시키기도 한다. 이렇게 음모론은 이를 믿는 사람에게, 이들이 속해 있는 환경에, 사회 전반에 해를 끼친다. 여기에 음모론을 연구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음모론의 심리학적 근원을 이해하면 궁극적으로 음모론을 더 비판적으로 성찰할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음모론을 믿는 자체를 병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음모론이 너무나 널리 퍼져 있다. 음모론은 다른 믿음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의 일환이다. 많은 사람들이 손금으로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고 믿거나, 새로 만난 연인들의 관계가 별자리 궁합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는다.

이러한 뉴에이지 사상은 과학적 증거에 비추어보면 타당성이 없지만 이런 사상을 믿는 자체를 병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회 각 분야의 보통 시민들은 다양한 타당성 없는 믿음을 지니며 이러한 믿음에 음모론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음모론의 심리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출발점이 있다면 정신병 연구 같은 임상심리학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pp. 40~41, 「01 음모론과 심리학」 중에서


저자 : 얀-빌헬름 반 프로이엔(JAN-WILLEM VAN PROOIJEN)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의 사회 및 조직 심리학과 조교수이자 네덜란드 범죄 및 법 집행 연구소(NWO)의 선임연구원이다.


역자 : 신영경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10여 년간의 해외 생활 후 동 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영번역학과를 졸업했으며,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연구소 번역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역서로는 『블루 마인드』(2015), 『핫 시트』(2016), 『인포그래픽 모네』(2017), 『인포그래픽 데이비드 보위』(2018)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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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좋아질 때마다 나는 헤어지는 상상을 해 - 나만 손 놓으면 끝나는 연애에 관하여
코끼리코 지음 / 콜라보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고품격 시(詩) 같은 사랑과 삼류소설 같은 연애는 어떤 게 더 진심일까. 온전히 사랑의 마음만 읊는 시 같은 사랑과 육체적, 물욕적 탐욕이 어우러진 연애가 진심에 가까울까에 대해 독자는 가끔씩 자문해본다. 그때마다 '시 같은 사랑'이 좋다고 독자는 결론을 내린다. 당연히 사랑에 다른 목적이 있다면 순수하고 진심의 사랑이 아니다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이런 질문을 탐욕적 삼류소설처럼 연애하는 당사자나 다른 제 3자에게 묻는다면 질문에 대한 질문이 되돌아오기 일쑤다. 그렇다면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사는 부부의 사랑은 시적 사랑에 가까운가, 아니면 삼류소설에 가까운가? 라는 질문이다. 다시 말해서 삼류소설의 연애라고 해서 진심이 담기지 않는 게 없고, 시 같은 고품격 사랑이라고 해서 모두 진심이다라는 결론은 비약이고 논리의 전제인 명제가 잘못됐다고 그들은 항변한다. 그들의 주장은 합리적이고 꽤 설득력이 있어 독자에겐 반박할 논리가 없다.

사랑은 논리가 아니고 마음이고 인간 모두에게 깃들어 있는 축복이라는 말에 공감한다면 더 이상의 토론은 필요없긴 하다. 인간의 탐욕은 모든 악의 근원이 되고, 선한 마음마저 악에 물들게 한다는 말에 동의한다면 되돌아가서 고품격 사랑이란 존재할 수 없는 '가식'으로 가려진 또다른 탐욕이 아닌가.

사랑하는 사람과 육체적 결합을 원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런 인간의 마음이고 의지다. 거기에 결혼이라는 전제가 붙으면 사랑을 지속할 때 필요한 시간이나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결혼의 의미에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도 있다.




이 책 『네가 좋아질 때마다 나는 헤어지는 상상을 해』의 코끼리코 저자는 약간은 사랑이나 연애에 관해 무척 민감한 부분에 골몰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모순되는 마음의 충돌이 빚어내는 혼돈의 상태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느낌이다. 그러나 이 책의 글이 잘못됐다는 말은 아니다. 또 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다만 혼란된 상태의 마음(저자의 말을 빌자면 '모순된 두 마음'을 정리하지 못한 상태라는 점을 지적할 뿐이다. 당연히 정리해야 하는 당위성은 없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히 인정된다. 자신의 마음을 진솔하게 적었다는 것. 그것이 이 책을 내게 된 원인이고 이유가 된다. 자신의 마음을 말과 글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때 사람은 소리나 색채, 모양 등으로 표현한다. 저자가 음악적으로 표현한 이유가 될 것이다.

"사랑이 커질수록 헤어지고 싶은 마음. 이 모순된 두 마음이 얼마든지 양립할 수 있음을, 이토록 잘 보여주는 에세이가 있었던가. 겉으로는 멀쩡하게 사귀는 것 같아도 속속들이 알고 보면 “언젠가는 헤어져야지” 생각하며 연애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제3자에게 상담을 요청하면 ‘헤어지라’고 할 가능성 100%. 그런데도 ‘내가 더 좋아해서’ 차마 헤어질 수는 없는 이의 속사정이 이 책에는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쩌면 소주 냄새 풍기는 푸념이나 하소연에 지나지 않았을 이 ‘혼자서만 절절할 수 있었을’ 이야기는 코끼리코 작가 특유의 위트와 발랄한 상상력을 만나 독특한 운율감을 이루며 마치 한 편의 가사집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는 출판사 측의 말도 공감이 된다. 혹시 지금,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애써 외면하며 아프게 누군가를 만나고 있다면, 혹은 그런 적이 있었다면 쉽게 공감할 만한 진솔하고 때론 도발적인 속마음들이 언젠가 입었던 마음속 생채기를 보드랍게 어루만져 주기 때문이다.

1st Album. 내 안에선 여러 번의 이별이 있었어

2nd Album. 불안 렌즈

3rd Album. 공들여야 맡을 수 있는 냄새

4th Album. 무중력 연애

5th. Album. 더미 Dummy

6th Album. 무조건 지는 게임

7th Album. 업데이트

8th Album. 몸 따로 여행




'너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이 음악처럼 내 안에서 흘렀어.’ 책을 다 덮고 나면 아마도 당신은 코끼리코 작가의 마음속에 흘렀을 이야기들이 마치 음악처럼 묘한 잔상으로 남는 경험을 하게 될지 모른다. 어쩐지 노랫말 같기도 하고, 비밀스런 일기 같기도 한 코끼리코 작가의 글. (여기에 굳이 ‘내적 음악 에세이’라는 새로운 장르 이름을 붙이려 욕심냈던 건, 편집자의 욕심도 있긴 하지만, 정말로 그런 느낌을 받은 이들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작가만의 이상한 내적 음악 세계에 발을 들이는 순간, 사랑할 때 느끼는 달고, 쓰고, 시린 감정들이 노래 가사처럼 당신 안에 스며온다. 이와 함께 글로 못다 한 어떤 느낌들을 힌트처럼 담아 놓은 흑백 사진이 어우러지며 마치 음악 CD를 사서 가사집을 읽던 시절의 감성에 푹 빠지게 만들고, 일렁이는 가을 햇살처럼 마음을 살랑이게 한다. 어쩌면 정말 이건, 마음속에 누가 음악을 틀어놓은 것처럼 음미하게 만든다는, 내적 음악 에세이의 탄생이 아닐까.



연애를 시작함과 동시에

불안이라는 렌즈가 눈앞에 장착돼.



만나서 조금 덜 웃고,

덜 말하고, 살짝 하품하는

아주 상식적이고 평범한 범주의 행동마저도

내 안의 불안을 작동시켜.



자, 경우의 수를 맞춰 보는 거야.

피곤해서 그럴까.

내 얘기가 재미없나.

혹시 마음이 식어버렸나?



의미 없는 행동 하나까지

일일이 점검해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 건

내가 이상한 걸까.



「불안 렌즈」 중에서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이런 구절이 나와.

‘금지된 것’이라는 게 영구적인 것은 아냐.


이 말을 연애에 적용해보면 어때?

어제 뽀뽀하면 안 된다고 했다고 해서,

오늘도 안 된다는 건 아니라니까.


「금지에 대하여」 중에서



다들 하나씩

마음속에 있을까.


미안함으로 남은 사람.


당신은 내 마음속 미안한 사람.

나는 누군가가 미안해했을 사람.


사랑이라는 게 어쩐지

딱 맞아지질 않아서.


상처받고 아프도록

놓지도 못한 누군가는

끝내 그 사람의 마음에

미안함 정도로 남겠지.


평소에는 까맣게 잊고 살다가


내가 누군가를

아프도록 사랑하게 되면

그제야 마음속에 떠오르는 사람.

나보다 먼저 아팠을 사람.


그 마음 나중에야 헤아려보고

약간의 미안함으로 남는


그저 인생 선배 같은-

그 정도 크기로만 남은 사람.


「미안함으로 남은 사람」 중에서



'나만 손 놓으면 끝나는 연애'란 자신감 없는 작가의 연애에 관한 것이다.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언젠가 헤어져야지'라고 생각하며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거나 자신이 연애를 지속할 사랑이 마음속에 없거나일 때다. 서로의 사랑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헤어지기 싫기 때문에 이별이 다가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고 이 점을 표현하는 사랑의 한 방법이라고 독자는 이해한다. 그래서 지금의 연애가, 사랑이 더 애절하게 느껴진다. 만남은 헤어짐의 연속이다는 말은 종교에서나 하는 말이지 우리 사랑 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그러나 이미 헤어진 후 되돌아보니 '언제가 헤어질 사랑'이었다는 말은 참이다. 진실인 만큼 우리 인생 사전에 수없이 많은, 다른 표현으로 등재돼 있다. 그 이야기들에는 우리 인생의 나루터에서 바라보는 사랑하는 영혼들의 애절한 이야기가 녹아 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시간'이란 게 주어진다. 주어진 시간 동안 뭘 하며, 어떻게 사는 지는 각각의 자유다. 판단도, 선택도 자신이 하면 된다. 주어진 시간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집중해 산다면 나중에 후회가 남지 않을 것이다. 그 안에 무얼 했든지 삶의 한 방법이니까.


저자 : 코끼리코


이해되지 않는 마음을 포착해 글로 남겨놓는 습성이 있다. 특히 자신의 구린 구석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연애가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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