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이 필요할 때 수필 한 편
오덕렬 지음 / 풍백미디어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힐링이 필요할 때 수필 한 편』은 수필가 오덕렬이 쓴 수필 모음집이다. 저자가 언택트 시대 코로나 팬데믹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로 지친 독자들을 위해 힐링의 시간을 갖도록 그간 써온 수필과 새로 쓴 45편을 모아 펴냈다. 저자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모자도(母子圖), 사랑방, 간고등어, 엣세(ESSAIS) 등을 포함해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고향과 어머니에 대해, 2부에서는 연륜이 묻어나는 삶의 지혜를, 3부에서는 봄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시작과 설렘을, 4부에서는 말과 생각, 수필에 관해 담담히 풀어냈다. 또한 작품 전체에 걸쳐 우리말의 멋스러움을 느낄 수 있고, 탯말이라고 할 수 있는 향토어에 대한 저자의 애정을 엿볼 수도 있다. 특히 4부에는 수필론이라 할 수 있는 저자의 수필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담았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나는 무랑태수, 즉 문학의 왕으로 진화한 <창작수필>입니다’로 인사를 시작한다. 화자를 1인칭 주인공 ‘수필’로 설정하고 수필론에 관한 강의가 시작된다. '엣세(Essais)'가 되고, 또 ‘창작문예수필’이 되어 수필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또 작가가 스스로 의장이 되어 482살 먹은 몽테뉴(프랑스)와, 892살 먹은 홍매수(중국), 8살 먹은 문창수(창작문예수필)를 초대하여 ‘수필의 허구’에 대한 논쟁도 벌인다. 논쟁 결과 <합의문>을 작성한다.





<합의문>

하나, 에세이의 시조는 몽테뉴이고, 창작에세이는 찰스 램에서 싹텄다. 두 장르가 함께 발전하도록 힘쓴다.

둘, ‘붓 가는 대로’는 잡문(메모)론으로 단 한 줄의 창작론도 없다. 이에 우리는 이를 공개 부정, 폐기한다.

셋, 창작문예 수필문학이 제3의 창작문학이 되면서, 이제 변방문학 시대를 청산하고 문학의 중심부에 서게 될 날을 기대한다. 제3의 창작문학은 창작의 마루에서 <산문의 詩>로 태어날 것이니, 작품 창작과 이론 개발에 온 힘을 쏟는다.(p. 291)

기발한 아이디어다. 또 저자의 수필에 대한 애정과 관점을 드러내는 것으로 다른 수필집에서 볼 수 없는 수필문학론이다. 저자는 이 글에서 수필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엣세(Essais)

1) ‘시험하다’라는 뜻으로 ‘인포멀 에세이’라고도 한다.

2) 몽테뉴가 1580년에 시작한 것으로 주로 명상적, 주정적으로 사색하는 경향을 보였다.(이 책의 주제는 '내 자신'이다)

에세이(Essay)

1) 포멀 에세이.

2) 영국으로 건너가 베이컨에 의해 영국 에세이의 비조(鼻祖)가 되었다.

3) ‘객관적 소재’로 사회적인 문제를 다룬다.

찰스 램에 와서 1인칭에서 3인칭으로 바뀐다.

1) ‘창작적인 변화를 용인’했다.

2) 가명을 써서 소재를 객관화시키기도 했다.

3) 의인법을 쓰기도 하면서 ‘에세이도 진화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창작수필은 원관념 소재를 비유-은유·상징적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대상 사물과 나누는 ‘마음의 이야기’다. 시적 발상의 산문적 형상화다. 수필론을 이렇게 구성해 놓은 발상이 신선하고 재미있다.



참고로 독자는 어렸을 때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피천득의 '수필'이란 제목의 글 일부를 소개한다.

"수필(隨筆)은 청자 연적(靑瓷硯滴)이다.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청초(淸楚)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女人)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 속으로 난 평탄(平坦)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포도(鋪道)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住宅街)에 있다. 수필은 청춘(靑春)의 글은 아니요, 서른여섯 살 중년(中年)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情熱)이나 심오한 지성(知性)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隨筆家)가 쓴 단순한 글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통칭하는 에세이(essay)는 중수필(formal essay), 미셀러니(miscellany)는 경수필(informal essay)이라 한다. 전자는 어느 정도 지적(知的)·객관적·사회적·논리적 성격을 지니는 수필을 말하며 후자는 감성적·주관적·개인적·정서적 특성을 가지는 신변잡기, 즉 좁은 의미의 수필을 말한다. 요즈은 경중을 가리지 않고 에세이로 불리우는 것 같다. 중수필의 부재 탓인지, 경수필의 확장 탓인지 모르지만.

『시사상식사전』에 따르면 영어의 essay는 프랑스어의 essai에 그 기원을 둔다. 프랑스어의 '에세(essai)'는 '시도' 또는 '시험'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 말은 '계량(計量)하다' '음미(吟味)하다'의 뜻을 가진 라틴어 '엑시게(exigere)'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essai'라는 말을 작품 제목으로 처음 쓴 사람은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이다. 몽테뉴는 원래 법률을 전공한 법률가였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의 보르도 법원에서 법관으로 근무했다. 그러나 그는 법관 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법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는 지신의 성(城)에 은거하여 사색과 저술 활동에 몰두했다. 이때 그는 유명한 『수상록(隨想錄)』을 저술하였는데, 바로 이 '수상록'이 불어로 'Les Essais'인 것이다. 그리고 이 'Les Essais'가 이 세상에 처음 나온 때는 1580년이었다.

한편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은 1597년에 '베이컨 수필집'을 초판 발행하는데, 이 후 1612년과 1625년에 각각 수필 작품들을 추가로 수록하여 발행되었다. 그래서 원래는 10편이었던 수필 작품수가 1625년에는 다시 2배 이상으로 늘어난 58편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추고(推敲)도 거듭하였다.

베이컨의 에세이는 중수필의 대표적 작품으로 꼽힌다. “결국 올라간 자리는 미끄러운 곳이다. 그렇다고 뒤로 물러선다면 굴러 떨어지거나, 적어도 빛에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 이것은 우울한 일이다.” 베이컨 자신의 삶, ‘미끄러운 곳’에서 미끄러져 넘어지고 만 삶을 떠올리게 만드는 ‘높은 지위’라는 제목의 글이다. 베이컨은 또 "아는 것이 힘이다"(Knowledge is power)라는 말로 유명하다.



이 사전 분류에 따른다면 이 책 『힐링이 필요할 때 수필 한 편』는 미셀러니에 속할 터다. 다만 4부는 에세이에 속한다.

그러나 사전적 의미를 떠나 수필의 의미는 '붓 가는 대로' 쓰는 것이다. 좀 의역한다면 '마음 가는 대로'이다.

중요한 것은 작가의 마음이 독자들의 마음에 얼마나 와 닿느냐는 것일 게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매우 잘 쓴 수필임에 틀림없다. '잘 쓴 수필' 하면 20세기 세대는 앞서 언급한 피천득의 '인연'을 꼽는다. 아사코(일본 여성)에 대한 추억을 담담히 써내려가 독자들의 가슴속에 명작으로 남아 있으니. 이처럼 오늘날 에세이는 경중의 구별 없이 작가의 마음과 독자의 마음이 만나는 지점을 잘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작가에게나 독자에게나 모두 그렇다. 마음이 통한다면 무슨 내용을 담든 글은 매력적이고 궁극적으로 잘 쓴 수필로 남을 터이다.


1부. 고향, 고향은 어머니이다

1부의 내용을 읽어보면 우리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저자가 연세에 독자가 경험하지 못한 옛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다행히도 부모님께 들어왔던 이야기라 그리 어렵지는 않다. 또 우리 소설 속에도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 생각나기도 한다.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지만 독자는 저자의 글의 의미나 배경을 쉽게 이해하도록 썼기 때문이리라. 그것은 고향이고, 어머니이다.



『힐링이 필요할 때 수필 한 편』에 실린 작품들은 디지털시대의 즉흥적 감성보다는 아날로그적 감성에 더욱 어울리는 수필들로, 현대를 살아가는 바쁘고 지친 독자에게 잠시나마 삶의 활력을 안긴다.

책 제목처럼 '힐링이 필요할 때' 차분히 '수필 한 편' 읽는 것도 언택트 시대에 걸맞은 좋은 휴식 방법이 될 것이다. 그리 길지 않은 수필 한 편에 많은 감동과 힐링을 담았다. 오덕렬 수필가는 수필의 현대문학 이론화 운동과 창작수필의 외연 확장을 통한 수필의 문학성 회복에 힘쓰고 있으며, 13년째 계속된 방언 수집과 연구를 통해 〈전라방언 문학용례 사전〉 탈고를 눈앞에 두고 있다.


<어머니의 치성>

이 글은 종교와 상관없이 마음 속에 의지하는 나만의 절대신에게 비는 정성이 담겨 있다. 그 정성 어린 마음이 자식들을 무탈하게 해주는 원동력이었으리라.


<전화>

저자는 이제 돌아가신 어머니와 더 이상 안부전화하며 통화할 수 없다. 돌아가신 어머니, 선산으로나마 남아 있어서 다행으로 여긴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독자들도 저자의 심경을 이해하는 데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이 수필집을 읽다보면 요즘은 들으면 생경하다는 느낌을 받는 단어들이 많이 나온다. 어항, 워낭소리, 간고등어, 보리밥등 저자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는, 예전에 많이 사용하는 단어들이다.

생활하다 보면 많은 것을 잃었을 때, 많은 것을 얻으며 내가 성장해가는 것을 느끼게도 된다. 또한 닥치는 모든 일에는 득이 있고 실이 있다. 사자성어도 많이 나오지만 독자는 쉽게 알 수 있지만, 한자에 무감(無感)한 젊은 세대는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꼭 필요한 사자성어, 즉 어떤 일에 어떤 말이 가장 어울릴지를 저자가 생각하고 또 생각해 쓴 단어이니 독자로서는 그 말 뜻에 집중하기보다 말의 뉘앙스나 어감 등에 집중해 글에 몰입해보는 것도 새로운 독서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천천히 생각해보면 저자와 공감하고 저자가 표현하는 것들은 모두 우리의 잠재된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다만 자주 쓰지 않아서 즉각 그 뜻을 헤아리기 어려울 뿐이다. 저자가 '하루에 수필 한 편'씩 읽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말의 의미가 새삼 되새겨진다.


싸목싸목...

싸목싸목...


<겨울 싱건지>

"내가 작은방에서 건너온 속내를 알고는, 아랫목에 싸두었던 밥그릇을 꺼내 놓으셨다. 저녁 먹고 남은 밥을 묻어두었던 것이다. 바느질손을 밀치고 부엌에서 무청을 달고 있는 싱건지를 대접에 담아오셨다. 밥 한 덩이와 싱건지 한 대접, 호롱불 밑에서 격식도 없이 달게 가무렸다. 숟갈을 이용해서 박속나물 훑어내듯 떼어내어 한 입 넣고 아삭아삭 깨물어 먹었다. 간이 삼삼한 싱건지와 온기가 남아 있는 밥의 궁합은 일품이었다. 통째로 놓고 먹던 그 담백한 맛은 원초적인 맛이었다. 모든 맛의 원형이 아니었을까. 지금도 그 싱건지를 생각하면 입 안에 침이 한입 돌곤 한다."(pp. 193~194)



저자 : 오덕렬


평생을 교직에 몸담은 교육자이자 수필가로, ‘방송문학상’(1983) 당선과 한국수필 추천(1990)으로 등단하였고, 계간 ?散文의詩?를 통해 ‘산문의 시 평론’ 신인상 당선(2014)과 ‘산문의 시(창작수필)’ 신인상 당선(2015)으로 창작수필 평론가와 창작수필가로 재등단하였다. 수필집 〈복만동 이야기〉 〈고향의 오월〉 〈귀향〉 〈항꾸네 갑시다〉, 수필선집 〈무등산 복수초〉 〈간고등어〉, 평론집 〈수필의 현대문학 이론화〉 등을 펴냈다. 광주문학상과 박용철문학상, 늘봄 전영택 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모교인 광주고등학교에 교장으로 재임 시절 ‘光高문학관을 개관하여 은사님 16분과 동문 작가 98분을 기념하고 있으며, 광주고 문학상을 제정하여 매년 5월에 광주전남 중·고생을 대상으로 백일장을 개최하고 있다. 현재 〈전라방언 문학 용례사전〉 편찬 중이며, 수필의 현대문학 이론화 운동으로 수필의 문학성 회복과 창작수필(散文의詩)의 외연 확장에 힘쓰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