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너머의 지식 - 9가지 질문으로 읽는 숨겨진 세계
윤수용 지음 / 북플레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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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정의한다.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규정하기도 하고, 타인의 행동 속에서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이런 시선은 '남의 눈'을 의식하는 유교 문화의 전통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런 시선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타인과 경쟁 속에서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은 더욱 남의 눈을 의식하고, 경쟁에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세계적 표준'도 필요하다. 그러나 규정된 세계적 표준은 어디에도 없다. 아무도 세계적 표준이라고 내세우지 않는다. 고대처럼 상대 나라를 힘으로 굴복시켜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현대 사회는 그런 방식을 벗어난지 한참이나 지났다. 뒤늦게 근대화에 뛰어든 대한민국은 특히 21세기 들어오기 전 이미 관심이 집중될 만큼 놀라운 변화를 이뤄냈다. 서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이라 일컬어지는 나라들도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룩하는데 무려 200년이나 걸렸지만 대한민국은 식민지, 이데올로기로 인한 내전을 겪으면서 피폐할대로 피폐해진 국가에서 수십 년만에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형국이다. 이젠 군사력 5위, 경제력 세계 10위의 '강한 나라'로 우뚝 섰다. 선진국 문턱을 이미 넘어선 것이다. 다만 너무 빨리 이루어낸 성과라서 아직 군데군데 허술한 점이 여전히 있다. 

그렇다면 더 나은 나라로의 발전은 어떻게 해야 할까? 타인의 시선이 '눈치'였다면 이젠 타인의 시선을 '거울'로 삼아야 할 때다. 이로 인해 타자는 자기의 상을 형성해주는 '거울'과도 같다. 이 책 『시선 너머의 지식』은 그 당연함을 뒤집는 데서 출발한다. 이 책은 우리의 정체성을 성찰할 것을 주문한다. 저자 윤수용은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선진국’이라는 틀에 익숙해져 있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뒤늦게 선진국을 모델로 뒤쫒아왔고,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고 생각하기에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는 데 익숙해졌다는 주장일 것으로 독자는 이해된다. 이 책은 각국 사회를 바라보는 익숙한 시선에 균열을 내며 권력, 역사, 정체성, 문화, 자본이라는 거대한 구조의 작동 방식을 치밀하게 해체한다. 단지 국가간의 비교가 아닌 ‘왜?’라는 질문을 통해 더 깊고 다층적인 이해에 도달하도록 이끈다.


우선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가 단편으로만 보던 세상의 질서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고, 어떤 힘에 의해 유지되어왔는지를 밝힌다.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진 시대에 이 책은 속도보다는 깊이 있게 생각하고, 다시 묻고, 연결하며 이해하는 지식의 기쁨을 제안한다. 이 책은 세상의 껍질을 벗겨내고, 그 너머의 구조와 맥락을 정면으로 파헤치는 지적 여행으로 이끌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고, 앞서 저자가 지적했던 '선진국'이라는 틀은 미국과 서유럽 등 '우리보다 선진국'이라 여겨지는 국가들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구가 정해놓은 기준을 보편으로 삼고, 이들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평가하며, 이들의 문화를 우월하게 인식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한국의 대중 문화, 상업 브랜드, 음식, 심지어 미적 기준까지 서구의 틀에 맞추어 평가되고 소비되는 현실 비판 의식을 저자는 내비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우리의 태생적인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역사에서 비롯된 문화적 위계에 의한 것임을 강조한다. 저자는 에드워드 사이드(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난 미국의 영문학자·비교문학가·문학평론가·문명비판론자)의 저서 『문화와 제국주의』를 인용, 제시한다. 

저자에 따르면 당연한 것에 질문을 할 때, 세상의 시선이 달라진다. 익숙함을 의심하고, 기준을 해체하고, 시선을 확장할 때 우리는 더 깊고 입체적인 세계를 비로소 마주하게 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덴마크에서는 생일에 왜 국기를 꽂을까?”라는 소소한 질문에서 시작해, 덴마크 행복 사회의 모순을 파헤친다. 또한 “이탈리아의 청년들은 왜 부모의 집을 떠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이탈리아 사회의 복지 문제를, “아이슬란드에서 왜 맥도날드가 사라졌을까?”라는 물음은 아이슬란드의 정체성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이념과 다르게 왜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하게 되었는지, 미국 남부의 친절한 인상이 사실은 인종차별의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묻는 질문은 국가와 문화를 관통하는 본질적 질문으로 확장되며 독자에게 생각의 전환을 유도한다. 하나의 질문이 각 나라의 다양한 모습을 관통해 사회의 다양한 이면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보게 한다.


이 책은 모두 3장(章)으로 구성돼 있다. 1장 〈행복의 그림자-우리가 믿어온 이상에 대하여〉, 2장 〈정체성의 경계에서-우리가 누구인지 묻는 질문들〉, 3장 〈자본의 얼굴들-물질에 지배당하는 세계〉 등이다. 에드워드 사이드처럼 우리가 가진 인식의 틀을 벗어나 보면, 놀랍게도 그들이 우월해 보이던 감각이 다르게 느껴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른바 선진국이라 불리는 국가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결함과 상처를 가진 존재임을 발견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더불어 선진국이라는 규정 자체도 하나의 환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이때가 비로소 타자라는 거울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게 되는 순간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이에 따라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덴마크, 싱가포르, 미국(이상 1장)을 살펴본다. 또 아이슬란드, 일본, 프랑스(2장)와 영국, 이탈리아, 영국(3장) 등도 세밀하게 분석한다. 사소한 호기심에서 출발해 역사적 근원을 추적하며, 각국의 사회 현상이 결국 생존과 자기방어를 위한 선택들의 결과였음을 도출해내고 있다. 

이 책은 이처럼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시선을 낯설게 바라보게 한다. 표면적인 평가와 이미지를 넘어, 그 이면의 역사적 맥락과 본질을 파악하려는 태도를 저자는 제안한다. 이를 통해 나와 세계를 새롭게 연결하고,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돌아보는 깊은 통찰을 이끌어내는, 탁월한 방법이라는 주장이다. 동시에 지식이란 단순한 정보의 축적이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틀이며, 기존의 인식 구조를 재구성하는 힘임을 독자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첫 번째 나라가 덴마크다. 「행복 이면에 숨겨진 모순, 덴마크」라는 제목이 강렬하다. 덴마크는 강력한 복지 제도의 상징적인 나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복지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높은 세율이 필수적이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택스 파운데이션의 2024년 자료에 따르면 덴마크의 소득세율은 55.9%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세율을 기록한다. 놀랍게도 이 수치는 과거에 비해 많이 낮아진 것이다. 1997년도에는 소득세율이 무려 65.9%에 달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높은 세율에 대해 덴마크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일반적으로 높은 세금은 부정적인 인식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US 뉴스의 기사에 따르면 덴마크인들의 10명 중 9명이 높은 세금을 '기꺼이' 낸다고 답했다. 도대체 덴마크인들은 왜 이렇게 높은 세금을 기꺼이 감당하는 것일까?


책에 따르면 이들의 배경에는 강력한 신뢰 기반의 사회적 시스템과 투명한 세금 운영이 자리잡고 있다. 덴마크인들은 자신들이 낸 세금이 자신과 사회를 위해 제대로 쓰이고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높은 세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덴마크 사회가 성숙되고 선진적인 시민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은 이 밖에도 여러 통계에서 드러난다. 덴마크는 국제적으로 정부 청렴도와 사회적 신뢰도 양쪽 모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나라이다. 2024년 국제투명성기구 조사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청렴한 나라로 꼽혔고, 2022년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을 믿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덴마크인의 73.9%가 "그렇다"고 답해, 세계에서 사회적 신뢰도가 가장 높은 국가로 기록되었다. 덴마크에서는 부모들이 길거리에 유모차를 세워둔 채 카페에서 커피를 마셔도 아무도 아이를 해치거나 데려가지 않을 정도로 서로에 대한 신뢱도가 높다고 전해진다."(p.19~20)

우리가 세계사에서도 배웠듯이 덴마크는 과거 북유럽 일대를 호령했다. 그러나 16445년 스웨덴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것에 이어, 1864년 독일과의 전쟁에서도 패하며 광대한 영토를 잃고 큰 상실감에 빠졌다. 그러나 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덴마크 국민들을 다시 일으켜 세운 두 인물이 있었다. 그중 첫 번째 인물은 군인 출신의 부흥 운동가인 엔리코 달가스였다. 달가스는 공병단 장교시절 주로, 지금의 덴마크가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유틀란트반도에 도로를 건설하는 작업을 맡았다. 도로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토양 조사와 지형 분석이 필수적이었고, 이 과정에서 그는 유틀란트반도의 광활한 황무지에 주목했다. 전쟁 후 황폐화된 이 땅은 그에게 새로운 가능성의 땅으로 다가왔다. 그는 이 황무지를 되살리고자 하는 계획을 세우며 덴마크의 재건을 위한 큰 비전을 제시한다. "바깥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되찾자"라는 구호와 함께 대국민적인 운동으로 이어갔다. 그 결과 놀랍게도 30년만에 황무지의 절반을 개간하는 데 성공했다. 이때 달가스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사람은 농민(평민)이었다고 한다. 농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동참해서 일궈낸 성과이라는 것. 여기에 또 덴마크 교육자이자 사상가인 니콜라이 그룬트비가 가세했다. 패전 후 덴마크 사회에 깊이 잠식한 패배의식을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농민들을 믿고 진정한 국민국가는 평민을 중심으로 구성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농민들이 자신들의 문화와 민족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세계 최초로 세운 '민중고등학교'는 오늘날의 성인교육 기관이다. 오늘날의 세계 최고의, 행복지수 1위 국가는 '평민성'과 '평등주의'에서 비롯됐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오랜 시간 집요하게 탐구해온 세계의 권력, 문화, 역사, 정체성의 실체를 더욱 깊고 정제된 시선으로 펼쳐낸다. 저자는 흑인 거주지와 백인 거주지 사이의 극심한 격차를 마주한 경험을 계기로,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사회 문제와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다양한 국가의 문화와 이면을 추적하며,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숨겨진 권력 구조와 불평등의 뿌리를 드러냈다. 이 책은 그 탐색의 결정판으로, 표면적 서사에 만족하지 않고 끈질기게 질문하며 상식이라 여겨진 이면의 진실을 보여준다. 사회를 해부하고 뉴스나 콘텐츠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지식의 심층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왜 오늘날 선진국으로 꼽히고 있는지, 그 원인과 과정을 살펴보고 그들의 권력과 무한한 힘이 영원성이 있는지도 짚어낸다.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는데도 왜 끊임없이 내부적으로 발생되는 문제에 끌려가는가에 대한 심각한 성찰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부각시키기도 하고, 오늘날 최고의 복지국가로 세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덴마크와 싱가포르의 역사를 샅샅이 살피며 이들 국가의 튼튼한 밑받침이 무엇인지 탐구한다. 또 갑자기 미국의 대항마로 부상한 중국의 약점은 무엇인지,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객관적 시선과 자료를 바탕으로 비전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처럼 선진국들의 강점과 약점을 모두 알게 되면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이 충분한지 판단이 설 것이고 어떤 부분에서 역량을 강화해야 할지에 대한 모범답안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선진국 문턱에서 아직도 힘겨워하는 우리 대한민국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고, 어떻게 슬기롭게 해결할지에 대해서도 영감을 줄 수 있다고 독자는 믿는다.


"프로그램은 일본 문화에 감탄하는 미국인의 시선을 통해 일본인의 자긍심을 확인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이는 일본 사회에 깊숙이 내재한 서구 중심적 콤플렉스를 보여주는 단면일 수 있습니다. 결국 지금의 ‘일본적인 것’은, 사라진 정신적 정체성을 메우기 위해 외부로부터 차용되고 구성된 이미지에 가깝습니다. 국체로 표상되던 과거의 일본 정신은 군국주의의 패망과 함께 매장되었지만, 그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한 채 ‘착한 국민’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강요받았습니다."(p.219) - 「콤플렉스의 거울, 일본」 중에서 


저자 : 윤수용


현재 유튜브 채널 <용두사미>를 운영하는 크리에이터. 각 나라의 문화와 역사 등을 소개하면서 그 안에 숨겨진 사회적 문제를 이야기하는 영상을 만든다.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는 흑인음악 보컬 그룹 ‘Korean Soul’의 멤버이자 리더이기도 하다. 2019년부터 공연 일정으로 흑인들이 거주하는 마을에 자주 방문했는데, 백인 거주지와의 극심한 빈부격차와 분리된 풍경을 느낀 뒤 미국을 비롯한 해외 여러 나라의 사회 문제와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2021년에는 아메리카 갓 탤런트(America’s Got Talent)에 출연해 준결승에 올랐다. 음악, 영상, 책을 통해 동시대의 문제 의식을 반영하는 아티스트, 크리에이터, 스토리텔러가 되길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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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팔자로 보물찾기
NK밝은미래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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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 『사주팔자로 보물찾기』이 단순하게 사주팔자나 운세만 다루는 책이라면 독자는 읽기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독자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주나 관상 등을 보기 위해 이른바 '점집'을 찾은 적이 없다. 민간신앙, 혹은 미신 정도로만 이해했기 때문이다.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예전에는 서점을 들를 때면 '명리학', '사주팔자', '주역' 등의 제목을 단 책들은 여간해서 보기 힘들었다. 아마 우리 교육이 실제로 근대 교육이 도입된 이후 '과학적'과 '비과학적'에 방점을 두고 철저히 과학적인 것에만 신뢰를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서양의 학문이 여과 없이 들어오는 바람에 기존 동양의 학문은 모두 도외시되고 배제되었다. 

지금 독자가 중년에 들어서면서 이들 책에 새삼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사주나 관상, 그리고 명리학, 주역 등이 깊은 철학적 의미를 갖고 있다는 데서 시작됐다. 이들이 학문으로 정립된 것은 단순히 길흉화복을 점치는 수준의 '미신'이 아니라 오랜 세월 인간이 직접 경험하며 연구하고, 또 사유해낸 '학문'이라는 점에 알았기 때문이다. 다만 한자 투성이고, 또 어려운 데서 책을 따로 읽고 배우기에는 적절치 못하다는 생각에 아예 들여다보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명리학'은 중국 춘추전국 시대 '사서오경'으로 편입된 주역(周易)을 이어받은 책이라고 알게 됐다. 당(唐) 나라 이후에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체계화했다고 들은 바도 있다. 누가 그랬는지 학자의 이름도 모르고 내용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어 흥미롭기도 했지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명리학을 새로 만날 생각은 해보질 못했다. 

대부분 명리학을 ‘미래를 점치는 방법론’ 정도로 알고 있지만, 사실 명리학은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이라는 것이 명리학자들의 주장이다. 새로운 해석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이해에서 한 발 나아가는 주장이라고 독자는 이해한다. 즉 미신을 한 단계 끌어올려 명리학을 만든 게 아니고, 주역이 세월을 거듭하면서 명리학으로 발전됐다는 의미로 독자는 받아들여진다. 어떤 명리학자는 "명리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나도 모르게 하는 내 행동의 이유를 파악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즉, 내 운명을 꼬아버리는 힘이자 내 운명을 ‘꽃길’로 만드는 힘이기도 한 내 성격의 근원을 깨우치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타고난 ‘명(命)’을 바꿀 수는 없지만, ‘운(運)’은 바꿀 수 있다는 주장 또한 명리학이라고 한다. 때문에 우리가 명리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결정되지 않은 미래를 미리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부족함을 알고 채우기 위해서라는 주장은 무척 매력적이다. 특히 최근 많이 쓰이는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말을 들을수록 명리학의 일부라도 알고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깊어진다. 사실 세상이 현재나 미래 모두 불확실한 것은 어쩌면 사회 변화의 속도가 디지털화 되면서 더욱 빨라지고 대중화 되면서 더욱 혼란스럽다. 당연히 미래, 사회의 변화뿐 아니라 자신 개인의 미래마저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한 시대이기 때문에 '운'을 연구하는 명리학은 더욱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다. 

이 책 『사주팔자로 보물찾기』는 이런 혼란의 시대, 불확실성의 시대에 흔한 '위로' 100마디보다는 '자기 객관화' 몰입이 훨씬 해결책에 가깝다고 선언한다. 책을 펴낸 출판사 측에서도 이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읽힌다. "모든 인간은 에너지 사이클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인생은 파도처럼 느껴진다. 많은 이들이 역경을 이겨내는 경험을 성장에 필요한 요소처럼 말하지만, 사실 예방하는 지혜가 있다면 역경은 불필요한 것이다. 맑은 날에는 비 오는 날을 대비해야 하는데, 우산을 준비하지 않으면 역경을 만난다. 큰 임무를 쥐고 태어난 위인에게는 역경이 외부에서 오지만, 범인(凡人)의 역경은 대체로 자신이 만들기 때문에 타산지석으로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60간지 사이클은 계속 순환하고, 사람마다 파도를 만나는 시기와 종류가 다르다. 흐름을 알면 파도 타는 법을 배워 예방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명리학 공부가 필요하고, 이 책은 그에 더해 보물을 찾는 방법도 알려준다. 인생의 진짜 보물을 찾아서 보물 지도를 펼치기 좋은 날이다."

저자 'NK밝은미래'는 〈서문〉에 '필독'이라는 단서를 달면서 명리학의 필요성과 시의 적절성을 강조한다.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서 우리는 과거보다 더 많은 것을 발견하고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지만, 보고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품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 세상은 이토록 밝으나 어두운 세상에 갇혀서 불빛을 들고 있는 사람의 뒤만 따라간다. 그 빛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p.6)



〈서문〉에서 저자는 사람마다 명리학의 세계로 들어오는 아주 많은 이유가 있지만, 자신의 경우 이 같은 궁금증으로 공인들의 사주를 직접 풀어보고자 입문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애초의 의도와는 다르게 타인이 아닌 자신을 발견하는 공부가 되었고, 동시에 성찰의 장이 되었다. 자신의 본모습을 직시하는 건 매우 불편한 진실과 직면하는 것이므로 어찌 보면 명리학은 매우 잔인한 학문인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그래도 불편한 진실을 직접 마주 보아야 성장을 이룰 수 있으니,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 자기 연민이나 위로가 아니라 자기객관화인 것 같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에는 명리학을 공부하는 자부심마저 느껴진다.

저자는 〈서문〉에서 '사주팔자가 정해지는 기준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제시하며 글을 풀어간다. 이에 따르면 대체로 (사주팔자는) 전생의 기록이라는 말이 가장 보편적이나 이는 정답이 없으므로 각자가 심오하게 생각해 볼 문제이다. 중요한 건, 우리는 모두 이 땅에 배우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고,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자기 자신을 배우는 것이며, 저자를 보고 자신을 객관화하는 건 엉켜 있는 실타래를 푸는 작업이다. 꼬인 인생부터 풀어야 성공의 길로 향하는 60간지 열차에 오를 수 있다. 성공은 물질적 성공과 정신적 성공의 균형을 말하며 한 방향으로 치우친 성공은 이 책에서 말하는 성공과 거리가 매우 멀다는 것을 저자는 강조한다. 

이 책은 모두 6장(章)으로 구성돼 있다. 1장 〈사주는 과학이다〉, 2장 〈새로운 시각의 물상론〉, 3장 〈12지지에서 보물찾기〉, 4장 〈12지지의 특성〉, 5장 〈육신의 사회적 역할〉, 6장 〈육신(六神)의 특성〉 등이다. 1장에서는 이 책의 탄생 배경인 「육신변화론」과 궁합 그리고 운의 시스템 등, 기본을 기술한다. 특히 「육신변화론」은 저자가 정립한 이론으로, 기존의 「일간론」과 이견이 있다. 어느 정도 명리학 지식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므로 입문자는 가볍게 읽고 넘어갔다가 완독 후에 다시 읽어보기를 권장한다고 밝힌다. 더 중요한 것은 미시적으로 각 글자의 의미를 파악하기에 앞서 선행돼야 하는 건, 이 세계를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임을 강조한다. 우리는 10개 에너지의 상생상극에 의해 지배당하므로 우주와 이 세계, 그리고 우리 뇌가 에너지에 의해 움직이는 원리를 알아야 한다는 점을 말한다.


2장에서는 물상의 기준을 새로운 방식으로 명확히 세워 분류하고, 그에 따라 물리적 세상을 관찰하고 대입하여 십성의 특성을 새롭게 정의한다. 3장과 4장에서는 지지환경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성과 그 속에 숨겨진 보물을 알아본다. 우리가 찾아야 하는 보물이 모두 이 속에 있다고 설명한다. 5장과 6장에서는 어떤 수호신의 도움으로 우리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하는지를 알아볼 수 있다. 인간은 사획적 동물이므로 자신의 위치를 인지해야 사회적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힘을 기를 수 있다. 모든 책터는 순서대로 보는 것을 권장하나, 입문자의 경우 이해하기 쉬운 부분부터 골라 볼 것도 함께 권유한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가장 알려주고 강조하고 싶은 말은 "명리학은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의 성장을 돕는 학문"이라는 사실이다. 명리학은 위험한 칼과 같아서 잘못 사용하면 반대로 다칠 수도 있음을 경계한다.

앞서 저자가 권유한 대로 입문자이지만 독자가 가장 가장 관심 있는 내용을 먼저 읽어본다. '궁합'에 관한 이야기다. 이 내용은 1장 〈사주는 과학이다〉의 세 번째 항목이다. 저자는 먼저 칼 융의 말을 인용한다. "두 사람 개성의 만남은 두 가지 화학물질의 접촉과 같다. 반응이 있으면 둘 다 변화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누구나 누군가의 몸에서 나오므로 태생부터 우리는 모두 인연으로 연결되어 태어난다. 처음 맺는 인연은 혈연이고, 그 외에는 유유상종으로 자신이 내뿜는 에너지가 그에 맞는 에너지를 끌어당기면서 인연을 만들어 나간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자신을 성장시키며 좋은 에너지를 내보내야 한다. 우리가 내뿜는 에너지는 저 광활한 우주를 통해 지구 곳곳으로 전송된다. 좋은 인연은 서로의 장점을 살려주어 도약의 발판이 되어주고, 나쁜 인연은 서로의 발목을 잡아 수렁으로 끌고 들어간다. 때론 악연과의 관계에서도 배울 점이 있으므로, 그로 인해서 큰 깨달음을 얻는다면 그보다 값진 인연도 없다. 가장 위험한 건, 악연을 만나는 게 아니라, 누구와도 연을 맺지 않는 것이다. 연을 맺는 것은 중요하나, 아무나와 맺으면 안 되므로 인연을 맺을 때는 매우 신중해야 하고, 깊은 인연을 맺을 때는 헌신할 각오를 해야 한다. 좋은 인연은 서로에게 헌신하며 융합하지만, 나쁜 인연은 서로 상대를 자신에게 맞추고자 한다. 궁합이 좋으면 떨어져 있어도 온기가 전해지지만, 궁합이 나쁘면 함께 있어도 외롭다."(p.30) 이 책엣허는 임상을 다루지 않지만, 「육신변화론」으로 궁합 보는 방법과 궁합의 실효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천생연분 사주를 하나 살펴본다.(관심 있는 독자는 p.31을 참조하기 바람)



저자는 〈에필로그〉 "사주팔자는 어떤 기준으로 정해지는가?"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이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어떤 사건을 겪으며 깨달음을 얻고 알에서 부화하듯 사고의 틀을 깨면서 성장한다. 나(저자)는 이번 집필 과정에서 몇 차례 틀을 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신의 정체'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ㄷ하. 프로그램된 대로 살아가는 걸 알게 되니, 이 세계를 창조한 신에 대한 궁금증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나는 사회적 현상을 관찰할 때, 예견된 이야기 흐름을 발견하고는 너무 재밌고 신나서 아이처럼 흥분하고 웃을 때가 종종 있다. 이 세상 이야기는 우화처럼 부분적으로 전개되고, 그 이야기들이 모여서 하나의 거대한 서사시가 되는데, 미래를 예측할 수 있도록 단서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이 세계는 고정된 시나리오와 애드리브가 존재하는 이야기 세계이다.

시나리오 작가인 창조주는 배역을 정할 때 에너지를 모아온 그릇에 맞춰서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우리는 그 대본(사주팔자)을 받아서 태어난다. 그래서 자신의 배역을 바꾸고 싶다면, 애드리브로 신에게 어필해야 하고, 애드리브를 잘하는 방법은 앞서 계속 말해왔듯이 타고나지 못한 에너지를 노력으로 채우는 것이다. 애드리브는 큰 물줄기는 바꿀 수 없으나, 작은 물줄기는 바꿀 수 있다. 신은 왜 이런 세계를 만들었을까? 저자는 신은 신을 닮은 조력자가 필요해서 인간을 배양하는 것 같다는 말로 책을 마친다. 마지막 한마디 덧붙이면서···. "온기를 잃지 말라."


저자 : NK밝은미래


“왜 나한텐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어?”

오래전 30세를 훌쩍 넘긴 친구가 한 말이다.

“야, 그건 당연한 거지, 누가 가르쳐 줘야지 아냐?” 나는 어이없어했다.

오랜 후, 명리학을 만나고 나서야 나에겐 너무도 당연한 세상의 이치가 누군가에겐 보이지 않는 벽에 가려져 있음을 알았고, 이 또한 재능임을 알았다. 그리고 “명리”라는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니, 세상의 이치가 더 또렷이 보였다. 모든 사람은 고유한 특성을 타고나는데 내 특성은 철학이고, 때가 되니 특기를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처음엔 내가 만든 명리학 이론을 알리고자 집필을 시작했으나 글을 쓸수록 소명의식이 강해져, 명리에 철학을 입혔다.

당령용신이 투간한 癸卯년 庚申월, 암탉이 수컷 독수리의 보호를 받으며 알을 품는 꿈을 꾸고 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그리고 얼마 전, 독수리가 큰 날개를 펼치고 활강하는 꿈을 꾸었다. 나의 첫 프로젝트는 완성되어 세상에 나왔고, 이제는 당신이 보물을 찾으러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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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의 산
레이 네일러 지음, 김항나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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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문명을 구축한 문어와 지구의 포식자 인류의 첫 대화��� 인간과 비인간, 소통과 공감에 대한 순도 높은 사유를 형상화해 인류의 성찰과 미래의 삶에 대해 생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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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의 산
레이 네일러 지음, 김항나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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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소설 작품 『바닷속의 산』은 국가 개념이 모두 해체된 근미래, ‘지구의 포식자’ 인류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생물종을 한계까지 착취하며 살아남는 ‘인류세’ 말기를 배경으로 한다. 저자 레이 네일러는 캐나다 퀘벡에서 태어나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자랐다. 20년 동안 러시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아프가니스탄, 아제르바이잔, 베트남, 코소보 등에서 거주하며 일했다고 한다. 주호찌민 미국 영사관에서 환경, 과학, 기술, 보건 담당관으로 근무했으며 미국 해양대기청 산하 국립 해양보호구역처 국제 자문관, 조지워싱턴대학교 국제 과학기술정책 연구소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다고 알려졌다. 

소설의 주무대는 베트남의 고립된 군도 꼰다오이다. 어느날 불법 낚시를 자행하는 사람들을 죽이고 다닌다는 “바다 괴물” 소문이 꼰다오에 퍼진다. 두족류의 지능을 연구하는 하 응유엔 박사는 최초의 안드로이드를 개발한 거대 기업 ‘디아니마’의 의뢰를 받고 이곳에 도착한다. 이곳에선 이미 안드로이드 에브림과 보안 관리자 알텐체체그가 독특한 문어를 연구하고 있었다. 꼰다오 바다 깊숙이 잠긴 난파선에서 발견된 문어들은 자기들만의 문자를 사용하고, 색깔과 무늬가 변하는 피부를 통해 대화를 나누고, 도구를 사용하며, 여러 세대가 모여 체득해온 지식을 대물림하면서 살고 있었다. 인간과 유사한 형태의 문어 문명을 발견한 하 박사는 문어의 언어를 통해 의사소통을 시도한다.

또한 풍부한 어획량을 찾아 끝없이 항해하는 ‘무인 선박’ 바다늑대호가 망망대해에 떠 있다. ‘무인’이지만 세심한 관리와 막대한 유지 비용이 필요한 로봇 대신 인간이 물고기를 낚아올리는 노예선이다. 납치당한 노예 에이코는 자신만의 ‘기억 궁전’에 바다늑대호에서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저장해둔다. 해양 자원은 마침내 밑바닥을 드러내고, 목표 어획량을 맞추지 못한 바다늑대호는 점점 광포해진다. 한편 ‘마인드’ 해커 러스템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성에게서 의문의 의뢰를 받는다. 어떤 복잡한 마인드를 해킹해달라는 것. 소설에서 마인드란 “신경계에서 발사하는 수십억 개의 시냅스로 이루어진 커넥톰”(p.63)이자 인간의 의식, 자각하는 능력 자체를 의미한다.


러스템은 마치 거대한 궁전이나 미로처럼 느껴지는 마인드의 입구를 오랫동안 찾아 헤매며, 인류세의 끝자락에서 ‘지키기 위해 폭력을 선택한’ 급진적 환경 단체와 마주하게 된다. 세 이야기는 마침내 푸른 꼰다오 앞바다에서 한데 만나 ‘인류세 이후의 인간’의 모습을 “그 틈을 메울 수 없을 정도로 우리와는 다른 종”(p.525)인 문어의 피부를 통해 그려낸다.

정재승(과학자)은 레이 네일러는 “의식이란 무엇인가”라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당혹스러운 질문을 다시 꺼내들되, 이번엔 문어의 피부와 안드로이드의 눈동자, 그리고 잊혀진 인간의 기억에서 대답하려 한다고 추천사를 썼다.

또 청예(소설가)는 우리는 우리가 아닌 것들을 어디까지 알고 있는가? 혹은 어디까지 알 수 있는가? 저자가 이 작품에서 묻는다고 지적하고, ‘타자’로 이루어진 미로에서 빠져나가는 방법은 바로 ‘공감’이라고 강조한다. 이 소설 작품에 대해 〈뉴욕 타임스〉는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용서받지 못하는 죄는 ‘무관심’이라고 전제한 뒤, 종말에 대한 우리의 판타지는, 실은 종말이 오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바닷속의 산』은 우리에게 우리의 마음을 함께 돌아보기를 권유한다. 이 소설은 530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이지만 4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① 퀄리아(Qualia): 감각질. 어떤 것을 지각하면서 느끼게 되는 기분이나 떠오르는 심상.

② 움벨트(Umwelt): 주변 환경. 생물에게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는 자연적·사회적 조건이나 상황.

③ 세미오스피어(Semiosphere): 기호계. 자연이 감각과 경험을 결정한다는 생각과 반대로, 현상 세계는 기호가 감각과 경험을 생산하기 위해 함께 작동하는 과정의 창조적이고 논리적인 구조라는 생물기호학 이론.

④ 오토포이에시스(Autopoiesis):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제조하거나 재생산하는 것. 자기생산, 자기제작, 자기창출을 의미한다.


출판사 측은 저자 및 작품 소개에서 "2023년 로커스 최우수 신인 소설상을 수상하고, 세계 3대 SF 문학상으로 꼽히는 네뷸러상과 아서 C. 클라크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새로운 ‘SF 거장’의 탄생을 알린 장편소설"이라고 호평을 내놓았다. 이 밖에도 "이야기의 힘과 철학적 깊이를 동시에 갖춘 소설. 때때로 웃음을 자아내는 유머와 긴장감 넘치는 액션이 더해져, 경고로서도, 오락물로서도 성공한 작품이다."고 쓴 〈가디언〉, "마음을 울리고 사고를 확장시키는 데뷔작"이라고 쓴 〈워싱턴 포스트〉, 소설가 제프 밴더미어(『서던 리치』 시리즈 저자)의 평가도 주목할 만한다. "이 소설은 흥미롭고, 잔혹하며, 강렬하고, 구원적이다. 인공지능과 비인간 지능에 관한 심오한 질문을 던지며, 그 대답은 자극적이고도 매혹적이다."


"휴머노이드 인공지능을 더는 만들어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에브림이 지은 미소는 완벽했다. 진실하고 꾸밈없는 게 진짜 인간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 미소는 내 죽음의 그림자를 마주하는 것 같았다. 에브림이라는 존재가 나라는 존재를 시사했다. 내가 그저 미리 프로그램된 충동들이 무리 지어 끊임없이 반복되는 기계 그 이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에브림에게 정말 의식이 있고 누군가에 의해 제작된 존재라면 나 역시 그런 존재일 수 있다. 스스로 자유의지가 있다고 착각한 채 걸어 다니는, 살덩이로 덮인 뼈대라는 물질에 불과하다. 우연히 만들어졌거나, 또는 즉흥적으로 가능성을 시험해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p.60)


소설은 “의식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더 나아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복잡한 질문을 문어와 안드로이드를 통해 철학적이고 서정적으로 대답하고자 한다. “마침내 인간 마인드의 창발적인 복잡성을 완전히 재창조”(p.185)하여 탄생된 안드로이드 에브림이 그 대답의 시작이다.


에브림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의식이 있는 존재인가요?” 그리고 대답한다. “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진짜’ 인간들은 에브림을 혐오스러울 정도로 정교한 가짜라고 단정지으며, 에브림과 대화하려는 시도를 그만둔다. 에브림은 언젠가 인간을 파괴할지도 모르는 무시무시한 창조물로 전락한다. 소설 속에서 인간의 세상은 둘로 나뉜다. 인간이거나, 인간이 아니거나. 그러나 하 박사만은 에브림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 “당신은 그저 유일한 존재예요. 그리고 새로운 존재이고요.”(p.339)

밤이 깊으면 해변으로 올라와 두 개의 ‘팔’로 걸어다니며 조개를 사냥하고, 자신들을 위협하는 인간을 날카로운 조개껍데기 단면으로 찔러 죽이는 꼰다오 문어 또한 에브림과 비슷한 존재다. “저 괴물들은 어떻게 말하는 걸 배웠을까?”(p.295) 온갖 미신과 소문이 떠도는 군도에서 “위험하고 똑똑한 바다 생명체”인 문어는 똑똑하다는 이유만으로 공포의 대상이 된다. 화가 난 문어들이 언젠가는 지상으로 올라와 인류를 휩쓸어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인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고 탐구하는 문어의 마인드를 이용해 위대한 발명을 해내려는 과학자의 욕심이 팽팽히 맞선다. 그러나 어느 쪽도 문어를 ‘친구’로 받아들이려 하지는 않는다. 하 박사와 에브림만이 끊임없이 문어에게 말을 걸며 손을 내민다. 소설 속에서 인간은 가장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생명체다. 타인의 말을 듣지 않고, 타인에게 관심을 갖지도 않는다. 그러나 문어와 안드로이드의 세계는 순수한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인간과 문어와 안드로이드라는, 결코 섞일 수 없는 ‘종’이 서로를 바라보면서 소설은 “인간만이 가진 외로움”(p.525)을 끝내는 방법을 찾아낸다.


“계속 생각해봤어. 우리는 어떻게 이걸 극복할 수 있을까? 이렇게…… 소통하려는 괴물들이랄까? 우리는 문어에게 괴물이나 다름없어. 사냥꾼이자 파괴자로서 그들의 친족을 살해하고 보금자리에 쓰레기나 버리고 말이야. 그런데 문어들도 우리에겐 괴물이야. 도대체 뭘 하려는지 알 수가 없고 완전히 이질적인 생물체니까.”(p.212)



이 소설에 대해 정재승 교수(KAIST 뇌인지과학과 및 융합인재학부 학부장)는 매우 인상적인 추천사를 남겼다. "어떤 소설은 독자를 먼 미래로 데려가지만, 어떤 소설은 독자의 내면 깊숙한 곳, 아직 이름 붙지 못한 감각과 기억의 심연으로 데려간다. 『바닷속의 산』은 후자에 속한다. 이 작품에서 SF는 상상력의 장르가 아니라 인식론의 무대다. 레이 네일러는 “의식이란 무엇인가”라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당혹스러운 질문을 다시 꺼내들되, 이번엔 문어의 피부와 안드로이드의 눈동자, 그리고 잊혀진 인간의 기억에서 대답하려 한다. 배경은 베트남의 외딴 군도 꼰다오. 이 섬은 한때 정치범 수용소였고, 지금은 무정부 자본주의 시대의 해양 생물 보호 구역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언어도, 문명도, 전선도 없이 빛과 질감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두족류 문어들이 있다. 그들과 접촉하려는 이는 하 응유엔 박사, 과거의 실패를 등에 진 생물학자이자 언어 없는 생명체의 언어를 꿈꾸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녀 곁에는 에브림이 있다. 인류가 만든 첫 번째 의식을 가진 존재. 금속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이다.

이 소설은 ‘퀄리아Qualia’나 ‘세미오스피어Semiosphere’, ‘오토포이에시스Autopoiesis’ 같은 개념들을 아무렇지 않게, 마치 시구처럼 펼쳐 보인다. 테드 창과 어슐러 르 귄을 연상케 하는 서사적 우아함과 이론적 밀도가 아름답게 얽힌다. 바닷속에서 암호처럼 반짝이는 문어의 패턴은 언어의 기원이고, 에브림의 침묵은 인간성의 종착지처럼 보인다. 뇌과학자의 눈으로 보자면, 이 소설은 마치 커넥톰 지도를 따라 구성된 메타픽션 같다. 감각의 인코딩, 기억의 반복 회로, 자기참조 루프, 그리고 ‘자아’라는 환영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서사로 재구성한 정교한 실험실이다.

결국 이 소설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의식이란 기억일까, 관계일까, 아니면 그저 신경 발화의 패턴일까?” 작가 레이 네일러는 어떤 대답도 강요하지 않지만, 깊은 바다처럼 독자의 뇌에 파문을 남긴다. 《바닷속의 산》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채 지나쳐온 존재들과, 우리가 미처 정의하지 못한 감정들과, 그리고 다시 낯설게 돌아온 우리 자신과 다시 마주 앉게 만든다. 그리고 깊은 바다에서부터 서늘하게 올라온 파문은 우리 의식 속에 오래 남는다." 


이 소설은 근미래의 지구촌을 그리고 있다. 기업 스파이, 군사, AI 등의 장치를 두루 활용한다. 그러나 핵심 내용은 “인간이 정말 세상의 중심인가?”라는 질문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깨닫게 되는 것은 두 가지 진실이다. 첫째, 개인은 절대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다. 둘째, 인류도 자연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가 작품의 주 무대를 '섬'을 택한 것도 숨은 의도가 있지 않나 싶다. 섬이 우리에게 주는 이미지나 메시지도 곁들여 정립해보는 것도 독자들에게 제안해 본다.

이 소설에서 발견되는 문어는 그들만의 사회를 이룬다. 하지만 이들의 지각이나 개념 체계는 인간과 다르다. 소설의 핵심 테마는 문어의 언어 해독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오만·자기기만 등 윤리적 문제를 드러내는 데 있는 것으로 독자는 이해한다. 요즘 부각되고 있는 환경 파괴나 인권 침해가 '누구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좋은 해결책이 아니다. 저자 레이 네일러는 문제 원인을 인류의 무관심과 탐욕으로 확대 규정하고, 우리 모두의 몫이라고 역설하는 듯하다. 


하 박사의 흥분이 완벽하게 에브림의 표정에 나타났다. 그렇다. 에브림도 분명히 공감하고 있었다. 물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서로 너무 달라서 거리감을 느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감정은 확실했다. 그녀가 발견한, 아니 함께 발견한 것에 대한 순수한 즐거움.

“우리의 문어는 지금 석기시대에 살고 있어요. 아니면, 더 정확히 말하자면 조개껍데기 시대에 살고 있네요.”(p.168)


저자 : 레이 네일러


첫 장편소설 《바닷속의 산》으로 로커스 최우수 신인 소설상을 수상하고 네뷸러상, 아서 C. 클라크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극찬을 받은 신예.

캐나다 퀘벡에서 태어나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자랐다. 20년 동안 러시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아프가니스탄, 아제르바이잔, 베트남, 코소보 등에서 거주하며 일해왔다. 런던대학교 소아스SOAS,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국제 연구 및 외교 센터에서 국제외교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호찌민 미국 영사관에서 환경, 과학, 기술, 보건 담당관으로 근무했으며 미국 해양대기청 산하 국립 해양보호구역처 국제 자문관, 조지워싱턴대학교 국제 과학기술정책 연구소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바닷속의 산》을 비롯해 《멸종의 엄니The Tusks of Extinction》 《도끼는 어디에 묻혔는가Where the Axe is Buried》 등을 발표했다. 중편소설 〈석관Sarcophagus〉은 시어도어 스터전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역자 : 김항나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공과대학교와 영국 런던시티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뒤 외국 항공사 여객 조업을 담당했다. 이후 번역가로 전향해 KBS, OBS 등 방송사와 기업을 클라이언트로 시사, 과학, 비즈니스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일했다. 현재는 출판번역에이전시 글로하나에서 소설 및 에세이를 중심으로 영미서 번역에 매진하며 출판 번역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전자책 역서로는 《데지레의 아기?케이트 쇼팽 단편선》 《밤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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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네이스 3 아이네이스 3
베르길리우스 지음, 김남우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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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 『아이네이스 3』은 전체 12권으로 이루어져 있는 『아이네이스』의 제9권부터 제12권까지를 묶었다. 『아이네이스』는 '아이네아스의 노래'라는 뜻으로, 로마 최고의 시인이라 불리는 베르길리우스의 대서사시다. 로마 건국 영웅 '아이네아스'가 라티움 땅에 로마의 기초를 세우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스군에 패하여 멸망한 트로이아의 영웅 아이네아스가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라는 신탁을 받고 백성들과 함께 방랑하면서 파란만장한 모험 끝에 로마에 도착하는 내용이다.

이 책을 번역 출간한 〈열린책들〉에 따르면 『아이네이스』는 로마 건국의 역사와 신화를 다룬 서사시로서, 오늘날까지 라티움어(라틴어)로 쓰인 가장 위대한 문학 작품으로 사랑받고 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와 더불어 서양 정신의 원류를 형성한 대표 고전이며, 단테의 『신곡』을 읽기 전 꼭 읽어 봐야 할 작품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만년에 죽을 때까지 11년간(BC 30∼BC 19) 이 작품에만 열중했는데, 결국 완성을 보지 못하였다. 전 12권이 현존하고 있다. 이 시는 아이네아스의 전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서사시는 로마 건국의 역사를 신화의 영웅과 결부시키려는 웅대한 구상에서 나온 것이다. 이 시를 쓴 시기가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여서 이 시는 로마 제국 찬가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제4권의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와 아이네아스와의 비련(悲戀)은 이 시 중의 많은 삽화 중에서도 특히 유명하다고 한다. 시인이자 저자인 베르길리우스는 많은 소재를 이 장편 서사시에서 이용하고 있으며, 특히 그리스 최대의 서사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영향이 크다. 그러나 호메로스의 시가 구승시(口承詩)로서 대체적으로 거칠고 순박하며 강렬한 데 반하여 『아이네이스』는 기교가 있고 장려한 것이 특징이다. 후세의 시인들은 이 작품에서 시의 기교와 용어의 모범을 찾았으며, 또한 이상적 인간상을 아이네아스에서 찾았다. 특히, 르네상스기에 이 시가 서사시의 전형이라고 높이 평가된 뒤부터 서사시 중의 최고 걸작으로서 그 명성을 호메로스와 함께 누리고 있다.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기원전 30년에서 죽을 때까지 11년에 걸쳐, 로마 건국의 기초를 다진 영웅 아이네아스의 이야기를 전 2권, 약 1만여 행의 기나긴 시로 노래했다. 미완성된 작품으로 저자는 죽을 때 원고를 없애 버리도록 부탁했으나,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명령으로 발표되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노래된 그리스와 트로이와의 전쟁이 끝난 뒤, 트로이의 용사 아이네아스는 일족을 이끌고 새로운 나라를 찾아 항해에 나서게 되었다. 일행을 태운 21척의 배는 7년 동안 바다 위를 표류한 뒤, 폭풍우를 만나 카르타고에 이르게 되었다. 그 나라 여왕인 디도는 그들을 환영해 주었고, 아이네아스는 여왕에게 트로이 함락의 상황을 들려주었다. 디도는 그를 사랑하게 되어, 아이네아스를 자기 옆에 붙들어 두려 했다. 그러나, 아이네아스는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출발해 버리고 말았다. 디도는 그를 원망하며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일행은 시실리아 섬에 도착하게 되었고, 거기에 일부 사람을 남겨 놓은 뒤에 다시금 배를 북쪽으로 항해하여 지금의 나폴리 근처인 쿠마이에 도착하게 되었다. 아이네아스는 아폴론의 무녀인 시뷸레를 방문하여 그녀의 안내로 죽음의 나라로 가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아이네아스가 건설한 로마 국가와 거기에 등장할 인물들에 관해 이야기해 준다. 땅 위의 세계로 다시 돌아온 아이네아스는 부하들과 더불어 티베르 강에 이르러, 거기에 상륙하여 라티움 사람들과 전쟁을 벌인다. 그는 이 라티움의 영웅이며 자기 자신의 최대의 적이기도 한 투루누스와 단독으로 결투를 벌여, 그 싸움에서 승리하여 로마 건국의 기초를 다지게 되었다.

이 책 『아이네이스 3』 제12권 950행 마지막 부분에서 이 모습이 묘사되고 있다. "이리 말하고 마주한 가슴에 칼을 밀어 넣는 광분. 그의 사지가 풀어져 차갑게 식어 가니, 탄식하며 분개하며 목숨은 하계로 떠나간다."(p.209)

이 부분에 대해 책은 본문 하단의 주(註)에서 설명을 덧붙인다. 941행 불행한 물건 : 제10권 495행 이하에서 투르누스는 팔라스를 죽이고 그의 견대를 전리품으로 빼앗았다. 이제 견대는 투르누스에게 불행의 원인이 된다. 944행 불길한 장식 : 941행에 「불행한 물건」과 같이 주인에게 불길한 일을 가져오는 장식품이다. 952행 탄식하며 분개하며 목숨은 하계로 떠나간다 : 카밀라의 죽음을 묘사한 제11권 831행과 같다. 『일리아스』 제16권 857행에서 파트로클로스가, 제22권 363행에서 핵토르가 통곡하며 저승으로 떠나간다.


'아이네아스'는 트로이 왕족인 안키세스와 여신 아프로디테(로마신화의 비너스)의 아들이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이다산의 요정들이 기르다가, 5세 때부터 안키세스가 키웠다고 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는 트로이전쟁에서 그리스군에 대항하여 사촌 헥토르에 버금 가는 용맹을 떨쳤다. 트로이의 마지막 왕 프리아모스의 딸 크레우사와 결혼하여 아들 아스카니우스를 낳았다. 트로이가 함락되기 전에 아프로디테의 경고를 받아들여 트로이에서 도망쳤다고도 하고, 트로이의 요새를 사수하려는 그의 충정을 존경한 그리스군과 협정을 맺어 트로이를 떠났다고도 한다. 그밖에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에게 붙잡혀 그의 노예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하지만,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새로운 땅을 찾아 트로이를 떠났다는 이야기가 일반적이고, 나중에 트라키아를 비롯하여 크레타섬·델로스섬·시칠리아섬 등지를 떠돌아다녔다는 전설이 덧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이를 소재로 ‘아이네아스의 노래’라는 뜻의 『아이네이스』를 지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아이네아스는 트로이를 떠난 뒤 카르타고에 닿아 그곳의 여왕 디도와 사랑을 나누는 등 7년 동안의 유랑 끝에 이탈리아의 라티움에 상륙했다. 아이네아스는 그곳의 왕 라티누스의 딸 라비니아와 결혼하여 새로운 도시 라비니움을 건설하였고 이후 로마 제국의 건국 시조로 추앙된다. 앞서 출판사 측은 단테의 『신곡』을 읽기 전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아이네이스』를 소개한 바 있다. 이는 단테의 『신곡』에 베르길리우스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신곡』에서 단테는 평소 존경했던 로마 시대의 서사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부활절 전후 일주일 동안 지옥과 연옥과 천국을 여행한다. 그는 두 명의 교황을 비롯한 자신의 적들을 지옥에 던지고, 자신의 친구와 존경하는 인물(베르길리우스)은 연옥(또는 림보)에 두었고, 자신이 사랑하는 베아트리체를 천국에 모셨다. 

이처럼 당시의 역사와 현실이 곳곳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신곡』을 읽기 위해서는 방대한 주석과 해설을 참고해야만 한다. 그러나 가장 유명한 「지옥」의 경우에는 사전지식 없이 읽어도 충분히 압도적이며, 단테의 탁월한 상상력이 빚어낸 걸작이다. 문학사적인 영향력 면에서 단테는 가장 위대한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 문학적 성취나 영향력에서는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 괴테와 발자크 같은 저명한 작가들과 충분히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다.


단테는 『신곡 「지옥편」을 시작하며 "나 이전에 창조된 것은 영원한 것뿐이니,/ 나도 영원히 남으리라./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라는 지옥문의 글귀를 언급하지만, 「지옥편」의 매력은 바로 그 영원한 '나'와 타자의 대화에 있다고 후세 평자들은 강조한다. 시인인 한 단테는 그 어떤 영혼과도 대화한다. 불 속에 갇힌 영혼인 귀도 다 멘테펠트로와도, 영국왕 헨리 2세의 장남 헨리 3세를 꼬여 아버지를 배반하게 했다는 이유로 자기 머리를 손으로 들고 다니는 베르트랑과도, 하느님이 주신 육신을 스스로 버렸기 때문에 나무가 된 피에르 델라 비냐와도. 그런 점에서 상상력이란 타자와 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인지도 모르겠다.

「지옥편」이 문학에 가깝다면 「연옥편」은 세속세계와 맞닿아 있다. 지상에 남은 자들의 기도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연옥에서 단테는 물리적 지구와 우주의 구조를 설명한다. 여기서 당대의 과학적 지식수준도 드러난다. 또한 연옥에서 그는 교만, 질투, 탐욕 등 좀 더 심리적인 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만난다. 지옥과 천국 사이의 미묘한 위치 덕분에 연옥의 단테는 보편적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 「연옥편」의 핵심은 3곡에 나오는 베르길리우스의 다음과 같은 말에 있을 것이다.


"인간들이여, 있는 그대로에 만족하라!

그대들이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면

마리아께서 아이를 낳을 필요도 없었겠지.

만족할 수도 있었을 사람들이

헛되이 바라는 것을 그대들은 보았으니,

그들은 영원히 통곡할 자들이로다.(연옥편)"


베르길리우스는 기원전 29년부터 기원전 19년에 사망할 때까지 긴 세월을 꼬박 『아이네이스』에 매달렸다. 생의 마지막 3년은 서사시의 배경이 되는 곳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그리스 지역을 여행하며 마지막으로 원고를 수정한 기간이었다. 그러나 이탈리아로 돌아오는 길에 열병에 걸려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작품에 완벽을 기했던 베르길리우스는 죽기 전 미완성의 원고를 불태워 없애고자 했으나,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뜻에 따라 그의 유고는 세상의 빛을 보았다. 전승에 따르면 베르길리우스는 우선 산문으로 글을 완성하고 12권으로 이를 나눈 다음 장면별로 운문으로 바꾸어 갔는데, 당장 완성할 수 없었던 부분은 그대로 놓아두고 시적 영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다음 부분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아이네아스』에는 58개의 미완성 시행이 남아 있으며, 이것이 미완성의 흔적을 보여 주는 부분들이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이 책의 역자 김남우는 로마 문학 박사로, 라티움어 원전을 직접 번역했다. 라티움어로 된 로마 서사시 고유의 『여섯 걸음 운율』을 우리말에서 최대한 가깝게 구현하기 위해 각 행을 18자 이내로 옮기는 『18자역』을 고집했다. 입으로 읊을 때 가장 큰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서사시인 만큼, 『귀로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글을 짓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한다. 또 원전을 충실히 살릴 수 있도록 원문의 행과 번역문의 행을 일치시켜 옮기고자 각별히 노력했으며, 불가피하게 원문의 행과 해당 뜻의 번역문의 행이 달라질 경우 옆에 원문 행수를 표시하여 대조에 용이하도록 했다. 또 페이지마다 상세한 각주를 달아 독자들과 연구자들이 작품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제9권에서 아이네아스는 성채를 떠나 이탈리아 내륙으로 떠나고 없다. 투르누스가 이끄는 루툴리 사람들이 트로이아 사람들의 성채를 공격한다. 트로이아 사람들이 이탈리아에 타고 온 배들이 루툴리 사람들의 공격을 받아 불타기 직전에 바다 요정으로 바뀌어 먼바다로 도망한다. 적들에게 포위되어 있던 트로이아 사람들은 어떻게 아이네아스에게 소식을 전할까 걱정하는데, 이때 니우스와 에우뤼알루스가 자진하여 적의 포위망을 뚫고 아이네아스에게 갈 전령으로 나선다. 그들은 어둠을 틈타 성채를 빠져나갔지만, 루툴리 사람들에게 발각되어 죽음을 맞는다. 날이 밝자 계속해서 루툴리 사람들과 트로이아 사람들의 전투가 이어진다.

제10권에서 아이네아스는 드디어 전장으로 돌아온다. 아이네아스는 연합군을 이끌어 포위 공격을 당하고 있던 트로이아 군대를 구출한다. 아이네아스의 용맹무쌍함이 펼쳐진다. 한편 아르카디아에서 아이네아스를 돕기 위해 참전한 팔라스는 투르누스와 맞대결에 패하여 전사한다. 팔라스의 죽음에 크게 상심한 아이네아스는 투르누스를 찾지만, 유노 여신은 투르누스를 속여 그를 전장에서 빼돌린다. 아이네아스는 메젠티우스와 맞대결을 펼치고, 메젠티우스의 아들 라우수스는 부상당한 아버지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는다. 아들을 잃은 메젠티우스는 전장으로 돌아와 아이네아스와 대결하지만 결국 그도 목숨을 잃는다.


제11권, 전쟁에서 쓰러진 병사들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양편이 잠시 휴전을 한다. 휴전 기간 동안에 팔라스의 장례식이 거행된다. 그사이 디오메데스에게 파견되었던 사절들이 돌아와 라티누스 왕을 비롯한 라티움의 지도자들에게 디오메데스가 원군을 거부했다고 전한다. 이에 라티누스 왕은 트로이아와의 평화 협정을 제안한다. 투르누스는 회의에서 전면전을 대신하여 그가 아이네아스와 일대일로 싸워 승부를 가르겠다고 선언한다. 이때 아이네아스가 라티움 도시를 공격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투르누스는 병사들을 소집한다. 카밀라는 기병을 이끌고 적의 기병대를 막기로 하고, 투르누스는 아이네아스의 부대를 맞아 협곡에 매복한다. 적의 기병을 맞아 용감하게 싸우던 카밀라가 적의 창을 맞고 사망한다. 밤이 찾아오고 전투가 마무리된다.

제12권에서는 아이네아스와 투르누스의 맞대결이 드디어 성사된다. 맞대결을 펼치기 직전에 양측은 승패에 따라 평화의 맹약을 지키겠다는 선서를 위해 제사를 준비한다. 이때 유노 여신의 언질을 받은 유투르나 여신은 동생 투르누스를 빼돌리고 양측은 다시 전면전을 펼친다. 아이네아스는 다리에 부상을 입었으나 베누스 여신의 개입으로 쉽게 상처가 치료되어 다시 전선으로 돌아온다. 트로이아 군대가 마침내 라티누스 왕의 도시를 공격하고, 라티누스 왕의 도시는 함락될 위기에 빠진다. 이에 투르누스는 다시 아이네아스와의 맞대결로 승부를 가르기로 결심한다. 아이네아스는 부상당한 몸으로 투르누스를 물리친다.


저자 :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


베르길리우스는 기원전 70년 북부 이탈리아의 안데스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베르길리우스의 어린 시절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가난한 농부 혹은 옹기장이였던 아버지는 베르길리우스가 성인식을 치른 기원전 55년에 그를 로마 대도시의 상급 학교에 보내 수사학을 익히도록 했다고 한다. 성인이 되어 홀로 로마로 이주한 그는 옥타비아누스(훗날의 아우구스투스), 안토니우스 등과 같은 학교를 다녔고, 서정시 「카타렙톤」으로 열일곱 살부터 시인의 면모를 분명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스물아홉에는 이미 당대 최고의 시인이라는 평을 받으며 옥타비아누스에게 소개되기도 했다. 기원전 37년 서른셋의 나이에 마이케나스의 식객이 되며 이 무렵부터 호라티우스와 투카, 바리우스 등의 시인과 교류했고, 기원전 29년 『농경가』를 발표할 즈음에는 로마 인민들에게 매우 존경받는 인물로 아우구스투스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아이네이스』는 베르길리우스의 대표작이자 마지막 작품으로, 그가 죽기 전까지 11년간 매달린 로마 건국 서사시이다. 희랍군에 멸망한 트로이아의 영웅 아이네아스가 새 나라를 건국하라는 신탁을 받고 파란만장한 모험 끝에 로마의 기초를 세우게 된다는 내용으로, 오늘날까지 라티움어로 쓰인 가장 위대한 문학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아이네이스』의 완성을 위해 희랍 여행을 떠난 베르길리우스는 귀향길에 열병에 걸려, 기원전 19년 이탈리아에 도착한 후 곧 숨을 거두었다. 사망 직전 미완성 원고를 불태우고자 했으나 그의 유언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아우구스투스의 뜻에 따라 세상에 공개되었다.


역자 : 김남우


로마 문학 박사.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서양고전학 협동과정에서 희랍 서정시를 공부하였고, 독일 마인츠에서 로마 서정시를 공부하였다. 정암학당 연구원이다. 연세대학교와 KAIST에서 가르친다. 마틴 호제의 『희랍문학사』,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에라스무스의 『격언집』, 『우신예찬』,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몸젠의 『로마사』, 호라티우스의 『카르페디엠』, 『시학』,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번역하였으며, 『Fabvla Docet 파불라 도케트- 희랍 로마 신화로 배우는 고전 라티움어』를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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