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속의 산
레이 네일러 지음, 김항나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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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소설 작품 『바닷속의 산』은 국가 개념이 모두 해체된 근미래, ‘지구의 포식자’ 인류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생물종을 한계까지 착취하며 살아남는 ‘인류세’ 말기를 배경으로 한다. 저자 레이 네일러는 캐나다 퀘벡에서 태어나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자랐다. 20년 동안 러시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아프가니스탄, 아제르바이잔, 베트남, 코소보 등에서 거주하며 일했다고 한다. 주호찌민 미국 영사관에서 환경, 과학, 기술, 보건 담당관으로 근무했으며 미국 해양대기청 산하 국립 해양보호구역처 국제 자문관, 조지워싱턴대학교 국제 과학기술정책 연구소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다고 알려졌다. 

소설의 주무대는 베트남의 고립된 군도 꼰다오이다. 어느날 불법 낚시를 자행하는 사람들을 죽이고 다닌다는 “바다 괴물” 소문이 꼰다오에 퍼진다. 두족류의 지능을 연구하는 하 응유엔 박사는 최초의 안드로이드를 개발한 거대 기업 ‘디아니마’의 의뢰를 받고 이곳에 도착한다. 이곳에선 이미 안드로이드 에브림과 보안 관리자 알텐체체그가 독특한 문어를 연구하고 있었다. 꼰다오 바다 깊숙이 잠긴 난파선에서 발견된 문어들은 자기들만의 문자를 사용하고, 색깔과 무늬가 변하는 피부를 통해 대화를 나누고, 도구를 사용하며, 여러 세대가 모여 체득해온 지식을 대물림하면서 살고 있었다. 인간과 유사한 형태의 문어 문명을 발견한 하 박사는 문어의 언어를 통해 의사소통을 시도한다.

또한 풍부한 어획량을 찾아 끝없이 항해하는 ‘무인 선박’ 바다늑대호가 망망대해에 떠 있다. ‘무인’이지만 세심한 관리와 막대한 유지 비용이 필요한 로봇 대신 인간이 물고기를 낚아올리는 노예선이다. 납치당한 노예 에이코는 자신만의 ‘기억 궁전’에 바다늑대호에서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저장해둔다. 해양 자원은 마침내 밑바닥을 드러내고, 목표 어획량을 맞추지 못한 바다늑대호는 점점 광포해진다. 한편 ‘마인드’ 해커 러스템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성에게서 의문의 의뢰를 받는다. 어떤 복잡한 마인드를 해킹해달라는 것. 소설에서 마인드란 “신경계에서 발사하는 수십억 개의 시냅스로 이루어진 커넥톰”(p.63)이자 인간의 의식, 자각하는 능력 자체를 의미한다.


러스템은 마치 거대한 궁전이나 미로처럼 느껴지는 마인드의 입구를 오랫동안 찾아 헤매며, 인류세의 끝자락에서 ‘지키기 위해 폭력을 선택한’ 급진적 환경 단체와 마주하게 된다. 세 이야기는 마침내 푸른 꼰다오 앞바다에서 한데 만나 ‘인류세 이후의 인간’의 모습을 “그 틈을 메울 수 없을 정도로 우리와는 다른 종”(p.525)인 문어의 피부를 통해 그려낸다.

정재승(과학자)은 레이 네일러는 “의식이란 무엇인가”라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당혹스러운 질문을 다시 꺼내들되, 이번엔 문어의 피부와 안드로이드의 눈동자, 그리고 잊혀진 인간의 기억에서 대답하려 한다고 추천사를 썼다.

또 청예(소설가)는 우리는 우리가 아닌 것들을 어디까지 알고 있는가? 혹은 어디까지 알 수 있는가? 저자가 이 작품에서 묻는다고 지적하고, ‘타자’로 이루어진 미로에서 빠져나가는 방법은 바로 ‘공감’이라고 강조한다. 이 소설 작품에 대해 〈뉴욕 타임스〉는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용서받지 못하는 죄는 ‘무관심’이라고 전제한 뒤, 종말에 대한 우리의 판타지는, 실은 종말이 오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바닷속의 산』은 우리에게 우리의 마음을 함께 돌아보기를 권유한다. 이 소설은 530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이지만 4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① 퀄리아(Qualia): 감각질. 어떤 것을 지각하면서 느끼게 되는 기분이나 떠오르는 심상.

② 움벨트(Umwelt): 주변 환경. 생물에게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는 자연적·사회적 조건이나 상황.

③ 세미오스피어(Semiosphere): 기호계. 자연이 감각과 경험을 결정한다는 생각과 반대로, 현상 세계는 기호가 감각과 경험을 생산하기 위해 함께 작동하는 과정의 창조적이고 논리적인 구조라는 생물기호학 이론.

④ 오토포이에시스(Autopoiesis):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제조하거나 재생산하는 것. 자기생산, 자기제작, 자기창출을 의미한다.


출판사 측은 저자 및 작품 소개에서 "2023년 로커스 최우수 신인 소설상을 수상하고, 세계 3대 SF 문학상으로 꼽히는 네뷸러상과 아서 C. 클라크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새로운 ‘SF 거장’의 탄생을 알린 장편소설"이라고 호평을 내놓았다. 이 밖에도 "이야기의 힘과 철학적 깊이를 동시에 갖춘 소설. 때때로 웃음을 자아내는 유머와 긴장감 넘치는 액션이 더해져, 경고로서도, 오락물로서도 성공한 작품이다."고 쓴 〈가디언〉, "마음을 울리고 사고를 확장시키는 데뷔작"이라고 쓴 〈워싱턴 포스트〉, 소설가 제프 밴더미어(『서던 리치』 시리즈 저자)의 평가도 주목할 만한다. "이 소설은 흥미롭고, 잔혹하며, 강렬하고, 구원적이다. 인공지능과 비인간 지능에 관한 심오한 질문을 던지며, 그 대답은 자극적이고도 매혹적이다."


"휴머노이드 인공지능을 더는 만들어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에브림이 지은 미소는 완벽했다. 진실하고 꾸밈없는 게 진짜 인간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 미소는 내 죽음의 그림자를 마주하는 것 같았다. 에브림이라는 존재가 나라는 존재를 시사했다. 내가 그저 미리 프로그램된 충동들이 무리 지어 끊임없이 반복되는 기계 그 이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에브림에게 정말 의식이 있고 누군가에 의해 제작된 존재라면 나 역시 그런 존재일 수 있다. 스스로 자유의지가 있다고 착각한 채 걸어 다니는, 살덩이로 덮인 뼈대라는 물질에 불과하다. 우연히 만들어졌거나, 또는 즉흥적으로 가능성을 시험해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p.60)


소설은 “의식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더 나아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복잡한 질문을 문어와 안드로이드를 통해 철학적이고 서정적으로 대답하고자 한다. “마침내 인간 마인드의 창발적인 복잡성을 완전히 재창조”(p.185)하여 탄생된 안드로이드 에브림이 그 대답의 시작이다.


에브림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의식이 있는 존재인가요?” 그리고 대답한다. “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진짜’ 인간들은 에브림을 혐오스러울 정도로 정교한 가짜라고 단정지으며, 에브림과 대화하려는 시도를 그만둔다. 에브림은 언젠가 인간을 파괴할지도 모르는 무시무시한 창조물로 전락한다. 소설 속에서 인간의 세상은 둘로 나뉜다. 인간이거나, 인간이 아니거나. 그러나 하 박사만은 에브림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 “당신은 그저 유일한 존재예요. 그리고 새로운 존재이고요.”(p.339)

밤이 깊으면 해변으로 올라와 두 개의 ‘팔’로 걸어다니며 조개를 사냥하고, 자신들을 위협하는 인간을 날카로운 조개껍데기 단면으로 찔러 죽이는 꼰다오 문어 또한 에브림과 비슷한 존재다. “저 괴물들은 어떻게 말하는 걸 배웠을까?”(p.295) 온갖 미신과 소문이 떠도는 군도에서 “위험하고 똑똑한 바다 생명체”인 문어는 똑똑하다는 이유만으로 공포의 대상이 된다. 화가 난 문어들이 언젠가는 지상으로 올라와 인류를 휩쓸어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인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고 탐구하는 문어의 마인드를 이용해 위대한 발명을 해내려는 과학자의 욕심이 팽팽히 맞선다. 그러나 어느 쪽도 문어를 ‘친구’로 받아들이려 하지는 않는다. 하 박사와 에브림만이 끊임없이 문어에게 말을 걸며 손을 내민다. 소설 속에서 인간은 가장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생명체다. 타인의 말을 듣지 않고, 타인에게 관심을 갖지도 않는다. 그러나 문어와 안드로이드의 세계는 순수한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인간과 문어와 안드로이드라는, 결코 섞일 수 없는 ‘종’이 서로를 바라보면서 소설은 “인간만이 가진 외로움”(p.525)을 끝내는 방법을 찾아낸다.


“계속 생각해봤어. 우리는 어떻게 이걸 극복할 수 있을까? 이렇게…… 소통하려는 괴물들이랄까? 우리는 문어에게 괴물이나 다름없어. 사냥꾼이자 파괴자로서 그들의 친족을 살해하고 보금자리에 쓰레기나 버리고 말이야. 그런데 문어들도 우리에겐 괴물이야. 도대체 뭘 하려는지 알 수가 없고 완전히 이질적인 생물체니까.”(p.212)



이 소설에 대해 정재승 교수(KAIST 뇌인지과학과 및 융합인재학부 학부장)는 매우 인상적인 추천사를 남겼다. "어떤 소설은 독자를 먼 미래로 데려가지만, 어떤 소설은 독자의 내면 깊숙한 곳, 아직 이름 붙지 못한 감각과 기억의 심연으로 데려간다. 『바닷속의 산』은 후자에 속한다. 이 작품에서 SF는 상상력의 장르가 아니라 인식론의 무대다. 레이 네일러는 “의식이란 무엇인가”라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당혹스러운 질문을 다시 꺼내들되, 이번엔 문어의 피부와 안드로이드의 눈동자, 그리고 잊혀진 인간의 기억에서 대답하려 한다. 배경은 베트남의 외딴 군도 꼰다오. 이 섬은 한때 정치범 수용소였고, 지금은 무정부 자본주의 시대의 해양 생물 보호 구역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언어도, 문명도, 전선도 없이 빛과 질감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두족류 문어들이 있다. 그들과 접촉하려는 이는 하 응유엔 박사, 과거의 실패를 등에 진 생물학자이자 언어 없는 생명체의 언어를 꿈꾸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녀 곁에는 에브림이 있다. 인류가 만든 첫 번째 의식을 가진 존재. 금속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이다.

이 소설은 ‘퀄리아Qualia’나 ‘세미오스피어Semiosphere’, ‘오토포이에시스Autopoiesis’ 같은 개념들을 아무렇지 않게, 마치 시구처럼 펼쳐 보인다. 테드 창과 어슐러 르 귄을 연상케 하는 서사적 우아함과 이론적 밀도가 아름답게 얽힌다. 바닷속에서 암호처럼 반짝이는 문어의 패턴은 언어의 기원이고, 에브림의 침묵은 인간성의 종착지처럼 보인다. 뇌과학자의 눈으로 보자면, 이 소설은 마치 커넥톰 지도를 따라 구성된 메타픽션 같다. 감각의 인코딩, 기억의 반복 회로, 자기참조 루프, 그리고 ‘자아’라는 환영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서사로 재구성한 정교한 실험실이다.

결국 이 소설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의식이란 기억일까, 관계일까, 아니면 그저 신경 발화의 패턴일까?” 작가 레이 네일러는 어떤 대답도 강요하지 않지만, 깊은 바다처럼 독자의 뇌에 파문을 남긴다. 《바닷속의 산》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채 지나쳐온 존재들과, 우리가 미처 정의하지 못한 감정들과, 그리고 다시 낯설게 돌아온 우리 자신과 다시 마주 앉게 만든다. 그리고 깊은 바다에서부터 서늘하게 올라온 파문은 우리 의식 속에 오래 남는다." 


이 소설은 근미래의 지구촌을 그리고 있다. 기업 스파이, 군사, AI 등의 장치를 두루 활용한다. 그러나 핵심 내용은 “인간이 정말 세상의 중심인가?”라는 질문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깨닫게 되는 것은 두 가지 진실이다. 첫째, 개인은 절대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다. 둘째, 인류도 자연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가 작품의 주 무대를 '섬'을 택한 것도 숨은 의도가 있지 않나 싶다. 섬이 우리에게 주는 이미지나 메시지도 곁들여 정립해보는 것도 독자들에게 제안해 본다.

이 소설에서 발견되는 문어는 그들만의 사회를 이룬다. 하지만 이들의 지각이나 개념 체계는 인간과 다르다. 소설의 핵심 테마는 문어의 언어 해독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오만·자기기만 등 윤리적 문제를 드러내는 데 있는 것으로 독자는 이해한다. 요즘 부각되고 있는 환경 파괴나 인권 침해가 '누구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좋은 해결책이 아니다. 저자 레이 네일러는 문제 원인을 인류의 무관심과 탐욕으로 확대 규정하고, 우리 모두의 몫이라고 역설하는 듯하다. 


하 박사의 흥분이 완벽하게 에브림의 표정에 나타났다. 그렇다. 에브림도 분명히 공감하고 있었다. 물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서로 너무 달라서 거리감을 느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감정은 확실했다. 그녀가 발견한, 아니 함께 발견한 것에 대한 순수한 즐거움.

“우리의 문어는 지금 석기시대에 살고 있어요. 아니면, 더 정확히 말하자면 조개껍데기 시대에 살고 있네요.”(p.168)


저자 : 레이 네일러


첫 장편소설 《바닷속의 산》으로 로커스 최우수 신인 소설상을 수상하고 네뷸러상, 아서 C. 클라크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극찬을 받은 신예.

캐나다 퀘벡에서 태어나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자랐다. 20년 동안 러시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아프가니스탄, 아제르바이잔, 베트남, 코소보 등에서 거주하며 일해왔다. 런던대학교 소아스SOAS,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국제 연구 및 외교 센터에서 국제외교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호찌민 미국 영사관에서 환경, 과학, 기술, 보건 담당관으로 근무했으며 미국 해양대기청 산하 국립 해양보호구역처 국제 자문관, 조지워싱턴대학교 국제 과학기술정책 연구소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바닷속의 산》을 비롯해 《멸종의 엄니The Tusks of Extinction》 《도끼는 어디에 묻혔는가Where the Axe is Buried》 등을 발표했다. 중편소설 〈석관Sarcophagus〉은 시어도어 스터전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역자 : 김항나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공과대학교와 영국 런던시티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뒤 외국 항공사 여객 조업을 담당했다. 이후 번역가로 전향해 KBS, OBS 등 방송사와 기업을 클라이언트로 시사, 과학, 비즈니스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일했다. 현재는 출판번역에이전시 글로하나에서 소설 및 에세이를 중심으로 영미서 번역에 매진하며 출판 번역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전자책 역서로는 《데지레의 아기?케이트 쇼팽 단편선》 《밤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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