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해하는 자기애 - 스스로를 상처 내는 사람을 위한 심리학
사이토 타마키 지음, 김지영 옮김 / 생각정거장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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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자해하는 자기애』는 표제어에 쓰인 단어 '자기애(自己愛)'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 사이토 다마키는 일본의 정신과 전문의로서 임상 현장에서 30년 넘게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에 진료해 왔다고 한다. 오랜 기간 진료해온 환자들 중에는 '스스로 상처를 내는'(自傷的) 사람들이 많았던 듯하다. 이 책은 이들의 심리를 심층분석해 결과적으로 환자 치료에 유의미한 결론을 얻어낸 것으로 보인다. “나는 쓸모없고 못났어”, “나는 정말 가치 없는 인간이야”처럼 스스로에게 자꾸 부정적인 말을 던지는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이 사람들은 빈번한 자기 부정적 생각으로 결국 습관화돼 치료가 필요한 상태에 이른다. 저자는 자기부정의 배경에 자기애가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이런 불건강한 현상이 등장하게 된 현대사회의 맥락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읽어낸다. 

*히키코모리(引き籠もり)란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병적인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다. 1970년대부터 일본에서 나타나기 시작해, 1990년대 중반 은둔형 외톨이들이 나타나면서 사회문제로 떠오랐다고 한다. 히키코모리는 '틀어박히다'는 뜻의 일본어 '히키코모루'의 명사형으로,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1990년대 말부터 한국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방콕족(방안에 틀어박혀 사는 사람들)'과 증상이 비슷하다. 이들은 스스로 사회와 담을 쌓고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생활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일본 후생성은 2001년부터 6개월 이상 이러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을 히키코모리로 분류하고 있다. 사람에 따라 3~4년, 심하면 10년 이상을 방안에 갇혀 지내는 예도 있다. 대표적인 증상은 다음과 같다.

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꺼린다. ② 낮에는 잠을 자고, 밤이 되면 일어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인터넷에 몰두한다. ③ 자기혐오나 상실감 또는 우울증 증상을 보인다. ④ 부모에게 응석을 부리고, 심할 때는 폭력까지 행사한다. 학자들은 핵가족화로 인한 이웃·친척들과의 단절,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한 급속한 사회변화, 학력 지상주의에 따른 압박감,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취업하지 못하는 데 따르는 심리적 부담감, 갑작스러운 실직, 사교성 없는 내성적인 성격 등 여러 요인을 원인으로 지적한다.(주 두산백과 참조)



저자 사이토 타마키가 새롭게 소개하는 이 ‘자상적 자기애(自傷的 自己愛)’-번역과정에서 '자해하는 자기애'-는 자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상처 내는 자기애를 말한다. ‘남이 멋대로 정의하는 나의 모습’에 대한 거부와 부정인 셈이다. 저자는 SNS 시대에서 필연적으로 남의 인정과 관계에 의존하게 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짚어내고 자기애 개념에 관한 역사, 자기애의 자유로운 형태에 대한 라캉의 ‘거울 이론’, 건강한 자기애의 기능을 위한 ‘코헛 이론’ 등을 풍성하게 다루면서 논지를 전개해나간다. 마지막에는 자상적이지 않은 건강한 자기애란 무엇인지 살피고, 자상적 자기애를 완화할 수 있는 방법도 설명한다.

저자는 ‘자상적 자기애’는 질병이 아닐뿐더러 이상성격이나 인지부조화에서 오는 문제도 아니라고 말한다. 자기 자신을 잘못된 방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어쩌다 헤매게 된 미로 같은 것이라는 주장이다. 평소에 나를 사랑하는 법을 잘 모르겠다면 ‘자상적 자기애’를 깨닫고 이겨내는 심리 안내서인 이 책 『자해하는 자기애』를 만나 해답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은 모두 6장(章)으로 구성돼 있다. 1장 〈자신을 상처 내는 자기애〉, 2장 〈‘자기애’는 나쁜 것일까〉, 3장 〈자아 찾기에서 ‘좋아요’ 찾기로〉, 4장 〈과거의 저주를 풀다〉, 5장 〈건강하게 나를 사랑하는 것〉, 5장 〈건강하게 나를 사랑하는 것〉, 6장 〈건강한 자기애를 키우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등이다. 각 장에는 3~4개의 소항목으로 나뉘어 각 장의 주제에 맞는 사레, 이론, 사회 현상, 치유로 이르는 길 등이 적혀 있다.

1장에서 저자는 일본에서 2008년 일어난 한 사건을 되짚어낸다. 사건 당시 25세인 자동차공장 파견사원이 행사로 군중이 운집한 아키히바라의 한 도로에 2톤 트럭을 몰아 난입한 후 서바이벌 나이프로 보행자, 경찰관 등 17명을 무차별 살상한 사건이다. 범인의 극단적인 자기중심성이나 빈약한 현실감각이 원인이라는 의견이 있었으나 사건 전 그가 온라인 게시판에 올린 글에는 격렬한 자기부정과 절망감이 점철되어 있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 게시판 글에는 "여자 친구가 있었으면", "(나 같은) 못생긴 사람에게 인권 따위는 없다"는 표현을 보면 용모 때문에 이성과는 관계를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인셀'들의 고민과 많은 부분이 겹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셀이란 영어 단어 involuntary celibate의 준말로, '비자발적 금욕주의자'를 의미하는 말이다.



인셀은 쉬운 설명으로 자신의 추한 용모 때문에 여성에게 외면당한다고 믿는 이성애주의 남성을 지칭한다. 이들은 때로 여성을 향한 증오가 격해지면 범죄행위를 일으키기까지 한다고 알려져 있다. 아키히바라 무차별 살상사건의 범인의 의식 속에는 다른 무차별 살상사건 범인들과 공통점이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2018년 일어난 도카이도 신칸센 차내 살상사건도 같은 범주의 사건으로 이 책에 적고 있다. 이 사건의 범인 역시 무기징역 판결이 내려지자 재판관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만세삼창을 하는 등의 기행을 보였다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일련의 모든 행위에 자신을 상처 내는 '자상적 행위의 흔적이 보인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인셀적 성향을 가진 사람은 '자상적 자기애'를 가졌다고도 볼 수 있다. 자상적 자기애는 자신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상처내는 자기애를 말한다. 

자상적 자기애를 가진 사람은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경향이 강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은 잘못된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일본을 예로 들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스컴에서 젊은이의 난폭함이나 화를 참지 못하는 성향에 대해 떠들어대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 양상은 다르다는 주장이다. 30년 넘게 일본의 정신 의료 현장에 있었던 전문의가 지켜본 바로는 이런 점은 전혀 근거 없고 사실이 아닌 매스컴 등을 통해 들은 막연한 공포심리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을 갑자기 흉기로 해하거나 해하려 시도하는 몇 번의 사건에서 보여진 바 있다. 이때 우리 정신과 전문의들은 이들은 폭력적이지 않고, 오히려 정상적 정신 상태의 범죄율보다 낮다고 밝힌 것을 뉴스를 통해 접한 바 있다.

시대가 흐를수록 젊은이들은 점점 온순해지는 현상을 보인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범죄백서 통계를 보면, 미성년 범죄율이 가장 높았던 것은 1960년이다. 최근에는 매년 촉법소년 및 불량청소년 계도 인원이 감소 추세를 보이고 범죄율은 낮아지고 있다. 통게 기준으로 보더라고 단카이 세대**가 사춘기였던 1960년대의 범죄율이 가장 높다. 이들이 고령자가 되면서 폭주노인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최근 고령자 범죄율이 증가 추세를 보이는 것 또한 이 시대의 '말썽꾸러지'스러움이 여전히 남아서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내놓는다.

** 단카이 세대 : 1947~1949년에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 붐 세대를 말한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일본의 고도성장을 이끌어낸 세대이다. 일본 경제기획청 장관을 지낸 경제평론가 사카이야 다이치(堺屋太一)가 1976년 발표한 「단카이의 세대」라는 소설에서 처음 등장하여 인구사회학적 용어로 정착되었다.(독자 주)



저자는 높은 지위나 업적을 이루어도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꼭 여성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2014년 잡지 〈BRUTUS〉의 기획으로 일본 유명만화 〈진격의 거인〉의 작가 이사야마 하지매의 인터뷰 취재의 기억을 되살려낸다. 인터뷰 당시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사야마 작가의 '자신 없음'이었다. '겸손함'과는 조금 다르다. 겸손은 상당히 안정된 자신감이 뒷받침되어 있다. 인터뷰 중에도 간간히 "정말 운이 좋았을 뿐이다", "지금도 여전히 자신은 없다"는 말을 하며 사춘기 시절부터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콤플렉스를 밝히는가 하면, "쓸 만한 인간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확신이나 분노가 작품창작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그 외에도 "언제든 네오니트족***이 될 수 있다","리얼충****은 되고 싶지 않다", "모모쿠로*****는 좋아하지만 실제로 만나고 싶지는 않다"··· 대체로 행복을 두려워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는 점을 기억하고 있다. 

***네오니트족 : 취업하지 않고도 충분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사람(역자 주)

****리얼충 : SNS 등의 온라인이 아닌 현실 속 인간관계나 취미에 충실한 사람(역자 주)

*****모모쿠로 : 여성 4인조 아이돌 그룹 모모이로 클로버Z의 준말(역자 주)

자살한 작가나 예술가는 많이 있었고 창작자 중에 그런 사람이 그리 드문 건 아니지 않느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지며 저자는 우선 자살관념과 자기긍정감의 결핍이 반드시 일치선 상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과연 자살한 세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다자이 오사무, 미시마 유키오는 '자신감 없고 나약하기만' 했을까?라고 되묻는다. 일반적으로 자살은 불안정한 충동이 행동화한 것이라는 저자는 이사야마 작가의 '자신 없음'은 상당히 안정되고 흔들리지 않는 상태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런 타입, 즉 '상업적 성공으로도 극복되지 않는 자신감의 결여' 상태인 작가는 서브컬처 영역에 특히 많다고 짚어낸다. 지금은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이 된 안노 히데아키, 록 밴드 '신세이 카맛테짱'의 노코 등등 많은 이름을 떠올린다. 이들은 자기부정적 발언을 계속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자신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이다. 마치 말로 하는 자살행위 같은 것이란다. 이들은 분노나 불안, 과도한 긴장이나 우울함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상처 내는 것은 아닐까. 저자의 생각이 깊이를 더해가는 느낌이다.



2장에서는 정신분석 상의 자기애 개념에 관한 역사를 한 번 더 되돌아보고, 이어 자기애의 자유로운 형태에 대한 라캉 이론과, 정신 건강에 있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건강한 자기애의 기능을 위한 코헛 이론을 확인한다. 더 나아가 자상적 자기애의 구조 분석을 해보고 이것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도 검토한다. 이어 3장에서는 자상적 자기애가 어디서 생겨나는지에 대한 탐구다. 전후(戰後) 정신사를 대략적으로 살피면서 신경증의 시대, 조현병의 시대, 경계선 성격장애의 시대, 해리의 시대, 발달 장애의 시대로 구분한다. 이에 따르면 2000년대 중반은 해리의 시대, 2010년대는 발달 장애의 시대라고 분류할 수 있다. 자상적 자기애자가 급증하는 현상의 배경에는 해리의 시대, 인정(관계) 의존, 커뮤니티 능력 편중, 캐릭터화 이 네 가지 요소가 작용했다. 

2000년대 즉 '해리의 시대'가 성립하게 된 것은 심리학 유행과 트라우마 대유행 등의 요인도 있지만, 특히 휴애전화와 인터넷 인프라의 폭발적 보급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24시간 언제든 다수의 친구, 지인과의 연결이 가능한 상황은 SNS 같은 '인정(좋아요)의 가시화, 정량화 장치'의 보급과 함께 어우러지며 젊은이를 중심으로 많은 이들이 '인정(관계) 의존' 성향을 갖게 했다고 저자는 정리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인정'은 살아있는 인간 자체의 인정이 아닌, SNS 상에서 아주 적은 정보량으로도 연출이 가능할 정도의 '캐릭터'에 대한 인정이 주류를 이룬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1~3장이 개념어 정리와 이론에 대한 사례 탐구 등에 주력했다면 4장부터는 응용편이라고 구분한다. 앞선 장에서는 자상적 자기애에 빠질 수 있는 가치관에 근거해 '신형 우울증', '발달 장애', '음모론'을 다뤘다. 4장에서는 부모자식 관계가 자상적 자기애를 일으킬 가능성에 대해 검토한다. 어머니의 부정적 언동에 상처 입은 자상적 자기애자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훨씬 많다. 이런 경우 어떤 식으로 거리를 두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 조금 자세히 다루었다. 


‘헌신’이라는 지배 방식이 있다. 어머니의 지배가 언제나 고압적인 금지나 명령으로 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겉보기에 헌신적이기까지 한 선의가 깔려있는 지배도 있다. 딸의 학비를 벌기 위해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어머니, 딸이 자립해서도 수시로 연락을 하고 충고하려고 드는 어머니. 딸은 이러한 선의를 대놓고 거부하거나 부정할 수 없다. 어머니의 지배욕에 대해 어슴푸레 깨닫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도망치는 것은 괜한 죄책감만 안겨주기 때문이다.(p.183~184)



건강한 자기애는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점이 저자 사이토 타마키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이다. 자기애란 ‘내가 너무 좋은 감정’이 아닌 ‘내 본연의 모습으로 있고 싶은 욕망’이라고 저자는 정의한다. 성숙한 자기애는 자기긍정감뿐 아니라 자기비판, 자기혐오, 자존심, 자기처벌이라는 다양한 부정적 요소까지 포함하여 구성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책 5~6장에서 말미에는 자상적이지 않은 건강한 자기애란 무엇인지 살피고, 자상적 자기애를 완화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다룬다. ‘자상적 자기애’를 깨닫고 이겨낼 수 있도록 안내하기 위해서다. 

‘자상적 자기애’는 질병이 아닐뿐더러 이상성격이나 인지부조화에서 오는 문제도 아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 어쩌다 헤매게 된 미로 같은 것이다. 그 원인의 대부분은 환경에 있다.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일수록 이 미로에서 고통을 받는 사람이 많다. 이러한 고통을 안고 있는 사람이 당신 혼자가 아니다. 오히려 자기 본연의 모습을 향한 욕망, 즉 자기애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성장과 성숙이라는 바람직한 변화를 부른다. 


저자 : 사이토 다마키(Tamaki Saito, さいとう たまき, 齊藤 環)


1961년 이와테 현에서 태어났다. 츠쿠바 대학 의학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현재 의학박사로 같은 대학 의학의료계 사회정신보건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은 사춘기, 청년기의 정신분석학, 병적학, 라캉주의 정신분석, 히키코모리의 치료와 지원 및 구호 활동을 하고 있다. 만화, 영화 등의 서브컬처 애호가로도 알려져 있다. 저서로는 『전투미소녀의 정신분석』, 『가족의 흔적』, 『살아가기 위한 라캉』, 『히키코모리는 왜 낫는가』, 『‘히키코모리’ 구출 매뉴얼(이론편)』, 『사회적 히키코모리』, 『세상이 토요일 밤의 꿈이라면』 등 다수가 있다.


역자 : 김지영


전남대학교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2000년대 초 5년 동안 일본 도쿄에서 생활하며 공부했다. 이후 지금까지 일본 드라마, 영화, 서적 등을 빼놓지 않고 탐독하고 있는 일본 문화 전문가다. 음식, 건강, 자기계발, 실용 분야에 관심이 많아 관련 일본 서적들을 번역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똑똑하게 화내는 기술》, 《미친 집중력》, 《미친 암기력》, 《꿀잼 경제학》, 《약은 독이다》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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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 작은 독서 모임
프리다 쉬베크 지음, 심연희 옮김 / 열림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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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세상 끝 작은 독서 모임』의 표제어 중 '세상 끝'이란 문구가 향수를 자극한다. '세상 끝'이란 문구는 시공간 상에서 여러 가지 뜻을 담아낼 수 있지만, 비유적으로는 '삶의 끝'이란 의미를 포함할 수도 있다. 이 책의 분위기나 내용을 감지한 독자로서는 '땅끝마을'이 쉽게 떠오른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별칭의 지역이 있어서다. 전라남도 해남이다. 해남(海南)이란 지역은 '남쪽바다'란 의미가 강할 것 같은데 왜 땅끝마을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제강점기 때 육당 최남선이 쓴 『조선상식문답』에 한반도 남쪽 땅끝의 해남에서 서울까지 1,000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끝 온성까지 2,000리를 헤아려, 이로부터 ‘3,000리 강산’이라는 말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이때 '토말' '갈두마을'이라고도 썼다는데 이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한다.

이 책의 공간적 배경은 스웨덴의 세상 끝 작은 마을 '유셰르'이다. 스웨덴은 독자로서 한 번도 못 가봐서 버킷리스트에 남겨 둔 나라다. 독자들도 잘 알다시피 스웨덴은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 동쪽에 있는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인구가 1,000만 명이 조금 넘는다. 세상에서 사회보장제도가 가장 잘 갖춰진 나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이 나라의 특징은 노벨상을 수여하는 나라다. 우리는 수상자가 겨우 1명에 그치고 있지만 얼마든지 충분히 더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 소설의 배경인 유셰르는 처음 들어본 지명이라 백과사전을 찾았지만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소설 속에서 인근에 '스코네'와 '말뫼'라는 지역명이 자주 나온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스코네는 스웨덴의 최남단에 있는 주(州)로 33개의 자치단체가 있다. 국제적으로는 영어 지명인 스카니아(Scania)로 널리 알려졌다. 주에서 가장 큰 도시는 말뫼인데 이 도시는 스웨덴에서 세 번째로 크며 스칸디나비아 전체에서도 다섯 번째로 크다. 표준어인 스웨덴어 이외에 방언인 스코네어가 중장년층, 노년층에서는 쓰이기도 한다. 스코네는 북쪽으로는 할란드와 스몰란드 지방, 북동쪽으로는 블레킹에, 동쪽과 남쪽은 발트해, 서쪽은 외레순드 지방과 경계를 이룬다. 2000년에 차량도로 및 철도용 다리인 외레순드 대교가 개통돼 덴마크와 교통이 원활하다. 스코네 지방은 남북 길이가 약 130km로 스웨덴 전체 면적의 3%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인구는 132만여 명으로 스웨덴 전체 인구의 13%를 차지한다. 인구밀도는 제곱킬로미터 당 121명으로 스웨덴에서 둘째로 인구가 밀집된 지역이다.



이 소설은 30여 년 전 스웨덴에서 수수께끼처럼 실종된 여동생에 대한 아픔을 마음 한구석에 묻어둔 채 미국에서 살아가던 퍼트리샤가 스웨덴의 유셰르를 찾으면서 시작된다. 어느 날 스웨덴에서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여동생의 목걸이가 담긴 봉투를 그녀에게 보내오고, 퍼트리샤는 어쩌면 여동생의 행방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을 안고 낯선 땅 스웨덴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퍼트리샤는 자신이 묵는 호텔 주인 모나가 친구들과 함께 여는 작은 독서 모임에 참여하게 된다.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바다와 그림 같은 마을이 있는,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스웨덴의 아름다운 도시 유셰르에서의 독서모임이라··· 굉장히 낭만적이다. 아늑한 공간과 맛있는 음식, 책과 문학, 경쾌한 축제, 그리고 무엇보다 곁을 내준 다정한 이들의 힘으로 슬픔에서 일어서는, 퍼트리샤가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 따뜻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의 저자 프리다 쉬베크는 전작 『템스강의 작은 서점』이 스웨덴에서만 12만 부 이상 팔려 급부상한 작가다. 쉬베크는 2011년 처음 발표한 소설 『샬롯 하셀』이 큰 사랑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전작 『템스강의 작은 서점』은 독자로서는 오랜만에 접하는 북유럽의 소설이어서 관심이 갔다. 독자가 많은 책을 읽지 못한 탓이겠지만 번역서 중 북유럽 작품을 발견하는 일은 흔치 않다. 특히 노벨문학상을 수여하는 곳이 스웨덴이다. 젤마 라게를뢰프(1909), 베르너 폰 헤이덴스탐(1916), 실험정신과 순수한 문체를 구사하는 페르 라게르크비스트(1951)가 노벨상을 수상했지만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전작 『템스강의 작은 서점』의 공간 배경은 런던이지만 주인공 샬로테는 스웨덴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스웨덴 사람으로 스웨덴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저자 쉬베크의 삶이 금세 떠오를 만큼 안정된 분위기의 작품이다. 스웨덴어로 쓰여진 이 소설은 런던의 오래된 서점을 배경으로,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사랑스러운 인물들의 이야기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펼쳐진다.



주인공 샬로테는 태어나 한 번도 본 적 없던 이모가 자신에게 런던 한가운데에 있는 서점을 물려주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스웨덴에서 자신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샬로테는 런던까지 가서 서점을 운영하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한 일이란 생각이었다. 따라서 런던에 가 짧은 시간 동안 서점을 매각할 예정으로 런던행 비행기에 올라 서점으로 향한다. 남편을 잃은 자신을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런던에는 없을 거라는 생각도 함께하면서 서점을 운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잠깐이지만 해본다. 서점을 매각하고 곧바로 스웨덴으로 돌아오려 했지만, 서점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직원, 마르티니크와 샘의 모습에 마음이 조금씩 흔들린다. 이처럼 저자 쉬베크는 우리 일상에서의 작은 행복감과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인간 관계 갈등 묘사에 섬세하고 치밀하다. 또 가끔은 안타까운 과거 추억에 늘 마음이 편치 않은 슬픔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소시민의 삶을 들여다보는 혜안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미래의 삶을 살 수 있을까에 대해 독자들에게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이번 작품 『세상 끝 작은 독서 모임』에서도 주인공 퍼트리샤는 30여 년 전 스웨덴에서 수수께끼처럼 실종된 여동생에 대한 아픔을 마음 한구석에 묻어둔 채 살아가는, 미국에서 직장을 다니는 여성이다. 그러던 어느 날, 스웨덴에서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발신자 없는 편지를 그녀에게 보내온다. 편지 봉투 안엔 여동생의 목걸이가 담겨 있었고(자신이 어렸을 때 선물로 준), 퍼트리샤는 어쩌면 여동생의 행방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을 안고 스웨덴으로 향한다.

퍼트리샤는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스웨덴의 작고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 유셰르에 도착한다. 그녀의 여동생 매들린은 30여 년 전 유셰르의 자유교회에서 인턴을 하던 중 어느 날 갑자기 모습을 감췄다. 하지만 진실의 실마리는 쉽사리 잡히지 않고, 무력감에 빠져 있던 퍼트리샤는 호텔 주인 모나가 친구들과 함께 여는 작은 독서 모임에 참여하게 된다. 책을 좋아하는 퍼트리샤는 그 모임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고, 독서 모임 친구들에게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는다. 모임의 친구들은 그녀가 진실을 찾을 수 있도록 돕기 시작하는데······. 퍼트리샤는 과연 여동생의 행방을 찾을 수 있을까? ‘세상의 끝’에서 그녀가 발견하게 되는 진실은 무엇일까.



이 소설은 수수께끼에 싸인 실종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한편, ‘독서 모임’을 중심으로 모인 이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각자의 고민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나간다. 독서 모임이 열리는 공간인 ‘책이 있는 B&B’는 마을 토박이인 여성 모나가 운영하는 작고 아늑한 호텔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나이 지긋한 사서의 거실에 들어온 느낌”을 주는 이 공간은 “온갖 자질구레한 보물” 같은 앤티크한 소품들, 모나가 손님들을 위해 굽는 맛있는 빵과 음식들, 그리고 무엇보다 사방에 책이 가득하다. 이곳에 머물면서 퍼트리샤는 독서 모임 친구들과 함께 우정을 나누며, 좌절과 무력감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퍼트리샤를 비롯한 독서 모임의 회원들은 저마다 인생의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중년의 여성들이다. 일생 동안 정성스레 가꿔온 호텔을 더 이상 지속하기 힘든 위기에 처한 모나, 1년 전쯤 사랑하는 남편과 사별하고 상실감과 외로움 속에 살아가는 도리스, 유명 영화배우이지만 남편과 이혼 위기에 있으며 나이 든 배우로서 한계를 느끼는 마리안네가 주요 등장인물이다. 이외에도 에리카와 마르틴은 17년 전 만나 서로에게 결혼하지만 부부 성생활에서는 원만치 못하다. 이 마을 사람들이 작은 마을에서 살며 도시 분위기와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을 저자 쉬베크가 마련한 장치 중의 하나다. 

"그들의 성생활은 이제 창문 닦는 것만큼이나 드문 일이 되어버렸다다. (중략) 섹스는 항상 너무나 단조롭고 기계적이어서 에리카는 차라리 옛날에 급하게 일을 치렀던 순간이 더 그립곤 했다. 에리카는 목덜미를 긁적였다. 자신에게 섹스란 항상 매우 사적인 영역이자 다소 민망한 주제였다(성생활 초기에는 불을 다 꺼놓고 하는 걸 좋아했는데, 아마도 그건 어머니가 유독 관대하게도 '꽃처럼 만개하하는 힘'을 긍정한다는 태도에 대한 반항심이었던 것 같다). 비록 자신의 태도가 얼마나 보수적인지 잘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결혼 관계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주된 책임자는 남자여야 한다고 생각했다."(p.66~67)



이들은 살면서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말하고, 경청하고, 공감하며 함께 풀어나간다. 친숙해진 뒤에는 성(性)에 대한 농담도 할 정도로 마음을 주고 받는다. 마치 오랜 친구들인 것처럼. 그들은 독서 모임을 통해 문학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한편, 서로의 고민과 마음에도 귀를 기울인다. 또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 서로를 돕기도 한다. 마치 우리의 어느 시골 지방의 한 모습처럼 떠오르는 일상이다. 이들은 퍼트리샤가 여동생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 함께 머리를 맞대기도 하고, 함께하는 공간인 호텔의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해 마을 여름 축제 때 문학 퀴즈 행사를 여는 등,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해나간다.

덕분에 유셰르에서 퍼트리샤가 보내는 시간은 오래 묵은 아픔과 진실을 마주해야 하는 힘든 시간이기도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이들의 따뜻하고 유쾌한 힘으로 슬픔에서 일어서는 위안의 시간이기도 하다. 심각하기보단 특유의 경쾌한 문체로 인생의 고민들을 풀어가는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독자들 역시 어느새 자신의 고민을 돌아보고 새로운 힘을 충전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소설은 대략 두 가지 상황을 오가며 화자(話者)의 시각이 달라지지만 소설 전체로는 전지적 3인칭 시점이다. 또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데 아무런 장치가 게입되지 않는다. 우리 삶이 그렇듯이 어제와 같은 듯한 오늘, 오늘과 같은 듯한 내일의 연속처럼 자연스럽게 소설은 전개된다. 그러나 소설 전체적으로는 주인공 퍼트리샤의 동선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퍼트리샤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퍼트리샤는 이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한다. 먼저 동생을 찾아 스웨덴으로 간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고 잘 알지 못하는 마을에 도착해 마을 주민이자 세상 끝 마을의 구성원들과 친분을 쌓고 마음을 열어 함께하면서 동생 매들렌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마들랜의 이곳에서의 행적과 부딪쳤던 일들은 저자가 전지적 시점으로 풀어낸다. 퍼트리샤와 함께하는 '세상 끝'이라 불리는 유셰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각자의 고민과 관계도 세심하게 저자는 풀어낸다. 퍼트리샤는 이곳에서 과거 마음의 상처에 대한 치유의 시간을 보낸다. “이번 여름은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이었어.”



퍼트리샤는 하얀 종이를 앞에 두고 앉아 대신 동생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편지에서 그녀는 매들린의 어린 시절에 대해 설명했다. 내 동생은 갓 태어난 새끼 양이나 병아리, 새끼 돼지들을 집에 데려와야 한다고 애원했던 아이였다고. 새끼들이 어두운 헛간에서 무서워하면 어떡하냐고 걱정해서였다고. 내 동생은 혼자서 작곡한 노래를 들려주며 퍼트리샤와 아버지를 즐겁게 해주었다고,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모두 다 잘 지내는 방법이 뭘까 궁금해하던 아이였다고.

이 편지를 쓰는 의미가 뭔지 사실 퍼트리샤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이건 속죄의 시도일까.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든 요나스에게 매들린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니 좋았다. 그러면 요나스는 매들린에 대해 자세한 심상을 갖게 될 테니까.(pp.535~536)


“고마워, 모두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중얼거렸다. 도리스와 모나, 마리안네가 일어서서 탁자 이쪽으로 다가와 퍼트리샤를 안아주자 그녀는 더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여기 오면 언제나 널 위한 방이 준비되어 있을 거야. 내가 이 호텔을 운영하는 한 말이야. 난 백 살까지 살 거야.”(p.544)


저자 : 프리다 쉬베크(Frida Skyback)


1980년 스웨덴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작가를 꿈꾸었으며 다섯 살 때 처음 책을 썼다. 작가가 되기 전에는 고등학교에서 언어와 역사를 가르쳤다. 블로그를 통해 글을 써오다가 2011년 첫 발표한 소설 『샬롯 하셀』이 큰 사랑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2개국 이상 작품이 계약되어 번역 중이며, 『템스강의 작은 서점』은 12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현재 남편, 두 딸과 함께 스웨덴 룬드에 살고 있다.


역자 : 심연희


연세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독일 뮌헨 대학교(LMU)에서 언어학과 미국학을 공부했다. 영어와 독일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소설 『아웃랜더』, 『아이언 위도우』, 『레슨 인 케미스트리』, 『스파크』, 『미드나잇 선』, 그래픽 노블 『인어 소녀』, 『티 드래곤 클럽』, 시리즈물로 『이사도라 문』, 『인 더 게임』, 『매머드 아카데미』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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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워터 레인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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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작품 『블랙워터 레인』의 원제는 'The Breakdown'으로, '고장'이란 뜻이다. 이 단어는 자동차나 기계의 고장뿐 아니라 사람의 정신적 문제도 가리키는 단어라고 한다. 흔히 정신적 붕괴를 가리키는 신경쇠약(nervous breakdown)'이라는 말에 쓰인다(p.304)고 역자 이수영은 〈옮긴이의 말〉에서 풀이하고 있다. 갑자기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이 생각나는 것은 독자의 전쟁 영화 선호 때문이라기보다는 '블랙'과 '브레이크'를 순간 혼동을 일으켜서다. 얼떨결에 독자의 영어 실력이 형편없음을 고백하는 꼴이다. 영화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이 책 『블랙워터 레인』은 영화화되면서 원제를 바꿨다. 독자의 혼동에 대한 약간의 면죄부가 될지도 모를 변명이다. 이 작품은 ‘첫 페이지부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소설’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출간과 동시에 100만 부 넘게 팔렸다고 한다. 


7월 17일 금요일 

이제 여름방학만을 앞두고 모두 작별 인사를 하는데 천둥이 시작된다. 우렛소리가 지축을 울리는 바람에 코니가 펄쩍 뛰자 존이 웃었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밀려든다. 

"얼른 가야겠네!" 존이 외친다.

나는 손을 흔들며 내 차로 달려간다. 차에 올라타자 가방에 들어 있던 핸드폰이 울린다. 벨 소리를 따로 설정해두었기 때문에 매튜라는 걸 바로 알 수 있다.(p.9)


독자의 느낌으로는 첫 문장은 평범하다. 첫 페이지라고 했는데 이어지는 문장에서도 그닥 긴장감이 감도는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이어지는 글은 남편 매튜와의 전화 통화로 채워진다. 매튜가 비가 곧 내릴 텐데 귀갓길 경로를 묻는다. 캐시(여주인공)가 '블랙워터 길'로 숲을 통과하면 더 빨리 갈 수도 있음을 남편에게 주지시킨다. 남편의 반응이 조금은 과장된 듯하다. "절대 안 돼!" 매튜의 큰 목소리에 캐시는 잠시 인상을 찌푸린다. 매튜는 다시 목소리를 낮춘다. "캐시, 그쪽 길로 오지 않겠다고 약속해. 밤에 혼자 숲길을 운전하는 건 위험해. 게다가 폭풍이 오고 있다고."



폭우가 예상되는 날 여주인공 캐시의 귀가에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블랙워터 길은 피하라는 남편의 말은 '자상한 남편' 이미지를 느끼게 한다. 캐시는 핸드폰을 가방에 넣으며 남편의 고집에 웃음 짓는다. 주차장을 빠져 나오는데 굵은 빗방울이 차창으로 쏟아진다. 드디어 시작이군. 대로를 빠져나오자 비가 거세게 쏟아진다. 옆 차선으로 비켜나는데 번개가 하늘을 가른다. 바로 앞 거대한 트럭 바퀴에서 차의 와이퍼가 감당 못 할 정도의 물이 튄다. 이 책은 아마존 킨들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하고 주목을 받은 센세이셔널한 작품이다. 저자 B. A. 패리스는 영국 '심리 스릴러의 여왕'이라는 별칭으로도 통한다. 패리스는 같은 계열의 데뷔작 『비하인드 도어』로 급부상한 작가라고 한다. 역자 이수영은 저자가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에서도 마음이 여리고 다감한 여주인공을 내세웠다고 말한다. 전작 『비하인드 도어』 역시 이수영이 번역했다. 패리스는 전작부터 '여성의 심리를 파고드는 스릴러 장르의 귀재'라는 칭송을 받았다. 불온한 세계와 냉정하게 맞서지 못하고 무너져가는 주인공 여성의 추락과 고통에, 독자는 함께 마음 아파하며 울분을 쌓아갈 수밖에 없다고 역자 이수영은 귀띔한다. 그러나 뛰어난 감성 지능을 지닌 패리스의 직감적 돌파력이 드디어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중반 이후, 아예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출판사 소개글에도 비슷한 말이 실렸다. "신체적, 물리적 폭력은 단 한 장면도 없이, 정신적, 심리적 폭력만으로 극한의 긴장과 공포를 그려내어 ‘가스라이팅 스릴러’라는 장르를 개척했으며, 특히 압권인 마지막 50페이지의 반전으로 화제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패리스의 작품 중에서 『블랙워터 레인』은 처음으로 영화화가 확정되어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 작품은 제프 셀렌타노 감독이 연출하고 〈500일의 썸머〉로 유명한 민카 켈리와 〈테이큰〉의 매기 그레이스가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되었다. 또한 이미 지난 6월 북미 개봉했다고 한다. 심리적인 음모와 초자연적 요소가 가득한 매력적인 영화로 알려지면서 장르 팬들에게 기대작으로 손꼽히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두 번째 쓴 작품이 영화화되었다니 천재적 재주를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 『블랙워터 레인』은 패리스의 두 번째 작품 『브레이크 다운』의 리커버 에디션으로 출간됐다. 영화 개봉에 맞춰 영화와 동일한 제목으로 바꿔 유명 일러스트 작가 KUSH의 아트워크로 소설 속 중요 사건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표현한 디자인으로 새롭게 꾸몄다. 출간하는 작품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전 세계 700만 부 판매를 돌파하여 밀리언셀러 작가가 됐다. 이제는 패리스의 전매특허가 된 특유의 긴박한 속도감과 공포감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무더운 여름을 영화와 함께 몇 배로 서늘하게 해줄 원작 소설 『블랙워터 레인』이 최고의 선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인생을 뒤흔드는 사건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캐시는 폭우가 쏟아지는 여름밤, 위험하다는 남편의 경고를 무시하고 숲속으로 난 지름길(블랙워터 레인)로 차를 몰던 캐시는 우연히 갓길에 멈춰 서 있는 차 안의 여자와 눈이 마주친다. 이상한 징후를 느꼈지만 왠지 모를 두려움에 그대로 지나치고, 집에 도착한 다음에는 신고하는 것도 잊어버린다. 다음날 그 여자가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듣고 엄청난 죄책감에 휩싸인다. 이후 캐시는 자신이 했을 리 없는 일들이 눈앞에 벌어지고, 모두가 기억하는 이야기를 혼자만 떠올리지 못하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정신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특히 살인자가 그녀를 지켜보며 매일 전화를 걸어온다는 생각에 완전히 공포에 질려 신경이 쇠약해지고 곁을 지켜주던 남편과 친구마저 서서히 지쳐가면서 그녀의 삶은 걷잡을 수 없이 피폐해진다. 결국 캐시는 약에 의존해 하루 종일 잠들기를 선택하고 극심한 불안과 공포를 잠재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문에 그녀의 인생은 점차 사라지게 된다. 


어쩔 때는 놈이 나타난 것 같다. 퍼뜩 정신이 들며, 심장이 빠르게 뛴다. 놈이 창문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는 확신이 든다. 도망치려는 본능 때문에 반쯤 의자에서 일어서다가 다시 주저앉는다. 무슨 상관인가 싶다. 만일 놈이 정말 여기 온다면, 적어도 모든 게 끝날 것이다.(p.157)



자신을 둘러싼 모든 사람을 의심하게 만드는 심리 스릴러는 저자 패리스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고 한다. 저자 패리스는 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불안하게 만들까? 우리는 소중한 사람들과 서로 믿고 의지하는 관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그 연결고리가 취약해질수록 가장 빠르게 무너지기 때문이라는 것이 심리분석가들의 의견이다. 주인공 캐시는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삶의 울타리가 한순간에 덫으로 변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면서 더 이상 그 무엇도 믿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하루가 다르게 고립되어 가던 그녀는 문득 자신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외치는 마음의 소리를 듣고 다시 한번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다. 과연 캐시는 스스로를 구해낼 길을 찾을 수 있을까?


그날 밤에 제인을 봤어요." 나는 휴지를 손가락으로 비틀며 말한다.

"그래요, 파티에서 만났다면서요. 제인에게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니, 그날 말고요. 그녀가······." 살해라는 말이 목에 걸려서 나오지 않는다. "그녀가 죽은 날에요. 블랙워터 길을 지나다가 갓길에 서 있는 그녀의 차를 지나쳤어요."

제인의 남편이 너무 오래 말이 없어서 충격이 큰가 싶다.

"경찰에는 말했습니까? 결국 제인의 남편이 그렇게 말한다.

"네, 경찰에 전화해서 제인이 살아 있는 걸 봤다고 말한 사람이 저예요."

"다른 건 본 게 없나요?"

"네, 제인밖에 못 봤어요. 하지만 그녀인 줄로 몰랐고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생김새가 잘 안 보였거든요. 여자인 것만 알 수 있었어요. 제인이었다는 걸 그 후에 알게 됐고요."

제인의 남편이 숨을 내쉰다. "차에 누가 같이 앉아 있는 건 못 봤습니까? 

"못 봤어요. 그랬으면 경찰에 말했겠죠."

"그래서 그냥 지나갔다고요?"(p.181)



주인공 캐시는 뉴스를 보고 그날 밤 사건을 두고 자신이 제인을 살릴 수도 있었다는 죄책감에 빠진다. 그리고 친구 수지의 생일파티에 참석했다가 레이첼로부터 피해자가 제인 월터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제인은 수지와 레이첼과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동료이고, 캐시와는 사건 얼마 전에 친해지게 된 사이다. 캐시는 레이첼 회사 파티에 초대되었다가 제인을 만났고 이후 식사도 같이 하며 오랜만에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며 반가워한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있었는데 제인이 죽은 것이다. 

사건 발생 후 극도의 스트레스로 심리적으로 몹시 불안한 상태가 지속된다. 결국 친구의 생일 선물을 사는 것도 잊어버리고 앤디와 한나 부부와의 바베큐 파티 약속도 기억하지 못한다. 캐시는 그 사실을 숨기려고 하는데 이유는 그녀의 엄마가 젊은 나이에 치매를 앓았고 투병을 하다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캐시는 혹시라도 자신이 엄마처럼 '치매'일까 더욱 불안해 한다. 이 외에도 캐시의 집에는 정체불명의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한다. 또 누군가가 자신을 훔쳐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더욱 불안하고 혼란하다. 어느 날 매튜의 출장으로 극도로 불안해진 캐시는 호텔에 머물기로 결정한다. 매튜에게 전화를 받고 더욱 초조해지는데 보안 업체가 집에 보안설비를 설치하기 위해 방문하기로 했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심지어는 계약서에 캐시의 필체로 사인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는 등 정신은 갈수록 피폐해져 간다. 

저자는 누가 범인이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한 곳을 가리키는 지점이 확실치 않도록 소설을 구성했다. 독자들은 읽으면서 추리 능력을 발휘하는데 이 책의 경우 저자는 여간해선 범인을 가르키는 곳을 노출하지 않는다. 저자의 스릴러 소설 작법일 것이다. 또 캐시의 부모는 죽기 전에 적지 않은 유산을 남겼는데 이는 캐시조차도 모르는 상황이어서 누가 돈을 노리고 범행을 했을 거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나는 눈을 감고, 언제부터 매튜와 레이철의 불륜이 시작되었을까 생각해본다. 둘이 처음 만났을 때를 돌이켜본다. 내 삶에 매튜가 나타난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다. 나는 이미 사랑에 빠져 있었고 레이철이 매튜를 좋아하길 정말 바랐다. 하지만 둘은 그다지 잘 지내지 못했다. 혹은 당시엔 그렇게 보였다. 서로에게 바로 끌렸는데, 그걸 숨기느라 서먹한 척했는지도 모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심지어 매튜와 내가 결혼도 하기 전에 둘은 불륜이 되었을 수도 있다."(p.220)


결말을 향해 치닫는 클라이막스에 이르면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데 독자들은 뒤통수를 맞는 느낌일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그리고 상대방의 심리를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정하려고 하는 '가스라이팅'에 대해 깨닫게 되는 순간 소설의 막이 내린다. 과연 독자들은 눈썰미와 추리 능력으로 진범을 찾아낼 수 있을까?



오늘 할 일이 많다. 그들의 거짓말과 속임수의 그물을 하나씩 풀어봐야 한다. 우선 한나네 집으로 간다. 아직 외출하지 않았기를. 다행히 자동차가 진입로에 있다. 

한나는 나를 보고 깜짝 놀라는 눈치다. 좀 당황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나한테 좀 어떠냐고 묻는다. 그제야 매튜가 한나에게 내 자살 시도 얘기를 한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정확히 무슨 소리를 들었냐고 물을 시간은 없다. 그래서 그냥 다시 예전 상태를 회복했다고만 말한다. 그 정도면 되겠지. 커피 한잔하겠느냐고 해서, 시간이 없다고 거절하고 본론을 꺼낸다.(p.233)


저자 : B. A. 패리스(B. A. Paris)


영국에서 태어난 후 주로 프랑스에서 성인 시절을 보냈다. 프랑스 국제 은행에서 일하다, 교직을 이수한 후 남편과 어학 학교를 설립했다. 완벽해 보이는 커플에게서 영감을 받은 소설 『비하인드 도어 Behind Closed Doors』는 그녀의 데뷔작으로, 아마존 킨들 독립출판 후 3일 만에 10만 부가 판매되었다. 곧바로 종이책으로도 출간되어, 영국과 미국에서 100만 부 판매를 돌파했고, 100만 달러에 영화 판권도 계약되었다. 이후 굿리즈 최고의 데뷔 소설상과 최고의 스릴러 소설상 후보에 오르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2017년에 발표한 두 번째 소설 『브레이크 다운 The Breakdown』 역시 출간 즉시 킨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단기간에 100만 부 판매를 기록하였다. 세 번째 소설 『브링 미 백 Bring Me Back』은 애플 iBOOKS, [뉴욕타임스], [선데이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네 번째 심리스릴러 『딜레마 The Dilemma』를 써냈다. 그녀의 작품들은 전 세계 38개국에 번역 출간되어 사랑받고 있다.


역자 : 이수영


연세대학교 국문과와 같은 대학원 비교문학과를 졸업했다. 편집자, 기자, 전시 기획자로 일하며 『밴디트: 의적의 역사』 등 인문서로 번역을 시작했다. 지금은 문학 번역에 전념하고 있으며 소설 『클로리스』, 『XX』, 『비하인드 도어』, 에세이 『국경 너머의 키스』, 『마이 코리안 델리』, 여행기 『헤밍웨이의 집에는 고양이가 산다』, 『너의 시베리아』 등을 옮겼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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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사담회 01 - 아는 사람 모르는 이야기
EBS <인물사담회> 제작팀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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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역사 책을 읽을 때 늘 머릿속에 각인돼 있는 두 권의 책을 기억해 낸다. 고등학교 때까지 들어보지 못한 제목의 책이지만 대학에 들어가니 인문교양도서로 지정돼 있었다. 지금도 대학 교양도서 목록에 그대로 지정돼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나는 『역사란 무엇인가?』(원제 : What is history?)란 책으로 E. H. 카(Edward Hallet Carr, 1892∼1982)의 역사이론서다. 어떤 학자는 역사철학서라고 분류하지만 논란거리는 아니다. 또 다른 하나는 아널드 J.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1889~1975)의 『역사의 연구』다. 전자는 책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명제를 남겼다. 카는 역사가의 주된 임무는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것만이 아니라 '있었던 일'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일이며 따라서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도 역사가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역사가는 그가 속한 시대와 사회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역사적 사건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기준도 그 당대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것, 즉 역사가의 관점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다를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후자의 경우 이전과는 다른 독자적인 문명사관을 제시해 주목을 받았던 책이다. "유기체적인 문명의 주기적인 생멸이 역사이며 또, 문명의 추진력이 고차문명의 저차문명에 대한 '도전'과 '대응'의 상호 작용에 있다고 주장했다. 19세기 이후의 전통 사학에 맞서 새로운 역사학을 개척했다고 평가받았다고 한다. 토인비는 그리스 이후 쇠퇴하였던 역사의 반복성에 빛을 부여함으로써 고대와 현대 사이에 철학적 동시대성을 발견하고 역사의 기초를 ‘문명’에 두었다. 문명 그 자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포착하고, 그 생멸(生滅)이 역사이며, 그 생멸에 일정한 규칙성, 즉 발생·성장·해체의 과정을 주기적으로 되풀이하는 것으로 보았다. 또 26개의 문명권을 병행적·동시대적으로 나열하고, 이들 모두가 규칙적인 주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구명하였다. 토인비는 또 문명의 추진력을 고차문명(의 저차문명에 대한 ‘도전’과 ‘대응’의 상호작용에 있다고 보았다. 이 밖에 ‘내적·외적 프롤레타리아트’, ‘세계교회’ 등 특수한 용어에 의한 개념이 사용되고 있는데, 19세기 이후의 전통사학에 정면으로 도전함으로써 새로운 역사학의 길을 개척한 점에서 크게 주목되었다.(독자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우려가 있어 〈두산백과〉를 참조했다)



「아는 사람 모르는 이야기」란 부제가 달린 이 책 『인물사담회』는 EBS 교양프로그램의 명칭에서 비롯됐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사건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낸 인물들의 삶과 정신을 통해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는 살아 있는 학문"이라는 제작팀의 '역사 인식'이 만들어낸 프로그램이다. 방송 프로그램 〈인물사담회〉는 이러한 역사의 중요성을 재조명하며, 각 인물이 가진 독특한 이야기와 그들이 남긴 교훈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해 보여주었다. 2023년 4월부터 7월까지 모두 16부작으로 방영됐다. 방송인 배성재, 개그우먼 장도연, 공학박사 곽재식 교수가 진행을 맡았다. 매회 다른 내용의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첫 회 방영된 「고르바초프 러시아 전 대통령」은 1990년대 냉전 종식과 함께 사라진 인물처럼 어렴풋이 기억되고 있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했다는 점에서 〈인물사담회〉를 전국적으로 알리는 데 기여했다는 후문이다. 또 14회에서 살펴본 「원자 폭탄의 아버지로 알려진 ‘로버트 오펜하이머’」도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 상영 직전 주제로 삼는 등 방송 제작팀의 순발력도 훌륭한 프로그램 제작에 크게 일조했다고 한다. 

이 책 『인물사담회 1』은 1~8회 방영분을 한데 묶었고 9~16부는 2권으로 출간 예정이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부제에서 알았겠지만 이 프로그램은 인물은 역사 속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이라 웬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들이다. 각 분야에서 분야별 엄청난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청자나 독자들은 정사로서 다룬 다큐멘터리나 뉴스에 나올 때는 정사(正史)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일이나, 비밀, 또 가족 관계 등의 사(私)적인 이야기는 모르기 십상이다.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인 신채호 선생이 명언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말처럼 우리 민족은 일제 강점기부터 군부 독재 시절까지 역사를 바로 어려웠다. 정권이나 지배 논리에 맞게 왜곡 변형시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사는 무척 따분하고 지나간 과거 이야기라 흥미를 갖고 배우려고 달려들기에는 거리가 있는 학문 분야다. 더욱이 청소년기에는 지나간 이야기에 별로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이에 역사를 스토리텔링 식으로 풀어 가르쳐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났고, 그 일환으로 이 프로그램도 기획된 것으로 독자는 알고 있다.



독자 기준으로도 1권에 나오는 8명의 인물들은 잘 아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읽어보고 그들의 업적 위주의 활동일부만 알 뿐이지 속사정은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반성도 하게 된다. 프로그램 제작팀이 책 발간에도 그대로 참여한 듯하다. 아마 원고 퇴고를 또 하지 않았나 싶다. 제작팀 최수진 책임 PD는 〈머리말〉을 통해 "선택된 인물들은 각기 다른 시대와 문화 속에서 살았지만, 그들의 삶과 업적은 시공을 초월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전제한 뒤 "고르바초프, 스티브 잡스, 나이팅게일과 같은 인물들을 통해 우리는 리더십, 혁신, 헌신과 같은 가치들을 다시 생각해 보자는 취지에서 비롯됐다"고 밝힌다. 특히 책은 방송에서 시간의 제약으로 다루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독자가 인물의 삶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최근 수없이 쏟아지는 역사·교양 프로그램 사이에서 더 시청자 친화적인 포맷을 구성하려고, 현장 취재와 촬영, 자료 탐독, 흥미로운 그래픽 구성 등으로 시각화했다고 최 책임 PD는 강조한다. 

이에 따라 이 책은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라, 인물들의 생애를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현재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영감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역사적 인물들의 삶에서 깨달음을 얻고, 그들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 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 『인물사담회 1』은 모두 8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한 명의 인물이 각각 한 장(章)을 이루고 있다. 1장 「미하일 고르바초프」, 2장 「니콜라 테슬라」, 3장 「노스트라다무스」, 4장 「프리다 칼로」, 5장 「오에 겐자부로」, 6장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7장 「제갈량」, 8장 「무하마드 알리」 등이다. 각 장은 '아는 사람, 모르는 이야기'로 나뉘어 있다. 8장의 경우 '아는 사람' 알리와 '모르는 이야기'로 각각 나눠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아는 사람' 알리에 대해서는 #어록 #세기의기적 #스캔들 등으로 해시태그를 붙인 뒤 설명한다. 또 '모르는 이야기'에는 #권투_천재 #인종_차별 #저항 #베트남전쟁_참전_거부 #진정한_챔피언 등으로 핵심어로 지정해 설명을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 들려준다. 8장 「싸워야 한다면 알리처럼, 무하마드 알리」는 한참 전성기 때인 25세 때 베트남 참전 징집영장을 거부한다. 그는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건 챔피온 벨트를 박탈당했으며, 이후 3년 6개월간 링에 오르지 못한다. 이는 결국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링에 다시 올랐지만 이미 3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그는 과연 재기했을까?



1장에서 고르바초프는 「냉전을 녹인 바보 대통령, 고르바초프」이란 문구로 소개돼 있다. 그는 대통령이 된 후 '철의 장막'을 걷고 개혁·개방을 통해 나라 경제를 회생시켜야 한다는 결단을 내리고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을 만나서 냉전을 종식한 구 소련 대통령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아마 우리와의 수교를 위해 당시 노태우 대통령을 예방한 적이 있었던 것으로 독자는 기억한다. 특이하게도 그의 이마에는 지도처럼 무늬가 있어 오래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가 냉전을 종식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였던 이유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미국과의 스타워즈 경쟁에서 패했다고 생각한 데서부터라고 한다. 88올림픽 때 북한의 불참 건의를 묵살한 것도 고르바초프였다고 이 책에 나와 있다. 이상의 이야기는 그래도 뉴스나 기타 프로그램에서 거의 알려진 일이지만 민간 차원의 창업을 장려한 일이나, 부분적 시장 경제 도입 등은 처음 들은 내용이다. 또 공산당 일당제를 포기하고 다당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했고, 당 서기장제를 버리고 대통령제를 수립했고 그는 소련의 대통령으로 출마해 당선된 첫 대통령이다. 

1986년 지금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키이우주 체르노빌원자력발전소에서 실험을 하다가 비정상적인 핵반응이 일어났고, 결국 원자로가 폭발하는 엄청난 참사가 일어났다. 이 사고 영향력이 얼마나 컸던지 유럽의 스웨덴과 핀란드까지 높은 수준의 방사능이 검출된 기록도 남아 있다고 한다. 원자력발전소는 사고 이후 페쇄된 후 지금까지 수풀과 폐기물 등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고 한다. 사고 직후 소련에서는 사고를 숨기려 했다는 것이다. 자신들에게 쏟아질 책임 추궁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에 고르바초프는 '공식 사과'를 하고사태를 수습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개혁·개방 정책에는 부작용도 있었다고 한다. 고르바초프(애칭 고르비) 정책에 대중의 반발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금주 정책'으로 1985년 보드카 생산과 판매를 억제한 정책이다. 보드카는 러시아 사람들이 좋아하는 매우 독한 술이다. 러시아인에게 보드카를 빼앗는 정책이어서 반발이 심했던 모양이다. 보드카 금주 정책으로 세수도 크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보드카 세금은 제정 러시아 시절부터 있었던 것으로 소련 시대에도 이어져 왔던 것. 고르바초프는 이 주세 수입을 과감히 포기하고 재정 손실로 인한 적자 예산과 경제적 불안정을 감당하기로 한 것이다. 금주 정책은 러시아인들의 알코올중독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이라고 하는 말도 있다. 일할 나이에 페인이 되고 폐인이 늘어나면 국가의 재정은 점점 열악해질 것이기에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전해진다.



독자가 개인적으로 알고 싶었던 사람은 이란의 마지막 왕 '팔라비 2세'다. 현재 이란에서는 여성들의 히잡 착용을 강제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9세부터는 무조건 히잡을 쓰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어서 이를 어기면 도덕 경찰에 체포 및 구금될 수 있으며 때에 따라 태형으로 74대까지 맞을 수 있다. 도덕 경찰은 히잡 착용을 비롯한 이슬람 풍속 단속을 전담하는 지도 순찰대이다. 외국 여성이라도 이란에서 히잡을 쓰지 않으면 도덕 경찰의 지도 대상이 된다. 이처럼 히잡 착용에 대해 엄중한 이란에서 2022년 9월 히잡 반대 시위가 시작됐다. 마흐사 아미니라는 22세의 여성이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 체포된 뒤 의문사한 것이 계기가 됐다.

시위가 격렬해지자 이란 정부는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했고, 진압 과정에서 총기 사용 등 폭력이 난무해 시위대 수백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2024년 현재까지도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1908년 이란 땅에서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양의 석유가 발견되었다. 이란의 석유 탐사 및 개발을 위한 독점적 권리를 가지고 있던 영국은 '앵글로 이라니아'라는 석유회사를 세워 이란에 끊임없이 석유 이권을 요구했다. 당시 이란의 왕이었던 팔라비 2세의 아버지 팔라비 1세는 개발 정책을 꾀하고 있었고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여러 외국 기술자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는 이란의 석유를 헐값에 뽑아가는 영국보다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의 국가에서 도움을 받고자 했다. 그러던 중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면서 전쟁의 불길이 전 세계로 확산됐다. 팔라비 1세는 중립을 선언하며 이란을 전쟁으로부터 지켜내고자 했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영국과 독일 간 전쟁이 격화되면서 영국은 이란 내 석유회사에 근무하는 독일인 기술자들이 스파이라며 이란 정부에 그들의 추방을 요구했다. 하지만 팔레비 1세는 중립을 고수하며 거절했다. 이를 명분으로 영국은 연합국이던 소련과 함께 이란을 침공했다. 이란군은 항복할 수밖에 없었고 팔라비 1세는 강제로 폐위된다. 만 21세의 황태자였던 팔라비 2세에게 왕권을 넘긴다. 이로 인해 이란 국민들 사이에서 영국과 소련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남겼다. 1951년 총리로 선출된 모하마드 모사데크가 추진한 이란의 석유 국유화는 미국과 영국의 역공이 예상된 대로 미국은 이란산 석유 구매를 중단하고 이란의 석유 수출을 봉쇄한다. 경제난에 부닥친 이란은 결국 미국, 영국 정보기관이 협력해 모사테크 정부를 전복하는 작전을 수행해 모사데크는 실각한다.



팔라비 2세는 미국을 등에 업고 석유산업에서 얻은 방대한 수익을 바탕으로 이란의 경제 발전을 추친한다. 이란이 석유로 엄청나게 수익을 올렸지만 부의 분배는 극히 불평등했다. 이란 국민들은 생필품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팔라비 2세와 일부 지지자는 그야말로 호화생활을 해나간다. 이때 나타난 사람이 호메이니 종교 지도자이자 정치인이다. 팔라비 2세는 이란 건국 2,500주년을 맞아 1971년 세계 정상들을 모두 초청하는 대규모 행사를 주최한다. 이 행사비용이 무려 1~2억달러라고 하니 오일머니를 실감하게 한다. 팔라비 2세는 세 번의 왕비를 맞이했는데 첫 번째는 이집트 국왕의 딸과 정략결혼이지만 팔라비 2세의 바람기로 두 사람은 이혼한다. 두 번째는 이란 남부 귀족 출신으로 유럽에서 교육받은 여성이라서 자유분방한 성격이어서 팔라비 2세가 가장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는 후손이 없었다. 왕위를 이어야 하는데 이을 수 없게 되자 이혼했다는 것. 세 번째는 이란 군인의 딸로 무려 19살 차이였다. 부인은 팔라비 2세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피우지아 사이에서 낳은 딸의 친구였다고. 세 번째 부인은 현재 미국으로 망명했고 이란 내외에서 여전히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니 이란의 앞길도 이래저래 안개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 셈이다. 


저자 : EBS 인물사담회 제작팀


최수진PD : [클래스e], [지식채널e], [건축탐구 집], [조식포함 아파트], [스페이스 공감], [EBS장학퀴즈], [스쿨랜드], [모여라 딩동댕] 등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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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세연 : [스페이스 공감], [스쿨랜드], [배움너머], [과학땡Q], [클래스e], [지식채널e], [음악캠프], [임성훈과 함께] 등 집필.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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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를 떠나면 어른이 될까요? - 숨을 쉬는 이유를 찾고자 떠난 여행의 기록
이재휘 지음 / 대경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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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여기를 떠나면 어른이 될까요?』는 여행 에세이다. 다만 여행 전문 작가가 글을 남기기 위해 떠난 여행이 아니라는 점에서 '특별한' 여행을 예고하고 있다. 9살 어린 시절에 꾸었던 세계 여행에 대한 꿈을 이루고자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는 것이 저자 이재휘의 말이다. 목적을 갖고 떠난 여행보다는 '무작정' 떠나는 여행이 훨씬 자유롭고 가슴에 남는 기억이 많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 '봐야 할 것'보다는 '보고 싶은 것'을 본다는 장점 때문일 것으로 독자는 생각한다. 독자는 이 대목에서 작가 김영하가 쓴 여행 에세이 『여행의 이유』를 생각해낸다. 그 책은 여행지에서 겪은 이런저런 경험을 풀어내는 여행담이 아니다. 여행을 중심으로 인간과 글쓰기, 타자와 환대,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로 그 주제가 점차 확장되어가는 사유의 여행기다. 우리가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한쪽에 미뤄둔 여행과 인생에 관한 단상이 작가의 독보적이고 깊은 인문학적 사유를 따라 각기 그 맥락과 형태를 갖춰가는 독서의 경험은 마치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여행처럼 강렬하고도 긴 파장을 남겼기 때문에 독자들의 큰 인기를 끌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출판계는 그 책이 "떠나기 전 여행의 의미와 목적을 가다듬기 위해, 혹은 자신이 다녀온 여행이 과연 어떤 것이었는지 헤아리기 위해" 수많은 독자가 읽고자 하는 이유라고 밝히고 있다. 단순한 여행담보다 여행의 이유에 대한 글이 독자들의 독서욕을 자극했다는 분석이다. 물론 작가의 문장력이나 독자들의 독서욕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전업작가로서의 능력을 빼고 하는 분석일 터다. 

김영하 작가는 그 책에서 "자기 의지를 가지고 낯선 곳에 도착해 몸의 온갖 감각을 열어 그것을 느끼는 경험. 한 번이라도 그것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일상이 아닌 여행이 인생의 원점이 된다. 일상으로 돌아올 때가 아니라 여행을 시작할 때 마음이 더 편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와 같은 부류의 인간일 것이다. 이번 생은 떠돌면서 살 운명이라는 것. 귀환의 원점 같은 것은 없다는 것. 이제는 그걸 받아들이기로 한다."고 쓰고 있어 목적이 있는 글로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그 책은 여행담이 아니다. 여행하는 이유에 대한 사유이다. 이 책 『여기를 떠나면 어른이 될까요?』 역시 여행의 이유를 적고 있다.



저자 이재휘는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었다. 20년 후의 나에게 묻건대 이대로 산다면 분명 후회할 것 같았다. 15살의 자신이 물었던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면, 9살에 처음으로 꾸었던 세계여행의 꿈을 실현하지 않는다면 후일 큰 후회가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현재의 염증은 미래에 큰 병이 될 것 같았다. 가장 안정되고 괜찮은 회사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이 이상의 안정과 행복이 두려워 사직서를 썼다. (중략) 

어떻게 살아도 삶에 행복보다 고난이 많다면, 아무리 잘 살아도 후회가 남는 것이 인생이라면, 나는 왜 살아야 하며 결혼을 하고, 새 생명을 부여할 자격은 어디에서 주어지는 걸까? 오랫동안 물어본 인생의 질문을 얻기 위해,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그리고 꿈을 찾기 위해, 그리고 어른이 되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p.4~5)고 책의 〈프롤로그〉를 통해 여행의 이유를 밝히고 있다. 일상을 살다 미래가 어느 정도 보장된 직장을 버리고, 장기간 해외 여행을 간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저지르기'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목적도 없이, 이유만 달랑 들고, 장기 해외 여행을 감행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저자처럼 목적도 없이, 앞으로의 호구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다. 

저자에 따르면 최고의 선택을 하고 오늘을 아무리 잘 살아도 차선의 선택을 하지 못한 일말의 아쉬움은 늘 남는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다짐이다. 인생은 한 가지의 길만 갈 수 있기에 짜장면을 주문하면 짬뽕이 아쉽듯 후회는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었다. 인생에는 짬짜면이 없다. 저자가 털어놓은 말이 독자들에게 설득력을 가질지 모르지만. 여행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오며, 저자는 삶에게 답 없는 질문만 해오며 고뇌했던 자신에게 수고했다는 과찬을 전한다고 했다. "눈을 뜨게 해준 하루의 시작과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 과거를 적당히 후회하고 미래를 적당하게 걱정하겠다. 어느 날에 찾아올 불행한 나날도 잘 견디고 이겨내길 바란다. 언젠가 어른이 되면 지난날의 발자취를 기쁘게 돌아보길 희망한다."고 다짐하고 있다.



이 책 『여기를 떠나면 어른이 될까요?』는 「숨을 쉬는 이유를 찾고자 떠난 여행의 기록」이라는 부제를 갖고 있다. 떠나지 않고서는 도저히 숨 쉬는 이유도 찾기 힘들 정도로 세계 여행을 떠난 저자의 심경을 헤아리기 어려운 일이지만 저자가 여행에서 돌아온 후 무엇을 얻었는지, 자신의 삶을 위한 힘이 되는 경험을 쌓았는지, 아니면 찾아냈는지 이 책을 읽어보면 알 일이다. 저자의 펜끝에서 독자들이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은 모두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에는 여행의 기간이 밝혀지지 않지만 저자가 들렀던 도시를 대충 훑어봐도 6대주를 돌아다닌 것만은 분명하다. 4개 장에 여행한 곳을 82번까지 일련번호가 매겨져 여행지 숫자를 헤아리기에는 어렵지 않다. 4개 장에는 각각의 제목이 붙어 있다. 1장 〈머물지 못했습니다〉, 2장 〈그런데, 꿈이 무엇인가요?〉, 3장 〈향기에는 이름이 없습니다〉, 4장 〈숨을 쉬고 있습니다〉 등이다. 각 장의 제목을 통해 마지막 4장의 제목이 '숨을 쉬고 있습니다'로 적혀 있다. 이는 숨 쉬는 이유도 몰라서 떠난 여행 후 '숨을 쉬고 있다'는 말로 미루어 성공적 여행이었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첫 여행지는 대만으로 결정했다.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가장 저렴한 비행기 가격으로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나라'라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당장 퇴사한 자의 주머니가 가벼운 것은 아니었지만, 검소하고 겸손하게 출발하고 싶었다고 첫 여행지 선택의 이유를 밝힌다. 대만 호스텔에 도착해 샤워하고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이 '멋있어' 보인다고 한다. "아무 계획도 없이 사람이 많은 쪽으로 걷다 보니 시장이 나오고 만두집이 눈에 들어왔다. 점심이 훌쩍 지났는데 먹은 것이 없었다. 여행의 기대와 설렘을 바닥까지 긁어먹다 보니 배고픈 것도 잊어버렸단다. 고등학교 때 배운 중국어 실력은 "이, 얼, 싼, 쓰!" 정도였다니 의사가 통할까? 우리 분식집에서 검지손가락 하나 들어 "일!" 하는 것처럼. 다행히 주인이 알아차리고 만두를 건네주었다고 한다. 설렘 속 여행 첫 날이 잠이 쉽게 들 리 없다. 더욱이 혼자서 가야 할 앞으로의 일정을 생각해보면 불안감도 엄습했으리라. "오늘 나는 나와 첫 대화를 시작했다."고 썼다.



두 번째는 말레이시아 페낭이다. 이어 세 번째 UAE 두바이 등에 대해 잠깐씩 들르는 식으로 이야기를 꺼내다 갑자기 이탈리아 시칠리아가 나타난다. 4번째 여행지(책의 글 순서)다. 이곳은 독자들이 잘 알겠지만 영화 〈대부〉에서 나오는 곳이다. "시칠리아 여행을 결정하고 나서야 〈대부〉의 배경이 시칠리아 섬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비행기에서 〈대부〉를 감상했다. 아카데미의 상을 휩쓸었다는 연출과 스토리를 말할 것도 없고 알파치노의 열연을 보니 왜 명작이라 불리는지 수긍이 갔다. 영하는 마음 깊은 곳까지 인상이 깊었는지 시칠리아 공항에 발을 내딛자 웅장한 〈대부〉의 OST가 귀를 울린다. 영화에 잠식된 선입견은 엄한 사람을 마피아로 만든다. 말끔한 정장을 입은 남자의 안주머니에는 총이 숨겨져 있을 것 같고, 수염이 덥수룩한 저 남자의 가방에는 마약이 있을 것 같다. 평소보다 더 많이 두리번거리며 도시로 가는 버스표를 끊기 위해 판매소로 향했다. 판매원은 꽤나 쌀쌀맞다. 〈대부〉의 상인은 차갑다."(p.31)

그러나 도시는 영화의 무거운 분위기와 정반대였다고 저자는 술회한다. 깔끔하고 숙소 직원은 친절했다. 숙소 앞 시장에는 사람이 굉장히 많고 가지각색의 식재료가 즐비했다. 활기찬 시장을 거닐며 시칠리아의 명물인 아란치니를 한입 무니 〈대부〉의 음악이 꺼지고 안드레아 보첼리의 맑은 목소리가 울려온다. 지중해의 맛은 황홀하구나. 시칠릴아의 음식들은 대체적으로 굉장히 맛있고 저렴했다. 옛날에 가난한 도시였ㅅ던 이유로 내장이나 부속 고기를 활용한 요리가 많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내장 요리를 찾기 쉽지 않았기에 오랜만에 맡는 부속 고기의 향은 정겨웠다.

모로코의 낯선 도시에서는 유리창에 붙어 있는 '파리' 한 마리와 동석한 느낌이었다니 무슨 느낌일까? 독자로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지만 글은 지난날로 돌아간다. "지난날 회사생활은 나름 행복했다. 분명 여느 직장인처럼 출근은 피곤하고 월요일이 싫었다. 회사가 본가와 멀어 일요일 밤마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돌아가는 기분은 휴가에서 복귀하는 이등병처럼 울적했다고 기억해 낸다.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졌지만. 그러나 어른이 되기 위해 내가 '나'가 되기 위해 회사생활만으로는 부족했다고 한다. 그래서 세계여행에 올랐다는 이야기다. 유리창에 붙은 파리 한 마리를 보고 지난날의 자신의 회사생활에 감정이입한 것을 그제서야 독자는 눈치챈다. 



저자는 멘사에 가입할 정도로 지능이 뛰어난 듯하다. 멘사 가입자격이 독자가 알기로는 IQ(아이큐) 150 이상이라고 들은 적이 있는데... 저자가 교환학생으로 외국에서 공부한 적이 있나보다. 스페인 발렌시아 지방에 갔을 때는 교환학생으로 공부할 때 친해진 스페인 친구를 만난다. 스페인어 몇 가지를 비행기 안에서 외우지만 그렇게 해서 현지에서 써 먹을 수 있을까? 사실 몇 마디 배워서 써 먹는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책이나 교재에서 배울 때 대화 순서가 자신이 직접 부딪친 대화가 오가지 않을 경우가 훨씬 많은데 이때부터는 히어링이 안 된다. 열심히 몇 마디 배워봤자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면 대화는 더 이상 불가능해진다. 독자도 여러 번 경험했다. 스페인 친구의 이름은 '싼티'라고 한다. 그의 집에 도착하자 부모님의 환대에 음식을 다 먹기 어려울 정도로 아침저녁으로 대접해줘서 배가 부른 기억만 남았나? 친구에게 물어 '조금만'이라는 스페인어는 '뽀끼또"라고 한다. 이 말만 되풀이했다는 것이다. 발렌시아에 도착하고 닷새 간 친구집에 머무른 듯하다. 저자는 덕분에 얼굴이 굉장히 퉁퉁해졌다고 은근히 알려준다. 

이탈리아 제노바에도 갔다. 제노바는 아는 독자들이 많겠지만 제노바만에 있는 항구도시로, 영어로는 제노아(Genoa)라고 한다. 이탈리아 쪽의 리구리아해 중앙에 위치하는 이탈리아 제1의 항구이며, 밀라노·토리노와 더불어 북부 이탈리아 공업지대의 중심을 이룬다. 제노아는 리구리아 주의 주도이기도 하다. 아펜니노 산지가 바다까지 다가와 있기 때문에 시가지는 산허리에 있으며, 시를 통과하는 철도의 대부분은 터널을 지나간다고 한다.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자 C.콜럼버스, 음악가 N.파가니니, 이탈리아 통일운동 때의 공화주의자 G.마치니 등의 출신지로서 알려져 있다. 이 도시는 십자군원정 무렵부터 협력하여 동지중해와 중동에 진출하였으며, 베네치아와 함께 지중해 교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12∼13세기에는 많은 해외식민지를 획득하고, 상업·금융업·해군력 등으로 지중해의 일대세력이 되었으며, 내륙에도 영토를 확대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저자는 무엇을 봤는지,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에 대한 언급보다는 〈대항해시대〉라는 게임을 기억해 낸다. 집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 원하는 것은 부모님이 뭐든지 사 주셨지만 유독 컴퓨터만 시간이 오래 걸렸단다. 아마도 컴퓨터로 게임 중독이 심각하다는 보도가 나왔을 무렵이 아닐까 독자는 유추해 본다.



제노바를 떠나 베로나로 향한다. 처음 가보는 곳이라 정보를 미리 충분하게 챙기지 못해 스마트폰에 의지하려고 마음 먹는다. 과거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도시여서 길이 복잡하고 골목길이나 샛길이 많다. 더 매력적이긴 하지만 스마트폰으로도 정류장의 위치가 정확하지 않다. 가는 방향만 놓고 계산해 어렵사리 다가오는 베로나행 버스를 잡을 수 있었다. 베로나는 셰익스피어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가 된 곳으로, 극의 내용처럼 복잡하고 미묘하다. 비까지 내려 험난했던 베로나 가는 길로 저자의 첫 인상을 오래 남게 하는 데는 성공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엿보기 위해 도착한 이 도시에서, 저자는 도시 풍경과 어울리지 않은 것 같았나 보다. 서둘러 짐을 챙겨 밖을 내다보니 창밖에 두 가지의 놀랍도록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하나는 공원을 끼고 펼쳐진 예쁜 건물들이고, 그 다음은 도착한 버스에서 내린 엄청난 수의 커플들이었다. 잠시 앉아 다시 유심히 살펴본다. 아무리 봐도 모든 이들이 짝을 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혼자 여행하는 것이 편하다고 해도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에서 순도 100%의 커플들을 보니 전의를 상실한 병사처럼 다시 일어설 수 없었다. 베로나 시내 줄리엣의 집에는 운명적인 사랑을 이루려는 이들로 가득하고, 아름다운 아티제 강변에서는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인다는 베로나에 와서 발길을 돌리기는 억울했지만 그들과 함께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버스 기사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 버스는 어디까지 가나요?" "베네치아." 마침 베로나 다음에 방문할 도시였다. 베로나에 내리지 않을 용기(?)가 생겼다. 저자의 표현은 '용기'이지만 독자가 판단하기로는 안 내릴 '명분'인 셈이다. 그렇게 저자는 수많은 로미오와 줄리엣 커플들을 보고 혼자라는 이유로 쉽게 베로나를 포기해 버렸다.


여행을 할 때에는 눈보다는 귀와 코를 여는 것이 좋다. 마음의 깊은 감동은 눈으로부터 오지만 시각의 기억은 생각보다 빠르게 잊힌다. 잊고 싶지 않은 풍경이나 거리를 마주하게 되면 카메라보다는 음악을 먼저 찾는다. 눈으로 들어오는 감동과 함께 알맞은 음악을 함께 들을 때면 떡국 위 후추 같이 좋은 향신료가 된다. 노래로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누군가는 여행지마다 공항에 도착하면 새로운 향수를 뿌리기도 한다. 그리고는 그 향기를 맡았을 때 각 여행지의 모든 기억과 향수가 떠오르는 것이다. 나는 청각보다 후각이 예민한 사람이기에 첫 여행 때 후각을 이용하는 방법을 몰랐다는 것이 조금 아쉬우나 청각만으로도 추억을 되새기기에는 충분하다.(p.307)


저자 : 이재휘


수학을 좋아해서 멘사에 들어갔지만 운동할 때가 가장 즐겁습니다.

글을 쓰는 것이 좋아 작가가 되었고, 그리워하기 위해 여행하는 유랑객입니다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면서도 현재가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슬프고 화가 나고 울적한 순간에도 어느새 숨을 쉬고 있는 지금이 감사하기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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