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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 작은 독서 모임
프리다 쉬베크 지음, 심연희 옮김 / 열림원 / 2024년 6월
평점 :
이 책 『세상 끝 작은 독서 모임』의 표제어 중 '세상 끝'이란 문구가 향수를 자극한다. '세상 끝'이란 문구는 시공간 상에서 여러 가지 뜻을 담아낼 수 있지만, 비유적으로는 '삶의 끝'이란 의미를 포함할 수도 있다. 이 책의 분위기나 내용을 감지한 독자로서는 '땅끝마을'이 쉽게 떠오른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별칭의 지역이 있어서다. 전라남도 해남이다. 해남(海南)이란 지역은 '남쪽바다'란 의미가 강할 것 같은데 왜 땅끝마을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제강점기 때 육당 최남선이 쓴 『조선상식문답』에 한반도 남쪽 땅끝의 해남에서 서울까지 1,000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끝 온성까지 2,000리를 헤아려, 이로부터 ‘3,000리 강산’이라는 말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이때 '토말' '갈두마을'이라고도 썼다는데 이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한다.
이 책의 공간적 배경은 스웨덴의 세상 끝 작은 마을 '유셰르'이다. 스웨덴은 독자로서 한 번도 못 가봐서 버킷리스트에 남겨 둔 나라다. 독자들도 잘 알다시피 스웨덴은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 동쪽에 있는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인구가 1,000만 명이 조금 넘는다. 세상에서 사회보장제도가 가장 잘 갖춰진 나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이 나라의 특징은 노벨상을 수여하는 나라다. 우리는 수상자가 겨우 1명에 그치고 있지만 얼마든지 충분히 더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 소설의 배경인 유셰르는 처음 들어본 지명이라 백과사전을 찾았지만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소설 속에서 인근에 '스코네'와 '말뫼'라는 지역명이 자주 나온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스코네는 스웨덴의 최남단에 있는 주(州)로 33개의 자치단체가 있다. 국제적으로는 영어 지명인 스카니아(Scania)로 널리 알려졌다. 주에서 가장 큰 도시는 말뫼인데 이 도시는 스웨덴에서 세 번째로 크며 스칸디나비아 전체에서도 다섯 번째로 크다. 표준어인 스웨덴어 이외에 방언인 스코네어가 중장년층, 노년층에서는 쓰이기도 한다. 스코네는 북쪽으로는 할란드와 스몰란드 지방, 북동쪽으로는 블레킹에, 동쪽과 남쪽은 발트해, 서쪽은 외레순드 지방과 경계를 이룬다. 2000년에 차량도로 및 철도용 다리인 외레순드 대교가 개통돼 덴마크와 교통이 원활하다. 스코네 지방은 남북 길이가 약 130km로 스웨덴 전체 면적의 3%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인구는 132만여 명으로 스웨덴 전체 인구의 13%를 차지한다. 인구밀도는 제곱킬로미터 당 121명으로 스웨덴에서 둘째로 인구가 밀집된 지역이다.
이 소설은 30여 년 전 스웨덴에서 수수께끼처럼 실종된 여동생에 대한 아픔을 마음 한구석에 묻어둔 채 미국에서 살아가던 퍼트리샤가 스웨덴의 유셰르를 찾으면서 시작된다. 어느 날 스웨덴에서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여동생의 목걸이가 담긴 봉투를 그녀에게 보내오고, 퍼트리샤는 어쩌면 여동생의 행방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을 안고 낯선 땅 스웨덴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퍼트리샤는 자신이 묵는 호텔 주인 모나가 친구들과 함께 여는 작은 독서 모임에 참여하게 된다.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바다와 그림 같은 마을이 있는,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스웨덴의 아름다운 도시 유셰르에서의 독서모임이라··· 굉장히 낭만적이다. 아늑한 공간과 맛있는 음식, 책과 문학, 경쾌한 축제, 그리고 무엇보다 곁을 내준 다정한 이들의 힘으로 슬픔에서 일어서는, 퍼트리샤가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 따뜻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의 저자 프리다 쉬베크는 전작 『템스강의 작은 서점』이 스웨덴에서만 12만 부 이상 팔려 급부상한 작가다. 쉬베크는 2011년 처음 발표한 소설 『샬롯 하셀』이 큰 사랑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전작 『템스강의 작은 서점』은 독자로서는 오랜만에 접하는 북유럽의 소설이어서 관심이 갔다. 독자가 많은 책을 읽지 못한 탓이겠지만 번역서 중 북유럽 작품을 발견하는 일은 흔치 않다. 특히 노벨문학상을 수여하는 곳이 스웨덴이다. 젤마 라게를뢰프(1909), 베르너 폰 헤이덴스탐(1916), 실험정신과 순수한 문체를 구사하는 페르 라게르크비스트(1951)가 노벨상을 수상했지만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전작 『템스강의 작은 서점』의 공간 배경은 런던이지만 주인공 샬로테는 스웨덴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스웨덴 사람으로 스웨덴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저자 쉬베크의 삶이 금세 떠오를 만큼 안정된 분위기의 작품이다. 스웨덴어로 쓰여진 이 소설은 런던의 오래된 서점을 배경으로,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사랑스러운 인물들의 이야기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펼쳐진다.
주인공 샬로테는 태어나 한 번도 본 적 없던 이모가 자신에게 런던 한가운데에 있는 서점을 물려주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스웨덴에서 자신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샬로테는 런던까지 가서 서점을 운영하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한 일이란 생각이었다. 따라서 런던에 가 짧은 시간 동안 서점을 매각할 예정으로 런던행 비행기에 올라 서점으로 향한다. 남편을 잃은 자신을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런던에는 없을 거라는 생각도 함께하면서 서점을 운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잠깐이지만 해본다. 서점을 매각하고 곧바로 스웨덴으로 돌아오려 했지만, 서점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직원, 마르티니크와 샘의 모습에 마음이 조금씩 흔들린다. 이처럼 저자 쉬베크는 우리 일상에서의 작은 행복감과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인간 관계 갈등 묘사에 섬세하고 치밀하다. 또 가끔은 안타까운 과거 추억에 늘 마음이 편치 않은 슬픔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소시민의 삶을 들여다보는 혜안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미래의 삶을 살 수 있을까에 대해 독자들에게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이번 작품 『세상 끝 작은 독서 모임』에서도 주인공 퍼트리샤는 30여 년 전 스웨덴에서 수수께끼처럼 실종된 여동생에 대한 아픔을 마음 한구석에 묻어둔 채 살아가는, 미국에서 직장을 다니는 여성이다. 그러던 어느 날, 스웨덴에서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발신자 없는 편지를 그녀에게 보내온다. 편지 봉투 안엔 여동생의 목걸이가 담겨 있었고(자신이 어렸을 때 선물로 준), 퍼트리샤는 어쩌면 여동생의 행방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을 안고 스웨덴으로 향한다.
퍼트리샤는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스웨덴의 작고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 유셰르에 도착한다. 그녀의 여동생 매들린은 30여 년 전 유셰르의 자유교회에서 인턴을 하던 중 어느 날 갑자기 모습을 감췄다. 하지만 진실의 실마리는 쉽사리 잡히지 않고, 무력감에 빠져 있던 퍼트리샤는 호텔 주인 모나가 친구들과 함께 여는 작은 독서 모임에 참여하게 된다. 책을 좋아하는 퍼트리샤는 그 모임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고, 독서 모임 친구들에게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는다. 모임의 친구들은 그녀가 진실을 찾을 수 있도록 돕기 시작하는데······. 퍼트리샤는 과연 여동생의 행방을 찾을 수 있을까? ‘세상의 끝’에서 그녀가 발견하게 되는 진실은 무엇일까.
이 소설은 수수께끼에 싸인 실종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한편, ‘독서 모임’을 중심으로 모인 이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각자의 고민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나간다. 독서 모임이 열리는 공간인 ‘책이 있는 B&B’는 마을 토박이인 여성 모나가 운영하는 작고 아늑한 호텔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나이 지긋한 사서의 거실에 들어온 느낌”을 주는 이 공간은 “온갖 자질구레한 보물” 같은 앤티크한 소품들, 모나가 손님들을 위해 굽는 맛있는 빵과 음식들, 그리고 무엇보다 사방에 책이 가득하다. 이곳에 머물면서 퍼트리샤는 독서 모임 친구들과 함께 우정을 나누며, 좌절과 무력감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퍼트리샤를 비롯한 독서 모임의 회원들은 저마다 인생의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중년의 여성들이다. 일생 동안 정성스레 가꿔온 호텔을 더 이상 지속하기 힘든 위기에 처한 모나, 1년 전쯤 사랑하는 남편과 사별하고 상실감과 외로움 속에 살아가는 도리스, 유명 영화배우이지만 남편과 이혼 위기에 있으며 나이 든 배우로서 한계를 느끼는 마리안네가 주요 등장인물이다. 이외에도 에리카와 마르틴은 17년 전 만나 서로에게 결혼하지만 부부 성생활에서는 원만치 못하다. 이 마을 사람들이 작은 마을에서 살며 도시 분위기와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을 저자 쉬베크가 마련한 장치 중의 하나다.
"그들의 성생활은 이제 창문 닦는 것만큼이나 드문 일이 되어버렸다다. (중략) 섹스는 항상 너무나 단조롭고 기계적이어서 에리카는 차라리 옛날에 급하게 일을 치렀던 순간이 더 그립곤 했다. 에리카는 목덜미를 긁적였다. 자신에게 섹스란 항상 매우 사적인 영역이자 다소 민망한 주제였다(성생활 초기에는 불을 다 꺼놓고 하는 걸 좋아했는데, 아마도 그건 어머니가 유독 관대하게도 '꽃처럼 만개하하는 힘'을 긍정한다는 태도에 대한 반항심이었던 것 같다). 비록 자신의 태도가 얼마나 보수적인지 잘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결혼 관계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주된 책임자는 남자여야 한다고 생각했다."(p.66~67)
이들은 살면서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말하고, 경청하고, 공감하며 함께 풀어나간다. 친숙해진 뒤에는 성(性)에 대한 농담도 할 정도로 마음을 주고 받는다. 마치 오랜 친구들인 것처럼. 그들은 독서 모임을 통해 문학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한편, 서로의 고민과 마음에도 귀를 기울인다. 또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 서로를 돕기도 한다. 마치 우리의 어느 시골 지방의 한 모습처럼 떠오르는 일상이다. 이들은 퍼트리샤가 여동생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 함께 머리를 맞대기도 하고, 함께하는 공간인 호텔의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해 마을 여름 축제 때 문학 퀴즈 행사를 여는 등,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해나간다.
덕분에 유셰르에서 퍼트리샤가 보내는 시간은 오래 묵은 아픔과 진실을 마주해야 하는 힘든 시간이기도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이들의 따뜻하고 유쾌한 힘으로 슬픔에서 일어서는 위안의 시간이기도 하다. 심각하기보단 특유의 경쾌한 문체로 인생의 고민들을 풀어가는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독자들 역시 어느새 자신의 고민을 돌아보고 새로운 힘을 충전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소설은 대략 두 가지 상황을 오가며 화자(話者)의 시각이 달라지지만 소설 전체로는 전지적 3인칭 시점이다. 또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데 아무런 장치가 게입되지 않는다. 우리 삶이 그렇듯이 어제와 같은 듯한 오늘, 오늘과 같은 듯한 내일의 연속처럼 자연스럽게 소설은 전개된다. 그러나 소설 전체적으로는 주인공 퍼트리샤의 동선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퍼트리샤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퍼트리샤는 이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한다. 먼저 동생을 찾아 스웨덴으로 간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고 잘 알지 못하는 마을에 도착해 마을 주민이자 세상 끝 마을의 구성원들과 친분을 쌓고 마음을 열어 함께하면서 동생 매들렌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마들랜의 이곳에서의 행적과 부딪쳤던 일들은 저자가 전지적 시점으로 풀어낸다. 퍼트리샤와 함께하는 '세상 끝'이라 불리는 유셰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각자의 고민과 관계도 세심하게 저자는 풀어낸다. 퍼트리샤는 이곳에서 과거 마음의 상처에 대한 치유의 시간을 보낸다. “이번 여름은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이었어.”
퍼트리샤는 하얀 종이를 앞에 두고 앉아 대신 동생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편지에서 그녀는 매들린의 어린 시절에 대해 설명했다. 내 동생은 갓 태어난 새끼 양이나 병아리, 새끼 돼지들을 집에 데려와야 한다고 애원했던 아이였다고. 새끼들이 어두운 헛간에서 무서워하면 어떡하냐고 걱정해서였다고. 내 동생은 혼자서 작곡한 노래를 들려주며 퍼트리샤와 아버지를 즐겁게 해주었다고,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모두 다 잘 지내는 방법이 뭘까 궁금해하던 아이였다고.
이 편지를 쓰는 의미가 뭔지 사실 퍼트리샤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이건 속죄의 시도일까.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든 요나스에게 매들린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니 좋았다. 그러면 요나스는 매들린에 대해 자세한 심상을 갖게 될 테니까.(pp.535~536)
“고마워, 모두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중얼거렸다. 도리스와 모나, 마리안네가 일어서서 탁자 이쪽으로 다가와 퍼트리샤를 안아주자 그녀는 더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여기 오면 언제나 널 위한 방이 준비되어 있을 거야. 내가 이 호텔을 운영하는 한 말이야. 난 백 살까지 살 거야.”(p.544)
저자 : 프리다 쉬베크(Frida Skyback)
1980년 스웨덴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작가를 꿈꾸었으며 다섯 살 때 처음 책을 썼다. 작가가 되기 전에는 고등학교에서 언어와 역사를 가르쳤다. 블로그를 통해 글을 써오다가 2011년 첫 발표한 소설 『샬롯 하셀』이 큰 사랑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2개국 이상 작품이 계약되어 번역 중이며, 『템스강의 작은 서점』은 12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현재 남편, 두 딸과 함께 스웨덴 룬드에 살고 있다.
역자 : 심연희
연세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독일 뮌헨 대학교(LMU)에서 언어학과 미국학을 공부했다. 영어와 독일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소설 『아웃랜더』, 『아이언 위도우』, 『레슨 인 케미스트리』, 『스파크』, 『미드나잇 선』, 그래픽 노블 『인어 소녀』, 『티 드래곤 클럽』, 시리즈물로 『이사도라 문』, 『인 더 게임』, 『매머드 아카데미』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