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워터 레인 아르테 오리지널 30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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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작품 『블랙워터 레인』의 원제는 'The Breakdown'으로, '고장'이란 뜻이다. 이 단어는 자동차나 기계의 고장뿐 아니라 사람의 정신적 문제도 가리키는 단어라고 한다. 흔히 정신적 붕괴를 가리키는 신경쇠약(nervous breakdown)'이라는 말에 쓰인다(p.304)고 역자 이수영은 〈옮긴이의 말〉에서 풀이하고 있다. 갑자기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이 생각나는 것은 독자의 전쟁 영화 선호 때문이라기보다는 '블랙'과 '브레이크'를 순간 혼동을 일으켜서다. 얼떨결에 독자의 영어 실력이 형편없음을 고백하는 꼴이다. 영화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이 책 『블랙워터 레인』은 영화화되면서 원제를 바꿨다. 독자의 혼동에 대한 약간의 면죄부가 될지도 모를 변명이다. 이 작품은 ‘첫 페이지부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소설’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출간과 동시에 100만 부 넘게 팔렸다고 한다. 


7월 17일 금요일 

이제 여름방학만을 앞두고 모두 작별 인사를 하는데 천둥이 시작된다. 우렛소리가 지축을 울리는 바람에 코니가 펄쩍 뛰자 존이 웃었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밀려든다. 

"얼른 가야겠네!" 존이 외친다.

나는 손을 흔들며 내 차로 달려간다. 차에 올라타자 가방에 들어 있던 핸드폰이 울린다. 벨 소리를 따로 설정해두었기 때문에 매튜라는 걸 바로 알 수 있다.(p.9)


독자의 느낌으로는 첫 문장은 평범하다. 첫 페이지라고 했는데 이어지는 문장에서도 그닥 긴장감이 감도는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이어지는 글은 남편 매튜와의 전화 통화로 채워진다. 매튜가 비가 곧 내릴 텐데 귀갓길 경로를 묻는다. 캐시(여주인공)가 '블랙워터 길'로 숲을 통과하면 더 빨리 갈 수도 있음을 남편에게 주지시킨다. 남편의 반응이 조금은 과장된 듯하다. "절대 안 돼!" 매튜의 큰 목소리에 캐시는 잠시 인상을 찌푸린다. 매튜는 다시 목소리를 낮춘다. "캐시, 그쪽 길로 오지 않겠다고 약속해. 밤에 혼자 숲길을 운전하는 건 위험해. 게다가 폭풍이 오고 있다고."



폭우가 예상되는 날 여주인공 캐시의 귀가에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블랙워터 길은 피하라는 남편의 말은 '자상한 남편' 이미지를 느끼게 한다. 캐시는 핸드폰을 가방에 넣으며 남편의 고집에 웃음 짓는다. 주차장을 빠져 나오는데 굵은 빗방울이 차창으로 쏟아진다. 드디어 시작이군. 대로를 빠져나오자 비가 거세게 쏟아진다. 옆 차선으로 비켜나는데 번개가 하늘을 가른다. 바로 앞 거대한 트럭 바퀴에서 차의 와이퍼가 감당 못 할 정도의 물이 튄다. 이 책은 아마존 킨들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하고 주목을 받은 센세이셔널한 작품이다. 저자 B. A. 패리스는 영국 '심리 스릴러의 여왕'이라는 별칭으로도 통한다. 패리스는 같은 계열의 데뷔작 『비하인드 도어』로 급부상한 작가라고 한다. 역자 이수영은 저자가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에서도 마음이 여리고 다감한 여주인공을 내세웠다고 말한다. 전작 『비하인드 도어』 역시 이수영이 번역했다. 패리스는 전작부터 '여성의 심리를 파고드는 스릴러 장르의 귀재'라는 칭송을 받았다. 불온한 세계와 냉정하게 맞서지 못하고 무너져가는 주인공 여성의 추락과 고통에, 독자는 함께 마음 아파하며 울분을 쌓아갈 수밖에 없다고 역자 이수영은 귀띔한다. 그러나 뛰어난 감성 지능을 지닌 패리스의 직감적 돌파력이 드디어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중반 이후, 아예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출판사 소개글에도 비슷한 말이 실렸다. "신체적, 물리적 폭력은 단 한 장면도 없이, 정신적, 심리적 폭력만으로 극한의 긴장과 공포를 그려내어 ‘가스라이팅 스릴러’라는 장르를 개척했으며, 특히 압권인 마지막 50페이지의 반전으로 화제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패리스의 작품 중에서 『블랙워터 레인』은 처음으로 영화화가 확정되어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 작품은 제프 셀렌타노 감독이 연출하고 〈500일의 썸머〉로 유명한 민카 켈리와 〈테이큰〉의 매기 그레이스가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되었다. 또한 이미 지난 6월 북미 개봉했다고 한다. 심리적인 음모와 초자연적 요소가 가득한 매력적인 영화로 알려지면서 장르 팬들에게 기대작으로 손꼽히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두 번째 쓴 작품이 영화화되었다니 천재적 재주를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 『블랙워터 레인』은 패리스의 두 번째 작품 『브레이크 다운』의 리커버 에디션으로 출간됐다. 영화 개봉에 맞춰 영화와 동일한 제목으로 바꿔 유명 일러스트 작가 KUSH의 아트워크로 소설 속 중요 사건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표현한 디자인으로 새롭게 꾸몄다. 출간하는 작품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전 세계 700만 부 판매를 돌파하여 밀리언셀러 작가가 됐다. 이제는 패리스의 전매특허가 된 특유의 긴박한 속도감과 공포감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무더운 여름을 영화와 함께 몇 배로 서늘하게 해줄 원작 소설 『블랙워터 레인』이 최고의 선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인생을 뒤흔드는 사건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캐시는 폭우가 쏟아지는 여름밤, 위험하다는 남편의 경고를 무시하고 숲속으로 난 지름길(블랙워터 레인)로 차를 몰던 캐시는 우연히 갓길에 멈춰 서 있는 차 안의 여자와 눈이 마주친다. 이상한 징후를 느꼈지만 왠지 모를 두려움에 그대로 지나치고, 집에 도착한 다음에는 신고하는 것도 잊어버린다. 다음날 그 여자가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듣고 엄청난 죄책감에 휩싸인다. 이후 캐시는 자신이 했을 리 없는 일들이 눈앞에 벌어지고, 모두가 기억하는 이야기를 혼자만 떠올리지 못하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정신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특히 살인자가 그녀를 지켜보며 매일 전화를 걸어온다는 생각에 완전히 공포에 질려 신경이 쇠약해지고 곁을 지켜주던 남편과 친구마저 서서히 지쳐가면서 그녀의 삶은 걷잡을 수 없이 피폐해진다. 결국 캐시는 약에 의존해 하루 종일 잠들기를 선택하고 극심한 불안과 공포를 잠재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문에 그녀의 인생은 점차 사라지게 된다. 


어쩔 때는 놈이 나타난 것 같다. 퍼뜩 정신이 들며, 심장이 빠르게 뛴다. 놈이 창문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는 확신이 든다. 도망치려는 본능 때문에 반쯤 의자에서 일어서다가 다시 주저앉는다. 무슨 상관인가 싶다. 만일 놈이 정말 여기 온다면, 적어도 모든 게 끝날 것이다.(p.157)



자신을 둘러싼 모든 사람을 의심하게 만드는 심리 스릴러는 저자 패리스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고 한다. 저자 패리스는 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불안하게 만들까? 우리는 소중한 사람들과 서로 믿고 의지하는 관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그 연결고리가 취약해질수록 가장 빠르게 무너지기 때문이라는 것이 심리분석가들의 의견이다. 주인공 캐시는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삶의 울타리가 한순간에 덫으로 변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면서 더 이상 그 무엇도 믿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하루가 다르게 고립되어 가던 그녀는 문득 자신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외치는 마음의 소리를 듣고 다시 한번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다. 과연 캐시는 스스로를 구해낼 길을 찾을 수 있을까?


그날 밤에 제인을 봤어요." 나는 휴지를 손가락으로 비틀며 말한다.

"그래요, 파티에서 만났다면서요. 제인에게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니, 그날 말고요. 그녀가······." 살해라는 말이 목에 걸려서 나오지 않는다. "그녀가 죽은 날에요. 블랙워터 길을 지나다가 갓길에 서 있는 그녀의 차를 지나쳤어요."

제인의 남편이 너무 오래 말이 없어서 충격이 큰가 싶다.

"경찰에는 말했습니까? 결국 제인의 남편이 그렇게 말한다.

"네, 경찰에 전화해서 제인이 살아 있는 걸 봤다고 말한 사람이 저예요."

"다른 건 본 게 없나요?"

"네, 제인밖에 못 봤어요. 하지만 그녀인 줄로 몰랐고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생김새가 잘 안 보였거든요. 여자인 것만 알 수 있었어요. 제인이었다는 걸 그 후에 알게 됐고요."

제인의 남편이 숨을 내쉰다. "차에 누가 같이 앉아 있는 건 못 봤습니까? 

"못 봤어요. 그랬으면 경찰에 말했겠죠."

"그래서 그냥 지나갔다고요?"(p.181)



주인공 캐시는 뉴스를 보고 그날 밤 사건을 두고 자신이 제인을 살릴 수도 있었다는 죄책감에 빠진다. 그리고 친구 수지의 생일파티에 참석했다가 레이첼로부터 피해자가 제인 월터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제인은 수지와 레이첼과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동료이고, 캐시와는 사건 얼마 전에 친해지게 된 사이다. 캐시는 레이첼 회사 파티에 초대되었다가 제인을 만났고 이후 식사도 같이 하며 오랜만에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며 반가워한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있었는데 제인이 죽은 것이다. 

사건 발생 후 극도의 스트레스로 심리적으로 몹시 불안한 상태가 지속된다. 결국 친구의 생일 선물을 사는 것도 잊어버리고 앤디와 한나 부부와의 바베큐 파티 약속도 기억하지 못한다. 캐시는 그 사실을 숨기려고 하는데 이유는 그녀의 엄마가 젊은 나이에 치매를 앓았고 투병을 하다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캐시는 혹시라도 자신이 엄마처럼 '치매'일까 더욱 불안해 한다. 이 외에도 캐시의 집에는 정체불명의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한다. 또 누군가가 자신을 훔쳐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더욱 불안하고 혼란하다. 어느 날 매튜의 출장으로 극도로 불안해진 캐시는 호텔에 머물기로 결정한다. 매튜에게 전화를 받고 더욱 초조해지는데 보안 업체가 집에 보안설비를 설치하기 위해 방문하기로 했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심지어는 계약서에 캐시의 필체로 사인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는 등 정신은 갈수록 피폐해져 간다. 

저자는 누가 범인이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한 곳을 가리키는 지점이 확실치 않도록 소설을 구성했다. 독자들은 읽으면서 추리 능력을 발휘하는데 이 책의 경우 저자는 여간해선 범인을 가르키는 곳을 노출하지 않는다. 저자의 스릴러 소설 작법일 것이다. 또 캐시의 부모는 죽기 전에 적지 않은 유산을 남겼는데 이는 캐시조차도 모르는 상황이어서 누가 돈을 노리고 범행을 했을 거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나는 눈을 감고, 언제부터 매튜와 레이철의 불륜이 시작되었을까 생각해본다. 둘이 처음 만났을 때를 돌이켜본다. 내 삶에 매튜가 나타난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다. 나는 이미 사랑에 빠져 있었고 레이철이 매튜를 좋아하길 정말 바랐다. 하지만 둘은 그다지 잘 지내지 못했다. 혹은 당시엔 그렇게 보였다. 서로에게 바로 끌렸는데, 그걸 숨기느라 서먹한 척했는지도 모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심지어 매튜와 내가 결혼도 하기 전에 둘은 불륜이 되었을 수도 있다."(p.220)


결말을 향해 치닫는 클라이막스에 이르면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데 독자들은 뒤통수를 맞는 느낌일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그리고 상대방의 심리를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정하려고 하는 '가스라이팅'에 대해 깨닫게 되는 순간 소설의 막이 내린다. 과연 독자들은 눈썰미와 추리 능력으로 진범을 찾아낼 수 있을까?



오늘 할 일이 많다. 그들의 거짓말과 속임수의 그물을 하나씩 풀어봐야 한다. 우선 한나네 집으로 간다. 아직 외출하지 않았기를. 다행히 자동차가 진입로에 있다. 

한나는 나를 보고 깜짝 놀라는 눈치다. 좀 당황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나한테 좀 어떠냐고 묻는다. 그제야 매튜가 한나에게 내 자살 시도 얘기를 한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정확히 무슨 소리를 들었냐고 물을 시간은 없다. 그래서 그냥 다시 예전 상태를 회복했다고만 말한다. 그 정도면 되겠지. 커피 한잔하겠느냐고 해서, 시간이 없다고 거절하고 본론을 꺼낸다.(p.233)


저자 : B. A. 패리스(B. A. Paris)


영국에서 태어난 후 주로 프랑스에서 성인 시절을 보냈다. 프랑스 국제 은행에서 일하다, 교직을 이수한 후 남편과 어학 학교를 설립했다. 완벽해 보이는 커플에게서 영감을 받은 소설 『비하인드 도어 Behind Closed Doors』는 그녀의 데뷔작으로, 아마존 킨들 독립출판 후 3일 만에 10만 부가 판매되었다. 곧바로 종이책으로도 출간되어, 영국과 미국에서 100만 부 판매를 돌파했고, 100만 달러에 영화 판권도 계약되었다. 이후 굿리즈 최고의 데뷔 소설상과 최고의 스릴러 소설상 후보에 오르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2017년에 발표한 두 번째 소설 『브레이크 다운 The Breakdown』 역시 출간 즉시 킨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단기간에 100만 부 판매를 기록하였다. 세 번째 소설 『브링 미 백 Bring Me Back』은 애플 iBOOKS, [뉴욕타임스], [선데이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네 번째 심리스릴러 『딜레마 The Dilemma』를 써냈다. 그녀의 작품들은 전 세계 38개국에 번역 출간되어 사랑받고 있다.


역자 : 이수영


연세대학교 국문과와 같은 대학원 비교문학과를 졸업했다. 편집자, 기자, 전시 기획자로 일하며 『밴디트: 의적의 역사』 등 인문서로 번역을 시작했다. 지금은 문학 번역에 전념하고 있으며 소설 『클로리스』, 『XX』, 『비하인드 도어』, 에세이 『국경 너머의 키스』, 『마이 코리안 델리』, 여행기 『헤밍웨이의 집에는 고양이가 산다』, 『너의 시베리아』 등을 옮겼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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