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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위험한 이름, 비너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하빌리스 / 2024년 7월
평점 :
비너스(Venu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랑과 미와 풍요의 여신을 일컫는 명칭이다. 원래 로마 여신의 이름이었으나 이후 아프로디테 등과 동일시되면서 모성과 아름다운 여성성을 상징하는 말로 폭넓게 사용되었다고 한다. 일본 최고의 추리소설 작가로 평가되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비너스'를 표제어로 쓴 것은 심상찮다. 특히 비너스가 원래 품고 있는 의미와 같지 않을 것 같다는 강한 인상을 표제어로부터 받은 독자들의 머릿속은 시작부터 혼란스럽다. 소설의 시작은 천재 IT 사업가인 동생 아키토가 실종되고, 어느 날 낯선 여자가 주인공 데시마 하쿠로를 찾아오면서부터다.
“동생이…… 행방불명이에요.”
이 소설 작품 『아름답고 위험한 이름, 비너스』는 어느 날 낯선 여자에게서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부터 시작된다. 여자는 주인공 데시마 하쿠로가 10년 넘게 얼굴 한번 보지 않고 지내 온 이부동생과 갓 결혼한 사이라며 자신을 야가미 가에데라고 소개한다. 그러고는 한술 더 떠 그 동생이 실종되었다면서 동생의 행방을 함께 찾아 줄 것을 부탁한다.
도입부부터 예사롭지 않은 이 작품은 전체 3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500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임에도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이 거듭되어 독자로 하여금 그야말로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한다. 처음에는 사라진 IT 사업가(아키토)를 찾기 위해 그의 아내(라고 소개한 여자) 가에데와 형(하쿠로)이 합심해서 진상을 파헤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내막에는 일본 의학계 명문가의 유산 상속 갈등이라는 복잡한 속사정이 얽혀 있다는 사실이 서서히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하쿠로가 과거에 묻어 둔 인물들-치매로 투병 중인 재력가 새아버지, 뇌종양을 앓다 세상을 떠난 무명 화가 출신의 친아버지, 16년 전 의외의 장소에서 갑작스러운 사고사를 당한 친어머니-이 현재로 소환된다. 그리고 철저한 주변인이자 조력자로서 ‘동생 실종 사건’에 뛰어들었던 하쿠로는 어느새 사건의 당사자 위치에 서게 된다.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듯한 잠깐의 틈을 두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행방불명이에요, 아키토 씨가. 벌써 며칠째 돌아오지 않고 있어요.”(p.11)
이 소설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수수께끼는 네 가지로 요약된다. ① 성공한 IT 사업가의 실종과 그를 찾기 위해 분투하는 아내(?) ② 의학계 명문가의 유산 상속을 둘러싼 친족 간의 복잡한 속사정 ③ 사망한 부친의 불가사의한 병과 관련한 뇌 의학의 허와 실 ④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진상 등이다. 하나하나의 스토리가 상당한 무게감을 가진 문젯거리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긴밀하게 얽히면서 독자들의 미스터리 추리 능력을 한껏 발휘하게 한다. 아니 어쩌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노련한 소설 구성 능력에 휘둘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가진 채 출발해야 한다.
소설의 주인공인 하쿠로는 38세의 독신 남성으로 동물병원 수의사이다. 소설이 처음 시작하는 부분에서 그는 '두 마리째의 환자'인 갈색 얼룩무늬 수컷 고양이의 찢어진 항문낭을 치료하려던 차다. 한 통의 전화에 고양이 수술이 뒤로 미뤄진다. 전화를 걸어 온 사람은 남동생 아키토와 비밀 결혼을 했다는 가에데라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아키토가 실종되었다는 급박한 소식과 함께 하쿠로에게 도움을 청한다. 하쿠로를 찾아 온 여성의 옷차림은 하쿠로로 하여금 꽤 이지적이고 도덕적인 성품의 여성으로 보였다. 미모도 특출할 정도로 미인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녀의 미모를 직접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지만 하쿠로의 마음이 흔들리면서 점점 윤리적 갈등이 깊어진다고 우회 표현하고 있다. 그녀의 옷차림은 공들여 세팅한 웨이브 머리, 어딘지 모르게 작위적인 그녀의 태도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다.
하쿠로는 적어도 겉으로는 '마음이 올곧고 옳지 않은 일은 정말 싫어하는' 도덕적 성품을 가진 인물이지만 그의 내면에는 매우 세속적인 욕망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그런 하쿠로에게 평일 낮 시간 호텔 라운지에서 당당히 만남을 갖는 비정상적 커플, '나인틴 바'에서 자정이 넘은 시각에 목격되는 호스티스와 고객의 뒷모습 등 마치 불륜이 당연한 일상이 된 듯한 세상 흐름이 자꾸 하쿠로의 의식에 걸려든다.
그러나 히가시노 게이고는 여간 노련한 작가가 아니다. 만일 하쿠로의 속마음과 가에데의 겉모습이 한마음으로 뭉친다면 소설의 향방은 뻔한 삼류 소설로 흐를 위험이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하쿠로가 자칫 위험에 빠지려 할 때마다 '멀리서 울리는 클랙슨 소리'로 퍼뜩 제정신을 차리도록 하는 장치를 아끼지 않는다. 아슬아슬하고 긴장감 넘치게 이끌기 위해서다. 장(章)을 달리하며 하쿠로의 집안 내력이 소개된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하쿠로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가 다섯 살 때 떠났기에 기억에도 별로 없다. 하쿠로의 아버지는 데시마 가즈키요라는 화가였다. 어머니 데이코의 말에 따르면 무명화가였고 작품도 거의 팔리지 않았다.
데시마가의 생계를 책임 진 것은 간호사로 일하던 데이코였다. 당시에는 간호사가 아니라 '간호부'라고 했다. 그림 붓을 드는 것 말고는 아무 재주도 없는 가즈키요는 당연히 집안일도 일절 못 했을 것이고, 데이코는 병원 일에 집안일까지 두 가지를 병행하느라 상당히 힘들었을 게 틀림없다. 두 사람이 알게 된 곳은 데이코가 근무하던 병원이었다. 맹장염으로 입원한 가즈키요가 침대에서 쓱쓱 그려낸 그림을 보고 데이코가 저도 모르게 말을 건넸던 게 계기였다.
"처음 네 아버지 그림을 봤을 때 이 사람은 틀림없이 화가로 성공해서 세상에 이름을 떨칠 거라고 생각했어. 보는 눈이 없다는 거 보통 무서운 게 아니라니까."(p.13)
결혼한 지 3년 만에 아이가 태어났다. 하쿠로라는 이름을 지은 것은 어머니 데이코라고 했다. 아버지 가즈키요와는 결국 인연이 없었던 '화백(畵伯)'이라는 호칭의 '백(伯)'이라는 한자에 거장 피카소의 이름 '파블로'를 조합했단다. 반쯤은 오기로 붙인 거야, 라고 데이코는 태연한 얼굴로 하쿠로에게 설명했다.
아버지가 그리는 그림은 하쿠로의 기억에 크게 남아 있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을 상세히 되새길 수는 없을 테니. 그러나 정확하지는 않지만 무슨 도형 같기도 하고 단순한 무늬 같기도 하고, 한참 들여다보면 현기증이 날 것 같은 그림이었단 사실이 떠오를 뿐이다.
게다가 아버지는 아팠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보다 자리에 누워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고 어슴푸레 기억하고 있을 정도니 꽤 오랫동안 앓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하쿠로가 아버지의 병명을 알게 된 것은 하쿠로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였다. 뇌종양이라고 어머니 데이코가 알려 주었다. 데이코가 병원에 일하러 간 동안 하쿠로는 근처에 사는 준코 이모가 맡아 주었다. 준코는 언니와는 달리 전업주부였다. 이모부 겐조는 '대학교 선생'이었다. 무엇을 가르치는 선생인지는 꽤 오랜 동안 알지 못했다. 수학과 교수님이라고 알게 된 것은 중학생이 되고 난 다음이었다. 이후 아버지를 잃은 슬픔도 별로 없었고, 어쩌면 처음부터 없었다고 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하쿠로가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모집과 가까운 곳에 서로 의지하고 살던 어느 날 어머니는 재혼을 한다. 남자는 '야가미 씨'라고 성씨만 들었을 뿐 이름까지는 듣지 못했다. 무척 부자인지 첫 만남에서 하쿠로와 어머니에게 고급 식당의 프랑스 요리를 사준다.
야가미는 대단한 부자였고, 차도 메르세데스 벤츠 대형차다. 집은 대저택이라고 할 만한 크기다. 그렇게 셋은 맨션에 따로 나와 살았다. 동생 아키토가 태어났을 때 하쿠로는 아홉 살이었다. 어린 하쿠로 입장에서는 갓 태어난 모습이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어쨌든 동생이 태어나 기쁜 일이란 것을 실감했다. 준코 이모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좋겠다' '축하한다'라고 말하고 하쿠로도 순순히 인정했다. 실제로 그 새로운 존재는 매우 신선한 공기를 실어 왔기 때문이다. 야가미가의 분위기가 환해지고 데이코와 야스하루는 항상 명랑함이 넘치는 표정이었다. 함께 살아야 할 하쿠로도 딱히 싫어할 이유는 없었다. 남동생에게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어떻게 지은 이름인지는 알지 못한다. 하쿠로 때처럼 데이코가 '반쯤은 오기로' 붙인 건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했다.
하쿠로를 찾아온 가에데는 전직 일본 항공 승무원이었다. 아키토와 만나 집안에 알리지도 않은 채 두 사람은 비밀리에 결혼을 했고, 자신의 집안이나 이부 형인 하쿠로에게도 연락을 잘 하지 않은 채 오로지 사업에만 몰두했을까. 그래서 그가 실종되자 각종 의문이 끊이지 않지만 속시원히 말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듯하다.
하쿠로 어머니의 '변사'는 소설 전체를 뒤흔든다. 어머니는 하쿠로가 대학 다니느라 독립 생활을 하면서 조금 멀어지긴 했지만 언제나 마음의 고향이지 않은가. 그런데 어느 날 이부 야스하루에게서 전화가 왔다. "하쿠로, 있잖아, 힘들 일이 생겼어. 정말 힘든 일이······." 신음하는 듯한 야스하루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가슴속에 검은 안개가 뭉클뭉클 퍼져 갔다. 무슨 일입니까, 라는 질문이 쉰목소리로 튀어나왔다.
"데이코가, 자네 어머니가······ 죽었어."
머릿속이 하얘지고 눈앞이 일순 캄캄해졌다. 청각도 마비된 것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처음 귀에 들어온 것은 자신의 목소리였다. 사고가 거의 정지된 상태에서 "왜요? 어떻게요?"라고 묻고 있었다.
"사고야, 욕실에서 머리를 부딪혔는데 그대로 정신을 잃고 욕조에······, 그래서 익사라고 얘기하고 있어."
"욕실? 어째서요? 왜 그걸 못 막았어요!" 휴대 전화를 움켜쥐고 야스하루를 비난하듯이 소리쳤다.
"그게 우리 집 욕실이 아니야."
"우리 집 욕실이 아니라니, 그럼 대체 어딘데요?"
"고이즈미 집이야."
헉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고이즈미라면 데이코의 본가, 즉 외할머니가 사는 동네였다.(p78~79)
어머니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요한 기둥이다. 16년 전의 뜻하지 않은 사람의 진상을 밝히는 것은 오랜 세월 이들 형제에게 남겨진 마음의 응어리였다. 고전적인 추리 소설의 재미는 아마도 이 부분에서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악인처럼 보였던 누군가는 오히려 도움을 죽는 인물이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뜻밖의 범인이 드러난다. 누가 한편이고 누가 편집증적인 집착을 가진 자인가. "관계가 없다는 근거라도 있나요? 단순히 착한 사람들이라서?"라는 가에데의 말은 독자들의 허를 찌르는 명대사였다고 책의 역자 양윤옥은 「관서의 망」이란 제목의 〈옮긴이의 말〉에서 적고 있다. 역자는 이 작품에서 조연으로 등장한 인물들도 수수께끼 같은 분위기를 더해 주고 있다고 말한다. 매사에 원리 원칙을 따지는 동물병원 보조 간호사 '가게야마 모토미'의 딱 부러진 캐릭터는 특히 매력적이라고 역자는 서술하고 있다.
저자 : 히가시노 게이고(ひがしの けいご, 東野 圭吾)
일본 추리소설계를 대표하는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추리소설 분야에서 특히 인정받고 있는 그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소재를 자유자재로 변주하는 능력을 가진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그의 작품은 치밀한 구성과 대담한 상상력, 속도감 있는 스토리 전개로 처음부터 끝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해 독자를 잠시도 방심할 수 없게 만든다.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히가시노 게이고는 첫 작품 발표 이후 20년이 조금 넘는 작가 생활 동안 35편이라는 많은 작품들을 써냈음에도 불구하고 늘 새로운 소재, 치밀한 구성과 날카로운 문장으로 매 작품마다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비밀』로 1999년 제52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2006년 초에는 『용의자 X의 헌신』으로 제134회 나오키상과 제6회 본격미스터리대상 소설부문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2012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으로 제7회 중앙공론문예상, 2013년 『몽환화』로 제26회 시바타렌자부로상, 2014년 『기도의 막이 내릴 때』로 제48회 요시카와에이지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제까지 나오키 상에 『비밀』, 『백야행』, 『짝사랑』(片想い), 『편지』(手紙), 『환야』(幻夜)등 다섯 작품이 후보로 추천받은 바 있으나 전부 낙선하여, 나오키 상과는 인연이 없는 남자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여섯 번째 추천작 『용의자 X의 헌신』으로 결국 상을 거머쥐게 되었다. 2012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으로 중앙공론 문예상을, 2013년 『몽환화』로 시바타 렌자부로상을 수상했으며, 2014년에는 『기도의 막이 내릴 때』 로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방황하는 칼날』, 『흑소소설』, 『독소소설』, 『괴소소설』, 『레몬』, 『환야』, 『11문자 살인사건』, 『게임의 이름은 유괴』, 『호숫가 살인사건』, 『브루투스의 심장』, 『한여름의 방정식』, 『몽환화』, 『그 무렵 누군가』, 『가면 산장 살인 사건』, 『인어가 잠든 집』, 『살인의 문』, 『백야행』, 『기린의 날개』, 『한여름의 방정식』, 『신참자』, 『탐정 갈릴레오』, 『예지몽』, 『다잉 아이』, 『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 『학생가의 살인』, 『오사카 소년 탐정단』, 『천공의 벌』, 『붉은 손가락』 등이 있다. 『방과 후』, 『쿄코의 꿈』, 『거울의 안』, 『기묘한 이야기』, 『숙명』, 『백야행』, 『갈릴레오』등 지금까지 20편이 넘는 작품들이 드라마로 제작되었으며 『비밀』, 『변신』, 『편지』,『용의자 X의 헌신』, 『더 시크릿』등 10여편이 영화로 제작되는 등,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역자 : 양윤옥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 2005년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으로 일본 고단샤에서 수여하는 노마문예번역상을 수상했다.
사쿠라기 시노의 『호텔 로열』, 『별이 총총』,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 스미노 요루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또다시 같은 꿈을 꾸었어』 『밤의 괴물』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눈보라 체이스』, 『그대 눈동자에 건배』, 『위험한 비너스』, 『라플라스의 마녀』, 『악의』, 『유성의 인연』, 『매스커레이드 호텔』, 『매스커레이드 나이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지옥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 『칼에 지다』, 마스다 미리의 『5년 전에 잊어버린 것』 오카자키 다쿠마의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 시리즈, [가가 형사 시리즈], [라플라스 시리즈],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사쿠라기 시노의 『굽이치는 달』 등 다수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