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세상과 사랑에 빠지기 열다
헤르만 헤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림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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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아픔에도 나는 여전히 이 미친 세상과 사랑에 빠져 있다.” 이 책 『미친 세상과 사랑에 빠지기』를 편집해 출간한 폴커 미헬스는 〈서문〉의 첫 문장을 헤르만 헤세가 쓴 유명한 시 「가지치기를 한 떡갈나무」의 마지막 행을 인용했다. 이 시는 온몸 곳곳이 짧게 잘려 나갔음에도 계속 새로운 잎을 틔우는 나무의 예를 들어 자연을 대하는 우리의 이면을 지적하고, 그럼에도 우리에게 자연처럼 용기를 잃지 말라고 격려한 시라는 해석을 덧붙였다. 편집자 미헬스는 이 시를 통해 헤세가 추구한 모든 문학 작품의 단면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헤세는 나무의 가지치기가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음에도, 평생 살아 있는 모든 것과 사랑에 빠졌다고 헤세를 평하고 있다. "그러다 남들이 비통해하거나, 체념하거나, 냉소적으로 변할 때면 오히려 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보면서 새로운 저항력을 키우라고 하며, 독자들에게 아무리 힘들어도 버티라고, 그런 상황을 더 나은 성장을 위한 발판으로 삶으라고 북돋았다."고 말한다. 

미헬스의 주장은 「가지치기를 한 떡갈나무」가 쓰인 시점을 생각해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1919년 7월'. 제1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항복으로 끝나고, 패전국 독일의 청춘들은 나라와 자신들의 앞날이 너무도 고통스러우리라고 매우 우울한 분위기였을 것이다. 헤세는 독일뿐만 아니라 전후 모든 나라의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날마다 야만의 고통을 견뎌 내며 또다시 저 빛 속으로 얼굴을 내민다. 세상은 죽도록 조롱했지만, 내 본질은 파괴될 수 없는 것. 나는 만족하고 화해하며 참을성 있게 새로운 잎을 틔워 내"듯이 나무에 비유적으로 오늘의 고통을 참고 견디고, 용기를 내라고 주문한다. 

이런 재생력은 헤세의 문학에서 여러 방식으로 형상화되어 있다고 미헬스는 강조한다. 심지어 그런 힘은 그의 정치적, 문화비평적인 글들과 독자 편지에 대한 무수한 답장들에서도 주된 모티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에 미헬스는 이 책 『미친 세상과 사랑에 빠지기』에서는 헤세의 성찰과 편지 중에서 특히 그런 세계관이 잘 표현되어 있는 것들을 뽑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이 책을 새롭게 엮어 선보인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미헬스에 따르면 국경과 세대를 초월해 헤세를 현재의 개인적 생활 방식의 선두 주자로 만들어 준 것도 바로 그런 글들이다. 왜냐하면 헤세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진지하고 중요하고 진기한 존재로 받아들이고, "세상의 현상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반복되지 않고 오직 단 한 번만 그렇게 교차되는 점"(『데미안』)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사이 헤세의 전 세계적인 부흥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이 세상의 유일무이한 개인이 자기 속의 잠재력을 충분히 펼칠 수만 있다면 인간의 삶과 문화는 더욱 풍요롭고 다양해지리라는 생각이 큰 몫을 차지한다.

헤세가 죽고(1962) 몇 년 뒤 미국에서는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던 젊은 세대들이 헤세를 발견해 냈는데, 1970년대 이후 그것이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굳어진 것이다. 독일 문학사에서는 유례가 없던 일이었다. 지금까지 헤세의 책은 60여 개 언어로 번역되넝ㅆ고, 세계적으로 1억 부 이상이 팔렸다. 그런데 헤세 생전에 발표된 작품은 전체의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고 미헬스는 지적한다. 방대한 유고는 1965년부터 단계적으로 발굴되었다. 색감이 다채롭고 표현력이 강한 3,000여 점의 수채화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다 오래지 않아, 총 20권에 1만4,000여 페이지 분량의 첫 번째 전집이 출간되었는데, 거기엔 그의 중요한 문화 비평 및 정치적 고찰, 자전적 저작, 칼럼, 일기까지 총망라되었다고 미헬스는 설명한다. 독일 문학을 새로운 차원에서 풍성하게 하는 사건이었다고 전하기도 한다.

미헬스는 헤세가 생전에 이미 나이를 떠나 기성세대의 경직된 생활 방식에 저항하는 젊은 작가였다고 평가한다. 그 자신도 부모 집으로 대변되는 세상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했듯이, 그의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도 자신의 내적 성향에 반하는 온갖 형태의 외적 강요에 저항한다는 것. "중요한 한 것은 개인적인 것이다!" 삶을 긍정하는 이 모토는 적극적이고 지혜롭고 책임감 있는 사회봉사를 위한 전제 조건이라고 미헬스는 언급한다.



이 책은 헤세의 이러한 힘과 세계관이 잘 표현되어 있는 글들을 모아 엮었다. 삶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헤세의 사유의 정수가 담긴 명문장들을 엄선했다. 미헬스는 최초의 헤세 전집을 발간하고 평생 헤세의 수많은 저작들을 연구 및 편집한 이 분야의 권위자이다. 국경과 세대를 초월해 헤세를 오늘날의 상징적 위치에 있게 만든 것은 바로 이러한 글들이라고 〈서문〉에서 밝힌다. 번역은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등 헤세의 대표작을 비롯해 카프카, 무질, 프로이트, 뷔히너와 같은 수많은 독일 고전들을 유려하게 번역해 온 박종대가 맡았다.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싯다르타』 등 세 작품은 방황하는 청춘을 위한 헤르만 헤세의 내면 탐구 3부작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데미안』은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유리알 유희』 등 세계문학의 기념비적 걸작을 남기며 독일 문학의 거장으로 우뚝 선 헤르만 헤세는 그의 사후 60년이 지나도 여전히 독일은 물론 세계 모든 지역에서 청소년들의 필독서로 지정받고 있을 정도다. 고통 속에서도 삶을 사랑하고, 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보았던 헤세의 재생력은 그의 문학과 삶에서 잘 나타나 있다. 그는 개인의 개성을 말살하고 획일화하려는 사회의 모든 시도에 대해 격렬히 저항했고, 외부의 평준화 압력에 맞서 자기만의 개인적이고 고유한 영역을 지키라고 끊임없이 말했다. 이 일은 헤세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패전국이 된 어수선한 독일의 분위기에서 싹트는 전체주의에 맞서 스위스로 망명한 일도 그의 세계관과 맞물린 것이 아닌가 쉽게 짐작케 한다.

자신의 길을 확신하지 못하는 한 청년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한창 성장 중인 청년이 고유한 개인이 되려는 강한 열망을 갖고 있고, 그래서 평균적이고 일상적인 삶에서 강하게 이탈할수록 남의 눈에 미친 사람처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며, “내면에 깃든 이상과 꿈이 시들지 않도록 세계에 맞서 자신을 지키라”(p.22~23)고 조언한다.



또 다른 글에서는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방법”은, “자기 자신을 깨닫되 스스로에 대해 판단하거나 스스로를 바꾸려 하지 말고, 우리 속에 예감의 형태로 미리 그려져 있는 삶의 모습으로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는 것”(p.34)이라고 언급하기도 한다. “삶의 표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삶은 우리 각자에게 고유한 임무를 맡길 뿐”이기 때문이다. 그 임무를 따라가는 과정은 비록 쉽지 않지만, 그렇기에 “자신의 삶”이란 “언제나 고되면서도 아름다운 것”이라고 헤세는 말한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헤세 자신이 그렇게 살기 위해서 노력했다. 헤세의 작품들이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의 마음을 깊이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은, 그의 글 속에 그의 삶 자체가 신실하게 녹아 있기 때문이다. 미헬스는 작가로서 보기 드문 헤세의 미덕으로 무엇보다 그의 “인간적인 고결함”을 꼽으며 “그는 작가로서 말한 대로 살았다.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삶의 마지막까지 상처받으며 살았다”고 말한다. “그의 삶과 작품은 마지막 순간까지 나머지 없이 딱 떨어지는 방정식과 비슷해 보인다.” 헤세는 삶과 글이 분리되지 않은 작가였다. 그의 삶이 고통스러웠던 것은 그가 세상 속에서 부단히 자신의 신념대로 살고자, 작가로서 자신의 고유성을 지키며 살아가고자 노력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그러한 삶을 사랑하며 나아가고자 투쟁했던 헤세의 생생한 육성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그 기록들이 안겨 주는 격려와 위로가 독자들에게도 생생히 가닿기를 바란다고 미헬스는 기대한다.

헤세의 견해에 따르면, 오늘날 "정치권력이 있는 곳"에서는 "정치적 이성"이 거의 작동하지 않기에 "재앙을 막거나 완화하려면 비공식적인 집단의 지성이 유입"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정신적 자극은 헤세의 전 작품에 스며들어 있다고 미헬스는 역설한다.



문명 비판적인 『페터 카멘친트』에서부터 학업에 치인 한 학생의 비극적 삶을 다룬 『수레바퀴 아래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토마스 만이 그 감동적 전율을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 슬픔』에 비교한 『데미안』, 부르주아지의 해체를 다룬 『황야의 이리』, 그리고 모든 학제의 통합적 유토피아를 꿈꾼 『유리알 유희』에 이르기까지 조목조목 작품과 해석을 곁들이며 증명하듯 작품의 성격을 정리해준다. 『유리알 유희』에서 주인공은 대안적 교육 이상향 역시 관료주의와 비사회적 자기 목적에 매몰되기 시작하자 그곳을 떠난다. 

미헬스는 지금껏 거의 다섯 세대 전부터 헤세를 읽는 독자층은 주로 14~35세 사이의 젊은이들이다. 아직 이상을 꿈꾸고, 사회에서 되도록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 말이다. 이들은 헤세의 작품에서 격려와 응원을 느낀다. 그의 작품들은 외부의 평준화 압력에 맞서 자기만의 개인적이고 고유한 영역을지키라고 끊임없이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시기를 지나 양보와 굴복 없이는 버틸 수 없눈 생업 전선에 뛰어들면 많은 사람이 헤세를 불편하게 여긴다. 그의 책을 읽으면 자신이 예전의 이상을 배신하고 있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러다 가식적 삶을 살았던 생업 전선에서 은퇴하면 헤세와 청춘의 선한 의지로 다시 돌아가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것이 헤세의 독자 통계에서 청년층과 노년층이 최상위를 차지하고, 반면에 소의 사회에서 기득권을 형성하는 연령대는 거의 보이지 않는 이유이다. 헤세 저술의 테마는 정치, 문학, 음악, 회화, 종교, 정신분석, 교육, 행복, 유머, 사랑, 청춘, 노년, 죽음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다채롭다. 게다가 그의 인상적인 자연 및 풍경 묘사와 여행기는 무척 간명하고 사실적이어서 따로 해석에 의지하지 않고도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그의 책 속에 꾸며 낸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건 헤세가 우선적으로 대중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글을 쓰기 때문이라고 미헬스는 분석한다. 헤세는 이런 식으로 삶과 시대가 개인에게 부여한 여러 문제들, 그러니까 재능 있고 양심적인 사람이라면 더더욱 어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는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한다. 그는 모든 걸 직접 체험했고, 엄청난 고통 속에서 글을 쓸 때가 많았기에, 복잡한 이슈도 지극히 단순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풀이한다.



한창 성장 중인 청년이 고유한 개인이 되려는 강한 열망을 갖고 있고, 그래서 평균적이고 일상적인 삶에서 강하게 이탈할수록 남의 눈에 미친 사람처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나는 당신이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당신이 그 필요성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게 당신의 ‘광기’를 세계에 강요하거나 세계를 혁명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건 당신의 내면에 깃든 이상과 꿈이 시들지 않도록 세계에 맞서 자신을 지키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꿈의 아성인 우리의 어두운 내면세계는 끊임없이 위협받고, 동료들에게 조롱받고, 교육자들에게 기피되고 있습니다. 그건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입니다.(p.22~23)


저자 :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년 독일 남부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태어나 목사인 아버지와 신학계 집안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890년 신학교 시험 준비를 위해 괴핑엔의 라틴어 학교에 다니며 뷔르템베르크 국가시험에 합격했다. 1892년 마울브론 수도원 학교에 입학했으나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인이 되기 위해 도망쳐 나왔다. 1899년 낭만주의 문학에 심취하여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와 산문집 《자정 이후의 한 시간》을 출간했다.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인정을 받았고 문단에서도 헤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후 1904년 장편 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통해 유명세를 떨치면서 문학적 지위도 확고해졌다. 같은 해 아홉 살 연상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했으나 1923년 이혼하고 스위스 국적을 취득했다. 1906년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를 출간했고, 1919년에는 자기 인식 과정을 고찰한 《데미안》과 《동화》, 《차라투스트라의 귀환》을 출간했다. 인도 여행을 통한 체험은 1922년 출간된 《싯다르타》에 투영되었으며, 1946년 《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1962년 8월 9일 뇌출혈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기실현을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꾸준히 노력했다.


엮은이 : 폴커 미헬스


1943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프라이부르크 대학과 마인츠 대학에서 의학과 심리하긍ㄹ 공부한 후 독일의 주어캄프 출판사와 인젤 출판사에서 독일 문학 전문 편집자로 일했다. 특히 헤르만 헤세의 유고집을 출판하는 일에 헌신했으며, 20권으로 된 최초의 헤세 전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1990년에는 헤세의 고향 칼프에 헤세 박물관을 건립하는 일을 담당했ㅎ으며, 출판사를 퇴직한 후에도 계속 헤세의 작품을 연구하고 편집하는 일에 몰두했다. 


역자 : 박종대


성균관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쾰른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사람이건 사건이건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이면에 관심이 많고, 환경을 위해 어디까지 현실적인 욕망을 포기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자신을 위하는 길인지 고민하는 제대로 된 이기주의자가 꿈이다.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세상을 알라』, 『너 자신을 알라』, 『사냥꾼, 목동, 비평가』 , 『의무란 무엇인가』, 『인공 지능의 시대, 인생의 의미』를 포함하여 『1일無식』, 『콘트라바스』, 『승부』, 『어느 독일인의 삶』 ,『9990개의 치즈』,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등 1백 권이 넘는 책을 번역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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