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차린 식탁 -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50가지 음식 인문학
우타 제부르크 지음, 류동수 옮김 / 애플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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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에서는 현생 인류의 등장을 약 3만 년 전으로,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갈 무렵으로 꼽고 있다. '신인류'로 일컬어지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등장한 시기다. 이보다 훨씬 전인 30만년 전에는 몇몇 형질적 특징에서 현대인에 보다 가까이 접근한 고인류 화석이 발견됨으로써 현생 인류의 출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사냥을 하던 구석기 시대와는 달리,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농경과 목축이 가능했던 신석기 시대로의 변화를 보여 준다. 이후 인류는 계급사회와 문명시대로 들어가게 된다. 인류와 비슷한 유인원 수준의 인류는 약 200만 년 전 출현한 직립원인, '선 사람'이란 뜻의 호모 에렉투스다. 이들은 불을 사용한다는 것 이외에도 사냥을 위해 돌을 깨뜨려 만든 각종 무기를 만들어 사용함으로써 지능도 꽤 발달한 상태의 인류 조상인 셈이다. 

사냥으로 먹을 것을 구하느냐, 농사를 지어 재배하느냐는 인류학의 분류상 굉장히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고 인류학자들은 말한다. 집단 생활을 하기 시작한 구석기시대의 호모 에렉투스와 농경 시대의 막을 연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와는 거의 200만 년의 차이가 있다. 또,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시기에는 상당한 시간 동안 공존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류는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로 생명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 먹을 것을 구해 섭취해야 한다.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는 먹을 것의 엄청난 차이를 보여준다. 주변 움직이는 작은 동물을 잡아 불에 구워 먹는 생활을 오랫동안 해온 인류는 식물을 재배해 먹기 시작하면서 정착 생활을 하게 된다. 또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큰 적에 대항할 수 있도록 집단화해간다. 정착 집단화는 인류 문명 발달에 결정적 요인이 된다. 곡식을 재배한다는 것은 비·기온·바람 등 기후의 변화도 인지해야 한다는 말과도 같다. 또 공동 생산과 공동 분배의 원시 공산 사회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집단에는 반드시 무리를 이끄는 지도자와 지시를 이행해야 집단의 유지·지속이 가능하다는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 가장 중요한 분배에 있어서 평등하게 분배하는 원칙은 맞지만, 계급이 생기고 소유와 저장의 의미를 인식하고부터는 계급에 따른 차이가 발생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계급의 차이는 일상 생활이 계급에 따라 주어지는 여러 혜택도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와 같은 의미로 이해된다.



인류가 출현한 지 이처럼 오랜 기간에 걸쳐 진화를 거쳤지만 어느 시대든 먹을 것이 모자랐다. 현대 사회를 제외하고는 수백 만 년 동안 인류는 식량 소비량이 생산량을 늘 앞섰다고 한다. 식량 부족을 겪으면서 사냥법의 발달, 곡물 재배법에도 발전을 가져왔지만 전 인류를 먹여 살리기에는 항상 부족했다는 이야기다. 집단 전체가 식량 부족 상태가 지속되면 먹을 것을 이웃 집단에서 빌려와야 하지만 선뜻 빌려줄 정도로 식량이 넘쳐나는 집단은 없을 터, 결국에는 전쟁으로 악화된다. 이웃 약한 집단을 힘으로 제압하고 먹을 것을 빼앗아 오는 것은 물론 노에도 생기기 시작한다. 이렇듯 인류는 식량(먹을 것) 부족으로 항상 굶주려 왔다. 이 책 『인류가 차린 식탁』은 인류가 살아오면서 먹은 음식을 모아 음식이 발전해 온 과정을 재미 있게 설명해준다. 유사 이전 '매머드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BC 10,000년 전후해서 시작된 음식에 관한 이야기이다. 저자 우타 제부르크는 몸집이 작고 몸이 연약해 크고 날렵하고 사나운 짐승과의 싸움은 아예 시작도 못한 '겁쟁이 시절'이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구석기 시대 수십만 년 전 이야기다.

이때 먹을 것을 취하는 인간의 모습은 말 그대로 '흑역사'다. "검치호랑이 몇 마리가 들소 한 마리를 잡아먹더니 뒤이어 하이에나 떼가 달려들어 남은 살을 뜯어먹는다. 하이에나마저 배를 채우고 가면 드디어 인근 검불 밑에 몸을 숨기고 이 장면을 지켜보던 인간의 차례다. 주먹도끼로 뼈다귀를 내리쳐 속에 든 골수를 조금도 남김없이 후루룩 빨아먹는다. 대단찮아 보이는 저 피조물은 이렇게 음식을 섭취하여 마침내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에 올라간다."(p.13~14)

2만년 전쯤 빙하기는 바다까지 얼어붙어 베링해라 불리는 바다의 표면마저 얼어붙었다. 이로 인해 모험심 넘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 쪽에 다다를 수 있었다. 저자의 글은 상상처럼 표현하지만 인류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이를 입증할 만한 인류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아메리카 대륙에 다다른 이들은 대단히 훌륭한 사냥꾼으로 발전했다. 매머드, 고대의 거대 사슴 그리고 나무늘보를 닮은 거대한 땅늘보 같은 동물이 지구상에서 사라진 것은 어쩌면 이들 사냥꾼의 거리낌 없는 육식 애호 습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들 사냥꾼들의 문화를 돌로 만든 창촉이 처음 발견된 곳의 이름을 따서 '클로비스 문화'라 부른다. 저자는 추측과 상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이야기를 가로지르는 주제는 음식이다. 음식으로 저자의 입맛에 맞는 식탁을 차려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미식을 통한 인류사 산책」이라는 제목의 〈서문〉을 통해 "당초 책의 구상은 "인류사를 관통하는 미식 산책'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곧바로 생각이 달라졌다. '식사'라는 주제는 처음에는 그저 인간의 가장 실존적인 욕구로 보일 뿐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채로운 목소리를 지닌 놀라운 메뉴가 되기 때문이다. 음식은 사회의 토대이면서 공동체 형성을 부추기는 요소이지만, 그 속에는 권력과 무자비한 계층 구조도 들어 있다. 음식은 열과 성을 다해 지켜낸 민족자산이다."고 말한다. 저자는 또 "음식에 대한 논의는 점점 더 정치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고 전제하고 "심지어 시민불복종의 수단이 될 수도 있으며, 인류사의 가장 암울한 장면은 먹을 것의 부재에서 발생했다."고 설명한다.

이 책은 모두 50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마다 한두 가지 음식이 소개되며 '매머드 스테이크'를 다룬 1장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음식이 역사 시대에 발전된 음식들이다. 1장의 내용이 앞서 언급한 베링해를 넘은 사냥꾼들 이야기다. 2장 「곡물죽과 외알밀로 만든 빵」은 기원전 5500년경 중유럽에서 사방에 널린 짐승을 잡아먹다가 숲에서 풍성하게 자라나는 과일이나 곡식의 열매도 있었을 것이다. 빙하기가 지나면서 지구는 점차 따뜻해졌고, 대지 곳곳에서 곡식이 싹을 틔웠고 사람들은 점차 곡식을 수확해 가공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곡식을 대규모로 경작하게 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인류사에서 이 시점에 인간의 실존은 온통 먹을거리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인간의 모든 일상을 규정한 것은 오로지 양식을 잘 챙기고, 경작하고, 수확하고 또 가공하는 일이었다. 집을 지을 때조차도 먹을거리 보관과 상 차리기에 쓸모가 있는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했다.결국 집이란 부엌 딸린 저장고였으며, 인간이 다만 거기에서 기거할 뿐이었다.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주거지는 대개 작은 호수를 따라 여러 채의 집들이 한 줄로 길게 늘어선 형태였다. 이들 집은 꽤나 커서 깊이가 20m쯤 되었으므로, 그 각각의 집에는 많게는 30명쯤 살았을 것이다. 그런 집은 굵은 목재로 된 튼튼한 골조를 갖추고 있었다. 햇빛은 바닥 근처까지 이어진 지붕 끝자락의 문을 통해서만 안으로 들어왔다. 

집의 중심에 불이 있었다. 바로 음식을 만드는 곳이다. 음식 만드는 곳은 늘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 집에 사는 사람은 아마도 밥 먹는 시간이 되면 그 불을 에워싸고 앉았을 것이다. 부엌이 집의 심장이라는, 이제는 뻔한 말이 되어버린 표현은 신석기 시대, 즉 인류의 주거 양식 초창기에 그 뿌리가 있다. 집은 마을에서 가장 물기가 없는 곳이므로 거기에는 여분의 곡식을 저장해두는 방이 적어도 하나는 있었다.



7장 「빵과 포도주」에서는 AD 30년경 로마제국 치하 팔레스타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어느 봄날 저녁, 로마에 점령당한 예루살렘에서 기독교 세계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만찬이 벌어진다. 유월절(유대교에서 가장 중요한 축제로, 유대인들이 이집트 신왕국의 노예 생활에서 탈출한 사건을 기념한 데서 유래한 날-역자 주) 잔치를 목전에 둔 때다. 유대 땅 산지에 자리 잡은 이 화려한 도시에서 골목마다 희생양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장사꾼은 희생 짐승을 팔려고 내놓는다. 먼 길 오느라 먼지를 뒤집어쓴 수많은 지친 순례자들은 가장 멋진 짐승을 두고 벌써부터 값을 흥정한다. 늘어선 지붕 위로 우뚝 솟은 신전의 하얀 대리석이 환히 빛난다. 열 세명의 남자들이 이른 유월절 식사를 하려고 벌써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란 명화의 모습이다. 저자가 상상한 것인지, 어느 그림을 보고 꾸며서 쓴 것인지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최후의 만찬에 오른 음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성서 시대에는 큰 음식 그릇 하나를 놓고 만찬을 한다. 이 그릇을 식탁 한가운데에 둔 다음 하나씩 받은 납작빵을 마치 숟가락처럼 사용해 그릇에 담긴 것을 떠먹거나 적셔 먹었다." 이 최후의 만찬에 오른 음식 그릇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성서에 나와 있지 않다. 어쩌면 깍지 있는 콩, 예컨대 렌틸콩 같은 것을 양파에 올리브유 그리고 약간의 석류즙을 함께 넣고 끓인 간단한 채식일 수도 있다. 게다가 그날을 경축하는 양고기 구이가 틀림없이 식탁에 오를 것이다. 유월절의 양은 먼저 털가죽을 벗겨낸 다음 흙으로 만든 화덕의 이글거리는 불에 완전히 태워버린다. 복음서 저자가 직접 이 음식을 언급하지 않은 데에는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날 저녁 상에 오르는 가장 간단한 두 음식, 즉 빵과 포도주가 결국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납작빵은 고대 이스라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음식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여인들은 아침마다 두 개의 돌로 이루어진 수동식 분쇄기, 즉 맷돌을 이용해 곡물을 빻는다. 거칠게 빵은 가루를 체로 걸러낸 다음 물과 소금을 넣고 반죽해 둥글넓적한 모양으로 만든다. 동틀 무렵이면 이제 따뜻한 빵 향기가 온 집 안을 가득 채운다. 빵은 공용 오븐에 피워 돌과 내벽을 뜨겁게 데운 다음 반죽을 그 돌 위에 얹어 숯의 잔열로 빵을 굽는다. 포도주도 날마다 먹는 음식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 포도주를 샘물과 섞어 마신다. 텁텁한 맛을 좀 줄이기 위해서다. 위생적인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살균을 위해 물을 끓여 먹는 것을 아직 모르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이 책에 나오는 음식 중 대부분은 먹어보진 않았지만 이름을 들어본 음식들이다. 그러나 한 시대 한 지역의 특정한 이유로 생긴 음식은 대중화되지 않은 채 아직도 그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음식도 꽤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고서야 처음 알았다. 26장 「비스마르크라는 이름이 붙은 여러 음식」, 40장 「반미 샌드위치」, 45장 「개츠비 샌드위치」, 그리고 49장의 「노무라 해파리 샐러드」 등이다. 이름도 처음 듣고 물론 먹어본 적은 더더욱 없다. 물론 '비스마르크'란 인물 이름과 '개츠비'라는 소설 속 주인공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다. 그들의 이름을 인용해 음식에 이름을 붙인다. 이유는 금세 추측할 수 있지만, 정확하게 알기 위해선 이 책에서 읽을 일이다. 

비스마르크는 독일이 아직 프로이센이라는 이름과 왕정으로 존재하던 시절, 비스마르크라는 독일의 강력한 재상이 나타난다. 그는 독일제국이 번영의 길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터를 닦고 강력한 정책을 실현시키며 유럽의 강력한 나라로 독일을 우뚝 세운 재상이다. 독일인에게 존경의 대상이고, 도드라진 콧수염의 소유자로, 우리에겐 '철혈 재상'이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 시기는 로마 제국의 침략으로부터 최후까지 종족과 땅 지켜낸 고트족(게르마니아족)과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게르만족이 영광을 재현하는 시기다. 당시 독일 사람들은 비스마르크 재상을 존경하는 의미에서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에 그의 이름을 갖다 붙였다고 한다. 하물며 풍성한 식사에 집착한 건장한 체구의 비스마르크였으니 비스마르크 색, 비스마르크 군도, 비누, 전함뿐만 아니라 수많은 음식에도 그이 이름을 내걸었다. 비스마르크의 이름을 갖다 붙여 품격을 드높인 이들 음식은 비스마르크 사진의 미식 애호와도 어느 정도는 관련이 있을 것으로 저자는 추정하고 있다. 묵직한 식재료의 거리낌 없는 사용과 독일적인 남성성을 지니고 있는 '비스마르크 오크'를 우선 꼽는다. 본디 이 음식은 롤케이크인데, 겉에 버터크림을 바르고 그 위에 카카오가루를 뿌려 갈색을 낸 다음, 눈속임용으로 작은 네모꼴로 썰어 설탕에 절인 레몬 껍질이나 피스타치오를 박아 넣었다. 이 롤케이크는 마치 이끼로 뒤덮인 오돌토돌한 참나무 모양 같았다. 뿐만 아니라 비스마르크 식이라는 뜻의 '알라 비스마르크'라는 것도 있다. 본디 스테이크나 저민 살코기 구이에 반숙 달걀을 고명으로 엊은 것을 일컫지만, 오늘날엔 오히려 이탈이아 음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리법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로마 시대의 유명한 집안 잔치에는 상상 불가의 창작 요리가 식탁에 오르곤 했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구운 멧돼지의 배 속에 살아 있는 새들을 숨겨 놓았다가 손님들을 놀라게 만들곤 했다. 중세는 기적과 마법에 대한 믿음이 강하게 소용돌이친 시대였는데 약초에 함유된 마술에 가까운 힘은 보양 수프 등의 레시피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앞서 잠깐 살펴본 대로 19세기 말 프로이센은 먹을거리가 넘쳐났으며 제국의 총리인 비스마르크에 대한 숭배가 절정에 달해 비스마르크 오크, 알라 비스마르크, 비스마르크 청어 등 다양한 먹을거리에 그의 이름을 갖다 붙였다.

또한 영국의 BBC는 창립 초창기 프랑스의 요리사 마르셀 불레스탱을 초빙하여 생방송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그때 만든 음식이 바로 달걀, 버터, 소금만으로 요리하는 오믈렛이었다. 진정한 능력은 가장 단순한 것에서 드러나는 법이었기 때문이다. 저자 우타 제부르크는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인간의 삶을 떠받치는 근본 토대라고 주장한다. 이런 사실은 코로나로 인한 전면 봉쇄가 시행되는 동안 예전보다 더 뚜렷해졌다고 강조한다. 대부분 집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자 사람들은 팬데믹 속에서 하나가 되어 다시 식탁 곁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음식을 통해 인류의 역사를 짚어보는 일은 인류 역사의 핵심부에서 우리의 삶을 관찰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깨우칠 수 있었다. 


저자 : 우타 제부르크(Uta Seeburg)


베를린에서 태어났으며 대학에서 독문학, 비교문학, 미술사를 공부해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건축 전문 잡지 의 기자로 여러 해 동안 활동하면서 디자인 및 여행 관련 기사를 주로 작성했으며, 음식 관련 에세이도 다수 집필했다. 지금은 역사를 배경으로 한 범죄소설을 쓰는 데 전념하고 있다.


역자 : 류동수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독어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독일 뒤셀도르프 하인리히 하이네 대학에서 독어학 및 일반언어학을 수학했다. 지은 책으로 『브랜드 네이밍 백과사전』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거짓말에 흔들리는 사람들』 『지구와 바꾼 휴대폰』 『어느 날 서점 주인이 되었습니다』 『흐르는 시간이 나에게 알려주는 것들』 『0.1% 억만장자 제국』 『나는 아직도 사랑이 필요하다』 『내 인생 나를 위해서만』 『국가부도』 『태고의 유전자』 『내 안의 돌고래를 찾아라』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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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섬과 박혜람 - 제20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임택수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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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김섬과 박혜람』은 19세기 프랑스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의 자화상으로 알려진 〈상처 입은 남자〉(아래 그림)에 대한 묘사와 그림 설명으로 시작한다. "쿠르베의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혜람은 상처를 입은 채 쓰러질 듯 나무에 기대어 누워 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따금 사내가 반쯤 잠긴 눈으로 그림 앞에 선 사람이 자신을 연민하는지 혹은 조롱하거나 불신하는 눈빛인지 지켜보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었다. 사내의 가슴에 한 손을 얹고 그의 어깨에 머리를 베고 누웠던 그의 연인을 상상해 보았다. 화가는 떠나간 연인이 남긴 아픔을 칼과 사내의 흰 셔츠에 묻은 붉은 피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만약 전 연인이 모습이 삭제되지 않고 원본 그대로 남겨졌다면 그림은 상상의 여지를 해치게 됐을까. 그럴지도 모른다고 혜람은 생각했다."(p.7~8)

혜람은 미술 해설사(도슨트)다. 이 소설 속 두 여주인공 중 한 명이다. 혜람은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 해설사로 일하고 있다. 그가 막 해설을 마친 쿠르베의 〈상처 입은 남자〉는 쿠르베가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팔지 않고 말년까지 소장한 작품이라고 한다. 원래 자화상을 그린 것이 아니고, 그의 연인이었던 바르지니 비네가 곁에 있었지만 연인이 떠나자 고쳐 그렸다는 것이 정설이다. 비네가 4살 된 아들을 데리고 떠나버리자 이후 십여 년에 걸쳐 고쳐 그리는 과정에서 연인의 모습은 지워졌고, 쿠르베는 가슴에 피를 흘리며 누워 있는 모습이 되었다. 화면의 칼자루로 보아 그림 속의 남자는 결투를 하여 중상을 입은 후 홀로 누워 잠이 든 (혹은 죽은) 듯하다. 이는 당대 문학에 자주 등장했던 사랑을 위한 결투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영웅적으로 고통 받는 예술가상이라는 낭만적인 주제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미술사가들은 평하고 있다. 이 작품을 그의 개인사와 연관해서 보면, 그림이 최종적으로 완성되기 2년 전인 1852년에 비네가 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4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떠나버렸다. 이때 입은 상처를 기록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는 평이다. 쿠르베는 기존 자화상의 관습을 뛰어넘는 허구적인 내러티브를 작품에 도입해, 사적이 경험이 담긴 자화상도 보편적인 주제의 인물화로 읽힐 수 있게 했다고 서양 미술사는 기록하고 있다. 혜람은 이날 유난히 쉴 새 없이 떠들어서 갈증도 심했다. 미술관에서 오가며 얼굴을 익힌 한국 사람들이 눈인사하며 스쳐 지나간다.



                                            쿠르베의 〈상처 입은 남자〉

쿠르베의 상처는 매우 상징적 표현으로 여기에서 박혜람의 시선으로 묘사되고 있다. 주인공 혜람도 연인을 떠나온(떠나버린) 경험이 있음을 암시한다. 최원식 문학평론가는 "관념을 다루는 작가(임택수)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으매, 이 소설을 여는 쿠르베의 자화상 〈상처 입은 남자〉(오르세)는 상징적이다. 지독하게 자유를 사랑한 화가의 자기애를 보여주는 이 그림이 구경(究竟), 함께 자유로운 비-의존(非依存)에 이르는 두 주인공의 운명을 표상하는 것도 그렇지만, 식물적 상상력 또한 종요롭다. 우듬지들은 이웃 나무들과 빛을 골고루 나눈다는 '꼭대기의 수줍음'을 상기컨대, 일체중생의 근본적 상호의존성에 대한 식물적 수락이야말로 두 주인공을 성장시키는 동력이거니, 소설의 처음과 끝을 둥그렇게 감싸는 소나무허리노린재는 그 살아 있는 화두일 것"(p.274~275)이라고 추천평을 썼다.

사랑과 관계, 만남과 이별, 그 속에서 필연적으로 겪는 상처와의 대면은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여정이다. 혜람은 진지한 눈빛으로 수백, 수천 가닥의 중첩된 선으로 채워진 그림을 본다. 안팎이 따로 없고, 공간의 구분도 사라진 선 앞에서 혜람은 어떤 사랑도 모든 것을 보여 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숨겨진 그 무엇이 진실이라고. 혜람과 함께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을 이루고 있는 김섬은 타투이스트다. 저자 임택수는 〈작가의 말〉을 통해 "김섬은 상처로 상처를 가린다. 그것은 부활이고, 타투는 그녀의 조언에 다름 아니다."고 썼다. 두 여주인공은 오랜 친구이자 룸메이트였다. 김섬과 박혜람은 각자 사랑과 이별, 공포와 상처를 겪으며 '커다란 바위의 안쪽 같은 어둠'을 경험하지만 종국에는 '기억과 재생'의 자기만의 빛을 만들어간다. 

소설가 은희경은 "김섬과 박혜람이라는 두 인물의 사랑에 대한 원근법.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는 공간과 문화의 변주. 도슨트와 타투이스트의 서로 다른 프로페셔널한 미적 탐험.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둘러싼 채 만남과 이별을 직조하는 관계들. 이 소설은 사랑과 관계에 대한 작가의 해석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한편 그 디테일한 여정에 흥미롭게 동참하도록 만든다."고 평가하며 사랑과 관계에 대한 작품의 성격에 중점을 둔다.



소설 속에서는 김섬과 박혜람, 그들의 남편과 연인인 최준오와 홍지표 이외에도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 짧은 인연을 나누고 헤어지거나 다시 만난다. 한국과 프랑스라는 두 곳의 공간과 문화는 여러 작중 인물의 삶 속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프랑스 유학이라는 저자의 경험이 공간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폭설이라는 재난이 없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인연들은 또 다른 장소에서 또 다른 모양으로 만남과 헤어짐을 이어간다. 이렇게 등장 인물은 유기적 관계를 이루며 소설의 구성을 긴밀하게 도와준다. 소설이 끝에 이르면 비록 우리 모두가 '우주를 떠도는 외톨이 별' 같은 존재일지라도 '단지 가깝게 있거나 멀리 떨어져 있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수렴되는 과정을 거친다. 소설은 결국 '그 하나하나가 한데 어울려' 마침내 성운처럼 장관을 이루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이끌어낼 수 있게 한다.

임택수 작가는 202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오랜 날 오랜 밤」이 당선되며 작가로 데뷔한 뒤 연달아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자는 『김섬과 박혜람』을 통해 “실패한 사람들, 어떤 중단된 삶을 사는 사람들, 계획과는 좀 어긋나게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위로를 건네고픈 마음이었다”면서 “중간에 꺾이더라도 계속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독자에게 전했다. 이제 개화하기 시작한 그의 문학이 활짝 피어나는 모습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게 한다.

폭설로 샤를 드골 공항이 마비된다. 승객들은 항공사가 제공한 호텔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여러 인물의 만남이 발생한다. 파리의 미술관에서 도슨트로 일하는 혜람도 발이 묶인다. 일과, 남편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자 했던 지난 십여 년간의 프랑스 생활을 뒤로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한국에는 오랜 시간 그녀의 단짝이었던 김섬이 있다. 혜람은 한국에 무사히 도착하지만 자신의 짐이 분실되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녀는 예전에 김섬과 함께 살았던 집에 머물면서 김섬의 달라진 일상을 알아챈다. 



김섬은 프랑스로 떠났다가 태연히 돌아온 혜람에게 오래 묵혔던 감정을 드러내고, 떨어져 있던 동안 서로에게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마침내 김섬과 홍지표의 연애 사건으로 두 친구의 갈등은 심화하고, 그날 밤 혜람은 그 집을 나간다. 이후 그녀는 강원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김섬은 동료 소방관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홍지표에게 마음을 조금씩 내주게 된다. 그의 어깨에 있는 화상 자국을 타투로 가려주며 그에게 동거인이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관계를 이어간다. 홍지표는 우연히 본 영화에서 어린 시절 가장 가까웠던 친구에게 가해진 폭력과 죽음의 기억을 떠올리고, 그 기억은 그를 급작스레 무너뜨린다. 김섬은 그런 홍지표를 지켜보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 결국 그녀는 홍지표와 헤어지고, 뒤늦게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다. 김섬은 십 년 만에 본가가 있는 슬구포로 내려가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오랜 고민 끝에 새로운 시작을 위한 결단을 내린다.

두 여주인공은 혜람의 옛 연인 최준오의 부름을 받고 프랑스로 떠나면서 갈라진다. 혜람은 오직 준오 하나만 보고 프랑스로 떠났고,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 수 있을 거라는 꿈을 꾼다. 혜람보다 먼저 프랑스로 건너가 중학교 미술교사로 일하던 준오는 혜람이 오자 한없이 다정하고 친절하게 그녀의 적응을 돕는다. 자신의 보호와 도움 아래서만 혜람이 살아갈 수 있다는 듯이. 그러다 혜람이 어학 과정을 마치고 문화해설사 자격증을 취득해 일을 시작하자 태도가 돌변한다.

누구에게나 오류의 어둠이 시작되는 지점이 있다. 알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가 제대로 깨달았을 때는 이미 어둠에 빠진 다음이다. 준오만을 생각하고 프랑스로 가겠다고 결정했을 때 김섬은 극구 반대했었다. ‘너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너의 모든 것을 알고 싶다’는 준오의 욕망은 의심과 불안을 낳고 오래지 않아 폭력의 형태로 나타난다. 한번 시작된 폭력은 점점 강도가 높아지고 둘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혜람은 작문 치료를 받으면서 자신의 상처를 직면한다. “고작 두 개일 뿐인 마음인데 왜 서로 못 맞추고 엇갈리는지” 괴로워하던 혜람은 한국에 돌아오지만 김섬과의 관계마저 손상되고 만다. 우정보다 더 진했던 관계가 깨어진 뒤 혜람은 설악산 자락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몸과 마음을 회복해간다.



김섬과 홍지표의 관계도 일반적인 궤도로 진입하지 못한다. 친구 이상으로 생각했던 박혜람이 떠난 후 혼자가 된 시간을 버티기 위해 일상에 최선을 다했던 그녀는 강단 있는 기질로 통념을 위반하며 결핍을 채우려 한다. 하지만 그녀의 세계는 여전히 불편하고 불완전하다. 김섬은 자신이 미래를 꿈꾸며 홍지표와의 만남을 이어 온 것이 아니며, 그가 동거녀와 헤어지길 바란 적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동료의 죽음과 현장 업무에서 비롯된 외상으로 고통받는 홍지표는 김섬과 새로운 출발을 원하지만, 청소년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 정신적인 균형을 잃는다. 그와 헤어진 후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김섬은 아이를 지우려 생각했다가 결국 마음을 바꾼다. “지금은 탯줄로 연결되어 있지만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독립된 생을 꾸려 가게 될” 존재, “비록 자신이 품고 있지만 아이는 이미 하나의 개별적 존재”라는 각성 때문이다. 또 하나의 섬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오래 거닌 끝에 재회한다. 오늘의 나무가 어제의 그 나무가 아니듯 천천히 변화한 모습으로.


외국에서 혼자 오래 지낸 남자는 중독된 게 많았다. 술과 담배는 물론이고, 사람에게도 금방 중독되는 것 같았다. 그는 혜람에게 너무 사랑한다면서 혜람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했다.

“술은 그렇다 쳐도 애정이 지나치면 집착이 된다.”

김섬이 말했다.

혜람은 그의 관심이 남들보다 좀 유별난 방식으로 표현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말과 행동이 가끔은 연기처럼 느껴져 별로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오류의 어둠이 시작되는 지점이었다.(p.157)



“목련 알지? 정말 이삼일 만에 진다. 우주적 관점으로 보면 인간의 삶도 그렇겠지?”

“그런 생각 한 적 있어. 꽃은 며칠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생명으로서의 존재 이유를 다 하잖아.”

“계획 없이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그 또한 나쁠 게 없겠지.”

“돈도 지나치게 많으면 무감각해지고, 예쁜 얼굴도 늘 보면 별거 아니잖아?”

“모자라고 결핍된 것 속에 아름다움이 숨어 있다는데.”

디디에가 휴대전화로 꽃을 찍었다.

“우리 모두의 존재 자체가 그렇지 않을까?”

혜람이 말했다.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왜냐하면 그 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할 테니까”라고 말했다.(p.205)


저자 : 임택수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열네 살까지 살았다. 이후, 서울과 프랑스의 몇몇 도시에서 일과 학업을 이어갔다. 프랑스 폴 베를렌 메스 대학(Paul Verlaine de Metz)에서 불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2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오랜 날 오랜 밤」이 당선되었다. 같은 해 장편소설 『김섬과 박혜람』으로 제20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오롯이 혼자이고 싶을 때, 노트북을 챙겨 공항으로 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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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산책시키기 - 당신의 인생을 뒤바꿔 놓을 10가지 방법
벤 알드리지 지음, 김지연 옮김 / 혜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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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 이것이 바로 스토아 철학의 황금률이다.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지금 당장 ‘스토아주의의 10가지 제안’에 따라 실천해 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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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산책시키기 - 당신의 인생을 뒤바꿔 놓을 10가지 방법
벤 알드리지 지음, 김지연 옮김 / 혜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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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바나나 산책시키기』는 고대 그리스에서 추구했던 스토아 철학과 철학자 이야기다. 단순히 스토아 철학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저자 벤 알드리지와 스토아 철학과의 뗄 수 없는 인연, '스토아 철학으로 건강 되찾기'를 중심으로 펴낸 책이다. 2,200년이 지난 철학이 다시 소환된 이유는 저자가 어느 날 맞닥뜨린 공황 장애로 인해 일상이 무너지면서부터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저자는 수많은 책을 정신 없이 읽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스토아 철학과 철학자들이 주장했던 사상이 눈에 띈 것이 시작이었다. 저자는 공황장애를 겪으면서 잠도 잘 수 없었고, 밥도 먹을 수 없었으며, 급기야는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저자를 다시 살려 낸 것은, 2000년도 넘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 만난 고대 그리스의 ‘스토아 철학’이었다고 밝힌다. 

그들이 활동했던 사사의 중심에서 당시 인간 삶과 만물의 이치를 사고했던 철학자들을 '스토아학파(Stoicism)'라고 이름지어졌다. 이 철학 사상은 기원전 3세기 제논에서 시작되어 기원후 2세기까지 이어진 그리스 로마 철학의 한 학파이다. 스토아학파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그리스 로마 철학을 대표하는 주요 학파이다. 헬레니즘 문화에서 탄생해 절충적인 모습을 보이며, 유물론과 범신론적 관점에서 금욕과 평정을 행하는 현자를 최고의 선으로 보았다고 교과서에서 배운 기억도 난다.

스토아에 대한 한 가지 잘못 알려진 부분이 있다. 스토아학파의 윤리학을 우리는 보통 금욕주의라고 부른다는 점이다. 소토아학파의 철학자들은 참된 행복이 쾌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우리의 의무를 잘 준수하고 자칫 감정에 사로잡히기 쉬운 자신을 이겨내며 욕정을 단념하는 데에서 생겨난다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대로 인간의 본성은 이성이기 때문에 그 이성에 따라 사는 것이 덕이며, 그것으로 인해 인간은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만 저자도 살아오면서 정신 건강에 대한 교육을 단 한 번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었다. 이로 인해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나면서부터 '죽음'이 눈앞에 왔다고 느꼈다고 털어놓는다. 자신의 증상이 정신과적 문제라고도 상상하지 못했다. 생존이 달렸다고 생각한 끝에 시작한 독서는 책이란 책은 다 읽을 듯이 미친듯이 독서에 매달렸다고 저자는 밝힌다.



그 많은 날 중 어느날 접했던 스토아철학에 순식간에 빠져들었고 무엇보다 실용성이 마음에 들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에 따르면 스토아 철학자들은 정신력(resillience, 시련과 고난을 이겨 내고 마음의 중심을 되찾을 수 있는 능력 : 옮긴이 주)에 관해선그 누구보다 전문가였고, 정신력을 단련시키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정신 나간 짓도 마다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이런 점이 저자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었던 것이다. 저자가 스토아주의에 입문하게 된 결정적 이유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미리 연습하면 미래에 닥쳐올 역경에 대비할 수 있다고 믿었다. 더욱 더 저자의 마음을 끌어들인 점은 일부러 더위와 추위에 자신을 내던지거나, 딱딱한 바닥에서 잠을 청했다는 사실이다. 남들 보기에 낯부끄러운 옷 차림새로 다녔고, 맨발은 기본이었다. 또 끼니를 일부러 거르고 몸소 '빈곤'을 실천했다고 한다. 저자는 스토아 철학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다. 

이처럼 스토아 철학에서 영감을 받은 저자는 자신만의 심리적 안전지대를 벗어나고자 개인적인 도전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 일은 본능을 거스른 채 불편함과 역경에 직면하면서부터 저자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결과를 먼저 말한다면 저자의 이런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불안한 마음을 관리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고 증언한다. 두려움이 엄습할 때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고 나자, 저자는 다시 자신을 믿을 수 있게 된 점이 가장 큰 효과였다고 강조한다. 

저자의 실천 내용은 결코 쉽지 않은 내용이다. 책에 따르면 생애 처음으로 마라톤을 완주했고, 산에 올랐으며, 먼 거리를 걷는 일도 성공했다. 틈만 나면 추위를 견디는 훈련도 했다. 날마다 찬물로 샤워를 했고, 강이나 바다에서 수영을 즐겼으며, 얼음물에 뛰어들었다. 루빅큐브를 1분 안에 푸는 법을 습득했고, 일본어와 종이접기도 배우기 시작했다. 한의사를 찾아가 침을 맞으며 침에 대한 공포를 극복했고, 딱딱한 바닥에서 잠을 잤으며, 일부러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기도 했다. 카드를 한 번씩만 보고 카드 덱 전체를 암기하는 법과 자물쇠 따는 법도 스스로 터득했다. 순전히 내 정신력을 단련하고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 아무런 이유 없이 그 대열에 합류해 차례를 기다리기도 했다. 얼핏 생각하면 도저히 정신이든 육체든 건강 되찾기에 도움은커녕 오히려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다.



스토아 철학을 ‘금욕주의’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독자도 개별적으로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부터는 오해 혹은 오류였음을 깨달았다. 스토아 철학자들의 일부러 이상한 옷을 입고, 맨발로 다니는 것은 정신적 장애 때문이 아니고 욕망을 없애기 위한 실천이었다. 이는 마치 부처가 깨닫기 위해 고행을 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즉 삶의 원리, 진리 등 도를 깨닫는 실천 덕목이었을 뿐이라는 데 독자로서도 동의한다. 다만 독자는 실천해보지 않아 효과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으로서 공감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저자는 '쓸데없을 것 같은 실천'을 효과로서 증명했다. 이를 읽은 독자도 스토아 철학은 ‘정신력을 강화하는 훈련’에 가깝다고 이해한다. 공황 장애에 시달리던 저자가 자발적으로 도전과 어려움을 찾아다니기 시작한 것 또한 모두 스토아 철학 덕분이라고 했고, 실천을 통해 삶에 중요한 진리와 원리에 대한 깨달음도 있었다고 말했다.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스토아주의라는 고대 사상으로부터 실질적인 도움을 받은 저자는 코로나19로 인해 봉쇄 조치가 실행되었을 때에도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다. 에베레스트산 등반 대신 집에 있는 계단을 21시간 동안 올랐고, 마라톤 대신 자신의 집 정원을 4,802바퀴나 뛰었다. 이 정도면 ‘스토아주의 프로젝트’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스스로가 쳐 놓은 심리적 안전지대를 벗어나기 위해 그가 실천에 옮겼던 것들은 이 밖에도 무수히 많다고 한다. 맨손으로 거미 잡기, 싫어하는 정당에 기부하기, 듣기 싫은 밴드의 음악 듣기, 애완 바나나와 산책하기, 싫어하는 음식 먹기, 자신의 장례식에 대해 상상해 보기···. 예전의 그였다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일들을 그는 ‘안티 버킷 리스트’로 만들어 하나씩 행동으로 옮겼다.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하는 의심이 자꾸만 생겨 났지만 "자의적으로 스토아학파의 삶을 실천한다는 게 정신장애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란 믿음에 근거해 독서를 계속할 수 있었다. 또 저자는 이 이상한(?) 도전을 이미 『불편함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법: 강한 정신력을 기를 수 있는 이상하고 놀라운 43가지 방법』이란 제목의 책을 써 냈다. 개인적으로 정신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 도전들에 대해 썼기에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에서 실천 방법이나 단계 등 여러 가지 보완해 스토아주의 실용서로 이 책 『바나나 산책시키기』를 썼다.



이 책은 스토아 철학책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실전 매뉴얼’에 가깝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 하찮은 것처럼 보이는 도전들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180도 뒤바꾸어 놓은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 이야기 중심에 바로 ‘스토아 철학’이 있다. 저자는 '스토아주의'라는 이 고대 사상을 조금만 빨리 알았더라면 하고 훨씬 더 삶이 풍요롭고 아름답지 않았을까 하는 성찰에 뒤늦은 아쉬움을 털어놓기도 한다. 그러나 스토아주의 덕분에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뒤바뀌었는지, 그 고마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책의 많은 부분이 지금이라도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조언들로 가득하다. 일기 쓰기, 모닝 루틴, 죽음 명상, 역할 모델 고르기 등 모두 평범한 이들이 해낼 수 있는 것들이니 너무 겁먹지 않아도 된다. 저자가 했던 것처럼 당신도 바나나와 산책을 나갈 수 있겠는가? 이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다면 다시 한번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2,200년 전 고대 철학이란 말도 지우고 싶다면 잊어버려도 괜찮다. 스토아철학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용어가 무수히 등장하고 읽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시작할 엄두조차 안 난다면 용어를 몰라도 괜찮다. "그냥 처음 보는 용어이구나"라고 생각하고 일단 실천 메뉴얼에 신경을 더 쓰면 된다. 더욱이 번역된 책이니 한두 번 읽으면 번역된 우리말로 기억해도 나쁠 것 없다. 특히 이 책은 철학에 대해 어려운 말들을 늘어놓기 위해 쓴 책이 아니다. 철학을 어떻게 하면 삶의 기술로, 일상의 영역으로, 실천의 목록으로 바꿀 수 있는가에 대한 책이다. 용어가 어렵다, 옛날 사상이나 철학이 뭐 얼마나 우리 삶에 도움을 줄까?란 의문도 말끔히 씻어 버릴 것을 먼저 읽은 독자로서 주문하고 싶다. 이 책은 무엇이 되었든 미리 연습을 해 놓으면 어떤 역경이라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가르쳐 주는 ‘인생 사용 설명서’이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며,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삶에 더욱 매진할 것을 안내하는 책이다. 고삐 풀린 인생에 지친 사람들에게 삶을 통제하는 방법을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가이드이기도 하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대로 독자들에게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방법 10가지를 제시한다. 모두 저자가 직접 실행해 본 것들이라 상당히 실용적이고 구체적이다. 뿐만 아니라 각각의 방법이 어떻게 스토아주의와 맞닿아 있는지도 알려 준다. 이렇게 10가지 방법을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각 장의 말미에 〈스토아주의 도전 과제〉와 〈변화를 위한 글쓰기 미션〉을 만나게 된다. 스토아주의를 일상에 적용해 볼 수 있는 이 과제들은 당신의 인생을 실질적으로 바꿔 놓는 데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밖에도 「10일짜리 도전 과제」, 「1개월짜리 도전 과제」, 「1년짜리 도전 과제」, 「나, 벤이 추천하는 도전 과제」 등이 함께 실려 있으니 각자 개별적 취향에 따라 취사선택할 수 있다. 독자들은 도전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순간, 날뛰는 삶에 대한 통제권도 되찾아 올 것이라 독자는 믿는다. 

출판사 측 소개글은 저자가 쓴 본론을 바탕으로 독자를 감동시킬 만한 멋진 말이 있다. “실천이야말로 스토아주의를 스토아주의답게 만들어 준다. 실천하지 않는 철학은 그저 단어의 나열일 뿐이다.” 스토아주의 덕에 인생을 180도 뒤바꿔 놓는 데 성공한 한 남자가 들려주는, 10가지 방법은 각 독자들이 삶이 변화될 상상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시작하기 전부터 감동이 밀려오는 듯하다. 이들 10가지 제시한 방법은 제목부터 자주 들어본 단어들이 많아 기억하기도 훨씬 쉬울 것이다. 저자가 오래 탐구하고 실천하고 성과를 거둔 것을 정리해 놓은 것이니만큼 신뢰도 또한 높다. ① 자발적 불편함을 추구하라 ②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 ③ 운명을 사랑하라 ④ 스스로를 돌아보라 ⑤ 역할 모델을 찾아라 ⑥ 부정적인 상황도 염두에 두어라 ⑦ 내 마음만은 내가 통제할 수 있다 ⑧ 상대하기 힘든 사람을 만났을 때 ⑨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⑩ 우주적 관점을 지녀라 등이다. 

저자의 용기를 북돋우는 말은 이 책의 내용 숙지와 실천을 위한 다짐을 더욱 굳게 해준다. "시간을 내어 주변의 아름다움을 감상해 보라. 걸음을 멈추고 장미 향기를 맡아 보라. 인생은 언젠가 끝이 나고, 그럼 더 이상 피자를 먹을 수 없게 될 거란 걸 기억하라. 미래는 불확실성의 연속임을 기억하라. 그리고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하지만, 괜찮다. 당신에게는 어떤 어려움에도 맞설 수 있는 힘이 있으며, 훈련을 통해 그 힘을 더욱 키울 수 있다. 외부 사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될 것이냐에만 집중하면 된다.



우리는 인생에서 누리는 많은 것들을 너무나도 쉽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상실을 생각하는 것은 이런 태도에 대항하는 완벽한 방법이다. 배우자, 가족, 친구, 반려동물, 건강, 멀쩡한 감각과 사지, 직업, 돈, 집, 자동차, 노트북, 휴대폰, TV, 옷, 추억이 담긴 물건 등 상실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고 목록으로 작성해 보라. 처음부터 상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면 이 훈련이 훌륭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 당신의 삶에서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면 어떨까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라. 매일 밤 이를 닦으면서 감사한 일을 모두 읊어 보라. 사방팔방 치약을 튀기지 않으려면 소리 내지 말고 머릿속으로 되뇌는 게 좋다!(p.208) - 「부정적인 상황도 염두에 두어라」 중에서


저자 : 벤 알드리지(Ben Aldridge)


벤 알드리지는 실용주의 철학, 심리적 안전지대, 정신 건강, 모험 등에 대한 글을 쓴다. 등산, 일본어 공부, 마라톤, 루빅큐브, 미식 체험, 얼음 목욕, 노숙 등을 즐긴다. 벤은 독자들에게 기발하고 재미있으면서도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을 즐기라고 권한다. 지은 책으로는 《불편함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법How to Be Comfort with Being Uncomfortable》, 《심리적 안전지대 벗어나기Get Out of Your Comfort Zone》 등이 있다. 트위터 @iambenaldridge / 인스타그램 @dothingsthatchallengeyou


역자 : 김지연


KAIST 경영과학과 졸업 후 미국 듀케인대학교에서 레토릭 및 커뮤니케이션 철학을 공부하고 석사 학위를 받았다. 다년간 번역가로 활동하였으며, 현재 번역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정확히 읽어내는 타로 리딩》《프로방스에서의 25년: 영국 이방인의 애정 어린 눈에 비친 프랑스 남부 시골 마을의 유쾌한 일상》《외로움의 해부학》《발견의 시대: 신 르네상스의 새로운 기회를 찾아서》《알렉산더 해밀턴: 현대 자본주의 미국을 만든 역사상 가장 건설적인 정치가(공역)》《영향력과 설득: 말솜씨가 없어도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더미를 위한 밀레니얼 세대 인사관리》《놀라움의 힘》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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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바라볼 것인가 - 천재들을 이끈 오펜하이머 리더십
박종규 지음 / 터닝페이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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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무엇을 바라볼 것인가』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원자폭탄 제조 프로젝트를 이끈 오펜하이머의 리더십을 재조명하고 있다. 오펜하이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추축국인 독일, 일본을 제압하기 위한 특단의 무기 개발 경쟁에서 미국이 앞섬으로써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로써 물리학자였던 오펜하이머는 물리학자로서가 아닌, 가공할 무기 제조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당시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의 지시로 '맨해튼 프로젝트'란 명칭의 원자폭탄 제조 연구개발팀의 리더로 오펜하이머가 지명됐다. 그는 물리학자로서의 명성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연합국의 승리에 기여한 공로로 미국이 세계 패권을 차지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다만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를 거침으로써 오펜하이머는 원폭 제조를 후회하고 핵반대 운동에 참여하는 '모순'을 보여주기도 했다. 원자폭탄은 가공할 위력으로 한 번의 폭발로 수십 만 명의 인명을 살상하는 바람에 세계 강대국들의 전략 무기로 너도나도 개발함으로써 세계 무기와 전쟁의 흐름을 한순간에 바꾸어 버렸다. 

오펜하이머는 1954년 청문회를 통해 그가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던 원자력에너지위원회에서 과거 행적이 낱낱이 왜곡되면서 파헤쳐지고, 결국 쫒겨나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마치 순교자처럼 그 결과를 묵묵히 받아들였다고 기록은 증언하고 있다. 오펜하이머는 당연히 상처받고 고통스러웠겠지만, 누구에게나 있는 '모순' 속에서 자신과는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과 그 당시 처한 현실을 받아들였다고 알려진다. 그러나 2022년 12월, 미국 정부는 1954년 청문회에서 오펜하이머에게 내린 보안인가취소는 부당했다고 판단하고 그 결정을 취소했다. 오펜하이머의 비밀취급인가가 취소된 지 68년 만에, 그리고 1967년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5년 만에 마침내 그에 대한 공식적인 복권이 이루어진 것이다. 

지난해 7월 개봉된 영화 〈오펜하이머〉 끝의 한 장면에서, 1954년의 청문회 결과가 내려진 다음 "그렇게 혹독한 벌을 묵묵히 견디면 세상이 당신을 용서할 것 같아?"라는 아내 키티의 울음 섞인 힐난에 오펜하이머는 "두고 보면 알겠지"라고 조용히 답한다. 이 책 『무엇을 바라볼 것인가』의 저자 박종규는 영화 〈오펜하이머〉의 마지막 장면의 짧은 말 속에서 시간이 지나면 결국 진실은 밝혀진다는 것과 자신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고,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굳은 의지가 담겨 있다고 분석한다. 그의 리더십을 재조명하기로 결심하게 된 까닭이다.



지난해 7월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열풍을 일으키며 역사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이 놀라운 흥행에는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현존하는 최고의 감독이 영화를 만든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인류의 역사를 바꾼 인물들 중 상대적으로 베일에 싸여있던 ‘오펜하이머’를 본격적으로 다룬 전기 영화라는 점이 가장 컸다고 영화평론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오펜하이머는 그동안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대중에게 알려진 정보가 적은 사람이었다. 머리가 비상했고 핵물리학과 양자물리학의 대가였지만, 정작 물리학자로서의 업적은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닐스 보어나 엔리코 페르미 같은 기라성 같은 위대한 학자에 비하면 비교적 평범했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 독자도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기 전까지는 원자폭탄 제조에는 아인슈타인이 기본적 자료를 제공하고 행정으로서의 프로젝트 수장 역할을 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 책임자가 '오펜하이머'라는 이름의 물리학자란 사실도 제대로 모를 정도였다. 다시 말해 학계에서는 그가 맡은 폭탄이 대량 살상 무기로서 유사 이래 '최악의 무기'라는 여론에 밀려 미국의 승전 영향력이 반감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원자폭탄 프로젝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리더로 기억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한 번에 끝낸 원자폭탄을 만든 ‘맨해튼 프로젝트’의 책임자이자 리더였지만, 폭탄 투하를 결정한 트루먼 대통령 앞에선 “내 손에는 피가 묻어있습니다”란 발언을 해 트루먼 대통령에게 '겁쟁이 과학자'라는 멸시를 받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또 미국이 소련과 핵전쟁을 시작한 이후엔 자신이 만든 핵폭탄을 반대하는 완전히 모순된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는 전쟁을 끝낸 '영웅'과 대량살상 무기의 '학살자'라는 이중적 평가를 받았을 것으로 누구나 추정할 수 있다. 오펜하이머의 변신(?)도 어쩌면 이런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되지만 저자는 '오펜하이머의 리더십'을 읽어냈다고 밝힌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인류 역사를 뒤바꾼 역사적 인물인 ‘오펜하이머’의 리더십을 조망하고 설명하는 책 『무엇을 바라볼 것인가』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저자 박종규는 비밀해제된 기록, 영화와 기록 등을 통해 오펜하이머를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맨해튼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며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탁월한 리더로 분석한다. 이 프로젝트에는 인력 13만 명, 비용 40조 원이 투입되었고, 개발 목표 기한을 불가능하게 설정해 모순으로 가득 찬 평범한 인간을 리더로 임명했다는 점에서 무리한 계획이었다고 한다. 결정을 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업적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를 수행한 오펜하이머는 온갖 비난을 받아낸 '희생양'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다. 오펜하이머는 청년기에 타인의 재능에 대한 시기와 질투심으로 자신을 주체하지 못했으며, 리더가 된 후에는 수많은 장애물들을 극복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였고, 인생 후반기에는 자신이 개발한 핵폭탄에 반대하는 모순된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오펜하이머에 대한 면밀하고 끈질긴 연구와 분석을 통해, 훌륭한 리더는 자신 안의 ‘모순’을 직면하고 ‘인정’한다는 사실을 이미 발견해냈다. 모순과 인정을 통한 리더는 그것을 통해 오판과 실수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을 한다고 저자는 본다. 오펜하이머 또한 ‘모순’과 ‘인정’이라는 촉매제를 통해 리더로서 끊임없이 성장했고, 결국엔 인류 역사상 손꼽히는 탁월한 리더로 거듭났다고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 책 『무엇을 바라볼 것인가』에는 오펜하이머가 불가능한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적용한 사람, 일, 조직에 대한 다양한 방법론들을 담았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며 사람을 이끄는 ‘감성지능 리더십’,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에서 시작되어 확실한 성과를 내는 프로젝트 방법으로 급부상한 ‘애자일’*, 권위를 바탕으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명령을 내리는 탑다운 방식이 아닌 조직의 맨 아래 구성원부터 설득하여 조직 자체의 변화를 이끄는 ‘상향식 조직개발’ 등 리더와 조직에 적용할 수 있는 리더십과 방법론의 모든 것들을 오펜하이머가 실천한 프로젝트 리더로서의 한 일들을 상황별로 정리해 보여준다.

* 애자일(Agile) : 소프트웨어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이미 ‘애자일’(Agile)이라는 단어가 익숙할 테다. 애자일은 문서작업 및 설계에 집중하던 개발 방식에서 벗어나 좀 더 프로그래밍에 집중하는 개발 방법론이다. 애자일이란 단어는 ‘날렵한’, ‘민첩한’이란 뜻을 가진 형용사다. 애자일 개발 방식도 그 본래 의미를 따른다. 정해진 계획만 따르기보다, 개발 주기 혹은 소프트웨어 개발 환경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식을 뜻한다.(독자 주)



이 책은 모두 4부(Part) 2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뛰어난 리더도 사람이다-미숙했던 오펜하이머〉, 2부 〈탁월한 리더는 만들어진다-새로 태어난 오펜하이머〉, 3부 〈훌륭한 리더는 사랑받는다-모두가 원하는 사람이 된 오펜하이머〉, 4부 〈진짜 리더는 숨지 않는다-전부 꺼내보였던 오펜하이머〉 등이다. 25개의 각 장에는 핵심어가 등장한다. 오펜하이머를 중심으로 4부로 나눈 뒤 각 장에서 리더에게 필요하고 중요한 덕목을 핵심어로 표기해놓았다. 일부만 여기에 적시해도 머리가 아플 정도로 많은 덕목이 제시된다. 이 많은 덕목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하는 의문이 들지만 오펜하이머가 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리더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이지만 오펜하이머는 가지고 있는 것이 있고, 또 리더가 된 다음에 습득한 것도 있다. 그러나 리더는 어찌됐든 이런 조건들이 뒷받침되어야 탁월한 리더로서 거듭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저자가 오랫동안 연구한, 필요한 리더십의 덕목들이 이 책에 차근차근 선을 보인다. 리더고 되고자 한다면 이런 저런 이유로 이 책에 핵심어로 표기된 리더의 조건을 깊이 사유할 수 있고, 실천해야 탁월한 리더로 거듭날 수 있다. 이 책에서 채택한 오펜하이머는 많은 것이 부족했지만 오히려 많은 것을 실천하며 불가능한 프로젝트인 '맨해튼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질투 시기심 자존감 모순 양면성 다면적 입체적 오만 겸손 감성지능 사회성 자기인식 긍정심리학 강점탐구 오너십 로열티


이상은 1부에 독자가 각 장에 끼워넣은 핵심어들이다. 이들 핵심어는 각 장의 본문을 통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고 있다. 오펜하이머의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 드러난 많은 문제점도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따라 약점이 강점이 되고 리더십의 중요한 조건으로 발전되기도 한다. 또 그 에피소드를 오펜하이머가 프로젝트 수행 과정과 이후의 행동에 대해서 잘 드러내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각 장의 제목에 주목해 본다. 이를 테면 1부 5장 「그는 싫어하고 재능도 없는 실험 물리학을 포기했다」에서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배우고 있던 실험물리학이 자기의 재능과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오펜하이머는 결국 독일의 괴팅겐 대학교로 옮겨, 자신이 좋아하고 또 잘 할 수 있는 이론 물리학에 집중하게 된다. 오펜하이머는 당시를 회고하며 자신이 실험실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해방감을 느꼈으며, 이론 물리학이라는 재밌으면서도 꼭 해보고 싶은 일을 찾아서 기뻤다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잘 못하고 게다가 좋아하지도 않는 것을 과감히 떨쳐 버리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결정한다. 그 후 자신감과 자존감을 회복하고, 만족스러운 학교생활은 물론이고 이론 물리학 분야에서 훌륭한 성과들을 낼 수 있게 되었다.(p.80) 5장의 핵심어를 저자는 '#긍정심리학 #강점탐구'로 기록하고 있다.



15장에서 저자는 '#진성리더십 #진정성'을 꼽고 있다. 책에 따르면 진정성은 그리스 말인 'Authentikos(자연스럽게 생긴, 진정한)'에서 비롯된 말로 원래의 형태나 본질을 유지하면서 모방이나 가짜가 아닌 진실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Authentikos'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인 'Authentes'인데, 이 단어는 'autos(자신)'와 'hentes(행동하는 존재 혹은 성취)'의 두 의미가 합쳐져서 '자신의 권위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 바로 진정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진정성을 가지는 것은, 소크라테스가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지가 없다"ㅁ녀서 강조한 '자기탐구'와 '자기성찰'을 통해, 즉 나 자신을 더 잘 알고 이해하는 노력을 통해서 실현이 가능하다. 그런데 어찌 보면, 그렇게 어려울 것만 같지는 않은 진정성을 추구하는 일, 다시 말해 나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왜 실제로는 쉽지 않을까? 왜 나 자신을 비롯해서 우리 주변에는 진정성이 있는 사람이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그 진정성의 개념 안에는 자신을 아는 것뿐만 아니라 그런 자신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또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게다가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노력은 지금까지 자신이 겪어온 경험과 삶, 그리고 자신의 가치관을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만의 시선으로, 즉 주체적으로 이해하고 또 주도적으로 통제하는 것까지도 포함된다. 게다가 우리는 타인의 기대 혹은 사회적인 기대나 잣대에 영향을 받거나 쉽게 휘둘린다. 모두가 한 명의 주체적인 개인으로서 자신의 가치와 목표에 맞게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안다. 또 때때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감추거나 혹은 의도적으로나 의도치 않게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말하거나 행동할 때도 있다. 즉 자신의 진정성을 숨기게 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물론 종전 후 오펜하이머의 행동에 따라 그가 진정성을 가지고 프로젝트에 참여했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다만 저자는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면 로스앨러모스 연구소 초창기에 장교 군복을 차려 입은 오펜하이머에게 이지도어 라비가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 "Take your uniform off ··· So, be yourself, only better(먼저 그 군복을 좀 벗어버려. ··· 너 자신이 돼야지. 더 나은 자신.) 여기에서 'be yourself'는 자신의 본래 모습을 지키라는 것을 의미하고, 'only better'는 좀 더 나은 버전의 자신이 되도록 노력하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것은 리더에게 반드시 필요한 덕목임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



'모순'과 '인정'을 통해 탁월한 리더로 거듭나기까지 오펜하이머의 리더십은 오늘날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덕목일 듯싶다. 리더로 가는 길목에 반드시 부딪치는 문제일 수도 있다. 오펜하이머 역시 연인원 13만 명의 과학자들을 이끌며 절체절명의 거대한 프로젝트를 성공기키기까지 수많은 난관이 있었다는 것을 영화 〈오펜하이머〉에서도 보여주지만 하나하나 짚어서 리더십의 덕목으로 상장한 저자의 리더십에 대한 연구는 굉장히 응원받을 만하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뛰어난 리더도 결국 사람이기에 처음에는 미숙했던 사람 오펜하이머가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많은 일들이 리더십의 덕목과 연결되는 과정을 밝히고 이를 연구 결과로 묶어내는 저자의 리더십 강의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먼저 읽은 독자로서 이제 읽으려는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특히 저자가 각 장의 제목으로 쓴 문구들은 잘 기억해 자신의 도약 발판으로 이용하는 독자들은 수많은 현인들의 오랜 지혜를 한 손에 쥐고 있는 충만한 느낌을 가질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스스로를 알고 이해하는 것 즉, 진정성의 힘과 긍정적인 영향력을 알게 된 사람은, 아무리 시간이 없고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더라도, 진정한 나다움이 무엇인지 발견하기 위해 자기를 거짓 없이 탐구하고 진실되게 성찰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진정성을 찾으라는 말인 “너 자신을 알라.”가,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나은 리더가 되는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메시지라는 것 역시 진심으로 이해할 것이다.(p.213) - 「결국 진정성이다」 중에서


저자 : 박종규


뉴욕시립 대학교(CUNY) 스테튼아일랜드 칼리지 경영학과 조교수. 직장생활을 할 때부터 리더십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팀원과 팀장으로 일하면서 ‘리더십’이란 대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리더십을 발전시킬 수 있을지 알고자 하는 욕망이 커졌다. 결국 대학교에서 리더십을 전공하고 지금은 리더십을 가르치는 학자이자 리더십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성균관 대학교, 서울시립 대학교, LG, 포스텍, 롯데 등에서 리더십 관련 강의를 했고, 〈동아비즈니스리뷰〉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LG인화원에서 근무했다. 타워스왓슨과 딜로이트에서 HR과 전략 컨설팅을 수행했고, 현재는 미국 로스웰앤드어소시에이츠의 파트너로도 일하고 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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