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타가와 류노스케×다자이 오사무×청춘 세트 - 전2권 청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 북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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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사랑을 받았지만 아쿠타가와 상에 연이어 낙방하고 문단으로부터 혹평을 들었던 다자이 오사무 또한 서른아홉에 아쿠타가와와 같은 선택을 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뇌하는 청춘을 보낸 두 소설가의 단편집을 낸 출판사 측의 기획 의도는 오늘을 사는 청춘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시대가 달라도 사는 데는 늘 같은 세대의 같은 고민이 있다. 이는 인간의 삶이 시대를 불문하고 한결같았고, 늘 힘들었기 때문이란 반증이기도 하다. 두 작가의 많은 작품이 오늘날 고전문학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현대 청춘들은 "고전은 어렵고 딱딱하다", "늘 보수적이며 융통성 또한 없다"는 이유로 기피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 또한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였다. 이른바 고전주의 시대였다는 영국 등 서양에서도 젊은이들은 고전주의를 좋아하지 않았고, 기존 질서에 반기를 들었다. 그들이 자라서 성인이 되었을 때는 또다른 문예사조가 머리를 내민다. 그렇게 역사와 시대의 흐름은 순환하고 흘러가는 것이다. 

이 책이 오늘날 청춘들이 고전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 흥미롭게 재해석하며 읽을 수 있는 작품들로 구성한 이유이기도 하다. 더불어 더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원작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현대적으로 풀었다. 이는 각 책의 일러두기에 모두 적혀 있다. 이 책 두 권 세트에는 '청춘 노트'도 끼워져 있으니 잘 활용했으면 좋겠다는 출판사 측의 바람이다. 이 ‘청춘 노트’에는 내 청춘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든지 메모 형식이든 필사든 각자의 필요에 의해 이용하면 훗날 중요한 기록이 될 수도 있다. 책과 노트로 이뤄진 이 청춘 세트는 ‘나약한 마음이 창피해서 우울해져 버린’ 청춘들에게 ‘나약한 게 아니라 괴로움이 너무 무거운 거야’라는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다.

이 시리즈 책 두 권을 모두 번역한 역자 최고은은 다자이 오사무와 그의 작품을 표현하는 수많은 수식어들이 있지만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이 '청춘의 열병'이라고 말한다. 역자에 따르면 다자이 오사무 작품에 이런 수식어가 붙은 것은 1948년 6월 13일, 서른여덟의 젊다면 젊은 나이에 연인 야마자키 도미에와의 동반 자살로 세상을 떠났지만 75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독자들을 얻으며 널리 읽히고 있는 데다 특히 청년 시절 다자이 작품에 빠져들었다고 고백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다자이 오사무' 하면 누구나 『인간 실격』을 떠올린다. 이 소설 작품은 '나'라는 화자가 서술하는 서문과 후기, 그리고 이 작품의 주인공 요조가 쓴 세 개의 수기로 구성되어 있다. 태어날 때부터 다른 '인간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요조는 그 인간 세계에 스스로 동화되기 위해 '익살꾼'을 자처해 가며 노력하지만 번번이 좌절하고, 결국 마약에 중독되고 자살을 기도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거듭된 동반 자살 기도에서 여자만 죽고 혼자 살아남은 요조는 마지막 희망이었던 본가로부터도 절연 당하고 외딴 시골집에서 쓸쓸히 죽음만을 기다리는 '인간 실격자'가 된다는 내용이다. 

또한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유명한 대표작 『인간 실격』은 특유의 요설체와 일인칭 고백체로, 이루어진 탁월한 작품이라는 것이 역자 최고은의 평가다. '나'의 자의식과 자기혐오를 장황하고 집요하게 묘사하는 한편, 심각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해학과 난센스를 섞어 웃음을 유발하는 그의 작가적 특성이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청년 세대에게는 내 이야기처럼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라고 역자 최고은은 설명한다.

역자에 따르면 실제로 다자이 오사무의 청춘은 파란만장했다. 아오오리 현 쓰가루의 부유한 명문가에서 태어났지만, 대학 시절 좌익 운동에 참가했다가 좌절한 경험, 예술과 생활 사이에서의 갈등, 지방 출신으로서 고향에 대해 느끼는 복잡한 갈등, 약물 중독, 두 번의 결혼과 복잡한 이성 관계, 생애 여덟 번에 걸친 자살 시도 등 그의 짧은 생애를 장식한 사건과 감정들은 그를 절망으로 몰아갔으나 그는 이 고뇌를 문학 속에 녹여 냈다고 역자는 분석한다. 때문에 그의 문학은 흔히 '사소설(私小說)'-작가가 직접 체험한 일을 소재로 삼아, 경험을 그대로 쓴 소설-로 여겨졌고, 그렇게 읽혀 왔다는 게 역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 단편집에 수록된 「부끄러움」에서도 알 수 있듯, 다자이는 '사소설=작가가 경험한 일을 그대로 쓴 것'이라 여기며 소설 속 세계와 작가의 실생활을 혼동하는 읽기 방식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것을 교묘하게 비튼 소설을 쓰고 있다. 「어릿광대의 꽃」 역시 다자이 자신의 동반 자살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삼인칭으로 서술되는 이야기 중간중간에 이 소설을 쓰는 작가 '나'가 등장해(물론 이 작가 '나' 역시 다자이 본인이라고는 할 수 없다.) 메타 레벨에서 소설의 방법론에 관해 이야기하는 등 작품을 작가의 경험 그 자체로 읽는 흐름을 방해하고 상대화한다고 강조한다.



역자 최고은은 책 뒷 부분 〈옮긴이의 말〉을 통해 "작가의 사생활이나 사상 등을 작품에 투영해 읽는 방식이 잘못됐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실생활과 말로 구축된 허구의 소설 세계가 교차하거나, 또는 어긋날 때 나타나는 새로운 리얼리티가 주는 깨달음과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 다자이 오사무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소설을 방불케 하는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가 반영된 작품 내용이 읽는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작품 내적 세계와 외적 세계의 낙차를 이용하는 전략을 효과적으로 구사하는 작가적 역량에 있기도 하다."고 밝힌다. 

이 책에 실린 다자이 오사무의 12편의 단편 소설을 통해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특성을 살펴본다. 우선 1934년에 발표한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니다」는 집주인인 '나'와 그의 집에 세들어 사는 세입자, 세이센의 특이한 관계를 그린 작품으로, 천재를 동경하는 '나'와 그런 '나'의 성격에 맞추어 자기를 변화시키는 세이센의 얽히고설키는 과정이 실소를 자아내지만, 주체로서의 나와 근대인의 자의식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구절도 많다. 메이지 이후 '입신양명'을 목표로 인격을 갈고닦는 '쳥년' 상이 세계대공황으로 인한 취직난 등으로 점차 성립하지 않게 된 동시대적 상황을 연상케 하는 실험적인 형식의 작품이다. 

사이센은 새로 맞이한 아내에 대해 역시나 다소 찝찝했는지, 내 시선을 피하듯 기다란 머리카락의 비듬을 털거나 무릎을 몇 번이고 폈다 꼬았다 하면서 웅변을 늘어놨어. 

"정말 괜찮으세요? 저도 곤란해서요."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그럼요." 그는 내 말을 가로막듯 괜찮다고 연거푸 말하며 쾌활하게 웃더라. 나는 그 말을 믿었어.

그때 방금 전의 소녀가 은쟁반에 홍차를 받쳐 들고 왔어.(p.45)

이어 1935년 발표된 「어릿광대의 꽃」은 1930년, 카페 직원이었던 다나베 아쓰미와 가마쿠라 해안에서 약을 먹고 동반 자살을 기도했다가, 여성만 죽고 다자이만 살아 남은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다자이 본인의 실제 경험이 투영되어 있지만 사이사이에 소설을 쓰는 작가 '나'의 고백을 넣은 형식이 인상적이다.



「우바스테」(1938) 역시 두 남녀의 동반 자살 여정을 그린 이야기로, 1937년 첫 아내였던 하쓰요가 자신의 사돈인 화가 고다테와 부정을 저지른 사건에 충격을 받아, 하쓰요와 동반 자살을 시도한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애증과도 같은 부부의 관계와 삶에 대한 애수가 감도는 가운데도 다자이 특유의 위트를 잊지 않는 어둡고고 밝은 작품이다. 1939년 발표된 「여학생」은 여성 일인칭 고백체로 진행된다. 그의 소설가로서의 중기를 대표한다. 열내 살 여학생의 일상을 의식의 흐름에 따라 그리고 있는데 사춘기 특유의 자의식과 섬세한 내면 묘사가 눈에 띈다.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와 부로하하는 여성의 자아를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의 기분은, 재미있다."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다자이의 애독자였던 아리아케 시츠가 자신이 쓴 일기를 다자이에게 보냈고, 「여학생」은 이 일기와 상당 부분 중복된다고 한다. 독자의 일기를 그대로 인용, 붙여 넣기 한 소설이라는 혹독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패러디, 번안을 문학적 수법으로 이용했던 다자이 문학의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역자 최고은의 입장이다. 

아침은 왠지 뻔뻔스럽다. 서글픈 일들이 수없이, 수많이 가슴에 떠올라서 견딜 수가 없다. 싫어, 싫어. 나는 아침에 가장 추하다. 두 다리가 기진맥진 지쳐서, 그래서 더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숙면을 취하지 못한 탓일까. 아침은 건강하다는 건 거짓말이다. 아침은 잿빛이야. 언제나 늘 똑같아. 가장 허무해.

(중략)

아침에는 늘 자신이 없다. 잠옷 차림으로 화장대 앞에 앉는다. 안경을 안 쓰고 거울을 들여다보면, 얼굴이 조금 흐릿하고 촉촉하게 비친다. 내 얼굴에서 안경이 제일 싫지만, 다른 사람은 모르는 안경의 장점도 있다. 안경을 쓰고 먼 곳을 보는 게 좋다. 전체가 흐릿하고, 꿈속에 있는 거섳럼, 작은 구명으로 들여다보는 그림처럼 멋지다. 

(중략)

제 감정을 죽이고 남에게 봉사하는 건 분명 좋은 일이지만, 앞으로 매일 이마이다 씨 부부 같은 사람들에게 억지로 웃어 주거나 맞장구를 쳐야 한다면, 미쳐 버릴지도 모르겠다. 나 같은 건 감옥에도 들여보내 주지 않겠지. 불현듯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감옥은커녕 하녀로도 못 쓸 것이다.



1940년 발표한 「젠조를 그리며」는 소설가인 '나'가 고향 신문사에서 도쿄에서 활약하는 동향 출신 예술가들의 좌담회의 촟대장을 받으며 생긴 내면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일본 북부 쓰가루 출신의 다자이가 고향과 집안에 대해 느끼는 복잡한 감정이 잘 묘사돼 있다. 결국 망쳐 버린 좌담회에 절망한 '나'를 위로해 준 건, 속아서 산 줄 알았던 장미나무였다는 결말의 소박한 아름다움이 인상적이다. 작중의 좌담회는 실제 개최했던 모임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탁한 목소리로 소리친 예술가는 유명한 판화가인 무나카타 시코로 추정된다는 평가다. 제목의 모델로 했는데, 제목의 젠조는 쓰가루 출신의 선배 작가이자 1928년 세상을 떠난 가사이 젠조를 말한다. 「젠조를 그리며」와 같은 해 발표된 「달려라 메로스」는 일본 교과서에도 실리는 유명한 작품이라고 역자는 전한다. 마지막에서 밝히고 있듯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 정확히 말하면 시의 일본어 번역을 원전으로 하고 있다. 우정과 믿음이라는 고전적인 주제를 현대적으로 변주해 다시 쓴 다자이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금주의 마음」이 발표된 1943년은 태평양전쟁으로 인해 술을 배급제로 받을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이런 귀한 술을 둘러싼 인간 군상의 행태와 그럼에도 차을 수밖에 없는 술의 매력을 유머러스하게 그린 작품이다. 이 단편집을 통해 작가 다자이의 '청춘'을 물론, 그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면 옮긴이로서는 더없는 기쁨이 될 것이라고 역자 최고은은 밝힌다. 


저자 : 다자이 오사무(Dazai Osamu, だざい おさむ, 太宰 治, 津島修治)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 현 쓰가루 군 카나기무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가진 자로서의 죄책감을 느꼈고,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성장한다. 1930년, 프랑스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도쿄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하지만, 중퇴하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소설가 이부세 마스지[井伏_二]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그는 본명 대신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35년 소설 「역행(逆行)」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35년 제1회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단편 「역행」이 올랐지만 차석에 그쳤고, 1936년에는 첫 단편집 『만년(晩年)』을 발표한다. 복막염 치료에 사용된 진통제 주사로 인해 약물 중독에 빠지는 등 어려운 시기를 겪지만, 소설 집필에 전념한다. 1939년에 스승 이부세 마스지의 중매로 이시하라 미치코와 결혼한 후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많은 작품을 썼다.

1947년에는 전쟁에서 패한 일본 사회의 혼란한 현실을 반영한 작품인 「사양(斜陽)」을 발표한다. 전후 「사양」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인기 작가가 된다. 그의 작가적 위상은 1948년에 발표된, 작가 개인의 체험을 반영한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을 통해 더욱 견고해진다. 수차례 자살 기도를 거듭했던 대표작은 『만년(晩年)』, 『사양(斜陽)』, 「달려라 메로스」, 『쓰기루(津?)』, 「여학생」, 「비용의 아내」, 등. 그는 1948년 6월 13일, 폐 질환이 악화되자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人間失格)』을 남기고 카페 여급과 함께 저수지에 몸을 던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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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다자이 오사무×청춘 세트 - 전2권 청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 북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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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일본 문학 작품을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예전에 비하면 많이 완화되었지만 일본에 대한 적개심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교육 받은 항일·반일·극일의 한복판에 독자의 세대는 끊임없이 반일 감정을 갖도록 배웠다. 실제로 역사를 배울 때 그들은 군부를 앞세운 식민지 확장 정책을 100년 가까이 계속했다. 동북아시아는 물론 동남아시아까지 침략해 수많은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남겼다. 역사에 남은 증거자료와 증인들이 수없이 쏟아지는 데도 그들은 침략을 인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피해국의 발전을 위해 도움을 준 것이라고 인정할 수 없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거쳐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 당시 메이지유신 주역들은 대부분 영국(대영제국)에 유학 가서 그들의 문화부터 정치, 외교, 군사까지 배웠다. 그리고 그대로 따라했다. 일본은 동양에서 가장 먼저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인 당사국이다. 놀라울 정도의 선진국으로의 진척이 빨랐다. 특히 군사 무력 확대는 그대로 식민 침략의 선봉이 되었다. 가장 가까이 있던 한반도와 중국의 여러 곳이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제지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었던 중국 역시 청나라 말기와 민간 정부의 힘으로 일본의 군사력을 막을 수 없었다. 동남아의 각국들은 도미노 쓰러지듯 게속해서 일본의 침략에 속수무책이었다. 20세기 들어 시도한 전쟁에서 실패한 적이 없는 일본은 아시아 제일을 넘어 세계 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막강한 군사력을 갖게 됐다. 제1차 세계대전에도 군대를 보내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미국의 태평양함대를 기습 공격함으로써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힘을 빼려고 시도했다. 특히 일본 해군은 태평양에서의 제해권을 확보한 듯했다. 

이 책 『청춘』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 중 당시 일본 젊은이들의 사랑과 인생관, 가치관 등을 엿볼 수 있는 단편소설 각 12편씩을 묶어 1, 2권 출판사 기획 시리즈로 동시 출간했다. 일본 문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두 작가의 유명세와 당시 젊은이들의 세태를 파악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읽고 싶은 책'이 됐다.



독자가 이 두 권의 책에 시선이 고정된 것은 두 작가 모두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요절 작가이다. 왜 그들은 스스로 삶을 끝냈을까? 당시 일본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후세 일본 청년들도 일본의 국보급 작가들로 꼽을 정도로 문재(文材)가 뛰어난 작가들인데도 말이다. 이들은 일본이 근대화를 시작해 단숨에 산업화하고 군사력을 집중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무렵에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까지 살았던 작가들이다. 한마디로 청년기의 일본인으로서 청년기의 일본을 살다 간 문인들이다. 독자가 이들 작가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이유는 이들이 그린 '일본 청년기'는 어떤 모습일까?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일본 청년기'란 표현은 독자가 임의로 붙인 명칭이며, 두 작가가 왕성한 문필 활동한 기간이 일본 100년 중 가장 왕성한 기간이란 의미에서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1892년 도쿄의 서민 지역인 시타마치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어렵고 외가로 양자로 입적한 듯하다. 문재나 두뇌가 명석하고 뛰어났던 모양이다.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를 차석으로 졸업했다고 한다. 당시 영문학자이자 최고의 문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나츠메 소세키로부터 단편 『코』가 절찬을 받으며 일약 다이쇼 시대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니 스승과 제자로 만난 것으로 보인다. 영국 유학에서 돌아온 나츠메 소세키의 작품 경향은 당시 전성기에 있던 자연주의에 대하여 고답적, 관상적인 입장이었다. 『산시로[三四郞]』(1908), 『그후』(1909), 『문(門)』(1910)의 3부작에서는 심리적 작풍을 강화하였고, 다시 『피안 지나기까지』(1912), 『마음』(1914) 등에서는 근대인이 지닌 자아·이기주의를 예리하게 파헤쳤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알려진다.

이 책 『청춘』에 실린 작품을 번역한 최고은은 책 뒷 부분 〈옮긴이의 말〉에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작품 중 '청춘'을 테마로 한 단편들을 모은 것"이라며 "청춘을 테마로 하고 있긴 하지만, 삼십오 년이라는 짧은 생애 속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선보인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청춘'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라는 게 보다 적절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역자에 따르면 1927년 7월 음독자살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십여 년의 작가 생활 동안 수많은 명작을 발표했으며 명실공히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힌다. 전통 설화나 고전을 재해석한 「라쇼몽」 「코」, 기독교를 소재로 한 「난징의 그리스도」 같은 작품이 눈에 띄는 초기를 거쳐, 「지옥변」처럼 예술지상주의를 다룬 작품들을 발표한 중기, 「점귀부」 「톱니바퀴」 「어느 바보의 일생」처럼 작가 자신의 모습이 짙게 반영된 사소설적 작품들을 발표한 말기에 이르기까지, 아쿠타가와는 그야말로 다채로운 작품 세계를 선보인 뛰어난 재능의 작가였다. 하지만 개인사적으로 어릴 적 친어머니가 정신 이상을 일으킨 탓에 외가에 맡겨져 자라다 외삼촌의 양자가 된 일, 겨혼을 생각한 첫사랑과 집안의 반대로 헤어지게 된 일, 존경하던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죽음, 시인 히데 시게코와의 불륜 등 결코 평탄한 인생은 아니었다. 유서로 남긴 「어느 옛 벗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는 자신의 자살의 동기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며 역자는 일부를 소개한다.

"자네는 신문의 삼 면 기사에서 생활고나, 병고나, 또는 정신적 고통이나, 다양한 자살의 동기를 발견하겠지. 하지만 내 경험에 따르면, 그것들만이 동기의 전부라 할 수는 없네. 대부분은 동기에 이르는 과정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지. 자살자는 대체로 레니에(프랑스의 시인 앙리 드레니에-옮긴이 주)가 그린 것처럼 무엇 때문에 자살하는지 모를 거야. 그건 우리의 행위만큼이나 복잡한 동기를 내포하고 있어. 하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저 막연한 불안이야. 무언가 나의 장래에 대한 그저 막연한 불안 때문이지."(p.320~321)

이처럼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인간적 고뇌와 생에 대한 불안의 정체성을 알아내기엔 편지 내용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역자는 판단하는 것 같다. 이 단편집에 실린 열두 편의 작품을 잘 읽고 접근한다면 완전치는 않겠지만 불안의 윤곽과, 고뇌 속에서 피어난 문학적 재능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청춘'이란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고 벅차다는 우리나라 한 수필가의 「청춘예찬」이란 수필이 떠오른다. 사실 ‘청춘’만큼 반짝거리는 단어도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른 한편으로 청춘은 반짝거리지 못할까 봐 두려워지는 때이기도 하다. 20대에 나쓰메 소세키로부터 “문단에서 유례없는 작가가 될 것”이라고 인정받으며 일본 문학계에 화려하게 등장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서른일곱의 젊은 나이에 막연한 불안을 이유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한 일본 작가의 소설 속으로 들어가본다. 

이 소설집에는 아주 짧은 작품도 있지만 중편에 해당될 정도의 긴 소설도 있다. 「갓파」는 꽤 긴 중편소설로서, 어느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갓파 나라를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다. 독자로서는 소설의 길이에 상관없이 '갓파'가 무엇인가가 더 궁금해서다. 처음 듣는 단어고, 국적이 불분명해서 더 관심이 갔다. 소설 제목 아래에는 한자어 '하동(河童)'이라고 적혀 있다. '물가의 아이'(?) '물의 아이'(?) 독자처럼 일본어를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서인지 소설 맨 앞 부분에 "부디 Kappa라고 발음해 주십시오.)라고 씌어 있다. 역자 최고은은 친절하게 주를 달아놓았다. (갓파는 물에 사는 일본 요괴로, 지역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데 도쿄 가나가와현에서는 갓파라고 불린다. 아쿠타가와 역시 그런 이유로 이 구절을 넣었다고 1927년 〈문예춘추〉와의 대담에서 밝힌 바 있다.-옮긴이 주)

소설은 〈서문〉부터 시작한다. 한 페이지 분량의 서문에는 "이것은 어느 정신병원의 환자 제23호가 누구에게나 들려주는 이야기다. 그는 이미 서른이 넘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뜻 보기에는 아주 젊은 광인이었다. 그의 반평생 경험은-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그는 그저 가만히 두 무릎을 안고 가끔 창밖으로 눈길을 주며(쇠창살이 달린 창밖에는 마른 잎조차 보이지 않는 떡갈나무 한 그루가 눈 내릴 듯 흐린 하늘에 가지를 뻗고 있었다.) 원장인 S박사와 나를 상대로 이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전혀 움직이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는 예컨대 "놀랐다."라고 말할 때면 갑자기 얼굴을 뒤로 젖히기도 했다. 이 소설은 〈서문〉 이후 17개의 번호만 붙은 채 이어진다. 분량이 꽤 긴 중편소설이라고 앞서 언급한 바 있다.



역자의 견해를 빌리면 인간 세계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갓파 나라의 문화와 사상 등에 대한 서술은 이야기 자체만 놓고 봐도 흥미진진하다. 소설은 곳곳에서 당시 사회에 대한 풍자와 날카로운 비판 정신도 엿볼 수 있다. 갓파 나라에서 긴간 세계로 돌아온 '나'가 결국 정신병원에 갇히는 결말에서는 다른 세계를 경험한, 즉 경계를 넘은 자는 이단자로서 사회에서 배제된다는 염세적인 메시지를 읽어 낼 수도 있지만, 갓파들이 우정을 잊지 않고 '나'를 찾아오고, '나' 역시 친구 갓파를 만나러 다시 갓파 나라로 가고 싶다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엿볼 수도 있지 않을까. 작중 S박사는 아쿠타가와의 친구, 시인이자 의사인 사이토 모키키롤 모델로 했다는 설이 있다.

17개로 나뉘어진 작품 중 9번 일부를 여기에 옮겨본다.

"하지만 실례가 될지 모르지만, 푸후 신문은 노동자 편을 드는 신문이지 않습니까. 그곳 사장인 쿠이쿠이도 당신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건······."

"푸후 신문 기자들은 물론 노동자의 편입니다. 그러나 기자들을 지배하는 건 쿠이쿠이 말고는 없습니다. 그리고 쿠이쿠이는 이 게르의 후원을 받지 않을 수 없죠." 

(중략)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칠 년 전의 전쟁은 분명 어느 암컷 갓파 때문에 시작된 게 틀림없습니다."

"전쟁? 이 나라에도 전쟁이 있었습니까?"

"있었고말고요. 앞으로도 언제 일어날지 모릅니다. 이웃 나라가 있는 한······."

저는 사실 이때 처음으로 갓파 나라도 국가적으로 고립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게르의 설명에 따르면, 갓파는 항상 수달을 가상의 적으로 삼고 있다고 합니다.(p.152~153)



저자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Ryuunosuke Akutagawa, あくたがわ りゅうのすけ, 芥川 龍之介)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1892년 도쿄의 서민 지역인 시타마치에서 태어났다. 외가에 양자로 들어가 두 이모가 그를 양육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도쿄제일고등학교를 거쳐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해 차석으로 졸업했다. 기쿠치 칸, 구메 마사오 등과 재학생 시절 동인지 『신사조』를 발간해 『라쇼몬』 『코』 등의 단편을 발표했는데 나츠메 소세키로부터 단편 『코』가 절찬을 받으며 일약 다이쇼 시대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전공인 영문학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러시아문학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아 간결하면서도 평이하고 명쾌한 필치가 특징이지만 한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왕조물’, ‘기독교물’, ‘에도물’, ‘개화기물’, ‘현대물’ 등의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나생문(羅生門)』, 『마죽(芋粥)』 등 150편 정도의 단편 소설을 남겼다.

초기에는 일본 고대 설화 문학에서 소재를 취해 보편적이면서 현대적인 인간 에고이즘의 내면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썼고, 이후 예술지상주의적인 경향의 작품들, 에도 시대 그리스도교 박해를 다룬 기리시탄 작품들, 일본의 근대화를 주제로 한 작품들 등을 쓰다가 말년에는 자살을 염두에 둔 듯 자신의 삶을 무자비하게 조롱하고 야유하는 자전적인 작품들이 많다. 1927년 7월 24일 새벽, 비가 세차게 내리는 가운데 다바타의 자택에서 치사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자살했다. 그가 밝힌 자살의 이유는 ‘장래에 대한 그저 막연한 불안’이었다. 아쿠타가와의 자살은 관동대지진과 더불어 일본 근대사에서 다이쇼라는 한 시대의 종언으로 느껴질 정도로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던졌다. 1935년 아쿠타가와의 친구였던 문예춘추의 사주 기쿠치 칸이 아쿠타가와상을 제정했고 현재까지도 이 상은 일본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으로 인정된다.


역자 : 최고은


도쿄대학교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동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일본 전후 문학을 중심으로 공부하며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무라타 사야카의 『소멸세계』, 기리노 나쓰오의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 『인형 탐정』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의 『서브머린』, 『칠드런』,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히가시노 게이고의 『옛날에 내가 죽은 집』, 요네자와 호노부의 『부러진 용골』, 미치오 슈스케의 『스켈리튼 키』, 요코야마 히데오의 『64』, 『그림자밟기』, 미카미 엔의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시리즈, 모리무라 세이치의 [증명] 시리즈를 비롯해 『인사이트 밀』, 『절규성 살인사건』, 『46번째 밀실』 『도미노』, 『덧없는 양들의 축연』, 『거대 투자 은행』, 『소녀지옥』, 『침묵의 거리에서 1, 2』, 『말레이 철도의 비밀』, 『백년법 상,하』, 『골든애플』 등 다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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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대화 감사카드 (한글판 & 영어판) - 감사하는 삶에 영감을 주는 질문 카드
홀스티.감사하는 삶을 위한 네트워크 지음, 한국NVC출판사 옮김 / 한국NVC출판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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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매사에 감사하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독자는 비종교인이라서 기독교나 불교의 경전 등을 통해 듣고 본 말들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삶의 가장 주춧돌이 되는 가르침들이 '위대한 종교'의 경전에 모두 적혀 있다고 들었다. 그 중에 '감사'는 기독교에서 가르치고 지켜야 할 삶의 원칙 중의 하나라고 한다. 성경에는 있고, 불교 경전에는 없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불교 경전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인간이 항상 지녀야 할 덕목 중의 하나라고 한다. 다만 독자나 일반 대중이 모르고 있을 뿐일 것이다. 또 동서양 철학에서 제시하는 삶에서 지켜야 할 덕목에는 왜 '감사하는 마음'이 빠져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역시 직접적인 표현은 아닐지라도 있을 것으로 독자는 추정한다.


고대 동양의 공자, 서양의 소크라테스로 대표되는 철학자들은 인간의 삶에서 꼭 있어야 할 덕목들을 제시한다. 공자의 가르침은 '인(仁)'아고 소크라테스의 주장은 '무지에 대한 인식'으로 표현되었을 뿐이다. 이들도 가르침의 사상 안에는 모두 '감사'라는 마음의 품성이 포함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이들 성인은 굳이 감사를 따로 가르치지 않고 감사가 포함한 대체 표현을 했을 뿐이다. 이들이 가르친 내용의 책도 많고, 그 사상을 이어받은 학자들은 죽 이어져 왔다. 대를 이은 학자들이 많고, 그들이 지은 책도 헤아릴 수 없다. 책이 많아서 독자나 일반 대중 등 철학 비전공자들은 모르고 있을 뿐이다. 

감사는 내 삶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나 생명체, 또는 무생물체에게도 가지는 선한 마음의 자세다. '매사에 감사하라'는 성경 가르침도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인간이 가져야 할 또 다른 덕목에 훨씬 쉽게 다가갈 수 있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이를 테면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절제하고 인내하는 데 훨씬 높은 인격적 소양을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굳이 검소, 절제, 배려, 친절을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그런 덕목을 지니고 있다고 봐도 될 정도로 품성이 올바르다고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책(카드) 『비폭력대화 감사카드』는 인간이 가져야 할 기본적 태도나 마음가짐의 하나인 '감사'를 습관을 통해 몸에 익히도록 고안됐다. 이 카드는 모두 100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놀이로 즐기는 서양의 트럼프와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크기는 동양에서 즐기는 화투보다 조금 크다. 저자 홀스티(의미 있는 삶을 위한 도구와 리소스를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단체)가 만들었다. 홀스티는 이 카드에 〈감사하는 삶에 영감을 주는 질문 카드〉란 별칭이자 부제를 붙였다. 이 카드는 놀이처럼 즐길 수 있도록 제작됐으며, 카드에 적힌 문구들이 삶의 기본이 되도록 습관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카드는 모두 5가지 색깔로 「관점」, 「경이로움」, 「풍요로움」, 「연결」, 「치유」로 나뉘어 각 항목마다 10장씩 들어 있다. 카드 한 장에는 두 개의 문구가 적혀 있다. 홀스티에 따르면 「관점」 카드는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힘을 기르기' 위한 질문 20가지가 새겨져 있다. 카드가 10장, 1장 당 2개 문구여서 모두 20개 문구다. 또 삶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에 깨어나기를 위한 문구를 적은 「경이로움」 카드도 같은 방법으로 20개 문구다. 「풍요로움」은 삶의 충분함을 알아차리고 음미하기 위해서 제작됐다. 「연결」은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상호의존한다는 것을 존중하고 보살피기를 위한 카드이다. 「치유」는 우리 자신, 서로 그리고 세상을 회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역시 20개 문구를 갖고 있다. 이처럼 카드는 모두 50장이고 문구는 100개다. 두 벌의 카드 중 하나는 한글로 돼 있고, 다른 하나는 영문으로 구성돼 있다. 

카드 제작팀은 "삶의 풍요로움을 깊이 의식하게 하고, 우리의 마음이 감사의 기쁨과 변화의 가능성에 열리게 한다. 카드마다 질문 두 개가 있는데 흰색 바탕의 준비 질문으로 시작해서 빛깔이 있는 깊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볍게 느껴지는 질문이 다른 사람에게는 깊게 느껴질 수 있다"고 밝힌다. 개인 각각의 취향과 다름을 충분히 이해하고 제작되었기에 마음에 드는 것부터 선택하면 된다. 어차피 나중에는 돌아가며 모두 마치기 때문에 순서의 구별은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홀스티와 함께 〈감사하는 삶을 위한 네트워크(A Network for Grateful Living, 이하 감사네트워크)〉도 저자로 참여했다. 이 단체의 데이비드 스타인들 라스트 수사는 안내 책자에 "행복이 우리를 감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감사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고 강조한다. 감사네트워크는 안내 책자를 이용,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주요 내용은 「감사카드란?」, 「게임 옵션」, 「질문 팁」, 「대답 팁」, 「감사를 더 깊이 하기」, 「[유튜브] 행복하고 싶으세요? 감사하세요」, 「비폭력적인 삶에서 감사의 중요성」, 「비폭력대화(NVC)란?」, 「감사의 힘」, 「감사 표현하기」가 목차대로 적혀 있고, 마지막에 함께 만든 단체도 게재하고 있다.

감사네트워크는 「감사카드란?」 설명에서 "카드마다 질문 두 개가 있는데 흰색 바탕의 준비 질문으로 시작해서 빛깔이 있는 깊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볍게 느껴지는 질문이 다른 사람에게는 깊게 느껴질 수 있음을 기억할 것"을 주문한다. 감사네트워크는 또 「게임 옵션」을 통해 '캠프파이어' 때는 불 주변에 둥글게 모여 앉거나 저녁 식탁에서 또는 온라인 지원자 한 사람이 카드 한 장을 뽑아 질문을 읽고 한 사람씩 생각을 표현하도록 초대한 다음, 자기 자신의 생각을 나누는 것으로 마무리한다"고 제안한다. 또 배우자, 파트너, 자녀, 부모, 친구 등 한 사람과 매일 질문 하나를 다루어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캐서린 한은 「비폭력적인 삶에서 감사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무엇이든지 더 있어야만 한다는 결핍의 태도로 삶을 살 대 우리는 불안해지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무자비하게 경쟁을 하고 폭력적으로 착취하는 것을 정당화한다"고 말하며, 이 사회는 '자칼 사회'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인가를 감사할 때 우리는 불안하지 않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감사할 때 우리는 두렵지 않다. 우리는 감사할 때는 폭력적이지 않다"고 전제하고 "아무리 검소한 식탁이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대할 때, 우리 마음은 풍성하고 행복하다"고 캐서린 한은 강조한다. 안내 책자에는 이 감사카드를 주도한 「비폭력대화(NVC)」에 대한 설명도 나와 있다. 이에 따르면 비폭력대화(NVC, Nonviolent Communication)는 연민의 대화(Compassionate Communication), 삶의 언어(Language of Life)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비폭력이란 간디의 아힘사(ahimsa) 정신으로, 우리 마음 안에서 폭력이 가라앉고 우리의 본성인 연인으로 돌아갔을 때의 자연스러운 상태를 말한다. 비폭력 대화는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다른 사람과 유대관계를 맺는 데 도우이 되는 구체적인 대화방법이다. 이 안내 책자에는 이 밖에도 〈한국NVC센터〉 〈한국비폭력대화교육원〉 〈한국NVC출판사〉와 주요 출간물 등이 나와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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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톨랑의 유령
이우연 지음 / 문예연구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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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밤을 탈출하지 못한 존재들, 그들은 그들만의 진실로서 살아있다.” 결코 이룰 수 없는 희망에 대한 갈망을 상징과 은유 등 강렬하고 매혹적인 언어로 담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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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톨랑의 유령
이우연 지음 / 문예연구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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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오르톨랑의 유령』은 저자 이우연의 세 번째 소설 작품이다. 독자로서는 그의 책을 처음 읽는다. 표제어의 '오르톨랑'도 프랑스의 어느 한 지역 이름인 줄 알았다. 그 지역의 전설적 유령 이야기나 혹은 지역과 관련 있는 사람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SF소설, 스릴러나 호러소설쯤으로 생각했다. 독자의 이 같은 추측은 이 책의 첫 페이지를 펴자마자 여지없이 깨진다. 달달하거나 공포 체험 소설이 아니다. 그런데도 분위기는 심상찮다. 저자 이우연은 소설 본문 앞에 〈서문(들어가며)〉를 먼저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이 글은 혼자에 관한 글이다. 동시에 혼자일 수만은 없는 것들이 혼자 이상을 원하는 장소들에 관한 글이다. 이곳, 비현실적인 악몽 속에 거주하는 것들은 누군가에게 가 닿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것들은 더럽고 비좁은 틈새에서 불가해한 중얼거림을, 도저히 믿기 어려운 악몽들을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언어로 번역하려 몸부림친다. 그 언어가 마침내 누군가에게 전해지기를 간절히 원하면서."(p.4)

첫 문장을 제외하고는 쉽게 와닿지 않는다. '호러적' 분위기는 읽히는 것 같은데 구체적이지 않은, 온통 상징과 은유로 뒤섞인 듯한 미로에서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할 것 같아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이제서야 '오르톨랑'이 무엇인지 알아야겠다고 자각한다. 놀랍게도 새의 이름이다. 우리말로는 '멧새'로 번역된다고 사전은 밝히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백과사전에서 멧새를 찾았는데 '멧새 요리'에 관한 설명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멧새란 참새 크기의 조그만 새인데 요리 재료라니...

멧새과에 속하는 깃털 달린 수렵육으로 고대부터 가장 고급스럽고 섬세한 맛을 지닌 새로 여겨졌다. 본래 이름이 브뤼앙 오르톨랑(bruant ortolan)인 이 철새는 점점 희귀해져 현재는 유럽뿐 아니라 캐나다에서도 공식적으로 보호되고 있다. 캐나다에서 멧새는 인적이 드문 북극 빙하지대 변방에 서식하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 남서부, 특히 랑드(Landes) 지방에서는 레스토랑에서 멧새를 서빙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호가들 사이에서 이 새를 생포하여 살찌우는 일이 암암리에 계속 행해지고 있다. 새가 먹는 먹이(베리류 열매, 싹, 포도 알갱이, 조, 작은 곤충)는 살에 진한 풍미와 섬세한 맛을 만들어준다. 이렇게 살을 찌우면 포획 시에 30g이던 무게는 한 달 사이에 네 배로 늘어난다.

멧새는 대부분 꼬치에 꿰어 굽거나 오븐에서 로스트 하며 자체 지방으로 익힌다. 이 기름은 굽는 동안 아래에 받쳐둔 빵 조각 위로 떨어져 모인다. 어떤 이들은 이 빵에 로크포르 치즈를 발라 먹을 것을 추천하기도 한다. 또한 이 작은 새에 송로버섯을 넣은 푸아그라 퓌레를 채운 뒤 천연 창자로 감싸 익히는 조리법도 있다.(그랑 라루스 요리백과)



다시 〈서문〉으로 돌아간다. "이글은 유령들이 태어나고 머무는 장소에 관한 이야기며 그곳에서 짖어대는 소통불가능한 울음이다. 이곳의 목소리들은 감실에서 태어났다. 아직 무한한 밤을 탈출하지 못한 짐승들이 이곳에서 몽유한다." 한 문단이 끝나자 저자는 "이곳의 짐승들은 혼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쓰고 있다. "홀로 내는 소리는 홀로 사그라든다. (중략) 이런 소리들의 파동 속에서 짐승들은 살아 있다. 그들은 겁을 먹거나 죽음을 결심하고, 절망에 안식한다. (중략) 그들은 망상증자이며 그것들의 고독은 사실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거짓을 닮은 방식으로, 그들만의 진실로서 살아 있다. 짐승들 자신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을 당신도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만이 그들이 희망하는 불가능이다."

이 소설은 〈서문〉을 제외하고 두 개의 장(章)으로 나뉘어 있다. 1장 「교실 속의 미로는 새들의 우주를 닮았다」와 2장 「그녀는 TV 앞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여자를 꿈꾸었다」 등이다. 200여 페이지의 장편소설이다. 각 장마다 수많은 장소들이 작은 항목의 제목으로 쓰였다. 1장의 경우 '청소도구함' '방 안' ' '미로' '조종실' '교실' '다락방' '서커스장' '동아리실' '우주' '고래의 뱃속' '교실' '유원지' '광장' '지하철' '교실' '침실' '교무실' '울타리 안' '지하철 계단' '바다사자의 저택' '교실 책상' '달' '버스 안' '교실' '독방' '하굣길' '주방' '생일 파티' '천국' '교실' 등이다. 살펴보면 '교실'은 중간중간 5번이나 등장한다. 굳이 장소로 지목하기 어려운 것은 '생일 파티'뿐이다. 이 제목을 가진 각각의 글들은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그저 유령이 이곳 저곳을 부유하듯 저자의 펜끝에 따라 부유하는 듯한 느낌이다. 2장은 장소라고 보기엔 한데 모아 말하기 어렵긴 하다. '아파트' '29번 채널' '회의장' '꿈 속' 'TV 앞' '교실' 'TV 앞' '연습실' '나무 위' '교실' '거리' 그리고 마지막 제목은 '빗길'이다. 

장소의 연관성이나 의미를 찾기 위해 첫 번째 제목 '청소도구함'으로 눈길을 돌린다. "소녀는 청소도구함 안에 웅크린 채 눈을 감고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그녀를 꺼내주기를, 그녀를 잊어버렸다면 다시 돌아오기를. 청소도구함은 죽은 새들로 가득 차 있다. 죽음의 가스로 배가 희고 퉁퉁하게 부어오른 새들. 부리를 벌린 채 알 수 없는 액체를 질질 흘리고 있는 소녀는 이곳에 갇힐 만한 잘못을 한 적이 없다. 그럴 정도로 미움을 사지도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은 소녀를 이곳에 가두었다."(p.11)



이 부분을 줄거리만 요약해 보면 한 소녀가 청소도구함에 갇혀 있다. 아이들이 와서 자신을 구해주기를 바라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다. 시간은 점점 지나지만 아무도 소녀가 청소도구함에 있다는 것을 모른다. 모두들 소녀를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소녀의 기다림이 길어지면서 소녀는 좁고 어두운 청소도구함 안에서 아이들이 자신을 찾고 발견한 순간을 상상하며 아이들을 기다린다. 그리고 저자는 내레이션처럼 쓴다. "기다림은 끝조차 없이 너를 살해할 거야. 살인자 없는 살인. 희생자는 옷장 혹은 청소도구함 속 침묵에 기댄 채 과거가 미래를 휩쓸어가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다." 상황은 흘러가지만 아무도 오지 않아 소녀의 상태는 여전하다.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면 도움을 원하는 자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뒤늦게 깨달은 소녀가 외치지만 구원자는 없다. 지친 소녀는 이내 "어쩌면 모든 소리가, 기다림이, 기대가 망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이 떠나간다. 

찢긴 침묵, 훼손된 언어. 소녀는 고개를 들고 이제는 신적이기까지 한 어둠을 응시한다.(p.17)

첫 번째 '교실'에서는 전학 온 지 얼마 안 된 앨리스의 이야기다. 앨리스는 교실 가장 앞자리에 앉아 있는 단발머리 여자아이를 보았다. 앨리스는 그녀가 수업시간에 자유롭게 일어나 출입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외에 수상한 점들을 하나하나 적는다.

① 그녀가 등교할 때 아무도 그녀에게 인사하지 않았다.

② 아무도 그녀와 눈을 맞추지 않았다. 선생님마저도! 

③ 쉬는 시간에 그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았다.

④ 급식을 혼자 먹었다.

⑤ 피구를 할 때 처음부터 금 밖에 있었다.

⑥ 짝의 얼굴을 그리는 시간에 아무것도 그리지 않았고 아무에게도 그려지지 않았다. 유령인가? 독자의 눈은 비로소 책의 표제어로 되돌아간다.



'우주'에서는 생과 사의 이야기가 훨씬 자연스럽다. 화자(話者)는 우주비행사 이야기를 자처한다. "생은 우주보다 깊은 환각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생은 입체가 아닌 평면이라는 걸, 모든 방향으로 끊임없이 증폭되고 복제되는 종이들이라는 걸 당신도 알고 있겠죠."(p42) 화자가 이어가는 우주비행사는 토성의 고리 끝자락을 보고 싶어 손가락을 깨물고 유치한 피를 삼키고 유치한 눈물을 흘렸던 사내다. 하지만 우주에서 토성의 고리를 염원하는 우주비행사라니! 그 소원이 부끄러워 입 밖에 내지도 못했던 사람임을 강조한다. 화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화자가 원하는 사항이다. 토성의 고리가 황홀한 먼지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에 유념하고 우주의 원리와 현상을 표현해 낸다. "무한처럼 광대한 유한 속에는 유리수를 닮은 무리수도 자연수를 닮은 허수도 분명 있을 텐데. 물론 무리수는 영원히 유리수가 될 수 없고 허수는 영원이 자연수가 될 수 없겠지만. 아마 우주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있지 않을까요."(p.44)

'독방'에서도 앞뒤가 매우 어색한, 현실에서는 엄연히 존재하는, 부조리가 독자의 눈을 잡아 끈다.

사형수가 독방에서 기다리고 있다. 오직 그만을 위한 처형인이 찾아오기를. 문을 열고 그의 내부 깊은 곳으로 들어오기를. 그를 찢거나 꺾어버리면서 그의 마지막 비명을 들어주기를. 사형수의 바람대로 마침내 누군가 들어온다. 사형수는 그를 보고 황홀에 찬 눈물을 줄줄 흘린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처형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단지 소식을 전하러 온 직원일 뿐이라고. 

그게 무슨 말이죠? 사형수는 직원에게 묻는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지금 여기 오기로 예정되어 있는 것은 처형인뿐이니까. 그런데 처형인은 처형 당해서 올 수 없고 직원이 그 말을 전하러 대신 왔다니.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더욱이 오늘 처형을 애타게 기다리던 사형수의 마지막 소원을 무참히 짓밟은 격이다. 거기다 오늘 사형수의 방에 찾아올 수 없다는 처형인은 오늘뿐 아니라 다음날에도, 다음날뿐 아니라 그 다음날에도,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사형수를 위해 예비된 다른 처형인들은 모두 다른 일정이 있으므로 사형수를 위해 도저히 시간을 내어줄 수 없다고 직원은 긴 대사를 단숨에 읊어내리며 리허설 하는 배우처럼 말한다.



"집행은 언제든 마음대로 해도 돼요. 직원은 선심을 쓰듯 말했다. 이쪽 책임도 있으니 그 정도는 배려해 드려야죠. 원한다면 당신은 자연사할 때까지 살 수도 있을 거예요. 아무도 당신이 집행을 했는지 확인하러 오지 않을 테니까.(p.123)

어처구니없는 말에 사형수는 제발 자신의 사형을 집행해 달라고 흐느끼며 애원한다. 무릎을 꿇고 비명을 지른다. 그러나 다른 이상은 없는 걸로 알고 나갈게요. 직원은 끔찍하게 건조한 어투로, 닳고 닳아버린 문장을 말한 뒤 문을 닫고 나가버린다. 이제 그곳에는 분홍색 여벌 바지와 독방, 그리고 사형수밖에는 없다. 직원은 기다릴 필요가 없으며 기다림은 이제 불필요한 것, 심지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주방'에 이르러서야 이 책의 표제어에 대한 의문이 풀린다. 화자는 내레이터처럼 설명한다. "나는 지옥에서 훔쳐낸 이미지들로 글을 쓴다. 이미지들은 파편적인 비명만을 내지르고 있기에 아무도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이미지들은 불완전하고 심지어 거짓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거짓은 진실들의 단편이다. 유일하게 존재 가능한 방식의 이미지들. 날카로운 균열들, 네거티브 필름들, 공포로 흔들린 이미지와 비대한 빛으로 부풀어오른 희미한 영상만이 그곳의 단편이다. 불가능성으로 구부러진 세계에서 나는 이미지를 사유한다.(P.130)

이미 '인공지옥'인 '주방'에서 어린 새처럼 건강한 아가에게 엄마는 오르톨랑 요리를 하는 방법을 설명해준다. 듣기만 해도 소름이 기칠 정도로 잔혹하다. 그것도 조그맣고 약한 생명체에 대해서... "사람들이 어린 새를 어떻게 요리해 먹는지 아니? 그들은 살아서 바둥거리는 오르톨랑의 작은 두 눈을 뽑는단다. 깊은 곳에 연결되어 있던 신경 다발들이 비어져나와 흘러넘치고 검은 피가 흐르는 두 개의 암흑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아. 어려운 것과 불가능한 것은 다르단다. 작은 상자에 갇은 어린 새는 검은 두 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부르짖는단다. 그들은 상자 안에 무화과를 계속 퍼붓는 거야. 오르톨랑은 무화과를 다 먹으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계시와도 같은 음식을 모조리 먹어치우면 밖으로 나갈 수 있으리라 믿었단다."



무화과를 먹고 또 먹은 오르톨랑은 비대해진다. 네 배 다섯 배 될 때까지 먹고 또 먹는다. 숨이 가빠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아 또 먹는다. 그들은 오르톨랑의 부드럽고 비대한 두 허벅다리를 붙잡고는 아르마냑 통에 빠뜨린다. 황금빛 액체 속에서 오르톨랑은 공기 중의 물고기처럼 비명을 지른다. 물고기처럼 침묵한다. 뻐끔거리는 공기 방울들이 위로 위로 올라가는데 오르톨랑은 점점 가라앉는다. 황금빛의 달콤한 액체가 오르톨랑의 폐와 위장에 스며들었고 오르톨랑은 물고기처럼 침묵한다. 단순한 침묵이 아니다. 저자가 말하려는 것은 거대한 사회 부조리, 인간들의 잔인함, 교실마저 이것들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는 곳으로 바뀐 우리 사회 현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 마치 유령처럼 약자의 혼백은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뿐, 제지하거나 소리 지르거나 어떤 행위를 하지 않는다. 그저 침묵으로 지켜볼 뿐이다. 하나는 피해자의 유령이고, 또 하나는 가해자의 유령이다. 그리고 그 둘은 자세히 보면 같은 몸에서 나왔다. 저자가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뜻이 있는지 몰라도 독자에겐 경고로 이해된다. 삶의 태도와 방식을 바꿔야 살아 남는다는 것을. 그것은 '우주'에에서도 '고래의 뱃속'에서도 세상 어느 곳이든 발견되는 부조리이다.


나는 상상할 수 있었어.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기 위해 나는 죽었단다. 말할 수 없음에, 상상할 수 없음에, 소통할 수 없음에, 그 쉬운 말에 인간을 삶을 신을 의탁하지 않기 위해. 나는, 살해자는 오르톨랑의 죽음을 증언했단다. 살해자는 오르톨랑의 몸의 기억과 사물의 기억과 익사의 순간, 잊힘, 충격, 오아시스처럼 솟아나는 검은 피의 울림을 증언했단다. 나는 살해자지만 죽은 오르톨랑들에 대해 썼단다. 오아시스처럼 솟아나는 검은 피. 진실의 순간들. 하얀 대징 위 검은 시체들의 시차. 검게 타버린 오르톨랑. 오르톨랑. 오르톨랑의 날개를 찢는 동안 아무도 울어주지 않았지. 나는 그 와해된 몸에 얼굴을 끼워넣는 대신 얼굴 없음을 노래하려 했어. 얼굴을 강요하는 폭력들에 지쳐버렸으니까.(p.137)


저자 : 이우연


2021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2022년 장편소설 『악착 같은 장미들』, 2023년 소설집 『거울은 소녀를 용서하지 않는다』를 출간했다. 고용되지 않은 배우들, 유령들, 실종자들, 아이들의 불가능한 언어와 함께 산다. 그들을 위한 이상한 공간을 만들고 그 속에서 (그 속을 벌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 틈새에서 갈망하고 소리치고 애원하는 글들을 쓴다. 그들을 원하기 때문에. 존재할 수 없음에도 살아있는 틈들을 너무나 원하기 때문에 쓴다. 절박하게, 용서받을 수 없을 정도로 원하기 때문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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