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이기는 심리학 - 불안이 삶을 지배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황양밍.장린린 지음, 권소현 옮김 / 이든서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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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불안을 이기는 심리학』은 인간이 가진 감정 가운데 '불안'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과 분석을 담았다. 저자 황양밍과 장린린은 현대인이 생활 속에서 만나는 모든 불안의 유형을 각 부분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이를 이겨낼 수 있는 심리 처방을 제시한다. 불안의 유형별 분석에 따르면 사회가 발달할수록 더 많아지는 이런저런 선택에 따르는 불안이나,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성장해야 한다는 불안이 있다. 또 불안정한 일자리, 과도한 스트레스와 업무에 시달리는 직장에서의 불안,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와의 관계에 따르는 불안까지 모든 불안의 원인을 유형에 따라 분석해 낸다. 이 분석을 통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하고 불안으로부터 해방을 꾀하는 데 도움을 줄 목적으로 집필했다. 독자들은 저자의 친절한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안정되고 자신감이 생긴다.

저자는 불안이라는 감정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선언한다. 불안은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해 살아오는 동안 가진 대표적 감정 중 하나다. 따라서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이다. 다만 중요한 점은 자신이 가진 불안감의 근원을 이해하고, 이를 과도한 수준으로 치닫지 않게 조절할 수 있는가, 그리고 불안을 반대로 자기 성장의 동력으로 이용할 수 있는가?가 이 책의 핵심이다.

저자는 심리학적 접근을 통해 삶의 불안과 관련한 문제에 성실한 답을 제시한다. 필요한 경우 우수한 심리학 이론과 연구를 인용해 감정의 불안을 인식하게 한다. 또 실생활과 관련한 사례를 활용해 스스로 도울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도 소개한다. 이를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대부분의 삶의 문제가 그렇듯이 얼마나 항상심을 갖고 꾸준히 훈련하느냐에 달려 있고, 짧더라도 일상에 적용해 나가는 훈련도 곁들여야 원하는 목표에 다가설 수 있다. 이 책은 이에 따라 유형별 불안 5개를 선택해 각 장(章)에 하나씩 배치했다. 1장 〈불안과 감정은 전혀 다른 문제일까-감정의 불안〉, 2장 〈내가 원하는 걸 나는 확실히 알고 있는가-선택의 불안〉, 3장 〈나만의 속도로 사는 방법은 무엇인가-성장의 불안〉, 4장 〈직장에서의 불안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직업의 불안〉, 5장 〈인간관계의 불안은 어디서 올까-관계의 불안〉 등이다. 각 장에는 4~6개의 소항목을 두어 각 장의 주제에 대해 세부적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불안하지 않은 날들을 위해」란 제목의 〈프롤로그〉를 통해 "우리 사회는 수많은 규칙, 눈에 보이지 않는 관행이 있고, 규칙과 관행은 모두 얻는 것과 잃는 것에 관련되어 있다"고 전제한 뒤, "무언가를 얻었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고, 얻지 못했다고 해서 꼭 안 좋으리란 법도 없으니 얻음과 잃음에 너무 신경 쓰면 불안만 가중되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여기서 저자는 종종 찾아오는 시련이나 좌절을 과연 '어떤 태도로 마주하는가'란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신이 무엇을 얻었는지, 어떤 손해를 입었는지에만 치중한다면 왜 좋은 기회를 놓쳤는지 답답해하면서 불행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즉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일확천금의 기회에 매달리지 않으며, 본인의 인생에 깜짝 선물이 끊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운이 좋다고 여기게 된다고 역설한다. 마치 옛날 공자나 맹자 등의 현자들의 유학 공부를 하는 듯한 느낌이지만 과학인 심리학적 접근이라는 점을 독자들은 놓쳐서는 안 된다. 이는 자연의 법칙처럼 받아들여야 할 '원리'를 말하는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책의 〈프롤로그〉가 끝나는 부분에 영국의 비평가이자 사회사상가인 존 러스킨의 시 한 구절을 인용한다. 

햇빛은 달콤하고,

비는 상쾌하고, 

바람은 시원하며, 

눈은 기분을 들뜨게 만든다.

세상에 나쁜 날씨란 없다.

서로 다른 종류의 좋은 날씨만 

있을 뿐이다.(p.13)



저자는 1장에서 "불안과 맞서 싸울 때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난 안 돼', '난 부족해', '난 못 해' 등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란 질문을 던진다. 이를 '자기 의심'이라 말하고 이는 불안의 핵심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자기 의심이 마음속에서 일어나면 머릿속에 두려움이 가득 차고 불안의 소용돌이에 빠진다. 손발도 꽁꽁 묶여 결국에는 백기를 들고 항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자기 의심에서 벗어나고 불안을 떨쳐낼 수 있을까? 이 장의 주제다.

저자는 자기 의심이 생기는 이유 중 하나는 '겸손'이라는 태도라고 말한다. 다소 놀라운 지적이다. 동양 문화에서는 개인의 성장을 유도할 때 '억압'이나 '비난' 등의 방법으로 불안 심리를 유발해서 독려하는 경우가 많다. 타인 앞에서 자녀를 칭찬하기는커녕 결점을 들추며 다른 집 아이와 비교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부정적으로 독려받는 시간이 길어지면 아이는 자신이 훌륭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즉, 외재적인 평가 방식은 내재적인 평가 방식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서양은 '격려'와 '칭찬'에 적극적이라는 점을 저자는 지적한다. 살아가면서 자신을 객관적이고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못하면 누가 나를 칭찬해도 그저 인사치레나 비웃음이라고 여기며 자신에게 한계를 설정해 수많은 가능성과 훌륭한 경험의 기회를 놓치고 만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이런 행위를 망치로 자신을 때리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표현한다. 

살면서 불행히도 망치의 타격을 자주 받는다면 '가면 증후군'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1978년 미국 심리학자 폴린 로즈 클랜스와 수잔 임스는 '이뤄낸 성취, 처한 상황, 타인의 인정과 관심을 소유할 자격이 없다'라고 여기는 현상을 '가면 증후군'이라고 정의했다. 이 증상이 있는 사람은 자기 의심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물론 서양 심리학 이론을 동양 문화에 적용한다는 것이 적절한지는 독자로선 판단하지 못한다. 다만 저자의 주장에 과학적 근거가 있고, 또 해결책도 제시하고 있어 충분히 주목해 살펴야겠다는 생각이다. 

저자가 어렸을 적 〈스파이더 맨〉이 한참 인기가 있었고, 자신도 무척 좋아하는 캐릭터였음을 털어놓는다. 미국으로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말이 통하지 않아 친구를 사귈 수 없어 힘들고 무료한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스파이더 맨〉에 자신을 투영하는 것이 작은 즐거움이었다고 한다. "Yes, you can."은 그때 습관처럼 상상하던 말이었고, 그것은 이후 내 생활에 힘이 되었다고 밝힌다. 상상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1장에서는 자기 의심에서 벗어나는 두 가지 방식이 소개된다. 하나는 '5초의 법칙'이고 다른 또 하나는 '미래의 나 상상하기'다. 전자는 미국 베스트셀러 작가 멜 로빈스가 제안한 방법으로 TED 강연에서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을 봤다면 바로 다가가서 인사하세요. 어떤 방식으로 말을 걸지, 상대가 거절하면 어떻게 할지 따위는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라고 장려했다고 한다. 후자의 경우 5년 또는 10년 후 내가 맞은편에 서 있다고 상상한다.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내가 직면한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행동을 할까? 실력을 갈고닦아 한층 성장한 미래의 나는 자신감과 에너지가 넘칠 것이다. 이처럼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와 함께 곤경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어보자고 주문한다.

이젠 불안감을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으로 나누어 생각해본다. 불안은 인류를 보호하는 안전 기제로서 인류가 진화하는 수백만 년 동안 인류와 공존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불안이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철학자 마틴 하이데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 우리는 불안해야 한다." 하이데거는 '함락'이라는 단어를 통해 심리학적 '안전지대'를 표현했다. 계속 안전지대에 머무른다면 우린 발전할 수 없다. 그런데 불안은 이런 안전지대를 뛰쳐나갈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1908년 심리학자 로버트 여키스는 '자극과 성취도'에 관련한 유명한 실험을 통해 불안과 성취도의 밀접한 관계를 입증했다. 불안의 정도가 낮으면 성취도도 낮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이 불안이 적정 수준을 넘어서면 스트레스가 과도하여 성취도가 낮아진다는 점도 알아냈다. 이로 인해 연구자들은 최고의 성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수준의 불안을 '적정 불안'이라고 정의해 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쓸모없는 불안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감정의 재해석'과 '생각의 전환'이라는 두 방법이 이 책에서 소개된다. 먼저 감정의 재해석은 쓸데없는 불안은 출구를 찾을 수 없는 거대한 감옥과 같다. 맹목적인 불안 상태를 벗어나고 싶다면 불안 너머에 있는 정보를 해석하고 현재의 문제를 구체화하여 무엇에 갇혀 있는지 정확히 알아서 해결에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상황을 정리하고 나면 목적 없는 번뇌와 근심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게 된다는 것이다. 맹목적인 불안은 어느새 행동을 유도하는 압박감으로 문제를 구체화하고 계획을 세우게 한다.



책에 따르면 불안 자체는 새로운 불안을 불러올 뿐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어쩌면 다른 일 때문에 불안한 감정에 빠졌고, 불안해하는 자신을 보며 더 불안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이럴 때는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불안의 배후에 숨어 있는 정보를 재해석하고 현재의 감정에서 벗어나 '어떻게 해야 하지?'를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로 바꿔야 한다. 오래 생각해도 소용없다. 행동하라. 그래야 자신을 도울 수 있다.

이 책은 이처럼 불안을 적정하게 관리해 내 삶의 동력으로 이용하는 방법도 제시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다섯 가지 불안 유형, 즉 감정, 관계, 직업, 선택, 자아 성장 등 삶에서 자주 직면하는 여러 불안을 다루면서 심리학 지식에 따라 하나하나 해결법을 제시한다. 단원별로 생각해 볼 문제와 심리학 지식이 포함된 짤막한 칼럼이 있어 심리학 관련 지식과 실험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도 있다. 무엇보다 진정한 자아를 인식하여 불안의 근원을 이해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는 점이 이 책을 가진 독창적 매력이다.

앞서 살핀 대로 책의 저자는 불안의 근원은 자기 의심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적정 불안’ 상태를 유지하면서 성장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게 도와준다. 또한 생활 속에서 불청객처럼 다양하게 찾아오는 불안의 유형을 소개하고 이에 따라 대처할 수 있는 '60가지 심리 처방'을 소개한다.

특히 이 책의 장점은 불안을 관리하는 처방이 구체적이고 과학적으로 제시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리사 펠드먼 배럿(Lisa Feldman Barrett) 교수의 ‘감정의 입자도’ 개념을 소개하며 자신의 구체적인 느낌을 구분하고 식별하는 능력에 대해 설명한다. 감정을 세분화해 인지하고 이름을 붙일 수 있으면 부정적인 감정을 처리하는 능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 있다면 자신을 연출자로 생각하고 주인공을 바꿔보라고도 제안한다. 크고 작은 선택을 하고 나서 후회를 하는 사람에게는 결정을 내리기 전에 머릿속에 ‘렛츠 토크(Let’s talk)’를 열어 찬성팀과 반대팀의 토론을 진행하면 좀 더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감정 입자도가 높을수록 모든 감정을 더 정확하게 분석하고 대응하는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어 더 많은 ‘무기’를 보유한 것과 같다. 감정 입자도가 낮은 사람은 감정 분석이 어려워서 자신이 처한 감정에 대한 대처 방식이 좁을 수밖에 없다.(p.55)



중심을 단계적으로 조정해서 동태적 균형을 잡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될까? 자신의 단계별 인생 목표에 따라 일과 삶이 번갈아 가며 양보하면 된다. 어떤 단계에서는 가정 중심적으로 선택하고 또 다른 단계에서는 일을 중심에 놓는 것이다.(p.200~201)


저자 : 황양밍(黃揚名)


영국 요크대학교 심리학 박사, 푸런대학교 심리학과 부교수. 오랜 시간 사람들이 심리학을 배우고 도움을 얻도록 힘써 왔으며, 현재 ‘생활 속 심리학 박사’, ‘은발의 마음 쉼터’, ‘심리학 박사가 당신의 육아를 도와줍니다’ 등 인터넷 플랫폼을 운영한다. 심리학 관련 지식을 보급하는 것 외에 ‘강아지 독심술’, ‘예지의 농장’ 등 애플리케이션 개발에도 참여하여 생활 속에서 심리학을 활용하도록 돕고 있다. 저서로는 『마음의 나이, 당신이 정한다』, 『심리학자 아빠가 증명하는 주의력 교육법』, 『아이가 공부를 좋아하게 만드는 방법』 등이 있다.

생활 속 심리학 박사 페이스북 팬페이지 https://www.facebook.com/psylifephd


저자 : 장린린(張琳琳)


과학 상식 작가로 교직에 다년간 종사하였으며, 중국과학원 심리학 석사생이다.


역자 : 권소현


중앙대학교 국제대학원 한중 전문통번역학과를 졸업 후 현대자동차 통번역사로 근무했다. 현재는 정부기관 및 다수 기업의 통번역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 및 중국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심리학이 불안에 답하다』, 『까망이와 하양이』, 『세계의 리더들이 논리학을 배우는 이유』, 『가장 친절한 색연필 세밀화 수업: 동물편』 외 다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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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하는 자기애 - 스스로를 상처 내는 사람을 위한 심리학
사이토 타마키 지음, 김지영 옮김 / 생각정거장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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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자해하는 자기애』는 표제어에 쓰인 단어 '자기애(自己愛)'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 사이토 다마키는 일본의 정신과 전문의로서 임상 현장에서 30년 넘게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에 진료해 왔다고 한다. 오랜 기간 진료해온 환자들 중에는 '스스로 상처를 내는'(自傷的) 사람들이 많았던 듯하다. 이 책은 이들의 심리를 심층분석해 결과적으로 환자 치료에 유의미한 결론을 얻어낸 것으로 보인다. “나는 쓸모없고 못났어”, “나는 정말 가치 없는 인간이야”처럼 스스로에게 자꾸 부정적인 말을 던지는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이 사람들은 빈번한 자기 부정적 생각으로 결국 습관화돼 치료가 필요한 상태에 이른다. 저자는 자기부정의 배경에 자기애가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이런 불건강한 현상이 등장하게 된 현대사회의 맥락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읽어낸다. 

*히키코모리(引き籠もり)란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병적인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다. 1970년대부터 일본에서 나타나기 시작해, 1990년대 중반 은둔형 외톨이들이 나타나면서 사회문제로 떠오랐다고 한다. 히키코모리는 '틀어박히다'는 뜻의 일본어 '히키코모루'의 명사형으로,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1990년대 말부터 한국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방콕족(방안에 틀어박혀 사는 사람들)'과 증상이 비슷하다. 이들은 스스로 사회와 담을 쌓고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생활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일본 후생성은 2001년부터 6개월 이상 이러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을 히키코모리로 분류하고 있다. 사람에 따라 3~4년, 심하면 10년 이상을 방안에 갇혀 지내는 예도 있다. 대표적인 증상은 다음과 같다.

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꺼린다. ② 낮에는 잠을 자고, 밤이 되면 일어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인터넷에 몰두한다. ③ 자기혐오나 상실감 또는 우울증 증상을 보인다. ④ 부모에게 응석을 부리고, 심할 때는 폭력까지 행사한다. 학자들은 핵가족화로 인한 이웃·친척들과의 단절,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한 급속한 사회변화, 학력 지상주의에 따른 압박감,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취업하지 못하는 데 따르는 심리적 부담감, 갑작스러운 실직, 사교성 없는 내성적인 성격 등 여러 요인을 원인으로 지적한다.(주 두산백과 참조)



저자 사이토 타마키가 새롭게 소개하는 이 ‘자상적 자기애(自傷的 自己愛)’-번역과정에서 '자해하는 자기애'-는 자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상처 내는 자기애를 말한다. ‘남이 멋대로 정의하는 나의 모습’에 대한 거부와 부정인 셈이다. 저자는 SNS 시대에서 필연적으로 남의 인정과 관계에 의존하게 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짚어내고 자기애 개념에 관한 역사, 자기애의 자유로운 형태에 대한 라캉의 ‘거울 이론’, 건강한 자기애의 기능을 위한 ‘코헛 이론’ 등을 풍성하게 다루면서 논지를 전개해나간다. 마지막에는 자상적이지 않은 건강한 자기애란 무엇인지 살피고, 자상적 자기애를 완화할 수 있는 방법도 설명한다.

저자는 ‘자상적 자기애’는 질병이 아닐뿐더러 이상성격이나 인지부조화에서 오는 문제도 아니라고 말한다. 자기 자신을 잘못된 방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어쩌다 헤매게 된 미로 같은 것이라는 주장이다. 평소에 나를 사랑하는 법을 잘 모르겠다면 ‘자상적 자기애’를 깨닫고 이겨내는 심리 안내서인 이 책 『자해하는 자기애』를 만나 해답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은 모두 6장(章)으로 구성돼 있다. 1장 〈자신을 상처 내는 자기애〉, 2장 〈‘자기애’는 나쁜 것일까〉, 3장 〈자아 찾기에서 ‘좋아요’ 찾기로〉, 4장 〈과거의 저주를 풀다〉, 5장 〈건강하게 나를 사랑하는 것〉, 5장 〈건강하게 나를 사랑하는 것〉, 6장 〈건강한 자기애를 키우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등이다. 각 장에는 3~4개의 소항목으로 나뉘어 각 장의 주제에 맞는 사레, 이론, 사회 현상, 치유로 이르는 길 등이 적혀 있다.

1장에서 저자는 일본에서 2008년 일어난 한 사건을 되짚어낸다. 사건 당시 25세인 자동차공장 파견사원이 행사로 군중이 운집한 아키히바라의 한 도로에 2톤 트럭을 몰아 난입한 후 서바이벌 나이프로 보행자, 경찰관 등 17명을 무차별 살상한 사건이다. 범인의 극단적인 자기중심성이나 빈약한 현실감각이 원인이라는 의견이 있었으나 사건 전 그가 온라인 게시판에 올린 글에는 격렬한 자기부정과 절망감이 점철되어 있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 게시판 글에는 "여자 친구가 있었으면", "(나 같은) 못생긴 사람에게 인권 따위는 없다"는 표현을 보면 용모 때문에 이성과는 관계를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인셀'들의 고민과 많은 부분이 겹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셀이란 영어 단어 involuntary celibate의 준말로, '비자발적 금욕주의자'를 의미하는 말이다.



인셀은 쉬운 설명으로 자신의 추한 용모 때문에 여성에게 외면당한다고 믿는 이성애주의 남성을 지칭한다. 이들은 때로 여성을 향한 증오가 격해지면 범죄행위를 일으키기까지 한다고 알려져 있다. 아키히바라 무차별 살상사건의 범인의 의식 속에는 다른 무차별 살상사건 범인들과 공통점이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2018년 일어난 도카이도 신칸센 차내 살상사건도 같은 범주의 사건으로 이 책에 적고 있다. 이 사건의 범인 역시 무기징역 판결이 내려지자 재판관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만세삼창을 하는 등의 기행을 보였다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일련의 모든 행위에 자신을 상처 내는 '자상적 행위의 흔적이 보인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인셀적 성향을 가진 사람은 '자상적 자기애'를 가졌다고도 볼 수 있다. 자상적 자기애는 자신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상처내는 자기애를 말한다. 

자상적 자기애를 가진 사람은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경향이 강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은 잘못된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일본을 예로 들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스컴에서 젊은이의 난폭함이나 화를 참지 못하는 성향에 대해 떠들어대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 양상은 다르다는 주장이다. 30년 넘게 일본의 정신 의료 현장에 있었던 전문의가 지켜본 바로는 이런 점은 전혀 근거 없고 사실이 아닌 매스컴 등을 통해 들은 막연한 공포심리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을 갑자기 흉기로 해하거나 해하려 시도하는 몇 번의 사건에서 보여진 바 있다. 이때 우리 정신과 전문의들은 이들은 폭력적이지 않고, 오히려 정상적 정신 상태의 범죄율보다 낮다고 밝힌 것을 뉴스를 통해 접한 바 있다.

시대가 흐를수록 젊은이들은 점점 온순해지는 현상을 보인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범죄백서 통계를 보면, 미성년 범죄율이 가장 높았던 것은 1960년이다. 최근에는 매년 촉법소년 및 불량청소년 계도 인원이 감소 추세를 보이고 범죄율은 낮아지고 있다. 통게 기준으로 보더라고 단카이 세대**가 사춘기였던 1960년대의 범죄율이 가장 높다. 이들이 고령자가 되면서 폭주노인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최근 고령자 범죄율이 증가 추세를 보이는 것 또한 이 시대의 '말썽꾸러지'스러움이 여전히 남아서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내놓는다.

** 단카이 세대 : 1947~1949년에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 붐 세대를 말한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일본의 고도성장을 이끌어낸 세대이다. 일본 경제기획청 장관을 지낸 경제평론가 사카이야 다이치(堺屋太一)가 1976년 발표한 「단카이의 세대」라는 소설에서 처음 등장하여 인구사회학적 용어로 정착되었다.(독자 주)



저자는 높은 지위나 업적을 이루어도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꼭 여성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2014년 잡지 〈BRUTUS〉의 기획으로 일본 유명만화 〈진격의 거인〉의 작가 이사야마 하지매의 인터뷰 취재의 기억을 되살려낸다. 인터뷰 당시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사야마 작가의 '자신 없음'이었다. '겸손함'과는 조금 다르다. 겸손은 상당히 안정된 자신감이 뒷받침되어 있다. 인터뷰 중에도 간간히 "정말 운이 좋았을 뿐이다", "지금도 여전히 자신은 없다"는 말을 하며 사춘기 시절부터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콤플렉스를 밝히는가 하면, "쓸 만한 인간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확신이나 분노가 작품창작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그 외에도 "언제든 네오니트족***이 될 수 있다","리얼충****은 되고 싶지 않다", "모모쿠로*****는 좋아하지만 실제로 만나고 싶지는 않다"··· 대체로 행복을 두려워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는 점을 기억하고 있다. 

***네오니트족 : 취업하지 않고도 충분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사람(역자 주)

****리얼충 : SNS 등의 온라인이 아닌 현실 속 인간관계나 취미에 충실한 사람(역자 주)

*****모모쿠로 : 여성 4인조 아이돌 그룹 모모이로 클로버Z의 준말(역자 주)

자살한 작가나 예술가는 많이 있었고 창작자 중에 그런 사람이 그리 드문 건 아니지 않느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지며 저자는 우선 자살관념과 자기긍정감의 결핍이 반드시 일치선 상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과연 자살한 세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다자이 오사무, 미시마 유키오는 '자신감 없고 나약하기만' 했을까?라고 되묻는다. 일반적으로 자살은 불안정한 충동이 행동화한 것이라는 저자는 이사야마 작가의 '자신 없음'은 상당히 안정되고 흔들리지 않는 상태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런 타입, 즉 '상업적 성공으로도 극복되지 않는 자신감의 결여' 상태인 작가는 서브컬처 영역에 특히 많다고 짚어낸다. 지금은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이 된 안노 히데아키, 록 밴드 '신세이 카맛테짱'의 노코 등등 많은 이름을 떠올린다. 이들은 자기부정적 발언을 계속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자신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이다. 마치 말로 하는 자살행위 같은 것이란다. 이들은 분노나 불안, 과도한 긴장이나 우울함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상처 내는 것은 아닐까. 저자의 생각이 깊이를 더해가는 느낌이다.



2장에서는 정신분석 상의 자기애 개념에 관한 역사를 한 번 더 되돌아보고, 이어 자기애의 자유로운 형태에 대한 라캉 이론과, 정신 건강에 있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건강한 자기애의 기능을 위한 코헛 이론을 확인한다. 더 나아가 자상적 자기애의 구조 분석을 해보고 이것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도 검토한다. 이어 3장에서는 자상적 자기애가 어디서 생겨나는지에 대한 탐구다. 전후(戰後) 정신사를 대략적으로 살피면서 신경증의 시대, 조현병의 시대, 경계선 성격장애의 시대, 해리의 시대, 발달 장애의 시대로 구분한다. 이에 따르면 2000년대 중반은 해리의 시대, 2010년대는 발달 장애의 시대라고 분류할 수 있다. 자상적 자기애자가 급증하는 현상의 배경에는 해리의 시대, 인정(관계) 의존, 커뮤니티 능력 편중, 캐릭터화 이 네 가지 요소가 작용했다. 

2000년대 즉 '해리의 시대'가 성립하게 된 것은 심리학 유행과 트라우마 대유행 등의 요인도 있지만, 특히 휴애전화와 인터넷 인프라의 폭발적 보급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24시간 언제든 다수의 친구, 지인과의 연결이 가능한 상황은 SNS 같은 '인정(좋아요)의 가시화, 정량화 장치'의 보급과 함께 어우러지며 젊은이를 중심으로 많은 이들이 '인정(관계) 의존' 성향을 갖게 했다고 저자는 정리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인정'은 살아있는 인간 자체의 인정이 아닌, SNS 상에서 아주 적은 정보량으로도 연출이 가능할 정도의 '캐릭터'에 대한 인정이 주류를 이룬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1~3장이 개념어 정리와 이론에 대한 사례 탐구 등에 주력했다면 4장부터는 응용편이라고 구분한다. 앞선 장에서는 자상적 자기애에 빠질 수 있는 가치관에 근거해 '신형 우울증', '발달 장애', '음모론'을 다뤘다. 4장에서는 부모자식 관계가 자상적 자기애를 일으킬 가능성에 대해 검토한다. 어머니의 부정적 언동에 상처 입은 자상적 자기애자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훨씬 많다. 이런 경우 어떤 식으로 거리를 두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 조금 자세히 다루었다. 


‘헌신’이라는 지배 방식이 있다. 어머니의 지배가 언제나 고압적인 금지나 명령으로 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겉보기에 헌신적이기까지 한 선의가 깔려있는 지배도 있다. 딸의 학비를 벌기 위해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어머니, 딸이 자립해서도 수시로 연락을 하고 충고하려고 드는 어머니. 딸은 이러한 선의를 대놓고 거부하거나 부정할 수 없다. 어머니의 지배욕에 대해 어슴푸레 깨닫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도망치는 것은 괜한 죄책감만 안겨주기 때문이다.(p.183~184)



건강한 자기애는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점이 저자 사이토 타마키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이다. 자기애란 ‘내가 너무 좋은 감정’이 아닌 ‘내 본연의 모습으로 있고 싶은 욕망’이라고 저자는 정의한다. 성숙한 자기애는 자기긍정감뿐 아니라 자기비판, 자기혐오, 자존심, 자기처벌이라는 다양한 부정적 요소까지 포함하여 구성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책 5~6장에서 말미에는 자상적이지 않은 건강한 자기애란 무엇인지 살피고, 자상적 자기애를 완화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다룬다. ‘자상적 자기애’를 깨닫고 이겨낼 수 있도록 안내하기 위해서다. 

‘자상적 자기애’는 질병이 아닐뿐더러 이상성격이나 인지부조화에서 오는 문제도 아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 어쩌다 헤매게 된 미로 같은 것이다. 그 원인의 대부분은 환경에 있다.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일수록 이 미로에서 고통을 받는 사람이 많다. 이러한 고통을 안고 있는 사람이 당신 혼자가 아니다. 오히려 자기 본연의 모습을 향한 욕망, 즉 자기애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성장과 성숙이라는 바람직한 변화를 부른다. 


저자 : 사이토 다마키(Tamaki Saito, さいとう たまき, 齊藤 環)


1961년 이와테 현에서 태어났다. 츠쿠바 대학 의학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현재 의학박사로 같은 대학 의학의료계 사회정신보건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은 사춘기, 청년기의 정신분석학, 병적학, 라캉주의 정신분석, 히키코모리의 치료와 지원 및 구호 활동을 하고 있다. 만화, 영화 등의 서브컬처 애호가로도 알려져 있다. 저서로는 『전투미소녀의 정신분석』, 『가족의 흔적』, 『살아가기 위한 라캉』, 『히키코모리는 왜 낫는가』, 『‘히키코모리’ 구출 매뉴얼(이론편)』, 『사회적 히키코모리』, 『세상이 토요일 밤의 꿈이라면』 등 다수가 있다.


역자 : 김지영


전남대학교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2000년대 초 5년 동안 일본 도쿄에서 생활하며 공부했다. 이후 지금까지 일본 드라마, 영화, 서적 등을 빼놓지 않고 탐독하고 있는 일본 문화 전문가다. 음식, 건강, 자기계발, 실용 분야에 관심이 많아 관련 일본 서적들을 번역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똑똑하게 화내는 기술》, 《미친 집중력》, 《미친 암기력》, 《꿀잼 경제학》, 《약은 독이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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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 작은 독서 모임
프리다 쉬베크 지음, 심연희 옮김 / 열림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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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세상 끝 작은 독서 모임』의 표제어 중 '세상 끝'이란 문구가 향수를 자극한다. '세상 끝'이란 문구는 시공간 상에서 여러 가지 뜻을 담아낼 수 있지만, 비유적으로는 '삶의 끝'이란 의미를 포함할 수도 있다. 이 책의 분위기나 내용을 감지한 독자로서는 '땅끝마을'이 쉽게 떠오른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별칭의 지역이 있어서다. 전라남도 해남이다. 해남(海南)이란 지역은 '남쪽바다'란 의미가 강할 것 같은데 왜 땅끝마을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제강점기 때 육당 최남선이 쓴 『조선상식문답』에 한반도 남쪽 땅끝의 해남에서 서울까지 1,000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끝 온성까지 2,000리를 헤아려, 이로부터 ‘3,000리 강산’이라는 말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이때 '토말' '갈두마을'이라고도 썼다는데 이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한다.

이 책의 공간적 배경은 스웨덴의 세상 끝 작은 마을 '유셰르'이다. 스웨덴은 독자로서 한 번도 못 가봐서 버킷리스트에 남겨 둔 나라다. 독자들도 잘 알다시피 스웨덴은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 동쪽에 있는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인구가 1,000만 명이 조금 넘는다. 세상에서 사회보장제도가 가장 잘 갖춰진 나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이 나라의 특징은 노벨상을 수여하는 나라다. 우리는 수상자가 겨우 1명에 그치고 있지만 얼마든지 충분히 더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 소설의 배경인 유셰르는 처음 들어본 지명이라 백과사전을 찾았지만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소설 속에서 인근에 '스코네'와 '말뫼'라는 지역명이 자주 나온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스코네는 스웨덴의 최남단에 있는 주(州)로 33개의 자치단체가 있다. 국제적으로는 영어 지명인 스카니아(Scania)로 널리 알려졌다. 주에서 가장 큰 도시는 말뫼인데 이 도시는 스웨덴에서 세 번째로 크며 스칸디나비아 전체에서도 다섯 번째로 크다. 표준어인 스웨덴어 이외에 방언인 스코네어가 중장년층, 노년층에서는 쓰이기도 한다. 스코네는 북쪽으로는 할란드와 스몰란드 지방, 북동쪽으로는 블레킹에, 동쪽과 남쪽은 발트해, 서쪽은 외레순드 지방과 경계를 이룬다. 2000년에 차량도로 및 철도용 다리인 외레순드 대교가 개통돼 덴마크와 교통이 원활하다. 스코네 지방은 남북 길이가 약 130km로 스웨덴 전체 면적의 3%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인구는 132만여 명으로 스웨덴 전체 인구의 13%를 차지한다. 인구밀도는 제곱킬로미터 당 121명으로 스웨덴에서 둘째로 인구가 밀집된 지역이다.



이 소설은 30여 년 전 스웨덴에서 수수께끼처럼 실종된 여동생에 대한 아픔을 마음 한구석에 묻어둔 채 미국에서 살아가던 퍼트리샤가 스웨덴의 유셰르를 찾으면서 시작된다. 어느 날 스웨덴에서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여동생의 목걸이가 담긴 봉투를 그녀에게 보내오고, 퍼트리샤는 어쩌면 여동생의 행방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을 안고 낯선 땅 스웨덴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퍼트리샤는 자신이 묵는 호텔 주인 모나가 친구들과 함께 여는 작은 독서 모임에 참여하게 된다.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바다와 그림 같은 마을이 있는,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스웨덴의 아름다운 도시 유셰르에서의 독서모임이라··· 굉장히 낭만적이다. 아늑한 공간과 맛있는 음식, 책과 문학, 경쾌한 축제, 그리고 무엇보다 곁을 내준 다정한 이들의 힘으로 슬픔에서 일어서는, 퍼트리샤가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 따뜻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의 저자 프리다 쉬베크는 전작 『템스강의 작은 서점』이 스웨덴에서만 12만 부 이상 팔려 급부상한 작가다. 쉬베크는 2011년 처음 발표한 소설 『샬롯 하셀』이 큰 사랑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전작 『템스강의 작은 서점』은 독자로서는 오랜만에 접하는 북유럽의 소설이어서 관심이 갔다. 독자가 많은 책을 읽지 못한 탓이겠지만 번역서 중 북유럽 작품을 발견하는 일은 흔치 않다. 특히 노벨문학상을 수여하는 곳이 스웨덴이다. 젤마 라게를뢰프(1909), 베르너 폰 헤이덴스탐(1916), 실험정신과 순수한 문체를 구사하는 페르 라게르크비스트(1951)가 노벨상을 수상했지만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전작 『템스강의 작은 서점』의 공간 배경은 런던이지만 주인공 샬로테는 스웨덴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스웨덴 사람으로 스웨덴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저자 쉬베크의 삶이 금세 떠오를 만큼 안정된 분위기의 작품이다. 스웨덴어로 쓰여진 이 소설은 런던의 오래된 서점을 배경으로,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사랑스러운 인물들의 이야기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펼쳐진다.



주인공 샬로테는 태어나 한 번도 본 적 없던 이모가 자신에게 런던 한가운데에 있는 서점을 물려주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스웨덴에서 자신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샬로테는 런던까지 가서 서점을 운영하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한 일이란 생각이었다. 따라서 런던에 가 짧은 시간 동안 서점을 매각할 예정으로 런던행 비행기에 올라 서점으로 향한다. 남편을 잃은 자신을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런던에는 없을 거라는 생각도 함께하면서 서점을 운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잠깐이지만 해본다. 서점을 매각하고 곧바로 스웨덴으로 돌아오려 했지만, 서점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직원, 마르티니크와 샘의 모습에 마음이 조금씩 흔들린다. 이처럼 저자 쉬베크는 우리 일상에서의 작은 행복감과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인간 관계 갈등 묘사에 섬세하고 치밀하다. 또 가끔은 안타까운 과거 추억에 늘 마음이 편치 않은 슬픔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소시민의 삶을 들여다보는 혜안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미래의 삶을 살 수 있을까에 대해 독자들에게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이번 작품 『세상 끝 작은 독서 모임』에서도 주인공 퍼트리샤는 30여 년 전 스웨덴에서 수수께끼처럼 실종된 여동생에 대한 아픔을 마음 한구석에 묻어둔 채 살아가는, 미국에서 직장을 다니는 여성이다. 그러던 어느 날, 스웨덴에서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발신자 없는 편지를 그녀에게 보내온다. 편지 봉투 안엔 여동생의 목걸이가 담겨 있었고(자신이 어렸을 때 선물로 준), 퍼트리샤는 어쩌면 여동생의 행방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을 안고 스웨덴으로 향한다.

퍼트리샤는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스웨덴의 작고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 유셰르에 도착한다. 그녀의 여동생 매들린은 30여 년 전 유셰르의 자유교회에서 인턴을 하던 중 어느 날 갑자기 모습을 감췄다. 하지만 진실의 실마리는 쉽사리 잡히지 않고, 무력감에 빠져 있던 퍼트리샤는 호텔 주인 모나가 친구들과 함께 여는 작은 독서 모임에 참여하게 된다. 책을 좋아하는 퍼트리샤는 그 모임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고, 독서 모임 친구들에게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는다. 모임의 친구들은 그녀가 진실을 찾을 수 있도록 돕기 시작하는데······. 퍼트리샤는 과연 여동생의 행방을 찾을 수 있을까? ‘세상의 끝’에서 그녀가 발견하게 되는 진실은 무엇일까.



이 소설은 수수께끼에 싸인 실종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한편, ‘독서 모임’을 중심으로 모인 이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각자의 고민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나간다. 독서 모임이 열리는 공간인 ‘책이 있는 B&B’는 마을 토박이인 여성 모나가 운영하는 작고 아늑한 호텔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나이 지긋한 사서의 거실에 들어온 느낌”을 주는 이 공간은 “온갖 자질구레한 보물” 같은 앤티크한 소품들, 모나가 손님들을 위해 굽는 맛있는 빵과 음식들, 그리고 무엇보다 사방에 책이 가득하다. 이곳에 머물면서 퍼트리샤는 독서 모임 친구들과 함께 우정을 나누며, 좌절과 무력감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퍼트리샤를 비롯한 독서 모임의 회원들은 저마다 인생의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중년의 여성들이다. 일생 동안 정성스레 가꿔온 호텔을 더 이상 지속하기 힘든 위기에 처한 모나, 1년 전쯤 사랑하는 남편과 사별하고 상실감과 외로움 속에 살아가는 도리스, 유명 영화배우이지만 남편과 이혼 위기에 있으며 나이 든 배우로서 한계를 느끼는 마리안네가 주요 등장인물이다. 이외에도 에리카와 마르틴은 17년 전 만나 서로에게 결혼하지만 부부 성생활에서는 원만치 못하다. 이 마을 사람들이 작은 마을에서 살며 도시 분위기와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을 저자 쉬베크가 마련한 장치 중의 하나다. 

"그들의 성생활은 이제 창문 닦는 것만큼이나 드문 일이 되어버렸다다. (중략) 섹스는 항상 너무나 단조롭고 기계적이어서 에리카는 차라리 옛날에 급하게 일을 치렀던 순간이 더 그립곤 했다. 에리카는 목덜미를 긁적였다. 자신에게 섹스란 항상 매우 사적인 영역이자 다소 민망한 주제였다(성생활 초기에는 불을 다 꺼놓고 하는 걸 좋아했는데, 아마도 그건 어머니가 유독 관대하게도 '꽃처럼 만개하하는 힘'을 긍정한다는 태도에 대한 반항심이었던 것 같다). 비록 자신의 태도가 얼마나 보수적인지 잘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결혼 관계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주된 책임자는 남자여야 한다고 생각했다."(p.66~67)



이들은 살면서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말하고, 경청하고, 공감하며 함께 풀어나간다. 친숙해진 뒤에는 성(性)에 대한 농담도 할 정도로 마음을 주고 받는다. 마치 오랜 친구들인 것처럼. 그들은 독서 모임을 통해 문학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한편, 서로의 고민과 마음에도 귀를 기울인다. 또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 서로를 돕기도 한다. 마치 우리의 어느 시골 지방의 한 모습처럼 떠오르는 일상이다. 이들은 퍼트리샤가 여동생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 함께 머리를 맞대기도 하고, 함께하는 공간인 호텔의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해 마을 여름 축제 때 문학 퀴즈 행사를 여는 등,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해나간다.

덕분에 유셰르에서 퍼트리샤가 보내는 시간은 오래 묵은 아픔과 진실을 마주해야 하는 힘든 시간이기도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이들의 따뜻하고 유쾌한 힘으로 슬픔에서 일어서는 위안의 시간이기도 하다. 심각하기보단 특유의 경쾌한 문체로 인생의 고민들을 풀어가는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독자들 역시 어느새 자신의 고민을 돌아보고 새로운 힘을 충전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소설은 대략 두 가지 상황을 오가며 화자(話者)의 시각이 달라지지만 소설 전체로는 전지적 3인칭 시점이다. 또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데 아무런 장치가 게입되지 않는다. 우리 삶이 그렇듯이 어제와 같은 듯한 오늘, 오늘과 같은 듯한 내일의 연속처럼 자연스럽게 소설은 전개된다. 그러나 소설 전체적으로는 주인공 퍼트리샤의 동선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퍼트리샤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퍼트리샤는 이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한다. 먼저 동생을 찾아 스웨덴으로 간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고 잘 알지 못하는 마을에 도착해 마을 주민이자 세상 끝 마을의 구성원들과 친분을 쌓고 마음을 열어 함께하면서 동생 매들렌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마들랜의 이곳에서의 행적과 부딪쳤던 일들은 저자가 전지적 시점으로 풀어낸다. 퍼트리샤와 함께하는 '세상 끝'이라 불리는 유셰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각자의 고민과 관계도 세심하게 저자는 풀어낸다. 퍼트리샤는 이곳에서 과거 마음의 상처에 대한 치유의 시간을 보낸다. “이번 여름은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이었어.”



퍼트리샤는 하얀 종이를 앞에 두고 앉아 대신 동생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편지에서 그녀는 매들린의 어린 시절에 대해 설명했다. 내 동생은 갓 태어난 새끼 양이나 병아리, 새끼 돼지들을 집에 데려와야 한다고 애원했던 아이였다고. 새끼들이 어두운 헛간에서 무서워하면 어떡하냐고 걱정해서였다고. 내 동생은 혼자서 작곡한 노래를 들려주며 퍼트리샤와 아버지를 즐겁게 해주었다고,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모두 다 잘 지내는 방법이 뭘까 궁금해하던 아이였다고.

이 편지를 쓰는 의미가 뭔지 사실 퍼트리샤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이건 속죄의 시도일까.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든 요나스에게 매들린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니 좋았다. 그러면 요나스는 매들린에 대해 자세한 심상을 갖게 될 테니까.(pp.535~536)


“고마워, 모두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중얼거렸다. 도리스와 모나, 마리안네가 일어서서 탁자 이쪽으로 다가와 퍼트리샤를 안아주자 그녀는 더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여기 오면 언제나 널 위한 방이 준비되어 있을 거야. 내가 이 호텔을 운영하는 한 말이야. 난 백 살까지 살 거야.”(p.544)


저자 : 프리다 쉬베크(Frida Skyback)


1980년 스웨덴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작가를 꿈꾸었으며 다섯 살 때 처음 책을 썼다. 작가가 되기 전에는 고등학교에서 언어와 역사를 가르쳤다. 블로그를 통해 글을 써오다가 2011년 첫 발표한 소설 『샬롯 하셀』이 큰 사랑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2개국 이상 작품이 계약되어 번역 중이며, 『템스강의 작은 서점』은 12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현재 남편, 두 딸과 함께 스웨덴 룬드에 살고 있다.


역자 : 심연희


연세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독일 뮌헨 대학교(LMU)에서 언어학과 미국학을 공부했다. 영어와 독일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소설 『아웃랜더』, 『아이언 위도우』, 『레슨 인 케미스트리』, 『스파크』, 『미드나잇 선』, 그래픽 노블 『인어 소녀』, 『티 드래곤 클럽』, 시리즈물로 『이사도라 문』, 『인 더 게임』, 『매머드 아카데미』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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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워터 레인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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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작품 『블랙워터 레인』의 원제는 'The Breakdown'으로, '고장'이란 뜻이다. 이 단어는 자동차나 기계의 고장뿐 아니라 사람의 정신적 문제도 가리키는 단어라고 한다. 흔히 정신적 붕괴를 가리키는 신경쇠약(nervous breakdown)'이라는 말에 쓰인다(p.304)고 역자 이수영은 〈옮긴이의 말〉에서 풀이하고 있다. 갑자기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이 생각나는 것은 독자의 전쟁 영화 선호 때문이라기보다는 '블랙'과 '브레이크'를 순간 혼동을 일으켜서다. 얼떨결에 독자의 영어 실력이 형편없음을 고백하는 꼴이다. 영화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이 책 『블랙워터 레인』은 영화화되면서 원제를 바꿨다. 독자의 혼동에 대한 약간의 면죄부가 될지도 모를 변명이다. 이 작품은 ‘첫 페이지부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소설’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출간과 동시에 100만 부 넘게 팔렸다고 한다. 


7월 17일 금요일 

이제 여름방학만을 앞두고 모두 작별 인사를 하는데 천둥이 시작된다. 우렛소리가 지축을 울리는 바람에 코니가 펄쩍 뛰자 존이 웃었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밀려든다. 

"얼른 가야겠네!" 존이 외친다.

나는 손을 흔들며 내 차로 달려간다. 차에 올라타자 가방에 들어 있던 핸드폰이 울린다. 벨 소리를 따로 설정해두었기 때문에 매튜라는 걸 바로 알 수 있다.(p.9)


독자의 느낌으로는 첫 문장은 평범하다. 첫 페이지라고 했는데 이어지는 문장에서도 그닥 긴장감이 감도는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이어지는 글은 남편 매튜와의 전화 통화로 채워진다. 매튜가 비가 곧 내릴 텐데 귀갓길 경로를 묻는다. 캐시(여주인공)가 '블랙워터 길'로 숲을 통과하면 더 빨리 갈 수도 있음을 남편에게 주지시킨다. 남편의 반응이 조금은 과장된 듯하다. "절대 안 돼!" 매튜의 큰 목소리에 캐시는 잠시 인상을 찌푸린다. 매튜는 다시 목소리를 낮춘다. "캐시, 그쪽 길로 오지 않겠다고 약속해. 밤에 혼자 숲길을 운전하는 건 위험해. 게다가 폭풍이 오고 있다고."



폭우가 예상되는 날 여주인공 캐시의 귀가에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블랙워터 길은 피하라는 남편의 말은 '자상한 남편' 이미지를 느끼게 한다. 캐시는 핸드폰을 가방에 넣으며 남편의 고집에 웃음 짓는다. 주차장을 빠져 나오는데 굵은 빗방울이 차창으로 쏟아진다. 드디어 시작이군. 대로를 빠져나오자 비가 거세게 쏟아진다. 옆 차선으로 비켜나는데 번개가 하늘을 가른다. 바로 앞 거대한 트럭 바퀴에서 차의 와이퍼가 감당 못 할 정도의 물이 튄다. 이 책은 아마존 킨들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하고 주목을 받은 센세이셔널한 작품이다. 저자 B. A. 패리스는 영국 '심리 스릴러의 여왕'이라는 별칭으로도 통한다. 패리스는 같은 계열의 데뷔작 『비하인드 도어』로 급부상한 작가라고 한다. 역자 이수영은 저자가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에서도 마음이 여리고 다감한 여주인공을 내세웠다고 말한다. 전작 『비하인드 도어』 역시 이수영이 번역했다. 패리스는 전작부터 '여성의 심리를 파고드는 스릴러 장르의 귀재'라는 칭송을 받았다. 불온한 세계와 냉정하게 맞서지 못하고 무너져가는 주인공 여성의 추락과 고통에, 독자는 함께 마음 아파하며 울분을 쌓아갈 수밖에 없다고 역자 이수영은 귀띔한다. 그러나 뛰어난 감성 지능을 지닌 패리스의 직감적 돌파력이 드디어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중반 이후, 아예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출판사 소개글에도 비슷한 말이 실렸다. "신체적, 물리적 폭력은 단 한 장면도 없이, 정신적, 심리적 폭력만으로 극한의 긴장과 공포를 그려내어 ‘가스라이팅 스릴러’라는 장르를 개척했으며, 특히 압권인 마지막 50페이지의 반전으로 화제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패리스의 작품 중에서 『블랙워터 레인』은 처음으로 영화화가 확정되어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 작품은 제프 셀렌타노 감독이 연출하고 〈500일의 썸머〉로 유명한 민카 켈리와 〈테이큰〉의 매기 그레이스가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되었다. 또한 이미 지난 6월 북미 개봉했다고 한다. 심리적인 음모와 초자연적 요소가 가득한 매력적인 영화로 알려지면서 장르 팬들에게 기대작으로 손꼽히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두 번째 쓴 작품이 영화화되었다니 천재적 재주를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 『블랙워터 레인』은 패리스의 두 번째 작품 『브레이크 다운』의 리커버 에디션으로 출간됐다. 영화 개봉에 맞춰 영화와 동일한 제목으로 바꿔 유명 일러스트 작가 KUSH의 아트워크로 소설 속 중요 사건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표현한 디자인으로 새롭게 꾸몄다. 출간하는 작품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전 세계 700만 부 판매를 돌파하여 밀리언셀러 작가가 됐다. 이제는 패리스의 전매특허가 된 특유의 긴박한 속도감과 공포감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무더운 여름을 영화와 함께 몇 배로 서늘하게 해줄 원작 소설 『블랙워터 레인』이 최고의 선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인생을 뒤흔드는 사건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캐시는 폭우가 쏟아지는 여름밤, 위험하다는 남편의 경고를 무시하고 숲속으로 난 지름길(블랙워터 레인)로 차를 몰던 캐시는 우연히 갓길에 멈춰 서 있는 차 안의 여자와 눈이 마주친다. 이상한 징후를 느꼈지만 왠지 모를 두려움에 그대로 지나치고, 집에 도착한 다음에는 신고하는 것도 잊어버린다. 다음날 그 여자가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듣고 엄청난 죄책감에 휩싸인다. 이후 캐시는 자신이 했을 리 없는 일들이 눈앞에 벌어지고, 모두가 기억하는 이야기를 혼자만 떠올리지 못하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정신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특히 살인자가 그녀를 지켜보며 매일 전화를 걸어온다는 생각에 완전히 공포에 질려 신경이 쇠약해지고 곁을 지켜주던 남편과 친구마저 서서히 지쳐가면서 그녀의 삶은 걷잡을 수 없이 피폐해진다. 결국 캐시는 약에 의존해 하루 종일 잠들기를 선택하고 극심한 불안과 공포를 잠재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문에 그녀의 인생은 점차 사라지게 된다. 


어쩔 때는 놈이 나타난 것 같다. 퍼뜩 정신이 들며, 심장이 빠르게 뛴다. 놈이 창문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는 확신이 든다. 도망치려는 본능 때문에 반쯤 의자에서 일어서다가 다시 주저앉는다. 무슨 상관인가 싶다. 만일 놈이 정말 여기 온다면, 적어도 모든 게 끝날 것이다.(p.157)



자신을 둘러싼 모든 사람을 의심하게 만드는 심리 스릴러는 저자 패리스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고 한다. 저자 패리스는 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불안하게 만들까? 우리는 소중한 사람들과 서로 믿고 의지하는 관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그 연결고리가 취약해질수록 가장 빠르게 무너지기 때문이라는 것이 심리분석가들의 의견이다. 주인공 캐시는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삶의 울타리가 한순간에 덫으로 변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면서 더 이상 그 무엇도 믿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하루가 다르게 고립되어 가던 그녀는 문득 자신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외치는 마음의 소리를 듣고 다시 한번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다. 과연 캐시는 스스로를 구해낼 길을 찾을 수 있을까?


그날 밤에 제인을 봤어요." 나는 휴지를 손가락으로 비틀며 말한다.

"그래요, 파티에서 만났다면서요. 제인에게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니, 그날 말고요. 그녀가······." 살해라는 말이 목에 걸려서 나오지 않는다. "그녀가 죽은 날에요. 블랙워터 길을 지나다가 갓길에 서 있는 그녀의 차를 지나쳤어요."

제인의 남편이 너무 오래 말이 없어서 충격이 큰가 싶다.

"경찰에는 말했습니까? 결국 제인의 남편이 그렇게 말한다.

"네, 경찰에 전화해서 제인이 살아 있는 걸 봤다고 말한 사람이 저예요."

"다른 건 본 게 없나요?"

"네, 제인밖에 못 봤어요. 하지만 그녀인 줄로 몰랐고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생김새가 잘 안 보였거든요. 여자인 것만 알 수 있었어요. 제인이었다는 걸 그 후에 알게 됐고요."

제인의 남편이 숨을 내쉰다. "차에 누가 같이 앉아 있는 건 못 봤습니까? 

"못 봤어요. 그랬으면 경찰에 말했겠죠."

"그래서 그냥 지나갔다고요?"(p.181)



주인공 캐시는 뉴스를 보고 그날 밤 사건을 두고 자신이 제인을 살릴 수도 있었다는 죄책감에 빠진다. 그리고 친구 수지의 생일파티에 참석했다가 레이첼로부터 피해자가 제인 월터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제인은 수지와 레이첼과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동료이고, 캐시와는 사건 얼마 전에 친해지게 된 사이다. 캐시는 레이첼 회사 파티에 초대되었다가 제인을 만났고 이후 식사도 같이 하며 오랜만에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며 반가워한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있었는데 제인이 죽은 것이다. 

사건 발생 후 극도의 스트레스로 심리적으로 몹시 불안한 상태가 지속된다. 결국 친구의 생일 선물을 사는 것도 잊어버리고 앤디와 한나 부부와의 바베큐 파티 약속도 기억하지 못한다. 캐시는 그 사실을 숨기려고 하는데 이유는 그녀의 엄마가 젊은 나이에 치매를 앓았고 투병을 하다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캐시는 혹시라도 자신이 엄마처럼 '치매'일까 더욱 불안해 한다. 이 외에도 캐시의 집에는 정체불명의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한다. 또 누군가가 자신을 훔쳐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더욱 불안하고 혼란하다. 어느 날 매튜의 출장으로 극도로 불안해진 캐시는 호텔에 머물기로 결정한다. 매튜에게 전화를 받고 더욱 초조해지는데 보안 업체가 집에 보안설비를 설치하기 위해 방문하기로 했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심지어는 계약서에 캐시의 필체로 사인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는 등 정신은 갈수록 피폐해져 간다. 

저자는 누가 범인이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한 곳을 가리키는 지점이 확실치 않도록 소설을 구성했다. 독자들은 읽으면서 추리 능력을 발휘하는데 이 책의 경우 저자는 여간해선 범인을 가르키는 곳을 노출하지 않는다. 저자의 스릴러 소설 작법일 것이다. 또 캐시의 부모는 죽기 전에 적지 않은 유산을 남겼는데 이는 캐시조차도 모르는 상황이어서 누가 돈을 노리고 범행을 했을 거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나는 눈을 감고, 언제부터 매튜와 레이철의 불륜이 시작되었을까 생각해본다. 둘이 처음 만났을 때를 돌이켜본다. 내 삶에 매튜가 나타난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다. 나는 이미 사랑에 빠져 있었고 레이철이 매튜를 좋아하길 정말 바랐다. 하지만 둘은 그다지 잘 지내지 못했다. 혹은 당시엔 그렇게 보였다. 서로에게 바로 끌렸는데, 그걸 숨기느라 서먹한 척했는지도 모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심지어 매튜와 내가 결혼도 하기 전에 둘은 불륜이 되었을 수도 있다."(p.220)


결말을 향해 치닫는 클라이막스에 이르면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데 독자들은 뒤통수를 맞는 느낌일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그리고 상대방의 심리를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정하려고 하는 '가스라이팅'에 대해 깨닫게 되는 순간 소설의 막이 내린다. 과연 독자들은 눈썰미와 추리 능력으로 진범을 찾아낼 수 있을까?



오늘 할 일이 많다. 그들의 거짓말과 속임수의 그물을 하나씩 풀어봐야 한다. 우선 한나네 집으로 간다. 아직 외출하지 않았기를. 다행히 자동차가 진입로에 있다. 

한나는 나를 보고 깜짝 놀라는 눈치다. 좀 당황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나한테 좀 어떠냐고 묻는다. 그제야 매튜가 한나에게 내 자살 시도 얘기를 한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정확히 무슨 소리를 들었냐고 물을 시간은 없다. 그래서 그냥 다시 예전 상태를 회복했다고만 말한다. 그 정도면 되겠지. 커피 한잔하겠느냐고 해서, 시간이 없다고 거절하고 본론을 꺼낸다.(p.233)


저자 : B. A. 패리스(B. A. Paris)


영국에서 태어난 후 주로 프랑스에서 성인 시절을 보냈다. 프랑스 국제 은행에서 일하다, 교직을 이수한 후 남편과 어학 학교를 설립했다. 완벽해 보이는 커플에게서 영감을 받은 소설 『비하인드 도어 Behind Closed Doors』는 그녀의 데뷔작으로, 아마존 킨들 독립출판 후 3일 만에 10만 부가 판매되었다. 곧바로 종이책으로도 출간되어, 영국과 미국에서 100만 부 판매를 돌파했고, 100만 달러에 영화 판권도 계약되었다. 이후 굿리즈 최고의 데뷔 소설상과 최고의 스릴러 소설상 후보에 오르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2017년에 발표한 두 번째 소설 『브레이크 다운 The Breakdown』 역시 출간 즉시 킨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단기간에 100만 부 판매를 기록하였다. 세 번째 소설 『브링 미 백 Bring Me Back』은 애플 iBOOKS, [뉴욕타임스], [선데이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네 번째 심리스릴러 『딜레마 The Dilemma』를 써냈다. 그녀의 작품들은 전 세계 38개국에 번역 출간되어 사랑받고 있다.


역자 : 이수영


연세대학교 국문과와 같은 대학원 비교문학과를 졸업했다. 편집자, 기자, 전시 기획자로 일하며 『밴디트: 의적의 역사』 등 인문서로 번역을 시작했다. 지금은 문학 번역에 전념하고 있으며 소설 『클로리스』, 『XX』, 『비하인드 도어』, 에세이 『국경 너머의 키스』, 『마이 코리안 델리』, 여행기 『헤밍웨이의 집에는 고양이가 산다』, 『너의 시베리아』 등을 옮겼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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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사담회 01 - 아는 사람 모르는 이야기
EBS <인물사담회> 제작팀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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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역사 책을 읽을 때 늘 머릿속에 각인돼 있는 두 권의 책을 기억해 낸다. 고등학교 때까지 들어보지 못한 제목의 책이지만 대학에 들어가니 인문교양도서로 지정돼 있었다. 지금도 대학 교양도서 목록에 그대로 지정돼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나는 『역사란 무엇인가?』(원제 : What is history?)란 책으로 E. H. 카(Edward Hallet Carr, 1892∼1982)의 역사이론서다. 어떤 학자는 역사철학서라고 분류하지만 논란거리는 아니다. 또 다른 하나는 아널드 J.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1889~1975)의 『역사의 연구』다. 전자는 책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명제를 남겼다. 카는 역사가의 주된 임무는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것만이 아니라 '있었던 일'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일이며 따라서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도 역사가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역사가는 그가 속한 시대와 사회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역사적 사건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기준도 그 당대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것, 즉 역사가의 관점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다를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후자의 경우 이전과는 다른 독자적인 문명사관을 제시해 주목을 받았던 책이다. "유기체적인 문명의 주기적인 생멸이 역사이며 또, 문명의 추진력이 고차문명의 저차문명에 대한 '도전'과 '대응'의 상호 작용에 있다고 주장했다. 19세기 이후의 전통 사학에 맞서 새로운 역사학을 개척했다고 평가받았다고 한다. 토인비는 그리스 이후 쇠퇴하였던 역사의 반복성에 빛을 부여함으로써 고대와 현대 사이에 철학적 동시대성을 발견하고 역사의 기초를 ‘문명’에 두었다. 문명 그 자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포착하고, 그 생멸(生滅)이 역사이며, 그 생멸에 일정한 규칙성, 즉 발생·성장·해체의 과정을 주기적으로 되풀이하는 것으로 보았다. 또 26개의 문명권을 병행적·동시대적으로 나열하고, 이들 모두가 규칙적인 주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구명하였다. 토인비는 또 문명의 추진력을 고차문명(의 저차문명에 대한 ‘도전’과 ‘대응’의 상호작용에 있다고 보았다. 이 밖에 ‘내적·외적 프롤레타리아트’, ‘세계교회’ 등 특수한 용어에 의한 개념이 사용되고 있는데, 19세기 이후의 전통사학에 정면으로 도전함으로써 새로운 역사학의 길을 개척한 점에서 크게 주목되었다.(독자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우려가 있어 〈두산백과〉를 참조했다)



「아는 사람 모르는 이야기」란 부제가 달린 이 책 『인물사담회』는 EBS 교양프로그램의 명칭에서 비롯됐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사건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낸 인물들의 삶과 정신을 통해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는 살아 있는 학문"이라는 제작팀의 '역사 인식'이 만들어낸 프로그램이다. 방송 프로그램 〈인물사담회〉는 이러한 역사의 중요성을 재조명하며, 각 인물이 가진 독특한 이야기와 그들이 남긴 교훈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해 보여주었다. 2023년 4월부터 7월까지 모두 16부작으로 방영됐다. 방송인 배성재, 개그우먼 장도연, 공학박사 곽재식 교수가 진행을 맡았다. 매회 다른 내용의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첫 회 방영된 「고르바초프 러시아 전 대통령」은 1990년대 냉전 종식과 함께 사라진 인물처럼 어렴풋이 기억되고 있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했다는 점에서 〈인물사담회〉를 전국적으로 알리는 데 기여했다는 후문이다. 또 14회에서 살펴본 「원자 폭탄의 아버지로 알려진 ‘로버트 오펜하이머’」도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 상영 직전 주제로 삼는 등 방송 제작팀의 순발력도 훌륭한 프로그램 제작에 크게 일조했다고 한다. 

이 책 『인물사담회 1』은 1~8회 방영분을 한데 묶었고 9~16부는 2권으로 출간 예정이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부제에서 알았겠지만 이 프로그램은 인물은 역사 속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이라 웬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들이다. 각 분야에서 분야별 엄청난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청자나 독자들은 정사로서 다룬 다큐멘터리나 뉴스에 나올 때는 정사(正史)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일이나, 비밀, 또 가족 관계 등의 사(私)적인 이야기는 모르기 십상이다.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인 신채호 선생이 명언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말처럼 우리 민족은 일제 강점기부터 군부 독재 시절까지 역사를 바로 어려웠다. 정권이나 지배 논리에 맞게 왜곡 변형시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사는 무척 따분하고 지나간 과거 이야기라 흥미를 갖고 배우려고 달려들기에는 거리가 있는 학문 분야다. 더욱이 청소년기에는 지나간 이야기에 별로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이에 역사를 스토리텔링 식으로 풀어 가르쳐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났고, 그 일환으로 이 프로그램도 기획된 것으로 독자는 알고 있다.



독자 기준으로도 1권에 나오는 8명의 인물들은 잘 아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읽어보고 그들의 업적 위주의 활동일부만 알 뿐이지 속사정은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반성도 하게 된다. 프로그램 제작팀이 책 발간에도 그대로 참여한 듯하다. 아마 원고 퇴고를 또 하지 않았나 싶다. 제작팀 최수진 책임 PD는 〈머리말〉을 통해 "선택된 인물들은 각기 다른 시대와 문화 속에서 살았지만, 그들의 삶과 업적은 시공을 초월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전제한 뒤 "고르바초프, 스티브 잡스, 나이팅게일과 같은 인물들을 통해 우리는 리더십, 혁신, 헌신과 같은 가치들을 다시 생각해 보자는 취지에서 비롯됐다"고 밝힌다. 특히 책은 방송에서 시간의 제약으로 다루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독자가 인물의 삶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최근 수없이 쏟아지는 역사·교양 프로그램 사이에서 더 시청자 친화적인 포맷을 구성하려고, 현장 취재와 촬영, 자료 탐독, 흥미로운 그래픽 구성 등으로 시각화했다고 최 책임 PD는 강조한다. 

이에 따라 이 책은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라, 인물들의 생애를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현재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영감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역사적 인물들의 삶에서 깨달음을 얻고, 그들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 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 『인물사담회 1』은 모두 8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한 명의 인물이 각각 한 장(章)을 이루고 있다. 1장 「미하일 고르바초프」, 2장 「니콜라 테슬라」, 3장 「노스트라다무스」, 4장 「프리다 칼로」, 5장 「오에 겐자부로」, 6장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7장 「제갈량」, 8장 「무하마드 알리」 등이다. 각 장은 '아는 사람, 모르는 이야기'로 나뉘어 있다. 8장의 경우 '아는 사람' 알리와 '모르는 이야기'로 각각 나눠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아는 사람' 알리에 대해서는 #어록 #세기의기적 #스캔들 등으로 해시태그를 붙인 뒤 설명한다. 또 '모르는 이야기'에는 #권투_천재 #인종_차별 #저항 #베트남전쟁_참전_거부 #진정한_챔피언 등으로 핵심어로 지정해 설명을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 들려준다. 8장 「싸워야 한다면 알리처럼, 무하마드 알리」는 한참 전성기 때인 25세 때 베트남 참전 징집영장을 거부한다. 그는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건 챔피온 벨트를 박탈당했으며, 이후 3년 6개월간 링에 오르지 못한다. 이는 결국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링에 다시 올랐지만 이미 3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그는 과연 재기했을까?



1장에서 고르바초프는 「냉전을 녹인 바보 대통령, 고르바초프」이란 문구로 소개돼 있다. 그는 대통령이 된 후 '철의 장막'을 걷고 개혁·개방을 통해 나라 경제를 회생시켜야 한다는 결단을 내리고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을 만나서 냉전을 종식한 구 소련 대통령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아마 우리와의 수교를 위해 당시 노태우 대통령을 예방한 적이 있었던 것으로 독자는 기억한다. 특이하게도 그의 이마에는 지도처럼 무늬가 있어 오래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가 냉전을 종식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였던 이유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미국과의 스타워즈 경쟁에서 패했다고 생각한 데서부터라고 한다. 88올림픽 때 북한의 불참 건의를 묵살한 것도 고르바초프였다고 이 책에 나와 있다. 이상의 이야기는 그래도 뉴스나 기타 프로그램에서 거의 알려진 일이지만 민간 차원의 창업을 장려한 일이나, 부분적 시장 경제 도입 등은 처음 들은 내용이다. 또 공산당 일당제를 포기하고 다당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했고, 당 서기장제를 버리고 대통령제를 수립했고 그는 소련의 대통령으로 출마해 당선된 첫 대통령이다. 

1986년 지금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키이우주 체르노빌원자력발전소에서 실험을 하다가 비정상적인 핵반응이 일어났고, 결국 원자로가 폭발하는 엄청난 참사가 일어났다. 이 사고 영향력이 얼마나 컸던지 유럽의 스웨덴과 핀란드까지 높은 수준의 방사능이 검출된 기록도 남아 있다고 한다. 원자력발전소는 사고 이후 페쇄된 후 지금까지 수풀과 폐기물 등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고 한다. 사고 직후 소련에서는 사고를 숨기려 했다는 것이다. 자신들에게 쏟아질 책임 추궁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에 고르바초프는 '공식 사과'를 하고사태를 수습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개혁·개방 정책에는 부작용도 있었다고 한다. 고르바초프(애칭 고르비) 정책에 대중의 반발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금주 정책'으로 1985년 보드카 생산과 판매를 억제한 정책이다. 보드카는 러시아 사람들이 좋아하는 매우 독한 술이다. 러시아인에게 보드카를 빼앗는 정책이어서 반발이 심했던 모양이다. 보드카 금주 정책으로 세수도 크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보드카 세금은 제정 러시아 시절부터 있었던 것으로 소련 시대에도 이어져 왔던 것. 고르바초프는 이 주세 수입을 과감히 포기하고 재정 손실로 인한 적자 예산과 경제적 불안정을 감당하기로 한 것이다. 금주 정책은 러시아인들의 알코올중독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이라고 하는 말도 있다. 일할 나이에 페인이 되고 폐인이 늘어나면 국가의 재정은 점점 열악해질 것이기에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전해진다.



독자가 개인적으로 알고 싶었던 사람은 이란의 마지막 왕 '팔라비 2세'다. 현재 이란에서는 여성들의 히잡 착용을 강제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9세부터는 무조건 히잡을 쓰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어서 이를 어기면 도덕 경찰에 체포 및 구금될 수 있으며 때에 따라 태형으로 74대까지 맞을 수 있다. 도덕 경찰은 히잡 착용을 비롯한 이슬람 풍속 단속을 전담하는 지도 순찰대이다. 외국 여성이라도 이란에서 히잡을 쓰지 않으면 도덕 경찰의 지도 대상이 된다. 이처럼 히잡 착용에 대해 엄중한 이란에서 2022년 9월 히잡 반대 시위가 시작됐다. 마흐사 아미니라는 22세의 여성이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 체포된 뒤 의문사한 것이 계기가 됐다.

시위가 격렬해지자 이란 정부는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했고, 진압 과정에서 총기 사용 등 폭력이 난무해 시위대 수백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2024년 현재까지도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1908년 이란 땅에서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양의 석유가 발견되었다. 이란의 석유 탐사 및 개발을 위한 독점적 권리를 가지고 있던 영국은 '앵글로 이라니아'라는 석유회사를 세워 이란에 끊임없이 석유 이권을 요구했다. 당시 이란의 왕이었던 팔라비 2세의 아버지 팔라비 1세는 개발 정책을 꾀하고 있었고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여러 외국 기술자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는 이란의 석유를 헐값에 뽑아가는 영국보다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의 국가에서 도움을 받고자 했다. 그러던 중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면서 전쟁의 불길이 전 세계로 확산됐다. 팔라비 1세는 중립을 선언하며 이란을 전쟁으로부터 지켜내고자 했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영국과 독일 간 전쟁이 격화되면서 영국은 이란 내 석유회사에 근무하는 독일인 기술자들이 스파이라며 이란 정부에 그들의 추방을 요구했다. 하지만 팔레비 1세는 중립을 고수하며 거절했다. 이를 명분으로 영국은 연합국이던 소련과 함께 이란을 침공했다. 이란군은 항복할 수밖에 없었고 팔라비 1세는 강제로 폐위된다. 만 21세의 황태자였던 팔라비 2세에게 왕권을 넘긴다. 이로 인해 이란 국민들 사이에서 영국과 소련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남겼다. 1951년 총리로 선출된 모하마드 모사데크가 추진한 이란의 석유 국유화는 미국과 영국의 역공이 예상된 대로 미국은 이란산 석유 구매를 중단하고 이란의 석유 수출을 봉쇄한다. 경제난에 부닥친 이란은 결국 미국, 영국 정보기관이 협력해 모사테크 정부를 전복하는 작전을 수행해 모사데크는 실각한다.



팔라비 2세는 미국을 등에 업고 석유산업에서 얻은 방대한 수익을 바탕으로 이란의 경제 발전을 추친한다. 이란이 석유로 엄청나게 수익을 올렸지만 부의 분배는 극히 불평등했다. 이란 국민들은 생필품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팔라비 2세와 일부 지지자는 그야말로 호화생활을 해나간다. 이때 나타난 사람이 호메이니 종교 지도자이자 정치인이다. 팔라비 2세는 이란 건국 2,500주년을 맞아 1971년 세계 정상들을 모두 초청하는 대규모 행사를 주최한다. 이 행사비용이 무려 1~2억달러라고 하니 오일머니를 실감하게 한다. 팔라비 2세는 세 번의 왕비를 맞이했는데 첫 번째는 이집트 국왕의 딸과 정략결혼이지만 팔라비 2세의 바람기로 두 사람은 이혼한다. 두 번째는 이란 남부 귀족 출신으로 유럽에서 교육받은 여성이라서 자유분방한 성격이어서 팔라비 2세가 가장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는 후손이 없었다. 왕위를 이어야 하는데 이을 수 없게 되자 이혼했다는 것. 세 번째는 이란 군인의 딸로 무려 19살 차이였다. 부인은 팔라비 2세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피우지아 사이에서 낳은 딸의 친구였다고. 세 번째 부인은 현재 미국으로 망명했고 이란 내외에서 여전히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니 이란의 앞길도 이래저래 안개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 셈이다. 


저자 : EBS 인물사담회 제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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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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