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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이 있다 - 그래도 다시 일어서 손잡아주는, 김지은 인터뷰집
김지은 지음 / 헤이북스 / 2019년 9월
평점 :
제목을 보자마자 읽고 싶었다. "언니들이 있다" 라니. 이렇게 든든할 수가.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치명적인 순간에 구원의 동앗줄을 내려주는 것은
우습게도 나의 실력/능력이 아니었다.
물론, 결정적인 순간에 나의 능력이 힘을 발휘하는 것은 있다.
하지만 치명적인 순간이라는 건,
그런 나의 능력이 -마치 처음부터 그런 건 없었다는 듯- 동결되었을 때다.
그 때, 정말 옴쭉달싹 못할 때 금수저나 든든한 빽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드라마나 일상생활에서 "형~" 하는 것과 "언니~" 하는 호칭의 벽이 무너질 때
무게감이라고 해야하나,
뭐라 정확하게 말로 옮기기 힘들지만 아무튼 차이가 느껴질 때가 있었다.
형이라고 하면 끌어주고 밀어주는 의미
언니라고 하면 그저 친근감? 혹은 감정적인 위안 정도 혹은 드센 오지랖 정도로.
그래서 이번 책은 그런 '언니'라는 이미지 뒤에
진짜 힘이 되는 언니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왜 그들의 존재가 눈에 띄지 않았는지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는 느낌이다.
자매애. 형제애와 동지애 다음으로 익숙하게 된 이 단어를
저자 김지은은 사례로 제시한다.
요즘처럼 기자에 대한 시선이 안 좋을 때,
본인이 왜 기자가 되고 싶었는지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
누구에게나 초심이 있었고 그 초심이 무너지게 되는 것이 개인적인 변심이 아니라면
그렇게 만든 상황/사회/시스템을 고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이야기를 통해 세상에 혼자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온갖 경우의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활동가로서의 면모가
저자의 인터뷰 곳곳에서 드러난다.
인터뷰로 만난 12명의 사람들은 익숙한 사람도 있고,
처음 이름을 제대로 알게 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겪어내고 버티고 있는 상황은 놀랍게도 흡사하다.
결국 여성은 인원의 문제가 아니어도 소수자의 삶을 살고 있다.
이것을 머리로 아는 것과 생활로 사는 것은 정말이지 다르다.
(아마도 이 책의 독자가 편향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정말이지 안 본 사람의 손해!)
인터뷰를 통해 그 소수자의 삶에서
어떻게 생존했고 자기 발로 굳건히 서 있는지를 읽을수록
마음이 찡했다.
사회의 눈으로 봤을 때 마냥 뚝심과 의지로 성공한 모습처럼 보이지만
사실 인터뷰이 모두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는 차별과 편견, 그리고 모순과 억압을
"나는 이렇게 잘 이뤄내었노라. 그러니 너도 할 수 있어" 로 포장하지 않고
담담하지만 흔들리지 않으며 여전히 자기 자리에서 바꿔 나가고 있는 모습들에서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
누구에게나 비빌 언덕이 있다는 것은 든든한 일이다.
지금까지 언니들은 바깥 세상에서 패배하고 돌아와 집 안으로 들어왔을 때
함께 울어주고 밥을 차려주는 존재로 그려졌다면
이제는 다르다.
사회생활로 잔뼈가 굵어진 그녀들이 끝내 집으로 매몰되지 않아서
사회에서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언니가 되었다.
눈 밭에서 먼저 발을 내딛어 길을 만들어 주는 존재들처럼
"발이 시리니까 이제 그만 집에 들어가- "라든지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어 내버려지지 않을 수 있고
끝까지 어깨를 겯고 함께 걸어갈 수 있는
내가 사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존재를 12명이나 알게 되어 흐뭇하고
그 숫자를 더 늘려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