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4
서머싯 몸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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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스러움과 성스러움의 콜라보레이션.
-서머셋몸 소설 하면 이런 느낌

내가 이십 여년 전에 ‘달과 6펜스’ 를 읽고 얼마나 정신적으로 충격을 입었는지를 돌이켜보면,
이제까지 이렇게 흡입력 좋은 고전소설을 외면해 온 까닭이 설명 될런지.

서머셋몸.
그냥 이력만 보면 헤밍웨이 만큼이나 그냥 그런갑다... 하고 볼만한 느낌인데,
소설을 보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인간인가- 싶은 작가.

이 작품은 1944년, 몸이든 마음이든 필력이든 원숙기에 접어든 70세의 작가가 써 낸 책이다.

지식쟁이 할아버지답게 직접 화자로 등장해서 하고 싶은 얘기들은 잔뜩해가며 소설속 인물들을 소개하고 시간순으로 따라가는 방식으로 서술되어있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캐릭터들이 관찰이나 묘사에만 그쳐져 있지 않고, 하나 하나가 손에 잡힐 듯이 입체적인 인간형으로 느껴진다는 것.
덕분에 인간관계 사이의 딱히 큰 꼬임이나 마찰이 없더라도 왠지 책장을 멈출수 없는 묘한 마력이 있다.
- 크게 궁금할게 없는데 궁금해죽겠네...! 뭐 이런.

1차세계대전이 막 끝난 후, 호황이 시작되는 미국에서 부모 덕에 중상류층 이상으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시대의 흐름과 엮어서 당시 민감하게 여겨졌던 사상적인 부분들과 함께 얘기해 나가고 있다.

간단하게 줄거리를 보면.

이야기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래리라는 젊은이는 1차대전에 참가 했다가 동료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삶의 의미를 찾아 세상을 돌아다닌다.
후견인에게 받는 충분한 돈이 있었기에(지금으로 치면 세금을 거의 안떼는 연봉 8000수준?) 그는 젊은 시절을 하고 싶고 보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들을 실컷 하고 다닌다.
그리고 인도의 철학에서 문득 깨달음을 얻고, 유럽으로 돌아와 후견인의 돈을 끊어버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진정한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나.

그의 어린시절 연인이었던 이자벨은 그와 약혼까지 했으나 사고관의 차이로 자신의 가치관과 더 적합한 결혼상대자를 골라 우여곡절이 약간 있으나 결국 잘먹고 잘산다.

이자벨의 가치관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삼촌인 엘리엇이다. 신시대의 도움으로 구시대의 마지막 상류층이 된 자이며, 원래 못가져서 갈구했던 것이 더 소중하듯 구시대의 마지막 상류사회 문화의 보수를 자처하며, 역시 잘 먹고 잘 살다가 잘 가는 인물.

...
당시 미국의 상황을 보면 사실 계속 잘먹고 잘 살거 같은 분위기로 갈 수 밖에 없었을 거 같긴 하다.
2차대전도 시작되었고. -언제나 얘기하지만 게임하듯 다른 땅에서만 전쟁을 겪는 나라. 몸은 따시고 대가리로만 전쟁을 겪으니 태생적으로 사상적 빈곤함에 허덕댈 수 밖에 없는 나라.
솔직히 래리가 하는 얘기들이 그럴싸하게는 들렸으나 화자가 엘리엇을 안타까워하는 것 처럼, 난 래리가 그렇던데. 2026년 지금의 나로서는 말이다.


읽으면서 나중에가서 이해가 되었던 부분들.

이자벨이 래리를 한 방에 쳐내는 걸 보고 조금은 이상하게 느꼈는데, 나중에 자신을 내줄만큼 사랑하지는 않았다는 화자의 보충설명과 이자벨이라는 여자에 대한 심층묘사로 이해를 시켜쥼.

래리가 소피랑 결혼하려고 하는 건 그전에 래리의 전적들로 미루어 봤을 때 단순히 자기 희생으로 사람 살리려는 강박에 가까운 심리라고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 정말 내면이 통할 거 깉아서 오랫동안 반려자로 점찍었왔다는 얘기를 꺼낸다. 갑자기.

...
이 사람의 소설을 보면 은근히 여자를 100퍼 속물로 일단 틀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괜찮은 여자 이기적인 여자 심약한 여자... 뭔여자.

달과 6펜스에서도 그랬던 것 같은 기억이 어렴풋이.

작가 양력을 보니 42살에야 결혼을 하곤, 13년 살다 이혼했더만. 그 이후로는 결혼을 한 것 같지는 않고.
그리고 아흔살까지 살았으니.
주변에 어떤 여자들이 있었던 것인지.
분명 이 당시 글을 쓰며 유럽을 다녔다면 여성 문호들도 없지 않았을 텐데, 어쩜 이리도 한결같은 느낌인지.
여자에 대한 감각만은 톨스토이랑 다를바가.

어쨌거나 오랫만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집중해서 본 소설.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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