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글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다.제대로 된 소설 한 권 보다는 여기저기 실린 글 들과 에세이를 더 접한 것 같다. (번역도 하고있고)쉬운 듯하지만 쉽지 않은 그의 글을 읽다보면애정하지만 부정하고 싶은 일본 문화와 과거의 문화 격차에 대해서 상기하게 된다.딱 20대 중반까지 사그러들지 않는 막연한 동경을 가졌던 것 같다.(직업적인 아유도 있었고)일본 물품의 수입을 단절시켜버린 예전 정부들의 시책도 한 몫을 했을테고,어쨌거나 가장 가까운 선진국이었으니까.현재 50대인 작가는 30대까지 그런 사회에서 살았을 테니 당시의 노스텔지어를 듬뿍 담은 생각들을 현재와 연결하여 뿜어낸다.그리고 그런 독특한 글쓰기 방식은 무라카미하루키의 스타일을 연상시킨다.일일이 열거하긴 힘들지만 소재나 어휘에서 구체적으로 보이는 것들도 적지 않게 느껴진다.(대신 하루키는 동물적인 느낌이라면 김작가는 식물적인 느낌?:-)무라카미 하루키는 지금 70대.하루키가 나이먹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걸 감안하면,둘 사이의 갭은 10-20년.일본의 7,80년대의 전성기는 우리의 90년대 정서와 비슷하게 맞아들어간다고 보기에,앞서간 감각들이(물론 그 감각은 또 서양에서 옮겨온 것들이겠지만) 대중문화나 문학에서도 연결되지 않나 짐작하게 된다.단편 모음집인데 한 편을 제외하면 코로나 시절을 빠져나오는 듯한 때에 쓴 최신 글 들이다. 그토록 평범하기에 행복할 수 있는 미래를긍정적인 마음으로 성실하게 인내할 수 있다면그것이야말로 다가올 100%에 한없이 수렴하는 미래에 대한 예견이자거꾸로, 현실을 미래에 대한 인과로 돌릴 수 있는 장치인 것이다.이 주제는 전체 단편들을 꿰뚫고 있다.동시에 작가 역시 지겨웠을, 지난한 시간들을 벗어날 외침으로도 느껴졌다.‘희망을 가지자!’유발하라리는 안좋은 미래는 상상함으로서 피해갈 거라고 얘기했다. 결국 미래는 많은 인류가 원하는 방향으로 진화할테니까.마지막 단편에 할아버지가 인간이 240년을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몇 년 전에 아이가 읽고 들려준 ‘기억 전달자’라는 소설이 생각났다.역사라고도 할 수 있는 모든 기억들은 오로지 한 사람에게만 전승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회색으로 기계의 부품처럼 사는 곳에서 마지막 기억전달자가 결국 사람들에게 기억을 다 공유하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내가 보는 세계는 어떤 것인지내가 주장하고 뱉는 말은 정말 나의 본질인지,애써 외면해 왔던 것을 끄집어 내는 기분이 들었다.아이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있는지혹은 무엇을 전달할 수 있을지입을 다물어야 하는지실마리를 찾기 위하여 머릿속을 헤집음과 동시에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