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소담 베스트셀러 월드북 30
조지오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1월
평점 :
품절


농장주와 수많은 농장동물들. 인간인 농장주를 제외하고, 농장동물들은 나름의 체계와 법칙 및 권련관계를 가지고 있다. 개는 사람의 수하 노릇을 하는 것만큼이나 주로 다른 동물들의 부림을 받는 존재다. 말은 힘세고 묵묵하며 돼지는 가장 영리하고 자신의 이익을 재빠르게 챙길 뿐 아니라 사상을 가진 유일한 동물이다. 어느날 인간에게 지배받던 동물들은 돼지들의 선동으로 '자유'와 '권리'를 쟁취하기고 하고 '혁명'을 모두 다 함께 '혁명'을 일으킨다. 그 때 그들에겐 각자 맡은 바 역할이 있었고 모두 동등했다.

혁명은 성공했고 농장주는 쫓겨났다. 자아, 그러면 농장주가 있을 때보다 동물들은 자유로워졌나? 권리가 신장되었을까? 다른 동물들 위에 '돼지들'이 군림하며 그래서는 안 된다면서 혁명모의 때의 신념을 들고 나서는 무리와 돼지천하를 주장하는 무리가 충돌한다. 후자의 우두머리가 나폴레옹이라는 돼지로서 그는 막상 혁명에 큰 공헌을 한 것도 아니고 다른 이의 업적을 가로챈 것에 불과한 존재지만 권모술수에 능하다. 그는 아무도 모르게 양치기개의 새끼들을 납치해 자신만을 따르도록 길들여 놓은, 즉 '무력'을 만들어 두었던 것이다. 무력을 가진 자로서 대화와 타협이 아닌 '폭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나폴레옹 일파는 처음에는 다른 동물들을, 나중에는 같은 돼지내에서도 파벌을 제거한다. 심지어 다른 동물들을 팔아 돈을 벌고 그 돈으로..사람의 옷을 사고 음식을 사고 사람행세를 하기에 이른다.

인간을 혐오하고 그들에 반항해 유토피아를 꿈꾸며 일으킨 혁명의 종말은 어떠한가. 그들이 '반'기치를 내건 모든 것들을 종래는 답습하고 있잖은가. 그 과정에서 흘린 피를 생각할 때 혁명은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된 꼬락서니다. 농장의 '주인'만 바뀌었을 뿐 농장 '구성원'들은 전과 같거나 전보다 더 못한 처지에 놓이고 만 것이다.

여기서 연상되는 것은, 러시아의 공산화 과정과 그 말로다. 인민을 위해 들고 일어나 자본가를 말살한 공산당은 결국 그네들이 자본가의 위치에 올아앉았을 따름이다. 모습과 허울만 바꾸어서 말이다. 공산화에 흘린 피만큼 러시아 인민들은 잘 살게 되었는가? 보다 자유로워지고 권리있으며 행복해졌는가? 붕괴된 소련이 보여주듯이 바뀐 체제는 오히려 더 냉혹하고 비정했으며 부당했다. 원래의 신념대로 내건 이상대로 혁명이 진행됐다면 오죽이나 좋았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조지 오웰의 시대는 냉전시대로서 아직 소련은 붕괴되지 않았었고 자본주의 국가 몇몇에서는 소련을 본받자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해 조지 오웰은 농장과 동물들을 등장시켜 러시아 공산주의의 허구와 추악한 실체를 극명하게 파헤친 것이다. '보라. 이것이 그들의 진짜다.'라고...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보고 나면 공산주의의 열광하던 그 어떤 이라도 한 번쯤 부르르 떨지 않을까. 특히, 돼지들이 사람의 옷을 입고 다른 동물들의 고기를 먹으며 끝내는 두 발로 뒤뚱대던 그 모습에서 말이다...!!

1분중 0분께서 이 리뷰를 추천하셨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를 본 사람들 - 해외현대소설선 2
조엘 에글로프 지음, 이재룡 옮김 / 현대문학 / 2001년 11월
평점 :
품절


개기일식이라는 것은, 과학지식이 없던 고대와 달리 요즘와서는 신기할 것도 없는 그저 드문 자연현상일 따름이지만 어딘지 사람의 마음을 끈다. 일식이 일어난다고 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웬만하면 꼭 보고자 할 것이다. 한낮에 보게 되는 새까만 태양, 둥그런 빛의 테만 남은 '습관적 규칙을 파괴한' 태양을 말이다. 해만큼 규칙적인 것이 또 있을까? 비가 오는 날에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 해는 뜨고 진다. 그런 해가 간헐적으로, 철저한 규칙을 파괴하고 모습을 변형시킨다. 그런 해에게 현대의 짜여진 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희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는 웬지 모를 향수, 그리움이 달에게 먹힌 해를 보면 일어나지 않을까?

<해를 본 사람들>은, 제목처럼 여러 사람들의 일식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묶인 소설이다. 그러나 꼭 '해를 본'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사실 해를 보지 않은 또는 보지 못한 사람이 압도적이다. 게으름이나, 늙어 등이 굽어서 고개를 들 수 없어서, 강박증으로 집을 점검하다가, 썬글라스를 잊어서 눈이 멀어버린 탓에, 직장상사가 갑자기 일을 시켜서, 부모가 일식 따윈 환상이라고 몰아붙여서, 술집에서 뉴페이스와 지식승부에 열올리다가..일식을 알고 일식을 보려고 한 사람들은 각자의 사정에 휘말려서 차질을 빚게 된다.

그들은 왜 해를 보려고 했을까. 규칙성을 일상성을 파괴한 새로움에? 아니면 혹 늘 달보다 밝은 체 도도하던 해가 그 달에게 잡아먹히는 것을 보며 뭔지모를 쾌감을 느꼈던 건 아닐까? 그도 저도 아니면 그저 일식이 희한한 볼거리라 보고팠을 따름일런지도. 내일 정오에 일식이 일어난도고 하면 나 역시 '해를 보려고' 들겠지. 어쩌면 순탄히 볼 수 있을 거야. 어쩌면 어떤 사정에 휘말려 못 볼지도 모르구. 마치 <해를 본 사람들>처럼 말이야..그리고 책 뒤에 내 에피소드를 덧붙일 수도 있을 테지. 아마 나에게만 보이는 마법의 페이지가 되겠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미제라블 1 - 종달새 꼬제뜨
빅또르 위고 지음, 송면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2년 8월
평점 :
품절


어렸을 때 접한 레미제라블, 그러나 당시는 원어제목보다는 '쟝 발쟝'이라는 주인공의 이름으로 더 유명했다. 그래서 친구들끼리 '너 쟝 발쟝 봤니?'라고 물어보지 '너 레미제라블 봤니?'라고 물어보는 일은 드물었다. 중학교 때 도서관에서 레미제라블이라는 책을 집어들어 읽다가 '헉~ 이거 쟝 발쟝 이잖아!'라고 눈 똥그래져서 놀랬던 적이 있다. 문고판 세대의 서러움이 이런 거다.^^;

쟝 발쟝은 교과서에도 실릴만큼 유명한 이야기이고, 특히 빵 하나 훔친 죄로 19년이나 감옥살이를 한 부분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그러나 막상 그 다음 이야기, 쟝발쟝이 어린 여자애를 데려다 기르고 또 쟝 발쟝을 추적하는 형사 때문에 고생하는 내용은 잘 모르고들 있다. 진정한 레미제라블은 그것인데 말이다.

쟝 발쟝은 어린 조카들을 위해 탈옥을 하다가 계속 형량이 가중되어 결국엔 19년이나 감옥에서 산 인물이다. 그가 탈옥하고자 한 이유가 생활능력 없는 혈육들을 위해서인 것만 봐도 그의 심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뭣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통행증에 새겨진 장기복역만으로 그를 편견에 가득찬 시선으로 대한다. 그래서 마음이 황폐해진 그는 결국 자신에게 자비를 베푼 신부의 은촛대를 훔치기까지 한다.

신부가 만약 그를 감싸주지 않았다면 그는 영영 비뚤어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량한 신부의 마음이 쟝 발쟝을 구원했고, 이후 쟝 발쟝은 여관에서 혹사당하던 가엾은 천덕꾸러기 여자애에게 신부에게 받은 사랑을 되돌려준다. 신부가 그랬듯 그 사랑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마냥 베풀기만 하는 사랑이다. 내가 가슴아팠던 것은, 그렇게나 쟝 발쟝이 애지중지한 그 여자애가 나중에 어떤 남자에게 반해서 쟝 발쟝은 안중에더 없었다는 것.(애인이 부모보다 소중하냐..)그리고 잠깐 쟝 발쟝을 알았던 그 남자조차 쟝 발쟝을 믿었는데 그녀는 남의 말만 듣고 쟝발쟝을 죄인으로 의심했다는 점이다. 자신이 받은 사랑이 아무리 커도, 그것을 되돌아 볼 머리와 가슴이 없었던 여자였을까, 그녀는? 아니면 영원히 이기적이니 어린애에 불과했을 따름일까.

쟝 발쟝이 초라하게 죽어가는 끝장면에서, 비록 모든 혐의는 풀렸지만 한평생 남에게 베풀면서 살아온 그의 최후는 너무도 가슴을 쓰리게 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이 더 감동적이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은 싫다. 정말로 심장이 쓰려서 싫다. 레미제라블은 명작이지만 여러 번 읽지는 않은 이유는 그것일 게다. 쟝 발쟝은 선량하고 멋진 사람인데 왜 그리 생이 험난한 것인지, 세상은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 아니라는 시린 진리만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레미제라블을 한 번도 읽지 않는 것은, 그래서 쟝 발쟝을 만날 수 없는 것은 진정 큰 실수다. 그의 사랑 속에서 인간의 가장 고귀한 본성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즈키드 5
아베 미유키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1년 6월
평점 :
절판


아베 미유키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 한참 우리 나라에 야오이라는 장르가 해적판으로 출시될 때였다. 드물게도 원작과 똑같은 제목으로 나왔던 <위즈 키드>는 그저 야오이라면 무조건 읽고 보던 내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었다. 학원물이나 노예물(?)이 전부이던 그 당시 야오계에서 독보적인 미래 sf물 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단지 SF라고 좋아했을리는 없다. 얼핏 거칠고 복잡한(지금은 섬세하고 복잡하지만)그림체 속에 숨겨진 섬세한 감정들의 격류. 그 감성이 나를 매혹시켰던 것이다. 진이나 수민(부득이 해적판 이름.^^; 해적판은 4권까지밖이라 완결까지 2권은 정식판으로 봤음에도 해적판 이름이 더 기억에 남아버렸다.-ㅁ-;)은 알고보면 원수지간이다. 부모 세대의 은원이긴 하지만, 진이라는 신인류를 지켜내기 위해 연구원이었던 수민의 아버지와 일가족이 몰살한 것이다. 다행히 그들은 끝까지 그 사실을 모른다. 그것만이 아니라도 그들 앞에 고난은 차고 넘치니 진정 다행이라 할 것이다.

어쨌든 서로가 서로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려 하는 두 사람의 사랑이 가슴아프면서도 보고 있자면 너무 이뻐서 웃음이 났다. 수민과 진 외에 가이와 성빈의 사랑이 또 아주 진국(?)이었는데, 17세란 나이에 안맞게 어른스럽고 능글한 성빈이 자기보다 십 수년은 더 산 단순무식형 가이를 다루는 모습이란..후훗.

지구 모든 것이 파괴되고 살아남은 인간들은 지하에 도시를 만들어 살게 된다. 그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이 도쿄도시. 그것을 총괄하는 컴푸터 시스템을 만든 것이 바로 우씨 일가다. 그 일가는 근친 결혼으로 피가 너무 진해져 결국 두 남매만이 남는데, 우성빈과 우혜빈이 그들. 그 중 우혜빈(누나)은 도시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아버지의 연구를 이어받아 신인류(일명 0넘버라 불리는 진과 같은 류의 초능력을 보유한 자들)를 개발하는 데 힘쓰고 성빈은 오염된 지상으로 나가 기지를 세운다.

그러나 천재적 카리스마를 가진 그에게 도시의 연구원들과 능력있는 자들이 모여들고 주변의 마을과 함께 지상을 개발해간다. 강화인간, 일명 AP라는 무리는 초록색 눈을 가진 능력자들로 인간보다 뛰어나면서도 만들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인권이 무시된다. 이런 강화인간 중 한 명이 '가이'이며 이 가이가 '성빈'을 지상으로 데리고 나온다. '진'의 양부는 이런 강화인간들을 만들어내는 박사였고, 진 역시 강화인간으로 생각되다가 나중에 '신인류'임이 밝혀지면서 도시인들의 노림을 받는 것이다.

환경파괴와 유전공학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따뜻한 인간과 인간의 문제를 그리고 섬세한 사랑을 그리고 있기도 하다. 아베 미유키님의 만화 중에서도 특히 재밌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1~4권까지와 5,6권 사이의 연재년도가 꽤 차이가 나서 그림체가 무척 다르다는 문제가 있지만 말이다.^^;a

<위즈키드>도 나온 마당에, 옛날 <색다른 사랑> <미팅 파트너>로 나왔던 해적판들도 정식판으로 출간됐으면 좋겠다. <괴로울 땐 별님에게 물어봐>가 제일 먼저 정식판으로 나오다니..으음. 과연 최신작이라서 그런 건가.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옛날 것들이 그림은 거칠어도 감성적 측면에선 더 뛰어나다고 보는데 말이다.

1분중 0분께서 이 리뷰를 추천하셨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유곤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친구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엄청난 광팬이라 <노르웨이의 숲>을 일고 읽고 또 일고 몇 권이라 샀다. 다른 책들도 좋아하면서도 유독 <노르웨이의 숲>만 사던 그 친구가 또 하나 산 것이 바로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였다.

대학 들어와서 그 친구 덕에 하루키를 접한 나는, 옆에서 떠드는 친구 덕분에 어쩌면 세뇌당한 것인지도 모를만큼 그에게 빠져들었다.(친구따라 강남간다던 옛말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시니컬한 말투, 그러면서도 몽상적이고 어찌보면 망상의 기질도 다분한 사고의 발전. 환상인 듯 현실인 듯 흐릿한 경계를 넘나드는 사건들도 좋았다. 그러나 그런 그의 기질이 최고조에 이르는 장편소설에 매료된 친구와는 달리, 나는 하루키의 수필이나 여행기 혹은 단편들이 좋았다.

그의 장편들은 가슴을 지나치게 알싸하고 만들고 종래는 물 먹은 솜마냥 몸이 축 늘어지게 만드는 강렬한 임팩트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필이나 단편은 다르다. 가볍고 부드러운면서도 그 특유의 위트가 있고 망상같은 사고의 전개가 너무너무 매력적이다. 코미디 프로를 볼 때보다도 더 깔깔대며 웃게 만든다. 연필을 보다가 세라복 입은 여고생을 연상하는 그의 사고. 배고픔을 응시하다가 우주적 공허로 몰입하는 그의 사고. 터무니없는 사고 전개지만 나의 그것과도 너무도 유사한 엉뚱한 발상과 발상의 연계는 친근함과 더불어 감탄을 안겨주는 것이다. '내가 쓰면 절대로 이렇게 재밌지 않을 텐데'라고 말이다.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는 내가 좋아하고 익숙한 그의 1인칭이 아니라 3인칭이라 처음엔 무척이나 놀랐었다. 그러나 친구가 이 책을 어찌나 추천하던지, 그녀를 신뢰하기에 나 또한 집어들었다. 결론은, 정말 입이 딱 벌어질만큼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어떤 한계가 느껴지던 그의 소설은 하나의 벽을 넘어섰다는 기분이 와닿으며 그가 마치 신인작가로 거듭난 것 마냥 신선했다. 정말로 하루키이면서도 하루키가 아닌 어떤 사람의 글을 접한 느낌이었다. 중년을 훌쩍 넘어 노년으로 치닫는 나이지만 그의 왕성한 정신은 쇠퇴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회춘하고 있는 것 같다.

고베 지진을 배경으로 한 짤막한 단편들의 모음. 처음엔 그냥 읽다가도 끝에 가선 그것이 지진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일어난 일임을 알 수 있게 만듦으로써, 각 단편들을 유기적으로 묶고 있다. 벌꿀파이라는 단편은 제목만큼이나 가장 달콤하고 따뜻해서 최고로 마음에 들었다. 그가 고양이랑 노는 수필이나 빵가게 습격을 읽는 기분이 들었달까. 그치만 단편들 중에서 제일 하루키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 것이 바로 벌꿀파이다. 그가 이렇게나! 완벽하게 행복한 소설을 그리다니 말이다!!!!!!(글쎄, 수필도 아닌데 말이지!)

단편 모두가 각각의 특색을 가지고 지진이라는 자연재해와 그것이 유발하는 대참사를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든다. 뭐, 딱히 계몽적이라거나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다. 사실 고베지진이라는 것은 번역자나 출판사나 강조하는 것이지, 작가 자신은 별로 강조하고 있지도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