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화원 네버랜드 클래식 11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지음, 타샤 투더 그림, 공경희 옮김 / 시공주니어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릴 때 계몽사에서 출간된 세계 명작 100선을 어머니가 사주셨다. 유럽, 미국, 인도, 일본, 중국의 유명한 소설 및 민화들을 엮은 그 책들은 호기심 많았던 어린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고, 나는 그 책들을 외울만큼 읽고 또 읽었었다. 낯설고 신기하고 매력적인 그 이야기들 중에서 특히 끌렸던 것은 영국 쪽 소설들이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소공자, 소공녀 등 귀족과 하인이 나오고 파티와 티타임이 등장하는 그것들은 묘하게 마음을 흔들어놓았었다. 특이하고 이색적인 풍물이라면 오히려 아라비안 나이트나 인도민화집쪽이 그러했는데도 말이다. 환생론자인 내 생각엔 나의 전생이 영국인이었나 싶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니겠고 아마도 취향의 차원일 게다.

아무튼 그런 영국 소설들 중에서도 유독 빠져든 소설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비밀의 화원>이다. 커서도 가끔씩 읽고 있으며 이번에 네버랜드 클래식에서 출간된 양장본을 구입하기까지 했다. 초록색의 예쁜 책을 들고 기뻐하며, 이 책의 어디가 그렇게 내 마음을 잡아끄는 걸까? 라는 진지한 물음을 던져보았다. 일단은 주인공일 것이다. 프랜시스 버넷의 또다른 소설들인 소공녀나 소공자와는 달리, 비밀의 화원의 주인공 메리는 밉살맞고 못생긴 어린애다. 세라 크루나 세드릭처럼 아름답지도 상냥하지도 사람들의 호감을 받지도 못한다.

그러나 성장배경의 문제로 약간 삐뚤어졌을 뿐 천성이 나쁜 애는 아닌, 그저 외롭고 뭐가 옳고 그른지를 몰라서 심통을 부리는 그런 아이다. 어릴 때는 세라나 세드릭이 더 좋았지만, 커서는 메리 쪽이 좋아져버렸다. 내가 그다지 잘나지 못한 탓이라고 해도 좋지만, 그것보단 안아주고 싶고 애정을 쏟아붓고 싶달까.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그 애가 안쓰럽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다. 무엇보다 울새와 친구가 되면서부터 서서히 자신을 해방한 메리가 디컨과 마사, 콜린 등과 친해지면서 점점 변해가는 모습이 참 보기좋다. 삐쩍 마르고 혈색 나쁜 불퉁한 표정의 외모에서 생글거리는 혈색 좋은 외모로 바뀐 것도 흐뭇하고 말이다.

메리 외에 동물들과 교류하는 쾌활한 아이 디컨이나 병약한 신경질쟁이 도련님 콜린도 내 맘을 끄는 흥미로운 아이들이다. 메리와 콜린, 디컨이라는 너무 다른 세 아이가 비밀의 화원을 가꾸며 우정을 쌓아나가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건강해졌으면서도 병약한 체 하고 싶은 콜린을 위해, 디컨네 어머니가 준 감자를 구워먹는 장면은 얼마나 부럽던지! 시골 외갓집에서 사촌들과 어울려 짚불에 고구마를 구워먹던 게 연상되서 더 그랬다. 정원에 여러가지 식물을 심고 그것들을 가꾸는 장면을 읽자면 나 또한 참을 수 없이 정원을 가지고 싶어진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흙냄새를 들이키며 부드러운 흙을 손에 묻히고 싶어지는 것이다. 흙장난을 치면 야단맞는 도시의 아이들, 그리고 흙과 너무도 멀어진 어른들. 태곳적의 향그러운 내음이 비밀의 화원을 읽는 사람들을 홀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배경인 런던 요크셔주의 무어(황무지)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확 트이는 넓고 넓은 황량하지만 아름다운 대지다. 울긋불긋 꽃이 핀 무어 속에서 자유로이 돌아다니는 디컨과, 그런 디컨에 교화되는 메리와 콜린. 무어의 끝자락에 위치한 커다란 저택은 늘 무어의 바람으로 가득할 것이다. 그리고 근엄한 집사 피처씨, 딱딱한 가정부, 촌뜨기 하녀들, 정원사 같은 영국 대저택의 일꾼들도 가끔씩 찾아오는 고독한 주인 아치볼드 크레이븐도 그 저택을 채우고 있겠지. 이런 영국적인 이미지는 야릇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제와서는 비밀의 화원 때문에 '무어'가 그리운 것잊지 '무어' 때문에 비밀의 화원에 이끌리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좋아하는 영국 소설 중에서 가장 영국적인 낭만이 담긴 비밀의 화원, 나는 아마 수십 년 후에까지도 비밀의 화원을 손에서 놓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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