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세번째 여성. 애니와 엘리자베스까지 읽었다. 책이 살해된 여자들의 궤적을 좇아간다는 점에서 읽는 기분은 무거울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책을 엄청 흥미롭게 만드는 점 몇가지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 여성들이 그런 죽음을 맞으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삶을 살았다는 게 첫번째. 시대가 여성에게 허락하지 않은 욕망(여자가 술을 마시는 것, 혼외관계를 했다는 것)을 따랐다는 것만으로 여자들의 인생이 뒤집히고 쌓아온 기반이 무너져 내려가는 걸 실시간으로 읽어 나가는 게 웬만한 소설 못지 않게 극적이다. 이 고증을 읽어나가는 것만으로도 힘이 생기는 기분이 드는 건 편집자가 편지(yes24 책아 미안해 2022 참고)에서 말한대로 피해자들에게 존엄성을 되돌려주는 작업이기 때문이겠다. 동시에 19세기 여성 빈곤층, 여성 노동계급의 실상을 읽는 것이 읽는 나의 위치성, 실상을 파악하는 것으로 환원되는.. 정희진 선생님의 책을 다시 읽고 있어서 그렇다. “지독한 위치성을 인식하는 일, 이것이 앎의 본질이다.”
“홈리스에 대한 편견도 공간을 소유해야 시민권을 갖게 되는 자본주의 사회원리의 산물”
“구조적이든 개인적이든 지배/피지배의 인간관계는 문명의 조건”
“역사는 독자의 수준에 달려있다. 지금도 마찬가지.”
“자신의 자리가 포지션이라면 이를 인식하거나 이동하는 과정이 역지, 포지셔닝이다.”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중에서
이 여성들이 연쇄 살인마에게 죽임을 당하고 매춘부로 호도되기 전까지 겪은 사연이 제각각으로 안타까운데.. 이렇게 한데 모아놓고 보면 모두에게 동일한 억압논리가 작동한 셈이다. 부부 중 누구에게 귀책 사유(음주, 남편의 외도, 아이가 없음)가 있든 기혼 여성이 가정을 떠나게 되고부터는 생계유지와 계급적 측면에서 고립되기 시작한다. 빈민층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조금이나마 일신의 안전을 도모하려면 남성 동반자를 구해야하고 그 관계는 자연히 혼외관계가 되어 결국 사회적으로 신뢰를 잃게 된다.(“결함이 있는 여자”) 시설(구빈원)에 들어가 통제를 받고 높은 가능성으로 남성 관리자에게 착취를 당하며 살거나, 거리에서 살면서 성매매를 하든 어느 경우의 수에도 여자는 굴레를 진다.
“빅토리아 시대 런던의 노숙자는 누구나 비참하고 불행했지만, 폴리 같은 여성 노숙자는 성폭력의 위협까지 감수해야 했다. 남성 보호자 없이 혼자 살거나 거리에서 살아가는 여자는 버림받은 사람으로 여겨졌고, 그래서 결함있는 사람으로 여겨졌으며, 결국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성적으로 부정한 사람으로 치부되었다. 그런 여자는 음식과 숙소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마다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 사회 모든 계급의 철석같은 믿음이었다. … 심지어 그런 여자에겐 동의를 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92
“중독이라는 수치,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의 수치, 거기다 이제는 어머니와 아내로서 실패했다는 수치까지 더해졌다면 애니가 가족과 친밀한 관계를 맺기는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 기독교 교리를 따르고 품위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가족 안에서 애니는 자신이 구원받을 수 없을 만큼 타락했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 시대의 여자다움 기준에서 애니는 실패자였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도, 집안 살림을 맡은 아내로서도 무능력했고, 그 누구도, 심지어 저 자신도 보살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술을 마시는 여자는 혐오의 대상이었고 “자신의 가장 야만스럽고 꺼림칙스러운 기호를 겉으로 드러내는” 사람, “육욕에 사로잡혀 … 여성다움을 잃은” 사람이었다. 165-167
“폴리 니컬스의 경우에도, 애니 채프먼의 경우에도 그들이 성매매를 했다거나 스스로를 매춘부라고 칭했다고 말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잭 더 리퍼 피해자의 공상화된 이미지들에서는 애니가 가슴이 드러나는 웃옷을 입고 뺨을 붉게 화장한 채 가스등 아랫에서 유혹적인 눈빛을 던지며 “길거리 호객”을 한 것으로 그려졌지만, 이는 거짓이다. 176
저자는 그동안 사회가 피해자에게 찍어 온 낙인을 단호하게 반박한다. 지금도 피해자에게 거짓 이미지만 한겹 덧씌워 상황과 증거를 면밀히 들여다보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대중 또한 그러려니 하지 않나. 이 다섯명의 이름을 불러 삶을 들여다 보는 것은 이 꺼풀을 벗겨내는 작업이다.
그러다 1870년대 들어 알코올 중독이라는 개념이 알려지면서 습관성 음주가 전보다 부정적인 의미를 띠게 되었고, 특히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공개적인 취태는 인격타락의 징후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이제 음주는 그 사람의 ‘무절제한’ 본성과 무딘 판단력, 나약한 정신력, 불성실함의 결과였다. 그런데 이보다더 중요한 변화는, 음주벽이 가난하고 ‘상스러운’ 노동자 계급과 결부되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결혼 후의 애니처럼 중산층 정체성을 희구하던 사람들은 대개 의존증이 심해질수록 그 사실을 부정하거나 감추려 했고 또 얼마든지 감출 수 있었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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