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다섯째 아이>를 다시 읽었을 때.. 나는 이상하리만치 벤이 무구한 아이로 느껴졌다. 어쩌면 그것이 이 소설의 핵이었을까,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괴물들>, 레싱 부분을 들추어 본다. <금색 공책>은 읽고 싶은데 읽고 싶지 않네ㅋㅋ
좋은 문학 작품이, 아니 좋은 글 한 편이 해야 할 일은 내가 느껴야 할 것 같은 감정이 아니라 실제로 느끼는 감저오가 살아 있는 경험을 대신 드러내 주는 것이다. ... 어쩌면 부분적으로는 누가 말하는지에 따라 다르다고도 생각한다. 레싱은 이 부분에서 중요한 일을 해냈다. 대체로 가사 노동에 시달리는 익명의 여성들에게는 이렇게 직접적으로 느낀 경험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사기꾼 같다는 느낌, 엄마 역할을 거부하고 싶다고 말하는 이 조용한 목소리, 그 경험 속에서 나도 살았다.
애나/도리스-저세상에 계신 도리스 여사님, 자꾸 이 둘을 통합하려는 저를 용서해주시길-는 아이와 함께 갇혔다느 느낌을 너무나 실감 나게 묘사한다. 하지만 도리스 레싱은 아이들을 버리지 않았었나? 그 사람이 엄마이자 작가로 사는 사람의 피로와 무기력을 어떻게 알지? 하지만 사람의 일은 그렇게 간단히 판단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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