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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쓸모 -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들
박산호 지음 / ㅁ(미음) / 2023년 2월
평점 :
소설의 쓸모는 나도 잘 안다고 생각한다. 쓸모를 논할 일도 아니고, 없어도 상관 없다는 걸 안다. 한 시절을 나게 해주었던 가슴 속 소설 한 권이라면, 그 이상 말이 필요할까.
이걸 제목으로 한 데는 이유가 있을 테다. 어디서든 효율, 동선, 능률, 가성비와 최적화를 찾는 세태라서 그럴지 작가가 이 독후 에세이에서 얘기하는 소설의 쓸모는 남다르게 다가온다.
저자는 스릴러를 전문으로 번역하시는 분인데 나는 저자가 번역한 책 중 스릴러는 아닌, <자기만의 산책>을 재밌게 읽고 나서 이 번역가님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아직 목록에만 올려 둔 <토니와 수잔>도 좋아했던 영화의 원작이 된 책인 줄 여기서 알았네.) 코르셋과 치마 입고 하루 종일 걷고 산을 오르던 빅토리아 시대 여자들의 발자취를 좇아가는 그 책을 읽는 게 그렇게 짜릿했고 그 덕에 번역가의 다른 책들도 따라 다녔다. 지금은 연재를 쉬고 계신 (듯한) 모 포탈의 연재 콘텐츠도 재밌게 읽었고, 여러가지 이유로 이 책 나왔을 때 반갑게 집어들었다.
즐겁게 책 읽어 본지가 언제인지.
물론 요즘의 나도 좋은 책들, 가슴과 머리를 열어주는 책을 보려고 노력한다. 그치만 책을 처음 펼치는 마음이 일견 비장한데다 읽다 보면 자주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이 생긴다. 활자와 멀어지는 일상에 대한 보복심리로 겨우 몸을 일으켜 책을 어기적어기적 고르는 상황이라 즐거운 읽기와는 다소 멀다. 그런 내가 예전엔 책을 어떤 마음으로 봤더라..하는 게 이 책을 읽을수록 새록새록 기억이 난다. 소개하는 책들 중 읽지 못한 소설에까지 공명하게 된다. 소개하는 책이 재밌을 거 같아서, 좋은 리뷰라서, 혹은 소설의 쓸모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설 읽는 독자의 재미 자체에 이입하게 되기에.
읽는 동안 시간이 얼마 흐른지도 모르다가 고개를 들고서야 목이 뻐근하다는 걸 안다. 읽으면서 이런 사람, 저런 사람 구경하고 조금씩 그를 알아가며 어떨 때는 아주 속을 모를 사람 누구를 닮았다는 생각이 머리를 들기도 하고. 실제로는 마주칠 일 없는 사람일지라도 소설에서 만나면 내키지 않아도 이이를 따라간다. 그 시절엔 이렇게 살아도 됐다고? 무해하고 결백한(ㅋㅋ) 편견과 사생활 침해를 통해 다른 이를 이해할 구석, 나 역시 이해받을 구석을 하나씩 마련해 갔던 읽기. 읽는 이 각자가 생각하는 소설의 쓸모를 겹쳐보게 하는 에세이다.
AI가 대체할 직업으로 가장 먼저 꼽히는 게 번역가라지만, 글쎄.. AI가 독자마저 대체할 게 아니라면야.(다 해처먹??!!) 어떤 번역가들은 대체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