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는 유난히 버거웠다. 둘째 아이의 고열이 며칠 내내 잡히지 않아 입원했고 초등학생 첫째 아이는 전학을 앞두고 예민할 대로 예민해져있었다. 병원 밥을 안먹어서 피골이 상접한 지경인 둘째만큼 첫째의 속 시끄러움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어떤 (불유쾌한) 외부 자극도 순응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첫번째로 보이는 반응인 아이니 더욱이 그러했다. 적응해서 잘 지내는 곳을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떠나야 한다는 게 세계의 첫 지각 변동일 거고, 그저 내 기우거나 지나친 노파심이라면 좋을 텐데. 이사가 구체적으로 정해지고 나서부터, 나름의 방식으로 이 아이를 안심시켜야 하니 시간과 공을 들여 설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판단했다. 그럭저럭 잘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주 아이는 전에 없이 악몽을 꾸고, 잠결에 하소연했다. 평소에 내가 들어본 말은 응, 엄마, 알았어, 그래, 좋아가 다였는데. 어둠 속에서 내 품에 안긴 아이는 전혀 다른 말을 하며 울먹였고 아침에 눈을 뜨고 나니 아무렇지 않아보였다. 뜬 눈으로 밤을 보낸 게 무색하리만치. 어제 밤에 무슨 말했는지 기억나?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피로했다. 혼자 있어도 혼자 있는 것 같지 않은 느낌. 머릿속이 복잡하기 때문에,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고 기분 전환은 혼자 읽는 것으로 하는 편인데 아무것도 읽지 못했기 때문에? 짬이 난다고 해도 어디에도 집중할 수 없고 누구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으면 하는 볼멘 상태로 보냈던 것 같다. 그 시간들이 나를 좀먹고 있음을 알면서도 도리 없이 자신을 내어주면서.
늪에서 빠져나오려고 서점에서 책을 몇권 샀다. 주문하고 보니 동네 서점의 책들은 배송이 걸리기 마련이라 온라인에서도 샀다. 바뀐 온라인 서점의 상자포장이 더없이 마음에 들었다. 책 크기에 맞추어 박스가 재조립(?)된 형태였고 비닐테이프를 뗄 필요도 없었다. 사소한 것들에 감명씩이나 받으며 배송 온 박스들을 접어 분리수거하고 책들을 차곡차곡 쌓고 꽂으면서 정신 차릴 때쯤 모님이 선물을 보내주셨다. 아. 여기서 솔직해도 된다면 기쁜 마음보다 앞서 나가는 내 호기심. 뭐 고르셨을까? 이미 여기저기서 책을 사댄 내 허기와 보복심리의 연장선에서 급하게 링크를 열었을 때 본 책은, 내가 고른 것과 같은 책. 내 몸은 입원실 보호자 자리에 있는데 마음은 같은 책이 두권인 책상 위(아직 두번째 책이 도착하기도 전인데 망상)에서 두둥실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내가 날 위해 고른 것과 친구가 날 위해 고른 것이 일치한다는 것의 뭉클함. 그대로 말하는 것 이상 바람직한 표현을 못찾겠다. 그렇게 좋았고, 유월 내내 계속 덧났던 내 마음이 일순 달래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