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의 제목에서부터 “엄마”가 등장한다(“밤은 엄마처럼 노래하며 별을 맞으러 나온다”, [예술]). 요즘 같아서는 책 읽다가 엄마같다는 말이 쓰여있으면 경계심부터 품게 되는데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의 시에서는 어떻게 변주될까 궁금했다. 책에 실린 모든 시가 모성을 다루거나 엄마를 언급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목을 볼 때마다 비슷한 감상으로 읽고 덮고 했더니 생각들이 이 쪽으로 자리 잡고 모여든다. “엄마”라는 프레임을 두드리는 몇몇 시들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여기 이 세계에서 모성이란 출산과 결혼을 해야만 성립하는 것처럼, 또 출산하(고 그에 따른 일련의 과정을 겪)기만 하면 완성될 것처럼 여겨지고 나 역시 그 사고 방식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그런 거스러미를 긁고 벗겨내가며 읽는 것 같은 재미가 있다. 


사라 러딕에 따르면, 엄마들은 엄마 노릇에 짓눌려 실재하는 고통을 포착하거나 그럴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많은 사회에서 엄마됨 이데올로기는 여성을 억압한다. 엄마됨 이데올로기는 엄마의 일을 건강과 즐거움, 야망을 희생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정체성으로 정의한다. (…)

엄마들이 갖고 있다고들 하는 “평화로움”은 대개 상냥하고 배려 있는 온화함을 뜻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평화에 오명을 씌우며 엄마가 있거나 자신이 엄마인 거의 모든 사람들을 소외시킨다. 엄마들의 평화로움은 사랑하는 방식일 뿐만 아니라 싸우는 방식이기도 하며, 온화한 만큼 험악하다.“273 사라 러딕 [‘엄마들’에 대해 말하기], <분노와 애정> 중에서














엄마는 본인에게 내재해 있는 여러 부정적인 감정을 엄마로서의 효능감 밑에 두고 엄마 노릇을 수행한다(하고 있다). 근데 미스트랄의 시에 등장하는 엄마는 그런 역할 배분에서 비교적 자유로워 보인다. 엄마의 서늘한 면모랄지(“엄마 마음도 우리 아가 안에서 잠들었으면”[엄마의 슬픔]), 외로운 이를 끝까지 외롭게 두지 않는 모성애의 단면이랄지(“말해다오, 근심 걱정의 눈물을 외투처럼 뒤집어쓴 이가 나 말고 또 있는지”[별의 발라드]). 진정한 어머니라는 사회의 이중잣대, 자기 아이만을 향한 맹목, 혹은 맘충ㅋㅋㅋㅋ 이라는 안팎의 허상과 오명들이 덧칠된 여기에서의 모성상을 미스트랄의 시어들이 비(“하늘이 내린 물의 선물, 가로 누운 마비된 이 땅을 향하여”)처럼 씻어내리는 듯하다.


참,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의 이름을 처음 알았던 것은 그림책 덕분이었다. 노벨상 수상작가 미스트랄의 클래식 그림책 세트 중 <빨간 모자>.(노벨상&세트 으아 두 단어가 막 충돌한다ㅋㅋ) 아, 그림책. 역시 그림책. 그 때는 근데 깊이 읽지는 못했고, 겉핥기 식으로, 노벨문학상? 여자? 라틴 아메리카? 아이들 대상으로 쓴 <빨간 모자>를 원작에 이렇게 충실하게 썼다니! 놀랐던 기억이 있다. 





























시집으로 돌아와서, 엄마됨은 내가 즐길 수 있는 주제는 아닌지라 사실 내게 가장 깊이 남아 있는 시는 [블랑카 언니에게]다. 언니에게 “내가 살던 곳의 흙을 가져와” 달라면서 “길이 엇갈릴 수 있으니 언니는 우뚝 서있어”라며 당부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화자는 언니를 만나러 갈 날과 상황을 예비해둔다.

“내가 가면 들판이 얼지 않는 초여름,/ 훈훈하게 바람 부는 날일 거야./ 어쩌면 언니 꿈 언저리에라도,/ 사랑을 품고, 아무런 말이 없이.” 

그렇게 만날 수 있는 상대는 흔치 않다. 꿈을 언급한다는 점에서 만날 수 없으려나 싶고. 그런 불가능성을 감당하고라도 부탁한 흙을 쥐고 기다려 줄 사람이 블랑카 언니겠지. 여기까지 읽노라면 내게도 그러했던 사람들 몇몇이 떠오른다. 꼭 언니가 아니라도, 예고 없이 찾아가도 놀란 기색을 않던 이, 맥락 없이 연습장을 북 찢어 보내던 편지. 울다가 전화를 뚝 끊을 수 있었던 통화들 말이다.

자매애를 경계하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언니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여자로 사는  좋은 점 중 하나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뒤늦게 깨달았지만 어떻게 보면 나는 늘 언니를 찾아다녔던 셈이다. (혼자 망상으로나마) 누군가를 내가 찾아갈 언니로 삼는 생각만으로도,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 지금도 가끔 쓰는 방법이기도 하고.


“모든 걸 버린 너와 나/ 그래서 서로를 얻은 너와 나/ 시새움에서 벗어나/ 해방된 삶을 사는 너와 나/ 그 빛 아래 선 너와 나/ 우리는 하나로 짠 면직물 같아” [행복한 여자]


옮긴이의 말과 작가 연보를 읽으며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의 구비진 삶의 궤적을 좇다 보면 어떤 자매로, 어떤 사람으로 남을 것인지에 생각이 미친다. 시집 한 권으로 그의 면모를 다 헤아릴 수 없을테고 이 선집에 실리지 않은 시들이 궁금해진다. 내가 본 슬픔과 허무, 신랄한 깨우침의 시들 반대편에는 발랄하고 대담한 모습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상상해 보는 것이다. 


“잠이 든 여자에게/ 이 세상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더 나은 곳처럼/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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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5-22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그림책 참 예뻐서 저도 좋게 읽었답니다 반갑네요 ㅎㅎ

유수 2023-05-22 18:21   좋아요 2 | URL
서곡님 니나 시몬 게시글에서도 제가 댓글을 달다 말았지만 우리 그림책 얘기좀 해야겠어요!!😍😍

서곡 2023-05-22 1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엌 ㅋㅋㅋ 네 그림책은 마음의 양식 ㅎㅎㅎ

비로그인 2023-05-23 08: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아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