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네거리에 섰던 내 발이 저녁 안개에 속아서 남문을 향하여 걸어가다가 돌아서서 북으로 걸어간다.
아아 북에는 내 경우가 있다. 운명이 있다. 나는 그것을 못 벗는다.”19
문학에서, 어디에서든, 자아와 대면하는 여성을 본 적이 있나? 없는 것 같다. 어렸을 때 해외 문학을 좋아했던 것도 겨우겨우 뒤지면 나오는 그런 사람들 찾는 재미 때문이었을 거다. 그걸 뭉뚱그려 내 취향이라고 오랫동안 오해했다.
방정환의 여성 혐오, 여성 문인 이차 가해 이력(방정환은 ‘은파리’라는 필명으로 김명순이 “남편을 다섯이나 갈았다는 처녀시인”이라며 비난해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 기사 출처-https://m.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211281054011)을 알게 되면서 듣게 된 이름, 김명순의 에세이가 책으로 나온다고 해서 펀딩했다.
<사랑은 무한대이외다>의 작가 소개가 적힌 책날개는 김명순의 재능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가득차 있는데도, 글은 그와 대비되게 고독하고 쓸쓸하다. 아는 공식이다.
무한대라는 사랑이 궁금하다. 읽는 것에서부터 시인의 사랑에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나와 내 마음속에 박힌 그림자의 주인과는, 운명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것이다. 두 사람은 선천적으로나 후천적으로나 접근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것을 아는 나는 구태여 내 마음속에 박힌 그림자를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그 그림자의 주인이 눈앞에 보이면, 나는 눈을감을 것이고, 또 가까이 온다면, 나는 피할 것이다. 하나 나는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세상에 나와서, 죽을 때까지 꼭 하나인 그를 꼭 한 마음으로 일초일분도 마음을 고치지 못하고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