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몽실 몽상구름 - 백 번 자살 시도 끝에 살아난 여자의 찬란한 생의 기록
최애니 지음 / 아빠토끼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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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왜 부정적인 것일수록 더 중독적일까.

누군가는 고통을 참지 못해 죽음을 택하지만, 누군가는 그 고통을 품는 삶을 택한다. 이렇게 고통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 중 일부는 가진 고통을 반복 재생하며 크기를 키워낸다.

'고통'을 담는 그릇이 커질수록 고통도 함께 커진다. 고통의 크기가 더 커지면 다시 담아내는 그릇도 커진다. '우울'이라고 하는 고통이 우리에게 중독성을 부여하고 반복적 고통의 쳇바퀴를 돌도록 만드는 이유는 그것이 '중독성'을 가졌기 때문인지 모른다.

우리의 뇌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지 않는다. 다만 '쾌락'을 유발하는 자극에만 반응할 뿐이다. 게임, 알코올, 쇼핑, SNS 혹은 어떤 사람들...

이것들은 도파민을 강력하게 분비하게 하여 쾌락을 준다. 쾌락은 '행복'과 분명 다르다. 그것은 우리를 좀 먹는 결과를 낫는다. 쾌락이 만든 보상 신호는 반복을 유도한다. 반복은 더 강한 자극없이는 무감각해지며, 기존의 강도에 내성을 만든다. 그리고 그것은 더 큰 쾌락을 요구한다. 우리를 쾌락으로 이끄는 것에는 '좋고 나쁨'이 없지만 '나쁨'이 주는 쾌락은 '피로, 스트레스, 외로움'과 동반한다. 그것들은 이성적인 판단을 억제하는 경향이 많아서 결국 '중독'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어떤 이들은 우울과 슬픔을 곁에 두고 산다. 그것들이 평생 함께 해야 하는 것처럼 따라 다니게 되는 이유는 감정에 대한 익숙함이다. 중독에는 '해독'이 필요한 일이겠지만 어쩐 일인지 '해독'이라는 낯선 감정보다는 '익숙한 고통'을 선택하며 다시 굴복한다.

우울은 감정이지만 어느 순간에는 습관이 된다. 습관은 체계를 갖춘다. 아침에 일어나고, 밥을 먹고, 일을 하는 틈틈히 슬픔을 확인한다. 안주머니 속에 감춰둔 우울과 슬픔을 매순간 꺼내보며, '그래, 어디 안가고 잘 있지' 확인한다.

그것은 루틴이 되어 그 감정에 '정'을 들인다. 마치 이제는 '내것'인 것 마냥 가슴에 잘 품고 다니다가 누군가에게 들키면 안되듯 조용히 혼자서 꺼내 보게 한다.

예전 한 외국 공인광고를 본 적이 있는데, 의욕이 없는 한 남자와 열정적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한 남자가 동시에 등장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나서 결국에 다양한 감정을 표출하는 그 남성이 화면에서 사라지는 내용으로 끝이 난다.

자신만 가지고 있는 꽁꽁 숨겨둔 그 감정은 다른 이들은 모르게 잘 감춰두어 어느 순간 '그것을 잘 숨기는 노하우'는 매우 익숙해진다. 남들도 속이고 스스로도 속이던 어느날 그 속주머니속 감정이 점차 성장하여 목을 졸라온다.

불행이 하나의 위안이되고, 그것이 도피처가 되고, 나아가서는 신념으로 바뀐다. 이때부터 우울은 스스로 만든 세계가 된다. 거기서 신념이 굳어진 세계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은 단순히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관의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에 그렇다.

부정적인 감정은 '확신'을 기반으로 한다. 본래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확실한 것이 없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삶을 불확실하고 부정적으로 볼수록 그것에 대한 적중률은 더 높아진다. 고로 점차 적중률이 높아지면 부적인 사고 방식에 확신을 갖는다. 세상이 잘못됐다는 확신, 내가 피해자라는 확신, 내 고통은 정당하다는 확신, 이 확신은 매우 강력하다. 고로 우리는 슬픔과 분노에 중독되고, 피해자 서사에 몰입하며, 고통받는 나에 몰두한다. 그 슬픔이 유일하게 나를 알아주는 감정이라고 착각한다.

그 세계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하는 것은 억지 긍정이 아니다. 어쩌면 '다른 선택의 가능성'을 볼 수 있는 '눈'이지 않을까 싶다. 만약 우리가 다른 세계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는 '눈'을 갖지 못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따뜻하고 익숙한 지옥에 다시 자리하게 될지 모른다.

'몽실몽실 몽상구름'에스는 백 번 자살 시도 긑에 살아난 생에 대한 기록이 적혀 있다. '최애니'작가는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고백하며 스스로의 감정을 언어로 전환해 나간다. 이 글이 어떤 이들에게는 위로가, 어떤 이들에게는 공감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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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근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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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읽는 아주 단순한 이유는 '오락성' 때문이다. 작품은 문학적 깊이나 실험보다는 몰입도와 서사 전개가 중심이다. 글은 군더더기 없고 깔끔하다. 불필요한 수식이 없고 직관적이며 스토리라인도 직선적이다. 고로 문자가 넘어가지 않아서 다시 뒤로 돌아가서 읽는 경우가 거의 없다.

독서를 쭉쭉 뻗어가게 하는 힘은 '책태기'를 아주 효과적으로 극복하도록 만든다. 시각적 설명보다는 사건과 대화 위주의 전개가 많아 영상처럼 읽히는 느낌을 준다. 복잡한 메타포나 설명도 없다. 미스터리 장르의 전형적인 구상을 따르되 클리셰를 재료로 써도 질리지 않는 꽤 희한한 매력이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게이고'의 책을 다시 읽은 이유는 앞서 말한, '책태기' 때문이다. 글이 잘 안 읽히는 느낌이 들 때, '게이고'의 작품 두어개를 보고나면 말끔하게 치료가 된다. 이후 다시 '책벌레'처럼 글의 몰입할 수 있게 된다.

게이고의 '비정근'이라는 소설을 들고 침대에 뒹글거리며 책을 읽다가, 초등학교 2학년 우리 딸이 옆에서 보고 있는 책을 봤다. 아이는 '전천당'이라는 초등학생 소설을 보고 있었는데, 얼핏 글자 크기와 테스트의 양이 더 많아 보인다.

게이고의 책은 출판사 의도가 담겼는지 모르겠지만 책의 두께에 비해 책이 가볍고 종이질도 가볍다. 고로 벽돌책처럼 보이는 외관에 비해 페이지는 많지 않고 '탁, 탁' 책장을 넘겨 가는 재미도 있다.

'비정근'이라는 소설은 역시나 나의 최애 작가 '게이고'의 단편 모음이다. 총 6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벼운 분량, 빠른 속도감은 여전하다. 추리소설 작가를 꿈꾸던 비정규직 초등학교 교사의 내용이다. 정규 교사가 휴직하면서 그 자리를 채우는 기간제 교사의 이야기다.

단편 중심의 구성이라 장면 전환이 빠르고 배경이 '초등학교'라 '추리소설'에 맞지 않는 '풋풋함(?)'도 느껴진다. 여섯편을 진행할 때마다 '자신이 누구고 왜 초등학교에 근무하게 되는지, 짧은 소개를 하고 시작한다. 고로 사실상 어느 편을 먼저 펴서 보거나 상관 없는 책이다.

'비정근'은 게이고의 초기 문체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문장의 매우 짧고 간결하다. 복문보다는 단문 위주로 되어 있으며 역시나 대화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게이고의 작품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정서를 묘사하고 내면 묘사가 많아지는데 초기의 작품은 배경도 감정도 모두 생략되어 표면적이고 직설적으로 글을 써 내려간다. 고로 게이고의 작품도 후기 작품을 보게 되면 생각만큼 가볍게 읽혀지지 않는 작품도 더러 있다. 다만 '비정근'은 그의 초기 작품답게 쉽고 간결하다. 그냥 가볍게 주말 오전에 뒹굴거리면서 봐도 괜찮다. 아이가 옆에서 인형놀이를 하며 시끄럽게 떠들어도 몰입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최근 읽는 글들이 꽤 묵직한 글들이 많았는데 이럴 때 한번씩 힐링하게 하는 책이다. 꼭 나와 같은 다독가가 아니라 '가볍게 독서를 취미로 해볼까'하는 사람들에게도 아주 좋은 시작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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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혜린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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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안에는 두 개의 세계가 있다. 하나는 빛의 세계. 다른 하나는 그림자의 세계. 데미안의 '주제'인 '빛과 그림자'는 융 심리학의 핵심과 연결되어 있다.

구스타프 칼 융의 '그림자 이론'은 인간의 무의식 속에 억압된 자기 부정적인 측면이나 받아들이기 싫은 모습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령 질투라던지 분노, 욕망, 열등감 같은 그런 감정들 말이다.

헤세가 '데미안'을 집필하는 동안 칼 융과 직접적인 교류는 없었다. 다만 융의 제자인 '요제프 랑'에게 정신 분석 치료를 받고 있었다. 1919년 '에밀 싱클레어'라는 필명으로 '데미안'을 출간한 후 2021년 헤세는 융과 직접적인 서신을 교환하고 만남도 가졌다. 이후 융의 영향을 받아 '데미안'을 본명으로 재출간 한다.

한 사람 속에 있는 두 개의 세계.

빛과 그림자. 이 둘이 부딪히고 갈라지며 자신에 대한 자각을 하게 된다. 이것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줄거리다.

간혹 그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래서 줄거리가 뭔데?'하는 질문 말이다.

노인과 바다는 노인이 낚시하는 그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어린왕자는 어린왕자가 그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여정이다. 카프카의 변신은 한 남자가 벌레가 되어 버린 이야기이고, 도스토옙스키의 죄와벌은 사람을 죽이고 괴로워하는 이야기다. 표면적으로 보면 단순한 서시지만 독서란 그 표면 넘어에 있는 것을 얻어가는 과정이다. 고로 사색이 없는 독서를 하게 되면 '고전'은 시시한 이야기일 뿐이다.

'데미안'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는 내면의 목소리에 흔들리는 인물이다. 즉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평범한 부모의 보호 아래, 선하고 도덕적인 세계에서 아무런 의심없이 살아가던 '싱클레어'는 아주 사소한 거짓말을 한다. 이 거짓마른 작은 균열을 만들고, 그 틈으로 점차 어둠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때 '데미안'이 등장한다. 데미안은 '악'에 대항하는 '선'처럼 느껴진다.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악'과 '선 '사이에 끊임없는 고통을 받는 '싱클레어'는 결국 이 두 세계를 나눈다. 그리고 이 둘을 오고 가며 방황한다.

이후 결국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 '하나'의 선택이 아니라 '둘의 통합'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융의 심리학에서 말하는 '그림자 통합'이다. 이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조금의 배경지식이나 사색없이 이 책을 읽는다면 책의 마지막 부분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지 못한다. 표면적으로 '나쁜 친구를 만나지 않아야 한다'는 상당히 어긋난 결과를 도출할지도 모른다. 다만 '싱클레어'가 겪는 고통이란 단순히 '사춘기 방황'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자기존재에 대한 반황'에 가까운 내용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새는 자신을 말한다. 알을 깨는 것은 '선이든 악이든, 자신을 구분짓는 것들'을 말한다. 고로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 자체를 깨는 것은 외부가 나에게 부여한 구분이다. 부모, 종교, 학교, 사회에서 구분한 '선과 악'에 의해 스스로를 규정하고 살아가느라 자신의 속에 있는 빛과 그림자 중 하나를 부정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그 둘 모두가 우리 내부에 실재하는 것이며 그것을 하나로 통합해야만 '완전한 자아'가 된다는 사실이다.

좋은 사람이 되려는 집착, 도덕적 인간이라는 허위,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고자하는 의식 이런 것들 깨고, 내부에 그런 것과 모순되는 실재들을 인정하며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예전에 '노인과 바다'를 썼던 '헤밍웨이'에게 '물고기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고, 노인의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 바다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기자가 물었던 적이 있다.

헤밍웨이는 이렇게 답했다.

"노인은 그냥 노인이고, 바다는 그냥 바다고, 물고기는 그냥 물고기일 뿐이다."

사람들은 무엇이든 상징으로 해석하려고 할 것이고 작가 스스로도 그것을 금하려 하지 않겠지만 작가는 그저 그런 이야기를 쓰고자 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물론 작가가 작품 속에 어떤 의미와 해석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고 해도 독자는 그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 낼 수 있다.

새해 아침이면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어떤 이들은 다짐을, 어떤 이들음 자연의 경이로움을, 어떤이들은 세월이 지나는 허망함을 느끼겠지만 '신년에 떠오르는 태양'이 의미를 숨기려 들지 않는 바와 같다.

의미란 독자가 스스로 바라보고 깨닫는 것이지, 작가가 출제의원이 되어 출제자의 의도를 숨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고로 한 작품에는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으며 작가의 의도 또한 그 여러 해석 중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정답이 아닌 여러 해석의 시도 중 하나일 뿐이며 우리의 몫은 작가가 숨겨둔 장치에 대한 퀴즈를 맞춰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면에 감추고 있던 여러 생각을 끄집어내는 매개체로 독서를 선택해 나가는 것이다.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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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리는 사람의 다이어리 - 좋은 관계를 만드는 21가지 비밀
이민규 지음 / 더난출판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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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의 구조화

첫째, 알아차린다.

둘째, 선택한다.

셋째, 실행하고 기록한다. 

결국 습관은 반복이고, 반복은 구조화 속에서 이루어진다.

행위를 반복 할 수 있는 구조가 짜여지면 습관이 형성되고, 습관이 형성되면 반드시 사람은 바뀐다.

기록을 생활화하면 가장 체감할 수 있는 것은 '같은 고민을 두 번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령 무언가를 하기로 할 때, '할까, 말까'를 수십번 수백번 고민할 때가 있다.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가도, '굳이 해야하나...' 생각이 들 때가 있고, '하지말자'라고 생각을 했다가도, '그래도 하는 게 좋지 않을까...'하는 갈팡 질팡하는 마음.

이런 마음이 드는 이유는 단순하다.

'확실하지 않아서 그렇다.'

마치 막연하게 세자리 숫자 두 개를 곱하기 할 때, 머리를 잘쓰면 정답을 찾아 낼 수도 있다. 다만 그게 정확한 답인지는 아리송하다.

정확한 정답이라는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에 이미 했던 계산을 다시 머릿속으로 굴린다. 불확실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머릿속으로 다시 계산하고 암산한다.

며칠이 지난 뒤에, 내가 내린 계산이 모호해지만 다시 그것을 계산한다.

이 무한대로 소모하는 불필요한 에너지를 해소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이렇다. 연필과 종이를 꺼내어 그 위에 계산식을 적고 오류가 없는지 검토한 뒤에 주머니 속에 넣어두는 것이다.

계산식은 오류가 없음을 증명하고 확실성을 보장한다. 주머니속 종이는 머리속 메모리 공간을 최소화 시켜주고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하게 도와준다.

이것이 어쩌면 쓰기의 힘이지 않을까 싶다.

어떤 상황이던 '좋은점'과 '나쁜점'은 반드시 있다. 하물며 로또 1등 당첨에서도 단점이 분명하게 있다. 세상만사가 장단이 모두 섞인 다면적인 모양을 하고 있으니 그것의 다면을 다 적어보고 가시화하여 판단하는 것은 몹시 중요하다.

예전 '힐링캠프'에 프로듀서 박진영이 나와 했던 말이 있다. 전자기기를 사더라도 사용설명서를 꼼꼼하게 살피고 사용해야 하는데, 정작 우리는 '자신'에 대한 사용설명서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장점과 단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메타인지능력이 무엇보다 주요하다. 그것은 단순히 걸어가면서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기억해두는 수준이 아니라 어딘가에 기록하고 가시화하여 그것을 소장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런 행동을 반복하면 습관이되고 습관이되면 사람은 바뀐다.

이것이 일기쓰기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일기는 나의 메모리를 대신해주고 나의 계산에 '확실성'을 보장해준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무수한 연산연습'을 해왔는지 모른다.

우리의 뇌가 여타 동물과 어떤 면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의 지능 중 '기억력'이라는 것은 때로 일부 침팬지와 같은 다른 영장류에 비해 뒤떨어져 있으며 공간 형상과 거리 움직임을 감지하는 능력은 돌고래나 박쥐보다 떨어진다. 철새나 바다거북에 비해 방향감각은 엄청나게 떨어지고 어떤 경우에는 직관적 공간 감지력이나 자연 환경 적응력 등이 비교불가할 정도로 뒤쳐져 있다.

우리가 여타 동물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지적 영역이란, 언어, 추리, 계획수립 정도다. 우리의 장점을 잘 알지 못하고 삶을 사는 것은 어쩌면 침팬지나 돌고래보다 떨어지는 지능을 가지고 삶을 대하는 바와 같다.

그러나 어찌 이것을 실천하는 것이 쉽겠는가.

반대로 말하면 이렇다. 그것을 실천하기 쉽지 않다는 것은 반대로 함께 우리와 사회생활을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낮지 않은 장벽이 된다는 의미이며, 우리가 먼저 그것을 넘어서는 순간 여타 인물들과는 비교불가한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지 않을까,

글쓰기는 그런 의미에서 아주 완전한 자기계발 방법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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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개의 말·프라하, 사라져 가는 시
밀란 쿤데라 지음, 김병욱 옮김 / 민음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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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는 1929년 체코에서 태어났다. 음악 교수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에는 문학보다 음악에 더 큰 열정을 가졌다. 이후 이십대 중반이 되면서부터 문학과 철학을 공부한다. 그의 고향은 체코지만 공산 정부가 그의 책을 금지하면서 결국 그는 프랑스로 망명을 가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소설로 세계적인 작가로 인정받는다. 책은 '사랑, 자유, 삶의 이유'에 대한 사유가 들어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말 진지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꾸준하게 던지며 '실존, 정체성, 자유' 등의 주제에 대해 깊이 탐구했다. 그는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삶의 무게'와 '가벼움' 운명과 우연', '기억과 망각'에 대한 철학적 주제를 다뤘다. 특히 문장과 문장, 단어와 단어 하나에도 깊은 사유를 담고자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언어의 정밀함'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또한 번역에 대해서도 예민했다.


좋은 번역이란 무엇일까. 읽을 때, 깔끔하게 떨어지는 번역을 말하는 것일까.

"좋은 번역이라면 번역임을 알아야 한다."

그는 되려 자연스러운 번역이 오히려 작가의 목소리를 지우는 일일 수 있다고 믿었다. 의미를 다른 언어로 전달하는 일에까지 아주 세세하게 신경을 쓰는 그의 글이야 말로 '장인'이 한땀한땀 했던 바느질처럼 느껴진다.

그의 글쓰기는 그가 남긴 89개의 말에 따르면 단순히 이야기를 짜내는 일이 아니다. 언어의 결을 맞춰 사유를 짜 맞추는 매우 섬세한 작업이다. 말과 말 사이의 침묵까지도 의미 있는 여백으로 남겨야 하는 아주 디테일한 표현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사유는 이후 다시 고향 체코와 도시 프라하로 향한다. 그에게 프라하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다. 프하하는 문학과 시의 숨결이 살아 있는 도시였다. 다만 전쟁과 정치, 이념의 충돌 속에서 '밀란 쿤데라'는 자신이 사랑한 도시가 점차 시로서의 얼굴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느낀다.


그가 보기에 프라하는 더 이상 '시'를 말하지 않는 도시가 되어 버렸다. 거리에는 기억대신에 망각이 쌓이고 사람들의 말에는 감성이 아닌 이념이 먼저 자리를 잡게 된다. 그토록 아름다웠던 프라하가 사유의 깊이, 언어의 품위, 문화의 고유함 같은 것들을 잃어가는 모습에 그는 슬픔과 분노를 동시에 느낀다.

그는 프라하가 더이상 '문학의 도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 한다. 물론 도시는 지금도 존재하지만 그 속에 있던 시가 살아졌다는 말을 통해 상실감을 토로 한다.

그는 프라하를 아틀란티스로 비유했다. 사라졌지만 어딘가에는 존재했으며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아틀란티스는 한 때 풍요롭고 이상적인 도시였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이 말한 전설속의 아틀란티스는 지금은 바닷속에 잠겨 사라졌지만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과 상상속에서 존재한다. 쿤데라가 본 프라하도 마치 그와 같다고 봤다.


프라하는 카프카, 하셰크, 차페크와 같은 거장들이 활동하던 문학과 시의 도시이자 상징이었다. 도시의 골목마다 철학과 예술이 숨겨져 있고 거장들의 흔적이 녹아져 있으며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는 깊이가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집어삼킨 전쟁과 독재, 정치 선전으로 모든 것을 상실한 프라하는 과거의 프라하와 완전히 다른 도시가 되어버렸다.

그는 말과 도시 그리고 인간의 기억을 통해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단어 하나가 잊혀지거나 도시 하나가 변화할 때,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어려운 이념이라던지 역사를 말하지 않아도 '문학'이 사라지는 이유에 대해 충분히 생각할 수 있게 한다.


그는 자신의 삶과 문학을 압축한 개인 사전을 통해 말을 지키는 일로 정신과 문화를 지키고자 했다. 단어가 가진 색과 냄새, 뉘앙스가 사라지지 않게 마지막 유고작에 담아내고자 했다.

그것이 바로 '89개의 말, 프라하, 사라져가는 시'다. 이 책은 밀란 쿤데라가 생전에 썼던 산문들과 사전을 담고 있다. 그거 직접 선택한 89개의 단어에 대한 이야기와 그가 사랑했던 프라하가 더이상 시를 품지 않는 도시가 됐다는 사실에 대한 애통한 기록을 담았다.

그에게 단어는 정체성에 가깝다. 사람들이 더이상 쓰지 않는 말, 사라져가는 단어들을 죽기전까지 붙잡고자 글을 썼다.

단어는 그에게 단순한 기호가 아니었다. 정체성이었으며, 기억이고, 사유의 흔적이었다. 89개의 말은 사라져가는 단어들을 통해 사라져가는 도시와 사라져가는 인간의 정신을 필사의 노력으로 붙잡고자한 기록이다. 시를 잃은 도시와 말을 잃은 시대에서 그는 자신이 아끼는 단어 몇가지를 끝까지 붙잡고 저항하고자 했다. 그 흔적들은 짧게나마 느낄 수 있다.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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