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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혜린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7월
평점 :
한 사람의 안에는 두 개의 세계가 있다. 하나는 빛의 세계. 다른 하나는 그림자의 세계. 데미안의 '주제'인 '빛과 그림자'는 융 심리학의 핵심과 연결되어 있다.
구스타프 칼 융의 '그림자 이론'은 인간의 무의식 속에 억압된 자기 부정적인 측면이나 받아들이기 싫은 모습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령 질투라던지 분노, 욕망, 열등감 같은 그런 감정들 말이다.
헤세가 '데미안'을 집필하는 동안 칼 융과 직접적인 교류는 없었다. 다만 융의 제자인 '요제프 랑'에게 정신 분석 치료를 받고 있었다. 1919년 '에밀 싱클레어'라는 필명으로 '데미안'을 출간한 후 2021년 헤세는 융과 직접적인 서신을 교환하고 만남도 가졌다. 이후 융의 영향을 받아 '데미안'을 본명으로 재출간 한다.
한 사람 속에 있는 두 개의 세계.
빛과 그림자. 이 둘이 부딪히고 갈라지며 자신에 대한 자각을 하게 된다. 이것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줄거리다.
간혹 그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래서 줄거리가 뭔데?'하는 질문 말이다.
노인과 바다는 노인이 낚시하는 그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어린왕자는 어린왕자가 그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여정이다. 카프카의 변신은 한 남자가 벌레가 되어 버린 이야기이고, 도스토옙스키의 죄와벌은 사람을 죽이고 괴로워하는 이야기다. 표면적으로 보면 단순한 서시지만 독서란 그 표면 넘어에 있는 것을 얻어가는 과정이다. 고로 사색이 없는 독서를 하게 되면 '고전'은 시시한 이야기일 뿐이다.
'데미안'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는 내면의 목소리에 흔들리는 인물이다. 즉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평범한 부모의 보호 아래, 선하고 도덕적인 세계에서 아무런 의심없이 살아가던 '싱클레어'는 아주 사소한 거짓말을 한다. 이 거짓마른 작은 균열을 만들고, 그 틈으로 점차 어둠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때 '데미안'이 등장한다. 데미안은 '악'에 대항하는 '선'처럼 느껴진다.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악'과 '선 '사이에 끊임없는 고통을 받는 '싱클레어'는 결국 이 두 세계를 나눈다. 그리고 이 둘을 오고 가며 방황한다.
이후 결국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 '하나'의 선택이 아니라 '둘의 통합'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융의 심리학에서 말하는 '그림자 통합'이다. 이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조금의 배경지식이나 사색없이 이 책을 읽는다면 책의 마지막 부분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지 못한다. 표면적으로 '나쁜 친구를 만나지 않아야 한다'는 상당히 어긋난 결과를 도출할지도 모른다. 다만 '싱클레어'가 겪는 고통이란 단순히 '사춘기 방황'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자기존재에 대한 반황'에 가까운 내용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새는 자신을 말한다. 알을 깨는 것은 '선이든 악이든, 자신을 구분짓는 것들'을 말한다. 고로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 자체를 깨는 것은 외부가 나에게 부여한 구분이다. 부모, 종교, 학교, 사회에서 구분한 '선과 악'에 의해 스스로를 규정하고 살아가느라 자신의 속에 있는 빛과 그림자 중 하나를 부정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그 둘 모두가 우리 내부에 실재하는 것이며 그것을 하나로 통합해야만 '완전한 자아'가 된다는 사실이다.
좋은 사람이 되려는 집착, 도덕적 인간이라는 허위,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고자하는 의식 이런 것들 깨고, 내부에 그런 것과 모순되는 실재들을 인정하며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예전에 '노인과 바다'를 썼던 '헤밍웨이'에게 '물고기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고, 노인의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 바다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기자가 물었던 적이 있다.
헤밍웨이는 이렇게 답했다.
"노인은 그냥 노인이고, 바다는 그냥 바다고, 물고기는 그냥 물고기일 뿐이다."
사람들은 무엇이든 상징으로 해석하려고 할 것이고 작가 스스로도 그것을 금하려 하지 않겠지만 작가는 그저 그런 이야기를 쓰고자 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물론 작가가 작품 속에 어떤 의미와 해석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고 해도 독자는 그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 낼 수 있다.
새해 아침이면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어떤 이들은 다짐을, 어떤 이들음 자연의 경이로움을, 어떤이들은 세월이 지나는 허망함을 느끼겠지만 '신년에 떠오르는 태양'이 의미를 숨기려 들지 않는 바와 같다.
의미란 독자가 스스로 바라보고 깨닫는 것이지, 작가가 출제의원이 되어 출제자의 의도를 숨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고로 한 작품에는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으며 작가의 의도 또한 그 여러 해석 중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정답이 아닌 여러 해석의 시도 중 하나일 뿐이며 우리의 몫은 작가가 숨겨둔 장치에 대한 퀴즈를 맞춰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면에 감추고 있던 여러 생각을 끄집어내는 매개체로 독서를 선택해 나가는 것이다.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