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 개념어 사전
유정호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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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드라마 '허준'을 무지 좋아하는데 벌써 20년도 넘은 이 드라마를 벌써 몇 번이나 정주행 했는지 모른다. 이 드라마를 다시 정주행하기 위해서 다른 영화나 드라마는 보지 않으면서 웨이브(wavve)를 몇 번이나 구독하고 있다.

처음 '허준'을 볼 때, 그저 이야기의 흐름만 좇았다. 허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극이 그럴 것이다.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의 맥락이나 사건의 긴장감에만 정신이 팔린다. 하지만 두 번째 볼 때부터는, 귀에 익숙한 명사들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령 '어의', '의녀', '탕약', '내의원', '서얼', '유의', '구안와사'. '혜민서' 등이 그렇다. '의녀'만 봐도 그렇다. '의녀'는 조선시대 여성 의료인을 가르키는 말이다. 다만 의녀는 양반출신은 거의 없고 대부분 사회적 지위가 낮고 대부분이 중인이나 천민 출신이었다. 이들은 공식적인 지위가 낮기 때문에 잡역이나 잡무에 자주 동원됐다. 왕실에서 큰 연회나 행사가 있을 때, 허드렛일이나 서빙을 하기도 했다.

이런 배경 지식은 차후 다른 역사 드라마나 영화 혹은 책을 읽을 때, 종종 사용된다. 즉 어떤 명사든, 그 속에는 역사와 스토리가 숨어있다. 결국 명사는 하나의 세상을 압축한 언어인 셈이다. 우리는 단순하게 '어의'나 '침술', '내의원'의 말을 스치고 지나가지만, 그 말들 각각이 품고 있는 개별적 역사는 깊고 다양한 스토리를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역사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생소한 '명사'와 '용어' 때문이다. 나와 같이 역사 드라마나 소설, 영화를 즐기지 않는다면 '내명부'라는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릴 것이다. '내명부'는 본래 궁중 여성 관리와 왕족을 말하는 용어다. '왕비, 후궁, 상궁, 궁녀, 의녀' 등을 말한다. 이들의 정치적 권한은 사실상 없지만 조선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후계자 결정이나 정보 흐름의 통제 등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즉 '내명부'는 정치 참여가 금지된 여성들이 비공식적으로 정치 활동을 하던 배경이기도 하고 왈실 내의 정치적 역학 관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던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배경을 알고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면 그 재미가 한껏 더해진다. 실제로 역사책을 펴면 낯선 인물이나 생소한 지명, 처음 듣는 사건명이 수도 없이 등장한다. 역사 뿐만 아니라, 철학이나 과학, 문학과 예술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가 결국 명사의 벽을 넘어서야만 한다. 생소한 명사는 진입장벽이다. 다만 이런 진입장벽만 넘어서면 세상은 한층 넓고 깊은 맥락으로 다가온다.

'조선사 개념어 사전'은 바로 이 벽을 허물기 위해 존재하는 책이다. 조선 역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명사와 용어, 인물과 사건을 다루며 독자들의 문턱을 넘어 보다 깊이 있는 이해에 도달하도록 돕는다. 책을 통해 우리는 조선이라는 거대한 세계 속에서 명사 하나하나가 만들어낸 미시적인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본 책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드라마 허준'에 등장하는 '침술'이라는 명사도 예시를 들수가 있다. 명사는 그저 치료 행위가 아니다. 한의학에서 침술은 수백 년간 이어져 내려온 인체와우주의 이해를 압축한 단어다. 이는 드라마에서 아주 짧게 언급하고 지나가기도 한다. '내의원'이라는 명사도 마찬가지다. 그저 궁궐 안의 의원이 아니라, 당시 권력과 의학, 그리고 인간관계가 얽혀 있는 복잡한 세계를 품고 있다. 이런 명사들이 쌓이고 쌓일후록, 이야기는 더 깊고 풍성해진다. 드라마를 처음 볼 때, 두 번째 볼때의 깊이가 달라지는 것도 이런 명사들이 주는 맥락이 더 깊어지기 때문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무심히 넘겼던 어떤 것들이 어느날 문득 나에게 말을 걸어올 때가 있다. 하나의 명사가 삶에 들어오면, 그때까지 보이지 않던 주변의 다른 역사와 이야기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명사가 만들어낸 세계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맥락을 이해하게 되고, 세상의 결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어떤 책을 읽고, 드라마를 다시보며, 더 큰 재미와 감동을 얻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명사를 안다는 것은 결국 그 세계를 이해하게 되는 첫걸음이다. '조선사 개념어 사전'을 통해 역사는 더이상 어렵고 낯선 영역이 아니라 흥미진진하고 깊은 이해가 가능한 이야기로 다가올 수 있다.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 삶은 더 깊고 풍부해진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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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03-10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도서를 읽는 기분마저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