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 제172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스즈키 유이 지음, 이지수 옮김 / 리프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 최고의 괴테 연구가 '히로바 도이치'는 결혼기념일에 한 식당에 방문한다. 거기서 '홍차 티백'에 적현 괴테의 명언을 발견한다.

"사랑은 모근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

이 문장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괴테 연구가로써 평생을 공부를 했음에도 '그 문장'이 괴테가 한 말이 맞는가, 확신을 갖지 못한다. 그 뒤로 문장의 출처와 의미, 사유를 찾기 위한 다양한 과정이 잔잔하게 이어진다.

하나의 문장에 대한 깊은 사유를 우리는 얼마나 하고 살아가는가, 그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역설적이게도 깊은 사유를 하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더 중요한 것들을 놓치가 살아가는가,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라는 책의 특이한 점이라면 '번역체'다. 문장을 읽어 내려가며 꽤 다양한 사람이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인터넷상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책을 읽다보면 아무리 잘 번역한 글이라고 하더라도 '원작자'의 '모국어'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문체'가 녹아 있기 마련이다. '독일스러운 문체'가 있고, '프랑스스러운 문체'가 있고, '일본스러운 문체'가 있다.

소설을 읽는 내


내, 이 책의 원작이 '일본'이라는 생각을 전혀하지 못했다. 한일 양국가 문체의 특징이라면 대체로 주술관계가 짧다. 게다가 일본책의 특징이라면 글이 직선적인 느낌이 있다. 이 책에서는 문장을 풀어가는 과정이 다소 '영미권 번역체'스럽다고 생각했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 봤지만, 어쩐지 혼자만 느꼈던 모양이다.

왜 이 소설은 일본 소설 같지 않았는가,

대체로 감정이나 사유가 직선으로 제시되는 일본 문학의 특징이라면 독자가 인물의 생각을 따라간다는 점이다. 다만 그 생각을 해체하도록 요구받지는 않는다. 이것이 내가 느낀 일본 문학의 강점이다.

'명료함'

다만 이 소설은 그렇지 않았다.

문장은 결론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는 느낌이 없다. 모든 문장이 '보류'된 상태로 다음을 향해 넘어가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방식은 '영미권 번역서'에서 자주 느껴졌었다.

다시 작가 '스즈키 유이'를 살펴봤더니, 세이난가쿠 대학에서 외국어학연구과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단다.

어찌됐건, 다시 소설로 돌아와서 주인공 '도이치'는 그 문장이 괴테의 말인지 단정하지 못한다. 출처를 좇고 번역을 비교하고, 맥락을 살피는 과정은 있으나 명쾌한 해답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저 그 문장을 둘러싼 시간과 일상, 관계를 조용하게 보여 줄 뿐이다. 결혼기념일의 식사, 아내와의 대화, 학자로서의 태도.


무언가 특별한 '스토리'를 기대한다면 이 소설이 성격과 다를 수 있다. 이 소설은 빠르지 않고 결론보다는 유보된 설명이 많다. 이것이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어렴풋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것에 대해 깊이 몰입하다가도 일상을 살아가고, 다시 약몰입 상태로 두었던 주제로 다시 돌아가는 '화두'에 관한 이야기.

이 소설을 읽고 '무언가를 읽었다'라는 느낌보다는 '품격 있는 사람들의 대화'에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살면서 언제 이런 주제를 가지고 이런 깊은 사유의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겠는가, 하며 헛배부르지 않고 든든한 한끼를 챙겨 먹은 느낌이 든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리의 힘 곤도 마리에 정리 시리즈 1
곤도 마리에 지음, 홍성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곤도 마리에'는 꽤 유명한 인물로 '일본'에서만 인지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꼭 정리에 관련된 책이 아니더라도 '그녀'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정리'에 관한 책을 읽다보면 피할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본래 정리에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리'에 슬슬 관심을 가지게 됐다. 나이가 마흔 줄에 들어서면서 느끼게 되는 것이 하나 있는데 점차 '나'에 대해 뚜렷해진다는 점이다.

'나'에 대해 뚜렷해진다는 것은 이렇다. 보통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청소년 시기에는 '가족'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가령 부모님이 먹는 '식사'를 그대로 먹게 되고 집에서 보는 TV프로그램을 보게 되며, 사용하는 물품과 씻는 빈도, 수면 시간 등의 영향을 환경으로부터 받는다. 부모님의 경제력이나 철학에 따라 소비패턴도 달라지고 학교나 친구들도 달라진다. 그러나 마흔이 넘어가면서 '부모님'의 영향력에서는 완전히 벗어나고 자신의 선택으로 환경을 채워 나가기 시작한다.

어떤 물건을 사고 어떤 물건을 버리고, 어떤 곳으로 이사를 가고, 어떤 직업을 선택하는 등. 성인이라면 당연히 스스로 하는 일들로 환경을 채우게 된다.

가만 생각해보면 내가 자랐던 환경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환경은 꽤 다르다. 과거에 '나'는 꽤 불편하다고 생각해던 것들을 '집' 안에 들이지 않고, '와, 이거 뭐지?'하는 물건은 집안으로 들어온다.

일과를 마치고 '서점'에 들러 책을 구경하는 것을 '행복의 시간'으로 여기는 편이라 자연스럽게 집에 책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이 채워지다보니 '귀'를 시끄럽게 하던 'TV'는 'LG스탠바이미'로 두어 옷장 구석에서 좀처럼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거실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소파'이며 반드시 '리클라이너'에 '패브릭'이어야 한다. 책을 받쳐 볼 수 있는 독서 쿠션이 반드시 필요하고 '식탁'이나 '책상'에는 북스탠드가 있어야 한다.

서론이 길었다. 아무튼 이렇게 환경과 주변을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꾸밀 수 있는 것은 '성인'의 특권 같다. 다만 본의아니게 내가 좋아하는 이 환경과 공간을 침범하는 물건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아이들의 '스티커', '고장난 장난감', '출처를 알지 못하는 충전선', '어떤 제품의 사용설명서', '고지서', '치약뚜껑', '구멍난 양말' 뭐 이런 것들이 꾸준히 나오기 마련인데 정기적으로 의식하고 버리지 않으면 금방 내 공간을 침범하여 갉아먹기 시작한다.

'책'을 좋아하다보니, '뇌'속에 정보가 어지러운 상황을 피하고 싶어진다. 온갖 광고, 사용설명서를 포함한 불필요한 정보가 많아지니 피로도가 쌓인다. '귀'와 '눈'이 예민해지다보니 자칫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지치고 피로하다. 눈을 어디에 두어도 잡념을 떠올리게 하는 물품들이 가득하다.

그래서 작정하고 거의 모든 걸 버리기 시작했다. 집안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기 시작했다. 그처럼 '하나하나' 버리다보니 '공간'이라는 것이 '신체'나 '머릿속'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건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도 신체는 '노폐물'을 배출해야 한다. 또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머릿속은 '상념'과 '잡념'이 쌓여간다. 고로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거나 '명상'을 하여 '리프레쉬'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언제 그랬는지 모르게 몸과 머릿속은 노폐물과 잡념으로 가득차게 된다.

탁한 물병을 눈 앞에 두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어지러운 것들을 함께 이고지고 갈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로 정기적으로 '정리'에 관한 책을 꺼내 읽는 편이다. '손웅정' 작가의 책을 보면서 이런 생각은 '확신'으로 바뀌었는데 그렇다고 그전도의 경지로 하지는 못하고 있다. 아이들이 이는 집이라 아직은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곤도 마리에'의 책을 읽다보니 이런 말이 자주 나온다. '설레는 것만 남기고 버려라'. 행복은 크게 한방이 아니라 작고 소소한 것이 빈번하게 올 때 얻을 수 있다. 실제로 영어에서는 '행복'과 '만족'이라는 단어를 함께 사용한다. 만족이라는 단어는 크기가 '꽉차있다'라는 의미로 사실 채울 수 있다면 작은 것을 채우는 것이 더 수월하다.

아무리 좋은 것들에 둘러 쌓여 있더라도 먼지가 자욱하면 그것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고로 '곤도 마리에'의 생각은 이렇다. 자신을 '설레게 하는 물품'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버려라, 그렇게 하면 나는 나를 설레게 하는 물품들에 둘러쌓여 있고 어디에 있거나, 어디에 눈을 돌려도 나는 '행복'이라는 감정, '만족'이라는 감정에 둘러 쌓여 그것에 쉽게 노출되게 된다.

언어를 배우는 가장 중요한 요건중 하나는 '노출'이다. 미국에서 태어나면 자연스럽게 '영어'가 늘고, '한국'에서 태어나면 자연스럽게 '한국어'가 늘게 된다. 노출이란 '노력' 없이 어떤 것을 얻는 가장 근본적인 요건이다.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생각했다. 집안에 노폐물이 많이 쌓여 있구나, 이것저것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봤더니, '없어도 문제가 없는 것들'이 나의 생활 공간을 좀먹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을 버려야 할까,를 고민하지 말고, 무엇을 남겨야 할까, 를 고민하며 틈틈히 싹, 하고 정리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시 다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안이 습관이 되지 않게 - 대화가 풀리고 관계가 편안해지는 불안 다루기 연습
엘런 헨드릭슨 지음, 임현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다보면 '그냥 그렇구나...'하고 넘어가는 내용도 많지만 어떤 내용은 그것이 '뇌리'에 '탁'하고 박혀서 일상의 작은 습관이 되고 한다.

대표적으로 '하킴 올루세이'의 '퀀텀 라이프'에 나오는 습관이다. 습관은 아주 단순한데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면 즉시 '주변'을 센다,는 전략이다. '엘런 헨드릭슨'의 저서 '불안이 습관이 되지 않게'에는 이와 비슷한 '전략'을 하나 소개한다.

'내면의 비판자를 잠재우는 법'에서 소개한 훈련법이다.

5-4-3-2-1 훈련이다.

모든 습관은 제일 중요한 것이 쉬워야 한다. 반복하기 쉬워야 그 진입장벽이 낮아진다. 낮아진 행동은 반복하기 쉽고 반복이 잦아지면 습관으로 굳어진다. 5-4-3-2-1 훈련은 매우 쉽다.

첫째, 주의를 둘러보며 눈에 보이는 다섯 가지를 말한다.

둘째, 네가지 소리를 찾아본다.

셋째, 세가지 촉각을 느껴본다.

넷째, 두가지 냄새를 맡아본다.

다섯째, 입안의 맛에 주의를 느껴본다.

숫자의 규칙이 복잡하다면 개인의 방식대로 바꾸어도 좋을 것 같다.

눈에 보이는 벽장 줄무늬를 다섯 가지 세어보거나, 발가락이 닫는 바닥의 느낌이나 어깨 뒷편의 감각 혹은 코끗의 감각을 세밀하게 느껴본다거나, 쾌와 불쾌를 구분하지 않고 몇가지 주변의 냄새를 맡아보는 등이 그렇다.

개인적으로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대면할 때, 나는 종종 이 방법을 사용하곤 한다.

예전에 주의력결핍장애를 가지고 있는 초등학생을 상담했던 경험이 있다. 아이는 대화를 할때, 묻는 질문에 항상 '수 초' 정도 늦게 대답을 했다.

개인적으로 질문에 대한 대답이 1~2초 늦어지는 정도는 기다려 줄 수 있겠으나 어떤 질문은 1분에서 길게는 5분까지 기다려야 했다.

보채지 않고 아이의 대답을 듣기 위해 언급한 방법을 선택했다. 아이 뒤에 있는 '책'의 권수를 세는 것이었다.

그 뒤로도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짜증'이 '확'하고 올라올 때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나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갑작스럽게 짜증이 '확'하고 올라가는 그 순간 그 감정에 '매몰'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호흡'을 세거나 눈깜빡임 수를 세는 것이다.

'수'라는 것은 보통 어떤 목적을 위해 센다. 그리고 생각보다 꽤 강한 주의력을 요구한다. 쉽게말해서 우리는 숫자를 세면서 손으로 애국가를 쓸 수 없고, 마음속으로 호흡을 세면서 동시에 증오담긴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다.


숫자를 세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 삶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거운 '아령'을 들거나 런닝머신을 뛰는 것처럼 '운동'의 효과도 전무하고 그렇다고 그것이 사람을 더 '영리'하게 해주거나 '피부'를 밝게 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런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 '숫자세기'이지만 그래도 최소한 그 머릿속에서 하고자하는 '부정적인 생각'과 그것이 불러 일으키는 나쁜 행동보다는 '덜' 해롭다.

주변을 세거나 숫자를 세는 것은 '아무런 이득'도 주지 않지만 떠오른 생각과 상념보다는 덜 나쁘기에 그나마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다.

'빈센트 반고흐'는 말했다.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는 속삭임이 머릿속으로 떠오를때면, 그때야 비로소 그림을 그려야 할 때다. 그림을 그리면 머릿속 속삭임은 그제서야 사라진다.'

대체로 사람의 생각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른다. 불안감을 느끼고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걱정하고 고민했던 우리네 선조들이 '낙관적이고 긍정적이었던 경쟁자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우리는 생존해 남은 그들의 '부정적인 유전자'를 받았다.

이것은 '내'가 특별히 더 못나기 때문이 아니라 '손'이 아니라 '발'로 걷고 코가 아니라 '입'으로 물을 마시는 것처럼 '타고나기'를 그것이 더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그렇게 태어난 일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를 괴롭히던 실질적 위헙이 모두 사라진 상황에서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굳이'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아도 생존해 낼 수 있다. 되려 현대 사회는 과거에는 존재했으나 지금은 사라진 그 '위협적 존재'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필요도 없다.

고로 그것은 단순히 우리 스스로를 갉아 먹는 사고로 남아 있을 뿐이다. 마치 사용하지 않는 '맹장' 어느 기능 처럼 그렇다.

과거 '맹수'에게 노출된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피식자들'은 스스로에게 '독성'을 분출했다. 이는 근육을 수축시키고 스스로를 '나 멋없는 고기야'라는 어필을 하기 위한 최선의 방어책이었다.


포식자들은 독성을 내뿜어 상대를 죽이지만 피식자들은 맹수 앞에서 스스로가 맛없는 고기임을 입증하기 위해 수많은 독성물질을 스스로 만들어 자신을 독에 중독 시켜야만 했다.

초식동물들의 상당수는 '맹수'들의 저주파 울음소리를 들으면 자신이 만든 독성에 의해 피부조직과 근육을 수축시켜 '얼어 있는 상태'가 된다고 한다. 300만년도 더 거슬러 올라가면 네발에서 겨우 두발로 걷던 '루시'를 만난다.

'그녀의 가족'들은 대부분 피식자들에게 도망다니고 밤에는 벌레나 쥐를 조심해야 했다. 언제나 긴장하고 불안한 삶을 살던 이들은 생존해 냈고 그 유전자가 지금 우리에게 와 있다.

그런 '감정'은 분명 '타고나고 자라며 분화한 감정'이겠지만 분명하게 말해서 우리는 '타고난 대로'만 사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왜소한 몸이지만 운동으로 건장하게 키우고 누군가는 아는 바가 없어도 연습과 훈련으로 외국어를 익히거나 새로운 기술을 익히기도 한다.

고로 불안이 습관이 되지 않도록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연습 방법이 분명 필요하다. '엘런 헨드릭슨'의 '불안이 습관이 되지 않게'에는 꽤 쓸만한 이런 좋은 습관 만드는 방법과 요령을 정리해두었다. 앞으로 이중 몇몇은 페이지가 끝난 뒤에도 나에게 남아 좋은 습관을 남겨 줄 것만 같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집단 망상 - 잘못된 믿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조 피에르 지음, 엄성수 옮김, 김경일 감수 / 21세기북스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신이 믿고 있는 것들 중 상당수는, 사실 당신의 생각이 아니다'

생각이라는 것은 과연 개인의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생성되는 것일까, 아니면 언제든 외부에서 만들어지고 조작할 수 있는 것일까,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이라는 책에 보면 이런 사례가 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 즉 '지구 평평론자'들은 흔히 '무지하거나 비이성적인 집단'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들 중 상당수는 평균 이상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 특히 공학이나 과학, IT분야의 고학력자도 적지 않다.

이들은 어느날 갑자기 '지구가 평평하다'고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아주 사소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왜 지평선은 항상 평평해 보이는가', '왜 비행기 항로는 직선처럼 보이는가'

이러한 질문까지는 충분히 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런 최초의 질문은 아주 작을 수 있다. 다만 우연하게 비슷한 의문을 품었던 이들과 커넥션이 생기면 그 뒤로는 개인 내부가 아니라 집단이 제공하는 '서사'를 따라가게 된다.

집단에서 만들어진 서사는 '신념'으로 바뀐다. 그들 내부의 결속은 '필터버블'을 형성하여 자신들의 논리에 '확증편향'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보는 유튜브 알고리즘도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의문을 가지고 가벼운 질문을 던진다고 해보자. 우연찮게 하나의 영상을 클릭 했을 때, 그 우연에 의해 다음 영상은 비슷한 추천 영상이 올라온다. 몇번의 선택이면 흔히 말하는 '필터버블'에 갇혀, 자신의 생각에 '확증편향'을 갖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이 믿음은 '정보부족'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정보 과잉 속에서 '선택적으로 정보를 구성한 결과'다. 자신이 보고 싶은 정보만 보고, 믿고 싶은 설명만 연결한 끝에 하나의 완성된 '세계관을 형성'한다. 그리고 그 세계관 안에서 모든 반대 증거는 '조작'이고, 모든 반론은 '세뇌'라고 인식한다.

여기에 '딱'하고 들어 맞는 일상 심리 용어가 있는데 바로 '인지부조화'다.

인지 부조화는 1950년대, 한 가지 이상한 집단을 관찰하다가 만들어진 용어다. 미국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가 '왜 사람은 틀렸다는 증거 앞에서도 생각을 바꾸지 않는가'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당시 미국에는 '한 여성'이 이끄는 소규모 종교 집단이 있었다. 그 여성은 스스로 외계인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고로 곧 대홍수가 일어나 지구가 종말할 것이며, 자신들만 외계 우주선에 의해 구출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 예언은 날짜와, 시간까지 구체적이었다.

신도들은 당연히 이 말을 믿었다. 그들은 직장을 그만두고, 재산을 처분하고, 가족과의 관계도 단절했다.

그러던 어느날 여성이 예언했던 그날이 왔다. 그러나 실제로 당일에는 대홍수는 커녕 맑은 날씨가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외계인은 당연히 오지 않았고, 홍수도 없었다. 여기서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아,.. 우리가 속았구나'하고 생각해야 한다. 다만 대부분의 신도는 정반대로 생각했다. 그들은 '자신의 믿음'에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자신들의 순수한 믿음과 기도가 지구를 구했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자신들의 기도가 외계인에게 닿아 그들의 계획을 바꿨다는 논리로 변경된 것이다.

이 장면을 목격한 '페스팅거'는 이렇게 정리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믿음을 바꾸기보다 현실을 재해석하는 쪽을 선택한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걸었기에 그들의 믿음은 곧 그들의 정체성이 되어 버린다. 단순한 믿음에 '시간, 돈, 관계, 자존심'이 얽히면서 '믿음'이 곧 '자신'과 일치화된다. 이 과정에서 그 믿음을 바꾼다는 것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바와 같다. 고로 그들은 '믿음'을 바꾸기보다 '새로운 해석' 즉, 망상으로 스스로를 유지한다.

'내가 믿어온 것'과 눈앞에 현실'이 충돌할 때 생기는 정신적 긴장상태, 페스팅거는 이를 '인지부조화'라고 불렀다.

중요한 점은 이렇다. 인지부조화는 무지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확신이 강할 수록 생긴다. 투자할 것이 많을수록 더 강하게 작동한다. 고로 사람은 틀렸다는 증거 앞에서 생각을 고치지 않고 설명을 붙이고 음모를 만들고 적을 상정한다.

지구평평론이나, 외계인 은폐론, 극단적 종교 신념도 모두 이런 구조에 놓여 있다. 굳이 멀리 갈 것도 없다. 최근 '젠더 갈등', '세대 갈등', '정치 이념 갈등'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갈등에 극하게 몰입하는 경우, 그들은 웬만해서는 그 신념을 바꾸지 못한다. 다만 그들이 그런 신념을 가지게 된 것은 아주 작은 의심과 생각에서 시작을 했고 그런 이들이 더 쉽게 모이도록 하는 알고리즘도 한 몫 한다.

최근 이런 사회 문제는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뻗어나가는 추세다.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극한 대립으로 양극화 되어 있는 모습에서 우리는 쉽게 '집단 망상'에 대해 체험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례를 보면 늘 안도한다. '저 사람들은 극단적이다' 혹은 '나는 저 정도는 아니다'

다만 '집단망상'의 저자 '조 피에르'는 '집단망상'을 특정 집단의 병리로 다루지 않는다. 그저 '정말 스스로 믿는 다고 생각하는가'하고 묻는다.

생각은 개인 내부에서 태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언제든 환경에 의해 유도되고, 집단에 의해 강화되며, 알고리즘에 의해 반복된다. 또한 그 생각에 시간고 ㅏ감정, 관계와 자존심이 얽히는 순간 그것은 더이상 의견이 아니라 '자아'가 된다.

그뒤부터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검증하기보다는 확증편향에 의해 더 견고해 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그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이지유신 - 일본의 퀀텀점프 이야기
박경민 지음 / 밥북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853년, 일본 에도 앞바다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군함들이 나타났다. 당시 일본의 배는 대부분이 목선이었다. 일본 배들이 '풍력'에 의존하던 시기다. 바람이 멈추면 배도 함께 멈췄다. 반면 미국에서 온 군함은 달랐다. 검은 군함은 '증기선'이었다. 석탄을 태워 움직였고 끊임없이 연기를 뿜어댔다. 바람과 상관없이 전진했고, 연기를 내뿜었다.


 선체는 검게 칠해져 있었고 대포가 노출되어 있었다. 이 배가 일본인들의 눈에는 기이하게 보였다. 익숙한 배의 모습은 아니었다. 이 사건 이후 일본 사회는 '쇄국정책'으로는 더이상 국가를 유지할 수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을 했다.


 당시 일본을 통치하던 도쿠가와 막부는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개항을 둘러싸고 그들은 우왕좌왕했다. 그 사이 내부 통제력도 약해졌고 막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1868년, 정치 권력은 막부에서 천황 중심의 정부로 다시 넘어갔다. 이 정권 교체가 '메이지 유신'이다.


 같은 시기, 조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선 역시 오랫동안 쇄국 정책을 유지하고 있었다. 조선도 서양 세력의 접근을 경계하고 있었고, 이양선이 해안에 나타나 통상요구와 무력 시위를 하곤 했다. 본질적으로 조선이 받은 충격은 일본과 본질적으로 같았다.


 여기서 '일본'과 '조선'은 각각 다른 선택을 한다.


 조선은 체제를 바꾸기보다 유지하는 쪽을 택한다. 외세의 접근은 '막아내야 할 위협'으로 인식했고 통상 거부로 이어졌다. 덕분에 내부 권력 구조는 유지됐다.

 반대로 일본은 권력 구조부터 바뀌었다. 막부를 해체하고 천황을 중심으로 국가 운영 체계를 다시 짰다.


 19세기 중반 미국과 유럽은 '산업혁명' 이후 공급력 폭발이 일어났다. '증기기관'이 돌아가고 기계가 물건을 생산하면서 공급이 늘었는데 그것을 소비할 수요처를 찾기 힘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새로운 시장이 필요했는데 물건을 판매할 판매처, 값싼 원료를 사올 수입처가 필요했다. 이 시기를 경제사에서는 '산업자본주의의 과잉 생산 단계'라고 본다.


 조금더 크게 보자면 '제국주의'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당시의 시대상을 보면 '동아시아'의 입지를 추측해 볼 수 있다. 당시 '미국'과 지금의 '미국'은 꽤 다르다. 당시의 미국인구는 일본보다 적은 수준이었고 조선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의 인구가 2500만에서 3500만 수준인 반면 청나라의 인구는 4억에 이르고 조선 인구도 2000만에 가까웠다.


 당시 서구의 입장에서 동아시아는 '문명화 해야 할 지역'이전에 물건을 팔 수 있는 거대 소비 집단인 편이다.


 당시 '쇄국정책'에 대해서 지나친 비난이 있을 수 있지만, 동아시아 삼국이 쇄국을 유지하려던 이유는 지금의 무역 경제 논리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생산설비가 불균형한 두 국가간의 자유무역은 곧바로 후진국가의 국내 경제 붕괴와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삼국의 경우에는 농업 중심 경제다. 화폐보다 '곡물'이 실질적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생산성이 낮고 미곡반출은 인건비 상승과 물가 상승으로 직결됐다.

 서양 공산품이 대량 유입될 경우, 값싸고 품질이 일정한 물품이 시장에 쏟아져 들어오게 되고 그렇게 되는 경우에 국내 수공업 전통 산업이 바로 붕괴하게 된다.


 당시 기준으로 보면 쇄국은 '시대착오'라기보다 '경제 방어 정책'에 가까운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역시 '조선'과 마찬가지로 개방이 위험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다만 1853년 검은 군함의 등장으로 일본은 '개방' 여부가 '시기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비슷한 시기 조선에도 '제너럴 셔먼호'가 등장한다.


 여기서 차이점이라면 일본 앞바다에 온 '검은 군함'은 미국의 '해군 군함'이었고 '조선'이 마주한 배는 '미국 민간 상인'이 운용하는 '무장상선'이었다. 일본의 경우에는 '군함'을 통해 '외교 요구'를 받은 상황이고, '조선'의 경우에는 '민간 상선'이 '무단 침입'한 사건에 가깝다.


 이처럼 배의 차이가 인식의 차이를 만들었고 결국 일본은 '개항'을, 조선은 '쇄국'을 선택한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가장 먼저 손댄 것은 '제도'였다. 제일먼저 '신분제'를 폐지했다. '사무라이'가 사라지고 '농민, 상인, 무사'는 법적으로 같은 신분이 됐다. 이는 프랑스나 미국에서 말하는 '사회적 평등'이라기 보다 '인력 동원'을 위한 정비에 가까웠으나 어쨌건 '일본사회'도 역시 근대의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은 분명했다.


 1871년에는 '번'을 폐지하고 '현'을 설치했다. 지방 영주가 세금을 걷던 구조를 없애고 '국가'에서 직접 세금을 거뒀다. 이때부터 일본은 '국가' 단위 예산을 운용할 수 있게 됀다.


 또한 '세금'을 걷는 방식 역시 변화했다. '지조개정'을 통해 세금을 쌀이 아니라 현금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 조치 하나로 일본 경제의 기준이 '곡물'에서 '화폐'로 이동한다. '쌀'이 반출되면 '물가가 상승'하는 구조에서 벗어나는 기반이 만들어지면서 자유 무역구조에서 버틸 수 있는 최소 조건이 만들어졌다.


 근대화 초기에 일본의 산업정책은 더 직접적이었다. 초기에는 국가 주도적으로 공장을 세워 산업화를 시작했으나 이후 수익구조가 '민간'에게 넘어감녀서 '미쓰이, 미쓰비시'와 같은 대규모 자본 집단이 만들어졌다. 유학생을 대규모로 서구로 보내고 동시에 외국 기술자를 일본으로 불러 들였다.


 같은 시기 조선은 다른 선택을 했다. 조선은 '질서유지'를 위해 '개혁'을 뒤로 미루었다.


 '개항'을 '경제문제'가 아니라 '안보문제'로 인식했다. 당시 시대적 상황을 봤을 때, 조선인들은 안보적으로 나름 괜찮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일본이 국가 주도로 인력을 재편하고 산업을 키우던 시기, 조선은 정치 불안과 민란을 위해 개혁을 '위험' 요소로 여기고 '체제 안정'에 힘을 기울였다.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서구가 겪었던 것과 같은 단계에 진입한다. 공장을 돌리기 시작했고 생산량은 늘었다. 공급이 늘어나 국내 시장만으로는 그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일본 역시 '넓은 판매처'를 필요로 했다.


 '처음'에는 그들 역시 내부 수요를 키우려고 했으나 한계는 분명했다. 사업을 하다보면 공장은 끊임없이 돌아가고 공급이 과잉되면 '상품가격'이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이 온다. 고로 '시장확대'는 필연적이다.


 '미국'과 '프랑스' 등 여러 서구 국가가 문을 두드렸으나 끝까지 버텨낸 두 시장인 '청'과 '조선'이 남아 있었다.


 청과 조선은 여전히 완전히 열리지 않은 시장이었다. 조선과 청은 서구에게는 꽤 거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부담이 큰 시장이었으나 일본에게는 달랐다.


 지리적으로 가가웠고 군사적 접근도 용이했다. 또한 이미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대상이기도 했다.


 고로 일본 역시 서구가 했던 판단을 그대로 하게 된다. 


1876년 일본은 군사력을 배경으로 조선의 문을 연다. 강화도 조약은 통상조약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실질은 시장 개방에 가까웠다. 일본 상품이 들어오고 조선의 쌀과 자원이 빠져나갔다.


 메이지 유신으로 시작된 일본의 근대화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시장을 더 공격적으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바뀐다. 결국 근대화는 '제국주의'로 이어졌다.


 역사를 감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선과 악, 가해와 피해의 구도로만 정리하면 그 시대가 왜 그렇게 움직였는지 보이지 않는다.


 19세기 동아시아의 선택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였다. 산업혁명 이후 세계는 이미 공급 과잉을 전제로 돌아가는 체제로 넘어가 있었고, 그 질서에 들어가지 못한 국가는 의지와 무관하게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은 그 구조에서 비교적 빠르게 적응한 편이고, 조선은 그 구조에서 '체제 안정'을 더 중요하게 봤다. 어느 쪽이 옳았는지 보기에 앞서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지 하는 질문을 하는 쪽이 좋은 것 같다.


 조선이 무능하고 일본이 단순히 '앞서 나가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역사가 바뀌었다기 보다 무수한 우연과 흐름이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생각이 든다. 


 박경민 작가의 '메이저 유신'을 읽으면서 단순히 '일본'이 먼저 개항해서 '근대화했다'라는 인식이 많이 사라졌다. 일본 역시 조선처럼 많은 갈등과 선택을 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사실을 보게 되니, 흥미로웠다. 일본의 근대사에 대해 이처럼 자세히 알 수 있게 해준 '박경민 작가'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