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바뀌면 좋은 운이 온다
김승호 지음 / 쌤앤파커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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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도착 첫날, 굉장히 독특한 광경을 봤다. 흐릿한 날씨에 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비를 피하거나, 가리지 않고 그저 맞고 걸어가는 것이다. 누구도 뛰거나 우산을 쓰지 않았다. 우산을 쓰고 가는 경우는 외국인이 다수였다.

과연 왜 그랬을까.

당시 유학생 시선에서 그 행위가 '선진국'의 여유로움이라 여겼다. 얼마 뒤, 그러나 나 또한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천천히 걸었다.

해양성 기후인 뉴질랜드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날씨가 바뀐다. 몇초 비가 내리다가 화창한 날씨가 된다. 고로 비를 피하거나 우산을 쓰기보다 그냥 소나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편이 낫다.

인생에서 '불행'은 '소나기'와 같다. 갑작스러움과 막연함이 나를 젖게 만들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내리는 소나기는 그냥 맞아야 한다. 맞아도 금방 맑은 날이 왔다. 인생이 날씨는 해양성 국가의 날씨 만큼이나 변화무쌍하다. 영원히 내릴 것 같은 비는 사실 잠시 머물다 흘러가는 경우가 많고 그것을 빨리 깨닫게 되면 감정의 출렁거림은 점차 사그라든다.

인생 전체와 비교했을 때, 불행은 터무니 없이 짧게 스치고 간다.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는 보행자의 잘못이 아니다. 일기예보를 살피거나 준비성을 운운하기에는 '그저 일어나는 일'이 불과하다. 고로 담담한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불행을 소나기와 비교했다. 그러나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모든 인생은 모두 뉴질랜드의 날씨와 같지 않다고 말이다. 어떤 인생은 비가 많이 내리고도 하고 어떤 인생은 비가 덜 내리기도 한다. 그것을 보고 일부는 '불공평'하다고 말한다. 그렇다. 원래 인생은 불공평하다. 그것은 빨리 인정해야 한다. 인생이 불공평한 것이 아니라, 원래 자연은 불공평하다. 자연에는 빛이 있고 어둠이 있다. 음과 양이 있고, 위와 아래가 있으며, 좌와 우가 있다. 이런 차이로 지구에는 '지역별'로 '기후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면 다시 물을 수 있다. 만약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라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나.

당연하다.

평소에 '우산들고 다니기'를 생활화하면 된다. 그도 아니면, 내리는 비가 내리는 일을 이용하면 된다. 얼마 전, '두바이'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두바이에서는 도시 곳곳에 미관상 심어놓은 잔디 때문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한단다. 두바이 전체 예산 중 40% 가까이가 인프라 관련 예산이고 이중 34억 달러 정도가 물과 전기 수요에 사용됐다. 이는 전체 예산의 18%다. 즉, 일부 국가에서는 공짜로 물을 내려주는데, 어떤 국가에서는 '비'가 해결해주는 문제에 엄청난 예산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삶은 어디에서 어떤 상황에 처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삶은 '대응'에 있다. 두바이에 살면 그에 맞는 삶을 살고, 뉴질랜드에 살면 그에 맞는 삶을 살면 된다. 더 쉽게 말해서 소나기가 자주 온다면, '소나기'를 탓할 것이 아니라, 그에 맞는 스탠스를 어떻게 취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베트남과 같은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에 살면서 우산도 준비하지 않는다거나, 두바이와 같은 가문 지역에 살면서 스프링클러를 준비하지 않는 삶을 살면, 그만큼 '불운'이 찾아 올 빈도가 높다.

고로 불운이 온다는 것은

첫째로, 충분히 그럴 수 있으며, 그것이 짧게 지나갈 것이라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둘째로, 불운이 한번, 두번, 그리고 세번과 같이 잦게 찾아온다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

모든 것은 '환경'과 '사용'에 따라 그 모양을 달리한다. 환경은 그에 맞는 모습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모습은 적합하게 사용된다. 즉, 북극곰은 추운 기후 때문에 두꺼운 지방층과 털을 갖게 됐고, 두꺼운 지방층과 털은 추위를 막는데 유용하게 사용된다.

우리는 동물종 마다 각각 진화적 이유를 '환경'에 설명하며 '자연선택설'을 믿으며, '인종'과 '국가', '개개인'에게는 그 이유를 적용하기 망설인다. 이런 시도는 근대에 '골상학'이나 '우생학'에서 사용됐다가 인권문제로 현재는 거의 금기시 된다. 그러나 '우생학'의 아버지인, 프랜시스 골턴의 사촌이 '찰스 다윈'이라는 것은 그 둘의 관계만큼이나 연관성이 있다.

생물의 다양성만큼이나 인간의 종류는 다양한다. 그들중 어떤 이는 어떤 환경에 더 번창하고, 어떤 환경에 쇠퇴했다. 어떤 상황에서는 눈이 큰 사람이 생존에 유리했고, 어떤 상황에서는 청각이 발달한 사람이 생존에 유리했으며, 어떤 상황에서는 피부가 더 고운 이들이 생존에 더 유리했을 것이다. 사회가 다양화되면서 우리 사회는 각각 생김새에 따라 그에 맞는 자리가 있는 시대가 됐다.

마이클 조던이 12세기에 태어나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빌게이츠가 기원전에 태어났다면 마찬가지로 지금과 같은 명성을 얻지 못했을 수가 있다. 또한 이들 모두가 '소말리아'에서 태어났다면 분명 그 능력발휘는 10분의 1도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말은 우리는 현재 꽤 적합한 시대에, 적합한 장소에 있어 우리에게 맞은 능력발휘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고로 우리는 두가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는 환경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다. 환경과 자신을 알고 그 둘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관계에 놓여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혹, 두꺼운 피부층을 가진 북극곰이 아프리카에 있진 않은지, 아프리카에 있는 기린이 북극에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제 3의 눈으로 볼 때, 북극에 있는 기린과, 아프리카에 있는 북극곰은 서로 맞지 않음이 명확하게 보이고, 이 둘이 서로 불행한 이유는 환경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맞지 않아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쁜 상황이란 없다. 다만 맞지 않는 상황만 있을 뿐이다. 자신을 알고 환경을 알면 고로 우리는 운명을 바꿀 수 있다.

수학에는 '큰수의 법칙'이 있다. 시행횟수를 무한대로 높이면 수학적 확률에 수렴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동전을 던지면 앞이 나올 확률과 뒤가 나올 확률이 50%다. 10번을 던지면 어떤 경우에는 앞이 8번, 뒤가 2번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시행횟수를 무한대로 올리면 결국 앞이 나올 확률은 수학적 확률인 50%에 수렴한다. 즉, 인생이라는 전체의 게임판에서 '행복'으로 수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첫째, 행복할 수 밖에 없는 환경, 자신에게 적합한 환경을 찾고, 간혹 나오는 '불행'을 덤덤하게 맞이하며 그 시행횟수를 무한대로 높이는 것이다.

그것은 '관상'에서도, '수학'에서도, '자연'에서도,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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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의 대전환 - 세계 경제 질서를 뒤바꾼
해롤드 제임스 지음, 정윤미 옮김, 류덕현 감수 / 21세기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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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롤드 제임스, 그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역사학과 국제관계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경제사와 국제 경제 관계에 깊은 통찰을 갖고 있고 현재 우리의 위치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제공한다. 그가 이번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곱 번의 경제 위기가 단순 경제적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언급한 역사적 사건은 과연 무엇들일까.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곱번의 경제 위기는 이렇다.

1840년대, 대기근

1870년대, 한계혁명

1920년대, 1차 세계대전

1930년대, 대공황

1970년대, 대인플레이션

2000년대, 대침체

2020년대, 대봉쇄

경제 위기는 단순히 수요와 공급의 문제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애초에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을 사회철학으로 여겼다. 인간의 행동 양상에 대한 탐구다. 돈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은 '경제학'의 본질이 아니다. 경제에는 돈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짐 로저스'는 자신의 저서에 '한국'이라는 나라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위기'란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는 시기다."

해롤드 제임스 또한 일곱 번의 경제 위기를 부정적으로만 보진 않는다. 그는 각 위기를 '좋은 위기'와 '나쁜 위기'로 구분한다. 공급 부족은 시장을 확대하고 혁신을 촉진시킨다. 수요 부족은 시장이 축소되서 긴축정책을 초래한다. 각 상황이 가진 다양한 측면을 골고루 볼 수 있도록 한다.

경제를 말할 때, 항상 언급되는 키워드는 '수요', '공급'이다. 그뿐만 아니라 주요 키워드가 또 있다.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인플레이션은 화폐가 팽창하여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화폐가치가 떨어지면 자산과 물가는 상승한다. 단순한 논리 구조로 볼 때, 가격 향상은 기업의 마진을 높일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은 항상 기업의 마진을 높이는 것은 아니다. 1955년부터 1965년까지 제조업 매출은 연평균 8.6% 증가 했다. 반면 물가 상승률은 1975년까지 8%로 낮아진다. 워렌버핏 또한 1977년 '포춘지'에 이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인플레이션이 기업 마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야기다. 중앙은행이 통화를 발행하고 금리를 조정하는 일은 어떤 의미에서 역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반면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로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인간의 행동 양상. 그것이 경제학이다. 애덤 스미스가 연구하고자 했던 그 철학 분야다.

1800년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여러 위기를 가졌다. 대기근과 대공황, 오일쇼크, 금융위기, 팬데믹. 단순 수요 공급만으로 설명 할 수 없는 이 다양한 역사적 사실들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쳤고, 경제는 이 사건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경제 위기는 각 위기마다 방향을 크게 돌며 세계화의 흐름을 결정짓는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1840년대 초기 초기 글로벌 경제는 혼란의 시기였다. 시장은 확장됐다. 1930년에는 글로벌 경제가 수축하고 보호주의가 부활했다. 대량생산이 벌어지면서 소품종 대량생산이 시대적 흐림이 된다. 우리가 말하는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는 대공황이 일어난다. 1970년에는 오일 쇼크로 인한 공급 충격과 새로운 경제 질서가 탄생한다. 2007년 금융 위기에는 수요부족과 긴축 정책의 부작용이 일어난다. 마지막 가장 최근이 2020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현대 경제의 취약성이 노출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는 회복하는 과정이다. 현대에는 봉쇄, 인플레이션 등의 주요한 이벤트가 된다.

결과적으로 해롤드 제임스는 각 경제 위기가 단순 경제적 사건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요인들도 복합적으로 얽혀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런 위기들은 단순한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함께 숨어 있으며, 시장 구조와 경제 정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이런 근현대사적 사례를 통해 현재와 미래에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그 문제 해결에 대한 통찰을 얻길 요하고 앞으로 미국 대선 이후, 가장 유력 후보인 트럼프의 보호주의가 우리 시대의 경제를 다시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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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하지 말라 - 당신의 모든 것이 메시지다
송길영 지음 / 북스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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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윌리엄 깁스는 이렇게 말했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다만 모두에게 균등하게 온 것은 아니다."

실제 어느 한 사업가가 '화성탐사'를 위해 23층 건물 높이의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이 시기에도 동아프리카 어느 지역에서는 기아에 목숨을 잃는 이들이 속출한다. 실제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모두에게 균등하게 온 것은 아니다.

예전, 한 학생이 물었던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인공지능'이 '의사'를 대체하게 될 텐데, '의사'라는 직업은 없어질 직업 아닌가요?"

나는 답했다.

"아니, 의사라는 직업이 더 쉽게 일하게 되겠지."

기술은 혼자서 발전하지 않는다. 제도를 만나고 문화를 만나 적당한 제동에 걸리고 알맞은 옷을 입게 된다. 사람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 있다. 사실 가솔린 차보다 전기차가 더 먼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전기차는 '미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술 중 하나 아닌가, 그러나 최초의 전기차는 19세기 초에 이미 개발되었다. 로버트 앤더슨은 1832년 경 최초의 전기 마차를 만들었고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전기차는 꽤 인기 있었다. 어떤 지역에서는 가솔린 차보다 전기차가 더 인기가 있기도 했다. 다만, 주유에 편리한 '사회 인프라', '사회적 제도', '석유산업의 발전', '전쟁과 에너지 기업의 로비' 등 다양한 원인으로 '가솔린차'가 시장을 점령했다.

이미 일부 변호사들은 법적 문서 초안을 Chat GPT에게 맡긴다. 모든 것을 인공지능에게 맡길 수는 없지만 간단한 초안 정도를 인공지능에게 맡기기만 해도 업무 효율은 급격히 높아진다. 높은 업무 효율이 더 높은 생산성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변호사나 의사라는 직업은 인공지능에 의해 사라질 직업이 아니다.

인공지능이 업무 효율을 높이면서 생산성이 높아질 직업은 그밖에도 많다. 교사, 강사, 심리상담가, 인플루언서, 작가 등이 그렇다. 이들의 특징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Chat GPT는 '학업 도구'가 될 수는 있으나 '스승'이 될 수 없다. 친분을 쌓는 일은 기계가 아니라 인간과 할 수 밖에 없고, 누군가의 '히스토리'를 듣는 것을 기계가 대신 할 수는 없다.

망치를 들면 세상이 온통 못으로 보이다는 말이 있다.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사회적 이슈가 되며, 그것에 대한 두려움은 함께 따라온다. 심지어 모든 두려움이 '인공지능'과 결부되기도 한다.

'페스트'로 인해, 유럽이 인구가 급격하게 줄었을 때, 유럽의 사회 구조는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제일 먼저 노동자 감소로 임금이 급격하게 올라갔다. 농노와 농민은 더 나은 대우와 임금을 요구할 수 있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농노제가 약화됐다. 그 결과 자유 농민이 증가했다. 다수의 농장은 버려졌거나 생산성이 감소했고 일부 지주는 농업에서 목축업으로 전환하여 더 적은 노동력으로 더 많은 이익을 얻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사람들은 기회를 찾아 도시로 이동했고 상업과 무역이 발전했다. 기존 귀족 계급은 엄청난 인구 손실로 인해 그 세력이 약해졌고 그로인해 사회적 이동성이 증가하여 하층민이 중상층으로 상승할 기회가 높아지기도 했다. 조금 비약해 보자면, 자본가가 만들어졌고, 자본가는 비싼 임금을 대신한 기계를 도입했다. 또한 노동자들은 이 기계를 때려부수는 '러다이트 운동'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러다이트은 기계 파괴라는 단기적이고 폭력적인 수단을 이용했으나,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권리와 생계를 보호하고 노동 조건을 개선하는 사회적 책임을 만들도록 했다.

급격한 인구가 줄어들면 발생하는 일은 이처럼 단순히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실제로 인구는 급격하게 줄 때보다, 급격하게 늘었을 때 엄청난 문제를 발생하곤 했는데 아일랜드 대기근이나 로마 제국의 붕괴 등도 급격한 인구 증가가 문제였다.

노동인구가 넘쳐난다면 '인공지능'은 필요를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시장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면 그 사업은 사라지고 만다. 그렇지 않은가. 최근 '동해'에 유전이 발견되면서 꽤 흥미로운 이야기가 들리곤 했다. 아무리 기름이 많이 있다고 하더라도, 시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많으면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 모든 사업은 비용 대비 수익률이 높아야 한다. 아무리 굴착기가 존재해도 지구 어딘가에서는 삽을 들고 땅을 파는 것이 경제적인 곳이 있다. 그런 곳이 많다면 굴착기 사업은 더 대단한 기술혁신을 갖고 있음에도 살아갈 수 없다.

선진국의 인구 감소, 인공지능의 발전은 어쩌면 또다른 패러다임의 변화일 수도 있다. 페스트가 창궐했을 당시에도, 사람들은 유럽의 존망을 걱정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패스트 이후 유럽은 사회 구조가 혁명적으로 바뀌면서 세계의 패권을 가져갔다.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에 대해서 먼저 고민하지 않으면, 어쩌면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먼저 활용한 이들에게 다음 시대를 내어 주어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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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9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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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학이 그렇겠지만,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은 '다자이 오사무'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는 1909년 아오모리 현에서 태어났다. 대체로 고뇌에 차 있고 어두운 분위기다. 그런 탓에 그의 글을 읽으면 기분이 나빠져서 별로라고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아무튼 그의 글은 당시 사회적 혼란을 반영한다. 무엇보다도 자전적 요소를 보인다. '인간실격'과 '사양'이 있다. 이 두 편의 소설을 나는 간격을 두고 읽었다. 다만 만약에 다시 읽어야 한다면, 반드시 함께 읽겠다.

개인적으로 두 작품은 붙여 읽기를 권장한다. 두 편을 함께 읽으면 작가를 더 입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된다. 1인칭으로 그리고 3인칭.

무슨 말일까.

인간실격은 다사이 오사무를 1인칭으로 본 글이다. 반대로 사양은 그를 3인칭으로 본 글이다. 두 글의 도입을 보면 둘은 완전히 다른 소설인듯 하지만 결국 같은 소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단 그 둘이 공유하고 있는 공통 배경은 다자이 오사무의 배경을 닮았다. 고로 다자이 오사무를 먼저 알아야 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다. 집안의 부는 '대부업'을 통해 얻었다. 사회주의에 심취해 있던 그로써, '대부업'과 '부유함'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했다. 그는 자신과 가족을 혐오하는 한편 모순적이게도 그 부에 대한 이득도 함께 얻었다. 그는 도쿄 제국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다. 또한 학교를 중퇴하고 1930년 중반 부터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스스로를 혐오하던 그는 실제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한다. 약물 중독과 같은 문제로 고통 또한 받는다. 이 경험은 '인간실격'과 '사양', 두 편의 소설에 직접적으로 반영된다.

그는 생은 꾸준한 자살시도의 도전이다. 마지막 1948년 39세의 나이로 시도한 자살에서 성공하며 짧은 생을 마감한다. 소설에는 그 과정에서 갖게 되는 다양한 고뇌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자이 오다무' 스스로는 소설 속 인물이자 주변인이다.

'인간실격'과 '사양' 두 편의 소설은 얼핏 다른 이야기를 하는가 싶다. 주인공의 이름도 다르고 당연히 주인공도 다르다.

기본적으로 인간실격은 다자이 오사무의 이야기를 주인공을 통해 담은 이야기다. 주인공 요조의 내면을 통해 작가 자신의 고통과 좌절, 인간에 대한 절망을 고백한다. 실제 소설에서는 자살 시도와 약물중독, 인간관계 실패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반면 '사양'은 전반적인 이야기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설명한다. '사양'의 주인공은 그 주변인으로 설정되어 있다. 몰락한 귀족 가문과 전쟁 후의 일본 사회를 간접적으로 묘사하며 그를 고뇌하는 한 남자를 지켜보는 주변인의 시선으로 남자를 들여다 본다.

다시말해서 '인간실격'이 다자이 오사무의 자서전이라면, '사양'은 그를 바라보는 제3자의 시선이다.

작품은 단순히 개인의 비극을 넘어, 당시 전후 일본 사회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가족 가문이 몰락하는 과정과 전통적인 가치관, 사회적 구조의 변화를 보여주고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는 모습도 보여준다.

우리 현대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마르크스', '사회주의'에 관한 지식인들의 관점과 고뇌가 들어가 있다.

개인적으로 인간실격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때쯤 읽어서 그런지 후반부에 드러나는 '인간실격'과 중복되는 내용은 반전처럼 다가왔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기분 나쁘고 어둡고 찜찜한 이야기 일 수는 있으나 나름 감명 깊게 읽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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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les of the House (Hardcover)
맥 버넷 / Disney Pr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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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책나무숲'이라는 독서기록장을 보내준다. 주1회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다. 아이의 '책나무숲'을 살펴봤다. 쓰여진 독후감이 400권이 넘는다. 단순히 권수를 채우는 것이 성인이건 아동이건 분명히 좋은 건 아니다. 다만 독서습관을 형성하는데는 '권수'를 채우는 것이 좋다.

어떤 면에서 보건데, 권수를 목표로 채우는 독서는 위험하다. 빠르게 권수를 채우기 위해, 쉽고 얇은 책을 보게 될 것이며 대충 읽거나 속독을 하는 습관이 길러진다. 또한 진정한 독서의 재미가 아니라 '허영심'을 채우게 된다는 우려가 있다. 과연 그럴까. 일부 이 말에 동의하고 일부는 동의하지 않는다.

'쉽고 얇은 책을 보게 되는 것은 나쁜가'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초보에게는 어려운 책이 아니라 쉽고 얇은 책이 권해져야 한다. 만약 세발 자전가는 진정한 자전거가 아님으로 세발자전가를 타는 것은 좋지 않다라는 주장이 있다고 해보자. 이에 동의할 수 있나. 그럴 수 없다.

이미 독서에 일가견이 있는 이들은 얇고 쉬운책만 골라 권수를 높이는 행위에 높은 점수를 부여하지 않겠지만 이제막 문해력을 길러가는 과정에서는 쉽고 얇은 책으로 문해력을 길러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어린아이의 경우는 더 그렇다.

'속독'은 나쁜가.'

그렇지 않다. '속독'은 나쁘지 않다. 글의 종류는 쓰임에 따라, '편지글', '일기문', '주장문', '설명문', '알림글, 정보글', '소설' 등 다양하다. 모든 글을 똑같은 방식으로 읽는 것은 꽤 멍청한 방법이다.

편지글은 빠르게 말하고자 하는 목적을 판단하는 것이 좋고, 일기문은 분위기와 심경을 이해하는데 촛점이 맞춰져야 한다. 주장문은 글의 구성에서 주장이 있는 부분과 근거에 해당하는 부분에 따라 그 강도를 다르게 읽어야 하며, 설명문의 경우에는 '사실'에 근거한 내용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고 알림글과 정보글은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설은 그 흐름을 이해하고 주인공의 관계와 주제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어찌 다 똑같은 글 읽기라고 할 수 있는가.

실제로 지금 말했던 글의 종류는 수능 영어영역에서 학생의 글읽기 능력을 파악하는데 사용된다. 즉, 다양한 종류의 글을 읽어보는 것은 '교육부'에서도 권장하는 내용이다. 다양한 종류의 글을 읽는데는 다양한 글읽기 방식이 당연히 필요하다.

'허영심을 채우면 안되는가.'

왜 안되는가. 누군가는 사이버 머니를 수집하고, 누군가는 우표를 수집하며, 누군가는 돌도 수집한다. 수집하는 목적과 이유에 따라 각각 다른 심리적 원인이 있겠지만, '허영심'은 꽤 중요한 성장동력이다.

누군가는 남들보다 비싼 자동차를 타기 위해 열심히 일을하고, 누군가는 남들보다 멋진 몸을 갖기 위해 열심히 운동한다. 원래 사람은 사회적 동물인지라 남들과의 관계 형성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법이다. '허영심'은 그 자체로 긍정적이진 않지만 그것이 '동기부여'의 뗄감으로 아주 적절히 이용된다.

'많이만 읽으면 무슨 의미가 있나'

주식용어 중에 자석효과라고 있다.

아무렴 어떤 주식이 호재로 인해 24%정도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하더라도 그 주식은 반드시 30%까지 상승한다. 상한가의 끝점이 강하게 잡아당기듯 가격상승을 부축이는 것이다. 마치 주식처럼 말이다.

사람은12월 1일에 97권의 책을 읽었다면 어떻게 해서든 12월 한달간 3권을 더 읽어서 100권을 채우고 싶지 않겠는가. 사람의 심리가 그러한데, 권수를 채우는 행위가 반드시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거기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가볍게 읽은 얇은 잡지에서 인생을 바꿀 한마디를 얻을 수도 있다.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어도 좋다.

감상문을 그림으로 그려도 좋다.

책을 읽다가 포기해도 좋다.

중요한 것은 내가 책을 읽으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기록하는 것이지, 외부적인 규칙에 얽매여 있어서는 안된다.

간혹 나는 '인문학 강의'를 유튜브로 볼 때가 있다. 아마 거기 '의무'와 '책임', '규칙'이 들어가 있다면 나는 결코 그 채널을 보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 채널을 보는 이유는 그냥 궁금하기 때문이다. 언제든 그만 볼 수 있고 그것을 보거나, 보지 않거나 외부의 간섭이 없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데 자세가 그게 뭐냐.

그 책은 저번에 읽었던 책이니, 다른 책을 읽어야지.

그러게 괴발개발 글씨체로 쓸꺼면 쓰지마라

독후감은 책의 내용을 기록해야지, 그렇게 아무 그림이나 그리면 안된다.

이런 잔소리는 '제발 책 좀 읽지 마라'라는 말보다 더 아이의 책읽기를 방해한다. 아니, 어쩌면 차라리 '제발 책 좀 읽지 마라'라고 말하는 편이 더 책읽기를 권장하는 방법일지 모른다.

나는 아이가 여러번 읽는 책이 있다면 슬며시 '영어 원서'를 사둔다. 그럼 아이는 한참을 그림만 관찰한다. 그러다가 얼핏 아는 단어를 발견하고 한참 이야기 한다.

아이는 다시 그 책을 꺼내고 한참을 보다가 그 단어의 의미를 유추한다. 다시 한참을 보다가 문맥을 이해하고 어떤 경우에는 그 단어를 암기하기도 한다.

가만보면 세상은 모두 '태도'에 달려 있다. 원통도 위에서 보기에는 원이지만 옆에서 보기에는 네모라고,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같은 것도 완전히 다르게 보이는 법이다.

참고로 Rules of the house는 우리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 원서로도 구매했다. 성인이 보기에도 꽤 재밌는 책이라 초등 저학년 부모들은 '국문'으로, 기회가 된다면 '원서'로 읽혀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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