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세계사 - 세계를 뒤흔든 결정적 365장면 속으로!
썬킴 지음 / 블랙피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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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총 무겁지 않나요? 빨리 쏘세요'

이국적인 외모의 네덜란드 출신 무용사로 그녀의 이름은 '여명의 눈동자'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마타 하리'는 20세기 초 유럽의 상류층을 매혹시킨 전설적인 인물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이중 스파이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녀는 단순한 무용가 수준을 넘는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정치적 음모와 첩보 활동이라는 꽤 영화 소재 같은 인생을 살았다.

1917년 10월 15일 파리 근교, 그녀는 프랑스 당국에 체포되어 '총살' 당한다. 그녀의 매력적인 인생과 외모처럼 꽤 인상 깊은 유언을 남겼는데 그 말이 앞서 말한 '총 무겁지 않나요? 빨리 쏘세요' 였다.

그녀의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날짜 때문이다. 날짜는 1917년 10월 15일. 지구가 태양을 주변으로 70번을 돌고 정확히 그 자리에 다시 섰을 때 내가 태어났다. 누군가가 생을 마감하던 날, 태어나는 것은 그닥 특별한 일은 아니다. 모두가 모르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는 태어나고 있고, 누군가는 죽고 있을 것이다.

살면서 '마타 하리'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녀의 간략한 이력 정도는 들어 알지만 언제 그녀가 처형 당했는지 알 턱이 없다. 다만 그녀의 처형 날이 나의 태어난 날과 겹치며 그녀의 죽음과 나의 삶에 어떤 인연이 생겨버린 느낌이다.

이렇게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누군가의 특별한 날을 살아가고 있다. 소설 '가시고기'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당신이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자가 간절히 바라던 내일이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생각해보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날은 특별한 날이었으며 누군가에게는 태어난 날이고, 누군가에게는 죽은 날이며, 누군가에게는 결혼 기념일이고 누군가에게는 이별한 날일지 모른다. 이런 이야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사라지고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날짜'라는 숫자 밖에 없다.

10월은 꽤 선선한 날이다. 이날, 어떤 사람은 아직 반팔을 입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일찍 긴팔을 꺼내 입었을 것이다. 월과 일을 두고 '년'을 바꾸면 그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주 똑같지는 않지만 대체로 비슷한 느낌의 풍경을 보고 느꼈을 것이다.

글을 쓰는 1월 9일 오후 10시, 제주에는 꽤 많은 양의 눈이 내렸다. 거의 첫눈이라고 보여지는 이 눈을 뚫고 2시간은 걸었다. 잡히지 않는 택시를 탓하고 걷다가 고개를 돌리는 미끌어지는 택시 한대가 앞에 서 있는 승용차를 들이 박는다.

'어이쿠'

'쿵'하는 소리가 들린다. 미끌어지는 택시를 보니, 어쩌면 택시가 잡히지 않는 이유를 알 것 만 같았다. 모두가 나와 같을 것이고 모두가 택시를 찾고 있지는 않을까. 같은 계절을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비슷한 요구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1905년 1월 9일 러시아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무려 1000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한 비극이 벌어졌다. 80년 전 오늘이다.'먹을 것을 달라'는 비무장 농민과 노동자 시위대에게 러시아군이 발포 명령을 내린 것이다. 여기보다 더 혹독한 날씨에 많은 노동자들이 본능처럼 들고 있어났을 것이다. 이 추위에 얼어 죽을 것 같던 비무장 농민들은 거리로 나와, 군대의 총알로 죽는다. 이들은 곧 혁명을 일으키고 러시아를 멸망시킨다.

그렇다. 따뜻한 어떤 날에는 아무 문제도 없던 것이 추워 견디기 힘든 날이 되면 그 인내는 다른 인내의 수용력도 갉아온다. 오늘이면 그럴 수 있었겠다, 고개가 끄덕여지며 어떤 역사가 오늘처럼 쉽게 다가온다.

썬킴의 '그날의 세계사'는 1년 365일을 다양한 역사로 구성하고 있다. 내용을 봐서 알겠지만 정독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본인의 생일, 너무나 힘든 하루, 의미 있는 날, 간간히 들쳐보며 인류의 역사는 오늘 무슨 일기를 써 내려갔는지 보는 일이 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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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 버리기 연습 - 학습당한 가짜 감정으로부터 내 삶을 되찾는 법
데번 프라이스 지음, 신소희 옮김 / 디플롯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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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번 프라이스(Devon Price)는 사회심리학자이자 작가다. '게으르다는 착각'이라는 책의 저자로 해당 도서는 사회심리학적인 측면에서 '게으름'에 대한 분석을 하기도 했다. 글은 대체로 자기돌봄이나 사회심리에 관한 글이 많다.

'수치심 버리기 연습' 또한 단순 개인이 가진 '수치심'을 이야기 할 뿐만 아니라 이를 '사회심리학적인 측면'으로 분석해 말한다. 책을 읽으면서 그가 어째서 사회심리학에 관심을 둘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배경을 알게 된다.

글을 읽다보면 작가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누구를 지지했을지 대번에 예측할 수 있다. 작가는 대체로 '사회적 정의'와 '평등', '소수자의 권리'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대통령의 정책이나 태도를 달가워 하지 않는다. 도서에도 관련 대목이 나오기는 한다.

그의 직업이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다루고 소외된 사람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특히 이민이나 소수자 문제, 기후변화 등은 정확히 작가가 관심을 두는 것과 반대 의견이다. 어째서 작가가 그런 사회 현상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를 알면 글이 조금더 수월하게 읽힌다.

지금까지 글을 쓰면서 작가를 '그'나 '그녀'라고 호칭하지 않았다. '데번 프라이스'를 '그'나 '그녀'라고 호칭하지 않은 것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본인 스스로도 자신을 '그(he)'나 '그녀(She)'로 지칭하지 않는다. 본인을 지치할 때, '데번 프라이즈'는 '그들(They)'라고 지칭한다.

'그들(They)? 그것은 복수 아닌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다만 현대 영어에서 단수로 상요하는 경우도 왕왕있다. 성별을 특정하지 않거나 젠더 중립적인 표현으로 사용할 때 그렇다.

그렇다. 작가는 '논바이너리(Non-binary)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하면 전통적인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젠더 체계에 속하지 않는 정체성을 의미한다.

'성정체성'에 관해서는 가치판단하지 않고 본인 스스로를 정의한 부분에 대해서만 말하도록 하겠다.

영어는 굉장히 '성별'을 중요시 여기는 언어다. 대체로 보수적인 성차별 문제를 두고 '조선시대'를 이야기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이는 '조선'이 아닌 어느 문화에서도 있던 일이다. 지금도 미국과 영국 등 영어권 국가에서는 남녀가 결혼을 하면 여성은 남성의 성을 따라간다. 또한 경찰관(Policeman), 우체부(Mailman) 등 아예 어떤 직업에는 성별이 고정되어 있기도 하다. 앞서 의사(Doctor)를 이야기 했으면 상대는 멋대로 He라는 인칭대명사를 사용하고 간호사(Nurse)를 이야기 했으면 상대는 멋대로 She라는 인칭대명사를 사용한다. 간혹 그래서 영어권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이를 교정하는 과정이 한번씩 들어간다.

이런 문화에서 작가는 '비바이너리'이자, 트렌스젠더이다. 그는 자신이 '트랜스젠더'라고만 밝혔다. 성별을 구별하지 않기 때문에 남자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했는지,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을 했는지는 모른다. 또한 데번이 소수자에게 관심을 두는 또다른 이유중 하나는 그가 '자폐스펙트럼'을 갖고 있어서다.

이처럼 스스로를 완전한 소수라고 여기는 작가는 '체계적 수치심'이라는 정의를 설명한다. '체계적 수치심'은 사회 구조와 문화가 개인에게 지속적으로 수치심을 느끼도록 만드는 매커니즘을 말한다.

즉 자신의 정체성이나 환경 때문에 느끼게 되는 수치심이다. 체계적 수치심은 불안과 번아웃, 우울증 등 정신건강 문제를 만들고, 그 문제를 사회적 구조가 아닌 개인을 문제의 원인으로 착각하도록 만든다.

도서는 문제가 '사회'에 있지 '개인'에게 있지 않다고 말한다.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과 해결하는 접근 방식에 있어서 정치적인 성향이 반영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독자인 정치적 시선을 차치하고 오롯하게 작가의 글을 읽어 본다면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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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 - 의심을 생산하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철학적 대화 실험
리 매킨타이어 지음, 노윤기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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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을 '상상'으로 채워 놓곤 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에 지도에는 '미지의 영역'이나 '위험한 영역'에 'Here be dragons'라고 표기했었다. 당시 지도 제작자들은 탐험되지 않은 지역에 대한 경고를 위해 상상의 무언가를 채워 넣었다. 이는 본능과 같다. 인간은 비어 있는 부분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진실이 아니라면 비록 그것이 상상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무언가로 채워 넣어야 만 했다. 이런 능력은 어두운 밤에는 포식자의 공격에 대비할 수 있게 했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에게는 사후 세계를 소망하게 했다.

이런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은 '신'이 주는 두려움과 같다. 그런 이유로 '미지'의 것은 경외로움을 담고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에 대한 가장 쉬운 접근은 '음모론'이다. 피라미드를 어떻게 쌓아 올렸는지 깊게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면 단순히 '더 높은 문명의 외계인이 짓고 갔다.' 수준의 음모론을 믿는 편이 쉽다.

이런 음모론은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미국이 달에 착륙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려운 다수의 사람은 이를 이해하는데 가장 쉬운 방법을 택했다. 바로 '가짜 연출'을 했다는 것이다.

너무 복잡하거나 미지의 영역인 경우 인간은 그 '진실'의 영역을 '상상'으로 채웠다. 받아들일 사람이 가장 쉽게 이해 할 수 있는 수준으로 두루뭉실하게 짜넣으면 그만이었다. 현대의 미국 아이들도 으르렁거리는 '세탁실'을 가장 두려워하고,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화장실'을 가장 무서워 하기도 했다. 어둡고 컴컴한 그것의 빈공간에 경외 혹은 '두려움'의 무언가를 채워 넣는 것이다.

놀랍게도 현대 사회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지식 수준이나 사회적 지위가 낮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이유는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혹은 심리적인 요인에 뿌리를 갖고 있다.

그들이 음모론을 믿는 것처럼 우리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대략 두루뭉실하게 이해하기 쉬운 범주'로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 또한 무언가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말해서 상대를 단순히 '바보'라고 몰아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것에 대한 가장 쉬운 접근은 '음모론'이다. 그들은 잘못된 믿음을 고수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정체성과 세계관이 위협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가르켜 '인지부조화'라고 한다.

1950년대 미국의 작은 종교 집단의 리더는 외계인의 메시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1954년 12월 21일 대홍수가 내려서 인류가 종말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어 하늘에서 UFO가 올 것이고 이를 통해 그녀와 그녀의 추종자들만이 구원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내용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집단에 합류했다. 다만 그녀가 말했던 12월 21일에는 대홍수는 커녕 깨끗하고 맑은 하늘이었다. 이쯤하면 사람들은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속았다고 생각해야 했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예언을 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가 하늘에 닿아 종말을 막았다'고 믿었다. 예언은 실패했지만 추종자들은 오히려 더 강하게 믿음을 강화했고 자신들이 세상을 구원했다고 믿었다. 이 사건을 본 '레온 페스팅거'는 이 과정을 '인지부조화'라고 불렀다.

현상은 우리의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현상이 벌어진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미국의 유명한 천체물리학자인 '닐 디그래스 타이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상은 당신에게 납득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존재할 뿐이다.'

다시말해서 그들이 '평평한 지구'를 믿는 이유도 하나의 '현상'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로 볼 수 있다.

그들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믿음에 대한 근거를 묻고 스스로 반성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또한 완전히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도 공통의 가치를 기반으로 대화할 수는 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역시 그 주제를 제외하고는 우리와 같은 사고를 하고 살아간다. 그들과 다른 주제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바도 좋다. 또한 그들과 대화를 하며 유대관계를 쌓고 상당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요하다.

이 책은 '지구가 평평하다. 둥글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 아니다. 과학적 사고 뿐만아니라 사고와 설득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단순히 과학적 진실을 지키는 것을 넘어서 사회적 분열을 줄이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올바른 대화를 배워가자는 취지다.

현대 사회는 잘난 사람 소수가 이끌어가는 '엘리트 사회'가 아니다. 모두가 각자 동등한 한표를 행사하는 '민주주의 사회'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설득'이다. 설득의 기본은 '이해'에서 시작한다. 책은 실제 저자가 직접 잘못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를 한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쓴다. 읽으며 굉장히 대담하고 유머러스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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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천재들 - 물리학의 한계에 도전하는 바다 생물의 놀라운 생존 기술
빌 프랑수아 지음, 발랑틴 플레시 그림,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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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 명명할 것이 마땅치 않아 음식으로 취급하는 '고기'를 생물에 직접적으로 붙인다. 과학 저술가 '룰루 밀러'는 19세기 자연사학자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생애를 추적하며 그가 물고기를 분류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서술했다. 조던은 수많은 물고기를 발견했고 그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자 했다. 다만 물고기라는 범주가 과학적으로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된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만든 '분류 체계'가 얼마나 불완전하고 주관적일 수 있는지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 내용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꽤 지금까지도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도서의 주제다. 주제가 말하는 바와 같이 '물고기'라는 범주를 정의하지 못한 채, 우리는 그것들을 과학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도서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후 '빌 프랑수아'의 '바다의 천재들'이라는 도서를 읽게 됐다.

흔히 '어류'라고 부르는 것들에 대해 정확한 명명을 못찾은 인류가 그들을 '바다의 천재'라고 명명한 것은 꽤 인상 깊다. 그들이 천재라는 사실은 도서 첫 페이지와 마지막 페이지까지 완전하게 공감할 수 있도록 설명된다.

앞서 말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도서가 인간의 불완전함을 꼬집는 책이었다면 이 책은 우리의 '공감능력'을 꼬집었다고 볼 수 있다. 이유는 이렇다. 살면서 한 번이라도 '물고기'의 입장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었던가. 분명컨데 대부분의 인류가 그들에 대한 공감적 정서를 갖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들에게 '고기'라는 명칭을 둔 것을 볼 때, 그들은 그저 '먹을 수 있는 살갖'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물고기의 세계는 '작은 물고기'와 '큰 물고기'로 나눌 수 있다. 이 둘은 공존하며 아름다운 세계를 이루고 있다고 믿을 지 모른다. 그러나 물고기 중에는 고래상어나 개복치처럼 무게와 크기가 수턴, 수 미터가 넘는 것들도 있고 난쟁이 망둥어처럼 다 자라도 새끼손톱만 한 것도 있다. 이 둘은 모두 '물고기'로 부른다.

우리는 물고기가 액체의 관성을 이용하여 추진력을 얻어 앞으로 나아간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실제로 액체 관성을 이용하여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는 몸이 어느정도는 커야 한다. 헤엄은 물 분자들의 집단적 움직임의 결과다. 생각해보자. 각각의 물분자는 너무나 작다. 그것은 우리가 헤엄치는데 전혀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너무 작은 생명체라면 어떨까. 너무 작은 동물은 각각의 물분자의 움직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쉽게 말하면 작은 물고기에게 '바다'란 야구공만한 '볼풀'이 가득한 불풀장에서 헤엄치는 것과 같다. 이들의 입장에서 볼 때, 물은 한 덩어리로 움직이는 유체가 아니라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물분자들의 집단이다. 이들은 볼이 가득한 볼풀장에서 볼을 밀어내며 움직여야 한다. 고로 더 많은 힘을 요하고 속도는 느려질 수 밖에 없다. 또한 크게 움직이는 '볼'들의 움직임에 의해 휩쓸리거나 큰 물고기의 움직임에도 영향을 받는다. 그들에게 '물'이란 우리가 느끼는 물과 크게 다르다. 작은 물고기에게 물은 점성이 매우 높은 물질처럼 느껴질 것이고 끈적거리는 꿀 속에서 헤엄치는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반면 큰 물고기도 그만한 불편함이 있다. 큰 물고기들은 물의 난류와 유체 저항이 증가하면서 마치 단단한 물질과 충돌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큰 물고기나 빠르게 헤엄치는 물고기들은 물이 더 밀도 높고 단단한 매질처럼 느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바람이 많이 부는 어느날 우산을 펴고 바람을 마주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과 비슷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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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이리 재미날 줄이야 - 아프리카 종단여행 260일
안정훈 지음 / 에이블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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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병이었다. 운전병은 하루 두 번의 배차를 받는다.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이렇게 배차를 받으면 운행시간은 길게는 1시간, 짧게는 20분도 걸리지 않는다. 두돈반이라고 불리는 트럭을 적재소에 대놓고 보통의 운전병은 담배를 피우러 자리하거나 낮잠을 잔다.

운이 좋고도 내가 배치받은 차량은 '신병훈련소'에서 자대로 가는 병사를 데려다 주는 일이었다. 오후에 차량 배차가 있더라도 '병사'를 운송하는 운전병의 특혜란 '졸리지 않도록 배려'하는 일이다. 그렇다. 쌀이나 과자를 싣는 운전병과 다르게 '사람'을 싣는 운전병은 최대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다.

당시 배차 받은 대대에서 혼자 쉴 수 있는 '휴게소'를 마련해 주셨다. 이전 담당 운전병은 그곳에서 TV를 보거나 탁구를 칠 수 있었다고 들었으나, 내가 갔을 때는 이미 TV와 탁구대는 사라져 있었다. 최소 15평은 되는 휴게실에는 벽 가득 책이 꽂혀 있었다. 자리에는 소파가 하나 있었다. 가끔 나를 대신하여 배차 받은 운전병들은 그 곳에서 낮잠을 자곤 했다.

오른손 검지 손가락으로 꽂혀 있는 낡은 책을 '스윽'하고 쓸어가다가, 몇 권의 책에서 멈춰서 꺼내 읽었다.

당시 책을 들고 건물 밖으로 나가면 시원한 계곡이 산을 끼고 흐르고 있었다. '졸졸졸' 하는 소리와 새소리가 절로 마음을 정화 시켰다. 그곳에서 '차량'을 전방으로 배치하고 책을 읽었다.

군생활 2년 중 1년은 이등병과 일병이라 거의 책을 읽지 못했으나, 상병이 되면서 시간적 마음적 여유가 생기면서 독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당시에 책을 읽으면 수첩에 기록하고 점수를 써놓거나 한줄평을 써놓기도 했는데 당시 1년 간 읽은 책은 100권 정도 됐다. 리스트는 이렇다.

'호아킴 데 포사다'의 '마시멜로 이야기'

'유수연 강사'의 '23살의 선택, 맨땅에 헤딩하기'

'허경영'의 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

(당시는 이 인물에 대한 인지도가 낮은 편었다.)

'박현욱 작가의 '아내가 결혼했다.'

'에쿠니 가오리'의 '도쿄타워'

'츠지 히토나리'의 '냉정과 열정사이'

'공지영'의 '사랑후에 오는 것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

'박윤서 작가'의 '창판협기'

대략 이런 것들이 기억난다. 당시 페이지를 넘길 때 나의 모습과 배경 시간, 감정이 동시에 기억나는 걸 보니, 책이라는 것이 참 신비하다. 오죽 책만 보고 살다보니, 당시 타부대 대대장 님께서 일부러 부대까지 찾아왔다.

당시 위병소에서 앉아 근부하고 있었는데 그 창가로 다가오셔서 만원짜리 몇 장을 '툭'하고 던져 주셨다.

'볼 때마다 책 읽고 있더라고, 책 좋아하는 것 같은데, 전역하면 책사서 읽어라'

지금 생각해보면 스쳐 지나가는 나의 모습을 지켜보고 전역날 일부러 찾아와 돈까지 던지고 간 그 모습이 너무 대단해 보인다.

'나는 그런 어른이 되어가고 있을까.'

아마 그 대대장의 나이는 지금 나보다 훨씬 어렸을 텐데 말이다. 어쨌건 당시 읽었떤 책 중 인상 깊은 책이 '한 아이 엄마'가 아들 둘을 데리고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살면서 겪은 이야기를 쓴 책이었다.

살면서 아프리카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 본적 없었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은 어떤 역사를 쌓고 왔을까'

완전히 이질적인 삶에 매력을 느꼈다. 그때 이후로 나의 꿈이 '아프리카'에 가는 것이 됐다.

아프리카는 나에게 그런 곳이다.

단순히 돈만 있다고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단순히 시간만 많아도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 둘은 필요조건이지만 충분 조건은 아니다.

아프리카에 가기 위해서는 돈과 시간뿐만 아니라, 그곳에 대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 같은 돈이면 충분히 유럽에서 편하고 안전한 여행을 할 수 있으며 그럴싸한 사진을 SNS에 올릴 수도 있다.

'여행을 위한 여행자'가 아니라 '일상'을 사는 평범한 사람이 과연 '아프리카'를 여행 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면 꼭 쉬운 결정은 아닐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의 꿈은 '아프리카'를 가는 것이다.

그냥 하는 모든 일을 그만두고 몇 개월 갈 수도 있다. 다만 내가 원하는 방향은 그런 방향이 아니다. '그곳'을 갈 수 있는 충분한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이 그것이다.

그 뒤로 나는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유튜버는 구독을 하고, 기행문도 '아프리카 기행문'은 꼭 사서 본다.

언제쯤 나도 아프리카를 여행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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