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님, 마음이 불편해요 ㅣ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2
법륜 지음 / 정토출판 / 2006년 10월
평점 :
한 예술가가 있었다. 그는 공을 들여 예술작품을 만들곤 했다. 어느날, 갑작스러운 홍수가 와서 그가 만들었던 모든 작품이 망가져 버렸다. 그는 깊이 낙담했다. 이 일로 법륜스님을 찾아간 그는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때 법륜 스님이 답했다.
"개가 내 똥을 먹는다고 아깝습니까?"
"아니요"
"왜 아깝지 않습니까. 내가 열심히 맛있는 음식을 먹고, 열심히 소화한 끝에 나온 똥인데요."
'똥을 개가 먹든, 밭에 뿌려지든,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미 모든 필요한 양분을 취했으니까요. 고로 똥을 개가 먹어 치우든 길가에 버려지든 전혀 아깝지 않은 겁니다.
다만 기왕지사 '타인'에게 도움이 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적어도 개천에 흘러들어가 주변을 모두 오염시키느니, 개라도 먹어 쓰임이 있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밭에 뿌려지고 타인에게 도움이 되면 더 좋겠지요.'
'결과물'이라면 '똥'과 같다. '결과'를 '과정'에 대한 '결실'로 받아 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때로 '결과'에 연연하게 된다. 이런 집착은 '결과'를 위해서 '수단'이나 '과정'이 정당화 하도록 한다. 그러나 과정에서 모든 양분을 취한다면 결과는 어떤 의미에서 똥과 같다. 모든 양분을 취하고 남은 찌꺼기일 뿐이다.
생각할꺼리가 많다. 내가 만들어낸 결과에 연연해 하는 일이 나에게도 적지 않았다. 결과라고 한다면 '재산', '학위', '성적' 등이 그렇다. 그것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적절한 양분'을 얻지 못하니, '배설'에 연연하게 되는 것이다.
마이크소프트 사의 창업자 '빌게이츠'는 '하버드 대학교'를 입학하고 2년을 다녔지만 자신의 '사업'에 대한 확신이 들자, 대학을 자퇴해 버렸다. 우리가 연연해 하는 대학이 그에게 필요 없는 이유는 '하버드'가 하찮아서가 아니라, '하버드'에 입학하는 과정에서 그가 얻을 양분은 모두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미련이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하버드 자퇴생’이라는 타이틀이 남았지만, 정작 빌 게이츠 본인은 그 타이틀에도, 하버드라는 간판에도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우리가 보기엔 ‘하버드 졸업’이 중요한 결과물일지 모르지만, 그는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이미 얻었고, 이제 더 이상 그 안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을 뿐이다.
그렇다.
결과는 찌꺼기다. 중요한 건 그 안에서 우리가 소화해낸 ‘양분’이다. 이쯤에서 이런 질문을 해보자. '나는 무엇을 위해 지금 그것을 하고 있는가?'질문은 간단하다. 다만 대답은 쉽지 않다. 대개 어떤 ‘결과’를 위해서 '지금'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입사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은 ‘합격’을 위해, 사업을 하는 사람은 ‘수익’을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은 ‘출판’을 위해. 그러나 그 결과가 무너지거나, 기대에 못 미치면 낙담하고 좌절한다.
그들에게는 '결과' 외엔 남은 게 없기 때문이다. 과정에서 무엇을 어떻게 얻었는가. 공든 탑이 무너졌다고 모든 것을 잃은 것은 아니다. 탑을 쌓는 과정에서 얻은 노하우, 집중력, 인내, 안목, 이런 것들이 남는다. 그런 건 다음 탑을 쌓는 데 반드시 필요한 양분이다.
2012년,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자 '다니엘 길버트'는 이런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사람들에게 두 장의 예술 사진 중 한 장을 고르게 하고, 고른 사진을 집으로 가져갈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일부 그룹에겐 나중에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줬고, 다른 그룹은 한 번 고르면 바꿀 수 없다고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바꿀 수 없는 조건의 그룹이 훨씬 더 자신이 고른 사진을 '좋아하게' 되었고, 심지어 그 사진이 자신에게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믿게 됐다.
반면, 바꿀 수 있는 조건의 그룹은 끊임없이 고민하고 후회했다. 이 실험이 말해주는 바는 분명하다. 결과보다 중요한 건 선택 이후의 '태도'라는 것이다.
결과가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오히려 불완전함이 우리에게 더 많은 생각거리와 배움을 준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과정을 통해 배우고 성장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말했다. '성공은 멀리 있는 무엇이 아니라, 매일매일 얻는 통찰에 있다.'고 말이다.
눈앞에 트로피, 졸업장, 계좌 잔고, 조회수 같은 것에 매달리지만, 진짜 중요한 건 그 안에 숨어 있는 나의 태도, 나의 관점, 나의 성장이다.
결국 진짜 자산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다. 결과는 흐른다. 수많은 과정과 선택이 쌓여 결과를 만들고, 결과는 다른 과정의 재료가 된다. 어쩌면 우리는 계속해서 '배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의 블로그 이름이 '해우소'인 이유도 그와 일맥한다. 배설물은 누군가에겐 땅을 비옥하게 하는 거름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쓰레기일 수도 있다. 어떤 식으로든, 그건 내 손을 떠난 것이다. 내 손에 남은 건 그것을 만들어낸 '내 안의 변화' 뿐이다. 인생의 모든 '결과물'이 누군가에게 쓰이든 말든, 나는 이미 그 과정에서 충분한 양분을 얻었다. 그리고 또 다음의 무언가를 위해, 나는 지금도 양분을 축적하고 있다.
밥을 먹고, 책을 읽고, 실수하고, 걷고, 실패하고, 또 다시 시도하면서. 어쩌면 지금 이 글조차 누군가에겐 그저 지나가는 배설물 같은 글일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이걸 쓰는 과정에서 아주 작은 양분 하나를 얻었다.
그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