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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0 시대 - 글로벌 대격변이 시작된다
박종훈 지음 / 글로퍼스 / 2024년 11월
평점 :
세계 경제의 디커플링(Decoupling), 국가 간 경제적 연결이 악화되고 블록화가 진행되고 있다. 2010년대 초반 '그렉시트'라는 용어가 생기기 시작했다. 언론에서 그리스를 유로존에서 탈퇴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세상이 이 정도로 파편화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렉시트가 거의 완전한 용어로 정착할 쯤, 난데없이 '브렉시트'라는 용어기 신문에서 나왔다.
'갖다 붙이기도 나름이구나'하는 나름의 비판을 하고 넘어갔다. 실제 영국인들이 '유로존 탈퇴'를 국민투표에 부칠 때까지, '브렉시트'는 황당하고 어이없는 생각이었다. 이 생각에 얼마나 확신이 들고 있었던지, 국민투표가 발표되는 날, 투자하고 있던 주식의 요동도 그닥 신경쓰이지 않았다.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있던 날, 나는 새벽 같이 뉴스를 보고 있었다. 영국인들이 전혀 이성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세상 멍청한 결정을 할리 없다는 확신이었다. 개표는 새벽부터 시작했고 오전 7시쯤 BBC에서 탈퇴 선언이 나왔다. 주식은 장이 열리자마자 황당할 정도로 내리 꽂혔다. 그때는 그게 그냥 사건이라고 여겼지만 지금보면 1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알린 '한발의 총알'같은 순간이었다.
브렉시트는 내가 경험한 디커플링의 첫 사례다. 브렉시트 이전만 하더라도 EU는 세계화의 상징이었다. 다국가 단일시장, 관세 없는 무역, 자유로운 인력과 자본 이동. 교과서에서 배우던 '세계화'의 표본과 같았다. 다만 영국은 글로벌 경제 블록에서 탈퇴하여 자국 중심의 독립 경제를 구축하고자 했다. 이후 세계는 전혀 경험해보지 않은 선택을 하고 있다. 두 번째 사례가 미국의 트럼프 등장이다. 힐러리와 트럼프가 대선을 할 때, 소위 '전문가'라고하는 사람들은 TV에 나와 '트럼프'라는 괴짜에 대해 비웃었다. 트럼프라는 재밌는 현상이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실제로 2017년 트럼프가 당선 됐고 2018년 미중 무역 전쟁이 개시됐다. 2018년 미국과 멕시코에 장벽을 세우겠다거나,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매기겠다는 황당한 공약, 동맹국에게 '방위분담금'을 요구하겠다는 공약도 당시 헛웃음나는 공약들이었다. 그렇게 비웃던 전문가들도 이제는 꽤 진중한 표정이되어 트럼프의 공약에 골똘해 한다. 그런 걸 보면 '세계 파편화'는 '해프닝'이 아니라, '주요 흐름'이다.
세계화는 단순환 논리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확장판과 같다. '분업화'라는 개념을 세계에 적용한 사례다. 각 국가마다 지정학적 이유로 경제적 강점이 다르다. 무역이 활발하지 않던 시기, 서로의 것을 갖기 위해서는 '전쟁'이 유일한 답이었다. 다만 2차세계대전에서 '석유'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미국은 중동으로부터 '석유'를 안전하게 공급 받아야하는 하는 문제를 가졌다. 안전한 석유 공급을 위해 미국이 해상 패권을 장악하면서 세계는 항로를 이용한 자유 무역이 가능한 시대가 됐다.
미국은 '석유'를 가져 올 때, 사우디아라비아 왕조의 안보를 책임져 주는 대신 '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 사우디는 지급받은 달러로 미국의 채권을 매입했다. 이렇게 서로가 각자의 국익에 따라 꽤 평화로운 관계를 이어갔다. 페트로달러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다. 통상 거래에서 달러를 사용하자는 브레튼우즈 체제가 이 시스템과 정확하게 맞아가며 세계화는 더 가속화 됐다.
내가 더 가진 것을 내놓고 남이 가진 것을 가져오는 자유무역, 세계화가 시작한 것이다. 다만 시간이 지나며 문제가 발생했다. 자유무역은 태생적으로 불균형한 산업구조를 만든다. 가령 분업화한 개인도 자신의 업무 외에 다른 업무를 보지 못하는 바와 같다.
그렇게 한 국가에 대한 핵심 기술, 에너지, 군사적 의존도가 높아졌다. 곧 이를 무기화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중국의 일본 희토류 제재라던지, 한국에 대한 사드 보복도 같은 맥락이다. 세계화가 만들어낸 결과가 경제적, 안보적으로 위험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정 국가에 지나치게 의존적인 세계가 되면서 이를 무기화하는 사례는 속속 늘어났다. 코로나19가 발발하자 중국에서는 공장이 멈추고 전세계 공급망은 마비될 정도였다. 러우전쟁도 에너지 가격을 폭등시켜 유럽에 심각한 경제적 안보적 위협을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디커플링'은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하나의 전력인 셈이다.
인력, 기술, 산업이 한 국가로 점차 쏠리면서 심각한 문제가 전 세계 곳곳에 생겼다. 기업들은 인건비가 저렴한 국가로 공장을 이전하곤 했는데 그 국가 중 하나가 '중국'이다. 중국이 '제조업'을 흡수하듯 가져가는 과정에서 미국은 자국 내 제조업이 약화되고 일자리가 줄어 들었다. 대표적으로 '반도체' 혹은 '조선', '자동차', '석유산업' 은 20세기에 미국의 주요 산업중 하나다. 이들은 현재 모두 유럽과 동아시아로 산업이 이전 된 상태다. 미국내에서 산업 공동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안보와 직접적으로 얽혀 있다. 2차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엄청난 생산력으로 선박을 찍어 찍어내던 국가다. 미국은 사실상 해양국가이기 때문에 해군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와중에 세계의 조선업 1위가 중국이 된 셈이다.
21세기에는 인공지능과 같이 더 심각한 안보적 위협이 될 기술이 중국으로 흡수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2010년 초반, 세계화에 발목이 잡혀 있던 미국에게 기회가 생겼다. 미국의 셰일가스 생산은 생산 가격이 급격하게 낮아지고 생산량은 폭발적으로 많아지기 시작한다. 2018년, 미국이 사우디보다 원유생산량이 많아지기 시작하는 분기로 미국은 더이상 자신들의 세금으로 세계경찰 노릇을 할 이유가 사라졌다. 세계화는 미국에게 책임만 많고 이익이 없는 계륵 같은 것이다. 여기에 철저하게 '손익'을 계산하는 사업가가 대통령이 됐으니 세계를 보는 시각도 대차전표 보듯 하게 됐다.
미국은 식량, 에너지, 군사력, 첨단기술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한 국가다. 일부 해외 의존도가 있는 높은 산업도 있다. 다만 다행히 이들 대부분은 '일본', '한국'과 같은 '동아시아'에 의존하고 있는 편이다.
'유럽', '캐나다'는 '미국'과 산업 구조가 겹친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자국에서 충족가능한 산업을 갖고 있는 상대국가인 셈이다. 세계가 '트럼프의 위협'을 말하는 이유는 우리가 보고 있는 다수의 언론이 '서방언론'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경쟁관계에 놓여 있다. 다만 한국과 일본은 미국이 필요로 하는 핵심 산업을 보유하고 있고 경쟁 관계보다는 협력 관계에 놓여 있는 분야도 많다. 이런 분야는 공급망 개편 과정에서 오히려 호황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최근에 미국이 한국이나 일본의 기술을 가져오기 위한 리쇼어링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기술을 빼앗거나 대체할 수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완전한 대체는 거의 불가능하다. 반도체나 배터리 생산에는 수많은 소재, 부품, 장비가 필요하다. 공장을 짓는다고 해도 공급망 문제나 인력 문제, 생산문제는 지속성을 잃게 만든다.
실제로 우리는 탈세계화 시대를 맞이하면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다만 정확히 세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파악하면 꼭 트럼프의 당선이 위기라고만 할 수는 없다.
트럼프2.0은 더 강력해진 트럼프 시대를 설명한다. 가볍고 가독성도 좋다. 요즘 같이 '미국에 관한 뉴스'가 쏟아지는 시대에 이 책을 안 볼 수가 없었다.